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주여행/남산여행)경주 남산을 지대석으로 삼아 쌓은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 여행. 

경주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경주 남산 용상사지 3개의 보물 증에서

마지막으로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을 포스팅하겠습니다.

2021/02/25 -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북여행/경주여행)용장골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 여행. 경주에서 야외박물관으로 불리는 남산 용장사지 두 번째 여행은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입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

yahoe.tistory.com

 

용장사지에는

경주 남산 용장사지마애여래좌상과

경주 남산 용장사지석불좌상이

용장사 옛터 동쪽 능선에 남아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주소: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

 

경주 남산 용장사하면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분인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용장사는 조선 초기 이후까지는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현재 용장사터는

조릿대가 무성한데

석축 등이 남아 있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입니다.

자연 암반을 하단의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다 윗 층 기단을 올렸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yahoe.tistory.com

이를 두고 용상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이 받치고

있다고도 이야를 합니다. 

이 때문에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경주 남산의 석탑을 대표한다 하겠습니다.

윗 층 기단의 네모서리에

우주와 가운데 탱주를 조각 했으며

상대갑석은 2장의 판석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탑신은

지붕돌과 몸돌을

따로 쌓았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부터는 그 크기가

급격히 줄어 듭니다.

 

2021/01/27 -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경북여행/건천여행)건천편백숲내음길~경주 건천 오봉산 트레킹길 원점회귀 산행 삼국유사 지기삼사(知幾三事)편에 서기 636년 신라 27대 선덕여왕 5년, 동장군이 엄습한 겨울인데도 경주 서쪽

yahoe.tistory.com

 

지붕돌은

4단의 층급받침에

직선의 처마,

들려진 귀퉁이는

날렵하고  경쾌합니다.

상륜부의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뒹굴던 부재를

1922년에 복원했으며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은

1963년 1월

보물 제186호에 지정됐습니다.

 

2021/02/18 -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경주여행/남산여행)삼릉숲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여행. 경주 남산입곡석불두 방가방가 이번에는 경주 배동 삼릉에 있는 여러 석불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데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경주 남산입곡석

yahoe.tistory.com

 

728x90

728x90


 (경북여행/경주여행)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과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여행.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경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는 문화재 중 하나가 신라 왕릉입니다. 

신라는 935년에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 의해 망할 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왕조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왕릉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아마 경주 왕릉을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을 잡아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5




2017/12/14 -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월정교. 신라 최고의 다리였던 경주 월정교 복원 공사가 끝나갑니다. 월정교

2017/04/11 -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향교 대성전. 조선시대 교육기관 경주향교 여행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2016/11/05 - (경주여행)경주 신문왕릉. 문무왕의 뒤를 이은 신라 31대 신문왕릉을 여행하다. 경주 신문왕릉

2016/10/31 - (경주여행)신라 27대 선덕여왕릉.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낭산 도리천의 선덕여왕릉 여행과 세가지 예지력.



 


그리고 경주의 많은 왕릉은 29대 태종무열왕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무덤 주인을 밝히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와 유사한 기록을 보고 후대에서 모두 비정한 상태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도 삼국사기의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을 근거로 1730년경에 경주김씨 문중에 의해서 비정된 상태라 합니다.



하도 왕릉이 많아서 훌륭한 업적이나 치적이 많지 않아 생소한 왕도 있습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 찾았던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은 약 400m 거리를 두고 다정하게 있습니다. 

이 두 분의 능은 경주 통일전 옆 남산자락에 있습니다. 

여느 왕릉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예스러움이 가득 묻어나 경건하게 옷매무시를 고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신라건국을 한 6촌장중 한 분의 후손으로서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헌강왕릉을 보고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정강왕릉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헌강왕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왕입니다. 

신라 49대 왕이며 성은 김씨 이름은 정(晸)이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알려진 경문왕의 아들입니다. 

875년에 즉위해서 12년간 통치했고 886년에 승하했습니다.

