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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충절의 상징인 중국의 백이와 숙제 형제 못지 않다는 군북 어계 조려 생가 여행. 어계고택


함안 군북면의 어계생가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어계는 조려(1420~1489)선생의 호입니다. 

자는 주옹이며 함안에서 출생했습니다. 





충절의 상징 어계생가 주소: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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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계생가(어계고택)를 여행하기 전에 먼저 

어계 조려 선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세조가 계유정란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왕권을 빼앗자 

이에 항거한 분들중에 사육신과 생육신이 있습니다. 



생육신중 한분이 어계조려선생이며

함안에 낙향하여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어계조려는 한달에 3번씩 왕복 천리길인 영월의 단종을 찾았습니다.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실패하여 사사되었고

 단종에게도 책임을 물어 시약을  받고 승하했습니다. 


  


조려선생은 단종의 승하소식을 듣고는 그길로 말을 달렸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말은 느린것 같고하여 하림리를 지나면서 

채찍으로 말을 때리며 독려하였습니다.



하림리 서산사 입구를 흐르는 모로천에 큰 바위절벽이 있습니다. 

평소에 어계선생이 낚시로 소일을 하던 곳으로 말채찍으로 

때리며 달렸다하여 고마암(叩馬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계선생은 청령포에 도착했으나 전날밤 많은 비가 내려 

 불어난 강물로 도저히 건널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해서 어계 조려선생은 강으로 뛰어들려는 찰라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 어계선생을 등에 태우고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다행히 단종에게 신하의 예를 다하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호랑이는 그때까지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호랑이의 등을 타고 강을 무사히 건너왔는데 

영월읍지 등에 ‘호배도강전설(虎背渡江傳說)’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두임금을 섬기지 않은 충절은 호랑이도 알았나 봅니다. 

조선 숙종은 단종을 노산대군으로 추봉하면서 

조려 선생을 두고는 중국 고사의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캐 먹다가 고사리도 주나라 꺼라는 말을 듣고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 형제 못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뒤부터 어계생가와 마주보고 있는 쌍안산과 쌍봉산의 

두봉우리를 백이산과 숙제봉으로 바꿔 불렀습니다. 




생육신으로 단종과 군신의 의리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은 

어계 조려선생은 누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조려 선생의 할아버지인 전서공 조열선생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어계생가  오른쪽 처마 아래에는  '금은유풍(琴隱遺風)'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이성계가  역성 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습니다.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공민왕때 벼슬이 공조전서에 올랐으며 

거문고와 시, 서화에 아주 능한 분이었습니다.




조열이 달밤에 거문고를 타면 몇 리 밖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입니다. 



조열은 공민왕에게 이성계의 병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축출당해 낙향하여 원북에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어계생가 사당영역



이성계가 정권을 잡은 다음 4년만에 

경복궁을 완공하고 낙성연회를 성대하게 열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열을 불러 거문고를 타 달라 하였으나 

공민왕이 여러 번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다며 거절했습니다.



또한, 태조의 뒤를 이은 정종이 부왕인 태조의 어진을 부탁하였으나 

공민왕의 어진도 거절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그릴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화가 난 경종은 조열을 옥에 가두었고 태조가 

소식을 듣고는 석방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태조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충신은 알아보았던거 같습니다. 

'금은유풍'은 공민왕에 대한 조열 선생의 굳의 절의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어계고택은 대문채와 원북재, 사당영역으로 나눕니다. 

대문채는 3칸이며 가운데 솟을 대문 양쪽에 방을 넣었습니다. 

어계고택의 주건물은 원북이며 

앞면 4칸에 옆면 2칸인 일자형건물로 단순하게 지어졌습니다. 



부엌은 없고 가운데 대청과 좌우로 온돌방만 

갖추어져 있어 재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원북재 뒤편의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이며 국왕이 하사한 

향로와 어계선생이 사용하단 죽장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계고택 주차장에서 백이산과 숙제봉이 바로 보입니다.   

