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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강동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의 역사. 양동마을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강동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의 인물. 양동마을


양동마을은 조선 중기 때 부터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조정에 진출한 사림들에는 세조 5년(1459년)에 손소공이 문과에 급제를 하여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큰 공을 세워 공신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둘째 아들인 우재 손중돈은 성종2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우참찬등 조정의 요직를 두루 거치며 청백리에 올랐다. 그리고 손소의 외손자인 대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이 배출되면서 퇴계 이황에 앞서 성리학의 기틀을 만들며 해동부자라 하였다. 회재이언적은 동방5현의 한분으로 종묘배향과 문묘에 종사되어 역대임금과 공자와 함께 위패기 모셔지고 전국의 20여곳의 서원에서 배향되기도하였다. 양동마을에서는 월성손씨와 여강이씨에서 모두 문과 26명, 무과14명 사미76명으로 과거에 급제한 분만 116명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은 주차장을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먼저 만나는 건물이 양동마을 문화관으로 조선시대 양동마을의 모습과 양동마을에서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미니어쳐로 제작이 되어 한눈에 볼 수 있게 편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무료로 볼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관람료 4천원.


이곳을 지나면 매표소 건물이 나온다. 입장료는 4천원. 사실 작진 않은 관람료라 많은 가족이라면 부담도 간다. 그러나 이곳은 조선시대 양반 마을의 전형을 볼 수 있고 500년전의 건축물을 볼수 있는 몇안되는 곳 중의 한곳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양동초등학교를 지나면 양동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정면에 먼저 크게 보이는 가옥이 향단건물로 전체를 차근차근 돌아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간 제약상 다 볼 수는 없고 양동마을에서 대표적 가옥으로 15~16세기에 지어진 관가정, 서벽당, 향단, 무첨당을 중심으로 보면서 주위에 몇군데를 관람해도 두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필자는 양동마을의 매점에서 왼쪽으로 관가정을 먼저 관람을 하기 위해 왼쪽으로 걸었다. 관가정 아래 양동마을의 주민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초가집이 많이 보인다. 주민들의 피혜가 가지 않도록 그냥 겉 모습만 보고 지나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관가정.



먼저 관가정 입구에 늘어진듯 서 있는 고목나무에 눈길이 간다. 이곳에서 오른쪽 오르막을 가면 관가정의 솟을 대문이 나타난다. 관가정으로 중종때 청백리에 옹았던 우재 손중돈선생의 옛집이다. 관가정의 앞쪽은 탁 트이게 하여 낮은지대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건물 배치를 한것이 특이하다.


 

 


관가정은 '농사 짓는 광경을 내려다 보는 정자'라는 뜻으로 손중돈은 이곳 관가정 의 탁 트인 누마루에 올라 세상사 다 잊고 안강 들판을 바라보았을 것으로 보인다.이름그대로 누마루가 있는 정자로 양동 마을 초입의 물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관가정을 나와 영귀정과 설천정 관람을 위해 관가정 뒤 산길을 따라 간다. 먼저 영귀정 가옥과 만난다. 



영귀정

 

 


영귀정은 향토문화재로 회재 이언적 선생이 만년에 이곳에 모옥을 지어 놓고 시를 읊으면서 산책을 하던 곳으로 후손들에 의해 정자를 지어 선생을 추모하고 있다.




 

 

 

 

 

 

 

 

 

 

설천정사는 향토문화재로 회재 이언적의 세째 손자였던 설천정 이의활공이 학문을 강학하기 위해 지었던 정자라 한다.  그 앞에 초가집이 한동 지어져 있다.


 

설천정사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무첨당.



무첨당은 보물제 4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기왓집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문신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감사 재직때 지은 종가별당이다.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생활하였다는데 무첨당은 회재 이언적의 장손자인 이의윤의 호로'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무첨당에 걸린 편액중에 흥선대원군이 이곳 무첨당에서 하루  묵고 남겼다는 '좌해금서' 그 뜻은 '선비는 책을 읽어야 하지만 풍류도 알아야 한다'며 조선 선비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였는데 필체를 보면 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대성헌은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34호로 높은 언덕에 위치하며 18세기 중엽에 지어졌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며 'ㅁ'자를 이루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만재 손숙돈이 분가 할 때 지은 건물로 낙선당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손종로(1598~1636)의 호에서 따 왔다. 




