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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에서 신년 해돋이를 보려고 많은 산꾼들이 금정산 고당봉과 장산 황령산 달음산 등 부산의 명산에서 새벽 산행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올해 첫 답사산행을 위해 밀양 땅으로 향했다. 돌이켜보면 새해 첫 산행지는 대부분 부산에서 가깝고 야트막한 산이었던 듯하다.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크게 요란스럽지 않게 차분한 마음으로 한해의 안전산행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독자 산꾼들에게도 새해 첫 산행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산행지로 안내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올해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다. 그런 뜻에서 취재팀은 올해 첫 산행지를 고택과 서원 등이 밀집해 있는 민속마을인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의 주산인 꾀꼬리봉(538m)으로 정했다.





■ 전통마을 다죽리 감싼 육산… 8.5㎞ 코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경남 밀양 산외면에 자리잡은 꾀꼬리봉 6부능선을 지나고 있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포근하고 걷기 좋은 산길이다.
해발 500m대로 별로 높지도 않고 산행로가 잘 닦여 있어서 여유있게 산행을 즐기기에도 좋은 꾀꼬리봉은 사실 영남알프스 산군의 남서쪽 끄트머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특이하게 들릴 수도 있는 산 이름은 옛날 이 산에 꾀꼬리가 많이 살아서 붙었다는 설도 있고 정상 바로 아래에 꾀꼬리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꾀꼬리봉이라는 산 이름은 꽤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이름이다. 산줄기로 치자면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에서 운문산, 범봉, 억산, 구만산으로 이어지는 운문지맥 줄기에 걸쳐있다. 육화산에서 좀 더 남하한 운문지맥은 중산에 이르러 엄광리를 둘러싸고 두 줄기로 갈라진다. 지맥의 본줄기는 서쪽으로 틀어 낙화산 보담산을 거쳐 비학산까지 이어져 밀양강으로 숨어드는데 꾀꼬리봉은 중산에서 곧장 남동쪽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산줄기에 속한다. 중산에서 석이바위봉을 거쳐 꾀꼬리봉을 지나 화지산에 닿아 그 맥을 다하는 것이다. 꾀꼬리봉은 전체적으로 봉우리 3개가 새의 날개처럼 펼쳐지면서 일직 손씨와 밀양 손씨의 집성촌인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를 감싸안고 있는 형세의 육산이다.




   

산외면체육회가 세운 꾀꼬리봉 정상석은 앙증맞다.
원점회귀로 진행되는 꾀꼬리봉 산행의 들머리는 다죽리 다원1구의 24번 국도 옛길 다원버스정류소 앞 한국수자원공사 밀양댐관리단 대형 입간판이다. 이후 산행은 혜산서원 입구(다원길 11번지 뒷편)~지능선 갈림길~화지산 밑 갈림길~다원고개~능선갈림길~481m봉~꾀꼬리봉 정상~안부갈림길~전망대(353m봉)~갈림길~평전산~공동묘지~죽원재사(모당샘)~산외면사무소~다원버스정류소 순이다. 총거리는 8.5㎞로 짤막하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20분, 휴식과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4시간30분가량 걸린다.

대형 밀양댐관리단 입간판에서 도로를 따라 100m쯤 가면 우측으로 혜산서원 이정표와 진입로가 있고 그 맞은편에 시골집이 보인다. 다원길 11번지다. 이 시골집의 야외화장실 뒤에 열려 있는 산길로 오른다. 지난해 봄 영남알프스 둘레길 답사 때 취재팀이 매달아 놓은 리본이 눈에 들어와 반가움을 더한다. 산 사면을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행로는 낙엽이 쌓여 포근한 느낌이다. 7분쯤 가면 지능선 갈림길. 우측으로 능선길을 따른다. 솔잎이 유난히 많이 깔려 있는 이 길 역시 완만하고 걷기 편한 오르막이다. 13분 뒤 화지산 밑 Y자 갈림길에서는 직진하지 말고 우측 사면 길로 방향을 잡는다. 3분 후 X자 사거리인 다원고개에 닿는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13코스 답사 때와 겹친 구간이다. 직진해서 왼쪽 길을 잡으면 남기리 양덕마을로 내려서게 되고 우측 1시 방향 능선길은 꾀꼬리봉 가는 산행로다. 한동안 걷기 좋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여린 둥치의 대나무들이 무리를 이룬 대숲이 산길을 감싸고 무명묘도 잇따라 나타난다.

