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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전국적으로 이슈에 올랐던 뉴스가 있습니다. 밀양의 송전탑 선로 공사로 단장면 일원의 마을분과 한전간의 다툼입니다. 급기야 몸싸움과 함께 소송까지 불사하며 국민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송전탑 선로 공사가 단장면을 거쳐 지금은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쪽으로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 고정리 뒷산인 낙화산~보담산으로 산행을 가기위해 상동역에서 택시를 타고 고정리 고답마을로 향했습니다. 상동역을 출발하자 전경버스가 도로가에 주차된 것을 보았습니다. 기사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송전탑공사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할머니 몇 분만 모여도 전경을 태운 버스가 2~30대 달려온다며 세금이 엉뚱하게 다 사용된다며 열을 내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동안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모두 전경이 지키고 서 있고 스쳐지나가며 순간적으로 보아도 전경버스가 9대가 넘었습니다.







내가 봐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 마을분은 어떤생각을 하겠습니까. 택시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며 올라가는데 마을분이 위에가면 전경이 지키고 있다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산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올라 갈 수 있었는데 철탑 공사장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철탑 공사장 주위로 2중의 철조망과 직원인지 모르지만 두분이 입구에 지키고 있고  위에는 공사를 하는 중장비의 소음이 들렸습니다. 지키는 분이 못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산행을 위해 간다며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로 산길이 잘 나 있기에 이길로 지나갑시다하니 그쪽은 길이 없어 못지나간다 하였습니다. 필자가 산길이 잘 나 있는 데요 하니 위쪽이 막혀 있어 나가는 길이 없다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좋은 산길 놔두고 철망 밑으로 길없는 산 비탈을 위험스럽게 걸어 갔습니다.




산길이 아니다 보니 큰 덩치의 나무가 넘어져 있고 급경사라 미끄러지고 하며 겨우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쳐둔 로프를 잡고 어찌어찌 능선으로 올라갔습니다. 능선까지 올라온 철망에는 출입문이  달려 있고 열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때 얼마나 뿔따구가 나는지, 아무리 국익을 위한 공사도 중요하지만 지나가는 길을 막아놓고 올라가는 길이 없다는 것은 무슨 심뽀인지, 너무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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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동으로 복수초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을까요. 야생화 사진을 찍는 동호인들의 조작질 고발

지난 주말 오후 늦게 부산 인근에 있는 복수초 군락지를 찾아갔습니다. 요 근래 영동과 동해안으로 많은 눈이 내렸지만 부산시의 남쪽 끝에서는 쌓인 눈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맘때면 찾아가는 복수초 군락지에 영동의 눈을 갈라 부산까지 골고루 눈을 뿌려주면 야생화를 좋아하는 한사람으로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역시 자연의 조화는 인간이 근접 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 있습니다. 그래도 시내 가까이에 이런 복수초 군락지가 있어 위안을 삼아야 하겠죠. 지난 토욜 찾아간 복수초 군락지의 모습입니다. 시간이 아마 오후 5시가 넘어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몇사람이 복수초를 찍고 있더군요. 우리도 내려가 복수초를 보았습니다. 지난주보다도 더 많이 피어 포근한 날씨 속에 화사하게 웃고있는 모습에 내 마음까지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였습니다. 복수초를 찍는 야생화 동호회 회원분의 행동을 보고 기가막혔습니다.



 



요번 폭설에도 눈 한번 쌓인적이 없는 이곳에 난데 없는 얼음으로 꽃사진을 조작하는 모습에 아직도 이런 분이 있나 싶었습니다.  얼음을 대충 깨어 바닥에 깔아 놓았는데 복수초가 감기에 걸려 아파할 것 같습니다. 





 



취미로 꽃사진을 찍는 분들은 우리는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닌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야생화를 있는 그대로 사진으로 남기는 게 꽃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아닐까요. 꼭 복수초가 눈에 피지 않았도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야생화 동호인에 먹칠을 하는 몇몇의 꼴두기 같은 꽃사진 찍사들 때문에 전국의 순수한 꽃사진 동호인들이 도매급으로 넘어갑니다. 일부 몰지각한 야생화 동호인께 고합니다. 이런 조작으로 찍은 꽃사진을 들여다 보면 행복하십니까. 꽃은 자연적인 모습일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혀 이야기하겠습니다. 위의 사진과 밑의 사진은 얼음이 없습니다. 그대신 땅에 닿인 줄기부분을 깨끗하게 끍어놓았습니다. 사람도 겨울철에 이발을 하면 목이 써늘합니다.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겨울철 보온을 위해 덮고 있는 이불을 저리 싹 치워버리면 얼마나 추워할까요.



 



깨끗한 꽃사진을 담는 욕심이 야생화를 죽게 만듭니다.  진정한 꽃사진 동호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들 담아 내는 사진이야말로 더욱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자연 그대로의 복수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2014/02/12 - (야생화/복수초)복수초. 청마해에 처음 만난 복꽃 복수초를 담아 왔습니다.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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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을 하며 재사용된 목재의 상태와 단청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세요.




★복원을 한 후 단청을 깨끗하게 칠한 외부의 모습. 동영상을 보면 내부와 외부가 너무 상반 됩니다.


모서리가 깨진 모습과 벗겨진 단청에 상천난 나무.



☞이 모습이 우리의 문화 유산이 될 수 있는지 복원된 금정산성 3망루의 복원된 모습에 놀랬습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1703년(숙종29)에 금정산에 돌로 쌓은 석성입니다. 길이만도 18.845m이며 성벽 높이는 1.5~3m쯤 이며 전체 면적이 약8.2㎢에 이른다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산성의 규모로서는 가장 큰 규모라합니다.







금정산성의 정비는 1972년부터 점차적으로 복원을 하여 현재에도 계속 진행형입니다. 그럼 이번 포스팅의 금정산성 제 3망루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안내문을 보면 금정산성 3망루는 동문에서 1km의 거리에 있으며 암반이 솟아오른 절벽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개의 나무로 튼튼해야 할 기둥을 잇대었다.



정산 나비바위 오른쪽에 위치를 하고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서 보는 금정산의 경치 또한 대단합니다. 가까이는 부채바위 암릉이 길게 이어지고 건너편에는 용호등으로 불리는 무명암이 이름을 명명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명 의상봉으로 불리는 사자봉 옆으로는 금정산성 4망루가 외로운 듯 금정산을 굽어 보고 그 뒤로 금정산의 고당봉이 솟아 있어 금정산의 전망대 구실을 하는 곳입니다.





남쪽인 바닷가 쪽은 멀리는 해운대구의 센텀시티와 광안대교가 조망되고 장산 황령산등 부산시내의 3할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금정산성에는 현재 4개의 망루가 있습니다. 현재 복원이 된 곳은 2, 3, 4망루며 1망루도 복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모든 망루가 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를 가까이 끼고 있어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올라오는 태풍의 길목이라 망루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1망루도 태풍으로 인해 무너져 아직 복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3년 5월에는 금정산성 3망루가 복원되었습니다. 필자가 찍은 사진의 2011년 9월 사진에는 로프가 쳐져 있어 출입을 막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태풍에 아마 피해를 본 것 같습니다. 금정산을 자주 가다보니 그 뒤에는 철거를 하였고 다시 또 가니 기초공사를 해 두었습니다. 이번 설날 전에 3망루를 거쳐 지나가는데 복원이 되어 반갑고 하여 가보았습니다.





