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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신라의 고도는 서라벌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경주가 옛날 신라의 수도입니다. 그런 경주에 현재 신라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대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대역사가 월정교 복원공사입니다. 월정교는 경주를 관통하는 하천인 남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천에는 신라 천 년을 상징했던 다리가 하나가 아니고 두 곳이 있었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주 월정교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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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곳의 다리가 월정교와 춘양교입니다. 두 곳 모두 지금까지 무너진 교각 잔해만 하천바닥에 널부러저 있었습니다. 그 두 교각 중 한 곳인 월정교가 현재 새로운 대역사를 쓰고 복원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월정교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여행이라 했지만,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멀찍이서 주변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궁금해서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언제쯤이면 공사가 끝나는냐고예 ㅎ ㅎ 그 관계자의 말로는 월정교 공사는 거의 끝났으며 주변 조경공사만 마무리하면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내년 봄에는 모든 공사가 끝나 일반인도 관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처음 월정교 복원공사를 본 게 아마 2년 전 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도 월정교 외관은 마무리된 것 같았는데 그러다 잊고 지내다, 최근에 블로그에서 월정교 야경 사진을 보고 당장 달려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 야경사진은 남천에 흐르는 불이 반영되어 정말 내 마음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포스팅 날짜를 보니까 그때가 11월 초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남산 둘레길을 겸하면 되겠다 싶어 경주를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인지라 상쾌한 기분을 즐기고 싶어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월정교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3km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서 경주의 다른 문화재를 곁눈질로 보는 즐거움도 누렸습니다. 계획은 도착해서 낮의 월정교를 찍고 둘레길을 걸은 다음 야경을 담으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났다는 생각으로 월정교에 도착했지만, 월정교와 맞닥뜨린 나의 두 눈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망보다 더한 낙담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블로그의 반영 야경은 어떻게 찍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월정교는 아직 겉모습만 마무리되었고 주변은 황량함 그대로였으며 특히 반영이 아름다웠던 월정교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이 담겨 있을 만한 웅덩이도 없을 뿐 아니라 남천의 물도 말라 조금의 반영도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웅장한 월정교의 누정과 교각의 모습에 그저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신라 시대의 월정교가 과연 이런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섬세한 누각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천년 고도 경주를 상징하는 건물로서는 손색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월정교는 춘양교와 함께 서라벌의 왕궁을 들어서는 다리였습니다. 두다리는 신라 경덕왕 19년인 760년에 궁궐 남쪽을 흐르는 문천에다 놓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1280년인 고려 시대 충렬왕 6년에 중수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500년 이상을 신라와 고려 시대를 넘나들면서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나 봅니다.

 





월정교를 들어서면 곧바로 반월성의 끝과 연결되고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요석궁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자료로만 요석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경주향교와 최 부자 고택이 있고 경주 교동마을의 고택체험과 상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현재 복원된 월정교의 19m 아래에는 요석공주와 원효대사 간의 연결 고리가 된 ‘유교’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는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도중에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그 길로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와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에 힘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라며 노래하고 다녔습니다.






태종무열왕은 원효의 노랫말을 알아듣고는 원효대사를 왕궁으로 불렀습니다. 원효는 태종무열왕이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는 바로 그 길로 궁궐로 향했습니다. 원효는 문천(지금의 남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풍덩 하고 빠져 걸쳤던 옷이 모두 젖어버렸습니다. 그 전갈을 태종무열왕이 받고는 당장 급한 거 없다며 먼저 젖은 옷과 몸을 말리라며 요석궁에 머물게 했습니다.

 


요석궁에는 무열왕의 공주인 요석공주가 머물던 궁이며 그날 밤 당장 사달이 났습니다. 그 사이에서 신라의 성현 중 한 분인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그 후 원효는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하면서 대중 속을 파고드는 포교를 했습니다.. 원효가 발을 헛디뎌 빠졌던 다리의 흔적이 월정교 바로 아래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원효가 문천의 다리를 건널 때는 복원된 월정교처럼 누각을 올린 다리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난간 없는 다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정교 발굴조사에서 배 모양의 교각을 확인했는데 이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센 물살을 고려한 듯 보입니다. 다리 길이는 60.57m이며 교각의 폭이 13m 인 것을 보면 오늘날 건설해도 거대한 다리라 생각됩니다. 교각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타다남은 목재와 기와 조각이 나왔던 것을 추정하면 교각 위에다 누각이 연결된 누교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거대한 다리가 완공되었던 것도 놀랐지만 그 위에다 누각을 올린 다리라니 이를 보면 신라의 건축기술도 대단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정교의 복원은 2008년~2013까지 66.15m의 교각과 누교 복원을 마쳤으며 그리고 총 110억 원을 들여 2017년까지 교량의 양쪽 끝에다 앞면 5칸, 옆면 3칸, 최고 높이 15.67m의 중층 건물인 문루를 각각 완공했습니다. 문루는 옆에서 보면 여덟 팔자 형태인 팔작기와지붕에 주심포양식입니다. 월정교는 2016년 형산강 8경에 선정되었고 국가지정문화재에 춘양교와 함께 사적 제457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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