■ 소나무 대나무 늘어선 산길 4시간쯤 걸어

   

취재팀이 하산길 도중 전망대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15분쯤 거의 높낮이 없는 능선길을 따른 후 본격적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 밑에서 볼 때는 경사가 약해 보이지만 막상 맞닥뜨리면 의외로 가파르다. 오르막 중간에 또 한번 운치 그윽한 대숲 구간을 지나고 제법 큼지막한 바위 앞을 통과하면 또 한번의 지능선 갈림길에 닿는다. 일단 가장 가파른 구간은 지난 셈이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남기리 남계마을로 향하지만 우측 오르막을 타야 한다. 20분가량 여유롭게 오르면 전위봉인 481m봉에 닿는다. 시원스런 조망은 아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정면에 불룩 솟은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북쪽으로는 석이바위봉(643.3m)을 거쳐 중산(649m)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다. 또 왼쪽 엄광리 들판 건너편에는 근교산 마니아들에게 낯익은 보담산(562m) 낙화산(626m)을 이은 산줄기가 중산까지 내달리고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15분이면 족하다. 정상 직전 우측에 눈에 띄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다죽리 주민들이 꾀꾀리암이라 부르는 그 바위다. 산 이름의 기원이 된 바위이기도 하다. 정상에는 무덤이 하나 있는데 정상석은 무덤 뒤 20m 지점에 있다. 주변의 나무가 숲을 이뤄 조망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산바람으로부터 무덤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역할을 한다. 소박한 마음으로 새해 첫 산행을 떠났던 초심을 다시한번 다잡은 후 오른쪽 가파른 내리막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 평전산 공동묘지 통과 후 임도따라 하산

   

산행 들머리인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다원1구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꾀꼬리봉 전경.
20분쯤 내려서면 안부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시하고 곧장 직진, 약간 오르막을 타면 353m봉 우측 전망바위에 닿는다. 한적한 숲길 위주의 산행로로 구성된 이번 코스에서 유일한 전망대다. 다죽리 일원은 물론이고 그 남쪽의 다원들, 칠리탄, 칠탄산, 일자산, 밀양강, 추화산성,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살짝 내려서면 10여분 후 또 한번 난 갈림길을 만나는데 우측 길은 무시하고 직진한다. 2분 후 닿는 펑퍼짐한 봉우리가 지형도상의 평전산(平田山·216m)이다.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다죽공동묘지다. 봉분들 사이로 1시 방향으로 길이 있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묘지를 통과하면 임도가 나오는데, 중간의 몇 차례 좁은 길은 무시하고 계속 임도만 따르면 15분 후 시멘트길에 닿는데, 그 우측 개울 건너편에 죽원재사(竹院齋舍)가 보인다. 또한 죽원재사 뒤편에는 옛 사람들이 개울물에 마음을 씻은 곳이라는 뜻의 한자인 '세심(洗心)'을 음각한 바위도 있다. 죽원서당으로도 불리는 죽원재사 마당에는 희귀한 소나무인 백송이 한 그루 서 있어 이채롭다.

죽원재사 입구에서 왼쪽 넓은 길 대신 정면의 계단으로 내려서면 '모당샘(毛唐泉)'이 있다. 이 샘물은 고려말기 중국 원나라의 횡포를 피해 이 마을로 피난온 중국사람 모 씨와 당 씨가 우물 삼아 팠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말과 조선 초기 관리까지 역임한 당성이란 사람이 밀양 당씨의 시조다.

모당샘에서 골목길을 따라 2분쯤 걸으면 옛 24번 국도에 닿고 우측으로 꺾으면 산외파출소와 산외면사무소가 나온다. 출발지까진 지척이다.