복원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단청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 외관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내부를 보니 어디 중고 나무를 사용하였는지 나무가 모서리가 깨어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상처투성이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걸 복원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며 기둥을 보았습니다. 3망루는 정면2칸에 측면 1칸으로 모두 6개의 기둥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중 들어가는 입구 왼쪽의 기둥은 나무를 두 개를 잇대어 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은 바람이 엄청 부는 곳입니다. 태풍이 올 때마다 항상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이라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망루를 다시 복원하였는데 왜 나무를 이어서 기둥을 사용하였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의문은 2014년 2월5일 풀리게 되었습니다.





숭례문 부실 공사문제는 최근까지도 뉴스에 나오고 지난 2월4일 뉴스에는 또 다시 사적지 단청의 엉터리 공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계속 문화재 부실 공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금정산성 3망루의 단청도 궁금하여 금정산성을 관리하는 담당구청 문화 공보과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마침 담당자가 출장을 갔다며 오후에 통화가 되었습니다. 담당자와 통화한 내용을 간추려 보면 복원을 하면서 일부 기존의 나무를 다시 사용하였다 합니다.





6개의 기둥 중 3개를 재 사용하였다하는데 하필 잇댄 나무도 재사용된 나무 였습니다. 그리고 내부의 써까레등은 모두 기존의 나무를 재 사용하였다합니다. 단청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습니다. 공보과 담당자의 말은 재사용된 나무는 단청을 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새로 사용된 나무만 단청을 칠하였다합니다. 왜 단청을 기존의 나무에는 칠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역사적으로 망루의 건물이 조선시대에 지어졌고 그 당시 사용된 목재라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함이라하면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복원한지 몇 년 안 된 망루를 다시 복원하면서 단청을 다시 입히지 않은 것은 담당자가 현장을 직접 가본 것인지 의문이 들게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장에 직접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 봤다면 외관만 단청을 칠하고 내부는 칠하지 않게 된 것을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2011년9월25일 촬영한 사진. 붕괴 위험이 있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현장 방문을 하여 내부의 단청을 깨끗하게 입혀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로 부딪히고 찍 여 상처 난 나무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까지 우리의 문화유산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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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효심과 강력한 개혁정책을 위해 1794년 수원화성을 착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축성당시 51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시가지 조성과 전란등으로 인해 무너지고하여 41개만 제 모습을 유지하며 남아 있었습니다.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신청되어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은 우리문화재이지만 우리 것이 아닌 세계인이 주목하는 그런 문화재입니다.





 

 

필자는 수원화성을 1박2일 다녀오면서 수원화성의 행궁에 있는 가로수를 보았습니다. 바로 수원행궁 광장 앞의 도로에 있습니다. 가로수 가지가 도로로 뻗으면서 나무의 몸통 자체가 도로 쪽으로 비스듬히 자랐습니다. 아마 교통에 많은 방해가 되었는 것 같습니다. 가로수를 뽑지 않고 도로 쪽으로 나온 큰 가지를 잘라 가로수를 살려 준 것은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뒷모습이 너무 아름답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보통 도로 표지판을 세 울때는 쇠기둥에 도로 표지판을 달아야 하는데 ‘충돌주의’ 도로 표지판을 자른 가지에 바로 볼트를 조아 놓았습니다. 가로수를 살리려는 모습은 너무 보기가 좋은데 '충돌주의' 도로 안내표지판을 가로수에 바로 박아 놓은 모습은 세계 문화유산 앞에서는 걸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국 관광객이 와서 보면 혹 불쾌감을 남겨 나쁜 이미지가 될 것 같습니다. 제 눈에만 띤 것인가요


 

 

 

 지금도 화성공원에 가면 여러 가지 안내판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사랑합시다’. ‘잔디가 아파요’. 하는 문구를 만나는데 정작 수원시의 가로수에 교통표지판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원시의 관계자님은 하루 빨리 시정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로수가 얼마나 아플까요, 자신의 몸에 이리 안내판을 박아 놓는다고 생각을 하면 이리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수원화성 행궁의 모습




수원화성의 장안문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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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새해일출)집에서 맞이한 새해일출 감상하세요


201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13년도 지나가고 이제는 청마라는 갑오년 말띠입니다. 말처럼 앞으로 질주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올 한해는 부디 말처럼 경쾌하게 세상을 나가는 한해가 되길 빌어 봅니다. 


 



집 베란다에서 볼까하다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 갔습니다. 언제나 아파트 옥상은 조용한데 오늘은 한가족이 올라와 있습니다. 남항대교 건너 태종산 위로 붉은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아침노을은 아래에서 위로 붉은 기운이 퍼져 올라가고 저녁노을은 위에서 아래로 붉은 기운이 퍼진다고요.







조금씩 머리를 내밀고 있는 붉은 해의 모습입니다. 2014년 갑오년을 밝히는 첫해를 보는 순간 가슴에도 붉은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올해 일출은 구름속에 볼 수 있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습니다만 ㅎㅎ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 그래도 아쉽지만 멋진 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낮게 깔린 구름 덕분 때문에 집주위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일출은 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일출은 맛은 바다에서 해가 올라오면서 오메가를 그리는 것이라하는데 그래도 집에서 이리 편안하게 갑오년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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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맛집/수원화성맛집)수원화성 행궁맛집 화성별관. 유명 연예인 정치인의 수원맛집 화성별관.


수원시와 함께 수식어로 따라 붙는 화성은 정조대왕의 개혁과 왕권강화를 위해 1796년에 완성을 하게 된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효심과 철학이 깃던 곳으로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이하여 화성과 현릉원을 다녀왔다. 이 수원 화성의 행차에 관한 기록이 “원행을묘정리의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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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60회 회갑을 화성 행궁에서 열었고 진찬연에 올려진 음식들이 모두 기록으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남아 전해지고 있다. 수원 화성 맛집이며 화성 행궁 맛집인 수원별관에서는 정조대왕이 친히 어머니 홍씨에게 올렸던 그 정성과 마음으로 음식을 요리하고 손님을 받든다는 화성별관은 수원 화성 행궁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별관은 한정식으로 다양한 퓨전요리를 선보인다. 화성반상, 봉수당 정식, 행궁수랏상, 매홀밥상등 다양힌 메뉴로 화성별관만의 음식으로 수원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가족의 외식장소는 물론이고 부모님 생신과 회갑연, 칠순, 돌과 백일잔치 상견례등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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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안내로 화성 행궁 인근의 화성별관을 찾아갔다. 예약을 한 일행은 2층으로 안내되었다. 수원 황성 행궁의 맛 집답게 음식점 안에는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영정및 정조대왕의 능 행차도가 벽면을 온통 장식하고 있어 매우 인상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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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 입구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등의 사인이 수두룩하다. 대충 훑어 보아도 인수대비의 채시라. 경기도 도지사인 김문수등등 유리문이 빼꼼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이 붙어 있어 수원화성의 행궁 맛집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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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화상반상으로 예약을 한 상태라 준비된 음식이 나왔다. 화상반상은 먼저 들깨죽이나 호박죽이 나오는데 이날은 호박죽이 나왔다. 그리고 활어회, 찹채류, 해물냉채요리, 해파리 오이냉채, 야채샐러드, 골뱅이 무침, 버섯불고기 전걸, 오리훈제요리, 주꾸미 요리등 14~15가지 전체요리가 나오며 뒤에는 밥과 함께 된장찌개와 그리고 밑 반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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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5천원의 화상반상으로 이리 푸짐하게 요리를 맛 볼수 있다. 그리고 후식으로 입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화성별관 맛집 가격 대비 너무 푸짐하게 먹었던 곳입니다.


