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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자태실

국가 지정 사적제444호

위치=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태실
 
선석산 아래 세종대왕자태실은 선석산 애래 위치한 이곳 태봉(胎峯 258.2m)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의 태실과 단종이 원손으로 있을 때 조성한 태실등 모두 19기가 모여 있다.




태실은 세종20(1438)년부터 24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석물은 화강암으로 사용을 하였어며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온전한 형체로 모습을 유지하며 남아 있다. 그러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금성대군 이외 네왕자는 현재 태실의 경우 사각형 기단만 남아 있고 비석과 기간위의 석물은 모두 파괴되어 권력암투에서 밀려난 세력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수양대군(세조)의 태실로 태봉으로 봉하고 앞에다 가봉비를 세웠다.

세조인 수양대군 태실의 경우에는 왕위에 오른 후 태실을 옮기지 않았다. 그것은 세종이 평소에도 형제들 간의 우예를 강조하였기예 세조는 태실을 옮기지 않고 그 대신 임금의 태실을 태봉으로 봉하고 앞에다 가봉비를 세웠다한다.

태실의 석물을 살펴보자.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지상으로 나온 맨 밑에는 사각형의 기단을 두었다. 그리고 그위에 편구형의 중동석을 올 였다. 맨 위에 보주형의 상륜을 가진 개천석을 올린 구조로 되어 있다. 기단석 아래 지하에는 편평한 판석형의 개석아래에 사각형의 석함을 둔 형태로 되어 있다.각 태실앞에 세워둔 태실비에는

전면에

(大)君名胎藏(우측)

皇明正統*年*月*日 입석(좌측)의 명문을 세로 2줄로 각자하여 태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1977년 정비사업의 과정에서 도자기류 4점과 지석3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경주와 대구박물관 그리고 경북대학 박물관에 소장을 하고 있다.

태실을 오르는 산길 아래로 선석마을과 그리고 관광안내소 주차장, 뒤로 보이는 산이 선석산이다. 태실지를 감싸는 형국으로 좌청룡 우백호에 연꽃의 꽃술에 위치하는 천하의 명당자리라 한다.

태실지를 오르내리는 길은 소나무로 둘러져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한다고 관광 가이드분이 귀뜸을 해준다.

세종대왕태봉 가봉비문

태실구조도

세종대왕자태실 분포도




진양대군의 태실

단종의 태실로 끝에 구석에 따로 위치해 있다.
단종의 태실은 가천면의 태실지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을 하여 이곳으로 옮겼다하는데, 그래서 다른 태실의 석물에 비해 이끼가 전혀 끼지 않았다. 


왕자들의 태실



19기의 석물중 금성대군등 수양대군의 왕위즉위에 반대한 다섯왕자의 석물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다.


왕자들의 태실



태실석물을 보면 지상으로 나온 맨 밑에는 사각형의 기단을 두었다. 그리고 그위에 편구형의 중동석을 올 였다. 맨 위에 보주형의 상륜을 가진 개천석을 올린 구조로 되어 있다. 기단석 아래 지하에는 편평한 판석형의 개석아래에 사각형의 석함을 둔 형태로 되어 있다.

태봉바위에서 본 태실이 안치되어 있는 태봉산으로 연꽃의 꽃술에 비유를 하는 명당

 
이자리에 올라 세종대왕자태실 자리를 잡았다하여 태봉바위로 불린다.

신라 효소왕1년(692)에 창건된 유서있는 사찰로 세종대왕자태실지 와는 500m 떨어져 있어 세종대왕자태실 수호사찰이다. 
세종대왕자태실지를 정리하고 인터넷에 탯줄을 검색하니 깜짝 놀랬습니다.
탯줄을 넣어 밀봉을 한후  도장을 만들어 준다는 업체가 있어서예...
세종대왕자태실도 지금쯤이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명당자리도 필요없고 각자 탯줄도장이나 탯줄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몸에 지니고 다닐수 있어니까예. 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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