◆ 떠나기전에

■전통고택·서원 밀집한 산외면 다죽리 마을

- 다원1구는 일직 손씨·다원2구는 밀양 손씨 집성촌… 혜산서원 죽원재사 등 들러볼 만



   

날머리 즈음에 있는 죽원재사는 조선 선조때 충신 오한 손기양을 향사한 재실이다.
밀양 꾀꼬리봉 산행의 기점인 산외면 다죽리는 면 소재지이면서 고택과 서원, 유적 등이 밀집해 있는 전통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일직 손씨와 밀양 손씨 등 양대 손씨가 각각 다원1구 마을과 다원2구 마을로 나뉘어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다원1구의 일직 손씨 집안 내력과 선조들의 선비 정신이 집약된 곳은 혜산서원(惠山書院)이고 다원2구 밀양 손씨 가문의 중심은 죽원재사(竹院齋舍)다. 경남도 유명문화재297호인 혜산서원은 조선 세종~단종 시대에 통정대부호조참의와 집현전 학사를 역임한 격재 손조서를 추모하기 위해 1753년 서산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됐다. 격재 손조서는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용연정을 짓고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쳤고 세조의 수차례에 걸친 부름에도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한 충 절 의가 빛나는 문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학식과 덕망은 점필재 김종직의 반열에 이르고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등의 성리학자들이 스승으로 모셨던 대학자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서산고택, 철운재 등으로 편액을 바꿨고 여타의 서원과 달리 내부에 담장을 설치했는데 이는 서원철폐령 이후 서원이 아닌 재실과 가정집으로 위장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여지는 부분이다. 1971년 옛 서원 터를 확충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일직 손씨 오현(五賢)들을 한 곳에 모시고 혜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됐다. 경내에 600년 된 차나무가 세 그루 있다.

다원2구의 죽원재사는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과 울주판관 경주제독 창원대도호부부사 등을 지냈고 임진왜란 당시 밀양 석동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기도 한 오한(鰲漢) 손기양(孫起陽) 선생을 향사한 곳이다. 그는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벼슬을 하고 상주목사로 재직 중 광해군때 정치가 혼탁해지자 낙향해 마을 앞 들판인 다원들 남쪽의 칠리탄 하천변 칠탄서원(칠탄정)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영남의 유명 유학자들과 교유했다. 특히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정구(鄭逑) 선생과는 아주 깊은 관계를 맺었던 성리학자다. 죽원재사에는 입구에 아름드리 노송이 늘어 서있고 경내에는 희귀목인 백송이 있다. 산행 후 들러볼 만하다. 올해는 특히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이 되는 임진년 아닌가.


◆ 교통편

- 밀양IC에서 내려 표충사 방향 우회전

경부선 열차 편으로 밀양역까지 간다. 무궁화호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부터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산외면 다죽리를 지나가는 농어촌버스를 이용, 다원 버스정류소에서 하차한다.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40분 간격 운행. 하산 후에도 밀양터미널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오후 3시50분, 4시10분, 4시30분 등 자주 있는 편이고 막차는 7시10분.

자가용 이용시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후 우측 얼음골 표충사 방향으로(24번 국도) 약 2.3㎞쯤 진행하다 산외면사무소 방향 램프웨이에서 내린다. 곧바로 좌회전, 굴다리를 통과한 후 산외면사무소 다죽리 방향으로 우회전, 300m쯤 가면 밀양댐관리단 입간판이 있다. 주변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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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산서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일직손씨의 격재 손조서를 추모하기 위해
    1753년에 서산서원으로 건립되었다.

    격재 손조서는 조선시대 충,절,의 신하로
    자는 인조 호는격재 휘는 조서 본관은 안동으로 안동 손씨라고도 한다.

    벼슬은 통종대부호조참의, 집현전 학사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이곳 밀양 용평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36년에 급제를 하여 사헌부 감찰 병조정랑
    재임시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한직으로 물러났다.

    그후 수양대군이 단종을 손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용평으로 낙향하여 용연정을 짓고 강학하였다.

