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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여행/무안여행)나라에 국란이 있을때마다 땀을 흘렸다는 표충비와 우산을 펼친듯 독특한 밀양 무안면 향나무


경남 밀양시 무안면 표충사에는 

우리나라에 국난이 날 때마다 비석에서 땀이 난다고 합니다. 





나라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 밀양 사명대사 표충비 주소: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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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국원이 찬탈  당헀을 때, 3.1독립만세운동, 

6.25한국동란 등 많은 국란속에 땀을 흘린 비석입니다. 



이 비의 주인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조직하여 

왜군과 싸워 전란에서 나라를 구한 

사명당 유정(1544~1610)입니다.

 



전란이 끝나자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왜군에 붙잡혀간 우리 백성 3천명과 귀환하여 

그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2년에 남붕선사가 건립했습니다.

 


비석의 높이 4m, 너비 1m, 두께 54.5㎝ 크기로 

비신은 검은색 대리석으로 하고 비석을 받치는 

받침돌과 머릿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습니다.

 


비석의 옆면과 뒷면에는 표충사의 내력과 

사명당과 스승 서산대사 휴정(1520~1604), 

기허대사 영규(?~1592)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환란을 미리 알려 준다는 

땀흘리는 비석인 사명당 표충비는 

특이하게도 땀방울이 글자체 안이나 

비석의 받침돌에는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밀양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고라리 399)번길에는 

사명당 휴정대사의 고향이며 현재 생가를 복원하여 

사명대사를 기리고 있습니다.   







표충비각 앞에는 특이한 향나무가 있습니다. 

향나무는 꼭 우산을 펼쳐놓은 듯 한 모습입니다.

 





밀양 무안리 향나무로 불리며 

이향나무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비를 세울 때 

1742년 남붕선사께서 함께 심은 나무입니다.

 




높이는 1.5m, 가슴 높이 둘레는 1.1m이며 

가지가 옆으로 퍼지도록 원줄기를 자르고 

곁가지를 다듬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향나무는 20여 그루 된다고 하며 

이런 모양을 한 향나무는 밀양 무안리 향나무 뿐이라 합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  


스님의 신분으로 나라가 국란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국가와 백성을 구한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비, 

휴정스님의 고향인 밀양 무안면 소재지에 있습니다. 

인근에 스님의 생가지를 함께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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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 무안면 홍제사. 땀흘리는 일이 없어면  좋을 것 같은 땀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

*표충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홍제사


 



일명 땀흘리는 이 비석은 임진왜란때 승려로서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 송운대사(1544-1610)의 높은 뜻을 기린 비석으로 영조18년인 1742년에 대사의 5대 법손인 남붕선사가 경산에서 가져온 옥돌로 건립을 하였다. 국가의 길흉사를 날씨에 관계 없이 땀을 흘려 사전에 미리 알려주는 비석으로 사명대사의 나라사랑을 볼 수 있다.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스승 서산대사의 뒤를 이어 승군을 통솔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조37년에는 국서를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담판하여 포로로 잡혀간 백성 3500명을 본국의로 송환을 하였다.


표충비 보호를 위해 너무 칸막이를 한 보호각에 틈이 좁아 비문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한때 이곳에는 서산, 기허, 사명대사 세분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당이 있었으나 재약산 아래 표충사로 옯기고 현재 삼비문안에는 1742년 남봉선사가 조성한 표충비와 향나무,표충비를 보호하는 수호 사찰 홍제사만 남아 있다.

뒤에서 본 표충비각으로 우측에 수령 300년 된 향나무를 볼 수 있다.

 

홍제사는 사명대사의 표충비각과 표충사당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수호사찰로 창건 연대 또한 그때로 보고있다.



표충각안의 사명대사 영정

표충각안의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내외분의 영정도 걸려 있다.

 

홍제사와 표충비는 밀양면 소재지 편편한 평지에 민가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어 지나가다 들러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제사로 들어서면 먼저 우측에 근래에 조성한 삼층 석탑과 좌측으로는 범종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표충비가 있는 표충비각은 우측으로 따로 중삼문을 두고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우측으로 돌면 표충각과 향나무, 땀흘리는 비석인 표충비를 볼 수 있습니다.