 


헌강왕 재위 시절의 통일신라는 태평성세를 누려 서라벌 민가의 지붕은 모두 기와를 올렸으며 밥은 나무 대신 숯으로 짓고 온 장안에 노랫소리와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고 합니다. 

일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을 바쳤을 정도였다 하니 말입니다. 

또한. 헌강왕 시절에 ‘처용무’도 만들어졌습니다. 

하루는 헌강왕이 울산지방의 세죽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물가에서 여유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구름과 안개가 껴 천지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한 짓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강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려 이곳에다 동해 용왕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습니다. 

이러하여 개운포라는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이 자신을 위해 절을 짓고 망해사라 한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곱 왕자와 함께 헌강왕 앞에 나타나 왕의 성덕을 찬양하였습니다. 

용왕의 왕자 중에서 한 명을 궁궐에 남게 하여 헌강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게 했는데 그 왕자가 처용이었습니다. 

처용이 하루는 궁궐에서 늦게 귀가하자 아내를 범하려는 천연두를 옮기는 귀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용이 자신이 지은 노래와 춤을 추어 역신을 물리쳤다는 설화인데 그때 춘 춤과 노래가 오늘날의 처용무입니다. 

처용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2009년 지정되었습니다. 

헌강왕릉의 높이는 약 4m이며 능의 지름은 약 15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입니다. 

현재 헌강왕릉의 하단부에 4단의 호석을 두른 상태입니다.


신라 제49대 전헌강왕릉



1993년 왕릉 내부 조사과정에서 벌써 도굴된 상태였으며 길이 142cm, 너비 128~96cm 크기의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는 구조입니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에다 벽면은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천장으로 올라갈수록 원형으로 모이는 형식입니다.











정강왕릉은 신라 제50대 왕을 지냈습니다.

 경문왕의 아들로 헌강왕의 아우였습니다. 

이름은 ‘황(晃),’ 헌강왕이 승하하자 태자 요(嶢)가 돌이 안 된 어린 나이였기에 김황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886년에 왕위를 이어받아 1년간 재위하다 887년 승하했습니다.



신라 제50대 정강왕릉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53




워낙 재위기간이 짧아 뚜렷한 업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황룡사에서 열린 백고좌에 참석하였고 이찬 김요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압했을 정도입니다. 

봉분의 높이는 약 4m이며 지름은 약 15.5m로 헌강왕과 마찬가지인 원형 봉토분입니다.

 봉분 아래쪽에 2단의 호석을 돌렸는데 맨 아래쪽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다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았습니다.

능 앞에 1장의 넓은 돌인 상석이 있고 그 앞에 장방형의 돌을 다듬어 석단을 만들었습니다. 

 






헌강왕름과 정강왕릉의 호석에 관한 새로운 재기를 발표한 논문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에 관한 위덕대학교 이진락교수님의 연구 논문입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호석구조는 민애왕릉과 비숫하며 두 왕릉의 요석 층수는 4단과 2단이 아니라 모두 3단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나오는 1910년대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기록사진과 1995년 경주 문화재 연구소에서 간행한 ‘헌강왕릉보수수습조사보고서(憲康王陵補修收拾調査報告書)’에 나오는 헌강왕릉 토층단면도 등 자료를 비교 분석하였다"는 이진락교수님의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의 호석 원형에 대한 일고찰’의 논문에서 입니다. 


신라 제50대 전정강왕릉



그러니까 논문은 두 왕릉 모두 지대석 위에 3단 요석, 그 위에 갑석을 올린 형식이라 합니다. 

이진락교수님 논문의 일부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면 헌강왕릉은 4단 호석이고 정강왕릉은 2단 호석으로만 그저 알고 넘어 갈 뻔 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왜 다른 호석을 했는지 문화재청의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헌강왕릉과 전정강왕릉 호석은 이러한 사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728x90

728x90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 통일신라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를 만나다. 