    그후 수양대군인 세조가 여러번 불렀으나 벼슬을 사양하며
    이곳 용연정에서 세상과 문을 닫고 살았다.


    그의 학덕은 점필재 김종직의 반열이요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이 스승으로 삼았던 격재선생.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으로
    고종때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면서
    서원은 훼철되어 서산고택, 또는 철운재로 편액되었다..

    지금 혜산서원에 들어서면
    여타 밀양서원 예림서원등을 둘러 보아도 서원을 가르는 담장이 사실 없다.

    그러나 혜산서원은 서원안의 건물을 담장으로 나누어 진 것을 볼 수 있다.
    혜산서원은 전(田)자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일반서원은 보통 일(一)자 형태로 교육과 제례의 배치를 하는데
    혜산 서원은 북쪽에는 사당, 북동쪽에는 강당건물을 남서쪽에는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 남동쪽에는 서당으로 각각 구분을 하여 담장이 쳐져 있다.


    당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한 조치로 보이며
    서원이 아닌 재실과 가정집으로 위장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진다.

    1971년 옛 서원 터를 넓혀 중건한 후
    각지역으로 흩어진 일직손씨 오현들을 한자리에 모셨다 한다.

    현재 이곳에는 격재 선생의 문집책판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8호가 보관되어 있다.






































    혜산서원의 600년 된 차나무

    다죽리 혜산 서원 안에는 600년된 차나무 세그루가 있다 한다.
    다죽리 인근인 엄광리에는 야생차밭이 있는데 그 유래를 보면
    보두라는 중이 중국에서 가져와 차나무를 엄광사부근에 심었는데
    그 차나무가 다죽리까지 번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일직손씨의 손관은 본관이 안동의 일직면으로
    손관이 안동에서 밀양으로 세거지를 옮길 때 함께 가져 온 것으로 전해지는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차나무이다.



    혜산서원 앞의 차나무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부산역에서는 밀양행 열차가 5시10분 5시50분 6시35분 6시55분 7시45분 8시35분 9시25분 10시20분등  많이 있다 밀양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 .  밀양터미널에서 남명리 얼음골행 및 표충사행 어떤 버스를 타도 다원마을에 정차한다.
    얼음골6시10분 9시35분 (직행)10시55분 7시05분 8시, 9시05분, 10시40분, 11시30분
    표충사6시20분 9시10분 (직행)7시35분,8시45분 10시10분 11시20분
    그리고 감물행 고례행 국전행 시내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천리 용평~굴다리 통과~ 산외면 다원리 방향 우회전~산외면 사무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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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산정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칠산정.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 밀양 칠산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796번지

    칠탄산 아래에는 두 재실이 있다.
    칠탄정을 아랫재실 칠산정을 윗재실이라 구미마을에서는 부른다.

    모두 손씨 집안의 재실이지만 칠탄정은 밀성손씨의 오한 손기양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이고 칠산정은 일직손씨로 본관은 안동이다.

    시조는 고려시대때 중국 송나라의 전란를 피해 우리나라로 귀화하였는데 원래 순씨였다 한다.
    현종의 이름이 순이라 음이 같아 현종이 손으로 사성하였다.
    현종때 개국공신으로 손응이며 그의 후손으로 충정왕때의 영의정인 ‘삼중대광판삼사사’ 정평공 손홍량이고 8세대인 격재공 손조서에와 일직손씨의 꽃을 피운다.
    세종14년에 진사에 그리고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로 수양대군에게 단종이 폐위되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껴 낙향을 하게 된다.
    그의 '두우시'에는 옛 단종을 그리워하며 ‘두견새도 나와 같아, 밤낮으로 끊임없이 우는구나’ 하며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세조가 이조참판에 재수함에도 거절을 하고 이곳 월연정 옆 용호정(밀양시 용평동 장선마을)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평생을 단종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지며 보냈다.
    산외면 다원리 혜산서원에서 봉향을 하고 있다.