  



















































































































◆수원화성행궁맛집 화성별관 영업정보◆

★상호:화성별관

★주소:경기도 수원지 팔달로 1가 6-4(수원화성행궁 건너편)

★전화:031-243-3900

★메뉴:화성반상(25,000원) 매홀밥상(15,000원) 봉수당정식(35,000원) 행궁수라상(50,000원)

★2~3일전 예약시 3인 이상 요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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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에 있는 레디움 아트센터에서 독특한 그림을 보고 왔습니다. '고전과 만나는 현대 모야' 전인데요 그림을 보면 모두다 어디서 본듯한 느낌입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램브란트,카라밧지오등의 작품인 담비를 안은여인, 모나리자, 비너스의 탄생 , 최후의 만찬, 아담의 창조등이 파트릭 모야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그려져 전시중입니다. 유명인의  원작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을하여 보여 준 모야의 작품은 저로서는 처음 접하여 본 그림으로 너무 독특한 모습입니다.


 


 

레디움 아트센터 개관기념으로 유럽의 파트릭 모야를 초청하여 그의 작품과 세계관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2013년 8월20일 부터 2014년 1월19일까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 미술관은 작가의 그림을 전시하여 판매를 하여 운영이 된다면 레디움은 전시관의 입장료로 운영이 된다 합니다.

 






이곳에서는 전시관의 작품을 활용하여 미술교육등 다양하게 운영이 되다보니 초중고와 직장인등 단체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다합니다. ㅎㅎ 해운대 해수욕장의 독특한 미술관인 레디움의 모야 전시  한번쯤은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림에 문외한인 저도 많은 공부하고 왔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가의 작품으로 기획 전시를 계획중이라하니 레디움 아트센터의 전시를 다음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현재 이곳에 전시된 모야의 작품중에 아이들의 대통령인 뽀로로와 기장경찰서의 모순경이 모야가 한국 방문때 작품으로 해석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많은 작품을 접하며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는 모야의 작품세계 이번기회에 구경해 보세요. 일반 12,000원.

 

바로가기 레디움 아트 센터 http://www.radiumart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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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를 걷다. 개요


근대이전에는 부산에서 한양으로 오르내리는 길이 세 갈래가 있었다. 이를 영남대로라 부르며 한양으로 오가는 가장 빠른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중 현재의 경부선 선로와 겹치며 서울까지 올라가는 길이 영남대로에서는 중도 길이다. 양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로 영남대로 길 중 삼랑진까지가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다. 흔히 잔도로 불렀는데 이는 국어사전을 보면 “다니기 힘든 벼랑 같은 곳에 선반을 매달듯이 하여 만든 길”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다니는 입장에서는 어렵고 힘든 구간이다.


 



물금역

 

 

경부선 지하차도 오른쪽 인도교로 간다.

 

 

 

 

낙동강 자전거 길과 합류,

 

 

 

중도의 영남대로에서는 이런 구간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중 두 군데가 이곳 낙동강의 양산 밀양구간에 몰려 있다. 물금에서 원동에 이르는 구간을 낙동강의 옛 이름인 황산강에서 따와 황산잔도로 불렀고 원동에서 삼랑진에 이르는 구간을 작원관에서 따와 작원잔도라 부르고 있다. 작원의 ‘작’자도 까치작(鵲)으로 날짐승도 넘어 다니기 힘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하니 이곳을 다녔을 선비의 과거 길과 보부상의 잰 걸음도 더디게 만들었을 악명 높은 길임을 알 수 있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영남대로 길을 너무 멀어 천리 길이라 하였다. 그 먼 길도 영남대로를 따라 14일이면 한양에 도착을 하였다하니 빠른 길은 빠른 길이다. 이곳을 가다보면 고을의 원님도 지나다가 빠져죽었다는 곳인 원추암도 보게 된다. 그만큼 길 가던 선비나 보부상들도 발을 헛디뎌 불귀의 객이 되었다.

 

 



 

 

용화사 갈림길

 

 

 

 

용화사 석불좌상

 

 

 

그 험한 길이 일제 강점기 때 경부선 철도가 가설되면서 영남대로는 거의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물금에서 삼랑진으로 이어지는 황산잔도와 작원잔도는 실 핏 줄같이 이어진 오솔길을 철로에 내주고 사라져버려 많은 안타까움이 남았지만 영남대로 길의 재조명 작업을 하면서 옛 ‘작원잔도’에서 바위에 걸린 돌다리를 찾았다. 이구간이 살아남게 된 것은 작원터널이 뚫리게 되면서였다. 바위에 달아 낸 선반식으로 만든 영남대로 길은 4대강 사업의 하나인 낙동강 구간의 자전거 길에서 데크로교량을 만들어 옛 영남대로의 원형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번에 자전거 전용 길인 낙동강 자전거 길을 따라 영남대로의 일부분이었던 황산잔도와 작원잔도 구간을 눈으로 확인하며 말없이 흐르는 민족의 대동맥 낙동강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현덕 공덕비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 경로.

 영남대로 길을 걷기위해서는 황산강 하류의 경남 양산시 물금역에서 시작한다. 경부선 물금역~ 물금취수장~용화사 입구~용화사~물문화관~동래부사 정현덕 공덕비~경파대~원동취수장~서룡문화생태공원~원동 갈림길~원동문화생태공원 자전거 쉼터~가야진사~작원잔도 유적~작원진 선착장~작원관(~다시 선착장)~처자교 안내판~삼랑진문화생태공원~삼랑진역. 영남대로의 황산잔도~작원잔도를 따라 물금에서 삼랑진역까지 GPS 전체 거리는 약 21㎞, 휴식을 포함하면 7시간 즘 걸린다. 순수 답사 시간만 5~6시간이며 평지를 걷는 길이라 누구나 답파할 수 있다.



경파대

 

 

 

 

 

 

 

 

 

황산잔도와 작원잔도를 걷기 위해서는 경부선 물금역에서 출발한다. 물금역을 빠져나오면 왼쪽으로 꺾어 2차선의 도로를 간다. 200m를 가면 서부아파트 앞 삼거리에 닿고 왼쪽 도로를 가면 경부선 선로 밑으로 지하차도가 연결된다. 인도길 입구에 자전거길 이정표가 붙어있다. 지하인도를 따라 올라가면 낙동강 둑길 위로 난 도로다. 직진한다. 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가면 4대강사업으로 조성한 ‘낙동강 종주 자전거 길’과 만난다. 왼쪽 길은 낙동강 자전거 길의 종착점인 을숙도 방향이고 삼랑진역은 직진이다. 물금취수장 옆을 지나가면 용화사 갈림길이다. 가야할 길은 '베랑길'의 직진길이지만 왼쪽으로 내려가 용화사를 잠시 둘러보고 나온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바로 용화사다.


 

 

 

 

 

 

 

양산화제석교비

 

 

요산 김정한의 중편소설인 ‘수라도’의 무대로 소설 속에는 용화사가 미륵당으로 나온다. 가야부인이 황산장에 시아버지 제사상을 보고 오다가 우연히 지금의 용화사가 있는 곳에서 반쯤 묻혀 있는 미륵불을 발견하게 된다. 가야부인은 이곳에 암자를 세우려고 하지만 그 당시 사대부 집안에는 유교 문화가 뿌리 깊어 반대에 부딪치게 되고 그의 사위가 암자를 짓게 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미륵불이 현재 보물 제491호 석조여래좌상이다. 용화사 마당에는 '수라도' 기념비가 서 있어 소설속의 무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대웅전 옆에는 여러 기의 비석이 있다. 그 중 한기는 1694년(강희33년) 황산잔도를 정비하며 세운 비석인 ‘황산잔로비’다. “갑술년(1694년)에 군수 권성구가 탄해 스님과 별장 김효의를 시켜 깊은 곳은 메우고 험한 곳은 깎아 평탄한 도로를 만든 공을 기려 세운것이다”며 양산읍지에 기록하고 있다.

