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북여행/청도여행)금천면 만화정과 세심정, 한국동란때 이승만대통령이 머물렀다는 만화정과 그뒤 세심정

흔히 옛 양반들의 집성촌으로 아직까지도 그 당시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류시 집성촌,
지리산 가는길의 남산예담촌 그리고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등 여럿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 가까운 곳 중 찾기는 쉽지가 않다. 
최근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 청도 땅에도 있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곳에 버금가는 고가들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 영남알프스 둘레길에도 있다.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로 한때는
이곳이 금천면의 면소재지로 이름을 날리던 곳으로 도로 좌우편으로 옛 고가들이 줄을 서 있다.
도암고택, 운강고택등 밀성박씨의 한집안이 가계를 이루어 내려 오는 곳으로
운강고택의 부속건물로 지어진 만화정을 이야기하려 한다.
 동창천변 절벽에 자리를 잡은 정자 만화정(萬和亭)은 한옥마을의 백미로 꼽힌다.
청도의 여러 한옥 마을중에서도 여기 신지리의 고택이 으뜸이며
만화정은 동창천과 주위의 영남알프스의 풍광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한옥마을의아름다움을 더욱 빛네고 있다.

 





만화정은 본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소요당(逍謠堂) 박하담(1479~1560)이 건립한 서당 터였는데
그의 11세 손인 박정주(1789~1850)가 분가해서 살림집으로 지은 것이다.
이후 박정주의 아들인 운강(雲崗) 박시묵이 더욱 확장,
현재의 모습처럼 정자 형태로 변형했고 이곳에 강학소를 열어 지역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의 아들인 진계 박재형은 해동속소학 등 38권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주변의 선암서원 등과 함께 청도 지역 학문의 요람 역할을 했다.


 


운강과 진계가 이곳에서 학문을 갈고 닦고
후학들에 대한 교육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원래 이곳에 서당을 세웠던
소요당의 높은 인품과 학풍을 이어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요당은 조선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여러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저술과 학문연구에 매진한 성리학자였다.
.
.
.
소요당 박하담의 후손들이 이곳 만화정 앞 뜰에 모여
형제 삼촌 조카 부자지간의 14명이 의병을 궐기하여  임진왜란때
동래성이 왜군에게 떨어져 15일만에 청도로 밀려 올라왔을때
밀양박씨 14명이 의연히 일어나 어성산에서 싸웠다한다.



특히 무오사화 등을 거치면서 더욱더 세속적인
출세와 벼슬길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소요당은 본격적으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는 삼족당 김대유 등과 함께 운문사 아래에 최초의 사창(社倉)을 지어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에게 환곡법을 실시하는 등 빈민구제사업에 매진했다.
또 남명 조식, 삼족당 김대유 등 당대의 대학자들이 소요당을 찾아와 학문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같은 학풍과 인품이
12대손인 운강 박시묵대와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찾아가는 길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청도역에서 내린다.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5시50분, 6시35분, 6시55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10시20분 등 자주 있는 편이다. 1시간 소요, 4800원. 청도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청도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지리에서 하차한다. 오전 7시40분, 9시20분, 10시40분, 11시30분 등 하루 8회 출발한다. 3200원.

자가운전의 경우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린 후 좌회전, 긴늪삼거리에서 청도방향 25번 국도를 타고 우회전한다. 상동역 지나 신곡삼거리에서 좌회전, 상동교를 건넌 후 25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쪽 매전 금천 방향 58번 국도를 탄다. 동창천을 따라가다보면 매전면 소재지의 처진소나무를 지나 매전교를 만난다. 우회전 해 매전교를 건너 진행하면 금천면 신지리 만화정 앞에 닿는다.















만하정 뒤 쪽문을 열고 나가면 세심정으로 갈 수 있다.
안강의 옥산서원의 세심정처럼
 마음을 씻는다는 뜻의 정자가 있었다한다. 











만화정을 화폭에 담는 노 화백의 모습







지금 세심정의 정자는 사라지고 없지만 동창천편에
외로이
만하정과 함께 옛 선현의 글씨가 또렷이 남아 있다. 
잡초가 웃자라 있고 주변의 상태로 보아서는 버려진체로 남아 있는
이곳에도하루빨리 문화재의 대책을 수립하여 잡초를 제거하고 보호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 같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