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흔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영남대로라 한다.
시대의 배경은 변하지만 이 영남대로는 변하지 않고 면면이 이어져
현재의 동맥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시대때 과거길, 파발마의 길, 보부상들의 애환의 길, 백성들의 눈물의 길,
피난의 길등 아주 다양하게 이용이 되었다 ,
부산을 출발 낙동강을 끼고 올라가 밀양읍성을 거쳐 올라가는 영남대로는
내일동~교동을 거쳐 지금의 밀양대공원 충혼탑 뒤 제사고개로 해서 청도땅으로 영남대로는 이어졌다.


고개마다 애환과 눈물의 사연이 오롯이 배여 있는 우리의 옛길,
과거길의 선비들도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과거급제의 꿈을 안고 걸었던 이길,

과거길에 오르는 선비들은 관로인 영남대로를 두고
이곳 추화산 사잇길인 용평고개로 둘러 현재의 밀양대공원 충혼탑으로 돌아 갔다 한다.



이곳 용평고개에는 보기에도 비범한 모과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300년 이상을 이고개에서 오고가는 길손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고개에는 원래 700살을 견더온 모과나무가 있었다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 모과나무 아래에서 치성을 드리는 무당이 살았는데
무당의 과욕으로 인해 그만 모과나무에 불을 내고 말았다.

그 후 모과나무는 죽고 어느 봄날 줄기에서 모과나무 새싹이 돋아 현재의 모과나무로 자랐다 한다.
이 모과나무를 자세히 보면 한그루가 아닌 여러그루가 자라면서
한그루의 모과나무로 되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모과나무에도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평동에 거주하는 윤할머니는 모과나무에 대해 과거길의 선비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나무였다 한다.
‘과거길의 선비들에게는 관도가 아닌 이길로 다녔제’. 모과나무의 효엄을 믿어
일부로 이길로 돌아 이 모과나무 아래에서 과거급제를 할 수 있도록 빌고 갔다는 것이다.
지금 이 모과나무 믿 둥치가 썩어 큰 구멍이 나 있다.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피로가 몰려와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밑둥치의 구멍에 기대어 잠을 자다 변고를 당하고 말았다한다.
그후 한양 과객들은 ‘밀양은 몰라도 모개 남자는 안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였다 한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