 



 

 

 

 

 

 

 

 

 

다시 나와 자전거 길로 올라가면 바로 물문화관을 지나간다. 경상도 사투리로 ‘베랑’은 ‘벼랑’이란 뜻이며 지금은 낙동강에 교량을 세워 자전거길을 만들어 놓았다. 옛 영남대로의 황산잔도는 형체도 알 수 없지만 길을 따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험로에다 경부선 선로로 교량을 만든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야할 길은 아득하지만 정면에 바위가 슝슝 박혀있는 부산 근교의 3대 악산인 토곡산과 그 끝에 용굴산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곧 교량 옆으로 동래부사 정현덕 공덕비가 물가에 서 있고 잡목과 잡풀에 파 묻혀 있지만 주변으로 옛길의 흔적이 조금은 보인다. 정현덕 공덕비는 조선말기 문신으로 동래부사, 형조참판등을 지낸 인물이며 흥선대원군의 심복이었다. 1871년(고종8년) 그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낙동강 물 위로 난 교량을 따라 걷는다. 다시 조선 시대 선비들이 앉아 시를 읊던 바위 경파대다. 용의 발톱마냥 툭 튀어나온 바위로 조선시대 선비 정임교는 직접 ‘경파대기’를 지어“만년의 낙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며 이곳에서 선비들과 시를 읊고 즐겨 찾았다. 중국 당나라 시인이 쓴 ‘채련곡’에 “거울 같은 물, 바람 없어도 절로 물결인다”의 구절에서 따왔을 정도로 이곳의 운치는 뛰어나다. 경파대를 지나면 콘크리트로 포장된 강변길이다. 자전거 종주 인증센터를 지나고 나면 원동취수장이다. 물금에서 원동구간은 많은 자전거 동호인들이 다녀 항상 도보 꾼은 주의를 기우리며 걸어야 한다.

 



 

 

 

 

 

 

 

취수장를 지나면 삼거리와 만난다. 오른쪽은 ‘수라도’의 무대가 된 화제마을 방향이며 답사 길은 가야진사 방향 직진 길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길옆에 ‘양산화제석교비’가 있다. 영조15년(1739년)에 세웠던 비로 화제천을 건너기 위해 만든 토교(나무로 지주를 세우고 다리를 만들어 솔가지를 꺾어 다리 위에 차곡차곡 놓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었다하여 토교로 불림)가 잦은 수해로 떠내려가자 돌을 쌓아 무지개다리를 완공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현재 이곳의 지명이 아직도 토교로 불린다. 넓은 낙동강 둔치 가운데로 자전거 길이 이어진다.



원동역 원리마을 갈림길

 

 

 

 

 

 

 

 

왼쪽으로 낙동강이 흘러가고 강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토곡산이 더욱 가깝게 보일 때 쯤 쉼터가 있는 서룡문화생태공원이 있다. 낙동강 건너에는 김해 무척산에서 석룡산으로 능선이 흘러 다시 금동산을 솟구치고 그 가느다란 능선이 매리에서 사그라진다. 아직도 4대강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지 자전거 길 아래로 강둑을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기존의 풀과 나무들이 드리워진 강변을 포크레인으로 싹 밀어버리고 호안공사를 왜 일률적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부지런히 60분을 걸으면 원동역 인근을 지나고 원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랑진역은 직진이다. 낙동강과 원동천이 만나는 강가엔 갈대가 바람 부는데로 흔들리며 하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야진사.

 

 


다리를 건너 가야진사가 있는 모래톱을 20여분 가면 원동문화생태공원과 자전거길 삼거리다. 가야진사를 가기위해서는 왼쪽 '원동지구' 방향으로 간다. 바람이 쌩쌩 불 어 추운날씨에도 모 교회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와 있다. 팔각정자가 있는 주차장 끝에서 왼쪽에 보이는 가야진사로 간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원동과 용당마을을 오가는 나룻배가 있던 자리로 이곳에 가야진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삼한시대부터 국왕의 이름으로 정례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신라가 가야를 정벌할 때 이곳으로 왕래를 하였다하며 매년 봄, 가을에 향촉과 제관을 보내어 제사를 올려 장병의 무운장구를 빌었던 곳이다. 또한 낙동강의 범람을 막고 안전한 뱃길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현재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 가야진사와 작원잔도 유적지를 만나다.


가야진사는 4대강 사업 조성으로 발굴을 거치고 현재는 둔치일대를 깨끗하게 정리를 한 상태다. 용신제 전수관 앞을 지나 둔치 길을 따라간다. 오른쪽 경부선 철길 밑으로 자전거길이 지나가지만 20분 정도 둔치를 직진해서 가면 다시 자전거 길과 연결된다. 이정표에는 '삼랑진 4.2㎞'로를 알리고 있다. 삼랑진에서 원동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S"자로 이어져 모래톱이 많이 발달해 있다. 20분 뒤 '밀양 1㎞' 안내판을 지나 곧 작은 다리를 건넌다. 오른쪽으로 툭 볼가진 시루봉 암봉이 눈길을 끈다. 다시 낙동강 위로 놓인 교량를 따라 간다. 양산과 밀양의 경계를 지나면 작원잔도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 영남대로의 옛길인 작원잔도의 모습을 조금은 볼 수 있다. 흘러내린 바위에 사다리꼴로 돌이 걸쳐진 작원잔도의 모습이 신기하다. 현재의 작원잔도 원형이 보존된 것은 경부선 작원관 터널이 뚫여 그래도 원형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시루봉

 

 

 

 

작원잔도 유적지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 작원관의 역사를 배우다.


교량 길을 1㎞ 이상 가면 콘크리트 길과 만나고 곧 작원진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작원관지를 잠시 둘렀다 오자. 이정표가 없어 유의를 해야한다. 오른쪽 굴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현재 작원관과 위령탑이 복원되어 있다. 영남대로에서는 두 개의 관문이 있다. 작원관과 주흘관으로 관원의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이다. 작원관은 임진왜란때 밀양부사 박진장군이 왜적을 맞아 군관민 300명이 결사항전 하였지만 패한 곳으로 1995년 작원관의 성문을 복원하고 위령탑을 세워 기리고 있다.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 처자교의 전설을 만나다.


삼랑진역으로 가기위해서는 선착장까지 되돌아간다. 20분가량 가면 처자와 스님의 이야기가 전하는 처자교 안내판이 있다. 밀양지명고에보면 "작원관 인근의 작은 암자에 스님이 살았는데 인근의 마을에 사는 미모의 처자를 연모하였다. 어느 해 두 남녀는 사랑을 걸고 다리 놓기 시합을 벌렸다. 스님은 행곡천의 다리를 맡고 처자는 우곡천의 다리를 각각 맡아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스님은 여자라고 처자를 앝잡아 보지만 처자는 열심히 다리 공사를 하고 스님보다 먼저 다리를 완공한다. 스님은 자신의 교만함이 일을 그르친 것을 깨닫고 낙동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에 처자도 따라서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 후 스님이 만든 다리는 승교, 처자가 만든 다리는 처자교로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작원관 유적지

 

 

 

 

 

 

 

 

처자교 발굴사진

 

 

 

마을주민들 사이로 전해오던 처자교 이야기를 4대강 공사때 민원을 제기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처자교 유적 발굴이 사실로 들어났다. 그리고 복원을 하지 않고 확인만 한뒤 보존을 위해 다시 모래로 덮어 둔 상태라 현재 위치를 찾기도 힘들게 잡풀이 웃자라 있다. 10분가량 더 가면 작은 목재 데크 다리 직전에 있는 갈림길과 만난다. 직진하여 다리를 건너가면 안동댐으로 이어지고 삼랑진역은 오른쪽으로 자전거 길을 벗어난다. 원형의 쉼터에서 오른쪽 철로가 놓인 둑길로 간다. 삼랑진역 인근으로 철둑 옆 도로를 따라 50m가량 가면 지하통로가 있다. 지하통로로 해서 삼랑진역으로 갈 수도 있지만  삼랑진역의 취수탑을 보며  둑길의 도로를 따라 가도 삼랑진역으로 연결 된다.

