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남여행/벌교 순천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제석산 산행 개요. 벌교 제석산


순천의 별량면과 낙안읍 그리고 보성의 벌교를 가르는 능선에 제석산이 제왕인 듯 웅장한 모습을 하고 솟아 있다. 보성의 명산으로 불교의 도리천에서 따왔다. 제석산 아래 회정리의 회정도 옛날에는 도리등이라고 불렀는데 회정과 벌교를 도리천으로 보아 여기에 제석천왕이 군림한다하여 제석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제석산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많이 언급되었다. 소설속에는 염상진과 그의 부하인 빨치산들이 조계산에서 벌교로 보투를 나올 때 제석산을 이용하여 벌교읍으로 내려 왔고 김범우의 형인 김범준 또한 제석산을 타고 봉림마을 뒷산까지 내려와 숨죽이며 아버지 김사용의 상여가 나가는 것을 먼발치에서 보는 곳도 제석산이다. 제석산은 태백산맥 소설의 중심무대로 벌교의 북쪽을 감싸고 있다. 제석산과 함께 벌교 홍교 그리고 김범우집도 함께 방문해보자























☞(전남여행/벌교 순천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제석산 산행 경로. 벌교 제석산


제석산 산행은 벌교읍의 회정리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보통 시작을 하지만 벌교리 홍교에서도 출발한다. 필자는 홍교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제석산 산행경로를 보면 벌교 홍교~봉림마을 주차장~전주이씨 묘~176m봉 동네체육시설~안부삼거리~ 회정마을 갈림길~태백산맥 문학관 벌교(운동시설) 삼거리~샘터~삼거리~대치재(구기마을-대치마을) 갈림길~남끝봉~신선대(531m)~제석산(~다시 오거리)~독립가옥~연산제1저수지~신흥마을 제선정~연산 효자홈~857번 지방도~태백산맥 김범우의 집~벌교홍교로 돌아와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GPS 산행거리는 약11㎞, 산행시간은 3시간30분으로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산행시간은 더 잡아야 한다.

























☞(전남여행/벌교 순천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제석산 산행은 홍교 또는 회정리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출발. 벌교 제석산


먼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홍교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벌교홍교 중수기념비를 보고 선암사의 두 승려가 공덕을 쌓기 위한 보시로 만든 홍교를 건넌다. 벌교 홍교는 국내 남아 있는 무지개형 다리에서는 가장 긴 다리다. 홍교를 건너면 봉림마을 주차장 입구에 제석산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의 방향만 봐서는 들머리 찾기가 쉽지 않다. 주차장 맞은편의 전봇대에서 오른쪽 골목이 제석산 들머리다. 시멘트 포장길로 1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이곳을 지나면 마을을 벗어나고 길은 왼쪽 오르막을 간다. 잠시 뒤 오른쪽으로 꺾는 오르막으로 접어들고 시야가 트이면서 왼편 계곡이 집들이 보인다. 왼쪽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산길이 서로 만나고 제석산 산길은  오른쪽으로 꺽는다. 산길은 뚜렷하게 이어진다.























뒤돌아 보면 출발한 홍교가 벌교천에 길게 놓여 있고 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

면 곧장 숲으로 들어선다. 산길은 급경사를 오른다. 10분 쯤이면 벌목한 사면이 나온다. 벌교읍과 중도방죽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능선이라 산길은 편안하다. 전주이씨 묘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전망을 열어주며 고흥으로 넘어가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 격인 첨산이 바늘처럼 뾰쪽하게 솟아 고약한 모습이다. 곧 176m 봉우리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정면 제석산 쪽으로 툭 불거진 신선대와 남끝봉 암봉이 제법 우람하지만 이곳에서는 제석산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으로 완만한 내리막을 걸어가면 왼쪽으로 금전산과 낙안읍성이 멀리 보인다. 곧 안부에 내려서면 삼거리의 오른쪽은 회정리 방향이고 직진하는 길을 40~50m 가면 다시 삼거리와 만난다. 오른쪽은 다시 회정리 방향이며 제석산은 왼쪽 오르막 산길을 간다.
























