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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대구 불로동고분군. 엄청난 규모인 고분군 여행 대구 불로동고분군. 


올해 초 대구여행을 하면서 갔다 왔던 불로동 고분군을 이제야 포스트 합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우리나라의 많은 고분군 중에서 김해 대동면 예안리 고분군과 함께 1978년 6월 고분군으로서는 가장 먼저인 사적 제262호에 지정됐습니다. 

그만큼 규모 면에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대구 불로동고분군 주소: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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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동 고분군의 고분 개수가 214기라 하니 당시 얼마나 큰 토착지배세력이 이곳 불로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팔공산의 남쪽 능선이 낮게 흘러내리며 금호강의 북쪽 충적 평야와 만나는 구릉지대에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시 오래전인 삼국시대 이전의 주거지와 오늘날 주거지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분군이 발견된 주위로 현재에도 많은 집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주거지의 기본요소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주택가의 골목을 4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산의 구릉지에 자리했습니다. 

그 넓이만 해도 약 312,000㎡인데 이는 94,000평이 넘는 대규모로 불로동과 봉무동, 도동 등에 분포합니다.





저도 전국의 여러 고분군을 쫓아다녔지만 아마 제가 본 고분군에서는 가장 대규모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규모 주택가에 있어서 그런지 정말 많은 시민이 휴식을 즐기려고 찾고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구릉지라 걷기에 딱 좋아 보였습니다.







경주의 고분군은 모두 멀찍이 떨어져 보게끔 구분해 놓았지만 불로동 고분군은 고분과 고분 사이로 길이 나 있어 가까이서 고분군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의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8년 처음으로 2기를 발굴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이라 불렸습니다.







1963년 경북대박물관의 발굴조사에서 2기의 고분을 추가 조사하면서 해안면 고분을 포함해서 대구 불로동고분군이라 명명했습니다. 

해안면 고분은 벽면을 축조하면서 산 돌을 이용했으며 바닥은 생토를 깔고 그 위에 다시 모래를 덮고 시신을 올려 둔 듯 보인다합니다.

 






부장품에는 금제와 금동제 장신구, 철도끼, 철제꺽쇠, 무늬가 새겨진 토기 등 다량이 나왔습니다. 

불로동 고분군은 5세기 전후에 삼국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봉분의 크기를 보면 지름은 15~20m, 높이는 4m 내외인데 대형고분은 지름이 22m, 높이 6m의 원형 봉토분으로 당시 이 지역 토착세력의 지배층의 묘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부를 보면 4기의 수혈식 석곽을 차례로 덧대어 만들었으며 대부분 지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냇돌이나 깬돌로 4벽을 쌓아 넓고 납딱한 돌로 뚜껑을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석곽묘(구덩식 돌방무덤)입니다. 

이들 석곽은 시신과 부장품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가운데에다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다 자갈을 올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1938년 18호와 22호 고분을 최초 발굴하였고 2007년 91호와 93호 고분 발굴조사를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탐방로 길이는 약 1.5k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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