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산여행/경산가볼만한곳)구룡산 반룡사. 원효와 설총, 요석공주의 설화가 살아 숨쉬는 경산 구룡산 반룡사 여행.


경상북도 경산의 반룡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반룡사는 구룡산과 발백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심산유곡에 둘러싸여 하늘만 빼꼼하 게 열려 선계가 따로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반룡사로 이름한 사찰은 우리나라에 3곳 있으며 경북 고령 미숭산의 반룡사보다 더욱 유서 깊은 명찰입니다.





경산 반룡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2

경산 반룡사 전화:053-852-1919


2016/02/06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2편

2016/02/03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1편

2016/01/23 - (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삼성산 산행. 원효, 설총, 일연선사의 고장 삼성현. 경산 삼성산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상대온천에서 온천산행 추천.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이곳 경산의 반룡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에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원효대사(617~686)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효는 압량인 이곳 경산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조씨는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잉태해 밤나무가 많은 율곡을 지나다 갑자기 산통을 느껴 큰 밤나무 밑에서 원효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15세에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자 충격을 받아 출가 하게 됩니다. 661년 문무왕 1년에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서 무덤 속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초의 진리를 깨달아 그길로 유학길을 포기하고 혼자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원효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경주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백성을 찾아다니는 불교 포교에 힘써 대승불교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하며 노래를 하고 다녔지만, 태종무열왕(재위 654~661)만 원효의 뜻을 알고 그를 궁으로 오게 했습니다.

 


원효는 소식을 듣고 태종무열왕을 만나기 위해 궁으로 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자 무열왕은 원효를 바로 요석궁에 보내어 젖은 옷을 말리게 했습니다. 이때 요석궁에는 과부가 된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날 원효는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열 달 뒤 요석공주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분이 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3문장가인 설총입니다. 원효는 그길로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자신을 부르며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들어 불법을 전파합니다.



요석공주는 설총을 원효의 고향인 이곳 경산에서 낳았으며 설총을 데리고 원효가 창건했다는 구룡산 반룡사에 머물렀습니다. 김춘추는 공주와 외손자가 보고 싶으면 수시로 왕후와 함께 구룡산의 고개를 넘어 반룡사를 찾았는데 태종무열왕이 넘었던 고개라 하여 지금까지도 왕재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 설총은 반룡사에서 성장하였으며 후에는 이두법을 집대성합니다.

 


원효가 창건했으며 설총과 요석공주가 머물렀던 반룡사는 태종무열왕의 후원을 등에 업고 대 사찰이 된 것은 자명한데 현재 반룡사는 오래된 문화재는 찾을 수 없고 가루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석물의 부재들만 천년 가람 반룡사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 원응국사가 이곳에 주석하였으며 고려 11대 문종 때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를 보면 모두 최근에 불사 되었으며 왜 오래된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반룡사는 고려말에 쳐들어 왔던 몽골과 1592년 조선의 임진왜란으로 한순간에 모두 불타버리자 1641년인 인조 19년에 계운과 명언 두 대사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며 산내 암자로 내원암, 벽운암, 대적암, 은선암, 안적암 등 다섯 암자가 중창 또는 창건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반룡사와 암자의 그 많은 당우는 모두 소실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몇 동의 당우로 겨우 명맥만 이어오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또다시 일어난 화재로 반룡사는 전부 불탔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는 문화관광부와 경상북도, 경산시의 지원과 신도의 불심으로 하나하나 복원 중에 있습니다.

 




반룡사는 화재로 소실될 때 급한 나머지 대웅전의 삼존불중 목조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청도의 모 사찰에 옮기게 되었는데 되돌려 받지 못하였고 범종은 포항 보경사의 서운암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반룡사에 남아 있던 아미타불마저 도난당하는 수난을 당하며 아직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반룡사 앞에는 창건 당시 흔적인 많은 부재가 널브러져 진열되어 있습니다. 부재 하나하나가 당시 반룡사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주는 게 지금보면 모두 예사 모습이 아닙니다. 그만큼 반룡사는 신라 왕실의 기원사찰로서 대사찰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728x90

728x9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산~ 미숭산 능선상에서 볼 수 있는 돌불꽃 석화성 가야산의 웅장항 모습, 톱날 같은 능선은 가야산이 돌불꽃에 이의를 달지 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령은 서기42년 부터 520년간 대가야국의 석이정전 "대가야건국신화"에 의하면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이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가 되었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산성 정상을 향해 오르는 설송산악회 회원님과 미숭산 정상직전의 산성 흔적. 주산성은 고령을 감싸고 있는 산성으로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대가야시대 성으로 유사시 피난을 위한 배후 산성으로 만들어졌다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산에서 미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맨 좌측이 미숭산 정상, 그우측 맨뒤가 가야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령군의 미숭산 정상 안내판과 초라한 정상, 그러나 미숭산 정상의 합천군 이정석은 자뭇 웅장하다.

고령 주산~미숭산

높지도 그렇게 수려하지도 않으면서 한 고을의 진산인 산들이 있다.`높고 수려해야만 진산인줄 아느냐'고 타이르며 기세등등한 원정산꾼들을 굽어보는 산들이다. 이런 고을 진산들에는 대개 몇가지 특징이 있다.