초반이라 그런지 완만한 오르막 산길을 편안하게 걸어 운동시설이 있는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오른쪽은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 방향이고 제석산은 직진하여 송전탑 방향의 오르막을 간다.. 가족 묘지인듯 깔끔한 무덤을 지나면 공동묘자로 이어지고 산길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등산로는 최대한 편안하게 능선을 둘러가게 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면 염상진이 조계산에서 우령재를 건너 벌교읍으로 보투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묘사되어 있다. 중간에 마른 샘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산 사면을 돌아가게 된다. 바윗길에서 벌교읍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여자만의 갯벌이 드러난 모습을 보게된다. 오르막을 오르다 돌아나가는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고 산길은 반복된다.























산길은 뚜렷하게 나있고 평일인데도 제석산에서 넘어오는 등산객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만큼 벌교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제석산은 왼쪽 방향이다. 왼쪽으로 꺾어 산사면을 탄다. 직진하여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와도 대치재에서 서로 만난다. 대치재는 오거리로 이정표가 있다. 왼쪽은 제석산 정상에서 다시 돌아와 가야할 하산 방향으로 낙안읍 구기마을과 벌교읍 금산마을 방향이다. 오른쪽은 순천시 별량면 대치마을로 산길은 희미한 편이다. 제석산 정상은 직진 오르막이다. 경사가 급해진다. 지금까지 없던 바위가 듬성듬성 박혀 있고 10분이면 큰 소나무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바위 봉우리인 남끝봉 전망대에 오른다. 벌교읍과 순천만과 여자만의 전망이 멀리까지 열린다. 산길로 접어 들면 정면의 신선대 암봉은 바로 오르지 못하여 왼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길에서 오른쪽으로 바위를 잡고 오르면 신선대 정수리에 올라서는데 낙타 등 처럼 두 개의 바위 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찬 바람으로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다. 360도 조망이 펼쳐진다. 보성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존재산 정상에 한때 미사일기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수를 한 상태라 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징광산으로 나오는데 산 밑에 페사된 절터인 징광사에서 따왔다. 북쪽에 바위가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금전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 낙안읍성과 낙안 벌판이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멀리 염상진이 선암사에서 몸을 숨기며 빨치산 활동을 하였다는 조계산이 고개 넘어로 우뚝하다. 신선대에서 내려가 능선을 잠시 오르면 또 다시 봉우리 전망대에 오르고 곧 정상석이 있는 제석산 정상에 오른다. 직진하며 계속 능선을 따라 우령재를 지나 오봉산과 금전산을 오를 수 있고 바로 앞 활공장에서 오른쪽 별량면의 대룡리로 하산을 할 수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나무에 가려 지나온 봉우리에 비해 조망이 못하다.























하산길은 지나온 대치재로 다시 내려간다. 오거리 대치재에서는 이정표의 구기마을 방향이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푹신한 산길을 만들고 하산길을 내려가면 채석장의 흔적인 바위 무더기를 지난다. 곧 임도가 나타나며 두 갈래로 갈라진다. 오른쪽은 낙안 구기마을 방향이고 하산은 왼쪽 방향으로 내려 간다. 억새가 하얀 솜털을 흩날리며 가을의 여운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 뒤돌아 보면 올랐던 신선대의 암봉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웅장한 모습으로 보인다. 독립가옥을 지나면 연산제1저수지다. 저수지를 지나며 길은 논밭 사이의 콘크리트 포장으로 바뀐다. 신흥마을의 제선정을 지나면 마을 주차장 안내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연산 효자홈 앞에서 길이 갈라진다. 왼쪽 내리막으로 간다. 마을 길을 계속 가면 벌교와 낙안을 잇는 857번 도로다. 왼쪽으로 꺾어 벌교 홍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간다. 1㎞가량 가서 왼쪽 봉림마을 방향으로 들어서고 잠시 뒤 '태백산맥의 무대인 김범우의 집' 안내판이 있다. 잠시 들렀다가 다시 나와 길을 가면 출발지인 홍교가 나온다.









































☞(전남여행/벌교 순천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제석산 산행 교통편. 벌교 제석산부산 서부터미널에서 순천을 거쳐 목포나 고흥 등으로 가는 버스가 벌교에 정차한다. 오전 6시30분, 7시10분, 8시20분, 8시50분, 9시40분, 10시30분, 11시5분, 11시10분 출발. 벌교에서 부산으로 오는 버스는 오후 3시35분, 4시25분, 4시40분, 5시40분, 6시15분(막차)에 출발한다. 벌교 정류장에서 출발지 홍교까지는 걸어가도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땐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광양IC에서 내려 다시 순천-영암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고흥IC에서 내리면 곧 벌교에 닿는다. 벌교역과 벌교읍사무소를 지나면 곧 벌교홍교다. 네비는 벌교 홍교로 하면 된다.