 

 

 

 

 

 

 

 

 

삼랑진역 취수탑

 

 

 

☞(경남여행/양산여행)영남대로길 물금역~삼랑진역(황산잔도~작원잔도) 교통편.


이번 물금과 삼랑진코스는 경부선이 지나감으로 기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출발지인 물금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35분(첫차), 7시50분, 8시42분, 9시25분, 10시27분 등이고 부전역에서 물금으로 가는 열차는 오전 6시25분, 8시25분, 10시40분 등 하루 다섯 차례 있다. 삼랑진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열차는 오후 5시55분, 6시22분, 7시4분, 7시48분 등에 있다. 부전역으로 가는 열차는 오후 3시38분, 8시12분, 9시4분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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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부산대학교 후문에도 벽화거리가 있어요.


지난 목욜 우연찮게 부산대학교 후문쪽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부산대학교에는 부산의 국립대학으로 3곳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초창기 시계탑이 있던 정문이 현재는 구정문이라 부르며 도시철도 부산대학역에서 올라는 오는 출입구를 정문이라 부릅니다. 또 한곳은 후문으로 장전1동과 부산대학교 캠퍼스와 경계를 이루는 곳입니다. 이곳 후문쪽은 대학가에서 당연히 있는 화려한 상가로 꾸며진 그런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취방과 원룸, 고시텔등 기거하는 곳으로 미리내마을로 불리고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무거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을 내려오는데 부산대학교 축대와 담벼락에 벽화그림이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벽화의 상태나 주변의 상황으로 보면 작업을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미완성 상태라할까요. 어떤 연유로 여기 이런곳에 벽화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많은 도시의 마을에서 벽화그림으로 지역과 연계를 하여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곳 장전1동의 미리내마을도 외관으로 보면 마을이 많이 침체하여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 마을의 분위기도 쇄신을 꾀하는 일환으로 벽화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닌지...사실 필자도 여러곳의 벽화 마을을 댕기고 그림을 보았습니다. 여수 전주 수원 대구 이광석거리등 수없이 벽화의그림을 많이 보았지만 부산대학교 후문의 벽화 그림은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무엇인가 이끌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곳의 벽화를 좀더 정리하고 보충을 하여  부산대학교 정문 앞의 화려한 상가 조명등과 연계를 하면 좋은 관광지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부산대학교의 특수성을 살린다면 타 지역에서도 많은 여행객들이 올것으로 생각되는데 벽화가 완성이 되어 좋은 벽화거리가 될 것을 바래 봅니다. 


◆부산대학교 벽화거리 구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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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밀양삼랑진여행)삼랑진 작원관, 임진왜란때의 항전지 작원관을 여행하다.

 

부산에서 한양으로 오르는 길을 영남대로라 부릅니다. 한양에 이르는 영남대로에는 두개의 관문이 있으니 밀양의 작원관과 문경의 유명한 주흘관으로 문경새재길을 말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밀양의 작원관으로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101번지에 낙동강을 끼고 양산과 밀양의 경계지점에 있습니다.

 

 

 

작원관의 역할은 관원의 숙소이며 출입자와 화물 등을 검문하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남해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고 작원진에서 낙동강을 통해 오르내리는 화물과 사람을 검문하던 곳입니다.

 



 

 

물금에서 낙동강을 끼고 굽이굽이 돌아 삼랑진에 내려서기 전에 안태마을에서 왼쪽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현재의 복원된 작원관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작원관은 현재의 자리보다 조금 더 양산쪽으로 내려가 있었다합니다.

 

 

 

 

밀양의 작원관에 대해 알아보면 밀양시가 3억원 이상을 들여 한남문과 누각인 공운루를 1년7개월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1995년 완공하였다합니다. 작원관 옆 산비탈의 양지 바른 곳에 임진왜란때 장렬히 산화한 호국영령의 위령탑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원동에서 삼랑진으로 신불암고개를 넘어가는 험준한 산세로 차량들도 숨이 차는지 갤 갤 그리며 힘들어 합니다. 그 당시에는 날짐승도 겨우 넘는다 할 정도로 바위도 많고 험한 곳으로 영남대로길은 낙동강을 따라 이곳 작원관지를 지나갑니다. 이 길을 험하다는 뜻인 작원잔도라 불렀습니다. 길이 너무 험하다 보니 한양으로 가던 관원들이 쉬어가던 원이 생기며 작원이라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때인 1592년 임진년 4월 왜인들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물밀듯이 영남대로를 따라 작원관으로 향했다합니다. 소서행장의 휘하 마쯔우리가 지휘하는 왜군은 작원관을 공격하였고 이에 우리 조선군은 수 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밀양부사였던 박진과 그의 부하 이대수, 김효우 그리고 민관이 힘을 합해 최후까지 분전을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300여명이 목숨을 잃고 패한 곳입니다.

 

 

 

 

지금도 묵묵히 낙동강이 흐르는 것 처럼 역사도 따라 흘러 갑니다. 400년전의 임진왜란이 요즘 일본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다시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후손에게는 그런 참담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작원관의  위령탑을 보며 마음을 새기는 계기가 되어서면 합니다. 자녀와 함께 봄에 이 길을 찾아가 보길 권합니다. 안태호와 천태호를 잇는 벚꽃길과 천태사등 너무 좋은 야외 나들이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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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낙동강 가야진사. 신라와 가야의 접경지 용당나루터와 용신설화가 전해오는 가야진사.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1300리를 달려와 부산 을숙도에서 남해 바다로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그런 낙동강은 황산강의 옛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아마 그 연유는 윗 지방에 홍수가 나면 이곳 하류에는 항상 누런 황톳물이 흘러내려 황산강으로 불린것은 아닌지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도 낙동강의 하류에는 황산이란 이름이 구전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물금에서 원동으로 이어지는 영남대로길을 황산잔도라 불려지며 물금장을 황산장으로 불렸던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낙동강은 신라와 가야의 접경 지역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크고 작은 충돌이 생겼고 황산강의 상류인 원동과 김해시 상동을 잇는 용당에는 용당나루터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라 눌지왕(재위 417~458)때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강을 건너고 왕래하던 나룻터가 있던 곳으로 일명 옥지주로 불렀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를 이어오기까지 낙동강을 건너는 뱃길의 안전과 강물의 범랑을 막기위해 제사를 지내왔던 곳으로 가야진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원동의 당곡마을 건너편 모래톱에는 1406년(태종6)에 지어진 가야진사의 사당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한강, 금강, 포항의 곡천강등과 함께 국가의 주요 4대강에 제사를 지냈덩 ‘사독’의 하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합니다. 나라에서는 매년 이곳에 향축과 칙사를 보내어 국가의식으로 매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합니다. 세월이 흘러 현재에도 그 전통은 이어져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홍수로부터 마을을 지켜줄 것을 기원하며 가뭄이 들 때에는 이곳에서 용신에게 비를 내려줄 것을 염원하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사당을 보면 정면 1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작은 건물입니다. 사당 안에는 제상과 함께 머리 셋 달린 용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용은 상상속의 동물로 물을 다스리는 신입니다. 천태산과 강 건너 용산을 잇는 지점으로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가야진사가 있다 합니다.

