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유정이 입적했던 암자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을 여행하다.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 여러 부속 암자 중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선봉장이 되었고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하시는데 힘썼던 사명대사에게 1608년 전란이 끝나자 선조 대왕의 하사로 지었으며 대사는 말년에 이곳에서 은거하며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암자를 이름하여 홍제암이라 합니다.







☞2016/08/23 - (합천여행)가야산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왜!! 사명대사 석장비는 쪼개졌을까요?, 부도에는 왜! 대사의 명문을 새기기 않았을까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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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암은 67세에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머물렀으며 광해군 2년에 스님이 입적하자 광해군은 ‘자통홍제존자’의 익호를 내리고 대사를 기리는 석장비와 부도를 세웠으며 암자는 익호를 따라 홍제암이라 하였습니다.


 

 


1614년인 광해군 6년에 혜구 스님이 영자전을 짓고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습니다. 1674년에 현종에 의해 홍제당(암)을 사액하였습니다. 홍제암은 여섯 차례 보수하였지만, 건물이 너무 퇴락하여 박종성 스님의 원력으로 중수코자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예산문제로 1977년과 1978년 연차 중수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1977년 5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곳에 참배하고자 들리게 되었습니다. 홍제암의 전후 중수과정을 들으시고는 임란공신 사명대사의 구국 얼이 깃던 곳이니 특별 예산 조치를 편성하여 한꺼번에 보수 할 것을 지시하여 1979년 10월에 홍제암은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하게 해체 복원하였습니다.


 


 

 

 


홍제암은 처음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6호로 지정되었으나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9월에 보물 제1300호에 승격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홍제암의 편액이 걸린 100여 평의 인법당 건물과 영자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인법당에는 지장보살과 후불탱화를 봉안하였고 영자각에는 16명의 고승 영정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

 

 사명당영정

 

 


 

 

 

홍제암 왼쪽에는 부도전이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홍제암은 사명대사께서 입적하신 곳입니다. 이곳에 사명대사의 행장을 기록한 석장비와 대사의 부도가 있습니다. 석장비는 스님이 입적 후 2년 후인 1612년에 세워졌는데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교산 허균이 글을 지었습니다.



 

 

 


워낙 천재성을 뛰었다는 허균의 글이다 보니 사명대사의 기록으로서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문장이 수려하여 빼어나 당 대 최고의 기록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석장비는 현재 네 동강이 났는데 이는 1943년 일본인이었던 합천경찰서장이 법보학원 학생들의 노트에 기록된 “통쾌하고 능란한 대답”이 조선의 민족혼을 깨운다는 핑계를 대며 석수를 대동하여 사 등분으로 깨트렸습니다.


 

 

 

 


 

 


사명대사의 통쾌하고 능란한 대답의 발단을 보면 사명대사와 가토 기요마사와 담판하였는데 가토 기요마사가 사명대사에게 “조선의 보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명대사가 말하기를 “조선에는 보배가 없고 일본에 있으며 그것은 바로 당신의 머리이다”며 통쾌하게 한 방 먹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비문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사명대사 석장비는 깨어지는 수난을 당했습니다. 광복과 함께 사명대사의 석장비는 수습되어 명월당에 보관해오다. 1958년 쇠파이프로 속을 연결하고 석회로 파괴된 부분을 때워서 현재 선명하게 열십자 모양으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부도는 사명대사 석장비에서 산기슭으로 50m쯤 고샅길을 올라가면 숲 속에 독야청청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사명대사의 입적과 함께 1610년 그해 만들어진 부도는 고려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석종형 부도이며 부도의 주인인 사명대사의 명문도 새기지 않은 상태입니다. 혹시나 모를 왜군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이며 꼭꼭 숨겨두다시피 400년을 이어왔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치욕적인 역사에 사명대사의 행장이 기록된 석장비는 수난을 당했지만, 사명대사의 승탑인 부도는 훼손된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부도는 3단의 연화 대좌 위에 종모양의 몸돌을 올리고 맨 꼭대기에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올렸습니다. 해인사 홍제암에서 나라사랑 사명대사님의 얼을 만나보세요. 홍제암 보물 제1300호


 

 

 


합천서장의 만행으로 열십자로 쪼개어진  사명대사 석장비


 

 

 

 

왜군의 만행을 막기 위해 대사의 명문도 새기지 않은 사명대사 부도 

 

 


◆사명대사 석장비및 부도 홍제암 정보 안내◆

★홍제암

★홍제암 주소: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홍제암 전화:055-932-7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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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 홍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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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6.08.24 09:03 신고

    홍제암 기억하겠습니다
    직지사에서 승려가 되시고 이곳에서 입적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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