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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봉화여행)호랑이 전설과 함께 낙동강 물도리 전망대인 봉화 35번 국도 범바위 전망대

 

방가방가

이번 여행지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의 35번 국도 범바위 전망대입니다.

 

봉화 35번 국도 범바위 전망대 주소:경북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 산 343-1

 

2022.08.31 -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관창폭포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미슐랭의 미식 가이드북에서 우리나라 레스토랑을 소개해 별점을 줬다면 모두 ‘엄지 척’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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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면에서 청량산을 거쳐 태백에 이르는 35번 국도가 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별점 한 개를 줬을 만큼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 가운데 자리한 게 명호면인데요 면소재에서 구불구불 산비탈을 에돌이 도깨비 도로라 불리는 신비한 도로를 지나면 범바위 전망대가 나옵니다.

봉화군 명호면의 범바위 전망대는 산의 바다인 봉화군에 물도리 하는 낙동강이 휘몰아치며 지나갑니다.

범바위 전망대에는 현재 덱 전망대와 호랑이 조형물이 여기가 범바위 전망대임을 보여 줍니다.

범 조형물은 세월을 말해주는지 깨지고 해서 이제 많이 늙어 보입니다.

진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전망대로 국도에서 꼭 한 번은 쉬었다 가면 좋습니다. 맞은편에 주차장도 마련돼 있습니다.

왜 범바위 전망대로 불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22.09.05 - (경북봉화여행)낙동강의 시작을 알리는 곳은 어디, 봉화 이나리 강변의 낙동강 시발점 테마공원

 

(경북봉화여행)낙동강의 시작을 알리는 곳은 어디, 봉화 이나리 강변의 낙동강 시발점 테마공원

(경북봉화여행)낙동강의 시작을 알리는 곳은 어디, 봉화 이나리 강변의 낙동강 시발점 테마공원 방가방가 이번 봉화 여행은 봉화군 명호면의 낙동강 시발점 테마공원입니다. 낙동강 시발점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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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고종 때입니다. 그리 오래는 안된 전설입니다. 조선 시대 통덕량이란 벼슬이 있었나 봅니다. 

통덕랑이던 송암 강영달이 한양에 갔다 오다 낙동강 용소 뒤편에 그의 선조 묘를 향해 큰절을 올리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덤벼 들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맨손으로 범을 잡은 데서 마을 사람이 이 바위를 범바위로 부르게 됐다합니다..

또한 범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 성취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앞산의 형국이 ‘갈마음수형’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며, 해와 달을 상징하는 산태극 수태극 형국이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곳에서 빌고 꼭 소원성취 이루세요..

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범의 형상과 똑 닮았다고 합니다. 도로개설로 그 모습이 많이 변했다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2022.09.04 - (경북봉화여행)퇴계 이황이 4수의 시로 칭송한 만리산 관청동 폭포(관창 폭포)를 찾아가다.

 

(경북봉화여행)퇴계 이황이 4수의 시로 칭송한 만리산 관청동 폭포(관창 폭포)를 찾아가다.

https://youtu.be/O3OpDezb5aA (경북봉화여행)퇴계 이황이 4수의 시로 칭송한 만리산 관청동 폭포(관창 폭포)를 찾아가다. 방가방가 경북 안동시와 봉화군 사이에 청량산이 있습니다. 청량산은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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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만산고택, 봉화만산고택 고택체험을 하다.


봉화여행을 하면서 둘째 날은 봉화군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고택 체험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일정이 춘양면에 모두 잡혀 있어 부산에서 출발 전에 미리 만산고택에다 예약했습니다. 

먼저 봉화 만산고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후기인 대한제국 통정대부 중추원 의관을 지낸 만산 강용(1846~1934)이 1878년(고종15) 건립한 가옥입니다.




봉화만산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288

봉화만산고택 전화:054-672-3206




2018/10/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여행에서 소강고택 한옥체험. 소강고택

2018/03/07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2018/02/14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감실부처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봉화 만산고택도 소나무 중 최고라는 춘양목으로 지어졌습니다. 

만산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한을 달래려고 자택 뒷산에다 망미대(望美臺)를 쌓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의 대문채는 11칸의 솟을대문인데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주하는 게 사랑채입니다. 

앞면 5칸 옆면 8칸 규모의 ‘ㅁ’자 형태의 건물로 사랑채와 안채가 붙은 형식입니다. 

사랑채는 사랑방과 대청, 조상의 신위를 모신 감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안채는 사랑채와 별당 사이의 중문으로 들어섭니다.



사랑채 


서실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대청, 안방과 상방, 부엌, 중방과 고방이 연결된 구조이며 토속 민간신앙인 성주단지와 용단지를 모셨는데 처음 수확한 쌀을 독에 담아 1년간 보관했으며 음력 5월 보름날 정오에는 성주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안채









대문채




안채 출입 중문




오른쪽에는 따로 담장을 두른 ‘칠류헌(七柳軒)이 있으며 팔작기와집인 5칸의 별당 건물로 귀한 손님을 모셨던 곳입니다. 

만산이 이곳에서 영친왕 등 여러 문인과 학문을 교류하였다 합니다. 

본채와 서실, 별채, 대문채 등의 가옥 배치는 사대부가 상류 주택의 형태로 안채의 출입은 사랑채의 감실 뒤인 측면 출입형의 중문으로 합니다. 

 







 


이는 19세기 봉화 등 경상북도 북동부 반가의 지역적인 건축 특성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특히 만산고택에는 여러 친필 편액이 전해 옵니다. 

‘만산(晩山)’편액은 강용이 태어났을 때 흥선대원군이 “대기만성형의 큰 인물이 되어라”는 뜻으로 호를 지어 직접 쓴 글씨이며 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현재 모사본이 걸려 있습니다.




정와



존양재



서실에 걸린 “문필과의 밝고 깨끗한 인연”을 뜻하는 ‘한묵청연(翰墨淸緣)’편액은 영친왕의 친필로 8세 때 쓴 글씨입니다. 

서실은 사랑마당 왼쪽에 있으며 우진각지붕의 2칸 규모로 이 집 안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던 방입니다.

 


한묵청연





만산고택은 건물마다 다양한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각각의 현판에는 각 건물에 담겨 있는 의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랑채에는 대원군이 쓴 ‘만산’과 강벽원 선생의 정와(靖窩)’와 3·1 만세운동에서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이 쓴 ‘존양재(存養齎)’와 별당건물의 칠류헌 현판입니다.

 





정와는 “편안한 집”이란 뜻이며 존양재는 “타고난 심성을 온전하게 지켜서 훌륭한 심성을 기르는 곳”을 뜻하며 맹자의 ‘존심양생(存心養生)’에서 따왔습니다. 

'칠류헌'은 “요일이 순환하듯 언젠가는 국운이 회복될 것을 염원”한다는 만산 강용의 뜻이 담겨 있으며 기둥의 주련은 영친왕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1868~1933)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백석산방, 사물재 등의 현판이 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은 고택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한때 빈집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은 편액도 도둑맞고 해서 만산의 5대손인 강백기 선생이 부인과 함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하여 관리하면서 따뜻한 고택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만산고택에서 가장 저렴한 대문채에 붙은 방 2 두 개 였습니다. 

행랑방으로 옛날로 말하면 머슴이 거처하던 방입니다. 

묵었던 방은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목욕과 화장실인 편의 시설은 따로 독립되어 있는데 조금 불편했습니다. 



이것 말고는 대문채의 방도 깔끔하고 정말 좋아 편안하게 하루 쉴 수 있었습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1호 만산고택 체험 문의는 054-672-3206 “예약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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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한수정. 충재 권벌을 추모하는 봉화 춘양 한수정 여행. 


경북 봉화군 춘양 면소재지인 의양리 134번지에 머리를 식히기 아주 좋았을 정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한수정(寒水亭)인데 뜻을 보면 “찬물과 같은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역시 찬물을 한 바가지 둘러써야 잘 되는가 봅니다. 춘양면 소재지인 춘양장터 인근에 있는데 아침을 먹으려고 나섰다가 찾게 되었습니다.





