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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인 행랑채. 무슨 요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현재의 향단 가옥은 회재 이언적(1491년~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 볼 수 없어 중종이 지어준 건물이다. 다시 이언적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 준 후 여주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 이의주의 호에서 이 집의 이름을 따왔다. 





향단의 솟을 대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집주인 개성이 독특한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동마을을 대표.



조선 중기 살림집의 모습이 아닌 집주인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건축물로 지금의 행랑채는 1976년 보수 공사를 할때 위로  더 올라 안채와 더욱 가깝게 되었다. 원래 99칸의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6.25 한국동란때 전화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 56칸이 남아 있다. 향단은 양동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물로 그 만큼 자리한 곳이 양동마을을 대표할 만한 곳이다. 보물 제 412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풍수지리를 이용한 요새 같은 모습.


향단의 구조를 보면 일반 양반 기와집과는 달리 독특한 평면 구조이다. 몸체는 풍수지리에 따라 월(月)자 모양을 하고 여기다 한일(一)자 모양의 행랑채와 칸막이를 두어 용(用)자 모양을 이루었다.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한몸체이고 마당이 두개인 특색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밖에서는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어.


행랑채 뒤편에 있는 본채는 행랑채와 똑 같은 규모로 중앙과 좌우 양쪽 끝을 이어서 방으로 연결한게 흥(興)자 모양의 한건물 처럼 배치가 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아쉬움 점이 많다.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의 향단 건물은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일자형의 행랑채 모습만이 볼 수 있다, 빠삐용의 요새 같은 모습으로  향단안의 구조는 밖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멀리서 보는 향단의 모습 너무 아름다워.


이곳은 현재에도 여주이씨 향단파의 후손들이 거주를 하고 있어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언뜻언뜻 볼 수 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 수 없이 내려와 연밭이 있는 입구쪽의 먼발치에서 전체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한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양동마을 의 유래는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양동마을 문화관의 향단 미니어쳐







향단 건물의 독특한 구조(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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