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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북문.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국내에서 만리장성으로 통하는 금정산성.


범어사에서 정상인 고당봉을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치게 되는 성문이 북문이다. 금정산성의 총길이가 18km로 산성의 모양이 흡사 고구마를 닮아 있는데 동서 남북으로 4대문을 두고 있다. 북문은 금정상 정상 아래의 편편한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북으로 고당봉이 솟아 있고 남으로는 금정산 주능선인 원효봉을 거쳐가는 최저점에 설치된 성문이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 숱한 외침으로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1703년(숙종23년)에 축성되었다. 그러나 금정산성은 신라시대때 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1701년(숙종27년)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착공이 되었다.

 



 

 


☞(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국내에서 만리장성으로 통하는 금정산성북문. 원효스님이 화엄경을 강설, 화엄벌로 불려


1807년(순조7년)에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하였고 그 이듬에 서문, 남문, 북문에 문루를 세웠다. 세월이 흘러가며 일제강점기때 일인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2년 부터 동, 서, 남문 복원 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에 일부 마무리가 되었다. 1989년에 북문을 복원 준공하여 4대문중 가장 마지막에 복원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북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세심정과 금정산 문화 탐방 지원센타 건물이 있는 일대를 북문광장이라 부른다. 미륵사를 창건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화엄경을 펼쳐 놓고 설파를 하였다하여 화엄벌로 전해지며 임진왜란때는  범어사,국청사 해월사 미륵암등의 스님이 승병이되어 훈련을 받았던 장소이다.다. 근대에 와서는 일제 강점기때인 1919년 범어사 3월 만세 운동의 거사를 위해 기미독립선언서을 가지고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해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801.5m)을 넘어 이곳 북문을 통과하여 청련암으로 향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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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여행/금정산성)국내에서 만리장성으로 통하는 금정산성북문. 규모가 가장 작은 익공계 팔작지붕.


금정산성 북문은 4대문중 규모가 가장 작다. 그러다 보니 동문 서문 남문은 웅장하며 규모가 큰  문루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북문은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초라한 문루는 정면1칸, 측면 1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의 단층으로 금정산의 망루 규모와 비슷하다. 그러나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을 보면 "만사람이 모두 힘을 합해 149일만에 북문의 초루가 완성되었다"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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