충재 권벌의 봉화 한수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2018/02/26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2018/03/06 - (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만회고택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사방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출입문이 꽉 잠겨 있어 속속들이 내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낮은 담장 덕분에 수려한 한수정의 정원과 건물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수정이 있는 이곳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재(沖齋) 권벌(權伐. 1478~1548)이 거연헌(居然軒)이란 건물을 처음 지었다가 소실하자 그의 2대손인 석천(石泉) 권래(權來. 1562~1617)가 1608년(선조 41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한수정이라 이름 했습니다.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수했다가 1991년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 일부가 불탔으며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원래 상태로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충재 권벌은 본관이 안동이며 호는 충재 또는 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입니다.







1496년 연산군 2년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인 중중 2년에 문과에 급제해 사관과 삼사,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을사사화 때 소윤일파에 의해 삭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숨졌으나 선조 때 신원이 회복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습니다.







한수정 정자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T'자형 건물이며 홑처마 팔작지붕건물입니다. 바닥은 1단을 높였고 양측에 각각 2칸인 온돌방을 넣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를 깔은 형태입니다. 한수정 주위 3면에는 와룡연이라는 연못을 팠으며 초연대라 불리는 넓은 반석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나무 등이 둘린 아름다운 정자 정원입니다.

 






한수정은 경암 이한응(1778~1864)의 춘양구곡가(春陽九曲歌)에서 제 8곡입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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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해저 만회고택. 봉화 독립운동의 산실 해저 만회고택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1박을 청했던 곳이 아름다운 지명인 바래미마을의 소강고택입니다. ‘바래미’는 바다였다는 뜻이며 아주 오래전에 이 일대가 바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근까지도 마을 안의 논과 웅덩이에서 조개들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마을이 포근하고 아늑한 게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한옥스테이를 했던 소강고택 포스팅은 다음에 하고 우선 바래미마을 인근에 있는 해저만회고택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소강고택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계속 누워 있기도 뭐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 구경삼아 동네 한 바퀴 했습니다. 소강고택 이외에도 많은 고택이 즐비했는데 그중에서도 소강고택의 건너편 마을에 있는 해저 만회고택을 이정표만 보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해가 떠오르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외관만이라도 만나볼 욕심에 찾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대문이 없는 개방식 비슷한 고택이었습니다. 주위 고택은 솟을 대문에 높은 담장이 둘러싸여 바깥에서는 전혀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만회고택은 대문이 없어서 바깥에서도 훤하게 사랑채가 잘 보였습니다.

 


특히 새벽바람을 가르며 시골 마을을 걸을 때는 개 짖는 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러워 마을을 둘러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행운인지 모르겠지만 만회고택은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만회고택의 자랑인 사랑채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으며 집주인이 잠에서 깰까 싶어 조용하게 사진을 찍고 소리소문없이 나왔습니다.



만회고택은 봉화군에서 애국심으로 큰 자랑인 고택건물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도 있지만 만회고택의 사랑채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더욱 눈길이 갔습니다. 봉화 해저 만회고택이 자리한 해저리에는 조선 숙종 때 관찰사를 지냈던 팔오헌 김성구 선생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의성김씨가 세 가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의 만회고택인 안채는 김건수씨 6대조께서 마을에 들어와 여씨(余氏) 성을 가진 분이 살던 집을 사들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안채는 1690년대에 지어졌다 합니다. 이 집을 만회 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건수(1790~1854)선생의 호인 만회헌(晩悔軒)에서 따왔습니다.



만회고택의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만회선생이 건립했으며 1850년에 전체적인 수리를 했다고 합니다. 백두대간의 흥 걸 찬 기원이 감도는 명월루의 지세는 예로부터 명산 대천을 찾는 많은 시인 묵객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닦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1,000여 편의 시가 쓰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명월루는 봉화 해저리에서 독립운동의 산실역을 담당했다 합니다. 특히 해저마을 주민 전체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독립운동가를 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 마을입니다. 그 이유를 보면 성주 대가면 출신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명월루에 거처하면서 해저마을의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독립 자금도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랄 일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열렸던 제2회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리에 파견하면서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독립청원서의 초안을 명월루에서 작성하였다고 하며 독립유공자 마을인 해저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 외 많은 독립운동의 지원 등을 의논했던 장소에 명월루가 이용되었다 하니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사실 만회고택의 안채는 이른 아침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지만, 사랑채인 명월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만회고택 명월루를 알아보겠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게 사랑채인 누각형태의 명월루입니다.





사랑채가 명월루임을 알리는 현판이 돌출한 누마루에 달렸어 눈에 확 띄었으며 이외에도 만회고택과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는 청풍헌 현판도 따로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이며 옆면 1칸 반 규모로 만회고택은 앞쪽에 일자형의 중문간채와 'T'자 형의 사랑채, 안채는 ‘∩’자형이며 전체적으로 튼 ‘ㅁ’자 배치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결된 건물이 사랑채로 이어지며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쳐져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전면의 툇마루와 누마루에는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물의 멋과 권위를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랑채 옆의 안채로 드나들던 출입문인 중문간채는 퇴락하여 1981년에 철거했다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찬찬히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남의 집을 찾아서 내 욕심대로 보는 것도 실례이고 그리고 소강고택에서 다음 일정으로 일행들도 기다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저 만회고택에서 한옥체험 민박도 하고 보지 못했던 안채와 수박 겉핥기로 보았던 사랑채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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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계서당.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여행


청정골 봉화여행을 하면서 소설과 판소리의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생가가 있다 하여 아니 웬 봉화에 이몽룡생가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정보를 알고는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허구의 춘향전이 아니라 이몽룡은 실제 인물이라는 점에 더욱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찾아갔던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의 계서당은 그야말로 한적한 산골 오지에 자리했습니다.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춘향전에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 생가 봉화 계서당 전화:054-679-6090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춘향전의 남자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분의 성함은 창녕성씨 16대손인 계서 성이성(1595~1664)이며 청백리에 이름을 올린 분으로 한마디로 불의를 보면 참고 넘기지 못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소설 속에서 이몽룡 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 관아를 찾아 갑니다.



변사또는 수청을 거부하는 춘향이를 앉혀 놓고는 주지육림으로 흥청망청하였고 이를 보다 못한 이몽룡은 사또를 칠언절구로서 질타하는 인물로 성이성선생과 너무 닮았다 하겠습니다. 이를 보고 소설 속의 이몽룡은 봉화의 성이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성이성의 4대 후손인 성섭의 교와문고(僑窩文藁)에는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과 비슷한 내용이 나오고 걸인 행색을 한 이몽룡이 지필묵을 요청해서 써내려간 한시“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사람의 피요)/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爻萬姓膏:소반위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이 기름이라)/촉루낙시민루낙(燭淚落時民淚落: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성의 소리 높더라)”가 수록되어 있다 합니다. 그러니까 춘향전 이몽룡 한시가 발견된 것이지요. 







또한, 성이성은 4번의 암행어사 직을 수행하면서 호남에 두 번이나 어사로 활동한 것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몽룡과 성이성을 동일인이라 주장한 사람은 연세대학교 설성경교수로 1999년11월 그의 논문 ‘이몽룡의 러브스토리’에서 입니다.

 



성이성의 인물 탐구에 앞서서 춘향전의 대략 줄거리를 보면 남원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기생 월매의 딸인 춘향이 광한루에서 정분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게 되자 이도령과 춘향이는 다음에 만날 것을 언약하며 이별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 새로 남원부사로 부임한 신관 사또는 춘향의 미모에 홀라당 반하여 수청들 것을 강요하였고 춘향은 일부종사를 들어 수청들기를 거부하자 열받은 사또는 "니 한번 죽어볼래"하며 춘향이를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해서 암행어사가 되어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치며 들이닥쳐 탐관오리인 남원 사또에게 “니 죄를 니가 알렸다”하며 봉고파직하고 감옥에 가두는 서민인 우리로서는 아주 통쾌한 권선징악의 내용입니다.

 




아!! 요즈음에는 이런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이 왜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 성춘향은 성이성과 같은 성씨 성을 썼다는 점을 보면 더욱 신빙성이 있습니다. 성이성의 아버지인 부용당 성안의(1561~1692)도 소설 속의 내용처럼 남원부사로 재직을 했으며 성이성 또한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와 공부하고 뒤에 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었습니다. 어쩜 내용이 소설 속과 많이 닮았습니다.






성이성은 21세인 1616년에 생원시에 합격해서나 당시 나라 정세가 너무나 어지러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624년 인조 2년에 이괄의 난으로 인조를 호종하는 아버지를 따랐다가 난이 평정되자 성균관에 들어갔고 인조5년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원정언에 임용됩니다.