    칠산정은 격재공의 13세손인 처사 손응룡의 묘하재숙소이다.
    손응룡의 증손자 죽암 손건이 즉 7개의 골짜기와 7개의 능선이 합해지는 곳이라하여
    칠산이라하며 일곱실이라고도 하는 이곳에
    1863년 9월에 창건을 하여 모선재, 구호당이라 하였다.
    189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5세손인 손기형이 1906년에 중수 하여 칠산정이라 하였다.







    근대 초기 밀양지방의 양반재실로 별업을 겸한 재각이다.
    정당의 마루는 재회의 장소로 좌우 온돌방은 재관들의 거처로 제수마련은 방앗간채와 고직사에서 하였다.
    청송루의 누각은 온돌방과 누마루를 넣어 전사청, 직방등의 기능을 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칠산정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 올린 지붕(모양만 기와 모양)이 복원공사의 전부인지 모르지만 한복에 구두을 착용 한 것 처럼 엉성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여기도 칠탄서원 처럼 대청마루에는 쥐생원들이 이집의 주인인양 쥐똥들이 즐비하고 청송루의 누마루는 음산한 기분 마저 든다.
    언제까지 방치를 할런지 모르지만 지금 이상태라면 곧 또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질 판이다.
    칠산정을 관리하였던 후손들의 기거한 건물의 모습은 칡덩굴에 집의 흔적만 보이고 땜질하듯 문화재 보수를 한후 관리를 하지 않으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는 문화재는 청도의 선암서원처럼 보수를 해 임대를 하여 고택체험이나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찾을 수 있고 훈기가 있는 곳으로 먼저 바꾸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야만 자연적인 파괴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 들머리인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은 감물리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구미교를 건너 우측 구미마을회관앞을 지나 마을 뒤 우측깊은 골짜기를 보고 따라간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곡인터체인지에서 단산마을로 내려서표충사 단장면 방향으로 내려선다. 금곡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사촌마을~구미마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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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청도와 마찬가지로 경남 밀양 또한 영남알프스의 넓고 깊은 자락에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 고택들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이번 주 답사한 제13코스는 밀양이 자랑하는 전통마을과 정자를 거치며 옛 정취에 듬뿍 취하는 길이다. 유서깊은 전통을 가진 한옥마을과 넓은 들판, 폐허로 남은 절터와 정자를 찾아가며 밀양이 갖고 있는 다양한 특색들을 느낄 수 있다. 또 난생 처음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추밭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녹음이 뒤덮인 산자락에 끝 없이 펼쳐진 대추밭 언저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흘린 땀'의 숭고함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진다.






    코스 출발지는 경남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남가마을의 남계교다. 그리고 종착점은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 버스정류소. 총거리는 14㎞이고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휴식 등을 포함하면 6시간 정도는 걸린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막바지 구간인 칠탄정, 칠산정 구간의 묵은 옛길에 수풀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 다원고개 넘고 동창천 건너 14㎞, 넉넉 잡아 6시간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는 흙돌담 정겨운 전통 한옥마을을 자주 만난다. 경남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 또한 그 중 한곳이다. 옛 사람들의 운치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 마을을 지날 때면 개척단의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진다.
    엄남천에 놓인 남계교를 건너 사거리에서 직진, 계속 동쪽으로 남계마을 들판길을 따른다. 정면 왼쪽의 꾀꼬리봉이 우뚝하고 오른쪽에는 물류창고가 있는 야트막한 화지산이 보인다. 두 산 사이의 안부 고개로 넘어갈 예정이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지나 양덕동(마을)에 들어선다. 양덕(陽德)이라고 한 것은 꾀꼬리봉에서 내려온 산기슭에 위치, 양지 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진영기와산업(주) 굴뚝을 보면서 직진한 후 공장 왼쪽의 골목으로 진입한다. 매꽃, 인동덩굴 등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3분 후 Y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주변에는 온통 대추나무 일색이다. 다시 3분 후 갈림길에서 오른쪽 비포장 임도를 택해 50m쯤 가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는데 왼쪽을 잘 보면 임도로 휘어져 오르는 길이 보인다. 그 임도를 따라 가면 7분 후 다원고개에 닿는다. 능선을 타고 왼쪽으로 가면 꾀꼬리봉, 오른쪽은 화지산으로 가게 된다. 일단 우측으로 몸을 돌린 후 보이는 능선 마루금길과 왼쪽 11시 방향으로 휘돌아가는 길이 보이는데 비스듬한 왼쪽 길을 택한다. 3분 후 또 다시 작은 안부고개에 닿는다. 우측은 화지산, 직진하면 금촌리로 내려가는 길이지만 왼쪽 능선길로 가야한다. 3분 후 무덤 앞 갈림길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 길로 떨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다죽리 다원마을 포장도로에 닿는다.


