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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여행/경산가볼만한곳)구룡산 반룡사. 원효와 설총, 요석공주의 설화가 살아 숨쉬는 경산 구룡산 반룡사 여행.


경상북도 경산의 반룡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반룡사는 구룡산과 발백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심산유곡에 둘러싸여 하늘만 빼꼼하 게 열려 선계가 따로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반룡사로 이름한 사찰은 우리나라에 3곳 있으며 경북 고령 미숭산의 반룡사보다 더욱 유서 깊은 명찰입니다.





경산 반룡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2

경산 반룡사 전화:053-852-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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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경산의 반룡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에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원효대사(617~686)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효는 압량인 이곳 경산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조씨는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잉태해 밤나무가 많은 율곡을 지나다 갑자기 산통을 느껴 큰 밤나무 밑에서 원효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15세에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자 충격을 받아 출가 하게 됩니다. 661년 문무왕 1년에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서 무덤 속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초의 진리를 깨달아 그길로 유학길을 포기하고 혼자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원효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경주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백성을 찾아다니는 불교 포교에 힘써 대승불교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하며 노래를 하고 다녔지만, 태종무열왕(재위 654~661)만 원효의 뜻을 알고 그를 궁으로 오게 했습니다.

 


원효는 소식을 듣고 태종무열왕을 만나기 위해 궁으로 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자 무열왕은 원효를 바로 요석궁에 보내어 젖은 옷을 말리게 했습니다. 이때 요석궁에는 과부가 된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날 원효는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열 달 뒤 요석공주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분이 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3문장가인 설총입니다. 원효는 그길로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자신을 부르며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들어 불법을 전파합니다.



요석공주는 설총을 원효의 고향인 이곳 경산에서 낳았으며 설총을 데리고 원효가 창건했다는 구룡산 반룡사에 머물렀습니다. 김춘추는 공주와 외손자가 보고 싶으면 수시로 왕후와 함께 구룡산의 고개를 넘어 반룡사를 찾았는데 태종무열왕이 넘었던 고개라 하여 지금까지도 왕재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 설총은 반룡사에서 성장하였으며 후에는 이두법을 집대성합니다.

 


원효가 창건했으며 설총과 요석공주가 머물렀던 반룡사는 태종무열왕의 후원을 등에 업고 대 사찰이 된 것은 자명한데 현재 반룡사는 오래된 문화재는 찾을 수 없고 가루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석물의 부재들만 천년 가람 반룡사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 원응국사가 이곳에 주석하였으며 고려 11대 문종 때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를 보면 모두 최근에 불사 되었으며 왜 오래된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반룡사는 고려말에 쳐들어 왔던 몽골과 1592년 조선의 임진왜란으로 한순간에 모두 불타버리자 1641년인 인조 19년에 계운과 명언 두 대사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며 산내 암자로 내원암, 벽운암, 대적암, 은선암, 안적암 등 다섯 암자가 중창 또는 창건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반룡사와 암자의 그 많은 당우는 모두 소실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몇 동의 당우로 겨우 명맥만 이어오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또다시 일어난 화재로 반룡사는 전부 불탔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는 문화관광부와 경상북도, 경산시의 지원과 신도의 불심으로 하나하나 복원 중에 있습니다.

 




반룡사는 화재로 소실될 때 급한 나머지 대웅전의 삼존불중 목조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청도의 모 사찰에 옮기게 되었는데 되돌려 받지 못하였고 범종은 포항 보경사의 서운암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반룡사에 남아 있던 아미타불마저 도난당하는 수난을 당하며 아직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반룡사 앞에는 창건 당시 흔적인 많은 부재가 널브러져 진열되어 있습니다. 부재 하나하나가 당시 반룡사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주는 게 지금보면 모두 예사 모습이 아닙니다. 그만큼 반룡사는 신라 왕실의 기원사찰로서 대사찰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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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2편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역사문화공원내 삼성현역사문화관에 원효와 설총, 일연 세 성현의 자료를 전시중입니다. 또한 이분들을 배출했다하여 삼성현의 고장 경산이라 하며 전편에 원효대사에 대해 포스트를 했다면 후편에는 남은 두 성인인 설총과 일연선사을 포스트 하겠습니다. 설총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보면 외조부는 태종무열왕인 김춘추이며 친할아버지는 나마 담날입니다. 정확한 출생은 알 수 없으며 654~661년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설총은 신라 10현의 한사람이며 강수와 최치원이 함께 신라 3문장으로 꼽으며 경주설씨와 순창설씨 중시조로 알려졌습니다.

 설총은 경전과 역사에 고루 뛰어나 후대의 학자들은 유학의 종주로 받들고 또한, 이두를 집대성하였습니다. 현재 전하는 저서는 ‘화왕계’와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조상기’가 있습니다. 요석공주가 설총을 임신한 사연이 있는데 ‘몰가부’ 설화라 합니다.