어계조려 선생이 태어난 곳을 어계생가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어서 어계고택으로도 부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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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여기는 중국관광지가 아니예요? 함안 군북 하림리 백세청풍 고마암. 어계 조려 고마암


방가방가

함안군 군북면의 어계고가와 채미정을 보고 되돌아 나오면서 

들어갈 때 보지 못했던 바위절벽이 오른쪽에 보였습니다. 

그냥 지나갈까 하는데 일행이 바위가 어마무사 하다며 

저곳은 꼭 보고가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차를 오른쪽으로 틀어 다리옆에 주차 하고 내렸습니다.

 




함안 생육신 어계조려 선생 백세청풍 바위 고마암 주소: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산 47-1 서산사 입구

 



2019/12/11 -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의 역사를 한눈에 말이산고분군의 함안박물관 여행. 경남함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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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중간쯤에 힘이 넘치는 필체인 백세청풍(白世淸風)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백세청풍은 함안 채미정 좌우에 큰 글씨로 

‘백세’,‘청풍’ 현판이 걸렸던 것을 보았던 터라 

그곳과 관계가 있나 생각했습니다.

 


이 백세청풍이 각자된 바위 아래 개울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을 찬탈하자 이에 격분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거하던 조려선생이 낚시하며 지냈던 곳입니다. 

어계란 호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어계선생이 낚시를 하며 지냈던 곳인 바위절벽이

 고마암(叩馬岩)이며 고바우로도 불립니다. 

고마암의 고(叩)자는 특이하게도 두드릴 고(叩)자를 쓰고 있습니다. 

왜 두드릴 고자의 고마암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어계 조려선생은 단종(노산군)이 영월에 유배되자 

이곳 군북에서 천리길을 마다하고 

1달에 3 번씩이나 찾아가서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 뒤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가 탄로 나면서 

함께 사약을 받아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계선생은 그길로 말을 달였는데 마음은 급하고 

말은 굼뜨는 것 같았고 이곳을 지나면서 

더 빨리 달리라면서 말에게 채찍질을 했다합니다. 

그 뒤부터 고마암 고바우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어계선생은 밤낮으로 말을 달려 청령포에 도착했습니다.

 



선생은 강을 건널 수 없어 발발 동동 구르다가 

헤엄을 쳐서 건너려고 강물로 무작정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호랑이가 나타나 선생을 등에 태우고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고 

단종에게 사배를 올리며 마지막으로 신하의 예를 갖출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선생을 기다렸다 다시 태우고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는 

호배도강전설(虎背渡江傳說)이 영월읍지 등에 실려 있습니다.

 


고마암 바위절벽의 위용은 한마디로 대단했습니다. 

높이는 20~30m, 폭은 100m 쯤 되며 10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 했습니다. 

지금은 갈수기라 그런지 개울을 흐르는 물은 별로 많지 않지만 

여름철에는 물놀이를 즐기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충과 절의의 상징인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고마암에서 느낄수 있었습니다. 

고마암의 '백세청풍' 뜻을 풀이하면 주자가 백이숙제 형제를 칭송하면서 

쓴 글로 직역하면 “백대에 부는 맑은 바람”을 뜻합니다.



이는 어계 조려 선생의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단종에 대한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맑고 높은 선비의 절개가 

후대에도 귀감으로 삼아라는 그런 의미가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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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구미여행)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야은 길재를 추모 하는 정자.

 

예로부터 선비의 충절을 비유할 때 거론되는 인물이 백이와 숙제입니다. 중국 상나라 말기때 주나라가 반란을 일으켜 상나라를 토벌하자 백이와 숙제 형제는 상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릴 수 없다며 고죽군의 영주로 받는 녹봉을 거부하고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왕미자가 백이와 숙제 형제를 보고 “주나라에서 주는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그대들은 어찌 주나라에서 나는 고사리를 먹느냐”는 말을 듣고 그 날부터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는 고사입니다.

 

 

 

 

흔히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지킨 분들을 백이숙제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는데 구미에 가면 도립공원 1호인 금오산이 있습니다. 금오산 입구에 그림같은 풍경으로 남아 있는 건물이 고려 말기의 충신인 야은 길재(1353~1419)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채미정 입니다.

