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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수지방의 건축 양식으로 실내에는 마루와 다다미방, 온돌방이 설치 되어 있다. 한때는 200명이 넘는 기생이 있었다하며 일본인만 출입할 수 있는 기생집으로 해방후 한국인이 운영을 하였다 한다.




도심한복판에 위치하며 지금은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서 작은 가장집 분위기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초라하다.

부산에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인해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많이 거주를 하였다. 필자가 동래 온천장에 거주를 할 때 그 집도 한켠 방에는 다다미 방이 설치 되어 있었는데 아마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거쳐를 하였던 것 같은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부산에는 일본풍의 집들이 도처에 있다. 일본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제일관문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수정동 범천동 가야 주례 대신동을 품안에 거느린 산을  우리들은 예로 부터 엄광산이라 불렀는데 일본인들이 부관페리호를 타고 부산항으로 올때 저 멀리 바다에서도 보인다하여 고원견산으로 불러 한때는 산명이 고원견산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 산아래 수정동에는 지금도 일본 풍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정란각으로 쉬운말로 기생집이다. 큐수지방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시대때 일본인인 철도청장이 거주를 할 목적으로 지어져 별장으로 이용을 하였다 한다. 해방이후 한국인이 인수를 하여 정란각이란 기생집으로 영업을 하였다 하며. 60~70년대에는 그래도 잘나간 방석집으로 200명이 넘는 많은 기생들이 있었다 한다. 내국인은 출입을 할 수 없었다하며 주로 일본 관리들이 출입을 하였다 하는데 쉬운 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거나하게 차려 나와 질펀하게 놀고가는 그런집으로 현재에도 요식업의 문패가 붙어 있다. 1993년 영화 장군의 아들1편의 촬영 장소로 이용을 하였고 일본식 건물 답게 다다미방과 온돌방이 함께 되어 있다 . 지금은 근대문화 유산 33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어며 한 단면의 우리 역사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씁슬하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부산진역 또는 버스는 부산일보 또는 고관입구에서 내려 고관입구 사거리 홍골길을  100m 따라가면 된다. 새로운 주소는 홍골길195호




홍등가를 알리는 초롱불이 켜졌을 문앞의 등불은 꺼져 있고 이제는 옛이야기로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항상 현관에 대낮인데도 불을 밝히고 있다. 구조는 2층으로 목조건물로 전형적인 일본풍이 느껴진다.




1.2층의 모습으로 내부를 볼수 없도록 문이 잠겨져 있는 것이 아쉽다.
아마 저기 방안에서 거나한 술상이 차려지고 기생들과 술판이 벌어졌을 것 같다.






2층의 외벽은 얿은 판자를 데고 나무로 모양을 낸 정교한 모습으로 건축적으로 인정을 받아 근대문화유산이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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