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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행/정선가볼만한곳)고한 태백산 정암사, 5대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여행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인 태백산 정암사, 앞 번에 태백산 정암사의 수마노탑 포스팅을 하면서 정암사에 대해 약간 언급했습니다만 이번 포스팅에서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정암사 역시 통도사, 법흥사, 봉정암, 상원사와 함께 자장율사께서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 주소: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2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 전화:033-591-2469


2017/02/07 - (정선여행)태백산 정암사 수마노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정암사 수마노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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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장율사께서 정암사를 세우게 된 계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자장율사께서 강릉의 수다사에 주석하면서 문수보살의 친견을 서원하던 차에 하루는 꿈속에서 당나라 유학 시절 오대산 북대에서 범어계를 주던 법승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자장율사보고 내일 날이 밝으면 대송정에서 만납시다 하며 사라졌습니다. 

 

 

스님이 잠에서 깨어나 대송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소승을 만났는데 문수보살께서 태백산갈반지에서 만나자 하신다며 전하고 사라지자 다음날 자장은 갈반지를 찾으려 길을 떠났습니다. 태백산 아래에 당도하여 갈반지를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갈반지의 뜻인 갈은 칡을 뜻하고 반은 소반을 뜻해 스님은 제자에게 칡넝쿨을 찾게 했는데 온 산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칡넝쿨이 감겨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칡넝쿨 가운데 10마리의 구렁이가 서로 몸을 꼬면서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갈반지임을 직감하고 제자들에게 능구렁이를 쫓아내는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자 뱀은 몸을 풀고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자장은 꿈을 꾸었습니다.

 

 

낮에 능구렁이가 나타나 “스님. 그동안 전생의 업을 참회하며 큰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스님께서 경과 법문을 설하여 저의 몸에 뱀의 허물을 벗겨주시고 저희가 있었던 자리 밑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니 절을 세우는데 쓰십시오”하며 사라졌습니다. 7일 동안 자장은 경을 독송하자 마침내 뱀은 해탈하고 죽었습니다.

 

 

 

 

제자에게 그 자리를 파보게 했더니 금은보화가 쏟아져나왔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문수보살을 친견할 인연지라 생각하고 645년에 석남원을 창건하였으며 오늘날의 정암사 시초입니다. 그리고 스님은 산꼭대기에다 탑을 세우려 했지만, 번번이 탑이 무너져 세울 수 없게 되자 백일기도를 올렸고 마지막 날밤 하늘에서 칡 세 줄기가 내려와 멈추었으며 현재 멈춘 자리에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법당이 세워졌습니다.

 

 

 

 

태백산 정암사로 많이 알려졌지만 갈래사로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며 여기 지명 또한, 갈래가 되었습니다. 자장율사는 칡 세 줄기가 내려온 곳 중 한 곳인 천의봉 아래에다 수마노탑을 세웠습니다. 수마노탑은 서해 용왕이 물 위로 운반하여 보낸 마노석을 쌓은 탑에서 유래합니다. 정암사 경내에서 석교인 일심교를 건너 돌계단을 100여 미터 올라야 합니다.

 

 

 

 

천의봉에서 내려온 급경사 능선을 깎아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 수마노탑을 세웠으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입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의 거대한 모전석탑 형태에서 정제되고 정교한 수법으로 쌓았으며 옥개석과 우각, 추녀 밑의 상향을 보면 고려 시대 양식을 보입니다.



또한, 청동제로 만든 상륜부의 정교함과 전탑 아래 배례석의 구름 모양인 안상과 연꽃무늬인 연화 조각 수법 등이 고려시대 모전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마노탑은 1972년에 해체 복원되었습니다. 복원 이전에는 전탑의 파손 상태가 매우 심했습니다.



 

해체를 하면서 3층 옥신에서 기단부 사이에 5개의 탑지석을, 기단맨 아랫부분에서는 청동합과 은제외합, 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함께 나왔다 합니다. 여러 번 수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재의 전탑 모습은 1653년에 중건되었으며 탑지석에 나와 있다합니다. 정암사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수마노탑 아래에다 적멸보궁을 세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면서 참배하기 위한 공간으로 건립한 법당입니다. 극락교를 건너면 이곳은 적멸궁의 현판이 걸렸습니다. 그 뜻을 보면 “번뇌가 사라져 깨달음에 이른 경계의 보배로운 궁전”이라 합니다. 저 또한 불교도이지만 그 뜻은 심묘할 뿐입니다.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기 때문에 적멸궁에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으며 그 대신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를 보관해왔습니다. 그러나 금란가사는 아쉽게도 현재에는 볼 수 없습니다. 1975년 11월 어느 날 도둑이 들어 현재까지 찾지 못한 상태라 합니다.

