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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무첨당.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무첨당.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무첨당의 뜻

 

조선 중기의 기왓집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문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감사 재직때 지은 종가별당이다.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생활하였다는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의 장손자인 이의윤의 호로'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은 여강이씨 종가 별당 건물.

 

무첨당의 용도는 친구와 벗하며 손님접대와 독서등의 용도로 만들었다. 현재에도 무첨당에는 이언적의 장손인 여강이씨 이지락선생과 그의 아들이 지키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은 동방5현의 여강이씨 이언적은...

 

이언적은 어떤 인물인가.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복고 호는 회재 또는  자계옹이다. 아버지  찬성공 이번(1463~1500)은 여강이씨로 성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성균관 생원으로 손소의 8남매중 둘때달과 혼인을 하여 처가인 양동마을로 입향하였다, 그의 맏아들이 회재 이언적으로 동방5현의 한분이다. 중종9년인 1514년에 별시 문과에 을과로 벼슬길에 올랐고 그 후 1530년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파직 되어 옥산에 독락당을 짓고 성리학 연구에 몰두한다.  중종32년인 1537년에 김안로가 죽자 다시 복직하며 중종의 신임을 받지만 명종2년인 1547년에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모함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되어 죽고 만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은 여강이씨 종가 별당 그 구조는.

 

무첨당의 구조를 보면 조선 중기의 건물로서  앞면5칸 옆면 2칸의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부분으로 나누어  가운데 3칸을 대청을 넣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을 넣었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르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도록 하였다. 대청의 뒷면은 벽채를 만들어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 자 형으로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구분하였다.(문화재청 참고)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의 편액 좌해금서는 대원군 필체.

 

무첨당에 걸린 편액중에 흥선대원군이 이곳 무첨당에서 하루  묵고 남겼다는 '좌해금서' 그 뜻은 '선비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풍류도 알아야 한다'며 조선 선비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였는데 필체를 보면 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  무첨당 교통편.


일단은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가셔야 겠죠.

교통편은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시내버스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이 양동마을가는 버스 주차장이다. 안강행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203번 버스로 오전 6시20분, 7시30분, 9시15분, 10시30분, 12시30분으로 30~35분이 소요된다.

그외 안강행 버스를 이용하면 양동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양동마을까지 걸어가면 된다. 양동마을 주차장에서 8분소요.


승용차는 네비에다 양동마을을 치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안채로 이언적의 후손 이지락 선생이 생활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필체 좌해금서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관가정. 관가정이 있는 양동마을 유래에 대해...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양동마을 문화관의 무첨당 미니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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