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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알록달록 단풍색이 좋았던 경주 서출지 이요당 가을여행. 경주 서출지와 이요


경주 묘사를 지내고는 친지분들과 가까운 경주 남산리의 

서출지 인근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ㅎㅎ

저는 밥보다는 서출지의 가을 풍경이 어떨까하며 내심 궁금했습니다. 





경주 서출지 이요당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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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오면서 친지분들은 가고 동생과 사촌만 남아서 

서출지를 한바퀴 돌면서 가을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서출지에도 이제 나무마다 가을빛인 단풍물이 서서히 들었습니다.



서출지는 둘레가 200m인 아주 작은 저수지입니다. 

그런데 역사는 엄청나게 오래된 신라시대 저수지입니다. 





서출지에는 까마귀에 관한 전설로 까마귀가 소지왕의 목숨을 구했다는 설화입니다. 

488년 신라때 소지왕 10년 정월 대보름날에 

남산 기슭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행차하였습니다.



그때 쥐와 까마귀가 나타나 쥐가 “까마귀 가는 곳을 따라가시오”하였습니다. 

소지왕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까마귀가 이 연못에 다다렀을 때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내주었습니다. 

소지왕은 종이에 “거문고 집을 쏘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소지왕은 궁궐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집을 쏘자 

거문고 집에 숨어 있던 왕비와 중이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못에서 글이 나왔다하여 ‘서출지’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에 까마귀가 소지왕의 모숨을 구해주었다하여 

찰밥을 주는 ‘오기일’ 풍속이 생겼습니다. 


현재 연못가에는 이요당 정자가 있습니다. 

조선 현종 5년인 1664년에 임적이 지은 정자로 서출지와 함께 

아름다운 정자로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사적 138호




특히 서출지는 여름의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못둑 이요당의 배롱나무, 연못에 연꽃이 필때는 

최고의 절경으로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가을의 서출지 또한 봄 풍경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통일전의 큰 나무들도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끝자락의 서출지 여행....



서출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신라시대 때 생긴 못이라 그런지 큰나무도 많았습니다.  




서출지를  지켜주는 듯 마을 입구의 노거수였을 것으로 보이는 보호수도 있습니다. 



이요당입니다. 

출입문인 일각문은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수 없었습니다




서출지에 수풀이 웃자라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ㅎㅎ

 


그래도 서출지 언덕에 자리한 이요당의 풍경은 그림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웁니다.



서출지 유래 안내판도 있습니다.




이리보니까 이요당이 

꼭 논두렁에 있는 듯 ㅋㅋ




늦가을이라 연잎이 완전 쪼그라 들었고요



봄에 오면 수풀을 모두 제거한 깔끔한 

서출지로 바뀌니 그때 다시 한번 와야겠습니다.






소나무와 중년의 사내들 ㅋㅋ

어울리기도 합니다. 






낙락장송인 경주 서출지 

뒤틀린 소나무는 흘러온 세월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이요당 뒷산은 야외박물관이라는 경주 남산입니다. 

남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서출지와 이요당

가을 여행에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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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여행.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작품


경주여행은 남산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화랑교육원이 있는 남산리 방향으로도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많은 불상과 서출지 그리고 칠불암등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석탑은 처음 소개를 하는 것 같다. 서출지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남산을 등지고 선 곳에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인 쌍탑을 찾아 볼 수 있다.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여행.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은  보물 제124호 


이곳 남산리 삼층 석탑은 여타 삼층석탑 처럼 쌍탑이라 불리는 똑 같은 모양의 쌍둥이 삼층석탑이 아니다.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 처럼 동서 탑의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더욱 특이한 모습인데 동쪽의 탑은 모전 석탑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바위를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양식으로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 8개를 서로 어긋나게 놓아 물리게 끔 하였다. 그리고 층마다 몸체돌 하나와 지붕돌 하나씩을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벽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처마밑과 지붕 위의 받칩이 각각 5단이다.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여행.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서탑은 팔부증상을 새김


  서탑은 이중 기단위에 삼층으로 쌓은 일반 석탑형식이다. 윗기단의 몸체를 보면은 팔부중상을 돋을 새김한 것이 이채롭다. 팔부중상은 신라중대 이후에 나타나며 탑은 부처님의 세계인 수미산의 한 표현이다.  불교에서는 석탑이 어떤 존재인가. 불가에서는 석탑을 부처님 보듯이 아주 신성시한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사리를 탑에다 봉안하였기에  석탑은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을 따르고 공경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탑이 7.04m이며 서탑은 5.85m로 동탑이 조금 더 높다. 


 

 

 ☞(경주남산여행)경주남산여행.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 9세기 통일신라 작품


경주 남산을 등지고 솟아 있는 경주 남산리 삼층석탑은 그 만큼 정교하며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9세기 작품으로 그 당시의 뛰어난 예술성을 알 수 있으며 서쪽의 석탑은 사면에 돋을 새김한 팔부증상의 모습에다 섬세하면서 세밀한 뛰어난 석공의 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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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출지의 이요당 정자.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서출지는 추석날 고향 분위기.