 

 

적멸궁은 천의봉 능선 끝에 있으며 서쪽을 향한 법당 앞에서 좌·우 두 계곡의 물길이 합쳐져 한 가닥으로 흘러갑니다. 이곳에다 적멸궁을 세웠으며 적멸궁을 받치는 축대는 주변의 자연석을 모아 쌓았습니다. 그 위에다 덤벙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으며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팔작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정암사 사적에 따르면 1770년(영조46). 1858년(철종9), 1919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현재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적멸궁


자장율사 주장자 


 

 적멸궁 뜰에는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고 그가 들고 다녔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를 남겼습니다. 주목으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나무입니다. 1300여 년의 긴세월을 지나면서 죽었다던 주목은 다시 가지 일부가 살아나 현재 적멸궁 앞을 호위하는 듯 지키고 있습니다.


 

자장율사의 성품을 닮았는지 주목은 동서남북으로 길게 가지를 뻗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 자장율사 주장자인 주목을 선장단이라 부른다합니다. 주장자는 무엇인고하니 영화에서 보면 수염을 하얗게 기른 고승이 기묘하고 무겁게 보이는듯한 나무지팡이를 들고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주장자입니다.



이는 스님이 좌선 또는 설법을 할 때 손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며 불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가끔 유명 사찰을 가다 보면 고승이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훗날 그곳에서 싹이 자라 고목이 되었다는 전설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신기해하며 다시 한번 그 사찰의 역사와 정통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암사 또한 자장율사의 주장자가 유구한 세월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보면서 천년사찰 정암사를 다시 한 번 더 보게 되었고 자연의 경외함까지 생각하게했습니다. 스님이 들고 다니는 주장자 윗부분에는 6개의 방울이나 쇠고리를 달아 소리를 내게 했는데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방울이나 쇳소리를 듣고 벌레나 미물이 발에 밟혀 죽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주장자에 달린 6개의 쇠고리는 육환장이라고도 하며 육도 중생이 모두 해탈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암사 계곡은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정암사가 세계 열목어 서식지로서는 최남단에 해당하여 천연기념물 제73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시베리아, 몽골 등 추운 지방인 북방계 어종으로 항상 수온이 20도 이하에서만 서식하는 물고기이며 이곳 정암사 계곡의 물이 그만큼 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눈에 열이 많아 항상 눈알이 빨개서 열목어라 불리고 찬물에다 눈의 열을 식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암사 수마노탑

 

 

필자가 정암사에 들렀을 때 한참 관음전 중창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황금색을 띈 관음전 중창, 육화정사, 자장각, 삼성각, 목우당, 범종루, 적멸궁, 일주문, 수마노탑 등 많은 전각이 정암사 경내를 꽉 채웠습니다. 정암사 홈페이지를 보면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란 뜻의 정암사를 보면서 사방팔방 높은 산이 호위하는 괴괴한 정암사를 보면서 그 이름이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참고:정암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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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여행/정선가볼만한곳)만항재. 겨울 만항재는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된다는 곳.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고개는 어디일까?? 대충 생각하면 강원도 아니면 지리산, 그것도 아니면 한라산 1100도로 등 무수하게 많이 열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포장된 자동차도로는 강원도 만항재입니다.





강원도 만항재 주소: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산 216-34




만항재는 백두대간이 흘러오다 금대봉에서 만항재보다 조금 낮은 두문동재를 세우고 다시 우리나라 제6위 고봉인 함백산을 만들었습니다. 함백산을 지나면서 엉거주춤 힘을 빼고 만항재를 만들고 그러고 나서 화방재에서 온 힘을 다시 모아 신령스러운 영산인 태백산을 고추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만항재는 함백산과 태백산 사이의 고갯길이며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을 연결 짓는 고갯마루입니다. 만항재는 사계절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읍니다. 봄이면 천상의 화원이라는 수식어답게 별의별 야생화가 능선을 따라 꽃 터널을 이룰 정도로 지천으로 핍니다.




