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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주정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처사 장내강이 피난처로 정한 곳으로 그 이후 인동장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1957년 옥봉 아래에다 옥봉정의 재사를 짓고 고례리 양지마을과 음지마을, 구석촌등지에서 세거를 이루고 살았다.
음지마는 현재 밀양댐 아래에 위치를 하며 순조때 진사 장창익이 살았다 한다.
구석촌은 거북모양의 바위가 많이 있다하며 인동장씨의 낙주 장선홍이 조선조 숙종때 처음 자리를 잡았다.
장창익의 아들인 장응구는 효자로 명성을 날려 광무2년인 1898년에 고례마을 입구에 삼성각이란 효자각을 세워 그의 효심을 받들고 있다.
1918년 장씨문중에서 장제산 아래인 시리소 절벽에 낙주정을 짓고 그의 선조인 낙주 장선홍과 농산장영석을 추모하기 위해 낙주정이란 누각(재사)을 지었다.
고사천이 감도는 시리소 절벽에 지은 낙주정은 그 주위의 풍경이 마치 산상의 별구에 감탄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은 잡목으로 인해 고사천과 주변의 산들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감도 있지만 뛰어난 경치로 점필재 김종직은 말년을 이곳 사회동의 농암대에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찾아와 그 뛰어난 승경에 취해 많은 시를 남겼다.
현재의 고례 이름 또한 그의 영향이 크다하겠다.
1051번 지방도에 인접해 있는 낙주정은 임경대, 강정,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사천의 시리소 모습이다. 좌측 바위 위로 낙주정이 있다.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시릿 절벽과 그 위의 낙주정의 모습



삼성각의 효자각


옥봉정
찾아가는길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부산역 기준 오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등 여러 편 있다. 해운대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도 오전 7시45분에 출발한다. 밀양터미널에서 고례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오전 6시40분, 12시 등 하루 4회 운행.

부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 양산IC에서 내린 후 언양 경주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어곡공단 에덴밸리리조트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배내골 표지판을 보면서 에덴밸리리조트를 넘어야 한다. 고점사거리에서 우회전, 7분만 가면 선리에 닿는다. 고점사거리로 돌아가 밀양댐 단장 방향으로 우회전, 15분쯤 가면 고례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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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둘레길은 고가인 정자 또는 누각, 그리고 산과 들, 하천을 끼고 도는 것이 전부이다.

마을마다 숱한 전설과 이야기 그리고 애환이 스며 있는 밀양의 둘레길은 그중에서도 단장면에 와 절정을 이룬다.
이번에 걷고자하는 바드리 둘레길은 밀양의 3대 고지의 마을에 속한다.
일이 오치요,이가 소월리로 현 바드리를 말하며 삼이 감물리로 밀양의 대표적인 오지마을이다.
먼저 바드리를 가기위해서는 표충사 입구 삼거마을에서 삼평교를 건너 우측 산비탈을 돌아 바딜리 고개를 오르는 도로가 제1코스요 고례리 평리마을 입구에서 산비탈을 타고 오르는 임도가 제2코스이다.



 
차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은 두 곳이며 나머지는 등산길과 옛길이다.
그래서 바드리 마을을 오르는 옛길을 범도마을에서 찾아 보기로 하였다.
먼저. 아불마을에서 하차를 하면 우측으로 제2아불교가 보이고 삼거리 길이다.
 
아불마을의 옛 지명은 아화라고 불렸는데 옛날 스님이 지나가면서 이마을에 불이 난다고 이야기를 하였지만, 마을에서는 대스럽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한다. 그 후 2년만에 스님의 예언대로 마을 전체에 불이 나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불이 나고 난후 부처님의 가호를 바란다는 뜻에서 아불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아불마을에는 아직도 공동 빨레터가 있으며 한때는 작은 주막거리에 불과하였지만
1922년 표충사에서 사립표충학원을 설립하고 그후 태룡초등학교 산동분교를 설립하며 마을의 규모는 점차 커져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범도마을은 버스에서 내려 밀양댐 방향으로 들어서면 된다.