       
    밀양사 산외면 다죽리 혜산서원 대문인 상례문을 나서는 개척단.
    다원마을은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연극배우 손숙 씨의 고향마을로, 일직 손씨 재실과 혜산서원(惠山書院) 등 고택들이 즐비해 은근히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정표를 보면서 도로를 건너 혜산서원 방향으로 간다. 격재선생 신도비를 일별하고 흙돌담길 깊숙이 자리잡은 상례문(尙禮門)으로 들어가 서원의 강당과 사당 등을 둘러본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강당 대청마루는 후손들의 정성어린 관리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서원을 나와 흙돌담길을 따라 걷는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1호인 다죽리 손씨 고가 등 고택들이 이어진다. 참 운치있는 마을이다. 만화정과 운강고택이 있는 청도군 신지리 못잖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마을 주민 아주머니는 "처음 온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지요. 그렇지만 뭐, 사람사는 곳이 다 마찬가지라오. 들일 하고, 농사 짓고, 자식 키우고. 그렇지 않소?"라며 밭으로 향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손씨 고가에서 우측으로 꺾어 걸으면 옛 24번 국도 아스팔트 도로 사거리다. 나중에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꺾는다. 산외면사무소를 지나 주유소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 골목 깊숙한 곳에 모당천(毛唐泉)이라는 샘터가 있다. 중국 원나라 말기에 모 씨와 당 씨가 전쟁을 피해 이곳까지 와서 식수용으로 팠다는 오래 된 샘물이다. 모당천을 지나 잘 생긴 소나무와 홍단풍의 호위를 받으며 올라서면 언덕 위에 죽원재사(竹院齋舍)라는 재실이 있다.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지방관과 언관을 지낸 오한 손기양 선생을 기리는 제사를 모신 별묘가 있던 자리다. 1753년 최초 건립됐으며 이후 세월이 흐르며 황폐해 졌다가 1956년에 밀성 손씨 문중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했다. 본당 건물 앞 뜰에는 월연정과 금시당에서도 보았던 백송(白松)이 늠름하게 서 있다.


    ◇ 산외면 소재지 다죽리 전통한옥마을 운치 가득


    (경남여행/밀양여행/영남알프스둘레길)지정된 문화재가 폐가 수준인 영남알프스둘레길 13코스


       
    다죽리 소재 죽원재사 가는 길. 홍단풍과 백송이 길손을 맞아 준다.
    죽원재사를 나오면 모당천 앞에서 직진, 마을 길을 따라 나오면 다원2리 경로당을 거쳐 옛 24번 국도에 닿는다. 우측으로 꺾어 산외면사무소를 거쳐 최초에 24번 국도에 닿았던 갈림길까지 돌아간다. 여기서 옛 국도를 건너 마을앞 들판인 다원들 사이 농로를 따라 율전마을 쪽으로 간다. 신 24번 국도 굴다리를 거쳐 직진하면 '털보양어장'을 가리키는 푯말 앞에서 화살표 방향대로 우회전하고 율전마을회관을 거쳐 털보양어장을 지나면 동천(또는 단장천)둑길에 닿는다. 우회전하면 '리더스CC' 표지판이 있다. 활성2교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밑 하천에서 다슬기를 줍는 50~60대 주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초여름 햇살을 받은 여울이 반짝인다.

