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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가몰만한곳)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경주 문화재 여행에서 이번에는 26대 진평왕의 뒤를 이은 27대 선덕여왕릉을 찾았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김춘추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오늘날 신라예술의 금자탑이라는 첨성대와 분황사를 창건하였고 황룡사 9층 목탑 등을 건립한 현명했던 군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신라불교 예술의 많은 부분이 선덕여왕 시절의 문화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주 선덕여왕릉 주소: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 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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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역사드라마에 단골 소재로 선덕여왕은 꼭꼭 등장하여 드라마로 인해 선덕여왕은 아마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3가지 예지력으로 선덕여왕은 더욱 유명합니다. 첫 번째가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자 당나라 태종은 축하의 뜻으로 모란꽃이 그려진 그림과 씨앗을 보내왔습니다.



이를 본 선덕여왕은 “이 꽃은 향기가 없구나”하자 신하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였고 왕은 모란꽃 씨를 심게 했습니다. 모란이 꽃이 피자 신하들은 모란꽃의 향기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선덕여왕에게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이라면 자고로 향기를 쫓아 벌과 나비가 몰려들기 마련인데 그림에는 벌과 나비가 없으며 이는 남편이 없는 나를 희롱한 것이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 경주시 건천읍의 부산성 아래에 얽힌 여근곡 이야기입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하고 4년 후인 635년에 영묘사를 짓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영묘사가 있는 여근곡에서 난데없이 개구리가 밤낮없이 며칠 동안 개굴개굴하며 시끄럽게 울었습니다. 이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습니다.



왕은 알천과 필탄 두 장수에게 병사 2천을 주어 부산성 아래 옥문지에 백제군사 매복 사실을 은밀히 알리며 습격하라 합니다. 신라군은 살금살금 여근곡에 도착해보니 우소가 이끄는 백제군이 정말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신라군은 이를 급습하여 백제군을 섬멸시켰습니다. 궁궐로 돌아와 그 사실을 보고하며 “어떻게 백제군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빙긋이 웃으며 “개구리가 맹렬하게 우는 것은 병사를 말하며 옥문은 여자의 음부를 뜻합니다. 이는 여자는 음이고 그 색은 흰색이며 흰색은 서쪽을 가리키며 남근이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적을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라 하였습니다.



세 번째 예지는 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있었다 합니다. 하루는 신하들 앞에서 선덕여왕이 말하기를 “내가 언제 무슨 날에 죽으면 도리천에다 장사지내도록 하세요”하자 신하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면 도리천을 알지 못하겠다며 왕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왕은 “도리천은 낭산 남쪽에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이르러 진짜 선덕여왕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문무백관들은 왕의 유언대로 낭산 남쪽에 장사지내며 왜 이곳이 도리천이지하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난 679년 문무왕 19년에 선덕여왕릉 아래 사천왕사가 들어섰습니다. 불교에서는 28개의 하늘나라가 있으며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합니다.



사천왕사가 지키는 하늘나라가 첫 번째 하늘나라 사왕천이면 그 위에 제석 천왕의 도리천이 두 번째 하늘나라로 이는 선덕여왕릉이 부처님의 나라 도리천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하며 선덕여왕의 셋 예지력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릉은 낭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웠으며 신라 시대 서라벌의 진산으로서 신라인에게는 신성의 대상이었습니다. 413년 신라 실성왕 12년에는 낭산에 모인 구름이 누각같이 보이면서 오랫동안 그주위에 향기가 피어올랐다 합니다. 이에 실성왕은 신령이 내려와 노는 것으로 여기고 낭산의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의 낭산은 우리 소나무가 울울창창한 자태를 뽐내며 선덕여왕릉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재위 632~647년으로 신라 27대 왕입니다. 성은 김 씨며 휘는 덕만이며 26대 진평왕과 마야부인 김 씨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선덕여왕릉은 아랫부분에 능을 보호하기 위해 2~3단의 막돌의 석축을 호석으로 돌렸습니다. 그 위의 봉분은 둥근 형태로 흙을 쌓아 올린 봉토분입니다.







능의 지름은 23,6m이며 높이는 6.8m로 낭산 사적지 163호 내에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모든 왕릉은 성덕왕릉을 제외하고는 왕릉의 주인은 모두 관련 기록으로 비정한 상태입니다. 선덕여왕릉도 낭산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지금의 위치로 보고 있습니다.






선덕여왕릉 아래 사천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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