경주보문사지당간지주는 보물 제123호에 지정되었습니다. 당간이라 하면 사찰에서 의식이 있으면 절 입구에 내다 거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말합니다. 이 당간을 지탱해주는 받침대를 당간지주라 하는데 두 돌기둥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나란히 솟아 있습니다.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는 그 높이가 380cm이며 통일신라 시대 사찰로 옛 절터의 기왓장에서 ‘보문’이란 명문이 발견되어 보문사 절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와 함께 보문사 금당과는 제법 많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보문사 옛터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는 보문사지 금당터에서 서남쪽으로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두 기둥이 64cm 거리를 두고 남북방향으로 서로마주모고 있습니다. 마주 보는 안쪽과 바깥면 그리고 좌측과 우측면에는 아무런 조각장식이 없는 밋밋한 형태인데 단 바깥 측면은 양쪽 모서리를 깎아내어 각을 죽였습니다.

 

 

두 돌기둥에서 북쪽 돌기둥의 기둥 상부는 절단되었으며 마주한 남쪽 돌기둥은 원래 모습 그대로 온전한 상태입니다.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의 특징은 안쪽은 평면인데 반해 그 외 삼면은 아래쪽은 잘록하고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모양새입니다.

 

 

또한, 두 돌기둥에는 상·중·하로 각각 3개의 네모난 구멍이 뚫렸는데 상부가 절단된 북쪽 돌기둥은 구멍이 반쯤 뚫려 있으며 그와 반대로 남쪽 돌기둥의 구멍은 관통해 있어 당간을 고정했던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모양의 당간지주를 봤습니다.

 

 

두 돌기둥에 관통된 구멍은 많이 봤지만, 한쪽 기둥에만 구멍이 관통된 것은 매우 드문 형태이며 두 기둥 사이에 설치된 당간 받침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폐사지인 보문사의 규모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에 비해 당간지주는 장대하면서도 소박합니다. 또한, 수려하지 않지만 잘빠진 모습을 하고 있어 통일신라 예술의 진수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 문화재 지정:보물 제123호

경주보문사지 당간지주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856-3 

 

728x90

728x90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보문사지 석조. 보물 제64호 절에서 물을 담아두는 돌그릇인 경주 보문사지 석조를 만나다.


경주보문사지석조입니다. 석조는 돌로 만든 수조입니다. 절에서 물을 담아두는 돌그릇을 말하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문사지는 신라 시대에서 신성시했던 낭산과 명활산성 사이의 보문들에 남아 있는 폐사지로 보문사란 명문이 새겨진 기왓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에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보문사지 주소: 
경북 경주시 보문동 848-6



보문사로 인해 오늘날까지 이곳의 지명이 보문동으로 불리고 있으며 보문사 터의 규모를 보면 부처님을 모셨던 금당 터의 부재와 삼국시대에 성행했던 동·서의 목탑 터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필자의 짧은 지식이지만 황룡사 9층 목탑은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선덕여왕에게 청하여 불법으로서 왜적을 막으려 9층 목탑을 완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정교함이 만만치 않아서 그런지 왜!! 백제의 장인인 아비지를 불러 완공했는지 의문입니다. 신라에서도 많은 장인이 있었을 텐데요??? 이곳 보문사지에도 그런 유의 목탑인지 알 수 없지만 실제 동·서 쌍탑으로 있었다 하니 어떤 모습이었던지 궁금합니다.



목탑이라 하면은 불상을 모시고 또한 대부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높이의 크기였습니다. 보문사의 입구에 세웠던 당간의 받침대인 당간지주 등이 옛 보문사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문사지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로로 긴 직육면체로 생긴 돌 안쪽을 넓고 깊게 파내었습니다. 그리고 안쪽과 바깥쪽에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깨끗하며, 밋밋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이 석조는 물을 빼내었던 구멍이 실제 존재 하여 수조로써 사용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논바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6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728x90

