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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자연이 빚은 절경 금성산에서 합천호를 보다. 합천 금성산 산행 


합천군 대병면에는 황매산(1108m)을 모산으로 하는 

금성산(609m)·악견산(634m)·허굴산(681.8m)을 대병삼산이라 부릅니다. 

이들 산의 특징은 바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금성산은 철옹성이라 불릴 정도로 헌걸찬 산세를 자랑 합니다.





합천 대병3산 금성산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산 64




합천 금성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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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랭글캡쳐



땅에서 솟구쳤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가팔라 

낮지만 오르기가 쉽지 않은 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성산 정상 아래에는 고려시대부터 

봉화대가 있었다 하여 봉화산으로도 불립니다.


율정버스정류장 뒤 당산목

 정상만 떼어 놓고 본다면 설악산 울산바위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며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나 암봉의 동쪽에만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이 열려있습니다.



회양2구 율정동 회관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동서남북 일망무제의 

전망을 자랑하며 절벽 중간의 너른 반석을 

‘비단 소반에 꽃을 단 것’ 같다 하여 

금반현화(金반懸花)로 이름 붙혀져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금성산과 악견산 사이는 브이(v)자를 이룰정도로 

가파르게 솟아 있어 이를 보여주는 그럴 뜻한 전설이 전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은 합천까지 쳐들어왔습니다.

 


의병과 주민이 힘을 합쳐 악견산성을 쌓으며 

치열하게 싸웠지만 왜적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두 산 정상의 바위에다 구멍을 내어 

줄을 매고는 전립(戰笠)에 홍의(紅衣)를 입힌 허수아비를 매달았습니다.

 


달 밝은 밤에 의병은 허수아비에 묶인 줄을 잡아당겨 

하늘에서 신장(神將)이 내려오게 보이도록 하였고 

이를 멀리서 본 왜적은 홍의장군이 나타났다하야 

혼비백산하여 달아 났다고 한다.

 


금성산 정상 바위에는 그때 줄을 묶으려고 뚫은 구멍인지 

알 수 없지만 큰 구멍이 나있어 지금은 이동 통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합천 금성산의 산행경로를 보면 경남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율정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시작합니다. 

회양2리 율정동 회관~밤나무단지~안부 갈림길~지석묘바위~

금성산 정상석~금성산 정상(암봉)~(금성산정상석)~‘철계단 밑’ 표지목~

대원사~대원사입구~율정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오는 원점산행입니다. 

산행거리는 약 4.7㎞에 산행시간은 3시간 안팎이며 

가파른 산세와 바위를 타고 넘으며 시원한 조망으로 산행시간은 무의미합니다.



율정버스정류장에서 금병산 슈퍼 사이로 난 마을 길을 올라 

회양2리 율정동회관을 지나면 정면에 황소 머리를 닮은 

금성산 정상부가 시커먼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개의 스테인리스 물탱크 직전에 오른쪽 콘크리트 임도를 

오르면 바로 ‘금성산 1.7㎞’ 이정표를 지납니다.



율정 마을 이름을 뜻하는 밤나무단지를 끼고 산길을 오릅니다. 

임도는 흙길로 바뀌고 밤나무단지를 가로지르면 

산길은 자연스럽게 능선을 오릅니다. 

‘금성산 1.2㎞’ 이정표에서 소나무 오솔길로 산길은 바뀝니다.

 


‘회양리 금성산 가는 중간 지점’ 표지목을 지나면 

바위 사이로 난 산길은 더욱 가팔라 집니다. 

대머리바위, 세모바위 네모바위, 거북바위, 삼각바위 창바위를 닮은 

각양각색의 바위가 두 눈을 즐겁게 합니다.


지석묘(고인돌)바위

‘금성산 0.7㎞’ 이정표를 지나면은 이끼 낀 바위를 

왼쪽으로 틀어 계곡의 너덜 길을 오릅니다. 

조망이 열리면서 산행 출발지 율정 마을과 합천호가 보입니다. 

그것도 잠시, 산비탈에 성벽처럼 치솟은 바위절벽 아래로 난 산길은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팔라 사투를 하듯 오르면 안부 갈림길입니다.

 


오른쪽은 양리에서 올라오는 거친 길이라면 금성산은 왼쪽으로 오릅니다. 

이제부터 바위길이 기다립니다. 

널 다란 바위가 얹혀진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뒤돌아보면 

3개의 다리 돌을 놓고 그위에다 장방형의 돌을 올린 게 

진짜 지석묘라 해도 믿을 거 같았습니다.

 




바위 틈새를 비집고 나가면 바위 능선에 

금성산의 트레이드 마크인 조망이 열립니다. 

왼쪽에는 황매산이 하늘 금을 긋고 

그 아래 길게 다랑 논과 합천호가 펼쳐집니다.

 








겹겹히 포개어진 집채 만한 바위가 넘어질 듯 서 있는 바위아래를 지나갑니다. 

정상이 가까워 질수록 흙을 밟기 힘들 정도로 바위가 길을 막아 서고 

요리조리 돌아서 오르면 여러 갈래로 쪼개어진 바위틈의 나무에 리본이 여러 개 달려 있습니다.

 


왼쪽 바위 틈으로 빠져 나가 면 오른쪽에 

 표지목이 서 있는 기가 막힌 전망대가 나옵니다. 

 


금성산 정상부의 암봉군이 설악산의 울산바위 축소판을 보는 듯 웅장합니다. 

취재팀은 가슴까지 오는 직벽 바위의 개구멍을 통과 하였는데 

취재팀 전원이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정상부를 받치는 바위를 오른쪽으로 돌아나가 

옛 봉화대 터 였다는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면 

삼각점과 금성산 정상석(592m)이 세워져 있습니다.



금성산의 실질적인 정상은 동쪽 철제 계단을 올라 

산불초소 옆에 얹혀진 바위일대가 정상입니다. 

국립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서

높이는 609m로 표기하여 금성산 정상의 실제 높이입니다.  



악견산과 의룡산 쪽 전경입니다.

허굴산쪽 전경입니다.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서쪽은 황매산, 북쪽은 재안산 월현산 망일산 합천호 건너 

소룡산 동쪽은 악견산 의룡산 남쪽은 허굴산이 펼쳐집니다




금성산 정상 남측 암봉 중간 쯤에 

꽃잎을 펼친듯한 너른 암반이 금반현화입니다.

 






큰 바위 사이에 두드리면 북소리가 난다는 사각형의 북바위가 있습니다. 

등산객이 얼마나 두드렸는지 홈이 깊게 파였습니다.

 







대원사 방향 하산은 금성산 정상석까지 되돌아가서 왼쪽 ‘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악견산의 주등산로라 그런지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잘 설치되어 있고 산길 또한 뚜렸합니다.

 




정면의 악견산을 보며 내려섭니다. 

‘철계단 밑’표지목 에서 하산은 왼쪽이지만 

경주 남산 부석을 닮은 바위 왼쪽의 전망대에서 

마지막으로 황매산과 합천호의 풍경을 눈에 답습니다.












‘대원사 1.3㎞’ 이정표를 지나면 황금색 카펫이 깔린 낙엽송 길을 지나 

금성산 정상에서 50분이면 대원사를 지나 

절 입구 도로에 닿으면 사실상 산행은 끝납니다.


대원사와 악견산




합천댐 방향인 왼쪽 도로를 따라 20분이면 출발지 율정마을로 되돌아 갑니다.

 

악견산





합천 대병면 금성산 교통편입니다.

부산에서 산행 들머리인 합천군 대병면 회양리 율정마을을 찾아가려면 합천을 거쳐야 합니다.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은 오전 7시(첫차),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10시20분 등에 출발하며 2시간이 걸립니다. 

합천 버스정류장에서 오전 8시10분(첫차), 9시30분, 11시10분, 12시30분 등에 

출발하는 ‘평학선’ 버스를 타고 ‘율정’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행을 마친 다음 ‘율정’ 버스정류장에서 합천 버스정류장으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2시30분, 3시40분, 4시40분, 6시, 6시50분(막차)에 있습니다. 

합천 버스정류장에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행은 오후 3시10분, 4시, 

4시40분, 5시20분, 6시10분, 7시(막차)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경남 합천군 대병면 율정길 17 

회양 2구 마을 회관(회양 2구 율정동 회관)을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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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황강의 제1경인 합천 8경의 5경 함벽루 여행. 합천 함벽루


합천 여행을 하면서 황강가의 함벽루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함벽루는 대야성 아래에 있습니다.

대야성은 해발 90m의 매봉산 정상에 둘러쌓은 성입니다.





