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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박제상 생가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치술령 망부석 신라 만고충신 박제상 생가 효충사가 새롭게 효충역사공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설에도 양산 공원묘원에 모신 형님 산소를 찾았습니다. 항상 성묘 길에 박제상유적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마음만 갈뿐 방문을 하지 못하다가 이번에는 형님 산소에서 성묘하고 돌아오면서 효충사에 들렀습니다.



 



 박제상 유적지로 효충사인데 2014년 10월 새 단장을 하고 효충역사공원으로 이름과 모습이 확 바뀌었습니다. 효충사 이외에도 새롭게 징심헌과 고직사 등 부속건물이 갖추어져 이제는 번듯한 모습이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모든 시설물이 문이 ‘꽉’ 잠겨 있어 내부관람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정말 큽니다.

 한편, 신라 때 만고충신 박제상을 추모하는 사당이 이제 제대로 된 위상을 갖추게 되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박제상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다들 배웠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래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망부석하면 생각이 날까요. 망부석 하니 가수 김태곤이 먼저 생각난다고요. 맞습니다. 김태곤이 부른 망부석도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뜻은 같으니까요. 그러나 전국에 많은 망부석 전설 중에 박제상의 치술령 망부석은 가장 유명하다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제상에 관해 알면 자연스럽게 치술령 망부석의 전설도 알게 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박제상은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 후손입니다. 때는 신라 눌지왕 시절로 눌지왕은 두 동생인 복호와 미사흔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항상 두 동생을 매우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에 박제상은 고구려로 건너가 몰래 복호를 빼내어 신라로 돌아왔으며 내친김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까지 신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러나 박제상은 탈출을 감행하다 대마도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왜왕은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자신의 신하가 되면 목숨을 살려주고 금은보화까지 주겠다고 회유하지만 박제상은 죽을지언정 자신은 영원한 신라의 신하라며 그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왜왕은 나의 신하를 할 수 없다면 신라의 신하도 될 수 없다며 잔인하게 사지를 불태워 죽였습니다.

 한편 박제상의 아내 김씨 부인은 일본으로 건너간 남편이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기다리며 매일 남편이 건너간 바다가 잘 보이는 치술령에 올랐습니다. 치술령 정상아래 바위에서 남편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끝끝내 박제상은 돌아오지 않자 지쳐 김씨부인과 두 딸은 죽어 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몸은 돌이 되었지만, 영혼은 파랑새가 되어 맞은편 석굴에 날아들었는데 후세에서는 김씨 부인과 두 딸이 죽어 변한 바위를 망부석이라 부르고 영혼이 되어 새가 날아든 석굴을 은을암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망부석과 은을암이 삼각점을 이루는 곳인 울산시 울주군 만화리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박제상의 충절과 김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사당이 세워졌다합니다.

 그러나 세월 속에 이야기로만 전해오다 1982년 그 자리에 다시 치산서원을 세웠으며 2008년 9월에는 박제상 기념관을 조성하였습니다. 이곳 양산의 효충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태어났던 자리에 세워진 사당입니다. 도로 안내판에도 ‘박제상생가’로 안내되어 있었는데 이곳 효충사에는 박제상과 그의 아들 백결 선생을 기리는 위패와 초상화가 함께 모셔져 있다합니다.

 명절이라 그런지 모든 곳이 꼭꼭 닫혀 있어 확인 할 수 없어 참말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효충사는 1칸 규모의 대문을 들어서면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1946년 처음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박제상의 업적을 담은 효충사 비석이 있습니다.

 참고로 백결 선생은 박제상의 아들이자 거문고의 명인입니다. 워낙 가난하여 찢어진 옷을 백군데도 넘게 기워서 입었다하여 백결선생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집안에는 먹을 양식이 남아있지 않아 부인에게 거문고로 방아 찍는 소리를 들려주어 위로했다합니다.

 현재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새롭게 조성된 박제상 유적지 효충역사공원은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에서 어곡공단 방향으로 가다 어곡터널 진입 전에 오른쪽 효충마을에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경상남도 기념물 제90호

 ◆양산 박제상 생가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효충사, 효충역사공원

효충사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박제상길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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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유원지.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태종대. 영도등대, 태종대, 망부석, 태종대전망대


부산의 유원지 중 대표적인게 태종대유원지입니다. 태종대 유원지는 그 넓이만 해도 54만 2천평에 최고 높이는 해발 250m인 태종산입니다.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둘러 쌓인 부산의 대표 공원이 태종대입니다. 해송을 비롯한 각종 수목이 약 120종에 정글을 연상 할 정도로 밀림이며 또한 천길단애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절경중에서도 최고의 절경지로 꼽습니다.




