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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경주남산여행)동남산 서출지와 이요당, 연과 베롱나무가 꽃이 필때 최고 이름값을 한다는 1500년된 서출지와 조선시대 정자 이요당 여행. 


봄이 시작될 무렵인 4월에 다녀왔던 양산 경주여행 이번 포스팅은 동남산의 서출지와 이요당입니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오래전에 가을이 시작될 때 한번 여행을 했으며 이번의 봄 여행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서출지와 이요당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


2016/04/26 - (경주여행/남산여행)염불사지 삼층석탑. 은은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린다는 경주 남산리 염불사지 삼층석탑 여행하기.


2011/01/12 - (경주여행/남산 신선암 마애불)신선암 마애불에서 기도하는 보살님


2012/09/24 - (경주남산여행)보리사 마애석불. 잔잔하며 엷은 미소가 아름다운 보리사 마애석불


2012/11/01 - (경주남산여행)살인미소 짓는 부처님의 모습이 경주남산 보리사 석불좌상으로 태어나다. 미륵곡석조여래좌상


2013/02/21 - ☞(경북여행/경주여행/남산여행)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신선이 빚었을 것 같은 우아한 모습




 

처음 서출지를 찾았을 때는 여름 뒤라 그런지 연잎이 서출지를 완전히 뒤덮고 있어 여름철 신록의 맛을 완전히 느꼈다면 이번 여행은 두꺼운 이불 같은 묵은 낙엽을 완전히 털어내고 서출지에 새봄에 맞는 새 이불을 덮을 준비를 하는 듯 연못이 말끔히 정돈된 상태였습니다.


 

서출지는 까마귀 전설이 있습니다. 왜 서출지에 까마귀 전설인지 궁금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신라 21대인 소지왕 때입니다. 어느 날 소지왕이 궁 밖을 나왔다가 어쩌다 보니 남산 아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는데 쥐가 소지왕에게 하는 말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쪽을 따라가라.” 하였습니다.


 

 

 

소지왕의 명을 받은 신하는 까마귀를 따라가는데 서출지 인근에서 멧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그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주면서 소지왕에게 꼭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소지왕은 “봉투를 보면 두 명이 죽을 것이요 만약에 보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는 글을 보고 소지왕은 생각하기를 편지를 보고 두 명이 죽는 것보다 차라리 보지 않고 한 명이 죽는 게 나은 생각이라며 봉투를 뜯어보지 않을까 했습니다.


 

 

 

신하가 봉투를 보고 말하기를 “두 명은 백성을 말하며 한 명은 임금을 뜻한다”며 소지왕에게 봉투를 뜯어 볼 것을 고하였습니다. 소지왕은 봉투 안의 편지에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인 ‘사금갑(射琴匣)’을 보고 궁궐로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 통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악’하며 외마디 비명이 나 통 안을 보니 궁녀와 승려가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소지왕은 그들을 잡아 참형시켰고 서찰을 받아 임금의 목숨을 구한 연못이라며 서출지(書出池)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서출지에는 까마귀가 임금의 목숨을 구했다며 정월 보름에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 까마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삿밥을 주는 풍습이 생겼는데 이는 ‘오기일(烏忌日)’로 지금도 경주에는 그 풍습이 남아 있다 합니다.


 

 