합천8경의 5경 함벽루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136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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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은 전략적 요충지로 신라와 백제와의 대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642년인 선덕여왕 11년에 백제 의자왕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신라의 40여 성을 함락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의자왕은 윤충에게 군사를 주어 

대야성을 공격하게 하였고 대야성 전투는 백제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김춘추의 외교력과 김유신의 승리로 

대야성을 재탈환하여 백제는 수세에 물리면서 

신라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대야성 전투의 역사 현장에 세워진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대에 합주지주사 김영돈(1285~1348)이 창건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진이란 분이 기문으로 남겼습니다. 



그 이후 함벽루는 여러번 새로 지어졌습니다. 황

황강과 강 건너 정양호를 내려다 보게끔 지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합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많은 시인묵객이 풍류를 즐기며 찾아들었습니다.

필자가 찾았을 때의 함벽루도 조선시대 풍경 못지 않아 보였습니다. ㅎㅎ




퇴계 이황 현판



남면 조식 현판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함벽루 각자



하얀 모래가 끝없이 이어지고 철새가 찾아드는 모습에 

주변의 경치와 잘 어울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누각에 어떤분의 현판이 걸렸나 하면서 찾아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분들의 현판이 쭉~~ 걸려 있었습니다.




함벽루의 전면에 걸린 힘이 넘치는 제일강산 현판



많은 분들 중에서 남명 조식선생,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 

내노라하는 명유들의 현판이 걸려 있다고해서 유심히 찾아보았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과 퇴계 이황선생의 현판은 볼수 있었으나 

우암 송시열의 현판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안내판에는 글씨가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말입니다. 

한자 실력이 딸려서 찾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각 뒤 바위에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함벽루(涵碧樓)의 글씨는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암이란 한자가 딱 보였습니다. ㅋㅋ




그 이외에 많은 분들의 이름이 바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함벽루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인 들보 5량가인 2층 목조 기와집입니다.



함벽루 앞의 황강 ㅎㅎ

 모래톱에 반영이 완전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함벽루 누마루에 걸린 여러 명유의 현판




함벽루 누마루에 걸린 여러 명유의 현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ㅋㅋ

그래서 많은 분들이 경치 좋은 곳에다 이름을 새겨 놓았는지 








함벽루의 특이한 점은 누각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게 설계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함벽루 위로 여러 댐이 생겨 

황강을 흐르는 강물이 많이 줄었습니다. 






당시에는 함벽루 앞으로 많은 강물이 흐르고 

빗물이 누각의 처마를 타고 바로 강물에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비오는 날 함벽루를 다시찾아 강물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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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겨울 아이가 되어 찾아간 겨울 황계폭포 여행. 합천 황계폭포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볼일을 보고나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합천 8경의 7경인 

겨울 황계폭포를 구경하였습니다.





겨울 황계폭포 여행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 산 156

황계폭포 입구에 대형 무료 주차장도 있어 주차 걱정은 하지 마세요,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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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계폭포는 몇해 전 여름에 찾았던 곳입니다. 

그때는 비 오고 난 후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난 수량과 함께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이번에 찾은 겨울 황계폭포는 갈수기에다 겨울 가뭄까지 겹쳐서 

그런지 예전의 그런 맛은 느낄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약 30m의 높이에서 미사일같이 직각으로 내려 꽂이는 물줄기는 

곧추선 바위 절벽과 함께 진경산수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하늘의 선녀도 내려와 폭포아래 소에 목욕하고 올라갔을 듯한 

황계폭포의 소는 워낙 깊어 명주실 한타래를 다 풀어도 

닿지 않는다하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황계폭포에는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찾아들어 

황계폭포를 예찬하며 글을 남겼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남명 조식선생입니다. 

남명 선생은 황계폭포와 아주 가까운 삼가면 외토리에서 태어났으며 

말년에는 지리산이 보이는 덕산에다 산천재를 짓고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고 노래했습니다.




남명 조식선생은 황계폭포를 찾아 두 시를 남겼으며 

황계폭포 입구에 들어앉은 자연정 옆 빗돌에 한수의 시를 새겨 놓았습니다.



“달아맨 듯 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로 시작되는 남명선생의 시를 보면서 

황계폭포는 내가 봐도 달아맨 듯 한줄기기 물이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그런 느낌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물에 씻겨 동글동글한 옥돌을 보면서 

황계폭포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사가 흘러 나왔습니다. 

며칠간 추운날씨가 계속되어서 그런지 

남향을 보고 있는 폭포지만 고드럼이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수량이 풍부한 여름의 황계폭포도 볼거리지만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겨울의 황계폭포는 가식하지 않고 

오직 폭포의 아름다움 만을 볼수 있어 

더욱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지금은 폭포 아래에다 인공 시설물을 완전 도배하듯하여 

옛 선비들이 찾던 그런 폭포의 느낌은 많이 반감되었지만 

황계폭포의 떨어지는 물줄기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예전에는 물맞이 폭포로도 많이 이용되었다는 황계폭포 겨울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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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신라 폐사지를 찾아서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여행


합천군과 의령군의 경계에 솟은 국사봉을 산행하고 항상 찾아가려고 마음만 먹었던 무월봉 아래 골짜기에 있던 폐사지에 합천 백암리 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찾았습니다. 

도로에서 대략 2km 가량 떨어져 있어 대형버스는 갈수 없고 승용차나 걷는 수 밖에 없지만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였습니다.



합천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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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 (합천여행)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대가야 비운의 태자 월광태자의 전설이 남아 있는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다행이 자가운전을 해 온 덕분에 편안하게 합천 백암리 석등이 있는 폐사지 인근까지 갔고 주차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대충 주위에 주차를 했습니다. 

저 멀리 석불좌상 노거수인 느티나무가 보였습니다. 

논밭 한가운데 자리해서 논둑을 따라가려니 찾아가는 것도 상그러워 보였습니다.



당시 모내기철이 아니라 급한 마음에 무논을 가로질러 바로 합천 백암리 석등을 찾아갔습니다. 

낮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작은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는 그야말로 황량한 분위기였습니다. 

합천 백암리석등과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보호수인 느티나무가 한줄로 나란히 서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안내판에는 백암사 또는 대동사가 있었다는데 확실하게 드러난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검색에서 백엄사로 추정하며 합천 해인사보다 더 큰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게 아닌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이곳저곳을 찾아 공부를 좀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이리 열심히 찾고 했다면 벌써 문화재 박사라도 했을 낀데 말입니다.

 


그런데 찾아본 결과는 국사봉 산행의 출발지인 서암마을에는 한지전시관이 있었습니다. 

한지는 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말하며 그 시초가 대동사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백암리 석탑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의 그 대동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종이 이전에는 죽간이나 목간에다 글을 써서 기록했습니다.



종이의 발명이 우리 문명에 끼친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종이는 절에서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큰 사찰에서는 모두 한지를 자급자족하여 만들어 사용 했으며 절 주위에다 종이의 원료인 닥나무를 많이 심고 관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지를 처음 만들었던 곳이 대동사이며 이절에 설씨 성을 가진 스님이 닥나무를 짓이겼더니 서로 엉켜붙는 것을 보고 연구 끝에 한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에 봉수면과 백엄사(대동사) 아래 백암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집이 한지를 생산하였고 우수한 품질로 궁궐의 진상품에 올랐으며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고 합니다.



백엄사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등장합니다. 

삼국유사 권3 탑상4 ‘백엄사 석탑사리’편에 나온다고 합니다. 

백엄사의 창건은 신라시대이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남아 있는 문화재를 보면 신라시대에부터 있던 사찰로 보여집니다.

 


그리고나서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고려시대인 906년(효공왕10년)에 양부화상이 중창하였으며 925년(태조8년)에 희양산파의 긍양화상이 10여년간 머물다 희양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긍양의 뒤를 이어 신탁화상이 주지가 되었으며 1065년 11월에 당시 주지였던 득오미정대사 석수립이 ‘백엄사에서 지켜야 할 규칙 10조’를 정하면서 새로 5층 석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 42과를 봉안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엄사 규칙 10조를 보면 사재로서 보를 만들어 해마다 공양할 것, 백엄사에서 불법을 수행하던 엄흔과 백흔, 근악 세분의 보를 세워 공양할 것, 금당의 약사여래불 바리때에 매월 초하루에 쌀을 바꾸어 넣을 것 등입니다. 

엄흔과 백흔 두사람이 집을 희사하여 절을 창건했고 두사람의 이름인 백자와 엄자를 따서 백엄사로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한, 신라 때에 북택청 터를 희사해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은 주위에 널부러져 있던 부재를 모아 원래 모습그대로 인 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복원한 상태입니다. 

석등을 보면 그저 밋밋한 형태가 아니고 석등을 받치는 받침돌과 화사석의 사면에 새긴 조각을 보고는 매우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 석등의 받침돌을 보면 아래로 향한 8장의 연꽃 잎인 복련을 새긴 둥근 받침돌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깨끗한 형태의 팔각기둥을 세웠습니다. 

그위에 화사석을 받치는 윗받침돌에 하늘로 향한 여덟장의 연꽃인 앙련을 새겼습니다.

