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구여행/대구근대문화골목여행)대구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나보세요.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 2코스를 걷다가 해설사님의 안내로 찾아간 곳입니다. 대구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요정 ‘가미’입니다. ‘가미’에 대해서 포스팅 전에 먼저 대구의 요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구의 요정시대는 ‘근대로의 여행 골목(대구 광역시 중구 발행)’을 참고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요정이 성업을 하게 된 배경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1904년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대구에 일본인들의 거주가 많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구역 인근에 달성관, 명석, 화월, 대화, 야상옥, 동경관, 자유사, 대판옥등 많은 요릿집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1909년 4월 조선시대로부터 내려왔던 기생의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기생들은 생업을 위해 1910년 5월에 대구기생조합을 결성하게 됩니다. 기생들은 대구역 근처의 요릿집 등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가야금 등을 탓 고 이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대구권번이 1922년 6월, 대구 기생조합 후신인 달성권번은 1924년 1월에 설립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아이들 그룹의 기획사쯤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기생들의 교육과 관리 그리고 알선, 화대 징수 등 기생들의 전반적인 업무 일을 맡았습니다. 대구와 달성권번에서는 도수원, 금호관, 해동원, 식도원, 청수원, 수향원 등 그 당시 대구에서 유명한 요릿집에 기생을 공급해오다 1942년 권번제도가 폐지됩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요릿집과 권번을 합친 ‘요정시대’가 들어서는데 권번에서 공급을 하던 기생을 요정에서 숙식과 금전, 교육 등을 모두 담당하는 것으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됩니다.



대구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요정은 1950년대 죽림헌, 칠락, 삼한관, 계림관, 대구관 등이 있었고 1960년에 들어와 춘앵각, 청수원 신남정등이 성업을 하였습니다. 그 명맥은 80년대 초까지 단추방, 가람, 가락, 십전방, 태금 등의 요정으로 이어져 오다 국민정서와 맞물려 차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당시의 대구 요정 명맥을 잇는 곳이 ’딱‘ 한곳 남아 있는데 대구 요정의 전통을 잇는다는 ’가미‘입니다. 대구중구 종로1가의 주택가 골목에 있습니다. 1962년에 ’식도원‘으로 처음영업을 시작하여 1986년에 ’가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재에도 예약으로 요정 영업을 하고 있는 가미는 이방인으로서는 궁금했던 요정에 대해 많이 알 고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의 기생과 권번, 196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작된 요정이 대구에 130여개나 있었다는데 그 당시 요정의 위치가 미니어쳐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기생과 권번에 관한 문헌과 진술을 수집한 한 개인의 열정이 만들었습니다. 고지도인 혼천전도, 북한 화가의 금강산 등 풍경화와 태극 문양인 세필 금강경 반야심경, 농산스님 서예작품등이 방마다 전시되어 있으며 기생과 요정의 역사관이 2층에 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을 보면서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요정‘의 개념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티비에서만 봐 왔던 요정의 이미지를 가미에서 불식시키게 되었던 그죠. 대구에서 딱 하나 남은 요정 ’가미‘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날 수 있는데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그러나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에 의하면 평소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이라 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대구근대문화골목투어에서 만나는 대구에 남은 마지막 요정 '가미'를 사진으로 만나보기

































2013/12/14 -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여행의 필수 코스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2014/01/17 - (대구여행/중구여행)'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영원한 가객 김광석 벽화거리에서 만나다.김광석


2013/12/09 - (대구여행/계산성당)"육영수군과 박정희양"의 결혼식이 열렸던 뾰쪽탑의 대구 계산성당을 여행가기


2013/12/05 -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보약 같은 쌍화차가 맛있는 옛날식 다방 미도다방을 찾아가다.


2013/12/03 - (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요, 북성로 공구 거리 박물관을 만나다.








 



728x90

728x90

큐수지방의 건축 양식으로 실내에는 마루와 다다미방, 온돌방이 설치 되어 있다. 한때는 200명이 넘는 기생이 있었다하며 일본인만 출입할 수 있는 기생집으로 해방후 한국인이 운영을 하였다 한다.




도심한복판에 위치하며 지금은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서 작은 가장집 분위기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초라하다.

부산에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인해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많이 거주를 하였다. 필자가 동래 온천장에 거주를 할 때 그 집도 한켠 방에는 다다미 방이 설치 되어 있었는데 아마 일제시대때 일본인이 거쳐를 하였던 것 같은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부산에는 일본풍의 집들이 도처에 있다. 일본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제일관문이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 수정동 범천동 가야 주례 대신동을 품안에 거느린 산을  우리들은 예로 부터 엄광산이라 불렀는데 일본인들이 부관페리호를 타고 부산항으로 올때 저 멀리 바다에서도 보인다하여 고원견산으로 불러 한때는 산명이 고원견산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 산아래 수정동에는 지금도 일본 풍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이름하여 정란각으로 쉬운말로 기생집이다. 큐수지방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시대때 일본인인 철도청장이 거주를 할 목적으로 지어져 별장으로 이용을 하였다 한다. 해방이후 한국인이 인수를 하여 정란각이란 기생집으로 영업을 하였다 하며. 60~70년대에는 그래도 잘나간 방석집으로 200명이 넘는 많은 기생들이 있었다 한다. 내국인은 출입을 할 수 없었다하며 주로 일본 관리들이 출입을 하였다 하는데 쉬운 말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거나하게 차려 나와 질펀하게 놀고가는 그런집으로 현재에도 요식업의 문패가 붙어 있다. 1993년 영화 장군의 아들1편의 촬영 장소로 이용을 하였고 일본식 건물 답게 다다미방과 온돌방이 함께 되어 있다 . 지금은 근대문화 유산 33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어며 한 단면의 우리 역사를 볼 수 있는 것 같아 씁슬하다.

찾아가는 길은 지하철 부산진역 또는 버스는 부산일보 또는 고관입구에서 내려 고관입구 사거리 홍골길을  100m 따라가면 된다. 새로운 주소는 홍골길195호




홍등가를 알리는 초롱불이 켜졌을 문앞의 등불은 꺼져 있고 이제는 옛이야기로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항상 현관에 대낮인데도 불을 밝히고 있다. 구조는 2층으로 목조건물로 전형적인 일본풍이 느껴진다.




1.2층의 모습으로 내부를 볼수 없도록 문이 잠겨져 있는 것이 아쉽다.
아마 저기 방안에서 거나한 술상이 차려지고 기생들과 술판이 벌어졌을 것 같다.






2층의 외벽은 얿은 판자를 데고 나무로 모양을 낸 정교한 모습으로 건축적으로 인정을 받아 근대문화유산이 된것 같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