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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객들에게는 순천의 조계산을 봄의 산으로 여기고 많이 찾는 명산의 대열에 올린다.
그래서인지 봄이면 빠지지 않고 한번씩 가는 산으로 여겨 선암사에서 장군봉을 경유 송광사로 하산을 하는 종주산행을 주로 한다.
그러다보니 꼭 빠지지 않고 들리게 되는 선암사 절집. 승선교와 강선루의 절묘한 사진이야기는 작가분들의 촬영장소로 유명하여 한번쯤은 흉내를 내어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지만 선암사는 사실 들어가 보지 않고 바로 통과를 하는게 산꾼들에게는 관례로 여기고 있다.

 


조계산 산행을 수도 없이 하고 취재산행도 하였건만 정작 선암사와 송광사에 대한 남아 있는 사진이 별로 없어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아마 2009년 6월17일에 조계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
그때 선암사에서 아주 큰 행사인 선암사 재적 승려 총회를 하는지 많은 신도와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서 궁금함에 사찰 구경을 하고 가기로 하였는데 선암사 경내는 어수선하여 정신이 없었고. 한켠에는 돌아가신 고노무현대통령님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어 묵념을 잠시하고 사진 몇컷 찍고 나왔다.
사진도 시원찮고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포스팅할 시기를 놓쳐 쳐박아 두었는데 이번 무릎팍에 유홍준교수가 나와 선암사가 매우 아름답고 한국적인 사찰분위기로 추천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이나 용기를 내어 포스팅을 해본다.

비록 철지난 사진이지만 당시 승려들이 승무도 추고 하였는데 산행시간에 쫒겨 그냥 간게 아직도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대목이다.



선암사는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 아래에 자리잡은 천년고찰로 창건시기는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아도화상과 신라말 도선국사의 창건설이 전하는데 남아 있는 유물로서는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하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 와 대각국사의천이 선암사의 암자인 대각암에 머물며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한다. 사세가 번창하여 법당13동,전각12동등 많은 승려가 머물며 수도를 하였고 거느린 암자만해도 19개가 되었다 한다.
이많은 유물들이 정유재란때 왜군의 침입으로 전각등 많은 건물과 암자가 소실되었다 하며 1660년 정유재란 이후 경잠, 경준, 문정대사 세분이 8년간의 각고 끝에 중창을 하였다.
그후 여러번의 중창불사를 거듭하며 순조23년인 1823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명부전등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만다.
다시 해붕, 눌암, 익종대사께서 6번째 중창불사를 단행하였고 청량산으로 고쳐 불리던 산이름도 다시 조계산으로 혜천사의 사찰이름도 원래이름인 선암사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선암사는 1948년인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때 좌우의 대립과 갈등속에서 많은 피해를 보게 되는 운명을 맞았고 조계종과 태고종의 갈등을 겪었던 사찰이다.
사적 및 명성 8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하촌애서 1.5km인 흙길을 따라 사찰 경내를 걸어가는 오솔길은 짙은 녹음으로 이어지고 부도탑을 지나면 왼쪽에 걸린 무지개다리인 승선교가 아치형으로 남아 있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다리'인 승선교와 '신선들이 내려와 노니는 누각' 강선루을 보기 위해서이다.



보물제400호로 승선교 아래에서 강선루를 바라보는 것이 사진작가들의 포인트로 유명하다. 화강암으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리로 규모가 꽤 큰편이며 반원형의 아치로서 가운데부분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숙종39년인 1713년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하였다 한다. 최근에 해체복원공사를 다시하여 현재는 깔끔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삼인당

전라남도기념물 제46호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안에 작은 섬을 조성 하였는데 선암사 사적에 의하면 신라경문왕 2년인 862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축조하였다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일컫는 말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른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릏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는 불교사상으로 이러한 모양과 이름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만 남아 있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불상의 높이는 7m, 넓이는 2m의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마애불이다. 고려하대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은 나발의 머리 위에는 육계가 솟아 있고 상호는 원만하며 이마에는 백호가 둥글게 표시되어 있다.











국제신문 이흥곤 기자의 선암사 해우소에 대한 글을 보면 우리나라 화장실 중 가장 깊고 아름다워 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몸속의 오물과 함께 마음의 욕심도 모두 버리고 가는 곳이다. 아마도 화장실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듯하다.

선암사 곽창남 문화유산해설사는 "이 해우소는 냄새 또한 전혀 나지 않아 지금도 대학 건축 관련 학생들이 찾아와 사진과 함께 짜임새를 조사하는 등 연구대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목장승

이목장승은 조선시대 말엽에 세워진 목장승의 모조로 1987년 9월에 다시 세운 것으로 장승에 새긴 호법선신은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성불을 하게 만드는 착한 신을 뜻한다. 방생정계를 새긴 장승은 이곳 부터는 더욱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매인 것들에게 자유를 베풀어야 함을 뜻한다. 두분 모두 험상 궂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승주IC~우회전 승주 낙안민속마을 선암사 방향~낙안온천 낙안민속마을~삼거리~857번 지방도~선암사 주차자순으로 도로 이정표는 잘 정비돼 있어 길 찾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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