 

대동사지 여래좌상

그 안쪽에는 홈을 파서 불을 밝히는 팔각의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화사석의 네면은 창을 내고 나머지 네면에는 악귀의 근접을 막는 사천왕입상을 도드라지게 새겼습니다. 

화사석 위에 지붕돌 밑면은 1단의 받침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홈을 내어 화사석을 고정시켰습니다.






지붕돌의 여덟 귀퉁이에는 꽃조각이 붙어 있었다하나 지금은 모두 깨어져 흔적뿐이며 지붕돌의 경사면은 얇지만 뚜렷하게 각을 지은 모습입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의 여러 전형을 종합해보면 군드더기 없이 깔끔하고 늘씬한 게 8세기 후반의 통일 신라 석등의 전형적인 경쾌한 모습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 제381호




합천백암리석등과 함께 있는 대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보았습니다. 

연꽃 좌대위에 석조불상이 사바세계을 내려 보는 듯 따뜻한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얼굴부분은 알아 볼수 없게끔 마모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정교한 석조여래불입니다.



머리 가운데에 상투모양의 육계가 높이 솟았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어깨를 감싼 형태이며 상체에서부터 흘러내린 옷주름은 무릎을 감싸고 있습니다. 

오른쪽 무릎에 올린 오른손은 아래를 보고 왼손은 왼쪽무릎에 올렸으며, 손끝은 아래를 향하여 땅속의 악귀를 물린친다는 뜻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대좌는 상중하대를 갖추었으며 연꽃잎이 하늘로 향한 앙련이며 팔각의 중대에는 각면에다 악귀의 근접을 막으려고 갑옷과 투구를 쓴 여덟명의 신장상을 새겨놓아 석조여래좌상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대 또한 상대와 반대방향인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함께한 합천백암리 석등에서 보듯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석조여래좌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합천 백암리 석등



현재 이곳은 두 번의 발굴조사가 있었으며 주위에 흩어져있던 부재와 부도골 등을 종합하면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엄사 또는 대동사는 모두 국사봉이 보이는 곳에 있었던 사찰 같습니다. 

발굴된 기와조각과 건물 터 등을 보면 고려와 조선초까지 연결되며 또한 삼국유사에 백엄사는 초팔현(지금의 초계면)에 속했으며 현재 대양면 백암리가 당시 초팔현에 속했다합니다.

 이와 함께 2008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서 여러 정황을 비교해 백엄사지로 볼수 있다는 추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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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대가야 비운의 태자 월광태자의 전설이 남아 있는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경남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월광사지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옛 절터가 있습니다. 월광사터로 현재 이곳에는 동·서 삼층석탑만이 덩그런이 남아 있으며 보물 제129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월광사지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인 월광태자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합천군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 주소: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369-1


2016/08/30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해인사.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불법종찰인 가야산 해인사를 여행하다. 합천 가야산 해인사.

2016/08/25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대장경전, 고려각판. 부처님의 원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려했던 고려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을 여행하다.

2016/08/24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유정이 입적했던 암자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을 여행하다. 홍제암

2016/08/23 - (합천여행)가야산 홍제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왜!! 사명대사 석장비는 쪼개졌을까요?, 부도에는 왜! 대사의 명문을 새기기 않았을까요? 사명대사 석장비와 부도

2016/08/20 - (합천여행/합천가볼만한곳)가야산 홍류동천 농산정. 고운 최치원이 갓과 짚신을 걸어놓고 신선이되었다는 명경산수의 해인사 소리길 농산정을 여행하다. 농산정




  월광태자와 신라의 마의태자를 비운의 태자라 합니다. 모두 존망에 처한 나라와 함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인데 마의태자는 모두 아시는 것과 같이 신라의 태자로 있을 때 고려 왕건에 의해 나라가 멸망합니다. 경순왕은 왕건에 항복하지만, 그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금강산에 들어가 입었던 비단옷을 벗어 던지고 고려가 주는 양식을 먹고 사느니 풀뿌리를 캐 먹더라도 끝까지 신라인으로 남아 죽겠다며 삼베옷을 입고 일생을 마쳤다 하여 마의태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그보다 빠른 삼국시대의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태자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 대가야는 신라에 의해 멸망합니다.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월광태자를 왜!! 마의태자와 함께 비운의 태자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대가야의 이뇌왕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 비지배의 딸로 국가를 뛰어 넘어 결혼을 했는데 쉽게 말하면 대가야와 신라 간의 결혼동맹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월광태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대가야와 신라의 동맹관계는 신라의 트집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7년 만에 깨어져 끝내는 대가야는 신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KBS의 역사스페셜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 갔나?” 편을 보면서 월광태자의 궁금증을 많이 풀 수 있었습니다. 월광태자와 도설지왕이 같은 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KBS 역사스페셜의 출연진은 월광태자와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솔지를 같은 인물로 보고 있었습니다.



동시대의 인물로서 도설은 달을 뜻하며 월광 또한, 달빛으로 풀이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설지는 단양의 신라적성비에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신라가 한강유역의 고구려 영토를 점령하면서 대가야의 도설지도 장군으로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이 왜 신라의 장수로 출전했는지 그 이유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가야의 정세는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국운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우방이라 믿었던 백제가 느닷없이 창끝을 겨누며 공격해와 대가야의 영토인 남원, 임실, 하동유역까지 빼앗겨 더욱 위기감을 느낀 대가야는 마침내 신라에 혼인동맹을 제의하고 큰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의 혼인동맹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 7년 만에 파탄이 납니다.





그 이유를 보면 결혼할 때 신라에서 따라간 하인들의 옷차림을 모두 대가야의 복식으로 바꾸어 입게 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동맹은 휴짓조각이 되고 맙니다. 이에 대가야는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다시 국가존망의 위기의식을 느꼈고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지 않으면 나라의 존립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급기야 가야 내부에서도 백제와 협력해야 한다는 파와 그래도 신라 쪽에 붙어야 한다는 파벌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백제 쪽으로 기울어졌고 어머니가 신라 사람인 월광태자는 난처한 처지에 처해 신라로 망명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역사스페셜 출연진은 추정했습니다. 561년경에 세운 진흥왕 순수비에도 도설지란 이름이 등장하는데 같은 인물로 보면 신라에서 혁혁한 전공을 많이 세웠던 분 같습니다.

 




그러나 국제관계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는 서로 짝짜꿍하며 힘을 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였다가 신라는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다시 고구려와 손을 잡고 이번에는 백제를 공격합니다. 신라는 관산성에서 백제에 대승을 거두었으며 그와 반대로 백제와 협력관계인 대가야는 백제와 함께 신라를 공격해 패하자 대가야의 몰락를 자초합니다.





562년 신라 진흥왕은 이사부를 총사령관에, 사다암을 선봉장으로 삼아 군사 5천을 내주어 대가야를 정벌케합니다. 대가야는 힘 한번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520년 만에 멸망하여 신라에 복속됩니다. 그러나 신라로서는 가야 백성의 민심을 잠재우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신라는 대가야의 태자였던 월광을 왕으로 앉혀 잠시나마 내분을 수습하려 했으며 신라는 이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자 월광태자를 내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보면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 월광은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이라는 유추도 가능해집니다. 신라로부터 버림받은 월광은 더는 갈 곳이 없자 합천 가야산의 거덕사에서 출가해 인근에 월광사를 짓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합니다. 월광태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온 근거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다르게 월광태자를 설명하고 있으며 대가야와 신라의 혼인동맹으로 태어났으며 태자로서 승려가 되었고 여생을 월광사에서 보낸 것만은 사실로 보입니다. 





월광태자가 여생을 보냈다는 월광사는 현재 옛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창건 연대만 달리하는 비슷한 모양의 삼층석탑 두기만 월광 태자의 비운을 아는지 천 년의 세월 동안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월광사지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에다 3층의 몸돌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형태의 석탑입니다. 






기단은 아래층과 위층 모두 각 면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우주를 조각했으며 몸돌의 모서리에도 마찬가지로 우주조각을 했습니다. 옥개석인 지붕돌은 밑면이 5단 받침으로 언뜻 보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탑의 기단부는 서탑에 비해 많은 부재가 들어갔으며 서탑은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복원하였다하며 여러 곳에 파손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기단석의 각 면 중앙에도 기둥을 새겼는데 서탑에는 2개지만 동탑은 1개뿐입니다. 두 석탑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고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각 부분의 구성방법과 양식에서 약간씩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두 석탑이 함께 만들어진 게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합천 하면 생각나는 여행지가 가야산과 해인사입니다.




 

물론 해인사는 법보사찰로서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대찰이며 최고의 여행지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가야 비운의 황태자인 월광태자의 사연이 알알이 새겨진 월광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만나보고 월광태자의 마음을 노래했을 ‘월광사지’

"아득한 풍경 소리 어느 시절 무너지고

태자가 놀던 달빛 쌍탑 위에 물이 들어

모듬내 맑은 물줄기 새 아침을 열었네"를 읊으며 월광 태자가 되어 봅니다.

