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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김천여행)가을의 문턱에 다시 찾고싶은 사찰 김천 수도산 청암사 여행, 수도산 청암사 이끼폭포


김천 수도산 청암사는 직지사 말사로 859년 신라 헌안왕 3년 도선국사께서 건립한 사찰입니다. 

1647년 조선 인조 25년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청암사는 모두 불탔습니다. 벽암각성스님이 청암사 전소소식을 듣고 문도 중에 허정혜원스님을 보내어 중창토록 했습니다.





김천 수도산 청암사 주소: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688

김천 수도산 청암사 전화:054-432-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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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청암사는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2번째 왕후인 인현왕후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으로 되어 청암사 극락전에 복위될 때까지 3년을 머물렀던 곳입니다.

 


비록 서인의 신분으로 강등되었지만, 국모였던 인현왕후를 예우하여 새로 지은 한옥인 극락전은 사대부가 형태의 건물이라 사찰의 건물로서는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인현왕후를 위해 극락전 옆에다 42수관세음보살을 모신 보광전을 지어 복위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극락전에 머물렀을 때 어느 날 인현왕후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서러움에 복받치다 살포시 잠이 들었고 꿈속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천축산 불영사에 기거하는 중이라며 3일만 더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며 사라졌습니다.



인현왕후는 꿈에서 깨어나 기이하게 생각하여 마음을 고쳐잡고 3일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숙종은 명령을 내려 인현왕후를 서궁으로 이전하게 하고 다시 왕비로 복위시켰습니다. 

인현왕후는 꿈속에 나타난 청암사의 노스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서찰과 함께 수도산(불영산) 일대를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하여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인현왕후가 머물러서 그런지 조선 시대 말기까지 청암사는 궁궐의 상궁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라 합니다.



청암사는 수도산 자락에 있습니다. 청암사 자체가 워낙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한 게 발소리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청암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숲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통과하면 작은 다리가 놓였습니다.

 



좌우 바위벽에는 사람 이름 등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이 사진을 찍는 분들에게는 청암사 출사지로 유명합니다. 

저도 24mm 단 렌즈라 끌쩍거려보다 포기하고는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랐습니다.

 




청암사 경내이고 가장 먼저 인현왕후가 머물렀다는 극락전으로 향했습니다. 

현재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 도량이며 극락전 또한 스님이 머무는 공간이라 출입을 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습니다. 

그래서 출입문에서 극락전을 보았습니다.

 






극락전 옆에는 인현왕후의 기도소인 보광전이 있어 둘러보았습니다. 

현재 극락전은 근대에 와서 새로 중건했습니다.





1905년 주지 스님이 빨간 주머니를 얻는 꿈을 꾸고 나자 한양에서 노보살이 자신이 죽으면 염불을 부탁하고는 많은 시주를 하였습니다. 

주지 스님은 노보살의 시주를 가지고 쇠락한 극락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극락전은 인현왕후께서 머물렀던 당시의 극락전이 아니라는 말씀.






청암사 보광전은 1689년 숙종 15년에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원당으로 건립되었으며 1905년 다시 중건했습니다. 

다포양식과 익공양식의 절충형 건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건축양식의 변천을 엿볼 수 있는 건물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8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대학 산악부일 때 수도~가야 종주산행을 여러 번 하면서 청암사 계곡으로 올랐던 기억이 새삼 생각났습니다. 

1980년 초이니까 그 당시의 청암사는 진짜 적막감만 흘렀는데 이번에 찾았던 청암사는 관광객이 제법 있었습니다.

 




대웅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창건 역사에 비해 청암사는 국보와 보물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의 짜임새 있는 구조를 보았습니다. 

대웅전 앞의 청암사 다층석탑은 조선 후기의 석탑으로 1912년 성주에서 옮겨왔다고 합니다.

 


지대석 위에 2층의 기단을, 그 위에다 탑신을 올렸으며,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층 몸돌 각 면에 불좌상을 돋을 새김 했으며 전체적으로 지붕돌과 몸돌의 비례가 맞지 않아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1호. 현재 청암사 대웅전은 1900년대 초에 주지였던 대운 스님이 중건하였습니다. 

2단으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다 건물을 올렸으며 앞면 3칸에 옆면 3칸인 겹처마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올렸습니다.

 




건물의 외부는 금단청을, 내부는 모로단청으로 채색했습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보살상, 천인상 등 불화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20호. 청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돌아가야 할 시간도 있고해서 입구로 급하게 나오는데 “폭포가 어디입니까” 하며 누군가 물어보기에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입구에 도착해서 함께 온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표준렌즈로 바꾸고 삼각대를 들고 다시 청암사 1 출사 포인트인 이끼폭포로 향했습니다. 

폭포를 물었던 분이 한참 사진을 담고 있었습니다.

 








저도 양해를 구하고 한쪽에 삼각대를 펴고 청암사 이끼 폭포를 찍는다고 찍었습니다. 

필터도 없는데 옆에서 왜 필터를 안 끼워 찍습니까 하면서 염장을 팍팍 찔렀습니다. 