그러나 인조는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기에 그의 아버지인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여 종묘에 들이려 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신하들의 반발로 논쟁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인조는 원종에 추증해 밀어붙였고 성이성은 이의 부당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관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의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품으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암행어사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강계부사 재직 때에는 관서지방의 살아있는 부처라는 “관서활불(關西活佛)”로 칭송받는 훌륭한 목민관이었습니다. 그는 죽어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라는 ‘청백리’에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몽룡의 실존인물인 성이성의 생가는 1613년인 광해군 5년에 지어졌으며 사랑채인 계서당은 후대에서 보수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성이성의 후손이 안채에서 생활하고 있어 집안에는 사람의 훈기가 가득했습니다. 6칸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이 나오고 정면에 사랑채가 자리했습니다.

 




사랑채를 보는 것을 잠시 미루고 사랑채와 붙은 중문을 지나 안채로 갔습니다. 성이성 선생의 후손으로 보이는 분이 툇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를 보고는 “어서오시라”며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오랫동안 안채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농촌의 살림살이가 마당과 축대에 그대로 나뒹굴고 너른 대청이 훤하게 뚫려 있는 것을 보면 살아오면서 가옥 구조에 변화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 형태는 ‘ㅁ'자형 배치입니다. 이런 구조는 추운 지방인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건물구조입니다. 밖으로 되돌아 나와 사랑채인 계서당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계서당은 높은 축대 위에 건물을 세워 웅장하며 듬직해 보였습니다. 떡하니 버틴 게 성이성의 강직한 성품을 마주하는 듯했습니다. 봉화여행에서 이몽룡의 실제 인물만이 아니라도 목민관의 본보기가 되는 성이성의 생가 계서당을 꼭 만나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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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서동리삼층석탑. 산림고교 교정에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소나무는 금강송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고산이 마지노선으로 일반 소나무와는 현격하게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하는 소나무입니다. 그 귀한 금강송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에서 모여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91, 서원촌길 8-14(서동리)

봉화서동리삼층석탑 연락처:054-679-6392

보물 제52호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8/02/10 - (경북여행/봉화여행)대한민국 명승 제60호 석천계곡·석천정사,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석천정사

2018/02/07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이 때문에 금강송을 춘양목이라 따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번 봉화여행에서 춘양목의 집하장 춘양역이 있는 춘양면의 만산고택에서 1박을 하며 고택체험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황토집인 온돌방에서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찍 잠을 깼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만산고택 구경을 하다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어디 갈 곳이 없을까 싶어 생각해서 찾은 곳이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입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만산고택과 멀지 않았습니다. 대략 1km가 조금 안 된 거리였습니다. 봉화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 경내에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학교가 나와 처음에는 많이 황당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도 많이 끼고 해서 일단 교문을 들어가서 빙 둘러보았습니다. 교정 오른쪽에 삼층석탑이 보여 맞게 찾아왔구나 하며 아마 옛날에는 이곳이 절터였나 생각했습니다.

 






문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면 소재지와 가까워지면서 논밭 속에 봉화 춘양면 서동리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동·서로 마주 보는 쌍탑 형식입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에 있었다는 남화사 절터였다 합니다. 전하는 말로는 675년 신라 문무왕(16년) 때 원효가 이곳과 멀지 않은 각화산 아래에 현재의 각화사를 창건하자 폐사되었다 합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탑이 몹시 기울고 기단부가 흙더미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두 석탑을 해체·복원해서 현재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복원 당시 서탑에는 사리함이 들어갔던 공간이 발견되었으며 동탑에서는 사리병과 99개의 작은 흙으로 만든 탑이 두른 사리장엄구가 나왔습니다.





사리함에는 녹색 유리 사리병이 나왔고 그 안에서 좁쌀만 한 사리 3과가 있었다 합니다. 사리기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겨진 상태입니다. 높이는 동탑은 3.85m이며 서탑은 3.94m에 두탑은 13.5m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대석은 여러 장의 판석을 깔았으며 그 위에다 기단석을 받치는 굄대를 여러 장의 돌로 두툼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탑 모두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기단은 네 면의 모서리에 운주인 기둥 모양을, 가운데에 다는 탱주를 한 개씩 새겼습니다. 또한,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줄어드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운주를 새겼으며 옥개석은 4단의 층급 받침에 네 귀퉁이는 살짝 들렸습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서탑에는 노반이 남아 있으며 동탑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화 서동리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비례와 균형이 잘 어울리고 정제된 조형미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봉화 춘양면 여행 때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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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감실부처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봉화여행 중에 봉화군에서 유일한 국보가 있다 하여 다른 일정을 잠시 미루고 북지리에 찾아갔습니다. 위치를 보면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의 호골산 지림사 경내에 있었습니다. 이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7c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400여 년 전인 신라 시대에 ‘한절’·‘대사’라고 불렸던 큰 규모의 사찰이 있든 자리로 당시에 모셨든 불상으로 보입니다.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657-2

북지리마애여래좌상 전화:054-673-6735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8/01/24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군청맛집 자갈마당. 아침에 좋았던 봉화 자갈마당 자연산 송이 국밥





한절은 고려 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절은 폐사되었다지만 정확한 이유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한국동란 이전인 1947년에 수월암 신축을 하면서 우연하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70년 들어 조명되어 1980년 9월 국보 201호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낮은 언덕 같은 호골산 사면의 5m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입니다. 낮은 산세에 비해 대단한 힘이 느껴졌으며 주위에 27개의 사찰에다 500여 명의 스님이 수도를 했다고 하니 이곳에 대불인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워낙 지림사 경내가 넓어 조금은 황량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의 현재 상태를 보면 더욱 강하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현재 많이 훼손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아쉽지만,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상세하게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깊게 파내어 넓은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다 높이 4.3m의 마애불을 양각했으며 이를 감실 부처라 합니다. 불상의 얼굴은 넓고 큼지막하며 양감은 풍부합니다. 머리는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자비로움이 느껴지는 게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진짜 거대한 불상이지만 위압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통견인 양어깨에 걸친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은 주름이 양팔을 거쳐 앉아 있는 불상의 대좌까지 흘러내렸습니다.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 앞으로 보이게 해 무릎에 내린 모습인데 이를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하며 부처가 중생에게 무외를 베푸는 손동작입니다. 마애불 뒤에는 광배를 표현했습니다.








광배는 머리와 몸 광배로 따로 표현했으며 마애불 주위로 작은 불상을 여러구 부조했습니다. 그리고 머리광배는 보주형두광을 말하며 정교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불상은 딱딱함보다는 유려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봉화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은 도롯가에 큼지막하게 문화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혹시 봉화여행에서 이 안내판을 만나면 꼭 찾아보세요. 훼손상태는 심하지만 웅장함과 수려함에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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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대한민국 명승 제60호 석천계곡·석천정사,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석천정사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고장이 봉화입니다. 당파싸움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칼날 위의 벼슬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많은 선비가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정자를 짓고 자연을 노래하며 은둔했던 곳이 유독 많았던 봉화. 하나같이 세속을 등지고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면서 벗과 시문을 나누고, 후학을 키우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봉화 석천정사·석천계곡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봉화 석천정사 연락처:054-679-6375




2018/02/08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봉화에서 꼭 가보아야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여행.

2017/11/04 - (경북여행/봉화여행)산타마을 분천역.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어요? 영동선 분천역 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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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그만큼 봉화의 산세는 남달랐습니다. 봉화에 몸을 숨긴 대표적인 처사로는 태백오현이 그러하고 또한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세운 청암 권동보 등 수많은 선비가 있습니다. 모두 자연 속에서 세상사 시름을 멀리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봉화를 여행하면서 찾았던 석천계곡과 석천정사도 그런 곳 중 한 곳입니다. 봉화는 벌써 여행을 하고 왔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석천정사와 함께 찾는 곳이 닭실마을의 청암정입니다. 청암정 또한 청암선생이 세웠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삼남의 4대 길지에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마을의 분위기는 낮은 산에 둘러싸여 포근해 보였습니다. 문수산에서 흘러내린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를 돌아 흐르는 동막천은 유곡 앞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기암괴석과 하얀 암반을 끼고 석천계곡을 빚어낸 뒤 내성천에 합류하여 낙동강에서 꼬리를 감춥니다.