 

 

 

 

 

현재 가야진사가 있는 이곳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으로 대대적인 정비를 거쳤습니다. 주위를 모두 정비되고 발굴작업도 거쳐 현재는 공원화되어 자전거 길의 쉼터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경남여행/양산원동여행)낙동강 가야진사. 신라와 가야의 접경지 용당나루터와 조강지처를 버린 용의 전설이 궁금해요.

 

가야진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옵니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를 피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양주도독부의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길에 이곳 원동의 주막에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 날밤 꿈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자신은 요 앞 용소에 살고 있는 용이라 이야기하며 남편용이 첩만을 사랑 하고 자신은 멀리하니 그 첩용을 죽여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꼭 그 은혜를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용의 딱한 사정을 듣고 전령은 용소로 달려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용 두 마리가 밀월을 즐기는 것을 보고 첩용과 남편용임을 직감하고 전령은 단숨에 용을 한 마리 죽였습니다. 그러나 전령은 실수로 그만 첩룡이 아닌 남편용을 죽이게 된 것을 안 본처용은 죽은 남편용 앞에서 슬피울다가 전령에게 보답을 한다며 그를 태우고 강 속 용궁으로 사라졌다는 용신설화입니다.

 

 

 

 

 

그 이후 주변 마을에는 가뭄과 기근등 재앙이 끊이지 않아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짓고 용세마리와 전령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봄 가을에 돼지를 잡아 통째 용소에 던지는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가야진사에는 그 용신제의 전수를 위한 전수관도 함께 지어져 있습니다.

 

 

 

 

가야 진사 맞은편에 낮이 막한 둥근 산이 용산입니다. 보기에도 용이 강물 안으로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으로 최근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 이곳 용산 목을 가로지르며 부산대구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목이 끊어져 용의 기운이 다 빠졌다하여 마을에서 진정을 하여 끊어진 고속도로 위를 연결하는 공사를 실시하여 겨우 숨만 이어지도록 해놓았습니다. 용산 앞에는 물빛이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깊이를 모르는 웅덩이가 전설 속에 첩과 함께 밀월을 즐긴 용소입니다.

 

 

 

 

 

 

 

 

 

 

 

 

 

 

가야진사

 

 

사진상의 강이 낙동강입니다. 강건너편에 흰 건물이 있는 앞이 용소이며 오른쪽 작은 산이 용산입니다. 그 뒤로 현재 신대구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발굴당시 유적지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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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광교호수공원. 일산호수공원의 2배 크기인 광교호수공원이 국내 최대 크기.


수원여행을 1박2일 댕겨오면서 지난 5월1일 문을 연 광교 호수공원을 들러보았습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에서 시공을 한 광교 호수공원은 국제 설계공모 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합니다. 전체 면적이 62만평으로 크기부터 어마어마합니다. 지금까지 가장 크다는 일산 호소 공원보다도 2배 더 크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일요일 아침에 찾아간 광교 호수공원은 주변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 주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침 산책을 위해 많은 주민들이 호수공원을 걷는 모습이 외국의 전원 풍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두 호수는 지금은 가장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고 있다합니다. 현재의 수질이 유지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중에 하나가 기존의 호수에 유입되는 물을 막고 호수의 물을 모두 빼고 난 뒤 바닥을  끍어내어 오염원을 원천 차단을 하였다합니다.





그리고 물을 빼면서 각종 물고기는 또 다른 곳의 저수지에 넣으면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종은 모두 잡아 내었다합니다. 두 호수를 모두 정리를 한 상태에서   오염수는 처음부터 호수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수질 관리를 하고 있다합니다. 그만큼 수원 광교 호수 공원은 어려운 대공사였다합니다.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 보았습니다. 쭉쭉 뻗은 조경수가 아직은 제자리를 다 잡지 못했지만 봄이오면은 너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호수와 호수사이에는 작은 동산이 오작교인양 걸려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를 연결해주었던 까마귀처럼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를 아름답게 연결을 해주고 시민들에게 활성산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공간도 없을 것 같습니다. 






주위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공사당시 서식하고 있는 기존나무는 그대로 살리고 새로들어서는 시설물과 건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친환경적이고 친자연적인 건물 배치를 하였다합니다. 그래선지 관리사무실부터 광교호소공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특이한 건물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광교호수공원. 광교호수공원의 캠핑장과 인공암장이 인기.


이곳에 와서 들었는데 도심의 호수 공원에 오토 캠핑장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캠핑장에 캠핑카를 이용하여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내부의 시설을 볼 기회가 있어 캠핑카 안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 작은 공간에 없는게 없었습니다. 





캠핑을 즐기는 가족이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갖추어진 시설에 필자도 꼭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잠을 잘 수 있는 침대며 요리를 하는부엌 공간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탁하며 화장실 안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까지 그 작은 캠핑카안에 갖추어져 요리를 위한 음식 재료만 가지고오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토 캠핑장을 이용하여 휴식을 즐길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텐트를 치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어릴적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야외활동은 자라나는 아이에게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캠핑장을 보니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아빠 어디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텐트를 빼꼼히 보았습니다. 김치찌개 냄새가 코 끝을 지극하여 안을 들여다 보니 아빠와 함께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아빠와 함께 음식을 만드는 모습은 이곳에 나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입니다. 구수한 김치찌개와 함께 토닥토닥 도마에 칼을 치는 모습이 너무 듣기가 좋습니다.  텐트 앞에는"앗싸" "앗싸" 하며 엄마와 함께 딸이 배트민트를 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빠와 아들이 요리를 하고 엄마와 딸이 배트민트를 치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한참을 보았습니다.





또한 원천호수와 신대호수 사이에 있는 인공암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산책삼아 여유롭게 어슬렁어슬렁 걸어 갈 수 있습니다.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불리는 인공등반은 요즘 다이어트 운동으로 여성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은 운동입니다. 필자도 30년전부터 암벽등반을 하였고 그 뒤에 스포츠클라이밍도 하여 감회가 새로운 공간이였습니다.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광교호수공원. 광교호수공원에 설치된 국제 규격의  인공암장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겨보세요.


이곳 광교호수공원에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인공암장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속도경기를 하는 암장과 고난도의 기술과 완력을 요하는 인공암장등 국제규격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앞으로 국제스포츠클라이밍 대회도 열릴 것 같습니다. 필자도 옛 생각이 나 등산화로 홀드를 밟고 손으로 큰 홀드를 잡아보면서 몸을 움직여 보았습니다만 ㅎㅎ 몸이  예전 같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곳 광교호수공원에가면 다양하게 운동도 하고 걷기도하며 자연에 동화되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내 도심에 있는 광교호수공원은 수원시민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혹 기회가 되면 캠핑장에서 텐트를 쳐 놓고 가족과 함께 호수도 걸어보면서 오랜만에 집에 있는 암벽장비를 챙겨 이곳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할 날을 꿈꾸어 봅니다. 수원광교호수공원을 걸으면서 나의 생각입니다.