산에 얽힌 전설이 숨쉬고 있다는 점. 지역주민들의 애정을 듬뿍 받아 등산로가 잘 가꿔져 있고 등산코스가 다양하다는 점. 스스로 우람하지는 못해도 조망 만큼은 시원하고 호쾌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고대국가의 대표주자였던 대가야의 요람 경북 고령의 주산(主山.310m)-미숭산(美崇山.757m)능선종주는 그 고장 진산을 밟는 유별난 맛과 재미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산행로다. 주산은 고령읍 내에서 바로 등산로가 열리는 야트막한 봉우리지만 이름에 주인 주(主)자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이 곳 주민들의 생활속에 깊히 자리하고 있는 산임을 알 수 있다. 능선 주위에 고대의 고분군이 있고 등산로 입구에 대가야유물전시관이 조성돼 있다.

또 산 일대에 산림욕장과 체육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찾는 포근한 산인 것이다. 주산과 능선을 잇대고 있는 미숭산은 고려 말 이성계의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한 이미숭(李美崇)장군의 지조가 얽혀있는 역사의 산이다. 이미숭장군이 이 산을 근거지 삼아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해가며 이성계에 대항했고 그 절개를 기려 산의 이름이 이렇게 바뀌게 되었다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산-미숭산 산행로는 짙고 아늑한 소나무숲과 곳곳의 철쭉군락지를 통과하며, 가야산 일대를 품는 능선일대의 쾌청한 조망이 일품이다.

이번 산행로는 미숭산 정상을 정점으로 3개 정도의 등산로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주산에 오른 뒤 미숭산 정상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반룡사 하산길로 내려오거나, 미숭산 정상의 진행방향 기준 왼쪽 하산길을 잡아 청소년수련원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고령이나 인근 대구등지의 산악동호인들이 즐겨찾는 일반적인 코스이다. 4-5시간 정도씩 소요.다시찾는 근교산팀은 잘 알려진 이 코스들 대신 미숭산 정상 오른쪽으로 난 능선길로 다시 접어들어 나대리-신리를 잇는 임도에 내려선 뒤 임도를 타고 하산하는 산행로를 답사했다.

산행코스는 고령시외버스터미널-주산산림욕장입구(인근에 대가야유물전시관)-주산정상-청금정전망대(412m봉)-반룡사하산로 고갯길-733.5m봉-미숭산정상-임도-고령읍 신리마을 하산으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4-5시간 가량. 이번 산행은 초입찾기가 매우 쉽고 간편하다. 버스편으로 고령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읍내간선도로를 따라 고령경찰서와 고령향교입구 성주소방서고령파출소를 지나쳐 20분만에 들머리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안내판의 인도로 주산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길로 올라서면 된다. 표지판이 잘 구비돼 있어 길찾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등산로 역시 `고속도로'라 할만큼 말끔하고 넓직하다. 등산로표지판에 나와있는 주산-미숭산 전체 거리는 약 8Km. 주산정상까지 약 20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숭산 정상에서 본 주변의 산세, 별유산 비계산, 작은가야산등등...

산정상에서 직진하듯 5분정도를 내려선다. 능선을 타고 가는 도중에 시원한 사방 조망이 계속되며 진행방향 정면의 우람한 봉우리가 가야산이다. 1시간 정도만에 412m봉에 자리한 정자 청금정에 도착한다. 정자 주변은 사방경치가 완전히 뚫리며 바람이 유난히 시원해 푹 쉬었다 가기에 더없이 좋다. 여기서 25분이면 반룡사 하산길 열리는 사거리.

60분 정도 진행하면 733.5m봉을 거쳐 미숭산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는 큰 달각바위라는 큰 바위와 초소가건물이 있다. 가야산 매화산 의상봉 별유산등 합천 거창쪽 산세가 시원하다.

하산길은 초소에 닿기 직전에 오른쪽 숲속으로 열린 길을 따라 내려서면서 열린다. 25분 정도면 신리로 내려가는 임도에 닿는다.

취재팀은 애초 임도 맞은 편 입구를 통해 반대편 산으로 들어서 산행을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맞은 편 산의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을 잡았다가 가시덩쿨이 우거진 폐가촌으로 잘못 들어서 계곡쪽 하산길 찾기에 실패했다. 임도에서 곧장 오른쪽 신리방면으로 하산하는 편이 상책이다.

# 교통편

이번 산행은 들어갈 때 교통편이 편리하다.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령행 버스로 고령읍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다른 차편은 따로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 고령으로 가려면 거창행 버스는 아무것이나 타면 된다. 오전 7시30분 9시20분 오후 12시40분 4시40분 6시 하루 5회.(거창까지 국도로 운행)거창 직통 버스편은 오전 7시 8시30분 10시40분등 하루 10회 운행. 막차 오후 6시40분. 2시간 소요. 요금 7천2백원.

고령읍 신리로 하산하면 고령행 시내버스가 오전 9시 오후 오후 5시등 2회밖에 안 다닌다. 하지만 오후 5시 버스를 놓쳤더라도 고령읍 버스터미널까지 콜택시가 5천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해 큰 부담이 없다. 고령개인택시 (0543)9541212. 9551212. 9561212. 9542747. 고령터미널서 부산까지는 오후 6시 6시40분 7시20분 8시20분 8시30분등에 있다. 또 대구까지 가는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밤 9시10분까지 운행하므로 지하철로 동대구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10시42분 열차를 타기에는 웬만해선 무리가 없다.

글:조봉권기자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숭산성의 흔적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숭산 정상에선 필자와 능선길을 걷는 설송산악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