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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은 전통의 동래시장 부근에는 많은 문화 유적이 있다. 동래 읍성을 비롯해 송공단, 동래부 객사터, 동래향교, 복천동 고분군등 하루에 돌아보기 힘이 들 정도로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송공단 입구로 앞으로는 동래시장이며 안내판과 문화재임을 알리는 빗돌이 서 있다.


 




송공단으로 대통령 박정희란 각자가 선명하다.



 들어서면 정 중앙에 송상현 순절비가 서 있고 동단에는 조영규, 노개방등을 서단에는 문덕겸등을 모섰다.

좌측으로 별도의 첨단을 만들어 송상현의 첩 금섬등을 따로 모섰다.


양정로타리에 있는 송상현 동상으로 주변에 빌딩 숲으로 가려 있어 상대적으로 외소한 느낌이다.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11호

동래시장 건물 뒤인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229-78에 송공단의 건물이 있다. 임진왜란때 동래읍성을 지키다 순절한 병사와 그리고 끝까지 싸우다 성은 함락되자 송상현은 정원루에서 순절을 하였는데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을 영조18년(1742)에 동래부사 김석일에 의해 세웠다. 여기에서 송상현이 충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들이 송상현이 지키고 있는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길을 내주기를 요구한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길을 빌여 달라”는 통첩을 받고 답글을 보낸다.“싸워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여 주기는 어렵다”는 송상현은 군사들의 수도 열세이지만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내 줄수 없다며 결전을 벌리지만 성은 함락되고 죽음으로 결말을 맺지만 그의 충절을 모신 곳이 송공단이다. 송공단 이전에는 현 동래경찰서 자리가 예전에는 농주산이었다. 그 자리에 임진왜란때 순절한 분의 전망제단을 세웠는데 동래부사 송상현과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등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분을 모셨다 한다. 1742년에 송공단이 세워지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처음에는 동서남북으로 재단을 만들어 북단에는 송상현 조영규 노개방을, 동단에는 유생 문덕겸등을, 서단에는 송상현의 첩 금섬등을, 남단에는 향리 송백등을 모섰다. 처음에는 다대포에서 전사한 윤홍신과 부산진에서 전사한 정발장군을 모두 함께 모섰지만 그후 윤공단에는 윤홍신, 정공단에는 정발장군의 위패를 따로 모시게 되었다하며 송공단에는 동래읍성 전투에서 전사한분만 모시게 되었다 한다. 일제시대 때부터 동래 기영회에서 매년 음력 4월15일에 향사를 지낸다.

그리고 현재의 송공단 안의 모습은 2005년 11월에 충렬사지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을 하여 정면에는 송상현의 순절비와 동단에는 조영규 노개방을 서단에는 문덕겸등을, 별도로 첨단을 만들어 송상현의 첩 금섬을 모시었고 송공단에는 7단 16기를 현재 모시고 있다.

입구 송공단의 현판을 자세히 보면 대통령 박정희라 되어 있다.

송공단의 가을 모습으로 중문을 통해 들어서야 송상현 순절비를 만날 수 있다.

중문의 모습, 이문을 들어서면 된다.

그중에 동래시장 본 건물 좌측의 골목에 작은표지석이 서 있다.
동래부 객사터로 봉래관으로 불렸다며 지금은 모습을 찾을 수가 없고 위치만 알리고 있다. 객사에는 조선시대때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목패를 봉안하여 배례를 올리던 곳이며 서울에서 지방으로 관리가 내려 오면 관원들의 유숙장소로 이용을 하였다, 그리고 외부의 손님들이 찾아오면 영접하고 회의실로도 이용을 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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