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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진산은 망운산이다. 그 산자락안에는 망운사과 화방사 두 사찰이 있다, 모두 쌍계사의 말사이며 망운산화방사는 신라 신문왕때 원효대사에 의해 보리암, 용문사와 함께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폐사되었다가 고려시대에 들어와 진각국사 혜심스님이 순천 조계산 수선사(현송광사)에서 남해를 바라보니 항상 남해 바닷에 떠 있는 섬에서 영기가 서려 있어 이곳 망운산 연죽사의 옛 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연죽사가 있던 위치에서 조금 이동하여 영장사로 지었다. 임진란때는 왜구와 맞서 싸우는 승병들의 은거지 였고 그래서 인지 임진왜란으로 영장사는 화재로 인해 전소되고 만다. 그 후 전란이 끝나고 서산대사의 제자인 계원과 영철 두 스님이 와 마을 신도들의 도움으로 중건을 하였다. 절 이름을 풍수지리로 연꽃의 중심에 앉아 있는 자리라하여 화방사로 바꾸었다. 화방사는 여러번의 화재와 전란으로 문화재등 모든 사료들이 사라지고 없다. 1981년에 화방사는 대 화재로 인해 사찰이 전소되었지만 현재의 절 규모는 그때 전소되었던 보광전 자리에 1984년 대웅전을 중건하면서부터 사찰의 규모를 갖추었다. 그러다 보니 옛 사찰의 분위기는 반감되고 현대미와 인공미가 너무 드러나 천년고찰의 분위기는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란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승병들의 근거지로 호국사찰이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겠다.

지금 현재의 남아 있는 건물은 거의 없고 채진루만 1638년에 계원대사가 지어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주문을 통해서 대웅전을 올라오는 계단 왼편에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임진왜란때 왜구에 의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신도들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다. 채진루는 정면 5칸에 측면 3칸으로 人자인 맞배지붕으로 건립되었다.




1638년에 계원대사가 지어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일주문을 통해서 대웅전을 올라오는 계단 왼편에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는 건물로 임진왜란때 왜구에 의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신도들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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