 

 

 

 

고려말의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함께 고려의 충절을 끝까지 지켜 고려삼은(高麗三隱)이라 부릅니다. 야은 길재는 1386년인 고려 말에 벼슬길에 나가 성균관 박사와 문하주서에 오릅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이씨조선이 들어서자 그는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불사이충”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선산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고려에 대한 굳은 절의를 지켰습니다.

 

 

채미’란 중국의 충신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며 연명하였던 고사에 비유한 말로 1768년인 조선 영조 44년에 ‘채미정’의 정자를 세웠습니다.

 

 

금오산 산행을 위해 찾아간 이날은 마침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을 60년만에 개방하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미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던 정상을 시민에게 되돌아 오는데 강산이 여섯 번 변하는 긴긴 세월이라 그런지 더 큰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날씨 또한 현월봉 정상이 열리는 것을 반기는 지 너무 맑고 화창한 가을날 찾은 채미정.

 

 

 

채미정 돌다리를 건너는데 마침 가을 경치와 함께 어울리는 사진 전시가 열렸습니다. 사진을 구경하면서 걸어가니 채미정 입구인 ‘흥기문’ 앞에 새신랑 새신부 한쌍이 고은 한복을 입고 붉은 단풍과 함께 웨딩사진을 담는 모습을 보고 "축하합니다"하며 채미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채미정은 오른쪽에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는 정자입니다. 정면3칸에다 측면 3칸으로 가운데 1칸의 방을 만들고 사방은 마루를 넣은 특이한 구조의 팔작지붕형태입니다.

 

 

 채미정 뒤로는 경모각과 유허비각이 있습니다. 경모각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의 ‘어필오언구’의 해석이 있어 옮겨 봅니다. “금오산 아래 돌아와 은거하니/ 청렴한 기풍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하심은/ 후인들에 절의를 권장함일세”

 

 

 

 

 

 

 

 

 

 

 

 

 

 

 

 

2014/11/09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90도 각진 모서리를 깎아 섬세함이 돋보이는 금오산 마애보살 입상.

 

2014/11/08 - (경북여행/구미여행)금오산 대혜폭포. 수량이 많은 금오산 대혜폭포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있어요????

 

2014/11/07 - (경북여행/구미여행)구미 금오산 오형돌탑. 어느 할배의 가슴아픈 손자사랑이 만든 금오산 오형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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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의 어계 조려 선생의 충절에 비유된 백이산~숙제봉~오봉산 개요.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백이와 숙제는 형제로서 은나라 고죽국의 왕자였다. 불사이충의 정신으로 은나라가 망하자 그는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을 하는데 왕미자가 찾아와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 고사리는 어찌 먹느냐며 타박하니 백이와 숙제는 그 길로 고사리도 마다하며 꿂어 죽었다. 우리는 불사이충의 정신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충절을 지킨 분을 백이숙제에 빗대어 말한다. 함안 군북에는 조금은 특별한 이름의 산인 백이산과 숙제봉이 있다. 이곳에 생뚱맞은 백이산 숙제봉이 있어 산행계획을 세웠는데 이곳 군북 출신의 어계 조려 선생의 충절 때문이라 한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조려선생은 세조가 왕권을 찬탈하여 단종을 폐위시키는 것에 항거하여 그는 낙향을 하여 독서와 낚시로 은둔하며 끝내 출사의 길로 나가지 않았던 사람으로 그의 충절에 비유하여 백이산과 숙제봉이 되었다. 그 만큼 굳은 충신의 절개가 묻은 산이라 두 봉우리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면에서 솟구쳐 오른 것처럼 불끈 솟았는 모양으로 어계 조려선생의 충절을 느끼게 하고도 남을 산이다.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불사이충의 어계 조려 선생의 충절에 비유된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경로.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은 함안군 군북과 진주시 이반성면에 경계를 하고 있다. 산행 경로를 보면 군북역(KTX)~백이산 등산로 입구~백이산 둘레길 갈림길~백이산 정상~안부 삼거리~샘터~명동 공룡 발자국~(안부 삼거리)~숙제봉~오봉산 갈림길 이정표~유동고개~임도~제산령~465m봉~정상밑 무덤 갈림길~오봉산~(정상밑 무덤 갈림길)~쇠단산~임도~폐광~얼음굴가든~얼음골 버스정류장~사촌리~군북역으로 돌아오는 원점산행이다. GPS 산행 거리는 약 16km안팎이며 산행시간은 5시간30분이 소요된다. 300m높이에서 500m 높이까지l 오르내려 많은 산행 시간이 소요되며 체력 소모도 많다. 휴식과 식사등을 포함하여 산행 시간은 넉넉히 잡는게 좋다.