       
    대추밭 속에 숨은 영원사지.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리를 건너면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강변 쪽으로 꺾어야 칠탄정으로 가는 길이지만, 일단 영원사지(瑩源寺址)에 들르기 위해 골프장 방향으로 직진한다. 영원사지 위치 안내판을 지나고 골프장가든 식당을 지나면 갈림길에서 우측 마을길을 따른다. 활성2동 경로당 앞을 지나면 온통 대추나무 천지다. 5분 후 대추나무밭에 숨은 영원사지에 닿는다. 골짜기 상류에 보면 골프장이 있고, 그 오른쪽에 자씨산 부도골이 보인다. 이 깊은 골짜기에 골프장을 건설한 것을 납득할 수 없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영원사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인 1313년 왕사가 된 보감국사(寶鑑國師)가 머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보감국사( 1250~1322)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의 제자로서 왕사에까지 오른 고승이다. 이 절터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인 보감국사 부도와 제13호인 보감국사 묘응탑비가 있고 몇기의 고려시대 석불이 남아 있을 뿐 주변은 온통 대추밭일 뿐이다. 묘응탑비의 탑신도 오간데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묘응탑비의 비문은 익재 이제현이 썼다고 알려졌지만 내용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비 상하단부의 조각 솜씨만은 예사롭지않다. 절은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 드넓은 대추밭 속에서 찾은 영원사지 쓸쓸함 만 남아

       
    인적 적어 반 폐허가 된 칠산정 경내에 거대한 은행나무만 우뚝하다.
    15분이면 다시 활성2교 앞 골프장 입간판 앞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우측으로 진입, 강변의 숲길을 따른다. 큰 높낮이 변화없이 강변을 따라 가는 한적한 숲길. 그러나 최근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잔가지들을 제법 헤치면서 진행해야 하는 길이다. 이 길도 정비만 제대로 된다면 '제12-1코스 상편'에서 답사한 금시당~팔각정 산책로 못잖은 걷기 좋은 길이 될 수 있겠다. 17분쯤 가면 다죽리의 죽원재사에 모셔진 오한 손기양 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는 칠탄서원(七灘書院·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과 칠탄정(七灘亭)에 닿는다. 북쪽을 바라보며 지어진 이 건물은 강당과 정자 서재와 동재가 운치를 더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잡초와 먼지만 무성해 을씨년스런 느낌을 준다. '칠탄'이라는 명칭은 산내천과 단장천이 합수된 단장면 단장리에서 이곳까지 흐른 동천의 거리가 칠리이며 이 구간을 '칠리탄'이라고 해서 붙었다고 전해진다.

    칠탄정의 동제 누각인 운강루(雲江樓) 아래 문을 통해 나가서 30m쯤 가면 우측으로 살짝 오르는 희미한 길을 타야 한다. 이곳부터는 길 상태가 험한 편이다. 안내리본을 잘 보고 조심스럽게 진행하자. 칠탄산 옆자락 타고 가는 험로를 30여분 가서 무덤을 만나면 길은 다시 좋아진다. 우측으로 살짝 틀면 일직 손씨 돌무덤이 있고 곧바로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살짝 돌아 다시 우측으로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른다. 묵었지만 그래도 갈만한 길이다. 5분 후 제대로 된 깔끔한 임도에서 우측으로 가면 곧바로 칠산정(七山亭)이 있다. 이 곳 역시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문화재라는 느낌이 덜하다. 다만 마당으로 들어서면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어 가을 분위기가 참 좋을 듯 할 뿐이다.

    칠산정에서 구미마을까지는 15분이면 족하다. 구미교를 건널 때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는 계령산. 다리 건너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제13코스의 종착점이다.


    # 떠나기 전에

    - 혜산서원 건물 사이 담장, 대원군 서원철폐령 피하려



    밀양 산외면의 면소재지인 다죽리에 있는 혜산서원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7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인 격재(格齋) 손조서(1412~1473)의 학덕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조선 영조 29년(1753년) 건립한 서산서원이 있던 터에 1971년 확장 중건한 곳이다. 이 서원에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 서원과는 달리 강당과 사당 살림채 등이 모두 담으로 구분돼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조선 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 건물의 강제 철거 만이라도 피하기 위해 일직 손씨 문중에서 가정집 처럼 꾸몄기 때문이다. 건물들 사이에 담벼락을 만들고 건물의 이름도 일반 가정집에 흔한 이름들로 바꿔 비로소 큰 화를 면했다는 것이다. 지혜의 산물인 셈.