 

태종대는 일제강점기때부터 군사 작전지역으로 민간인이 출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런 숲이 남아 있었습니다. 1967년 유원지로 고시되고 1969년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태종대의 유래를 보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신라의 태종무열왕이 이곳에서 활을 쏘고 말도 타며 군사들을 훈련시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 합니다. 또한 동래부지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 한 후 태종대를 찾아 활쏘기를 하여 그 후부터 태종대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태종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이 영도 등대입니다. 영도표지관리소가 정식 명칭이며 1906년 12월에 국내에서 10번째로 세워져 우리나라를 지나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부산의 가덕도 등대와 오륙도등대 등에 비해 규모면에서 가장 크며 2004년에는 총 공사비 45억원을 들여 개보수를 하였습니다. 영도 등대는 50만촉의 빛을 8초 간격으로 3번의 힌 빛을 발산하며 모든 선박의 안전한 뱃길을 열고 있습니다.


 

태종대의 명물이 되어버린 영도등대는 무료 관람이며 등대의 꼭대기 전망대 까지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맑은 날에는 56km 거리의 대마도도 선명하게 보이여 태종대를 가장 돋보이게 합니다.


 태종바위와 망부석

 

 

 

 

 

 등대 내부입니다. 특이하게 지짓대가 없는 계단에다 빙 돌며 달팽이 모양의 계단으로 만들어진게 신기합니다. 끝까지 올라가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이곳가지 왔는데 등대 전망대 안가볼 수 없습니다. 힘을 내어 올라가면 그 만큼 멋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멀리 대마도도 보입니다. 

 

 동백섬도 보입니다.

 

 

 

태종대는 사선암으로 불리는 신선대와 일본으로 끌려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그 만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도 있습니다. 망망대해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을 조 린 어느 여인의 슬픈 사연이 눈물이 되어 바다는 더욱 푸르른 것 같습니다.

 

 

 

 

이곳 태종대는 6,500~7,000만년전인 백악기 말에는 공룡들의 천국이었습니다. 현재에도 그 당시 무수히 남겨진 공룡발자국이 남아 있어 태종대의 신비함을 더욱 말해줍니다.


 

 

 

 

영도는 봉래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봉래란 무엇입니까? 신선들이 거처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아마 태종대의 신선대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편평한 바위에는 선녀나 신선들이 하강하여 경관을 즐기며 놀았다는 전설이 부지기로 전합니다.


 

 바다에 둥둥 뜨 있는 주전자 섬입니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 한 이곳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놀다 아이를 낳은 후 태를 끊은 가위의 실패 등 출산할 때 선명하게 남았다는 왼쪽과 오른쪽 무릎의 흔적은 보고 있노라면 태종대는 더욱 신비스러운 모습입니다. 부산 여행은 영도 최고가 아닌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 단애인 태종대를 빼 놓을 수 없는 부산 관광1번지입니다.


 망부석입니다. 전란 통에 일본에 끌려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홀로 아리랑

 

 

 

 

 

태종대에는 한해 많은 분들이 목숨을 버렸던 곳으로 이곳 자살바위에는 두아이를 안고 있는 모자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모자상을 세운 뒤 이곳에서 자살율은 현저하게 줄었다합니다. 그 후 태종대 최고의 전망대로 거듭나 태종대를 찾는 관광객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다리가 아프다고요 다누비 이용하면 이름처럼 아주 편리하게 다 누비며 태종대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유원지.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태종대 대중교통편.


지하철(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 입구까지 갈 수 있습니다.


2015/02/23 - (부산맛집/영도맛집)태종대 맛집 태종대 짬뽕. 얼큰한게 국물 맛이 좋았던 태종대 짬뽕.


2015/02/22 - (부산여행/영도여행)봉래산. 영도 봉래산 산행을 하면 누구나 신선이 됩니다.


2015/02/21 - (부산여행/영도여행)태종대 전망대 최지우 사진전. 부산홍보대사 최지우 사진전이 태종대유원지 전망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2014/02/26 - (부산카페/영도카페)영도 절영해안산책로 가는 길에 있는 카페 원블랙커피에서 커피한잔 너무 좋아요.


