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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영천여행)수려하고 예술성이 돋보이는 보물 제513호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과 환구세덕사 여행


영천시 임고면에는 고려말 충과 절의를 상징하는 삼은 중 한 분인 포은 정몽주를 배향한 임고서원이 있습니다. 

임고서원을 둘러보고 찾았던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 영천선원동철제여래좌상은 선원동에 현재 선정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습니다. 

선원동 앞으로 자호천이 흘러 임고서원의 조옹대를 휘감으며 흘러갑니다. 

단애를 핥으며 흐르는 그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조선 인조 때 정호례는 낙향하여 도연명의 시 “도화원기”의 신선이 산다는 ‘도화선곡’에서 그 음을 취했다고 합니다.

 




선정사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 주소: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770

 선정사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 전화:054-336-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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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풍광이 도연명의 무릉도원과 비견될 만큼 아름다워 신선이 산다는 선원동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절벽이 휘감았고 야트막한 산이 병풍을 두른 한적한 마을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도 한번 찾았던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선정사 경내 텃밭에서 보살과 스님이 밭일하고 계시기에 인사하고 대웅전 안의 철불을 친견했습니다.




오래전에는 선원동 마을에 대사찰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폐사되어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고 하니 그저 애석할 뿐입니다. 

그 당시 사찰의 대웅전에 안치되었을 법한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은 농사일하던 주민이 자신의 논에서 처음 발견하였습니다. 

선정사 입구의 환구세덕사가 모두 옛날 절터로 추정되며 그 위쪽에다 절을 세우고 철불좌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의 높이는 151㎝로 불두높이는 49㎝이며 머리카락이 라면처럼 꼬불꼬불하게 보입니다. 

나선형의 머리카락에다 가운데 상투같이 봉긋하게 솟았는데 이를 육계라 합니다. 

이마 위에는 고려 불상의 특징인 반달모양을 표현했으며 눈썹이 크고 길며 눈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코, 입, 인중, 양 볼이 깊게 팬 보조개 하며 얼굴의 윤곽이 수려한 조각남을 보여주는 듯 뚜렸합니다. 

목에는 삼도를 그렸으며 넓은 어깨와 당당한 가슴, 결가부좌한 다리 등에서 근엄하며 비례와 균형미가 잘 맞는 불상이었습니다. 

몸에 걸친 법의는 우측 어깨를 드러내며 몸에 밀착되게 흘러내렸습니다. 

균형 잡힌 몸매를 잘 나타내었고 결가부좌한 양다리 사이로 부채꼴 주름을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불상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영천선원동철조여래좌상은 대좌와 광배, 불상의 양손은 발견 당시부터 없어져 양손은 복원한 상태입니다.

철불의 제작과정을 보면 여러 조각으로 주조하여 땜질로 붙인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흡사 누더기를 걸친 가사 같았습니다. 

통일신라 말기에 많은 철불 조성이 이루어졌으며 그 섬세한 기술을 그대로 이어받아 제작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1969년 7월 보물 제513호에 지정



선정사 입구의 환구세덕사는 숙종 46년인 1720년 정세아의 후손이 문중의 자제를 강학하는 장소로 세워졌습니다. 

충효각, 충이당, 추원당, 환고정사 등 여러 건물이 지어졌으나 현재 서당과 사당은 복원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세아와 아들 정의번이 의병인 창의정용군을 조직하여 영천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하였습니다. 

부자는 다시 경주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버지는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으나 아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아버지를 찾아 적진으로 다시 뛰어들었다가 전사하였습니다. 

환구세덕사는 이들을 배향하는 추모공간입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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