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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부북면 퇴로리 '오구' 촬영지 여주이씨 고가를 보고 왔습니다.

 

경북에는 안동이 있다면 경남에는 밀양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나요. 조선시대때 경북에는 안동이 양반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면 경남에는 밀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ㅎㅎ 밀양에도 많은 양반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밀양 교동이고 또한 손숙장관이 나왔던 산외면 다죽리 그리고 부북면의 퇴로리등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양반의 득세가 얼마나 센지 박정희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대구에서 밀양으로 통과하게 하였는데 밀양의 양반님들이 시끄럽다고 우리 동네로는 통과 할 수 없다며 강력 반대 하여 경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할 정도입니다.

 

 






지금이야 신대구고속도로가 생겼지만 밀양의 발전이 그 덕택으로 더 늦어졌다네요. 이야기가 옆길로 빠진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밀양 부북면 퇴로리의 여주이씨 고택입니다.

 




 

퇴로마을에도 유독 고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황토 담장을 돌려놓은 기와집의 모습은 그 당시 세도가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특히 퇴로리의 중심에는 여주이씨 고가가 마을을 대표할 정도로 큰 규모입니다.

 









퇴로마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 오른쪽 개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돌면 큰 고택의 담장이 연결 됩니다. 그 왼쪽으로 따라 갑니다. 마을 길 끝에 ‘오구’ 촬영지라며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먼저 만나는 이병수 고가로 근대문화유산이며 등록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에도 그의 후손이 살고 있고 담장이 높아 발끝을 들어도 집안 내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오른쪽으로 흙 담장을 따라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주이씨 고가의 규모가 엄청 큰 데요. 필자는 이병수 고가에서 왼쪽 골목으로 돌면 좌우로 아름다운 흙 담장과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한바퀴를 돌면 이익구 고가 앞에 닿습니다.

 




이곳에는 문이 열려 있으며 최근에 대문이 수리가 된 것 같습니다. 여주이씨 자유헌공파의 종갓집으로 1890년 이만백의 7대손인 항재 이익구(1838~1912)가 마을에 입주하면서 세웠다합니다. 조선시대 후기 지방 선비의 집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합니다.




 

필자가 대문을 통해 들어가 보았습니다. 흙과 돌을 섞어 기와를 올린 담장으로 구분을 하였는데 같은 형태의 고가가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정침 안채는 정면 7칸, 측면2칸의 규모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청덕당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서익랑과 정면5칸과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에 ‘성헌’의 현판이 걸려 있는 중사랑이 안채와 마주보며 자리하고 출입문 왼쪽에 종가사당 건물이 배치되었습니다. 중사랑 앞의 작은 문이 열려 있는데 그 문으로 나가보니 또 하나의 건물이 비슷한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별채로 청덕당인 안채의 동쪽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항재 이익구의 손자인 후강 이재형(1891~1970)이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여 지어진 건물로 안채와, 동서익랑, 사랑채로 지어졌습니다.

 



 

안채는 정면7칸과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사현합‘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사랑채는 정면5칸에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팔작지붕을 이루며 쌍매당의 당호가 걸려 있고 또한 후강유서, 담재, 청덕고가의 현판이 함께 걸려 있어 있습니다.


 





 


 


쌍매당의 남쪽으로 통하는 쪽문이 이병수의 고가로 통하는 문으로 보입니다만 문을 걸어 놓았습니다. 항재 이익구의 차남이 분가하였던 집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一‘자형 안채와 서쪽에는 ’ㄱ‘ 사랑채, 안채와 마주보고 곳간채가 자리한 형태입니다.

 







특이한 점은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과 건물의 배치를 따랐지만 전, 후퇴 공간의 확장과 건물의 내부 수납공간을 크게 하는 등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보여 주며 사용된 재료 또한 기존과 다르게 근대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하였습니다.

 




퇴로마을에는 앞으로 퇴로 수리못 또는 가산저수지, 용호, 남호로 불리는 큰 저수지가 있습니다. 1931년 일제 강점기때 만들어진 저수지로 둘레가 10리나 됩니다.  퇴로마을은 앞으로는 가산저수지, 뒤로는 돛대산이 둘러 싸여 아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돛대산 정상 인근에는 인위적으로 지맥을 끊은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였던 이여송이 조선의 산천지리를 술사와 살피며 큰 인재가 날 만한 곳은 산의 맥을 끊었다합니다. 그 때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퇴로마을에는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여주이씨의 청덕당과 쌍매당터가 예로부터 명당터로 마을에서도 명당이라 부릅니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5월의 꽃 이팝나무가흐트러지게 꽃을 피우는 위양지와 함께 밀양의 고가 여행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4/04/01 -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위양못(위량지). 5월이면 사진작가의 단골 출사지인 위양못에 댕겨 왔습니다. 이팝꽃은 없지만 역시 밀양8경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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