 


봉화군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석천계곡과 비탈에 걸터앉은 석천정사를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길은 위쪽의 유곡리 닭실마을에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저는 그 반대인 삼계리의 삼계 2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곳에도 석천계곡을 알리는 대형안내판과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석천계곡을 끼고 반들반들 윤이 난 오솔길은 수많은 사람이 닭실마을을 거처 춘향으로 향했던 옛길이라 합니다. 그 때문인지 석천계곡의 운치는 더욱 좋아 보였습니다. 나도 그 뻔찔난 길에 발걸음을 보태었습니다. 계곡을 걷다가 문득 지게를 지며 올랐을 옛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낙락장송의 거대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석천계곡, 지겟발을 받치며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골바람에 땀을 식혔을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을 석천계곡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그 많았다는 인걸은 간데없고 할 일 없는 나그네만 찾아와서 왁자지껄 노닐었는데 진짜 우리 일행 빼고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소로 길이 바위벼랑을 돌아갔습니다. 그 바위벼랑에 왕희지도 울고 갈 “청하동천(靑霞洞天)”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청하동천’ 그 뜻을 보면 “하늘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씨체가 용이 하늘을 마음껏 휘젓듯 힘차게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글씨는 충재 권벌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 권두웅(1656~1732)이 섰다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석천계곡에 많은 도깨비가 몰려와서 떠들면서 놀았다 합니다.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였고 이를 참다못한 권두웅이 ‘청하동천’ 글씨를 바위에 세기고 그 위에다 붉은 칠을 하자 다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합니다.









도깨비를 쫓아냈다는 청하동천 바위를 지나면 더욱 수려한 장관이 펼쳐지면서 계곡 건너에 석천정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위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 석천정사에 다다랐습니다. 석천정사를 들어서는 일주문이 꽉 닫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내려가서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석천정사는 34칸의 큰 규모라 합니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선생은 1542년 중종 37년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1547년 명종2년에 아버지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삭주에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숨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직되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석천계곡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마음의 수양을 닦으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보아도 계곡을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선 정자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으며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다 길게 늘어선 모습 입니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내부를 보았습니다. 한쪽은 개방된 마루라면 한쪽은 판장문을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얀 암반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계곡의 풍경과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소나무의 솔향이 모든 건물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선경이 따로 없는 석천정사를 지나면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들어서는 넓은 길이 이어졌습니다. 허리를 숙인 소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닭실마을의 청암정이 어서 와라 손짓했습니다. 명승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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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옥류암, 남양 홍씨 두곡종택인 봉화 옥류암 정자 여행 


봉화여행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렀던 '산수유길 사이로' 인근에 태백오현의 한 분인 두곡 홍우정(1595~1656)선생이 은거했다는 옥류암(玉溜庵)을 찾았습니다. 산수유길 사이로의 참살이 음식과 함께 잘 어울렸던 옥류암. 옥류암은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산수유길 202-80번지인 뒤뜨물마을 뒷산 자락에 남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봉화 옥류암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192




2017/12/20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2017/11/16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 송이버섯 맛집 인하원. 봉화군청 봉화역 맛집 봉화 인하원 송이버섯

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2017/10/31 - (경북맛집/봉화맛집)농가맛집 산수유길사이로. 테라푸드인 약선음식을 산수유길사이로에서 맛보다.

2017/09/25 - (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다섯 칸의 두곡종택과 나란히 자리했으며 옥류암은 절의의 상징인 홍우정의 은거지답게 키가 크고 우람한 소나무가 빼곡하게 정자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에다 이마를 찍어 이마가 깨져 피가 철철 흘렀다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수모를 당하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명분과 의를 지키려면 운명을 걸고 결전을 해서야 옳았다는 척화를 주장하며 낙향하여 봉화의 문수산 아래에다 은거하면서 세운 정자입니다.









옥류암의 유래는 정자와 종택 사이의 옥구슬 같은 물이 솟는 샘에서 나왔으며 이 물줄기는 문수산에서 흘러내린다 합니다. 옥류암은 1637년 처음 지어졌으며 1756년에 중건 하면서 기와를 얹었습니다. 그리고 미수 허목선생의 옥류암 현판과 대산 이상정선생의 기문이 걸렸다 합니다. 가로 120cm, 세로 60cm였던 옥류암 현판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정자는 다시 1876년에 중수하였으며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 크기에다 팔작기와집에 정자주위에 토석담장을 둘렀습니다. 정자 앞 왼쪽으로 사주문을 세워 출입하게 했습니다. 정자 바깥으로는 3개의 연못을 만들었는데 시문에 연과 구기자, 국화, 소나무, 매화, 대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등에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건축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연구자료라 합니다.






두곡 홍우정은 옥류암에 기거하면서 학문 증진과 후학을 양성했으며 태백오현과 교류하며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해 살고 싶지 않다”며 끝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않다가 사재감직장을 잠깐 지냈을 뿐입니다.

 





사후에 영조는 두곡선생의 절의를 칭송하며 이조참의에 추증하였고 영조가 직접 ‘숭정처사’라는 칭호를 내렸습니다. 산림처사는 들어보았지만 숭정처사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816년에 순조(16년)는 이조판서로 추증하고 이듬해에 ‘개절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선생의 위폐는 구봉사와 문산사에 봉안했습니다.


옥류샘


봉화 옥류암



본관은 남양이며 자는 정이, 호는 두곡이며 형조판서를 지낸 조부 만전당 홍가신(1541~1615)과 부친은 한성서윤 홍영이며 다섯 형제 중 맏이로 대사헌과 대사성, 이조판서를 지낸 홍우원과 무과에 급제해서 제주목사와 수사를 지냈던 청백리 홍우량이 선생의 아우였습니다. 봉화 옥류암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1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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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와선정. 태백오현이 대명결의를 다졌던 봉화 춘양면의 와선정 여행


경북의 오지마을인 봉화여행은 벌써 하고 왔는데 차일피일 여행 포스팅을 미루다 보니 이제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봉화여행에서 밀린 숙제 한 곳을 하려 합니다. 봉화에는 100여 개가 넘는 정자가 있어 정자의 고장이라 하는데 그중에서도 번잡하지 않고 한적하여 신선이 내려와 머물렀을 정도로 조용하고 아담한 명소 와선정을 소개합니다.





봉화 춘양 와선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
봉화 춘양 와선정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32호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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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도암정





와선정은 태백산이 있는 봉화군에서도 춘양목으로 유명한 춘양면 소재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마침 춘양면소재지 고택에서 1박했던 터라 안내판의 와선정을 보고 이른 아침에 운동 삼아 휑하니 차를 몰고 둘러보고 왔습니다. 와선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244번지에 속칭 골띠마을에 위치합니다.




작은 주차장에서 나무로 만든 아치형의 오현교를 건너면 바로 토담을 두른 와선정 정자입니다. 그런데 오현교 아래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골짜기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꼭 편편한 암반을 끌로 깊게 긁어낸 듯 패인 골짜기에는 높이 5m의 폭포가 걸려 있으며 그 옆에 벼랑에다 와선정을 세웠습니다.

 


낭떠러지에서 쏟아내듯 떨어지는 물보라가 은색으로 반짝여 은폭이라 불리며 그 폭포를 안은 바위가 사덕암인데 이는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바위”로 풀이하자면 태백오현의 뒤를 이어 다시 와선정은 ‘덕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외에도 폭포 옆 바위에는 와선정과 사덕암의 글씨가 남아 있으며 와선정은 산림 처사의 은둔처로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 다섯 분의 은자가 소요하며 시문을 나누고 후진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태백오현이라 불렀습니다. 태백오현은 잠은 강협(1602~1671), 포옹 정양(1600~1668), 각금당 심장세(1594~1660), 두곡 홍우정(1595~1654), 손유당 홍석(1604~1680)을 칭하는데 모두 고려와 조선에서 명문가로 이름을 더날였던 후손들입니다.

 











1636년(인조14년)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태종에 세 번 절하고 9번을 땅에다 이마를 박으며 조아린 ‘삼배구고두례’인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자 이들은 결기의 심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태백산 기슭으로 내려왔고 모두 와선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살면서 대명절의를 지키며 서로를 위로하고 우의를 다졌다 합니다.