2014/02/20 - (부산여행/영도여행)변호인촬영지 절영산책로에서 봄을 마중하다. 흰여울길.


2014/01/22 - (부산여행/영도구여행)국립해양박물관. 부산에 바다의 모든 것이 전시된 국내 유일 해양박물관이 있습니다.국립해양박물관-3


2014/01/16 - (부산여행/영도구여행)영도 국립해양박물관. 이 모든것이 무료관람, 바다속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해양박물관.


2014/01/04 - (부산여행/영도여행)영도 국립해양박물관. 해양박물관에서 반구대 암각화를만나다.국립해양박물관


2013/11/30 - (부산여행/중구 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영도대교 47년만에 들리다, 동영상으로 구경하세요


2013/11/27 - (부산여행/중구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개통식 이모저모. 영도대교


2013/03/22 - (부산여행/영도여행/절영해안산책로)신선이 된 기분이 이런 기분. 갈맷길이 있는 봉래산.


2014/02/17 - (부산맛집/영도맛집)삼진어묵전시체험관. 독특한 판매장으로 유명 빵집도 울고 갈 부산 오뎅의 원조 삼진어묵 전시 매장.


2014/02/21 - (부산맛집/영도맛집)영도다리맛집 재기돼지국밥. 변호인으로 유명해진 돼지국밥 남항시장 맛집으로 주민이 인정 재기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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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위해 세운 치산서원.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하면 항상 떠오르는 말이 있다. 공업도시가 항상 울산 앞에 붙어 '공업도시 울산'으로 불려왔다. 고속 성장기의 사회에서 울산은 그만큼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였다. 지금도 울산시는 문화보다는 공업의 색체가 강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공업도시란 색깔을 지우려는 노력을 하였다.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의 이미지인 울산을 문화와 예술 방면으로 돌려 살기 좋은 고장 울산을 홍보하기 위함인지 언제부터인가. '충효의 고장 울산'을 슬로건으로 걸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신라시대 때의 충신 박제상으로 '박제상유적지'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치산서원과 박제상기념관 안내도.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치술령의 전설로 살아나다.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울산의 북쪽 끝에는 치술령이 있다. 순간적으로 이쪽에서 저쪽을 넘어다니는 고개쯤으로 인식을 하기 쉽지만 치술령은 산이름이다. 울산과 경주의 경계에 솟아 있는 치술령은 박제상의 유적지가 널리 퍼져 있다. 먼저 일본에 간 남편 박제상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 치술령에 올라 일본쪽의 바다를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끝내 지쳐 숨을 거두고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이 정상 인근에 두곳이 있다. 그 연유를 보면  울산쪽의 바위와 경주쪽의 바위가 각각 그곳인데 울산쪽의 바위에는 언제 누가 새겼는지 모르지만 '망부석'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본 방면의 바다가 더 잘 보이는 망부석은 경주쪽 망무석이라 어느것을 망부석이라 꼭 단정하기는 어렵다. 박제상 부인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보면 두곳의 바위에 번갈아 올라가면서 까치발로 돌아올 남편을 기다렸을 것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경주와 울산의 지자체에서 각각의 망부석 안내판을 세워 두었다.

 

 

 

 

 

치술령 건너편에는 국수봉이 솟아 있다. 그 아래 박제상의 부인이 전설이 되어 이곳 암자인 은을암에 전한다. 은을암은 '새가숨은 바위'라는 뜻으로 부인과 딸의 영혼이 파랑새가 되어 이곳 바위에 숨어 들었다고 전한다. 그와 함께 이곳 만화리의 지명은 전설을 뒷받침 하듯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치술령 유래.

 

박제상이 일본으로 가게된 연유를 보자. 박제상은 신라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눌지왕(재위 417~458)이 임금이 되었다. 그 당시 그의 두 동생이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는데 임금은 두동생을 보고 싶어 안달하였다. 박제상은 눌지왕의 왕명을 받아 음밀하게 고구려로 들어가 복호왕자를 구출하고 돌아와 다시 왜국에 잡혀 있는 미사흔을 구출하기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무사히 미사흔을 구출하여 신라로 보내고 그는 정체가 탄로나 대마도에서 그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게 된다. 왜왕은 박제상의 사람됨을 알고 회유하여 그의 신하가 되면 목숨도 살려주고 벼슬과 많은 금은보화를 주어 이곳에서 편히 살게 해주겠다 꼬시지만 박제상은 자신은 신라의 신하라고 말하며 끝까지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았다.