 

홍제사 입구입니다. 표충비각 앞인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무안 고라리에서 태어나 직지사로 출가를 하신 사명대사의 영정과 땀흘리는 비석을 보시고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땀흘리는 비석에  그분의 나라사랑의 마음을 읽어 봤서면 합니다. 무안은 이곳 말고도 홍제사 좌측 중산 표지판을 따라가면 고라리란 마을이 나옵니다. 현재 고라리는 사명대사 출생지인 생가터와 그 분의 기념관을 조성하여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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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의 경내로 들어설여면 반드시 이문을 통과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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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산세를 보면 명산에 대찰임을 실감할 것이다.왼쪽으로 천황산의 암봉이 오롯하고 우측으로 재약산에 걸린 암봉이 웅장하며 문수봉과 관음봉이 나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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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 향로산과 재약봉이 하늘금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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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에서 본 표충사이며 범종루 우측으로 천황산과 재약산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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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종루 좌측으로 붓끝형상의 문필봉도 확인된다. 표충사에서 본 필봉 끝에는 힘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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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본 필봉이다. 이리보아도 붓끝, 저리보아도 붓끝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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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끝에 걸린 필봉과 백일홍이 더욱 조화를 이루며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는 백일홍이 지금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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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을 통과하면은 대가람 표충사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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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귀를 쫒는다는 좌청룡 우백호 격인  수문장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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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467호 표충사 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7.7m의 삼층석탑이다.


흔히 사명당 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시 비석에서 땀을 흘리며 앞으로의 변고를 예고해주는 표충비각, 보통 그 땀흘리는 표충비각이 현 재약산 표충사에 있는 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표충사 어디를 둘러 보아도 땀흘리는 비석은 없었다.

땀흘리는 비석인 표충비각은 밀양시 무안면에 있다. 사명대사의 출생지인 무안면 소재지에 자리잡고 있어 땀흘리는 표충비각까지는 동서로 극과극을 달리고 있다.

여기 재약산 표충사는 경남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번지이다.
654년에 신라진덕여왕때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죽림정사란 이름으로 산문을 처음 열었다.
 
천황산과 이웃한 재약산 맞은편으로 향로봉, 마지봉, 법수봉, 우측은 재약봉, 문필봉,문수봉,보현봉,관음봉,지장봉, 미륵봉,사자봉이며 우측으로는 수미봉, 화엄봉, 미타봉, 중앙에는 사자봉, 전방에는 노적봉과 백마봉이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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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의 사진은 영정약수로 신라 흥덕왕 4년에 셋째왕자가 불치병인 나환에 걸여 재약산의 산초와  약초 그리고 영정의 샘물로 완치를 하였다하여 영정사로 불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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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전 안의 석가모니불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대광전은 표충사 중심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안치하고 동쪽으로 질병과 무지를 다스리는 약사불, 서쪽으로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신라시대에 처음 건축되었지만 전란등으로 소실되어 1929년에 다시 지어졌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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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년 신라 흥덕왕4년에 인도의 고승인 황면선사께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가져와 주석하였다. 그리고 흥덕왕의 셋째아들이 나환에 걸려 재약산 죽림정사에서 영정의 샘물과 재약산의 약초를 먹고 치유를 하니 임금이 기뻐하며 영정사란 절이름을 하사하였다한다.

그 후 1596년 선조 29년 임진왜란의 발발로 왜적이 퇴각을 할때 사명당은 영정사에서 승병을 모집하여 사자평에서 승병 훈련을 하였고 전장에 나가 왜적과 싸웠다.

그 후 무안면의 표충사당에 있던 서산, 사명, 기허 삼대선사 영정이 영정사로 옮긴후 표충서원이란 사액을 받아 재약산표충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표충사를 둘러 싸고 있는 산을 천황산과 재약산으로 불여지고 있다.

그러나 산꾼들에게는 재약산 사자봉, 수미봉으로 더 많이 불여지고 있다. 천황산이 일재시대때 일본인이 일본천황을 의미하며 붙였다 하여,밀양시에서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으로 명칭변경을 건의하였지만 그이전에도 천황산으로 불였다고 한다합니다. 그래서 현재에도 천황산 재약산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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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사진은 철확으로 직경 113.6cm철제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식사준비를 할 때 국 또는 밥을 하는 대 사용되었어며 목재함도 너비85cm 길이597cm인 목재함 역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밥을 담는 용도로 사용 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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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과 우측 팔상전은 유형문화재 자료141호로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을 한 탱화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이라 합니다. 팔상이란 하천, 탁태,강탄,출가, 항마, 성도, 전법륜,입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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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사진은 통일신라시댜 비석으로 추정되며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이 500여년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대중100여명이 뜻을 모아 개보수 한다는  기념비석이라하며 우측은 표충사 일주문이다.

재약산 표충사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다면은 표충사 홈페이지로
http://www.pyochung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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