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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남구여행)일제강점기 소막사를 한국동란때는 피난민촌이 된 사연,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여행.  


방가방가

부산 남구 우암동에는 

일제강점기 시설인 소막사로 인해 

마을의 명칭이 

소막마을로 불리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소 막사가 한국동란 피난민촌이 된 소막마을 주소: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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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막은 소의 막사로 

소가 있던 곳입니다. 

소막사는 일제강점기에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소를 반출하기 전에 

전염병 확인 등을 했는데 

그때 사용하던 소 움막입니다.

 


이 우암동 검역소는 

1909년에 설립되었고 광복이 되면서 

일본인은 물러가고 

일본 귀환 동포들이 일부 들어와 살았습니다.




6.25한국동란으로 

흥남 철수 피난민이 대거 물려들었고 

우암동 소막사는 피난민촌이 되었습니다.

 


소 막사의 크기는 폭이 10m이며 

길이는 40m인 경사 지붕 형태였습니다. 

이 움막에다 합판으로 칸을 질러 

사람이 들어가 살았습니다.

 


한가구당 4평 정도 크기였으며 

한 동에 40가구가 들어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 소막사에 화가 이중섭도 살았으며 

영화 ‘친구’에서도 준석이로 분한 유오성이가 

나의 본적은 “부산 남구 우암동 189번지”라고 대답하는데 

소막마을 지번입니다.

 


곽경택 감독 부친이 

소막마을 출신이라고 하며 

오늘날 소막마을의 유래입니다. 




부산진구 범일동 매축지마을과 함께 

우리의 슬픈 역사 현장입니다.

 



소막마을도 부산의 여러 마을처럼 

공동 화장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소막사 시절 화장실을 

집안에 둘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왼쪽은 소막사 모습이 남았지만 

오른쪽은 2층집이 결합된 양식입니다 ㅎㅎ




우암동은 소바위에서 유래했으며 

제가 어렸을때는 적기로 더 불렸습니다.

 


이는 산이 붉어 

일본인이 아카사키(赤崎)라고 부른데서 유래하며 

소막마을을 ‘적기 피난민 수용소’라 불렀습니다.

 


소막마을은 옛 소막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그 당시 지붕의 흔적은 여러곳 볼수 있습니다.

 


소막마을 당시 공동 우물



또한, 소막사는 다가구로 살다보니 

옛 건물과 2층으로 층축된 

기형적인 모습도 볼수 있습니다.

 




아래층보다는 2층이 더 크게 지어졌으며 

골목길은 한사람이 겨우 다닐정도로 좁아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골목사진을 찍는다고 댕기니까 

마을주민분들이 “언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냐?”고 

 많이 물어 보았습니다. ㅎㅎ

 




소막마을 옆 동항성당 주위의 집은 

대부분 재개발이 이루어지는지 

빈집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소막마을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을 빼고는 

재개발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ㅎㅎ

 


소막마을 주민 공동체 센터



동항성당 전망대에서 본 소막마을 야경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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