은폭



그들이 우위를 다졌다는 와선대에다 세운 와선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인 마루 형태의 건물입니다. ‘와선정기’를 보면 와선정은 1832년(순조32년) 후손인 강씨와 심씨가 합해 정자를 세우고 난 후 ‘와선지’ ‘사덕암지’의 뜻을 따라 와선정이라 이름 하고 1895년에는 정자를 수리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각문을 들어서자 작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정자의 뒷면입니다. 계곡을 마주하며 세살분합문을 들어 올리는 열개식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판자로 막아 각각 칸에 작은 문을 1개씩 달았고 좌우에는 흙담 1칸에 1칸은 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통간이며 우물마루에다 정자 바깥의 네면은 쪽마루를 돌렸지만,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했습니다.

 









‘태백오현’은 조선 정조 14년에 왕명으로 병자호란 때 재신척화 순절자를 기록한 추념록인「존주록배신열전」에서 이들 다섯 선비를 태백오현이라 기록하고 받들며 경의를 표한대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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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도암정. 정자의 고장 봉화에서 만난 도암정


봉화를 2박 3일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 경상북도 봉화군 붕화읍 거촌2리 황전마을 앞의 도암정(陶巖亭)입니다. 막상 황전마을을 찾아가면 전체적인 황전마을의 분위기와 규모는 알 수 없이 정자인 도암정만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고백하자면 황전마을은 도암정 주변에 보이는 민가가 전부라 생각했는데 포스팅을 하면서 안쪽에 경암헌고택과 함께 큰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곳까지 가보지 않았던 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봉화 도암정 연락처:054-679-6392




2012/12/07 - (경북봉화여행)봉화 선달산산행. 신선이 놀던 곳 백두대간 선달산 산행

2012/12/16 - (경북여행/봉화여행)단맛없는 사이다 맛이 이런 맛.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 오전약수

2012/12/17 - (경북여행/봉화영월여행) 단군왕검을 뜻하는 박달나무, 우리나라에 박달령이 많은 이유가 있네. 백두대간 선달산 박달령

2013/11/13 -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산 전망대 청량산 축융봉 산행.청량산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도암정은 부산에서 출발해 남안동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봉화로 들어서는 915번 도로를 타고 봉화읍으로 가다 우리 눈에 얻어걸린 정자입니다. 봉화에서 같이 여행할 팀과 봉화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도 조금 이른 것 같아 차를 되돌려 지나쳤던 도암정을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런 누정을 워낙 좋아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도암정 앞으로 사각 형태인 큰 인공연못에 연꽃은 모두 졌지만 넓은 연잎이 푸름을 잃지 않고 연못을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안쪽 귀퉁이에 차를 붙였습니다. 연못을 끼고 돌면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도암정의 날아갈 듯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연못 가운데는 돌로 쌓은 인공섬인 석가산에 심은 큰 소나무로 도암정의 고색창연한 정자의 운치는 한층 더했습니다. 사실 자연을 탐하는 선비는 연못 속의 석가산을 실제 산보다도 더욱 귀하게 여겨 정자를 끼고 있는 연못에는 석가산은 빼놓지 않는 하나의 필수품이라 합니다.





그만큼 운치를 더하고 귀한 존재였던 석가산을 도암정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도암정을 세웠던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의 자연을 보는 심미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은 우리나라 3대 전통정원인 담양 소쇄원, 영양 서석지, 보길도의 세연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못과 누정의 아름다움은 그에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려 그 기억이 뇌리에 오랫동안 가시지 않습니다.









이런 멋진 정원을 가졌던 도암정의 주인인 황파 김종걸이 어떤 선비였는지 많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황파입니다. 선생은 효성이 지극해서 부모님의 공양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합니다. 부모님께서 편찮다면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병간호를 하였으며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과 몸에 좋다는 약초가 있다면 천 리 길이라도 마다치 않고 꼭 구해와서 부모님께 드시게 했다 합니다.

 




어느 날 모친이 몸져눕자 소태산(小太山)에다 하늘에 기도하는 제단을 쌓고 7일 밤낮으로 금식하며 성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약을 구하러 나선 황파 앞에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나 영약이 있는 곳을 안내해서 어머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합니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 집안을 일으켜주길 바라는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여러 번 과거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으며,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벼슬의 꿈을 접고 평소 행하고자 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벗과 교류하며 독서와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암정 편액



도암정 편액인 연비어약(鳶飛魚躍)입니다. 이는 시경에 나온 구절로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속에는 고기가 뛰논다”




도암정 내부 편액



그래서 건립한 정자가 도암정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은 남의 장점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그 대신 상대방의 약점은 비방하지 않으며 선비와는 학문을 논하고 농사꾼과는 농사일로 이야기하는 등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어느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또한, 평생을 몸과 마음을 닦는 수신제가에 힘썼으며 권우를 스승으로 모시고 권두인, 권두경, 이완, 이광정, 김성구 등과 교유하면서 명리는 탐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힘써 안동의 산실인 퇴계학파를 계승하는 선비로서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않았던 정통선비입니다.



도암정 앞쪽은 연못을 내려 보게끔 개방되었다면 삼면은 담장을 둘렀습니다. 출입문은 도암정 좌우에다 사주문을 내어 바깥과 소통하게끔 했습니다. 마을 안쪽에는 의성김씨 종택인 경암헌고택이 있습니다. 도암정은 여기에 딸린 별서라 생각되었습니다.



도암정의 건축은 김종걸이 1650년인 효종 원년에 건립했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홑처마팔작지붕에 다락이 딸린 건물입니다. 건물은 연못에서 바로 축대를 쌓아 그 위에다 대충 바닥을 고르고 주초석에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자연석을 최대한 활용해서 지었으며 앞쪽에다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달아내어 금상첨화(錦上添花)와 같은 광경을 내려다보게끔 지어졌다면 뒤쪽은 가운데에다 한 칸의 마루를 넣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한칸 식 두었습니다. 도암정은 당시의 유림이 찾아와서 시사를 논하고 시를 읊조리며 학문을 교류했던 곳이라 간결하게 꾸며진 정자를 보면서 주인장의 성품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도암정의 유래는 아마 마을의 진입로를 두고 솟은 3개의 바위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 바위를 마을에서는 큰 단지(장독)를 닮았다 하여 ‘단지바위’ 또는 ‘독바위’라 부릅니다. 도암정의 ‘도(陶)’도 ‘질그릇도’이며 이는 단지를 뜻해서 독바위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독바위는 전설이 있습니다. 독바위에 쌓였던 기가 넘쳐나면 천 년에 한번식 바위의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바위라고도 부르는데 독바위의 뚜껑이 열릴 때마다 독바위 속에 살던 황학 한 쌍이 황금알 두 개를 낳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황전마을 독바위의 기를 받으면 머리가 총명해지고, 벼슬길에 나아가고,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다 하여 요즘에도 대학 입시 철이면 바위의 기를 받으려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합니다.



아마 이마을 출신이 정계와 학계, 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이야기가 아닌지... 저도 진즉 알았다면 한번 독바위의 기를 받아 보고 오는 건데 모르고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혹시 다시 봉화여행 기회가 찾아온다면 꼭 독바위의 기를 받고 경암헌고택을 찾아야겠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4호

봉화 도암정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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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여행/봉화가볼만한곳)봉화목재문화체험관. 춘양목의 고장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여행하기


지금이야 철, 시멘트 등으로 목재의 효용가치가 많이 줄어 들어지만 20~30년전까지만 해도 목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예로부터 나무는 겨울에 추위를 이겨주는 땔감에다 더군다나 집을 짓는데 없어서는 안될 재료였습니다. 조선에서는 사계절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솔잎으로 선비들 사이에서는 매난국죽의 사군자와 함께 지조를 상징하는데 소나무를 포함시켰습니다. 당연히 산수화인 한국화에서 소나무가 빠지면 ‘앙코없는 찐방’으로 여길 정도로 생각하여 휘어지고 꺽인 우리 소나무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만큼 중요합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구절로 151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화:054-674-3363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안내

봉화목재문화체험장 휴장일:1월1일, 설날, 추석연휴,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다음날 휴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개장시간:하절기: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1시간 전까지 입장)

동절기:오전9시~오후 5시까지(1시간 전까지 입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관람요금:무료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체험료:재품별 별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단체  체험객은 사전 예약을 꼭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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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해서 봉화 여행길에 먼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찾았습니다. 이곳을 관람하면서 우리 소나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소나무중에서 가장 품종이 우수하고 단단한 소나무를 금강송이라합니다. 금강송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하고 고개를 꺄웃하실것입니다.