728x90



(경주여행/경주가볼만한곳)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추정되는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를 여행하다.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황사와 절터인 황룡사지 중간에 하늘을 받치듯 우뚝하니 두 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름하여 당간지주인데 경주 구황동에 있어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라 부릅니다. 보통 옛날 절터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으면 그 동네 이름을 따오는 게 관례인데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도 그에 따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 주소:경북 경주시 구황동 315-2



옛날 절에서 사찰의 소속이라든지 절을 알리기 위해서 또는 여러 가지 일로 당이라는 깃발을 달았습니다. 깃발을 달던 깃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고정했던 장치를 당간지주라 합니다. 똑같은 형태를 한두 개의 돌기둥이 서로 마주 보게 세워졌으며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 남쪽인 입구에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 당간지주의 형식을 따랐으며 높이는 360cm에다 두 기둥 사이에 특이하게도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 돌거북이를 당간 받침돌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다른 당간지주를 보면 돌거북이를 받침돌로 사용했다는 점은 극히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당간을 고정하는 기둥에는 3개의 구멍을 설치했는데 이는 당간지주의 일반적인 형태이며 양 기둥을 서로 관통하도록 했습니다. 경주 구황동 당간지주는 분황사 담장 밖에 나와 있어 황룡사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 추측하건대 정황상 분황사 당간지주였을 것 같습니다.


2016/10/23 - (경주여행)전 홍유후 설총묘.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던 신라 대문장가 설총묘 여행. 설총묘

2016/10/19 - (함안여행)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2016/10/19 - (함안여행)고려동유적지. 조선에 있었던 고려땅 고려동을 아세요. 함안 고려동 유적지.

2016/10/16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다.

2016/10/14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석 귀부였던 국립경주박물관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을 보다

2016/10/13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불두(부처머리). 1959년 사하라 태풍의 선물(?)이라는 경주 남산 철와골에서 발견된 초대형 불두를 경주 박물관에서 보다.

2016/10/12 - (경주여행)국립경주박물관 장항리 석조불입상. 도굴꾼에 의해 다이너마이트로 파괴된 장항리 석조불입상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복원된 상태로 만나다.



728x90

728x90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전체가 문화재 실감

 

경주에는 길거리에 뒹구는 돌맹이도 문화재란 이야기를 한다. 그만큼 흔한게 사실이고 지금 이리 굴러 다니는 돌맹이도 그 당시 부터 굴러 다닌것이기 때문이다. 그 만큼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얼마나 많으면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시내버스주차장이 있다. 그곳 한켠에 가면 이리 석불입상이 서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 전체가 문화재 실감. 경주 노서동 석불입상

행색이야 초라한 모습이지만 엄연히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천년이상을 그 자리에서 지켜왔다. 모습이야 험난한 세월을 겪어선지 너무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불두는 처참하게 깨지고 불신은 또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다.

 

 

 

 

 

 ☞(경북여행/경주여행)경주국립공원 노서동 석불입상. 남항사의 석불입상...

 

광배는 머리둘레의 두광과 몸둘레의 신광이 2중선으로 처리가 되어 있으나 신광의 선은 형체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서 북쪽 인근에 삼랑사터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삼랑사 남쪽에 남항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곳을 남항사터로 추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이곳은 경주시내버스 주차장으로 하루 수백 아니 수천대의 버스들이 드나들고 있는 버스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경북여행/경주여행)노서동석불입상. 현재 경주시내버스 주차장

 

옛 절터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서도 전혀 알 수 없고 이곳 전각 안의 불상만이 매연을 뒤집어 쓴체 그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100m 거리에 자리한 석불입상이 주차장 한쪽 귀퉁이에서 옛 남항사 절터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 왠지 가슴이 먹먹하다.

 

 

 남항사에는 신라 효소왕때 11면 관음보살이  삼랑사 경흥스님의 병을 완치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사찰로 현재 그 사찰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1호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56-8

찾아가기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와 형산강 강둑 큰 도로를 따라 100m가면 경주시내버스 정류장이다. 그곳에 위치하고 있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