 

 


낙선당은 1540년대 건물이라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천석꾼의 집으로 창고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건물의 구조를 보면 대문채 사랑채 안채로 나누며 중문채와 함께 'ㅁ'의 형태지만 조금은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서백당.



서백당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3호로 당호의 뜻은 '매일 하루에 참을 인(忍)자 100번을 쓴다'는 의미이며 서백당의 유래를 보면 어느 해 중국에 9대가 한집안에 살았는데 왕이 이곳을 지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어찌 9대가 이리 한집에 살 수 있었냐고 물어니 그는 붓과 종이를 들고 오더니 참을 인(忍)자를 100번 쓴다음 임금에게  이러면 안될 것이 없다하였다. 월성(현 경주)손씨 손소(1433년)~1484년)가 이곳에 처가 입향을 하면서 이곳에다 집을 지었는데 이곳이 월성손씨의 종택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향단.



향단은 보물제412호이며 회재 이언적(1491년~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 볼 수 없어 중종이 지어준 건물이다. 다시 이언적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 준 후 여주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 이의주의 호에서 이 집의 이름을 따왔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정충비각.



정충비각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비각은 조선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인 버린 손종로와 그의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7년에 세웠다. 손종로는 광해군 10년인 1618년 무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때 쌍령전투에서 그의 노비 억부와 함께 전사하여 그의 시체를 찾지못하고 옷을 넣은 관으로 장례를 치렀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옥산서원.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회재 이언적선생의 고향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그의 사후인 선조 5년인 1572년에 경주부윤의 이제민이 지방 유림들과 함께 세웠다. 옥산서원 입구에서 150m의 진입로는 자계천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숲길을 이루어 햇볕 한 점 들어올 틈이 없다. 시냇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이곳 옥산서원은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을 것 같은 곳이다.



 

 

 


먼저 정문에는 ‘역락문(亦樂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는 논어의 학이편에서 '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아(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왔다한다. 그 뜻은 서원을 찾는 손님에게 더 없이 정답고 편안하다는 의미로 당대의 명필가 한석봉의 필체라 한다. 또한 유생들의 휴식장소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의 필체도 한석봉의 글씨이다. 구인당의 맞은 편에 흰바탕에 검은 글씨인 옥산서원의 현판 글씨 또한 추사 김정희의 필체로 알려져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 조선시대 양반마을 양동마을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양동마을 독락당.



독락당은 건물 자체가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동방오현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이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은 사랑채다. 그는 이곳에 앉아 책을 보며 소일을 하였다. 현재에도 그의 후손이 거주를 하고 있으며 안으로 빼꼼히 보니 가정집이라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독락당을 못보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가장 멋스런 건물은 자계전에 반쯤 발을 빠트리고 있는 독특한 계정이다. 널따른 암반위에 생긴 그대로 자연석을 이용해 쌓아 올린 2층 누각은 계곡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양동마을 홈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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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단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인 행랑채. 무슨 요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현재의 향단 가옥은 회재 이언적(1491년~1553년)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때 병환중인 모친을 돌 볼 수 없어 중종이 지어준 건물이다. 다시 이언적이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동생 이언괄에게 물려 준 후 여주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향단이란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 이의주의 호에서 이 집의 이름을 따왔다. 





향단의 솟을 대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집주인 개성이 독특한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동마을을 대표.



조선 중기 살림집의 모습이 아닌 집주인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건축물로 지금의 행랑채는 1976년 보수 공사를 할때 위로  더 올라 안채와 더욱 가깝게 되었다. 원래 99칸의 양반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6.25 한국동란때 전화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 56칸이 남아 있다. 향단은 양동마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물로 그 만큼 자리한 곳이 양동마을을 대표할 만한 곳이다. 보물 제 412호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풍수지리를 이용한 요새 같은 모습.