참고:KBS의 역사스페셜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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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황계폭포~허굴산 산행. 합천 명산 황계폭포~허굴산 산행을 하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에는 고만고만한 산봉우리가 세개 있다. 똑 같이 산 등에다 큰 바위를 이고 있어 대병면에는 대병삼산이라 부른다. 금성산(609m), 악견산(634m), 허굴산으로 독립된 산이지만 독립된 산이 아닌 듯 서로 얼굴을 맞대며 우애 깊은 형제처럼 다정한 모습이다. 작은 곱추가 맵다고 작지만 큰 산인 대병삼산은 합천군의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대병삼산의 맏형격인 허굴산을 찾았다. 일명 허불산으로 불리는데 삼산중에 682m 봉으로 가장 높다. 허굴산의 유래를 보면 입구에서 바라보면 정상아래 동굴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것 같이 보여 길을 가던 스님이 바랑을 벗어놓고 산을 올라가보면 부처님은 온데간데없고 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부른다.



허굴산에는 황계천을 따라 20여 m 의 미폭을 빚어 놓았다. 합천8경중 7경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황계폭포는 일찍이 남명 조식선생이곳을 찾아들었다. 그는 조선 중기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학자로 ‘황계폭포’란 시를 남겼다. “달아맨 듯 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구르던 돌 어느새 만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황계폭포를 두른 고추선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그 안에 들어서면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떨어지는 폭포수는 하늘을 울릴정도의 괴음에 한여름 무더위도 씻어 버리게 하는 황계폭포는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단에 비해 2단은 와폭이며 그 아래 명주실 한꾸러미가 들어갈 정도로 깊이 를 알 수 없는 검푸른 소에는 용이 살았다는 전설로 용소, 현재에는 위에서 굴어 온 암석으로 많이 메워진 모습이다. 옛날 황계폭포를 찾은 선비들은 폭포와 함께 아름다운 절경을 보고 중국의 여산폭포에 비유 하였다 한다.






허굴산은 보통 장단리에서 산행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필자가 찾은 허굴산 산행은 황계폭포를 잇는 산행으로 계획을 하여 대병면이 아닌 용주면에서 산행을 하였다. 산행경로를 보면 황계폭포 입구 택계교~자연정~황계폭포~합천이씨묘~택계마을~진동골 입구 갈림길~허굴산농장 밑 독립가옥~대병면 장단리 하봉기마을~효부비석 삼거리~상봉기마을~청강사 입구 삼거리~청강사~약사선원~전망대~코끼리바위~석굴~장단리 삼거리~주능선 갈림길~허굴산~허굴산성~갈림길~사거리~560봉~폐무덤터~임도~허굴산농장 밑 삼거리~택계마을~택계교 순으로 전체산행거리는 12.5㎞며 산행 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30분 안팎이 소요.




황계폭포와 허굴산을 연계한 산행을 위해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 택계교로 가야한다. 택계교 직전에 오른쪽 계곡을 따라 가면 솔숲과 만나고 누각인 자연정 옆에 남명조식 선생의 ‘황계폭포’를 노래한 시가 빗돌에 세겨져 있다. 이를 본 뒤 폭포 아래까지는 10분 정도 걸렸다.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소리가 들리며 눈으로 보이는 2단 폭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와폭 왼쪽으로 난 계단을 밟고 오르면 높이 20m의 직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날리는 게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목포의 유명세를 듣고 황계폭포를 담기위해 3명의 찍사가 좋은 자리를 잡고 폭포를 담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도 딱 벌어진 입을 다물고 황계폭포의 모습을 사진기에 열심히 담고 폭포 앞을 지나 용꼬리처럼 내려온 산길을 따라 오른다.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어 초반에 보이던 산길이 희미해 질 쯤 합천이씨묘가 나오고 왼쪽 11시 방향으로 무덤을 찾아 들어오는 편안한길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밤나무 밭을 지나고 대밭을 지나 10여분이면 택계마을 직전 도로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꺽어 도로를 따라 택계마을을 지난다. 정면에 소꾸리를 엎은 듯 둥근 모습을 한 허굴산이 모습이 드러난다. 택계마을 지나 10분쯤 후 택계1교 건너면 갈림길을 나온다.



직진길은 저수지 방향이지만 허굴산을 가기위해서는 오른쪽으로 꺾어 진동골을 끼고 나 있는 임도를 150m쯤 오르면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다시 계곡 방향인 왼쪽 임도로 접어든다. 멀리허굴산 농장 건물이 능선에 보이고 임도는 조금씩 가파르게 이어진다.




한굽이 올라 밤나무 단지 사이로 난 임도를 따라가면 콘크리트 길과 만나면 갈림길이다. 여기서는 직진한다. 허굴산에서 내려오는 능선을 넘어가면 왼쪽 허굴산 농장으로 오르는 갈림길과 만난다. 허굴산 산행을 한 후 하산을 하면 뒤에 이곳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도 직진을 하면 큰 느티나무가 있는 독립가옥을 지나고 두 번째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하봉기 마을 방향으로 들어선다.



몇가구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정자에 할머니 세분이 나와 계시면서 우리를 보고는 어디서 오느냐고 물어보시길에 황계폭포에서 허굴산을 가기위해 온다고 하니 고생들 한다며 걸레로 마루 바닥을 훔치며 “힘들다 쉬었다 가이소”며 반갑게 이야기를 하신다. 할머니에게서 허굴산의 여러 바위 이름을 듣게 되었다. 저 넓직한 바위는 상여바위, 저것은 병풍바위, 코끼리바위 등 젊었을 때 나물 뜯으러 많이 오르내렸고 지금 객지에 나가있는 애들이 소를 끌고 저곳으로 많이 올라 다녔다 하시며 그 당시의 고생담을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뒤로 하고 출발 하였다.




5분이면 박효열부비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상사료 공장을 보고 간다. 공장을 지나면 상봉기마을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상봉기마을회관을 지나면 청강사 입구 갈림길이다.



안내판을 따라 왼쪽 청강사 방향으로 오른다. 10여분이면 숲속에 잠들 듯이 자리한 청강사 경내다. 관음전을 오른쪽으로 돌면 약사선원 가는 산길이 있다. 솔숲을 따라 5분이면 약사선원에 닿고 건물 직전 왼쪽에 허굴산을 오르는 계단을 찾아 오른다.




10분쯤 오솔길을 오르면 큼지막한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금성산과 악견산, 의룡산 등 주위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오도산, 두무산, 황매산, 거창 비계산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명당터다.





10분쯤 오르면 갑자기 큰 바위가 나타난다. 코끼리 코 같이 길게 바위가 늘어져 있는데 한눈에 봐도 코끼리바위임을 알 수 있다. 신비하리 만큼 코끼리의 머리와 코 눈 귀까지 닮아 있는 바위다. 명당 터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는 듯 바위 밑에 기도를 위한 간이 막사가 지어져 있어 안을 보니 불상이 모셔져 있다.










코끼리 바위 왼쪽으로 올라 10분쯤 가면 또 하나의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면서 산길은 약간 난애하다. 그래도 산길의 흔적만을 따라가면 무덤을 지나고 기대선 바위틈에 작은 석굴이 있다, 한사람이 들어가 앉아 수도할 만한 공간이다. 3분이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길이며 곧 주능선 갈림길에 닿는다.






왼쪽으로 틀어 200m쯤 능선을 가면 허굴산 상봉을 알리는 정상석이 있다. 주변의 잡목으로 조망권은 전혀 없지만 남서쪽 능선으로 등산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주변의 조망이 열리는 암릉구간이 나온다. 이곳에서 돌무더기가 널부러져 있는 허굴산성의 흔적을 발견한다. 




정상에서 보지 못한 전망을 이곳에서 원없이 바라볼 수 있다. 발아래는 천길 낭떨어지로 오금이 찌릿찌릿 저려오니 추락에 조심해야 하며 머리를 들어보면 금성산 악견산 의룡산은 물론이고 멀리 합천호와 들머리인 택계마을까지 그리고 거창의 산들까지 한꺼번에 조망을 한다.



산성흔적을 지나 계속 바위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20분이면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하산을 시작한다. 7분쯤이면 안부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상봉기마을 방향 하산로에 많은 리본이 달려 있다. 산길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이곳에서 하산을 권한다.



황계폭포 방향으로 가기위해서는 직진하여 능선을 오른다. 560봉에 오르면 다시 조망 바위를 만나고 이후부터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산길이 기다린다. 길 찾기가 애매하니 조심해서 내려서야 한다 조심조심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사선으로 내려선다.



산길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폐무덤터를 지나고 10여분 더 산길의 흔적을 더듬어면 임도를 만난다. 오른쪽 방향이며 이제부터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흰색 농장 건물 방향인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간다.