◆보성 벌교 순천 낙안 제석산 고도표◆



◆보성 벌교 순천 낙안 제석산 지형도◆











2014/01/26 -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횡개다리인 홍교를 찾다.


2014/01/28 -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 찾아가기. 소설속의 무대지만 폐가 수준으로 아쉬움. 김범우집





728x90

728x90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의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 찾아가기. 소설속의 무대지만 폐가 수준으로 아쉬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전 후의 과정을 대하소설로 재미있게 꾸며내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40대 부터는 조정래 태백산맥을 거의 보았다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빨치산들이 벌교를 무대로 투쟁을 하면서 벌교의 지명과 함께 건물이 그대로 등장하여 픽션이지만 논픽션 같은 혼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나 자신이 그 만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빠져 들게 하는 태백산맥, 그 속에는 많은 가옥이 등장합니다. 그 중 홍교와 함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이 인근에 있어 방문하였습니다. 소섷속의 범우의 집은 대지주인 김씨집안 소유의 집입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초등학교 때 안채로 들어서는 대문 옆에 딸린 아래채에서 이 집의 막내아들과 친해 자주 놀러와 놀았다합니다. 그래서 설속에 나오는 이집의 막내아들이 김범우로 등장합니다. 김범우의 아버지 김사용은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인 범준과 범우는 소설에서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인물로 염상진과 함께 소설의 한 축을 이끌어 나갑니다.



 

 

벌교사람들은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이 벌교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그 유명한 벌교 꼬막도 태백산맥에 등장하여 지금의 벌교하면, 꼬막이 되었을 정도로 벌교사람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소설을 떠나서 벌교 경제를 지탱하는 디딤돌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지금 벌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도 생기고 현부자와 소화네집등 소설속의 무대를 현실에 그대로 끄집어내어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필자도 이곳 벌교에 오면 태백산맥의 무대를 일부러 찾아가 보곤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홍교와 인근의 김범우의집을 찾았습니다.


 

 

 

김범우의집 안내판은 봉림리 홍교 주차장에 오면 잘 안내되어 있습니다. 막상 소설속의 김범우집을 태백산맥의 추억으로 생각하여 찾는다면, 실망만 하고 돌아서게 됩니다. 지금 김범우 집은 폐가 수준을 넘어 흉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염상진이 대지주의 아들이며 학교 후배였던 김범우의 아버지 김사용을 찾아가 “저에게 농사지을 땅을 좀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전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땅을 얻고자 하면 다른 소작인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간을 해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빌려주시라는 겁니다. 김사용은 단정히 꿇어앉아 말하고 있는 염상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이 그지없이 따뜻했고 입가에는 조용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태백산맥 1권 135페이지에서 발췌)


 

 

 

소설에서 보듯 김사용과 염상진이 많은 대화가 그려지는 집입니다. 사랑채, 겹안채, 창고자리, 장독대, 돌담 등 대지주의 주택으로 등장을 하지만 김범우의 집 규모는 소박하며 화려하지 않은 소설속의 김사용 성품처럼 올곧은 선비의 분위기를 자아내게 합니다. 김범우 집을 나오면서 여러 칸으로 만들어진 우편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편함의 이름을 보니 김씨 성은 없었습니다.



 

 


우연히 뒤에 다시 찾은 보성읍의 식당에서 문화 해설사분을 만났습니다. 그분과 태백산맥에 대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범우의 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집이 완전 폐가처럼 엉망이던데예”. 하니 “그 집 주인이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미국이 아닌 서울에 후손이 계시다합니다.)는 답이 돌아 왔습니다. 현재 김범우 집이 개인소유라 수리도 할 수 없다며 소설 태백산맥의 김범우 집이 무너지는 것을 문화해설사분은 아쉬워하였습니다. 태백산맥을 보고 찾아가는 관광객의 한사람으로도 아쉬움이 남는 방문이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김범우의 집◆

 

 

 

 

 

 

 

 

 

 

 

 

 

 

 

 

 

 

 

 

 

 

 

 

 

 

 

 

 

 

 

 

 

 

 

 

 

 

 

 

 

 

 

 

 

 

 

 

 







2013/05/06 - (전남맛집/보성맛집/벌교맛집)벌교를 먹여 살린다는 꼬막.태백산맥으로 유명한 벌교 꼬막 맛집 거시기 꼬막 식당.