이곳부터 평리까지 이팝나무가로수 길이 조성되어 봄이면 이팝꽃 축제 행사도 하고 있다.
밀양댐이 생기면서 조성된 이팝나무길이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에게 또다른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쉬엄쉬엄 600m를 걸어면 범도리의 중심마을인 범도마을과 만난다.
이곳의 지형이 행주형으로 배가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선수가 정각산이며
선미는 뇌암산으로 백마산 아래 번데기마을 뒷산을 노 끝을 삼아 나아가는 배의 형국이라 한다.
범도마을 뒤로는 미물산(메물산.374m)이 백마산과 연결되고 마을 앞으로는 단장천의 일부인 고사천이 흐른다.
이곳에 범도연 또는 도연으로 불리는 검푸른 소가 있다.
이곳 마을의 지형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돛단배와 같은 지형이라 예로부터
이 마을에는 우물을 파면 배에 구멍이 생겨 침몰한다는 속설 때문에 집집마다 우물을 파지 않았다 한다. 지금도 마을의 식수는 맞은편 진주동으로 넘어가는 큰골에 물을 받아 식수로 이용한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는 뱃놀이를 즐기기 위해 배를 탔다는 뱃머리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마을의 표지석에서 마을 뒤 산길을 찾아 나섰다.
깻잎 밭의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길이 없다는 대답뿐,
혹 옛날 나무하러 다닌 길이라도 없습니까 물어니 재실을 지나 올라가면 된다한다.
오르는 길은 두길 달성서씨재실인 화친문을 지나면 미물산으로 포장길이 이어지는데
부근이 모두 대추밭으로 도저히 옛길을 찾을 수 가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내려와 우측의 능선을 보고 들어서면 임도길은 밤밭을 돌아 올라 능선으로 진입 할 수 있다.
길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으며 산세가 굉장한 오름으로 이어진다.
잠시 뒤 달성서씨재실에서 올라오는 뚜렷한길과 만난다.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미물산(374m), 이곳에 큰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여름철에 덧자란 수풀이 온 무덤을 덮고 있으며 좌측으로 내려서면 둘레길 다운 산길을 만난다.
직진길과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길로 돌아가면 무덤, 여기서 다시 넓은 임도와 만난다.


표고버섯 재배를 위해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 임도를 따라가면
좌측은 삼거마을로 내려가고 바드리(2.5km)로 갈라지는 삼거리길,여기서 직진인 우측길로 진행한다.
포장길이 이어지지만 밀양 제2의 고지마을 답게 덥지가 않다.
예쁜 별장같은 집과 또 한채의 민가인 번데기마을을 지나면 백마산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상까지 확인 가능한 백마산은 해발 450m로 분포되어 있는 바드리 마을 뒤에서 불쑥 솟은 것처럼 보인다.
미물산에서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흔히 백마에 비교를 하며 걸어온 둘레길을 백마의 등쪽으로 보면 된다.
머리는 미물산이며 백마산이 꼬리에 해당한다.
산상이 별구인 바드리마을은 일조량이 풍부하여 고랭지 채소와 그중에서는 바드리 무가 전국적으로 알아준다.
당도가 뛰어난 사과등으로 바드리는 현재 풍요로운 산상의 마을을 꿈꾸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백마산 정상에 산사태가 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였는데 소월산(所月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바드리가 되고 소월리로 표기를 하였다.

바드리에서 평리마을로 내려 오는 길을 따라 쉬엄 쉬엄 걸어면
대종교 수도원 앞의 우물에 시원한 냉천수가 장마로 인해 물을 쏟아 내고 있다.
갈림길 여기서 우측 돌아가는 길을 내려서면 뒤돌아 보는 백마산의 위용이 웅대하다.
새로지은 별장 같은 집도 지나고 평리마을 입구인 1051번 지방도로에 내려선다.
좌측이다. 평리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그
 뒤 옛길을 따라가면 황토로 지은 미타원과 만난다.
지장보살을 모신 선원이며 연못에는 거북이를 닮았다는 바위가 있다.
마을 촌로에게 미타원에 대해 물어 보니 원래 그 자리는 논이였으며 몇해전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고 있다며
거북바위에 대해 물어보니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곳을 지나면 마을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당숲이 성지곡아래에 자리를 하고 있다.
그곳을 벗어나면 평리마을회관앞이다.
평리마을은 농암대와 사회동 그리고 배내골에서 내려오는 퇴적물이 쌓여 들판을 이루어 평지를 이루고 있어 평리마을로 불린다.




달성서씨재실

범도연의 모습




바딜리고개







번데기마을

백마산의 모습




바들리마을입구






바드리마을에서 평리로 내려서는 갈림길 부근의 가옥


대종교의 우물










1051번 지방도로 평리마을 입구


미타원과 연못안의 거북바위


평리마을의 당숲

평리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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