10여분이면 허굴산 농장 옆을 돌아 허굴산 농장 밑 갈림길에 도착한다. 하봉기마을에 가기전에 만난 갈림길로 이곳에서 올라온 길을 따라 택계마을 지나 택계교까지 30분이면 된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황계폭포~허굴산 산행. 합천 명산 황계폭포~허굴산 교통편.


허굴산은 원점회귀 산행으로 자가운전이 편하다.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군북IC에서 내려 의령 합천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이후 20번 국도를 타고 의령읍을 지나고 대의고개를 지나 대의면삼거리에서 합천 방향으로 우회전 한다. 합천읍 직전 합천교차로에서 내린 다음 좌회전하여 남정교 앞에서 용주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10분쯤 달리다가 용지삼거리에서 대병 가회 방면 왼쪽 길로 6㎞쯤 더 가면 황계폭포 이정표가 나오고 왼쪽 방향으로 꺾어 면 곧 황계폭포 입구인 택계교다. 내비에 황계폭포를 찾으면 된다.

<!--[if !supportEmptyParas]--> 대중교통편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합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간다. 오전 7시,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등 하루 16회 운행하며 2시간 소요. 합천터미널에서 산행 출발지인 황계폭포를 가기위해서는 용주·대병·가회행 군내버스를 타야 한다. 오전 9시40분, 10시40분, 11시30분 등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을 하며 황계폭포 입구 정류소에 하차한다. 합천버스터미널 문의 051-931-2467.




허굴산 고도표

허굴산 지형도

허굴산 다음지도 캡쳐








2014/08/19 - (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2008/06/23 - 속이 빈 산을 아시나요?-합천 허굴산


2014/08/15 - (경남여행/합천여행)용주면 황계폭포. 합천8경에서 돋보이는 황계폭포의 굉음에 간담이 서늘합니다. 황계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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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허불산 청강사. 4월에 가장 아름답다는 절집 허굴산 청강사를 보고오다.

우리는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보고 속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만큼 빈틈이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연에서도 흔치 않은 이름이 있습니다. 허굴산으로 속이 굴처럼 텅텅 비었다는 뜻인데 실제로 허굴산을 가까이 가 보면 완벽하게 꽉 차 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기암괴석과 함게 황계천에 드리워진 황계폭포와 수백년은 됨직한 노송등 어느 하나 빠트림이 없이 완벽한 모인데 왜 허굴산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전설에는 허굴산을 허불산으로도 불렀습니다. “산을 들어서는 입구에서 이산을 바라보면 산의 중턱에 있는 굴 안에 부처님이 좌정하여 있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두고 부처님을 배알하기 위해 올라가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 허굴산의 배꼽에 청강사란 아담한 절집이 현재 있습니다. 연꽃모양을 한 듯 입을 벌리고 선 큰 바위를 비집고 들어서 있는 작은 절집은 그래서 더욱 정이 갑니다. 청강사를 들어서는 입구에는 일주문 대신 수백년은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청강사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절의 유래를 보면 청강사가 있던 이곳은 원래 고려 때에 창건된 허굴사의 절터였다합니다. 그러나 절터의 흔적만 남게 되었던 이곳에 처음으로 불사를 일으킨 이는 합천군 쌍백면의 유학자 정규락선생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청강거사라 하였고 1891년인 20세에 진사과에 합격 하지만 국운이 일인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등져 허굴산에 은둔하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이곳에 만귀암을 짓지만 선생은 입적을 하고 그의 아들인 정방해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12동에 80여칸의 절을 완공하며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또한 만귀암은 부친의 아호를 따 청강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며 현재는 불가에 귀의한 후손 혜광스님이 주지로 있습니다.



청강사는 당대의 선승 동산스님과 정강 스님도 주석을 하며 수행을 하신 곳으로 현재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은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 전단향 목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 현판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며 로전과 산신각 그리고 칠성각의 현판은 서예가 오제봉선생과 정현복 선생의 글씨라합니다.



아담한 절집인 청강사는 있는 듯 없는 듯 허굴산과 함께 동화되어 있으며 청강사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4월이라 합니다. 이때쯤이면 산과 절을 에워싼 산 벚꽃이 마치 눈발이 흩 날리 듯 청강사를 감싼다합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아담하며 조용한 절집 합천 허불산 청강사를 대병면 여행시 찾아보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웅전 현판글씨는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 섰다.


거창 감악산 연수사에서 모셔온 인도전단향 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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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합천여행)용주면 황계폭포. 합천8경에서 돋보이는 황계폭포의 굉음에 간담이 서늘합니다.........


남명 조식선생은 합천의 황계폭포를 찾아와 지은 두시가 전하는데 그 중 한시가 황계폭포 입구에 세워놓은 자연정의 빗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 남명선생이 칭송과 극찬을 한 황계폭포 시를 읊어 보겠습니다.



“달아맨 듯 한 줄기 물 은하수처럼 쏟아지니.

구르던 돌 어느새 만 섬의 옥돌로 변했구나.

내일 아침 여러분들 논의 그리 각박하지 않으리.

물과 돌 탐내고 또 사람가지도 탐낸다 해서.“






황계폭포는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황계리 산 156번지에 마치 하늘에 걸린 듯 지면으로 내려 꼽히며 2단의 폭포를 이룹니다. 폭포를 두르는 좌우로 병풍을 두르듯 암벽이 둘러쳐져 인간의 근접을 허락하지 않는 그런 곳에 황계폭포는 걸려 있습니다.



황계폭포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입구는 오직 덕계교 방향 뿐입니다. 이곳에서 물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자연정을 만나게 됩니다. 입구 안내판에 600m는 잘못 표기된 것 같습니다. 200~250m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자연정과 남면선생의 시 한수를 감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층암절벽에 푸른 이끼를 이고 있는 것이 숱한 세월을 견디어 온모습과 떨어지는 굉음에 등골이 한여름의 오아시스처럼 싸늘합니다.



바람소리 물소리를 맞으며 짙은 숲을 나오면 계곡은 왼쪽으로 꺾어 2단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상단은 이마가 툭 튀어 나온 바위위에서 물을 쏟아내고 하단은 두줄기의 물줄기가 마치 용이 하늘로 먼저 올라가듯 경쟁을 하는 모습입니다.



폭포 밑의 소에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짚어 명주실 한꾸러미를 다 풀어도 닿지 않는다며 마을의 구전을 들어보면 용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합니다.



인근의 동네사람들이 여름철에 모여 황계폭포에서 물맞이를 많이 했다며 논일 하다 이곳에서 물을 맞고 더위를 달랬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합천군 안에서는 이만한 폭포는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덕분인지 황계폭포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합천 8경 중 7경에 황계폭포의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옛날부터 근방에 이름을 알려 주위의 황매산과 허굴산, 금성산, 악견산이 모여 합천의 명산인 대병3산이 되었는데 이 황계폭포가 일조를 하였습니다.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세와 함께함께 절경을 이루는 황계폭포는 시인묵객들이 빠질 수 없는 곳입니다.





지리산을 노래한 남면조식선생을 위시하여 많은 분들이 황계폭포를 예찬하였다합니다. 황계폭포를 찾아 얼마남지 않은 여름 무더위를 훅~~하고 날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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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산청합천여행)황매산 철쭉산행, 철쭉의 바다에 빠질 것 같은 5월 황매산 철쭉 보고 왔습니다.


5월 요맘때 가장 인기를 끄는 산이 있다. 경남 산청과 합천을 경계로 솟은 황매산이다. 황매산은 독립 산군의 범위가 넓어 큰 산 또는 넓은 의미의 산이라 한뫼산으로 불리며 한자어로 바뀌면서 황매산이 되었다. 황매산의 황(黃)은 부를 상징하며 매(梅)는 귀하다는 뜻으로 풍요로움을 뜻한다 그 만큼 황매산은 모두를 품어 줄 것 같은 너른 품을 가지고 있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전설이 있다. 황매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활짝 핀 매화 꽃잎을 닮은 매화낙지의 명당터며 황매산 아래에는 합천호를 두고 있다. 합천호에 비쳐진 황매산 정상의 세봉우리가 물에 반영될 때 마치 물속에서 매화꽃이 피어 오른다하여 이를 두고 수중매로 칭송할 정도로 아름다워 황매산을 영남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조선초 무학대사의 전설이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산 황매산은 효렴봉과 함께 효의 산이며 3무의 산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황매산에서 수도를 할 때 일이다. 어머니가 무학대사의 뒷바라지를 위해 이곳 황매산을 오르내리다가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고 땅가시에 긁혀 살이 짖어지고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뱀에 놀란 사실을 알고 황매산 산신령에게 100일 기도를 드렸다. 그 뒤 부터는 뱀과 땅가시 칡덩굴이 황매산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이번 황매산 산행에서 뱀을 만나 깜짝 놀랐다. 푸르름이 짙어 갈 때 쯤 황매평전에는 진홍빛의 철쭉이 융단을 깔아 놓아 천상의 화원이 된다. 이번주가 황매산에는 절정의 옷을 갈아 입을 것 같다.





