2013/05/10 -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을 따라가는 벌교 보성여관. 태백산맥문학관


2014/01/26 -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횡개다리인 홍교를 찾다.



 



 



728x90

728x90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홍교를 가다.


벌교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요 태백산맥하면 벌교가 되어버려 둘이 때어내곤 이야기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정래 태백산맥의 소설에는 벌교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다보니 벌교역과 차부, 솥공장, 소화내집, 현부자, 재석산, 중도방죽, 남도여관, 낙안벌, 율어면, 부용산, 솥공장, 징광산, 소화다리, 김범우집 등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의 무대가 되는 건물과 지명이 등장을 하여 소설이 아닌 지금도 태백산맥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많은 소설속의 무대 중 벌교의 홍교를 댕겨 왔습니다. 벌교의 홍교는 소설속에서 홍교 또는 횡개다리로 등장을 합니다. 소설속인 일제강점기때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가 3개였다 합니다. 홍교와 소화다리 그리고 철교로 지금도 태백산맥의 이야기를 안고 남아 있습니다. 벌교의 지형도에 나오는 부용교가 소화다리입니다.





각설하고 그럼 홍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벌교의 지명이 홍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소설 속에서도 벌교의 유래가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벌교의 유래인 홍교를 찾아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2권 145페이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실 봉림리와 장터거리와의 직선거리는 포구의 폭에 지나지 않는다. 그 포구에 가로 놓인 세 개의 다리가 낙안벌 쪽으로부터 횡계다리(홍교), 소화다리, 철교다. 벌교(筏橋)라는 이름도 포구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그 포구에다가 옛날에는 뗏목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다닌 데서 유래한 이름이었다. 세 개의 다리 중에서 제일 길이가 짧은 횡계다리는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었고, 소화다리와 철교는 일제시대에 만든 것이었다. 벌교.....”







태백산맥속에 등장하는 홍교는 김범우집 앞에 있습니다. 김범우가 홍교를 건너는 내용이 태백산맥에서 나옵니다. 김범우가 전원장을 만나며 집으록 가기위해서는 홍교를 건너는 내용입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북쪽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나 벌교읍에서는 횡개다리인 홍교가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아주 좋은 양념구실을 합니다. 그럼 옛날부터 있었다는 홍교가 궁금합니다. 홍교는 보물 제 30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벌교천 위에 놓여진 돌로 만든 홍예식(무지개)다리로 전체길이는 27m, 높이 약3m, 폭 4.5m 내외라 합니다. 홍교는 조선 1729(영조 5년)년에 순천의 조계산 선암사 승려인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합니다. 내용인 즉 불교에서 가장 큰 보시가 월천공덕으로 “다리를 놓아 사람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합니다.





☞(전남여행/보성여행/벌교여행)조정래 태백산맥 속의 홍교, 횡개다리 홍교 국내 최대 규모.


이 홍교는 1737년(영조 13년)과 1844년(헌종10년)에 보수를 하였다합니다. 현재의 다리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1~1984년까지 4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의 원형을 찾았습니다. 국내 남아있는 홍교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돌다리입니다.





홍교 입구에는 ‘보성벌교 홍교중수비군‘이 남아 있습니다. 어떤이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로 쇠나 돌에 새겨 놓아 금석문이라 합니다. 홍교 앞에는 모두 다섯 기의 비가 있습니다.


 



홍교를 보수할 때 고친 내력과 참여자등을 기록한 중수비와 단교명비로 비의 내용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합니다. 벌교 홍교는 벌교에서 낙안읍성과 김범우집 등을 찾아 갈 때면 반드시 거쳐 가게 됩니다. 조정래 태백산맥속의 횡개다리인 홍교를 보며 소설속의 홍교를 그려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 문학관 캡쳐.




다음지도캡쳐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