오늘은 추석이다. 많은 분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친지분 그리도 오랜만에 형제들과 반가움에 추석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시간이다. 추석하면 생각나는 고향 분위기는 어떤 모습일까. 이곳 경주 남산동의 서출지가 그런 모습이 아닐까. 고향의 모습 서출지. 그래서 추석날 아침에 서출지를 포스팅을 하였다.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서출지는 어떠한 전설이 있나요.


서출지는 까마귀의 전설이있다. 신라 21때 소지왕이 하루는 서라벌의 궁밖을 나가 이곳 남산 기슭에 당도 하였다. 그때 난데없이 까마귀와 쥐가 나타나 하는 말이 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따라가라는게 아닌가. 소지왕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신하에게 저 까마귀를 따라가라 이르니 신하는 까마귀를 쫓아가다 이곳 서출지 부근에서 그만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그 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이때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신하에게 편지가 든 봉투를 주었다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연못에서 서찰을 나왔다하여 서출지

 

신하는 소지왕에게 전하니 그 봉투에는 편지를 보면 두명이 죽을 것이요 보지 않으면 1영이 죽을 것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어 소지왕은 두 명이 죽는 것 보다 안보고 한명이 죽는 것을 택하는 게 낮겠다 싶어 보지 않을 여고 하니 신하가 소지왕에게 진언하길 두명은 백성을 가르키고 한명은 임금을 말하는 것이라하였다. 이에 소지왕은 편지를 뜯어보니 사금갑(射琴匣)’이라 적혀 있었다.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게 아닌가. 얼렁 소지왕은 궁궐로 입궐하여 거문고 통을 화살로 쏘니 그곳에는 자신을 해하려는 승려와 궁녀가 숨어 있었다. 소지왕은 그들을 잡아 참형하였다. 그 후 연못은 서찰을 받아 임금이 목숨을 구하였다하여 서출지(書出池)’라 부르게 되었다.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까마귀가 임금 목숨을 구해 오기일 전설이...

 

 

까마귀로 인해 임금이 목숨을 구했다하여 이곳 서출지에는 정월 보름에 오기일(烏忌日)’의 풍습을 생겼다.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풍습으로 지금도 이곳에는 정월보름에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까마귀에게 그때의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삿밥을 주는 풍습이 남아 있다.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서출지의 정자 이요당(二樂堂)...


경주시 남산동에는 서출지의 연못이 있다. 둘레가 200m쯤 됨직한 연못으로 마을에 있는 것 치고는 작은 편은 아니다. 이곳 서출지 뒤로는 야외박물관으로 통하는 남산이 자리하고 이사이에 임씨 집성촌인 안마을이 있다. 조선 현종 5년인 1664년에 임적이 서출지 연못에다 자 형태의 정자를 지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경주여행)경주남산서출지. 서출지가 사진작가들에게는....어떤 존재


이곳은 전국의 사진가들에게 벌써 출사지로 알려져 있는데 봄철의 연꽃과 함께하는 이요당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진사는 없을 것이다. 꽃이 백일동안 피어 있다는 백일홍이 못 둑을 따라 붉은 물이 들 때 쯤 이곳 서출지는 경주의 문화관광지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으로 손을 꼽을 만한 곳이다. 필자는 9월말에 벌초 후 잠시 찾아 갔는데 100일을 간다는 배롱나무와 함께한 서출지, 그 속에서 이요당의 모습을 찾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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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석불은...

통일 신라 시대때 만들어진 보리사 마애 석불은 전망이 뛰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앞으로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릉과 망덕사터 그리고 배반동의 벌지지 들판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곳에 위치를 하고 있다그래서인지 세속을 바라보는 부처님의 미소가 아름다운 것 같다.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석불은 돋을새김...


보리사 마애석불을 바라보면은 앉은 품새도 보통이 아니다 바위가 앞으로 경사지게 누워있어 비로부터 안전하며 .편편한 바위를 광배 형태로 파내어 마애석불을 조각하였는데 그 기법이 돋을새김으로 처리하였다. 둔닥한 바위를 어찌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이 얇은 옷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처리를 하였는지 그때의 석공에게 찬사를 보낸다.   







(경주남산여행)보리사마애불. 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석불은 통일신라 작품


보리사 마애석불은 머리카락을 나선형으로 표현을 하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퍼져 나오는 엷은 미소는 신라조각 예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3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경주 남산 보리사 마애석불


신라의 수도는 서라벌이었다. 그 서라벌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는 산이 남산이다. 남산이란 지명은 참 편안하다. 그래서 인지 경주 남산 지명도 듣고 있는 내내 편안한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경주에 있는 남산은 여느 남산과는 다르다. 신라인들이 불교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남산을 하나의 불국토인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래서남산에는 수많은 암자터와 신라 예술의 걸작품들이 가득한 보물창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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