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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하동여행)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모델 악양 화사별서 조씨고가 여행. 화사별서 조씨고가


하동여행을 하면서 정서리 상신마을에 화사별서 조씨고가를 다녀왔습니다. 

화사별서는 이씨조선의 개국공신인 조준의 직계후손인 화사 조재희의 별서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별서는 별장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본집은 경성부에 있었다 합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 실제모델 화사별서 조씨고가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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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별서 조씨고가는 악양면에서도 아주 높은 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아래쪽에 나무도 자라고 해서 악양 들판이 잘 보이지 않으나 당시에는 무딤이들이라 불리는 평사리들이 훤하게 내려다보였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화사별서 조씨고가는 조재희가 중앙정치에서 밀려 낙향하여 19세기 중반에 16년에 걸쳐 지은 집이라 합니다. 

그러나 화사별서는 안타깝게도 현재 안채와 행랑채만 남아 있습니다.


 


정확한 화사별서 조씨고가의 건축 연대를 알아보려면 먼저 안채 종도리의 상량문을 확인하면 됩니다. 

종도리의 상량문에는 ‘開國五白二十七年戊午立柱上樑(개국오백이십칠년무오입주상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1918년이 됩니다.

 

 

보통 상량문은 당시 건물을 지을 때를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화사별서인 조씨고가가 그때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화사별서 조씨고가는 동학 농민과 6.25 한국동란 때 2번이나 불탔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동학 농민운동 때에 불탔던 조씨고가를 1918년에 다시 건립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6·25 동란에 안채와 아래채(행랑채)만 남기고 또다시 모두 불탔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현재 안채를 보면 당시 권세가의 집임을 짐작 할 만큼 기와지붕의 규모가 웅장하고 대단했습니다. 

1칸의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연못이 있습니다. 

보통 아무리 명문가의 집이라도 집안에 연못이 있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래채(행랑채)

그런데 조씨고가는 별서라서 그런지 깊게 파낸 연못에다 그 가운데 석가산을 만들어 선비의 지조와 절의를 상징하는 배롱나무를 심었습니다. 

때마침 끝물의 백일홍이 그 아름다움을 뽐내었습니다.

 


연못을 두른 석축에 난 사각 구멍은 여름에 음식을 보관했던 냉장고라고 합니다. 

연못으로 들어오는 물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하니 그만큼 지혜롭게 지어진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석축 위에 잔디가 깔린 너른 터는 사랑채가 있던 자리입니다.



종가집이라 그런지 ㅎㅎ 장독의 규모가 엄청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혼자 계시는데도 장독대가 깨끗하니 청소가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터의 규모를 보아서는 대단한 건물로 지어졌음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사랑채 터 위에 높은 석축을 쌓고 담장을 둘렀는데 부인 내들이 기거하는 안채입니다. 

6·25 동란에 화마가 비껴갔던 건물입니다.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을 확실하게 해놓았습니다. 

안채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고 중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은 형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안채는 중부지방의 ‘ㄱ’자 형태이며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건물의 규모와 함께 우아한 자태를 뽐내었습니다.

 


마침 조씨고가의 안채를 방문했을 때 조준의 직계손인 94살의 할아버지께서 툇마루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 고래등 같은 집에 할아버지 혼자 아래채에서 생활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당을 보니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고택 관람을 하는 우리로서는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어떤 고택에 가면은 관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허리까지 올라와서 폐가나 다름없는 집이 문화재란 타이틀을 달고 있어 가슴 아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조씨고가는 너른 집이지만 따뜻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났습니다. 

안채 왼쪽에 지금은 텃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차밭이 있으며 화재 이전에는 초당과 사당이 있던 곳입니다.








다음 여행지로 출발하면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더니 다시 호미를 들고 풀을 뽑으러 뒤따라 나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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