황매산 산행은 주로 합천의 영암사지에서 시작하여 모산재를 오르는 코스와 산청의 영화주제공원에서 오르는 코스가 대중적인 코스이다. 또한 건각들은 차황면의 장박리와 합천호에 있는 대병면사무소에서 시작을 한다. 모두가 황매산을 오를 수 있지만 이맘때면 합천의 황매산은 관광객이 타고온 차량으로 접근이 쉽지 않아 황매산 산행을 겸한 철쭉 산행을 조금은 수월한 산청에서 오르기로 하였다. 황매산의 철쭉 산행에 맞게 알짜 만 볼 수 있도록 코스를 꾸며 보았다.






























산행 경로는 산청군 차황면 상법리 토궁산장, 천황재, 감암산 입구~토궁산장 갈림길~큰 표지석 갈림길~임도 이탈~천황재~병풍바위~배내기봉~철쭉 군락지~초소 전망대~베틀봉~봉수대~황매평원 사거리~나무 덱 길~황매산성 망루~황매산영화주제공원 주차장~식당가~임도~만암마을 버스정류장~토궁산장 입구 순이며 전체 거리는 약 10km 쯤 된다. 초소 전망대를 전후한 철쭉 군락지는 천상의 화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철쭉 산행 답게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시간의 여유가 있다. 산행시간과 함께 약 4시간 쯤 걸렸다.






























산창군 황매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차황면의 덤우재 또는 단계에서 출발지인 상법리로 들어와야 한다. 필자는 덤우재를 넘어서 상법리로 향했다.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서자 펼쳐지는 장쾌한 황매산 남릉은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수직의 암벽으로 솟구친 황매산 정상부와 베틀봉를 이루며 솟은 인수봉의 축소판인 전덤 암봉, 바위가 병풍을 이룬 병풍 바위, 감암산과 부암산에 점점히 박혀 있는 큰바위들에 어느듯 황매산 속으로 빠져 든다. 출발지인 토궁산장 입간판이 있는 입구에서 머리를 들어보면 마치 기치창검을 세운 암봉과 기암괴석이 병풍을 펼친 듯 단애를 이루고 있어 산을 찾는 산꾼에게는 오르고 싶다는 충동이 어느산 보다도 강하게 느껴온다. 입구에 설치된 산행안내도를 살핀 다음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천황재로 향한다. 정면 오른쪽에 옴폭 들어간 곳이 1차 목적지인 천황재다.
































 








산 밑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전덤바위와 칼바위, 가마바위 병풍바위의 암석이 쏟아질 듯 위태위태하다. 10분이면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 길은 안내판에 ‘등산로 없음’ 이고 천황재는 오른쪽 토궁산장 방향으로 진행한다. 두 번째 갈림길에서는 감암산 등산로와 토궁산장 모두 이정표가 오른쪽을 가르키지만 천황재는 왼쪽길로 직진한다. 5분쯤 가면 대형 입석이 있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은 농장으로 들어가고 천황재 방향은 왼쪽 길이다. 100여m 가면 능선 끝에 무덤이 보이고 다시 대형 입석(표지석)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오른쪽의 임도길을 오다. 100m쯤 오르면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절개지를 살짝 오르면 산길로 진입할 수 있다. 희미하여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처음 만나는 산길은 희미하지만 올라갈수록 옛길이 능선으로 뚜렷하게 나 있다. 지그제그의 길을 20분쯤 오르면 길은 오른쪽 작은 계곡을 따라 간다. 5월의 계곡에는 초록색으로 치장을 하여 생명이 움트며 잠시 후 베틀봉과 감암산 사이 고개인 천황재에 닿는다. 오거리 갈림길로 이곳까지 60분이 걸렸다



























필자가 올랐던 당시에는 천황재의 철쭉이 화려한 모습으로 만개하여 올라온 우리 일행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였다. 오른쪽은 감암산을 거쳐 부암산 가는 길, 능선을 넘어 반대편 올라오는 산길은 합천의 대기마을에서 오르는 길이다. 그 왼쪽의 또 다른 길은 모산재 방향으로 우회하는 산길이며 황매산 정상 방향은 왼쪽으로 꺾어 오르막 능선을 탄다. 갑자기 '절벽 주의' 작은 안내판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험해진다. 출발하면서 본 병풍바위 암릉으로 위험 구간이지만 안전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좌우가 천길 단애라 주의를 해야한다. 병풍바위를 올라서면 '지리산 전망대' 안내판을 두 군데 만난다. 이 날은 지리산 천왕봉쪽으로 짙게 구름이 끼어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은 볼 수 없었다. 그 아래 웅석봉, 둔철산 정수산과 오른쪽 붓끝 같이 뾰쪽한 필봉과 왕산 등을 조망할 수 있었다.





























능선을 따라 7분쯤 가면 길 왼쪽에 솥뚜껑 같이 둥그스럼한 바위 봉우리를 지나는데 배내기봉(885m)으로 아주 옛날에 이곳으로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이 있다. 배내기봉 앞으로 조금만 나가면 바위 전망대다. 오른쪽 아래로 전덤바위, 칼바위, 가마바위 등이 서 있어 작은 금강산을 보는 것 같은데 마을 촌로에게 물어보니 전덤은 나라를 뜻한다하였다. 이곳 전덤에는 무학대사가 수도를 한 뒤 칼을 꽂은 바위인 칼바위와 무학대사가 어머니를 가마에 태우고 갔다는 가마바위, 어머니와 병풍을 치고 하루 잤다는 병풍바위, 목이 마른 어머니에게 병의 물을 주었다는 병바위, 자신의 덧신을 벗어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덧신바위등 무학대사와의 전설을 훤히 꿰고 있었다.

































배내기봉을 지나면 황매산에서 유명한 철쭉 평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은 철쭉이 꽃망울만 맺혀 있는데 초소아래 모산재 갈림길 주변은 온통 철쭉이 만개하여 꽃밭을 이룬다.일행과 함께 모산재 방향의 움푹 파인 산사면에 내려 갔다. 철쭉으로 융단을 깔아 놓는 듯 만개하여 근래 화려한 철쭉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며 너도 나도 추억 남기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여유롭게 철쭉 사진도 찍고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뒤 초소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소전망대에 올라서니 황매산과 삼봉의 웅장한 모습과 황매평전의 모습이 모두 드러난다. 이곳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전투 장면이 촬영되었다. 동쪽으로는 허굴산 악견산 의룡산 금성산 등 합천의 삼산도 시원하게 조망된다. 바로 왼쪽의 봉긋한 봉우리가 오늘 산행의 최고봉 베틀봉이다. 5분쯤이면 산길은 갈라진다. 넓은 우측길을 두고 왼쪽 철쭉이 빼곡한 좁은 길을 오르면 곧 베틀봉 정상이다.































이곳에서 보는 황매산과 황매평전의 모습은 최고의 압권이었다. 우리는 왼쪽의 바위 봉으로 내려 갔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멋진 사진을 담았다. 산청의 영화주제공원에서 시작한 철쭉이 황매산 정상으로 불이 붙은 듯 철쭉꽃이 활활 타오르며 삼봉등 황매산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사진 포인트이다. 다시 봉우리로 올라와 봉수대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면 넓은 우회 등산로와 만난다. 5분이면 봉수대에 닿고 황매산 방향으로 직진하면 황매평전 사거리 안부. 직진하여 황매산성으로 이어지는 나무 덱을 따라간다. 황매 산성의 망루를 지나 덱을 따라 하산을 하면 다시 임도에 내려서고 오른쪽 임도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좌우로 만개한 철쭉으로 황매산 정상부와 함께 마지막 장관을 보여준다.






























15분이면 단적비연수 촬영지였던 영화주제공원 주차장 앞에서 왼쪽 콘크리트 길을 내려서면 식당 앞의 갈림길과 만난다. 오른쪽은 법평리의 신촌마을 방향이며 상평리로 가기위해서는 상가 앞의 왼쪽 임도를 간다. 40여분 임도길을 걸으면서 황매산 정상과 베틀봉, 전덤바위등 황매산의 기암들을 구경하고 만암마을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를 만난다. 왼쪽으로 꺾어 도로를 따라 10분이면 출발지인 토궁산장 입구에 도착한다.




























대중교통편을 이용시에는 일단 산청까지 가야한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산청행 시외버스는 새벽 5시40분이 첫차며 약 30~50분 간격 운행. 약 2시간20분 소요, 1만1900원. 산청터미널에서 상법리행 버스는 하루 3회로 오전에는 8시10분 단 한 차례 뿐이다. 40분 소요. 산행 후 상법리에서는 산청 터미널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2시15분, 5시40분에 있다. 사실 대중 교통편은 시간 맞추기가 불편하다.