 요석공주는 김춘추의 둘째 딸로 과부가 되어 요석궁에 머물렀습니다. 그럼 원효와 요석공주는 과연 어떤 사이일까요.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들어 불법을 전파합니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하며 노래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원효의 노랫말을 이해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인은 현인을 알아본다고 태종무열왕이 원효의 노래를 듣고는 “자기한테 여자를 주면 뛰어난 현자를 낳게 하겠다”라는 말이구나 생각하고 요석공주와 맺어줄 요령으로 원효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원효는 그 소식을 듣고 궁궐로 향했으며 문천교를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면서 온몸이 젖었습니다. 태종무열왕은 원효를 요석궁에 머물게 하고 옷을 말리게 했는데 그날 밤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석공주는 원효의 고향인 경산에서 설총을 낳고 구룡산 아래 반룡사에서 설총과 함께 머물렀으며 김춘추는 공주와 외손자인 설총이 보고 싶어 자주 구룡산 고개를 넘어 반룡사를 찾았습니다. 지금도 그 고개를 태종무열왕이 넘었던 고개라는 뜻인 왕재라 부르고 있습니다.

 

 

 설총은 아버지 원효가 입적하자 아버지 유해로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시고 매우 슬퍼하였더니 원효의 소상이 설총을 돌아보았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에서는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면 통일신라로 들면서 전제왕권을 강화하는 유교 이념을 더 강하게 받아들여 유학의 기풍이 조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한자로 우리말을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인 소리와 뜻을 새겨 우리말로 적은 것을 말합니다. 이때에 설총은 유교경전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가르쳤고 고려 중기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설총의 이두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전까지 사용되었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설총이 남긴 이두의 흔적은 감산사아미타여래상과 석조미륵보살입상 광배에 조상기가 쓰여 있습니다. 이는 1916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 명문을 설총이 쓰고 승려였던 경융과 김취원이 새겼습니다.

 

 

 

 명문의 내용을 보면 “719년 성덕왕 18년에 6두품 출신 김지성이 국왕과 정치실력자였던 개원 부모 와 가족의 명복을 빌며 감산사를 창건했다는 유래와 김지성의 행적 등이 담겨 있다“는 내용입니다.

 

 

 

 

 

 남악서원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호로 680년경에 세워졌다 합니다. 신라의 김유신이 꿈속에서 신령이 나타나 삼국통일 위업의 가르침을 받았던 곳이라 전하는 곳으로 1919년 지역 유림에 의해 중건하였습니다. 경주의 서악서원을 보고 남악서원이라 하였으며 설총, 김유신, 최치원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설총이 남겼다는 화왕계는 우화적 단편 산문으로 제목도 없이 ‘삼국사기’에 실려있습니다. ‘풍왕서’라는 이름으로 ‘동문선’에도 수록되었는데 후대에 와서 ‘화왕계’라 불렀습니다. 한문으로 쓰였으며 내용을 보면 신라 신문왕이 울적한 심사를 풀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설총이 들려주었는데 향락을 멀리하고 도덕을 엄격히 할 것을 우화를 통해 당부한 것으로 신문왕은 글로 남겨 후세의 임금에게 경계토록 했습니다.

 

 

 

 

 

 

 

 일연(1206~1289)은 회연과 함께 자이며 호는 목암입니다. 1283년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호를 받았으며 시호는 보각으로 고려 후기의 고승이자 국사입니다. 일연의 어머니는 자신의 배에 밝은 해가 비추는 꿈을 꾸고 일연을 낳았습니다.

 

 

 

 일연이 출가하여 호를 목암이라 지은 것은 어머니를 봉양한 중국의 승려 목주 진존숙의 효심에 감명받아지었습니다 훗날 일연도 국존에서 물러나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며 삼국유사에는 ‘효선’편을 따라 묶어 소개하고 효행을 중시하였습니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일연의 행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연은 1214년에 9살 때 광주광역시 무량사에서 수학하다 1219년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됩니다. 대구, 청도, 남해, 군위 등의 사찰에서 승려생활을 했습니다.

 

 

 

 

 

 화도의 선월사, 대구 용천사 인흥사, 포항 오어사, 청도운문사, 군위 인각사에서 주석하며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지만 ‘삼국유사’와 ‘중편조동오위’ 등이 전합니다. 일연은 인흥사에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를 시작하였고 운문사를 거친 뒤 인각사에서 완성했습니다.

 

 

 

 

 

 

 

 

 군위 인각사에는 현재 일연선사의 많은 행적과 부도 등이 남아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중요한 사건을 모아 지은 역사서로 5권2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현재 고려시대 목판 인쇄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 초기 인쇄한 듯 한 탁본만 전하는데 1512년 경주에서 간행된 임신본의 발문에는 책판이 남아 있었으나 마모가 심해서 완본을 구해 다시 간행했습니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의 삼성현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는 원효대사의 일대기는 물론이며 설총과 일연스님의 행적을 알 수 있으며 그분들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누구나 설총, 일연을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경산여행에서 삼성현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보세요.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이용안내

★삼성현역사문화공원 관람시간:09:00~18:00

★삼성현역사문화공원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 추석, 시설점검 및 수리기간 등

★삼성현역사문화공원 관람료:일반 2,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경산시민 신분증 지참시 무료관람.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상대로 883-30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전화:053-804-7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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