 

 

 

 

 

이에 왜왕은 분노하여 고문을 동원하며 끝에는 불에 태워 죽였다. 치술령에서는 그의 부인이 매일 같이 딸과 함께 올라 박제상의 무사귀환을 빌며 기다리다 통곡을 하며 죽어 돌이 되었다는 전설로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라 하고 사당을 세웠다. 지금 치술령 정상에는 옥돌에 '치술신모' 비석을 세워 부인을 위로하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 치산서원에는 박제상과 삼모녀의 위패와 영정 모셔.

 

치산서원은 박제상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던 사당자리에 1745년 영조 21년에 최초로 치산서원을 세웠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에 이르러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다. 이후 1993년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 치산서원은 내에는 충렬공 박제상의 영정을 모신 충렬묘와 신묘사에는 그의 부인 금교김씨의 위폐와 영정을 모셨다. 쌍절려는 박제상의 두딸인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 넋을 위로하고 있다.

 

 

 

 

 

☞(울산여행/울주여행)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신라 충신 충렬공 박제상 울산광역시 기념물 1호.대마도에서 박제상 화형을 당하다. 그 전설이 내려와.

지금 대마도는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찾아가기가 쉬운 곳이다. 당일로도 갔다 오는 곳이 된 대마도는  현재 박제상이 화형된 곳에 그의 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 연유로 1500년이 넘은 지금에도 대마도 주민들은 우리에게 아주 우호적인 모습이라 한다. 실제로 필자도 그리 느꼈다. 이는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화형을 당한 신라 충신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복한 사연이 전설이 되어 대마도에 전해내려 오기 때문이다.

 

 

 

 

 

 

 

 

 

 

 

 

박제상의 김씨 부인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신모사.

 

 

박제상의 두딸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쌍절각.

 

 

 

 

 

 

 

 

 

 

 

 

만고충신 충렬공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둔 충렬묘.

 

 

 

 

 

 

 

 

 

 

 

 

 

 

 

 

 

 

 

 

박제상 기념관 여행정보

관람안내

관람시간:09:30~18:00

휴관일:매주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 공휴일 다음날, 그리고 기념관 관리상 휴관일

관람료:무료.

관람문의:052-254--7964~5

대중교통편:802번 중구청 또는 성남동에서 탑승용이

 

 

 

 

 

 

박제상 김씨 부인과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삼모녀상

 

 

 

 

 

 

 

 


 

 

입본으로 건너간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울산쪽에 있어 울산망부석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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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두번째 큰 섬인 영도는 예로부터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여겨져 마을의 지명도 신선동이니 청학동 그리고 봉래산등 이상향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영도 또한 절영도에서 나왔다. 한때 이곳은 명마를 키우는 목마장이 봉래산아래 존재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 달리면 자신의 그림자도 따라 오지 못할 정도 즉 말의 그림자를 끊을 정도로 빨리 달리는 명마를 키웠다 한다. 그래서 영도를 절영도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후 영도가 되었다.




그 남쪽 끝에 천길 단애를 이루는 태종대가 자리를 하고 있으니 선경이야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등대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바닷가와 저멀리 수평선에 떠 있는 대마도도 시야에 잡히는 그야 말로 부산 관광의 중심이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 해안으로 파도에 의한 침식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 되었다.
우거진 나무와 숲 그 아래는 수직 100m의 천길 절벽을 좌우로 만들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 이곳은 국가명승지 제1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동래부지에 의하면 신라시대때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 한 후 이곳에 시찰과 휴양차 들러 활쏘기를 하였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동래 부사가 이곳까지 행차를 하여 기우제를 지낸곳이며 일본에 끌려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망부석 전설과 선녀가 하강을 하여 그 절경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줄 도 모르고 놀고 올라갔다는 신선대의 이야기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도 부산의 갈맷길이 조성이 되어 있다.
서구 암남동의 암남공원에서 이어지는 볼레길을 따라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남항대교를 건너 절영해안산책로를 끼고 이어지는 이 코스는 17.8km로 8시간이나 소요되는 코스이다.
사실 바위와 포장길의 연속인 이 길을 그래 걷는 것은 무리이며 길을 걷는 이유에서도 거리가 먼 것 같아 세 번 잘라서 걷게 되었다.
걷기는 여유와 생각을 하고 주변의 경치를 음미하며 걸어 가는 것이 그 취지이다.
땀을 흘릴 요량으로 운동이라 생각하면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게 시간이나 금전적 면에서 훨씬 좋을 것이다. 이번에는 태종대 입구에서 시작을 한다.