 







































































★가족갬핑장 예약 광교호수공원 홈페이https://www.camping.webshow.co.kr/


ㅡ이하 광교호수공원 가족 캠핑장 홈페이지 발췌 내용ㅡ

◆수원광교호수공원 가족 캠핑장 배치도◆



◆수원광교호수공원 가족 캠핑장 시설안내◆






◆수원광교호수공원 가족 캠핑장 시설 사용료◆



◆수원광교호수공원 가족 캠핑장 위치와 연락처,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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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김정한의 수라도 무대였던 소설속의 미륵당이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을 보다.

 

양산시 물금읍의 물금역을 나오면 물금취수장을 따라가는 길이 나옵니다. 이 길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3곳의 영남대로 중 한곳으로 부산을 거쳐 양산에서 낙동강을 따라 올라가는 중도의 영남대로입니다. 이 초입에 용화사의 작은 절집이 있습니다. 또한 한양으로 가는 영남대로상에는 위험한 길로 알려진 곳이 세 곳입니다. 황산잔도와 작원잔도 그리고 토끼벼루로 세 곳 중 두 곳이 이곳 물금과 원동 그리고 삼랑진을 잇는 낙동강 길에 있습니다.

 


 

 

 

낙동강을 예전에는 황산강이라 불렀습니다. 그 이름을 따온 황산잔도는 험하기로 익히 알려져 한양으로 올라가는 선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황산잔도의 초입에 있는 용화사는 절의 사세에 비해 보물인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 연유를 보면 부산의 문인이었던 요한 김정한의 중편소설 ‘수라도’에 잘 나와 있습니다. 수라도의 배경은 이곳 화제리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수라도의 내용 속에는 미륵당이 등장합니다.

 

 

 

 

☞(경남여행/양산여행)가야부인이 창건한 미륵당이 용화사, 수라도 무대였던  미륵당 석조여래좌상을 만나다.

가야부인이 시아버지 허진사의 제사장을 보고 오다 이곳 골짜기에 반쯤 묻혀 있는 미륵불을 발견합니다. 가야 부인은 그곳에 절을 세우기로 작정을 하지만 조선시대 사대부의 유교 관습에 의해 집안의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사위가 가야부인의 뜻을 알고 절을 짓는데 그곳이 지금의 용화사로 소설속의 미륵당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지 미륵당에 얽힌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안내판에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낙동강 건너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지에 있던 불상이라 합니다.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이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옮겨 오다가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낙동강변에 버렸다는 전설입니다. 소설속에는 가야부인이 그것을 발견하게 되어 미륵당을 짓게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지금 용화사에는 용왕대재의 행사를 봄이면 한다고 합니다. 낙동강의 강물에서 건져 올렸다하여 용왕대재를 지낸고 있습니다.

 


 


 

 

 

용화사는 사실 미륵으로 불리는 석조여래좌상을 빼면 너무 초라한 절집입니다. 그럼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문화재 안내문을 보면 보물 제491호이며 소재지는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입니다.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항마촉지인여래상으로 양산에서는 유일하다고 합니다. 광배는 파손된 상태였고 불상은 낙동강의 뻘밭에서 건져 올렸는지 백색의 호분이 범벅되어 원형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용화사의 석조여래좌상은 광배와 대좌가 완벽한 모습으로 갖추어진 상태입니다. 이는 복원과정을 거쳐 현재의 완벽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대좌도 대좌지만 대좌 뒤의 광배가 화려하며 조각수법이 매우 우수하다합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상과 구름을 세겨 본존상이 구름위에 떠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의 광배에도 나타난다합니다. 광배의 뒷면에는 하늘에서 하강하는 천인상 2구가 음각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광배 뒷면에 공양천인상이 세겨진 것은 용화사 석조여래좌상 뿐이라합니다. 그만큼 아름다운 광배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무뚝뚝해 보이는 석조여래좌상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용화사에서는 낙동강이 보이지 않습니다. 강가 옆이면서도 낙동강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가보면 용화사 앞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경부선 선로가 놓여져 있어 항상 덜커덕 거리는 열차의 소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낙동강을 볼 수 있는 굴다리가 뚫여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수탈의 목적으로 놓여진 경부선은 처음에는 단선으로 놓였습니다. 단선일때 붉은 벽돌을 돌려 놓은 동굴의 내부에 사각의 돌을 깍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모습이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굴안에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복선이 되어 확장을 했던 굴다리의 모습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4대강 사업으로 자전거 길이 연결되어 시원하게 황산잔도를 볼 수 있어 여행삼아 가면 너무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을 둘러 보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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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여행/달성여행)비슬산은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다는 뜻, 비슬산 대견사 새롭게 달성의 관광 명소가 될 듯. 


 달성군의 진산인 비슬산은 봄의 산으로 많은 상춘객이 진달래를 쫒아 산상의 화원을 찾는다. 비슬산 정상인 대견봉을 지나 월광봉을 거쳐 만나는 곳이 대견사지터다. 이곳 대견사지는 비슬산의 1,000m 능선에 위치를 하고 있어 인근에 이 정도의 높이에 절터를 간직한 곳이 드물 것 같다. 해발 1035m봉 아래 자리 잡은 대견사지는 삼층석탑과 마애불, 우물터가 남아 있다.



 

 

 ☞(대구여행/달성여행)드라마 추노 촬영지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듯. 


대견이란 뜻을 직역하면 “크게 본다”는 뜻으로 이곳 비슬산 대견사는 이름과 어울리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비슬산은 산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다는 뜻의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자를 쓰고있다. 비슬산의 산세가 신선이 거문고를 탈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산세가 얼마나 빼어난 모습이었을까.  그런 비슬산의 아름다움이 중국 당나라까지 소문이 난 것일까. 



 


  ☞(대구여행/달성여행)대국에서 보았다는 대견사지 중창 불사, 비슬산 대견사 새롭게 달성의 관광 명소가 될 듯. 


중국 당나라 황제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려고 대야에 물을 담았는데 잠시 뒤 대야 안의 물을 쳐다보고 물안에 비치는 빼어난 산세에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아름다운 산세와 옹립한 천길 바위 위에 지어진 사찰을 보고 황제는 신하에게 이르기를 중국의 구석구석을 다 뒤져 세숫대야안에서 본 그 사찰을 찾아 오라고 어명을 내린다. 신하는 중국의 구석구석을 다 뒤지지만 찾을 수 없어 급기야 신라에 까지 사람을 보내어 찾게하니 그 신하가 신라 땅을 샅샅히 뒤져 비슬산에 올라 이곳을 발견하고 이곳의 지형과 산세를 그려가 황제에게 보여주니 세숫대야에서 본 모습과 똑 같아 황제가 그곳에 절을 짓게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중국 당의 황제가 보았다는 뜻인 “대국에서 보았다”하여 대견사로 이름 지어 졌다.  대견사는 창건에 관한 뚜렷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9세기 신라 헌덕왕때 지어졌다고 전할분 정확한 연대등 모든 것이 알 수 없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임진왜란 이루로 이곳 대견사에 빈대가 들끓어 빈대를 견디다 못해 자연적으로 폐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1900년도에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여 이재인이란 분이 대견사를 중건하였지만 1908년에 어떤이유인지 알수 없지만 페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다가 초가 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생각이 난다.





 

 

현재 대견사지에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에서 이곳 비슬산 대견사를 창건에 가까운 중창 공사를 진행중이다. 그리고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불교문화관에 임시로 모셔둔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곳으로 모신다고 하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대견사의 모습에 기대가 엄청 크다.


