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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봉화여행)대한민국 명승 제60호 석천계곡·석천정사,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석천정사


산 좋고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고장이 봉화입니다. 당파싸움에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칼날 위의 벼슬에 환멸과 염증을 느낀 많은 선비가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정자를 짓고 자연을 노래하며 은둔했던 곳이 유독 많았던 봉화. 하나같이 세속을 등지고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면서 벗과 시문을 나누고, 후학을 키우며 말년을 보냈습니다.





봉화 석천정사·석천계곡 주소: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45

봉화 석천정사 연락처:054-679-6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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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봉화의 산세는 남달랐습니다. 봉화에 몸을 숨긴 대표적인 처사로는 태백오현이 그러하고 또한 닭실마을의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세운 청암 권동보 등 수많은 선비가 있습니다. 모두 자연 속에서 세상사 시름을 멀리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봉화를 여행하면서 찾았던 석천계곡과 석천정사도 그런 곳 중 한 곳입니다. 봉화는 벌써 여행을 하고 왔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늘과 실이라는 석천정사와 함께 찾는 곳이 닭실마을의 청암정입니다. 청암정 또한 청암선생이 세웠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삼남의 4대 길지에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내앞마을, 풍산의 하회마을과 함께 봉화 닭실마을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마을의 분위기는 낮은 산에 둘러싸여 포근해 보였습니다. 문수산에서 흘러내린 창평천과 닭실마을 뒤를 돌아 흐르는 동막천은 유곡 앞에서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기암괴석과 하얀 암반을 끼고 석천계곡을 빚어낸 뒤 내성천에 합류하여 낙동강에서 꼬리를 감춥니다.

 


봉화군의 수많은 명소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석천계곡과 비탈에 걸터앉은 석천정사를 만나러 출발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길은 위쪽의 유곡리 닭실마을에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 저는 그 반대인 삼계리의 삼계 2교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곳에도 석천계곡을 알리는 대형안내판과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석천계곡을 끼고 반들반들 윤이 난 오솔길은 수많은 사람이 닭실마을을 거처 춘향으로 향했던 옛길이라 합니다. 그 때문인지 석천계곡의 운치는 더욱 좋아 보였습니다. 나도 그 뻔찔난 길에 발걸음을 보태었습니다. 계곡을 걷다가 문득 지게를 지며 올랐을 옛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낙락장송의 거대한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석천계곡, 지겟발을 받치며 바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골바람에 땀을 식혔을 그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으로 붐볐을 석천계곡은 스산한 가을바람에 그 많았다는 인걸은 간데없고 할 일 없는 나그네만 찾아와서 왁자지껄 노닐었는데 진짜 우리 일행 빼고는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석천정사를 가는 소로 길이 바위벼랑을 돌아갔습니다. 그 바위벼랑에 왕희지도 울고 갈 “청하동천(靑霞洞天)”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청하동천’ 그 뜻을 보면 “하늘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글씨체가 용이 하늘을 마음껏 휘젓듯 힘차게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글씨는 충재 권벌 선생의 5대손인 대졸자 권두웅(1656~1732)이 섰다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암괴석으로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석천계곡에 많은 도깨비가 몰려와서 떠들면서 놀았다 합니다.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은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힘을 당하였고 이를 참다못한 권두웅이 ‘청하동천’ 글씨를 바위에 세기고 그 위에다 붉은 칠을 하자 다시는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합니다.









도깨비를 쫓아냈다는 청하동천 바위를 지나면 더욱 수려한 장관이 펼쳐지면서 계곡 건너에 석천정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위에 걸린 나무다리를 건너 석천정사에 다다랐습니다. 석천정사를 들어서는 일주문이 꽉 닫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내려가서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석천정사는 34칸의 큰 규모라 합니다. 석천정사는 충재 권벌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1535년에 학문과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물입니다. 선생은 1542년 중종 37년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1547년 명종2년에 아버지가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삭주에 유배되었다가 1년 만에 숨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직되었지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석천계곡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마음의 수양을 닦으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눈대중으로 대충 보아도 계곡을 비집고 절묘하게 들어선 정자에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으며 건물은 높은 축대 위에다 길게 늘어선 모습 입니다.







살짝 까치발을 들어 내부를 보았습니다. 한쪽은 개방된 마루라면 한쪽은 판장문을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하얀 암반에 미끄러지듯 흐르는 계곡의 풍경과 하늘을 찌를 듯 우람한 소나무의 솔향이 모든 건물에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선경이 따로 없는 석천정사를 지나면 닭실마을에서 석천정사로 들어서는 넓은 길이 이어졌습니다. 허리를 숙인 소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 닭실마을의 청암정이 어서 와라 손짓했습니다. 명승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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