 예전에는 매표소가 서 있던 자리로 지금은 무료로 입장을 할 수 있게 시민의 품으로 돌아 왔다.
이곳을 지나면 갈림길로 좌측은 차량의 일방길인 내려 오는 길이다.
안내도에는 등대자갈마당 신선바위 영도등대 태종사 순환도로라 되어 있다.
우측은 전망대 남항조망지 구명사 태원자갈마당 진행방향의 순환도로로 되어 있어 우측으로 들어선다. 먼저 우측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 간다.
 이날 누이파의 영향으로 유람선은 발이 묶여 보이지 않으며 세찬 파도만 밀려오고 있었다. 다시 나와 순환도로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자갈마당과 전망대 가는 길이 나온다.
기암의 전망대인 이곳은 송도와 암남공원 감지해변 그 뒤로 중리산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남항전망대에서 보는 조망도 바닷 건너 서구의 천마산 가덕도등 별 다르지 않으며 예전에는 자살바위로 한때는 불리던 곳으로 지금은 모자상과 상가로 변모를 하여 그때의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자상의 연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모자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태종대 최고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등대와 신선대로 태종대의 진 면목을 아낌없이 보여 주는 곳이다. 시원한 바람을 직접 맞을 수 있고 밀려드는 파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으며 등대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게 전망대로 개방을 하였다.
그 외에도 최근에 많은 기념탑을 조성하여 더욱 풍성한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넘 화려하지 않으며 그리고 주변의 경치와도 도드라지지 않은 이곳에 어울리게 조성을 하여 쉼터가 되고 있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진행 방향을 따라가면 이번에는 태종사와 6.25참전 기념비가 나온다.
영도유격부대 작전지비로 동해 3도 출신으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12월까지 피나는 훈련을 거쳐 적후방에 침투를 하여 특수전을 감항하였다 한다.
태종사에는 스리랑카에서 모시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다하며 법당의 부처님 또한 국내의 부처님과 모습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스리랑카 풍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을 지나면 들어온 태종대 입구로 다시 나간다.








총 길이가 약 4.3km의 이길을 여유를 가지며 2시간 정도 소요 되었다.
태종대 유원지의 총 면적은 54만2천평이며 해발 250m의 최고봉인 태종산,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해송과 120여종의 자연식물과 수목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맑은 날에는 56km 떨어져 있는 대마도(쓰시마섬)가 보이며 일제시대때부터 군 요새지로 사용된 바람에 출입의 통제를 받아 왔고 그 당시의 시설물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지금 이용하고 잇는 순환도로는 1970년에 착공을 하여 3년만에 완공을 하였다한다. 현재는 태종대유원지로 변모를 하여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관광지가 되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태종대를 도는 길은 순환도로의 보도블럭을 걷는 길인데 보도블럭을 걷어 내고 흙길을 조성하면 더 좋은 길이 되지 싶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방면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까지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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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에 와 활을 쏘았다는 태종무열왕은 과연 어디에서 활을 쏘고 망중한을 즐겼을까.

그곳은 등대 아래편에 천길의 단애가 휘둘러져 있는 태종바위와 신선바위가 아닐가 싶다. 태종대를 한때는 신선대로도 불렸는데 태종바위와 신선바위를 합해서 모두 신선대로 불렸다. 언제부턴가 왼쪽의 바위를 무열왕이 쉬었을 법 하다하여 태종바위라 부르고 우측의 망부석이 있는 바위를 신선바위라 부른다.


그 이전에는 공룡들의 놀이 공간이였나보다. 태종바위 일원에 무수히 많은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어 학계의 많은 관심을 가졌다. 공룡의 멸종기때 후기 백악기말인 6500만년~7000만년전에 생선된 발자국화석이다. 그 후 하늘의 선녀들이 하강하여 평평한 이곳 바위에 내려와 놀고 갔다는 전설과 신선들이 이곳의 절경에 반해 장기를 두며 '과연 여기가 무릉도원일쎄' 무릎을 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하여 오늘날에 신선대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곳 신선바위에는 선녀들이 내려와 놀고 아이를 낳고 갔다는 이야기와 그의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한다. 바위에는 아이의 태를 끊은 가위와 실패의 흔적이 있으며 출산한 선녀의 왼쪽과 오른쪽의 무릎이 닿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오른쪽의 흔적이 더 깊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는데 그것은 출산할 때 오른쪽 다리에 더 힘이 가해지기 때문이란다.