서출지는 임씨 집성촌인 경주시 남산동에 있습니다. 연못의 둘레는 약 200m이며 조선 현종 5년(1664년)에 임적이라는 분이 서출지 연못에다 ‘ㄱ'자 모양을 한 정자를 짓고 이요당 현판을 걸었는데 남산과 연못의 운치가 너무나 좋아 그래서 이요당(二樂堂)이라 했던 것 같습니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연꽃과 꽃이 피면 백일 동안 간다는 백일홍이 필 때면 최고의 이름값을 할 정도로 볼만합니다. 그 시기에는 서출지가 전국 사진동호인의 출사 일 번지로 몸값이 제일 비싸집니다. 그때쯤 저도 삼각대를 들고 다시 한 번 서출지와 이요당 여행을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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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의 경내로 들어설여면 반드시 이문을 통과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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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를 보면 명산에 대찰임을 실감할 것이다.왼쪽으로 천황산의 암봉이 오롯하고 우측으로 재약산에 걸린 암봉이 웅장하며 문수봉과 관음봉이 나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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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향로산과 재약봉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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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에서 본 표충사이며 범종루 우측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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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종루 좌측으로 붓끝형상의 문필봉도 확인된다. 표충사에서 본 필봉 끝에는 힘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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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본 필봉이다. 이리보아도 붓끝, 저리보아도 붓끝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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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걸린 필봉과 백일홍이 더욱 조화를 이루며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는 백일홍이 지금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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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통과하면은 대가람 표충사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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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귀를 쫒는다는 좌청룡 우백호 격인  수문장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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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467호 표충사 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7.7m의 삼층석탑이다.


흔히 사명당 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시 비석에서 땀을 흘리며 앞으로의 변고를 예고해주는 표충비각, 보통 그 땀흘리는 표충비각이 현 재약산 표충사에 있는 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표충사 어디를 둘러 보아도 땀흘리는 비석은 없었다.

땀흘리는 비석인 표충비각은 밀양시 무안면에 있다. 사명대사의 출생지인 무안면 소재지에 자리잡고 있어 땀흘리는 표충비각까지는 동서로 극과극을 달리고 있다.

여기 재약산 표충사는 경남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번지이다.
654년에 신라진덕여왕때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죽림정사란 이름으로 산문을 처음 열었다.
 
천황산과 이웃한 재약산 맞은편으로 향로봉, 마지봉, 법수봉, 우측은 재약봉, 문필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지장봉, 미륵봉,사자봉이며 우측으로는 수미봉, 화엄봉, 미타봉, 중앙에는 사자봉, 전방에는 노적봉과 백마봉이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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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사진은 영정약수로 신라 흥덕왕 4년에 셋째왕자가 불치병인 나환에 걸여 재약산의 산초와  약초 그리고 영정의 샘물로 완치를 하였다하여 영정사로 불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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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전 안의 석가모니불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대광전은 표충사 중심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안치하고 동쪽으로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 서쪽으로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신라시대에 처음 건축되었지만 전란등으로 소실되어 1929년에 다시 지어졌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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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년 신라 흥덕왕4년에 인도의 고승인 황면선사께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가져와 주석하였다. 그리고 흥덕왕의 셋째아들이 나환에 걸려 재약산 죽림정사에서 영정의 샘물과 재약산의 약초를 먹고 치유를 하니 임금이 기뻐하며 영정사란 절이름을 하사하였다한다.

그 후 1596년 선조 29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왜적이 퇴각을 할때 사명당은 영정사에서 승병을 모집하여 사자평에서 승병 훈련을 하였고 전장에 나가 왜적과 싸웠다.

그 후 무안면의 표충사당에 있던 서산, 사명, 기허 삼대선사 영정이 영정사로 옮긴후 표충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재약산표충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표충사를 둘러 싸고 있는 산을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불여지고 있다.

그러나 산꾼들에게는 재약산 사자봉, 수미봉으로 더 많이 불여지고 있다. 천황산이 일재시대때 일본인이 일본천황을 의미하며 붙였다 하여,밀양시에서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으로 명칭변경을 건의하였지만 그이전에도 천황산으로 불였다고 한다합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천황산 재약산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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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사진은 철확으로 직경 113.6cm철제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식사준비를 할 때 국 또는 밥을 하는 대 사용되었어며 목재함도 너비85cm 길이597cm인 목재함 역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밥을 담는 용도로 사용 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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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과 우측 팔상전은 유형문화재 자료141호로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을 한 탱화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이라 합니다. 팔상이란 하천, 탁태,강탄,출가, 항마, 성도, 전법륜,입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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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통일신라시댜 비석으로 추정되며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이 500여년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대중100여명이 뜻을 모아 개보수 한다는  기념비석이라하며 우측은 표충사 일주문이다.

재약산 표충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은 표충사 홈페이지로
http://www.pyochung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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