자가운전일 경우에는 대전-통영고속도로 산청IC에서 내려 산청 방향으로 좌회전, 다시 우회전 해 경호교를 건넌 후 산청도서관 지나 농협 앞에서 진주 함양 방면으로 좌회전 한다. 100m가량 이동 후 삼거리에서 거창, 차황면 방면 11시 방향 좌회전 후 9㎞쯤 진행한 뒤 차황면소재지 주유소 앞에서 영화주제공원, 상법리 방향으로 좌회전 황매산로를 따라 6㎞쯤 가면 산행 들머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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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천강가에 있는 용암서원과 뇌룡정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토리마을.

 

남명 조식 선생은 경남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서 태어 났다. 승무원 판교를 지낸 부친 언형과 모친 인천이씨의 3남2녀중 2남으로  본관은 창녕이고 자는 건중이며 호는 남명이다. 남명선생 부친은 삼가현의 판현에서 이곳 처가로 결혼과 함께 옮겨와 살게 되었는 외토리는 남명조식선생의 외가다.

 

 

남명선생 생가터로 찾아가는 길.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외가가 있는 삼가면 토리마을

 

남명선생의 외가가 위치한 곳은 풍수설에 명당터로 알려진 곳이다. 닭의 해에 태어나는 아기는 자라서 현인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해 남명조식선생이태어 나던날 우물에서 무지개빛이 온사방으로 퍼지며 남명선생을 잉태한 모친의 방안을 환히 비추었다. 그 빛을 받으며 남명조식선생이 태어나니 선생은 태어날때 부터 남 달랐다.

 

 

남명조식선생 생가터의 안내판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은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유림의 태두,

 

선생은 퇴계이황과 함께 영남 유림의 태두로 우뚝서며 경과 의를 존중하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선비정신을 강조하였다. 30세에 남명선생은 처가가 있는 김해 대동면의 신어산 아래에 산해정을 짓고 제자릴 가르쳤다. 48세에 고향 삼가의 토동으로 돌아와 향천강 언저리에 뇌룡정과 강 건너 계부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다.

 

 

남명조식선생 생가터의 모습, 밭이였던 이곳에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용암서원. 뇌룡정의 유래와 남명조식선생

 

뇌룡정은 조식선생이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 가기전 12년을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였던 곳으로 뇌룡이란 장자의 '연묵이뢰성 시거이용현 (淵默而雷聲 尸居而龍見 )'에서 따온말로 풀이를 하자면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레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은 뇌룡정에서 을모사직소(단성소)상소.

 

선생의 나이 55세에 이곳 뇌룡정에서 당시의 국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으로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상소문을 올린다. 이를 을묘사직소라는데 단성소라고도 한다. 단성소에는 남명선생의 기개와 선비정신이 잘 나타나며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왕을 고아라고 하고 왕의 어머니 문정왕후를 과부라 하여 조정과 사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토리마을 뇌룡정.

 

그 단성소의 내용이 지금 뇌룡정 옆 용암서원 앞에 대리석으로 삐까번쩍하게 만들어 놓았다. 용암서원은 1576년에 삼가현 서쪽 회산마을에 노흠등 남명의 후학들이 회산서원을 지었는데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1601년 향천강 앞으로 옮겨 지어면서 향천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8년 후 용암서원으로 사액되었다. 서원지는 1987년 합천댐에 수몰되면서는 2006년 뇌룡정 옆으로 옮겨와 다시 복원을 하였다.

 

 

남명선생 생가터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용암서원과 함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남명조식선생.

 

당시의 뇌룡정은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된 후 1678년 합천군 봉산의 계산에 있었다. 용암서원의 부속건물로 로 뇌룡정은 재건되고 1758년과 1831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그 후 1868년 서원철폐령에 용암서원과 함께 뇌룡정은 훼철되었다.

 

 

합천군 생가면 외토리마을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신묘사도에 따라 뇌룡정 지어.

 

지금의 뇌룡정은 1883년 조희규의 발의에 의해 현감 신두선의 협조로 원래의 자리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체 건물의 배치는 남명조식선생이 지은 '신명사도'의 모양으로 건물을 지었다. 정면5칸 측면 2칸의 뇌룡정은 홑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왓집으로 중앙에 대청을 넣고 좌우로 방을 3개 두었다. 지금 외토리는 남명조식선생의 고향이라 그런지 복원공사가 여러곳에서 진행중이었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토리마을. 복원공사의 문제점.

 

먼저 남명선생의 생가터로 그 당시의 흔적은 찾을길 없이 밭으로 흔적이 바뀌었는데 안내판이 없다면  이곳이 선생의 집터인지 알 수가 없다. 마을 입구 안내판을 보고 남명선생 생가터를 찾아 갔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찾을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집 뒤로 올라가라며 가르켜 주는데 현재에는 목조 건물을 한동 복원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건물을 토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게 한동을 짓는 중이었다. 그곳을 나와 왼쪽 향천강 쪽으로 보면 큰 기왓집이 보이는데 새로 지은 건물인 용암서원 복원현장이고 그 옆에 무너질 듯이 서 있는 건물이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9호인 뇌룡정이다.

 

 

   

외토리 쌍비.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뇌룡정 복구가 더 시급.

 

사라진 건물을 복원하는게 더 급한 것인지 있는 문화재를 먼저 복구하는 것이 더 급한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의 뇌룡정은 방문때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고 대청의 마루가 뜯겨나가 있는등 황폐화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용암서원 복원 공사도 중요하고 남명선생 생가터 복원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남아 있는 문화재를 제 모습으로 중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복원도 중요하고 복구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의 관리 문제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 같다.  산청군 시천면 덕산의 남명 유적지 관리 상태를 보다 이곳을 보니  말만 남명선생은 이황과 함께 영남의 거목이라 떠들지 말고 실질적인 관리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경남여행/합천/삼가여행)삼가 뇌룡정. 남명조식선생의 고향마을 삼가면 외토리 쌍비인 효자비 유래.

 

남명선생의 유적지는 아니지만 외토리 쌍비로 불리는 비석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1호며 비각안에는 두개의 비석이 남아 있다. 왼쪽의 비석인 앞면에 '효자리'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선생 이전인 고려 말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이온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세운 비석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말 이성계가 병마순찰을 영남지방으로 순시하였는데 선생의 효행을 듣고 왕에게 보고를 하니 1383년 고려우왕 9년에 고성군사 최복인에게 명하여 효행비와 비각을 세웠다전하며 비석의 명문이 남아 있다.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현재 판독이 불가할 정도로 풍화작용으로 인한 마모가   심하여 백비로 부른다. 왼족비와 함께 효행비로 추정 할뿐 알 수 없다. 원래 비신만 남아 있어 1686년 숙종12년 비석의 대석과 이수를만들어 세웠다.

 

 

용암서원 앞에 남명조식선생이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올린 단성소 상소문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원동마을 입구에 세워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게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때 도로공사로 인해 원래 비가 있던 이곳으로 옮겨 왔다. 

 

 

용암서원 앞의 남명조식선생상.

 

 

용암서원.

 

 

남명조식선생 유적지 뇌룡정.

 

 

 

 

 

 

 

 

대청의 마루가 뜯겨 나간 모습.

 

 

향천강가로 내려서는 쪽문

 

 

뇌룡정의 뒷 모습.

 

 

잡풀이 무성한 뇌룡정.

 

 

 

 

 

 

 

 

 

 

 

 

 

 

 

 

 

 

 

 

 

 

신명사도를 따라 지었다는 뇌룡정.

 

 

뇌룡정 옆의 용암서원.

 

 

 

 

 

 

뇌룡정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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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재로 찾아가다 담은 사진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개요.

 

합천땅에는 북으로는 국립공원 가야산과 서로는 군립 공원 황매산을 품고 있다. 두산의 공통된 특징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야산 정상의 바위가 불꽃같다 하여 석화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산청군과 경계한 황매산은 남으로 능선을 길게 뻗어 모산재와 감암산 그리고 부암산을 솟구치며 기암 전시장으로 전국의 산꾼을 불러 모우는데 손색이 없다. 황매산은 봄의 철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붉은 듯 누런 황색을 띠고 있다. 산세 또한 매화낙지형이라 황매산이라 부른다.

 



 

모산재 암릉의 모습

 

 

모산재와 황매산 등산로 안내판

 

 


 

 

모산재 식당앞 삼거리

 

 

감암버스정류장. 대중교통 이용시 이곳에서 하차.

 

 







모산재로 오르는 산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의 유래.