 


신선바위위에는 삼각뿔 모양의 바위가 올려 져 신기하기 까지하다. 그 바위를 망부석이라 부른다. 이 바위는 왜구에게 끌려간 지아비를 이 바위에 올라 일본쪽을 바라보며 비가 오나 눈이오나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다 바위로 굳어 졌다는 전설이 있다.



비단 이 여인내만의 이야기일까. 임진왜란 때 끌려간 수많은 우리 백성과 도공등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런 아픔이 스며 있는 이곳 태종대 신선바위는 주말의 무이파로 인해 그때의 울분을 토하는 듯 파도 소리만 더욱 요란하게 울릴 뿐이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남포동 6번출구를 나와 8번,30번, 88번을 이용하면 되고 부산역방면 9번 출구에서 88번 101번을 이용하면 태종대까지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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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전야제는 모두 해 뜨는 관광지로 서로 가려고 아우성이다. 주로 동해 정동진, 낙산사등 강원도를 먼저 생각을 할 것이다. 그 것도 아니면 공업도시인 포항, 호랑이 꼬리인 호미곶이 아닌가 추측을 할 것이다. 그러나 틀 린 말이다. 한반도 아니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 울산시 울주군과 양산시에 자리하고 있다. 산으로 치자면 영남알프스의 최고봉인 가지산이다. 가지산이 가장 먼저 해뜨는 것을 볼수 있어나 바닷쪽으로 긴산등성이가 가로막아 바다에서 떠 오르는 해를 볼 수 없고 양산시 상북면과 웅상읍에 걸쳐 있는 천성산이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가 있는 곳이다. 그럼 산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는 어디일까. 가장 빠른 일출 장소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의 간절곶 이다, 그래서 2000년 1월1일부터 매년 해 맞이 행사를 하고 있어며 간절곷이란?,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먼바다로 나가면서 육지쪽으로 바라보면 서생면의 돌출된 지형인 간절곶이 긴 간짓대처럼 보여 이름이 유래 되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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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 설치된 등대로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일출을 볼 수 있다 한다.

 

그 간절곶에는 등대와 소망우체국, 대마도로 건너간 부군을 기다리는 박제상의 가족 동상, 새천년의 비상이란 기념비와 동방의 햇불이 여기 간절곶에 조형물로 만들어져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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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 등대는 동해 바다를 지나 다니는 선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1920년 3월부터 등대의 불 빛은 꺼지지 않고 동해바다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그 불빛은 46km밖에서도 등대불을 볼 수 가 있다 한다. 등대탑의 높이는 17m이고 8각 콘크리트로 설치되어져 있다. 현재는 개방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4~5시까지 관람을 할 수 있다 한다. 그 앞에는 2000년 1월1일 새천년을 기원하며 세운 “새천년의 비상”이란 조형물이 웅장하게 서 있다. 신성하며 장수와 복을 가져다 주는 거북이로 기단을 만들어 울주군의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그옆으로는 소망우체통을 볼 수 가 있다. 높이 5m, 둘레 2.4m, 무게 7t으로 규모가 엄청 큰 우체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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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으로 소망을 담아 보내는 소망우체통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 무료엽서로 인해 선거법 위반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울주군에는 독특한 산이름이 있다. 이름하여 치술령, 치술령을 올라보면 동해바다를 훤히 볼 수 있는 망부석 또한 볼 수가 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미사흔을 구하고 대마도에서 화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신라충신 박제상, 그 망부석에 올라 돌아 올 부군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그의 혼이 파랑새가 되어 은을암에 숨어 들었다는 이야기가 모두 간절곶의 세모자 동상에서 볼 수 있다.

박제상을 기다리는 세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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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끈쥔 주먹의 어부과 모습과 함께 동해의 파도가 춤을 추는 간절곶에서 추억을 한번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간절곶 옆 서생면 대송리 평동의 수연횟집(대표 지연근 052-238-9023)을 소개한다. 자연산 회만을 고집하는 이집은 주인장이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 오기 때문에 계절에 맞는 횟감을 내 놓아 항상 싱싱한 육질의 회맛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매운탕 맛이 자연산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맛에 담백하며 숟가락이 절로간다. 밑 반찬 또한 바닷가에서 채취한 자연식단을 채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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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만을 고집하는 수연횟집, 광어 참돔 우럭 달게이 꼬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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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류인 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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