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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삼릉 가는길 천관사지 여행. 경주 천관사지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과 그의 젊은 날 연인이었던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경주 천관사지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학창시절 김유신과 함께 등장하는 천관녀의 이야기는 골치 아픈 다른 수업시간에 비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저장되어 장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잊지 않고 김유신 이야기만 나오면 천관녀가 함께 떠오릅니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243

김유신과 천관녀의 전설 경주 천관사지 연락처:054-481-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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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경주의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경주 남산과 연결된 마석산 산행을 하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곳 지명이 말무덤이 있었고 산 이름도 마석산이고 저수지도 있고 해서 막연하게 이곳이 천관녀 집 앞에서 김유신에게 칼을 맞아 죽었다는 그 말무덤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천관녀가 있었다는 집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위를 보면 절터가 있었을 듯한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김유신이 술 한잔을 걸치고 졸면서 말을 타고 오는 길과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경주시 외동읍 북토리의 그 말무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말무덤은 맞는데 김유신에게 칼로 베어 죽었다는 그 말의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울산 치술령의 망부석으로 유명한 신라충신 박제상이 일본으로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타고 온 말의 발목에 편지를 매달아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이게 그만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지쳐 이곳에서 죽었었습니다.

마을 사람이 불쌍해서 고이 묻어주었던 게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오며 현재도 그 말무덤이 남아 있다 합니다.

 


김유신의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주시 교동 인근 탑동에 천관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천관사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근에 경주 ‘삼릉 가는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마침 천관녀의 전설이 있는 천관사지 앞을 지나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전설로만 알고 있던 곳을 또 한곳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그저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만 아주 짧게 나와 있어 인터넷을 뒤적이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를 보게 되었습니다. 

천관사지에 관한 방대한 사진과 자료가 상세히 나와 있어 내심 반가웠습니다. 

천관사지보고서를 보면 천관사에 관한 남아 있는 기록 중 가장 빠른 게 고려 명종 때 이인로(1152~1220)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이며 그다음은 고려 중기 이공승(李公升 1099~1183)이 천관사를 지나면서 지은 시가 있다 합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김경신(金敬信 785~798)이 천관사의 우물로 들어간 꿈을 꾸고 왕위에 올랐다는 원성왕에 관한 기록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주부 고적조에서 천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고려 중기 이공승이 찾았을 때까지는 천관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우리가 전설로 알고 있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입니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항상 김유신에게 엄한 가르침으로 가정교육을 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김유신이 천관의 집에 머무르고 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명부인은 김유신에게 따끔한 가르침으로 아들을 타일렀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앞으로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김유신은 술을 먹고 피곤한 나머지 말 위에서 잠깐 졸았는데 깨어나서 보니 천관녀의 대문 앞이었습니다. 

천관녀가 반가운 마음에 벗은 발로 뛰쳐나왔지만, 김유신은 “어찌 주인의 마음을 모르느냐”며 타고 온 말의 목을 베고 말안장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에 천관녀는 실망하여 김유신을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으며 그게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성취하고 천관녀의 집을 다시 찾았으나 집은 사라지고 터만 있어 절을 짓고는 옛 여인의 이름을 따서 천관사라 하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합니다. 

천관사지는 경주시 교동 244번지 일대이며 사적 제34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천관사지는 도당산아래 구릉지로 1960년 이전에는 대부분 밭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보문호가 완공되고는 이곳에 농수로가 연결되어 밭을 계단식 논으로 개간했습니다. 

지금의 옛천관사지는 빈터로 변해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당시 논으로 바꾸는 개간공사를 하면서 천관사지의 유구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탑지는 작은 둔덕을 이루며 지대석 서면이 노출된 상태였고 논두렁에는 기단갑석 3매와 장대석 초석 등이 논의 축대를 쌓으면서 보강하는데 사용되었다”라했습니다.

 천관사지의 석탑 기단부에서 발견된 팔부신장상등과 1974년 3월에 ‘대태각’ 명의 석장이 발견되어 고물상에서 찾는 등 천관사지에서 출토된 석재와 초석의 많은 석물이 외부로 반출되어 인근 학교 정원의 조경과 가정집의 장독대나 담장, 디딤돌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천관사지의 훼손상태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천관사지의 규모를 보면서 한쪽에 남아 있는 깨어진 석재가 사실 몇 개 없는 것을 보고는 이상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천관사지 발굴조사는 2000년 5월 25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탑지 1개소와 건물지 2곳, 우물 1곳, 석조시설 1곳 등을 조사하였고 그 이듬해 5월에 건물지 6곳과 우물 2곳, 석조시설 1곳과 담장, 배수로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유구 훼손 방지로 복토한 상태입니다.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

국립문화제 연구소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2004년) 사진 캡쳐



천관사지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특이한 점은 팔각삼층석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천관사지 팔각삼층석탑 부재인 팔각연화문옥개석이 전시 중이며 다음 기회에 경주박물관 여행을 할 때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탑지의 부재와 상세한 천관사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문화재청의 경주 천관사지 발굴조사보고서(http://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jsessionid=WGB8Vd8JfK0javzSzjuPqLZuaOaBc3jd1pbyGJTF8gFdqRazgD9sMdjOjuYWWhlZ?nttId=18160&bbsId=BBSMSTR_1021&pageUnit=10&searchCnd=&searchWrd=&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mn=NS_03_07_01)를 참고하세요. 내용이 빵빵합니다. 

저도 보고서를 저장해 놓고 다시 한 번 더 보고서를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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