향단의 구조를 보면 일반 양반 기와집과는 달리 독특한 평면 구조이다. 몸체는 풍수지리에 따라 월(月)자 모양을 하고 여기다 한일(一)자 모양의 행랑채와 칸막이를 두어 용(用)자 모양을 이루었다.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한몸체이고 마당이 두개인 특색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밖에서는 안의 모습을 볼 수 없어.


행랑채 뒤편에 있는 본채는 행랑채와 똑 같은 규모로 중앙과 좌우 양쪽 끝을 이어서 방으로 연결한게 흥(興)자 모양의 한건물 처럼 배치가 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아쉬움 점이 많다. 아름답고 독특한 구조의 향단 건물은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일자형의 행랑채 모습만이 볼 수 있다, 빠삐용의 요새 같은 모습으로  향단안의 구조는 밖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멀리서 보는 향단의 모습 너무 아름다워.


이곳은 현재에도 여주이씨 향단파의 후손들이 거주를 하고 있어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을 언뜻언뜻 볼 수 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할 수 없이 내려와 연밭이 있는 입구쪽의 먼발치에서 전체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한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멀리서 본 향단의 모습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동마을 향단. 99칸의 대 저택 경주 양반마을 향단. 양동마을 의 유래는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양동마을 문화관의 향단 미니어쳐







향단 건물의 독특한 구조(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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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은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의 유래를 보면 경주(월성) 손씨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선생이 청송 안덕에서 560여년전에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처가인 양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아 살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처가입향 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여강이씨 찬성공 이번(1463~1500)과 손소의 딸이 혼인을 하면서 처가인 양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두분 사이에 큰 아들로 동방오현의 한사람인 회재 이언적을 낳았다. 결국 회재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자로 이곳 양동마을에는 손씨와 이씨가 서로 마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양동마을은 어떠한 특징이 있는 마을일까. 손소도 장가를 들어 처가인 이곳에 이주하였고 그의 사위인 이번도 이곳으로 이주와 살면서 처가입향의 마을로 불린다. 그러나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손소의 처 류씨부인은 그 당시 무남독녀였던 관계로 풍덕 류씨는 절손되어 현재에  외손인 손소의 문중에서 제향을 받들고 있다 한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무료 관람.



이러한 모든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양동마을 입구에 주차장과 연결된 곳에 양동마을 문화관이 들어 서있다. 문학관 건물은 2층으로 1층은 양동마을을 이루게 된 역사와 그 당시의 생활상 그리고 조선시대 반촌의 모습을 전시하였고 2층에는 문서등을 전시하여 양동마을을 찾는 관람객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미니어쳐로 만날 수 있는 양동마을문화관.



이곳 전시실안의 볼거리는 보물로 지정된 처가입향인 손소의 초상화를 볼 수 있고 관가정, 향단, 서백당, 무첨당등 고택들의 모습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사실감을 더 하였고 관람객에게 현장감을 느끼도록 한부분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양동마을의 입장료는 4천원이지만 양동마을 문화관은 입구에 있어 양동마을 관람료를 주지 않고 무료로 볼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자녀에게 훌륭한 교육 자료.


이곳인 양동마을 문화관만 보아도 어지간한 양동마을의 모습은 한눈에 다 들여다 볼 수 있다. 실제의 양동마을을 들어가서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이곳 양동마을 문화관만 관람해도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공부가 될 것 같다.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경주 양반마을 양동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양동마을 문화관 교통편.


일단은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가셔야 겠죠.

교통편은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시내버스주차장이 나온다. 그곳이 양동마을가는 버스 주차장이다. 안강행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203번 버스로 오전 6시20분, 7시30분, 9시15분, 10시30분, 12시30분으로 30~35분이 소요된다.

그외 안강행 버스를 이용하면 양동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양동마을까지 걸어가면 된다. 양동마을 주차장에서 8분소요.


승용차는 좋은 네비에다 양동마을을 치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양동마을 문학관 정보


주소: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52-1

전화:054-779-6127

관람시간:오전9시부터 18시까지

양동마을 문화관 관람료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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