예!. 얼마전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습니다. 그때 티비로 불타는 숭례문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 울었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불탄 숭례문은 복원이 결정되었고 복원에 사용된 나무가 우리나라 최고의 소나무인 금강송입니다. 금강송은 단단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금강송 이외에도 지역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금강송은 우리나라 소나무를 대표하며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주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금강송이라 부릅니다.

 


적송도 있는데요. 적송은 꼭 금강산과 동해의 고산이 아니라도 명산에 두루 분포하며 껍질이 붉고 속이 단단하고 가지 끝에 붙은 눈의 색깔이 붉은 소나무를 말하여 흔히 홍송이라고도 합니다. 강송도 있습니다. 이는 금강송을 줄인 말이며 강원도 금강산에서  경북 청송군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동해안에서 곧게 자란 소나무입니다.



금강송의 대표나무인 황장목도 있습니다. 황장목은 이름에서 보듯이 나무의 단면이 창자처럼 생겼으며 속이 붉고 누렀다하여 황장목이라 불렸습니다. 황장목의 고귀함은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황장목으로 관을 짰다고합니다.



그리고 춘양목이 있습니다. 춘양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춘양면을 말합니다. 춘양목은 "춘양역에서 실려 온 소나무"을 뜻하며 이게 춘양목의 유래입니다. 1955년 7월 영암선이 개통되었는데 백두대간 일대에서 임산물과 광산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에서 목재를 벌채하면 춘양역에서 모두 모아 서울과 대도시로 팔려나갔습니다.

 


춘양에서 싣고 온 목재는 집을 짓는 현장의 실무자로부터 품질이 우수한 최고의 목재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나무냐고 물으면 모두 춘양역에서 실어온다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입소문이 나서 질좋은 소나무하면 춘양목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춘양목은 단단하고 속이 붉으며 집을 짓는데 최고의 건축자재가 되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나무가 금강송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춘양목 군락지에서 만났던 나무는 그야말로 쭉쭉빵빵 잘빠진 팔등신의 미녀를 닮아 정말 아름다웠는데 금강송이라 하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이번에 경상북도 봉화팸투어를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곳은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제가 꼭 한번 가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경북관광공사에서 봉화팸투어 목재문화제험장 공지를 보고 접수하여 참가한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택에 봉화군의 우수한 소나무인 춘양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론을 익혔다면 이제는 현장 체험 인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입니다. 망치로 못을 박고 접착제로 나무와 나무를 붙이며 어릴적 공작시간의 재미를 느끼는 멋진 체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과 창평산림욕장 등의 관람은 무료입니다. 그리고 목재를 이용한 만들기 체험은 유료로 운영중입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면적을 보면 29,500㎡, 창평산림욕장은 95,000㎡ 의 규모입니다.



주요시설을 보면 2층 규모에 목공체험실, 공구실, 자재실, 목재도서관, 전시실, 어린이 체험관과 부대시설인 산림욕장, 자생식물단지, 야외교육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연못과 목재 육교, 전망대등이 갖추어져 부산에 생활하는 저로서는 이런 힐링 공간을 가까이 두고 있는 봉화 군민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안내도를 일별하고 계단을 오르면 2층이 목재문화제험장 입구입니다. 출입구옆에 나무로 만든 세발자전거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나무다 보니 조금은 툰탁해 보이지만 그래도 굴러가는게 신기했습니다. 체험관 견학을 온 아이들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습니다. 어른들도 나무 세발자전거가 신기했던지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부러질까 불안했는데 그래도 튼튼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은 모두 나무로 지어졌습니다. 그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입추도 지났지만 바깥의 온도는 찜통 더위로 쉽게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목재로 만든 체험관 내부는 어디서 에어컨을 틀었는지 시원했습니다. 잠시후에 나무가 자연에어컨역할을 해서 시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것을 보면 나무가 그만큼 우리몸에 좋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요즘 통나무집이 인기인가 봅니다. 나도 빨리 돈을 벌어 통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관에는 우리소나무에 관해 많은 연구를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으로 전시중입니다.  섬세하게 나무를 조각한 작품이 전시중인데 나무로 만들지 못하는게 없을 정도로 예술성 높은 전시품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무를 깎아만든 12지신상, 관음보살반가사유상 등 다양한 작품을 구경하고 봉화군의 춘양목에 대한 전시를 보고서야 조금은 춘양목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봉화목재문화체험장 전시실 사진으로 구경하기




조선목수 도편수와 대목장 소목장 알아보기....









춘양목으로 조선 궁궐도 지었네요 


춘양목과 리기다 소나무 수피 모양을 비교하세요


춘양목에 대해 알아보아요??




봉화 이틀째 고택 체험을 했던 만산고택.. 춘양목으로 지어졌다합니다. 





일반 소나무와 춘양목 무엇이 다른가 우리 알아보아요?



당시 춘양목을 실어 날랐던 춘양역 전경. ㅎ 춘양에서 고택체험을 했는데 이곳에 가보지 안았던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봉화목재민속체험관에서 여러가지 나무로 만들기 체험을 해보세요?





















우리나라에 나무 종류가 정말로 많습니다.

100가지 나무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어린이방













체험관 2층 내부를 일단 관람하고 밖으로 나와 창평 산림욕장을 걷기로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안내를 받으며 봉화목재문화체험관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숲속길로 들어갔습니다.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짙은 솔향을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더욱 크게 심호흡 했습니다.

 


창평산림욕장 걷기









청량감이 폐를 가득채웠더니 내 폐가 10년은 젊으진 듯 했습니다. 숲해설가의 싸리나무에 관한 어사박문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나무 숲길을 걸었더니 어느 새 정자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주위 경치는 소나무숲에 가렸지만 그래도 수확을 앞둔 황금들판이 나무 사이로 보였는데 농촌의 가을 풍경이 그림 같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음수대. 봉화목재문화공원은 모든게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봉화목재문화체험관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몸과 마을을 힐링했다면 이번에는 목재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습니다. 목재 체험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2층에서 천장은 물론이고 벽체도 나무를 돌린 복도를 지나 나무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도전할 작품은 ‘손잡이 박스’였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나무를 자르고 깎고 대패를 밀고 하는 게 아니라 요렇게 상자안에 체험하도록 딱들어있습니다. 뚜껑을 개봉합니다. 나이테가 그대로 살아 있는 매끈한 나무판과 재료가 들었습니다. 체험용 나무는 춘양목이 아니고 활엽수 나무라 했습니다.

 



손잡이 상자 개봉 전


손잡이 상자 개봉 후


판자와 못, 접착제와 모양을 낼 여러가지 스티커가 상자에 들어있고 망치는 따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춘양목은 체험하는 사소한 용으로 아마 사용할 수 없겠지요. 일단 판자를 자세히 보면 작은 홈이 나 있습니다. 홈이 있는 3개의 판자에다 망치를 가지고 못을 1/3 정도 들어가게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때릴 때 바른 자세로 때려야만 못이 휘어지지 않고 바로 들어갑니다. 잘못하면 못이 휘어져 망칠 수가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좌우로 세우는 판자에다 손잡이가 되는 둥근 기둥을 끼웁니다. 그리고 나면 접착제를 가지고 못을 박은 반대편 부분과 손잡이가 있는 판자 아래 모서리 부분에다 잡착제 칠을 합니다. 어긋나지 않게 판자를 서로 맞추었다면 이제는 1/3 정도 박은 못을 끝까지 들어가도록 망치로 때려 박습니다.

 


망치로 못대가리를 살살 박으면서 점점 강도로 높여야 휘어지지 않고 끝까지 깨끗하게 박혀집니다. 사실 못질이 쉽지 않습니다. 어긋나지 않게 맞추어가며 판자에다 못을 다 박았다면 손으로 못대가리가 끝까지 잘 들어갔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판자가 서로 겹쳐진 부분을 확인합니다. 모난곳이 없이 깨끗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저는 못대가리는 휘어지지 않고 깨끗한데 판자의 접합부분이 약간 어긋나 사포로 살살 문질렀습니다. 그래도 어긋난 부분은 감출 수 가 없었습니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마음만은 뿌듯했습니다. 내가 잘 만들면 목재 장인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나무로 멋진 만들기 체험을 마무리 했습니다.