    격재 선생은 집현전학사 병조정랑 봉산군수 등을 역임한 학자로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마을에 돌아와 두문불출하며 학문의 길만 닦았던 인물이다. 그의 비장한 충절은 흔히 생육신의 그것에 비견된다.



    # 교통편

    - 밀양버스터미널서 정문마을까지 버스 30분 간격 운행

    무궁화호 열차는 부산역 기준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3800원.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정문마을에서 하차, 남가마을 쪽으로 약 300m 걸어가면 남계교가 보인다. 코스 답사 후 종착점인 구미마을 버스정류소에서는 그냥 500m가량 걸어서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밀양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사촌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오후 4시35분, 7시25분에 탈 수 있다.

    자가용 이용의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밀양 방향 24번 국도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간 후 다시 좌회전해 굴다리를 지나면 정문마을에 닿는다. 정려각에서 100m쯤 직진, 다리를 건너지 말고 좌회전해서 300m쯤 가면 된다.



    # 폐허같은 밀양 칠탄정·칠산정,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할말 잃어

    - 마당엔 잡초, 대청마루엔 쥐똥
    - 경내의 은행나무·배롱나무만이 수백년 지켜온 기품안고 우뚝

       
    밀양시 발행 관광안내서에도 수록된 칠탄정.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않돼 먼지와 잡초만 무성하다.
    아무리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다지만, 이번 제13코스 답사 도중 들린 중요 문화재인 밀양 칠탄정(七灘亭)과 칠산정(七山亭)의 폐허나 마찬가지인 몰골(?) 앞에서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두 곳 모두의 마당에는 웃자란 잡초들만 무성하고, 대청마루에는 쥐똥과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여러 부속 건물마다 처마 밑에는 거미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기까지 하니 그 을씨년스러움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사실 칠탄정과 칠산정은 위치나 주변 풍광 면에서는 둘레길 개척단이 지금껏 답사한 각 구간에서 만난 그 어떤 정자나 서원들과 비교해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관리 실태만은 가장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심경이다. 아니 '관리'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라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난감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칠탄산 자락에 자리잡은 칠탄정과 칠산정이 어떤 곳인가. 우선 칠탄정의 내력부터 살펴보자. 동천강 변에 북쪽을 보고 앉은 칠탄정은 임진왜란 당시 밀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손기양(1559~1617)이 만년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725년에 후손들이 건물을 다시 지어 진암서당이라고 명명했고, 1844년에는 청절사(淸節詞)라는 사당도 함께 지어 손기양의 위패를 모시고 '칠탄서원'이라고 불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손됐다가 1914년에 다시 복원했다. 칠탄정과 중앙의 강당을 두었고, 동서쪽에는 누마루가 있는 누각을 지어 강물과 그 너머 다원들판, 다죽리 마을, 비학산과 꾀꼬리봉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했다. 현재의 건물은 비록 20세기 초반에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조선 후기 양식을 대부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됐다. 손기양 선생은 밀양 손씨 문중 출신이다. 또 칠산정은 경남 문화재자료 제478호로 일직 손씨 가문의 별업 겸 재실이다.

    이들 두 곳 모두 수백 년 자란 은행나무와 베롱나무들이 경내에 그 세월의 흔적을 안고 우뚝하게 서 있고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들도 그 기품이 여전하지만 각 각의 건물들이 문화재다운 관리를 받지 못하다 보니 그 빼어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기관에서 무관심했든, 해당 문중에서 관리를 소홀히 했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개척단이 칠탄정과 칠산정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문화재 관리 수준이 과연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근년 들어 찾는 이 드물어서 더욱 을씨년스런 이들 고 건축물들에 둘레꾼들의 발길이라도 계속 이어진다면 잃었던 생명력을 서서히 되찾을 것이고 제대로 된 관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싶을 뿐이다.



    문의=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국제신문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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