 



 




 




 




 




 




 



☞(경남여행/함안여행)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은 군북역에서 시작하는 열차 이용 산행.

경전선의 복선화로 새로 문을 연 KTX 군북역 승강장에서 나와 지하도를 빠져나가면 오른쪽에 백이산 등산로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있다. 산행 후에는 왼쪽 도로로 걸어 와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백이산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인 오른쪽으로 200m쯤 간다. 백이산 이정표와 백이산 안내도가 등산로 입구에 있다. 완만한 계단길로 올라서면 작은 산답지 않게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아침 시간이라 군북면민이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백이산 둘레길 걷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송전탑이 서 있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백이산으로 서서히 오름길이 시작된다. 운동시설을 지나고 곧 좌우로 백이산 둘레길과 정상으로 나눠지는 사거리다. 좌우 둘레길은 백이산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숙제봉 방향으로 바로 이어진다. 백이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서는 직진 오르막을 친다. 20여분 된비알의 급경사를 오르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주변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백이산 정상이다. 큰 돌탑과 산불감시초소와 첨단 장비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팽팽 돌아가고 정상석이 백이산을 알리고 있다. 백이산을 쌍안산으로도 부르며 동쪽으로 낙남정맥길인 오곡재를 지나 미산령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뒤로 함안 여항산의 산군이 솟아 있다. 가야할 능선인 남쪽으로는 숙제봉과 오봉산이 징검다리처럼 뜀을 뛰고, 서쪽으로는 괘방산과 방어산을 이어 놓은 능선이 남강으로 꼬리를 내린다. 남강 건너편인 북쪽으로는 의령의 명산 자굴산과 합천의 산들이 쭉~ 나열된다.


 

 




 



 




 




 




 




 



숙제봉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10분쯤 내려서면 벤치가 있는 쉼터에서 왼쪽 둘레길과 만나고 다시 만나는 두 번째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 약수터, 둘레길 방향으로 내려선다. 잠시 공룡발자국 유적을 보고 오자. 100m쯤 내려가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약수터에서 시원한 샘물을 한잔하고 오른쪽으로 3분만 가면 편편한 바위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인 명관리 공룡발자국 유적지와 그 아래에 절골 공룡발자국 유적지가 있다. 백이산 둘레길을 조성하며 찾아내었다는 명관리 공룡발자국 유적지를 보고 능선 삼거리까지 되돌아온다.

 


 




명관공룡발자국유적지

 




 




 




 




 