 

 

황매산과 이웃한 모산재는 하나의 바위로 된 암봉이다. 모산재의 뜻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돛대바위 위에 천하 명당이 있어 무지개가 항상 피어 오른다며 무지개터로 불린다. 무지개터 앞에 용마바위가 있고 이곳은 비룡상천형의 명당터라 이곳에다 묘를 쓰면 본인 집안은 자손만대에 부귀와 권세를 누리지만 산 아래 마을에는 가뭄과 흉년등 갖은 질병으로 인해 마을에서 묘를 사용할 수 없도록 이곳에다 흙을 파 웅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모산재는 유래한다. 못이 있다는 산으로 못산 또는 못재로 불렸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때의 흔적인 웅덩이가 잡초에 덮혀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어원이 모산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로 합천군의 설명이며 또는 모산의 의미는 '띠의 산'을 말한다. 띠는 잔디 보다 키가 크서 옛날에 농가에서 띠잎으로 도롱이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용 하였다. 띠는 풀중에 가장 순결한 풀이다. 모산은 순결한 산을 의미하며 정상부근에 순결바위가 있음이 우연이 아니다(가회면의 홈페이지). 마을에서는 잣골덤 또는 신령스러운 산이라하여 영암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아래 영암사지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모산재는 합천8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산이다.

 

 

 

산행리본이 장식을 하고 있다.

 

 

모산재 오르는 길. 서서히 바위가 나타난다.

 

 

 

 

모산재는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인파로 붐빈다.

 

 

모산재의 바위 군상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 경로

 

 

모산재 산행 경로는 정상까지 한번 치받아 오르다가 바로 하산을 하는 코스지만 산행시간에 비해 많은 체력을 요한다. 산행은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을 출발한다. 감암(감바위)마을~황룡사 갈림길~모산재 등산로 입구~ 돛대바위~무지개터~황매산·모산재 갈림길~모산재 정상~암릉~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영암사지를 거쳐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산행거리는 6km 산행 시간은2시간30분이며 휴식과 전망이 좋은 암산이라 4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모산재를 오르다 본 염암사와 영암사지.

 

 

 

 

 

 

 

 

 

 

직립하다 싶이 선 나무계단. 이곳을 올라서면 돛대바위.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은  감암마을에서 시작.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 밑 도로에서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모산재식당 앞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영암사지 가는 길로 들어선다. 입구에 이정표(모산재 1.7㎞, 영암사지 0.6㎞)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버스를 타고 오면 이곳 감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 마을을 지나면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길게 누운 하나의 암릉과 마주 보게 된다. 그야 말로 바위 절벽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5분이면 왼쪽으로 황룡사 갈림길이 나오면 직진이다. 곧 작은 계곡을 만나고 이곳에 이정표(모산재 1.3㎞)가 서있다. 본격적인 모산재 등산로 들머리다. 계곡을 끼고 오르면 이내 마사토의 산길로 접어든다.

 

 

 

모산재의 비경 돛대바위.

 

 

모산재 정상을 거쳐 하산길 능선도 암릉으로 이어진다.

 

 

 

 

 

 

돛대바위 뒤로 보이는 허굴산의 모습.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 오독한 봉우리가 부암산.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가 들머리에서 보여.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눈을 들어 까마득한 바위위에 날아 갈듯 한 돛대바위가  보인다. 사각 표지목인 '모산재 1.1km 이정표를 지나며 서서히 바윗길을 타고 오른다. 황룡사에서 올라오는 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운 철망 담장에 산행 리본이 엄청 달려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뒤돌아보면 전망이 트인다. 발아래 대기 저수지와 자굴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사길이라 그런지 미끄러워 바위에 발을 놓을때 마다 주위를 해야한다. 아님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정표(모산재 0.8㎞)를 지나면서 바위를 밟고 산행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바위를 탄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로프를 잡기도하고 또는 바위를 잡기도하며 올라야 한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복병은 암반이라 전망은 너무 좋은데 반해 햇볕이 내려쬐어 그늘를 피할 만한 곳이 없다.

 

 

 

천하명당의 무지개터

 

 

모산재 정상으로 이어지는 숲길.

 

 

모산재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돛대바위. 모산재 산행의 올라온 산길이 다 들어난다.

 

 

모산재 하산은 암릉을 타고 내려간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 전망 탁월.

 

 

'모산재 0.6㎞' 이정표를 지나면 거의 수직으로 선 듯한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이곳을 올라서면 모산재의 명물 돛대바위와 만난다. 모산재의 바람을 받아 순풍하는 돛단배의 돛대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은 거대한 하나의 암반이다. 풍수학자들은 이곳을 전국에서 최고로 꼽는 생기의 장이라 부르고 있다. 돛대바위를 돌아가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낮은 산들 뒤로 대암산에서 태백산으로 잇는 대병면의 산들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속이 비었다는 허굴산과 금성산 의룡산 악견산등 합천의 삼산이 합천호를 두고 솟아 있다. 돛대바위 건너편 능선은 모산재 정상에서 하산하는 암릉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이 만리장성 같은 모습으로 내려간다.

 

 

 

 

 

 

 

 

 

 

황매산의 모습.

 

 

 

 

모산재 암릉에 올라선 바위. 마치 두부를 자른듯 틈이 벌어져 있다.

 

 

바위틈을 빠져 나가고 있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철쭉 명산 황매산과 마주보고 있다.

 

 

돛대바위에서 150m 정도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나무 그늘이 나오고 평탄한 바위와 만난다.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무지개터 안내판 뒤로 뻗은 능선이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고 뒤로 정수산과 둔철산 그리고 지리산 웅석봉이 아스라이 솟아 있다. 이정표(모산재 0.3㎞)에서 오른쪽 숲에 무지개터로 불리는 작은 웅덩이가 있다. 천하제일의 명당터로 모산재의 유래를 만들었다. 이곳부터 황매산 갈림길까지 잠시 숲속의 산길을 따라간다. 능선을 바꾸어 타는 지점으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왼쪽은 황매산 정상(4.0㎞)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 모산재 정상이다. 정상도 하나의 커다란 암반으로 돌탑이 서 있고 마주보며 바위위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바위 틈을 빠져나가면 천길 단애. 간담이 녹아 내린다.

 

 

모산재를 내려오며 뒤돌아 본 암릉.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순결바위.단정치 못한 사람은 바져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의 바위.

 

 



 

 

국사당. 태조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한 제단.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최대 볼거리 암릉과 순결바위.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든다. 직진하여 내려서면 숲속으로 들어간다. 급하게 내려가면 벼랑 위 전망대가 나온다. 발아래는 끝이 보이질 않을 절벽으로 간담이 써늘하다. 돛대바위에서 보면 툭 불거진 바위로 보이는 곳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암릉으로 햇볕을 맞으며 걸어야 한다. 오른쪽은 천길 낭떨어지며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 느낌을 준다. '영암사지 1.2㎞' 이정표를 지나면 더욱 거대한 암릉이 펼쳐지고 곧 두 개의 바위가 두부를 쪼개 놓은 듯 암릉에 올려져 있는 곳을 지난다. 흡사 제2의 순결바위처럼 보이는 곳으로 한사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 틈이다. 이곳을 나가보면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해진다. 잠시 뒤 순결바위 이정표를 만나고 오른쪽 끝에 순결바위가 있다. 사생활이 물란한 사람이 갈라진 바위틈에 들어가면 바위가 오무러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영암사. 암릉으로 병풍을 두른 모산재 능선

 

 

영암사지.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하산 후 만나는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이 예술.

 

 

이곳에서 모산재의 암릉이 끝나고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산길이 이어진다. 철 난간과 나무계단을 10여분 내려서면 곧 국사당이다. 태조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숲 그늘로 완만한 내리막을 걷는다. 간이매점을 지나면 곧 영암사다. 영암사를 지나면 사적 제131호 영암사지와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의 표지모델로 유명하다. 이곳을 지나면 곧 올라갈 때 지났던 모산재 등산로 입구 삼거리다. 10여분이면 다시 모산재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영암사지를 지키는 600년된 느티나무

 

 

영암사지의 쌍사자석등.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삼가에서 내린다.7시(첫차),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등에 있다. 삼가에서는 오전 8시40분, 9시50분,에 덕만행 군내버스를 타고 감암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하루 4회 운행으로 이 버스를 놓치면 삼가 동성택시 (055)932-4656을 이용해야 한다. 산행을 끝낸 후 덕만에서 삼가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5분에 있다. 감암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 삼가에서는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오후 3시50분, 4시20분, 4시50분, 5시30분, 6시20분, 7시20분(막차)에 있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7시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합천의 모산재 산행은 대중 교통편은 시간 맞추기가 아슬아슬하여 원점회귀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내려 의령을 지나 20번 도로를 타고 간다. 대의면 소재지에서 합천 방면 33번 도로를 탄다. 다시 삼가면 소재지에서 60번 도로를 타고 가회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 대기마을을 거쳐 모산재 주차장에 닿는다.

 

모산재 고도표

 

 

 

모산재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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