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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


 예로 부터 우리나라에는 외세로 부터 많은 침입을 당하였다 .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참담함을 안겨준 전쟁이 임진년에 일어난 임진왜란(1592~1598)이다. 이이의 10만 양병설의상소도 무시하지만 않았서도 우리나라는 이런 참혹한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당시 왜놈과 가까운 동래(지금의 부산)는 왜적의 침입을 막는다고 막아보지만 종과부적으로 왜적에게 짓밟혀 버리게 된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1592년 임진왜란 왜적에 놀라 박홍과 원균 성을 버리고 도망.



도요토미히데요시의 명령으로 4월13일 대장  '고니시 유키나와가'와 그의 사위 '소 요시토시'가 병력 1만8700명과 병선 700척을 이끌고 영도에 상륙을 하였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래 자빠진 경상좌수사 '박홍'은 전투한번 치르지 않고 보유하고 있던 배를 수장시키고 식량창고에다 불을 지르고 도망을 치고 그와 덩달아 거제도 경상우수사 '원균'도 우수영을 부하장수에게 맏겨둔 후  혼자 살기위해 도망을 쳐 버리니 왜적은 손쉽게 부산진성으로 진격한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 부산진성 정발장군 모숨을 버리다.



그때 부산진성을 지키고 있던 장수는 지금 초량로타리에 동상으로 모셔져 있는 부산진 첨사 '정발'장군이었다. 왜적이 정발장군에게 '명나라를 칠려고 하니 길을 내어 달라'는 말을 하였다. 정발은 단칼에 '내어줄 길이없다'며 일축하고  목숨을 걸고 군관민과 합세하여 끝까지 싸웠지만 정발장군은 적의 조총에 절명하시고 부산진성의 군관민 3000여명은 몰살하였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 송상현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며 순국.


그 후 4월15일 동래성으로 진격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은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문루에 올라 있었다. 이를 본 소서행장은 송상현에게  '싸울테면 나와서 싸우고  그렇치 않으면 길을 빌려 달라'고 하였다. 이에 장군은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 하며 군관민 모두 합세하여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지하철 공사중에 발견된 동래읍성 해자.



현재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지하에는 지하철 공사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동래읍성 해자의 흔적을 전시하고 있다.  지하에서 발견된 동래읍성 해자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당시 동래읍성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였는지 알 수 있다. 한국판 킬링필드의 모습을 연상하게하는 동래읍성의 해자, 본성에서 약 30m 떨어져 땅을 1.7m~2.5m 파고 그 폭을 5m 정도로 돌을 쌓아 축조하였다. 지금 해자 내부에는 그 당시 참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칼에 베이거나 두개골에 구멍이 슝슝 뚫어진 인골과 칼, 화살촉, 목궁등 무기류가 해자에 그대로 묻혀 있는 모습으로 전시를 되고 있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



안내도의 기록을 보면 "그당시 일본의 기록인 '길야일기(吉野日記)'에는 여자던 아이들과 개, 고양이 할것없이 움직이며 피를 흘릴수 있는 모든 것들은 살해하였다고 되어 있다. 우리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희생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송상현 부사를 쫒아 성가운데로 모여든 백성들이 같은 시간에 피바다로 화하고 쌓인 시체 밑에 몸을 던져 천백명중에 한 두명이 삶을 보존할 정도였다하니 우리의 희생이 얼마나 많았는지,전쟁이 끝나고 생존자는 4월15일 이날에 친족의 제사를 지내고 통곡을 했다고 되어 있다."



 





☞(부산여행/동래여행)도시철도 수안역에 동래읍성 해자, 한국판 킬링필드.동래읍성해자 자녀와 함께 역사 교육 장소.


그 분들의 원한이 뼈에 사무쳐 영혼이 구천에 떠도는 것일까. "임진왜란 후 17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은 '동래맹하유감'이라는 글에서 4월15일 새벽에 집집마다 곡 소리가 일어나 천지가 소슬하고 처참한 바람이 숲을 진동하기에 놀라서 나이 많은 아전에게 물으니 이날이 임진년 성이 함락된 날이라 하였다". 수안역 지하에 전시된 '동래읍성해자' 자녀와 함께 찾아 보세요. 역사교육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던져 지켜온 현장을 보여주어 자녀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세요. 입장료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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