능선 갈림길까지는 10분쯤 걸린다. 숙제봉 방향으로 오르는 산길은 짧지만 된비알의 급한 길로 15분가량이면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꺾으면 숙제봉 정상이다. 나무에 가려 조망도 기대할 수 없고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도 없다. 오래된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왼쪽 10시 방향으로 뚜렷하게 난 길로 3분쯤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오봉산 4.57㎞' 방향인 급경사 내리막을 탄다. 다시 산길은 편안한 능선 길로 바뀌고 20분이면 푹 꺼진 유동고개에 큰 모과나무가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왼쪽은 군북 유동 마을 방향이고 오른쪽은 사기정골로 내려선다. 오봉산은 직진하여 15분쯤 능선길을 내달리면 임도와 만난다. 직진 방향으로 바로 올라서도 오봉산으로 향하지만 산길이 확실하지 않고 급경사라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오른쪽의 완만한 옛길을 따라 25분쯤 산허리길을 돌아가면 진주와 함안의 경계인 제산령에 닿는다. 군북면 명관리 명동마을에서 진주 진양군 이반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며 장안령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의 인조대왕이 이곳을 올라 고갯마루에서 쉬어 갔다는데서 유래하며 고개에 개미가 하도 많아서 쉬고 있는 인조대왕을 못살게 굴어 개미를 멀리 귀양을 보냈는데 그 뒤부터 이곳에서는 개미를 볼 수 없었다 한다. 오른쪽은 어석재를 거쳐 괘방산 방어산 방향이고 왼쪽은 오봉산 정상 방향이다. 50m 쯤 오르막을 오르면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으로 진주 이반성면의 성전암 가는 길이 갈라지며 오봉산 정상은 직진 오르막이다.



 




유동고개

 




 




 




 




 


 

바로서면 뒤로 넘어 질 듯 대단한 경사도를 자랑하는 구간으로 30분을 쉬지 않고 올라야 한다. 여름철이면 땀께나 흘릴 각오를 해야한다. 이곳만 올라서면 오봉산 정상 까지는 일사천리다. 다시 살짝 내려섰다 올라서면 삼거리로 유등고개를 지나 만나는 임도에서 직진하여 올라오면 이곳 삼거리에서 서로 만난다. 오른쪽 방향으로 꺾어 능선 길을 가면 바위 옆에 한기의 무덤을 지난다. 이곳이 하산지점으로 정상까지 갔다 돌아와야 한다. 오봉산 정상은 50m만 가면 된다. 작은 정상석 맞은편으로 전망이 열린다. 발아래 남서쪽 풍광이 장관이다. 절벽 아래에 879년 신라 헌강왕 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천년 사찰 성전암의 지붕이 보이는데 ‘성인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인조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올려 왕위에 올랐을 정도로 빼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왼쪽 멀리 고성의 거류산 벽방산이 쫑끗하고 사천 와룡산, 하동 금오산, 진주 달음산과 지리산 천왕봉도 빼놓을 수 없다.



제산령

 




 




 




 




 




 



 

하산을 위해서는 무덤까지 돌아가자. 오른쪽으로 뻗어 내려간 능선으로 들어서면 사람의 발길이 뜸해 산길이 꽤 묵어 있다. 능선만 따른다는 생각으로 내려가면 별 무리가 없다. 10분 후 묵은 무덤을 지나고 지형도상의 444m 암봉인 쇠단산 직전에 왼쪽 11시 방향으로  돌아 능선을 탄다. 묵은 산길에다 급한 하산길을 20분쯤 가면 임도다. 오른쪽 임도 길을 따라 15분쯤 가면 일제시대 때 채굴한 폐광산터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는다. 옛날부터 이곳에 쇠붙이가 많이 나왔다하여 쇠단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곧 얼음굴 산장앞을 지난다. 이곳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폐광된 굴에서 찬바람이 쏟아져 나와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이다. 광산교를 건너면 아스팔트 도로고 왼쪽으로 꺾어 군북역까지 4㎞를 걸어야 한다. 얼음굴 산장 앞 버스정류장에서 군북역 나가는 버스가 있지만 오후에는 1시30분과 7시30분 2회 뿐이라 군북역까지 걷는 것이 편하다.

 



성전암

 




 




 




 




 




 




 




폐광의 흔적

 




일제때 폐광된 얼음굴

 




 




☞(경남여행/함안여행)함안군북 백이산~숙제봉~오봉산 산행 교통편


백이산 산행은 부산 부전역에서 열차가 편리하다. 부전역에서 군북역을 지나가는 열차는 4회로 오전은 6시10분, 10시35분에 있다. 1시간 50분 소요 되며 요금은 6500원. 군북역에서 부전행 열차는 오후 1시05분, 7시08분, 6시54분에 있다.

자가 운전시에는 네비에 군북역(신군북역)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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