한여름에는 얼음장 같은 계곡물이 흐르며 삼복더위의 무더위도 무색할 정도로 서늘하여 여름 휴양지로 유명한 만항재, 가을이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일 듯 함백산은 단풍으로 치장합니다.



만항재의 아름다움은 야생화의 천국, 삼복더위도 무색하게 하는 산상의 날씨, 붉게 물든 가을 단풍 등 안 좋은 계절이 없지만 역시 떠돌이 여행객이 생각하기에는 하얀 설국으로 치장하는 겨울동화 ‘만항재’가 가장 으뜸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주말인 토요일에 만항재를 찾았습니다.

 


그 전날인 금요일 부산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인제로 향했습니다. 중소형승용차에 스노체인을 준비하지 않고 출발한 1박 2일 강원도 여행은 나에게 큰 모험이었습니다. 중앙고속도로를 접어 들어 동명휴게소에서 쾌청하게 맑던 하늘은 진눈깨비를 약간씩 뿌렸습니다.






‘어! 눈이네’하면서 먼저 걱정이 앞섰습니다. 겨울에는 당연히 눈 오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도 눈밭인 강원도를 찾아가는데 말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우리 국토가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억수같이 퍼붓던 눈발은 터널을 통과했더니 ‘무슨 눈’하며 하늘만 맑고 눈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귀신 곡할 것 같은 그런 짓을 여러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다행히 인제에서 눈 구경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태백으로 출발했습니다. 일단 태백시까지 가야 다음날 만항재를 올라가는 형편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새 눈이 억수로 와서 차량통행이 안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태백시에 들어왔는데 시내는 물론이고 주위 산에 전혀 눈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는 눈이 안 왔나 하면서 다음날 만항재로 출발했습니다. 화방재로 해서는 불안해서 안 되겠고 했어 두문동재터널을 통과하여 정선군 고한읍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고한읍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태백하고 정선은 완전 달랐습니다. 도로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설국이었습니다. 우리는 차를 정암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고한읍의 택시를 불렀습니다. 5분 만에 신속히 택시는 도착했습니다.




만항재로 오르면서 기사님은 우리 차를 보셨는지 그 차로는 만항재로 못 올라갑니다 하였습니다. “원주 제천을 지나면서 눈이 많이 오던데 여기는 눈이 안 왔습니까”하니 “여기는 그쪽에 비해 눈이 거의 안 왔습니다”하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만항재에 눈이 오면 이 눈은 만항재 위쪽에 있는 군부대의 출입통로 확보를 위해 군인들이 먼저 제설작업을 펼친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눈 구경을 위해 이곳까지 왔지만, 이곳 부대 아니 강원도 산간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매일 제설작업으로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1,330m 고지의 만항재에 도착했습니다. 나무 사이로 함백산과 태백산의 풍경이 펼쳐지는 게 높은 산의 고개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쪽으로 넘어서면 영월 쪽, 저쪽은 태백 ㅋㅋ 오래전에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고 이 능선을 지나간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저 기억 저편으로 가물가물할 뿐입니다.

 



벌써 만항재에는 많은 사람이 겨울 설경을 즐기기 위해 올라와 있었습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쭉쭉 큰 나무는 모두 몸에 하얀 분칠을 하고 겨울을 즐기려는 듯 우리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겼습니다. 우리도 만항재 주변의 풍경에 혼을 빼앗긴 듯 깡충깡충 뛰면서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누군가 말을 합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작품사진이라고 말입니다. 실제 누르는 족족 환상의 작품사진이었습니다. 만항재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만항재와 이웃한 고개는 두문동재입니다. 흔히 방에만 들어박혀 있으면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을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합니다.


 

그럼 두문동재의 두문동(杜門洞)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려고 방문을 걸어 잠근다는 뜻이며 고려의 국운이 쇠하자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여 조선을 건국합니다. 이에 이성계의 조선에 반기를 든 고려의 신하들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기슭의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고려의 신하로서 절의를 지키며 살았는데 두문동에서 살던 일부가 강원도 정선의 고한읍 함백산 아래에 옮겨와 살았다 합니다.




 이들은 끝까지 고려의 충신으로서 절의를 지키며 다시 고려의 신하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곳 고개에 올라와 고향 땅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하여 ‘망향’이라고 불렀던 게 뒤에 ‘만항’이 되었으며 만항재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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