 







봉화목재체험장 전경



이곳에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을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나무 육교를 건넜더니 정자가 나왔습니다. 전망대에서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전경이 다보였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오솔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저곳이 뭐지!’하며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



넓은 터에 목재로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범선 같았습니다. 불연 듯 타이타닉이 생각나 “야! 저 꼭대기에 한번 서 보라“며 친구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놀이시설인데 함부로 올라갈 수 없어 눈으로만 구경했습니다. 넓은 잔디 광장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웃고 뛰놀고해도 전혀 다치지 않을 것 같았으며 가족소풍장소로도 최고로 보였습니다.


소풍장소로 최고인 잔디광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출발지로 내려 왔습니다. 이런 곳이 체험료만 빼고 모두 무료관람이라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부모님을 동반하면 참 좋은 곳이며 온가족이 소풍과 체험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곳입니다. 부산에서 온 저도 봉화목재문화체험장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힐링된 기분으로 다음여행지로 고고씽





※이 포스팅은 경북관광공사에서 주최한 '2017 창조지역사업 「나무사랑학교」 봉화 춘양목 팸투어에 참가하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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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의 주봉인 왼쪽의 장인봉과 선학봉, 하늘다리인 구름다리가 연결된 자란봉이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성을 보는 것 같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 전망대 축융봉 산행 개요.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는 코끼리 등에 올라타서는 코끼리 전체를 볼 수 없다. 코끼리의 큰 귀, 긴 코, 찢어진 눈, 꼬랑지등 전체의 꼬끼리를 보기위해서는 몇발 건너 코끼리에서 떨어져야 온전히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금수강산의 산세도 산속에 들어가서는 그 산의 진면목을 다 보지 못하듯이 멀리 물러서서 봐야만 경치에 취해 입이 쩍 벌어지게 된다. 남성적인 기암의 설악산도 설악산의 능선에 올라서서 보면 일부분 밖에 볼 수 없지만 건너편 점봉산이나 주걱봉에서 바라보면 과연 설악이다하며 남설악의 진면목에 감탄을 한다. 이번에 단풍산행을 겸해 봉화군 명호면에 댕겨 왔다. 단풍의 막바지에 찾아가 솔솔하게 재미를 본 오지 산행지로 청량산은 퇴계 이황의 손때가 바위와 골짜기에 안 묻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의 혼이 서려 있는 산이다. 어려서부터 청량산에 들어와 산경에 취해 글을 읽고 살다시피하였다는 '청량산인 이황'. 청량산을 누구보다 사랑하여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뿐”이라 노래하였을 정도로 청량예찬을 하였다. 퇴계이황도 청량산을 보기위해서 이곳 축융봉에 올라 아마 청량산을 보고 진정한 청량산의 모습은 축융봉에서 봐야만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마디로 청량산을 오르면서는 청량산 육육봉의 산 전체를 바라볼 수 없다. 공민왕이 난을 피해 숨어 들었다는 이곳 축융봉에 올라 청량산을 봐야만 이황, 최치원, 김생등 선각자가 이 산을 왜 찾아 들었는지 진정으로 알 수 있다. 청량산과 축융봉은 도립공원으로 연중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우는 곳이다.

 



 

 

청량산 축융봉 정상에서 본 육육봉.

 

 

 

 

광석나루의 낙동강으로 청량산 입구를 흐른다.

 

 

 

 

축융봉 들머리인 청량지문과 탐방안내소.

 

 

홍예식의 나무다리를 건넌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도립공원 전망대 축융봉 산행 경로.

 

청량산 축융봉 산행은 안동쪽의 왕모산과 입석을 지나 공민왕당 입구인 '산성등산로 입구' 청량지문이 있는 탐방안내소, 그리고 윗청량골의 오도마재에서 두리봉을 거쳐 축융봉 산행을 하는 4곳이 전부이다.  이번 축융봉 산행은 봉화군에서 새로 정비한 산행로를 따라 올라간다. 청량지문에서 축융봉으로 날등을 타고 올라 공민왕당 입구인 산성 등산로 입구로 하산을 하여 청량지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잡았다. 청량산 축융봉 산행경로를 보면 청량산도립공원 들머리인 청량지문 일주문~ 탐방안내소~정자~전망대~덱 전망대~643m봉~축융봉,공민왕당 삼거리~축융봉~밀성대,공민왕당 갈림길~청량산성 전망덱~청량산성~밀성대~공민왕당, 밀성대 갈림길~청량풍혈~산성 등산로 입구 도로. GPS 산행거리는 약 6.5㎞며 산행시간은 3시간 그리고 휴식과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4시간이상 넉넉히 걸린다.

 

 

 

 

 

 

 

 

 

 

 

청량산 관리사무소와 박물관이 있는 광석마을

 

 

 

 

 

 

전망덱.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 축융봉은 청량지문이 들머리...

 

청량산 산행은 거의 모두 입석마을을 올라 정상인 장인봉을 거쳐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지만 축융봉은 청량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낙동강에 걸린 청량교를 건너면 바로 청량산의 입구격인 일주문 '청량지문'이 서 있고 이곳이 축융봉의 들머리다. 탐방안내소 옆에 '낙동강 예던길' 표지석이 있고 그 뒤쪽 홍예식 목조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다리에 '축융봉 3.1㎞' 작은 안내판이 걸려 있다. 곧 정자를 지나 30m쯤 가면 바닥에 놓인 기왓장에 직진은 청량폭포로 가는 ‘예덴길’ 방향이고 오른쪽이 축융봉 방향이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이번 축융봉 오름길은 이정표에 약 3.1km 로 나와 있다. 거리의 중간쯤인 1.6km까지는 덱으로 된 계단이 많은 된비알 길이다. 그러나 남은 1.5km의 거리는 정상까지 산길이 완만하여 숨을 고르며 걸을 수 있다.

 

 

 

전망덱에는 청량산 장인봉과 선학봉이 보인다.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성 모습, 축융봉 산행.

 

처음부터 사선을 그리며 갈지자로 능선에 올라선다. 왼쪽으로 틀어 능선의 덱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열린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얼마나 급경사길인지 올라온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봉화쪽에서 흘러 내려온 낙동강이 산허리를 도려내며 흘러가는 모습과 청량산 주차장과 상가가 있는 광석마을의 모습이 성냥 곽처럼 작게 보인다. 다시 앙팡진 바위에 급경사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더욱 힘이 부친다. 지금이야 단풍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겠지만 산행때에는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선홍빛 단풍나무에 역시 가을의 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왼쪽으로 암봉을 둘러 쓴 청량산의 바위봉우리가 우람한 남성의 근육을 연상시키듯 보이기 시작한다. 청량지문에서 20분이면 벼랑위에 툭 불거지게 나온 전망 덱에 닿는다. 부산에서 보는 낙동강의 강폭을 보다 이곳에서 보는 강은 넓은 하천의 모습이다. 막상 낙동강이라하니 ‘에게게, 요게 낙동강’하게 된다. 이물이 흘러 부산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낙동강이 됨을 부인할 수 없다.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과 선학봉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른 봉우리는 능선을 더 올라가야만 볼 수 있을 것 같다.

 

 

 

 

 

 

 

 

 

축융봉 정상에서 본 청량산의 모습. 청량산 전망대를 실감한다.

 

 

청량산 축융봉(850m) 정상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 축융봉 정상은 두개의 암봉 청량산 전망대. 

 

전망덱에서 돌아나와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여 다시 덱 계단을 오른다. 층층의 바위가 걸려 있어 계단이 많이 놓여 있다. 그만큼 경사가 가팔라 고도를 팍팍 높인다. 20분 뒤 산길은 경사를 눕히며 사면을 비스듬하게 올라간다. 능선에 걸린 코팅 안내판에 '축융봉 1.6㎞' 를 알린다. 정상까지 절반은 올라 왔다. 지금부터는 산길이 올라온 것에 비해 완만하다. 축융봉까지 거의 오르막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하게 이어진다. 왼쪽 건너편에 우뚝 선 암봉이 축융봉정상이며 짙은 숲으로 인해 정상까지는 조망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30분쯤 걸어면 청량산성의 흔적인 돌이 능선에 깔려 있고 그 위로 이번 산행에서 가장 많은 단풍나무가 화려한 무늬를 그려내고 있다. 츅융봉 정상부를 이루는 바위벼랑이 정면에 서 있고 오른쪽으로 돌면 삼거리가 나온다. 축융봉에 올랐다 되돌아와 오른쪽 공민왕당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축융봉 정상은 왼쪽길, 곧 두 암봉 사이로 철계단을 오른다. 정상은 오른쪽 암봉으로 두 암봉이 높이가 비슷하다. 정상석과 청량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육육봉의 청량산 봉우리와 지명등이 상세하게 나와 있어 청량산의 모습을 짚어가며 하나하나 눈에 담을 수 있다.