대중 찍고는 좋은 사진 많이 담으시라 하고는 일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달렸습니다.

 






벌써 계곡의 나무는 가을을 준비하는 듯 보였습니다. 

붉게 가을 색으로 채색한 청암사가 기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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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누각을 이야기 할 때 제일먼저 던지는 화두가 우리나라 3대누각은 어디 하고 물어 보는 것이다. 물론 가까이는 밀양의 영남루, 그리고 진주의 촉석루, 나머지 한 개는 북한 평양의 부벽루로 이 누각의 공통점은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영남루는 밀양강. 촉석루는 남강, 부벽루는 대동강을 끼고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누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는 누각은 삼척의 오십천을 끼고 있는 죽서루로 이누각 또한 만만치 않은 포스를 지니고 있다. 누각 이름 또한 특별나게 지어졌는 것 같다. 인근에 죽장사란 사찰과 죽죽이란 기생의 이름에서 따왔다하는데 확실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이누각의 정확한 설립년대는 아무도 모른다.



남아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동안거사집’에 보면은 고려 원종7년인 1266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이곳 죽서루에 올라 오십천을 바라보며 한시를 남겼다하며

고려 명종때의 문인 김극기가 남긴 죽서루에 관한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죽서루가 존재하였다 할 수 있다.
그 당시에도 글깨나 읽는다는 글쟁이나 벼슬아치들이 이곳에 들러 한시를 남기고 교류를 하였는 것 같다.
그 후 1403년인 태종3년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비바람에 노후된 죽서루를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송강정철 또한 관동팔경 중에서 이곳 죽서루를 팔경중에서도 으뜸으로 표현하였다, (소재지:강원도 삼척시 성내동. 보물제213호 )




죽서루의 특징은 사람이 터를 닦은 자리위에 누각을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암반위에 있는 그대로 그 위에다 누각을 세워 누각을 받치고 있는 기둥의 길이가 각각 다르다 한다.
13개의 기둥중에 아홉 개는 자연암반의 기초위에, 나머지 여덟 개는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웠다.
누각에는 20개의 기둥을 세웠고 7칸이며 자연 암반위에 세워진 최고의 걸작으로 관동제일루라 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영남루를 영남제일루로 칭송하는 것 처럼 이곳 관동지방에서는 죽서루를 따라올 누각이 없는 것 같다. 현재 죽서루는 7칸이며 측면은 2칸으로 지붕은 겹치마 팔작지붕이다.
작금의 죽서루를 보면은 예초에는 5칸으로 지어졌는 것 같다. 그 뒤에 양쪽으로 한칸씩 달아 낸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현재 많은 현판과 글씨가 남아 있다.




제일계정(第一溪亭) 현판은 1662년 현종 3년 삼척부사 허묵이 쓴 것이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의 글씨는 숙종37년인 1711년 부사 이성조가 “해선유희지소”는 헌종3년인 1837년 부사 이규헌이 남겼다한다. 그 외 작은 현판에는 율곡이이, 정조, 숙종등 많은 인사들의 글이 남아 있다.




2009년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외출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죽서루 우측 한켠에 그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찾아가기
부산에서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경주IC에서 빠져나와 서라벌대로 2.1KM 이동후 오릉네거리에서 포석로 시내방면으로 2.2KM 이동후 좌회전한다. 내남네거리에서 태종로 시청, 시의회(울산,감포)방면으로 우회전 후 697M이동한다. 팔우정삼거리에서 원화로 경주시청(포항)방면 으로 좌회전후 2.1KM 이동하면 원화로 지하차도 진입후 9.9KM 이동한다. 7번국도를 따라 산업로 고가도로 진입후 7.5KM 이동후 유금IC에서 영덕(울진)방면 우측도로로21.3KM 이동한다. 광명휴게소에서 동해대로 159.6KM 이동한다. 동해대로 새천년도로 삼척항(강릉 동해)방면으로 우측도로 328M 지난후 삼척교사거리에서 오십천로 시청 태백 방면으로 좌회전후 1.8KM 이동한다. 죽서루앞 삼거리에서 죽서루길, 삼척문화원(죽서루) 방향으로 좌회전 하면 죽서루가 보인다. 네비게이션에 삼척 죽서루 검색을 하면 된다. (다음지도 이용)

이번 삼척 죽서루는 아들냄이가 삼척에서 군 훈련을 받고 있어  면회차 찾아 삼척에 갔는데 넘 일찍 도착을 하여 시간을 보낼 겸해서 찾아 간곳이다. 아침7시경에 찾아 갔는데 관리인 아저씨 눈꼽도 안때고 나와 있다. 관람시간을 보니 오전 9시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들어가도 되는냐고 물어 보니 들어가란다. 아침 운동하시는 분이 간혹 보이는 쌀쌀한 날씨의 으시시한 죽서루, 오십천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보니 곧 겨울이 찾아 올 것 같다. 아들 덕택에 이곳 죽서루 구경을 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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