 

 

 

향로봉과 연화봉의 모습

 

 

 

 

 

 

 

 

 

볼록한 청량산 축융봉 정상의 모습

 

 

밀성대, 공민왕당 갈림길.

 

 

금탑봉 아래 응진전의 모습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청량산성을 따라 밀성대로 하산, 청량산 축융봉 산행.

 

하산은 올라온 철계단을 내려가 삼거리에서 왼쪽 내리막으로 간다. 펑퍼짐한 안부에서 다시왼쪽 임도로 내려간다. 직진 방향도 희미하지만 산행리본을 볼 수 있다. 왕모산과 윗청량골의 오마도터널 방향이다. 청량산성의 흔적으로 초입의 임도길 왼쪽으로는 나무가 없어 건너편 청량산의 산세를 보며 걸을 수 있다. 100m 가면 공민왕당과 밀성대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산길은 갈라진다. 공민왕당을 보고 바로 하산을 하느냐 또는 청량산의 산세를 하산 내내 즐기며 밀성대를 보고 하산을 하느냐. 필자는 공민왕당은 포기를 하고 청량산 조망을 선택하여 왼쪽 밀성대 방향으로 택했다. 잠시 뒤 무덤이 있는 곳에서 다시 밀성당, 공민왕당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역시 왼쪽의 밀성대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철탑을 지나며 청량산성 안내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다. 청량산성이 깔끔하게 복원되어 한결 보기가 좋다. 이곳에 덱으로 청량산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 한번 더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청량산을 감상을 하며 급경사의 나무 계단을 내려간다. 멀리 밀성대의 모습이 자그막하게 보인다. 복원된 성벽을 걷기도 하고 덱 계단을 25분 내려가면 벼랑위에 걸려 있는 밀성대에 닿는다.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멋들어진 정자가 놓여 있다. 이곳 밀성대는 홍건적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온 공민왕의 전설이 남아 있다. 산성을 쌓을때 다섯 마리의 말이 다닐 정도의 넓은 길인 오마대와 군율을 어긴 병사를 이곳에서 밀어 떨어트려 처형을 하였다는 밀성대로 이곳에서 밑으로 내려다 보니 오금이 저릴정도로 찌릿하다.

 

 

청량사의 모습

 

 

 

 

금탑봉 아래 절묘하게 자리잡은 응진전의 모습

 

 

청량산성 전망덱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청량사와 응진전도 조망, 청량산 축융봉 산행.

 

하산 길은 밀성대를 감아도는 성벽 위를 따라 ‘U'자 모양으로 따라간다. 성벽 끝 지점에 왼쪽 성벽 밑으로 내려서면 덱 계단이다. 덱을 이용하여 밀성대 벼랑을 돌아간다. 왼쪽으로 까마득하게 치솟은 바위를 지나 산성 의 돌을 밟다가 다시 덱 계단을 내려서길 반복한다. 10여분이면 산성을 완전히 내려서고 계곡가 갈림길 임도다. 오른쪽은 공민왕당 축융봉 방향이며 하산은 왼쪽 방향이다. 여름철 찬바람이 나온다는 풍혈을 지나면 곧 ’산성 등산로 입구‘ 표지판이 서 있는 도로에 내려선다. 사실상 산행은 여기서 끝이지만 산행 들머리였던 청량지문까지는 왼쪽 도로를 따라 간다. 입석, 선학정을 차례로 지나 30분쯤 내려가야 온전히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다.

 

 

 

 

밀성대. 공민왕이 군율을 어긴 병사를 절벽으로 밀어 죽게하였다는 밀성대.

 

 

밀성대에서 본 청량산계곡

 

 

 

 

 

 

축융봉공민왕당, 산성 등산로 입구 갈림길

 

 

 

 

 

 

여름에 찬바람이 나온다는 청량풍혈

 

 

산성 등산로 입구 도로.

 

 

밀성대 벼랑의 모습.

 

 

입석, 청량산 산행 들머리

 

 

밀성대.

 

 

 

 

☞(경북여행/봉화여행)봉화 청량산 축융봉 산행 교통편.

 

대중교통은 부산에서 안동이나 봉화로 가야한다. 부산 노포동 동부버스터미널에서 안동 가는 버스는 오전 7시(첫차), 7시45분, 8시30분, 9시20분, 10시10분에 있고 청량산행 67번 버스는 오전 5시50분, 8시50분, 11시50분, 오후 2시50분 등에 있다. 청량산에서 안동으로나오는 버스는 오후 1시20분, 4시20분, 6시40분(막차)에 있다.

봉화를 들머리로 할 경우에는 안동에서 하루 8회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하여 봉화터미널로 간다. 이곳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오전 6시20분, 9시40분, 오후 1시30분, 5시40분에 있고, 청량산에서 봉화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2시30분, 6시20분에 있다. 안동에서 부산행 버스는 오후 8시30분(막차)까지 대략 5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운전은 대구부산고속도로에 이어 경부고속도로를 잠깐 타다가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남안동IC에서 내려 안동시청을 지나 35번 도로를 타면 청량산으로 간다. 네비에 청량산으로 입력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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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봉화여행)물야면 탄산수 오전약수.청송의 달기약수와 같은 탄산수

 

세상은 요지경이다. 어찌하면 물이 탄산수일까?.

전국에 탄산약수는 여럿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탄산 약수터는 세살먹은 어린이도 안다는 달기약수터일 것이다. 아마 전국의 탄산약수터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탄산약수터가 청송의 달기약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산과 가까이 있는 경북 청도 구룡산 아래에도 탄산약수터가 있다. 이곳도 암반으로 철분이 많이 함유된듯 주위에 붉은색을 띠고 있는 바위에서 솟아 오른다.

 



 

 

  ☞(경북여행/봉화여행)물야면 탄산약수 오전약수. 철분이 함유된 탄산수

 

그리고 이번에 선달산 산행을 하고 하산길에 우연히 만난 오전약수이다. 이곳도 탄산약수로 다른 탄산약수 처럼 철분이 함유되어 쇳물의 느낌이 난다. 그 영향으로 약수터 주위는 산화하여 붉은색을 띠고 있다.

 

 

 ☞(경북여행/봉화여행)물야면 탄산수 오전약수. 보부상에 의해 처음 발견된 오전약수

 

이곳의 역사도 꽤 깊다. 조선 8대 임금인 성종(1470~1483)때 이곳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의 서벽장을 오가던 보부상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이곳은 예로 부터 쑥밭으로 불렸다.  장터를 찾아 다니며 생활하던  보부상 곽개천은 피곤한 나머지 이곳 쑥밭에서 단잠을 청하였는데 그 때 꿈속에서 산신이 나타나 이곳에 만병통치의 약수가 있다고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지는게 아닌가. 눈을 부비면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약수가 솟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쑥밭약수로 불렸다한다. 선달산과 옥돌봉 사잇의 박달령과 옥돌봉과 문수산 사이의 주실령을 넘어 다니던 보부상과 민초들의 목을 축여주는 약수였다.

 

 

 

  ☞(경북여행/봉화여행)물야면 탄산수 오전약수. 닝닝한 사이다 맛

 

특히 이 약수는 성종때에도 전국의 약수물맛 중에서 가장 으뜸이였다한다. 사이다  같이 톡 쏘는 탄산수는 맛을 보면 닝닝하다. 흡사 김빠지고 단맛이 나지 않는 사이다 맛이라 할까. 그래서 옆에 무인으로 엿을 판매하는 가판대가 놓여 있다. 이곳 오전약수는 지하 암반 150m에서 올라 온다고 한다. 피부병과 위장병에 효과가 좋다고하여 연일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하니 혹 이곳으로 여행을 가실 분은 함 들러 보세요. 약수는 공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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