 

 

 

2002년 대견사에 문화재 발굴 공사가 진행 되었다. 발굴에서 추정건물지 6동, 초석, 암.수막세편이 확인되었고 암막새에 대견사의 명문이 확인되어 구전으로 전해오던 대견사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편에 만력39년(1611년), 숭정6년(1633년)등의 연호가 출토되어 그 당시까지 사찰이 남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대견사의 기록이 남아 있다. “대견사의 장육관음석상이 땀을 흘렸다"며 조정에 1416년과 1423년에 보고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견사를 떠 받쳤던 거대한 석축은 개창 당시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그 길이가 37.5m, 높이 6.56m이다. 축조방법은 막돌을 그대로 쌓은 허튼층 쌓기 수법을 사용하였다. 이곳에서 인기 드라마 추노가 촬영되었다한다.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톱바위와 비슬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애추는 풍화된 암석조각들이 급사면으로 떨어져 내려가 절벽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각진돌의 집단으로 흔히 칼바위를 말한다. 비슬산의 톱바위가 애추.



 

 

 

 

 

 

 

 

 

 

 

 

 

 

 

 

 

 


 ☞(대구여행/달성여행)드라마 추노 촬영지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 대견사지 마애불


대견사지 마애불은 대견사 터 암굴의 남쪽 입구 오른쪽 바위에 음각되어 있다. 하부에는 연꽃대좌를 새겨 놓고 대좌의 상면으로 아래가 넓은 5개의 원형을 중복되게 새겨 놓고 원형의 아래로는 고사리 문양을 대칭되게 새겨놓아 화염문에 휩싸인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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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여행/달성여행)드라마 추노 촬영지 비슬산 대견사지 중창 불사, 대견사지 삼층석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2호

대견사지 삼층석탑은 창건당시에는 9층탑(6층탑)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곳의 탑은 경주 남산 용장사의 삼층석탑과 비슷하게 암반을 기단석으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절벽의 바위를 바닥돌로하고 그 위에 2층 기단의 3층탑을 세워 올렸다. 하층 기단에도 양쪽 모서리 부분과 가운데 기둥무늬를 돋을 새김했고 윗층 기둥돌과 몸돌의 양쪽 모서리에만 기둥무늬를 돋을 새김했을뿐 꾸밈없이 단순하며 소박하다. 지붕돌에는 4단의 지붕돌 받침과 2단의 괴임을 조각하였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사찰의 창건연대와 같이 보고 있다. 1988년도에 높이 3.67m의 삼층탑으로 복원을 한 상태다.   

 

 

 

 

 

 

 

 

 

 

 

 

 

 

 

 

 

 

거북바위,

 

 

토르는 화강암의 기반이 지하에서 심층풍화로 인하여 부서진 세립물질이 제거되고 남은 화강암체를 말한다. 거북바위, 코끼리바위등을 말한다.



 

 

 

 

 

 

코끼리바위

 

 

 

 

 

 

 

 

 

 

 




 ☞(대구여행/달성여행)달성 비슬산 암괴류와 함께 비슬산 대견사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듯. 

천연기념물 제435호

암괴류란 큰 자갈내지 바위크기의 암석덩어리들이 산사면의 골짜리를 타고 집단적으로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한다. 비슬산 암괴류는 약 1만년전~10만년전인 빙하기 후대에 형성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길이가 2km, 최대 폭이 80m, 두께 5m의 암괴로 그 규모가 대단히 큰 것으로 화강암지형에서는 보기가 힘들고 가치가 매우 높은 지형이다. 국내 암괴류중 가장 규모가 크다.

 

 ◆중창 불사 이전의 대견사지 보관사진 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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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맛집/공주맛집)공주 케이프타운, 데이트 장소로 좋은 금강천변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케이프 타운 추천이요.

 

부산 사람이 왠 공주 케이프타운 ㅎㅎ

 공주 여행을 1박2일 구경도 하고 맛집도 찾아보고 할까하며 댕겨왔습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황새바위 성지를 보기 위해 입구에 주차를 하고 올라 가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려 할 수 없이 포기를 하고 차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하늘은 언제 비가 왔지하며 그쳐 다시 공산성을 가기로 했습니다.

 

 

 

공산성 입구에 주차를 하고 출발을 하는데 또 다시 그쳤던 비가 내려 다시 포기를 하며 차를 타고 이동 하는데 하늘은 맑아지는게 아닌가. 이날은 하루 종일 차만타면 비가 그치고 차에서 내리면 비가 와 엄청 열받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는데 공주의 지인이 금강천변옆에 커피나 한잔하자며 안내를 하였습니다.

 

 

 



 

점심은 먹었고 하여 찾아간 신관리 '케이프타운'은 바로 금강을 끼고 있어 공주시에서는 유명한 맛집으로 통한다합니다. 그리고 젊은이의 맞선 장소와 연인의 식사 장소로도 꽤 소문이 나 있다는데 도착을 해보니 케이프 타운은 조용하였습니다.

 

 

 

풍차가 돌아가는 입구의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뒤 건물인 '예가'와는 같은 부부가 운영한다고 하는군요.

 

 

 

골고루 주문을 하였습니다.

라떼, 카푸치노, 아이스크림등 일행이 주문한 차를 모두 사진에 담았습니다.

 

 

 

비오는날은 은은한게 금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수 있고

간혹 물새들이 나는 풍경도 볼수 있어 너무 좋은 곳입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강추에요.

 

 

 ㅎㅎ 너무 아쉬운점은 공주맛집에 선정된

스테이크를 못 먹고 온게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공주 여행 때는 꼭 한번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금강의 모습이 너무 운치 있고 좋아요.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121-2

전화:041-857-8757

메뉴: 안심스테이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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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제일교회.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 궁금하지 않나? 수원제일교회


수원화성의 노장대에서 바라보면 멀리 선명하게 보이는 건물이 있다. 동화책에나나오는 유럽풍의 교회건물로 중세기에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가 종탑의 끝을 한바퀴 돌면서 살푼히 내려서는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건물 같다. 멀리서 봐도 건물이  멋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건물이 있구나 생각을 하며 일행과 함께 지동마을의 벽화를 보러가자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지동마을에 가니 노장대에서 본 그 교회가 언덕바지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밑에서 보는 교회는 더욱 엄청나 목을 뒤로 가누어도 꼭데기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총 13층의 건물로 교회가 언덕에 있어 주위의 낮은 건물에 의해 더욱 높아 보였다. 수원제일교회로 이곳의 13층에 옥외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는게 아닌가. 요즘 그야말로 수원관광지에서 팔달산으로 넘어가는 노을빛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 수 있다하여 '노을빛 전망대'로 불려지고 있다. 그 덕택으로 이곳은 지동벽화마을의 출발점이기도 하여 카메라를 든 많은 분들이 팔달산의 노을과 지동마을의 벽화를 보기 위해 찾고 있다. 


 




먼저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2013년 9월6일 골목 르네상스사업의 하나로 이곳 수원제일교회 노을빛전망대도 관광의 활성화 차원에서 개방을 하게 되었다. 문화재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수원화성이 지정되어 있어 지동마을은 개발이 제한될수 밖에 없다. 그런 침체된 마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민관과 종교계가 노력을 하여 얻어낸 결과물이라 찾아가는 우리도 마음이 즐겁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로 7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 이후 8,9,10층은 작은 미술관이 꾸며져 있으며 오르는 계단길은 나선형으로 나 있어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마침 우리가 찾아간 날은 그때까지 잘 오르내리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나 오롯이 13층을 걸어 올라가야했다. 





8층 전시관은 유순혜작가의 '화성축성도'가 원통형에 그려져 있다. 1,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화성의 성벽을 쌓는 모습으로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하니 대단한 작품이 아닐수 없다. 주위로 조각 예술품의 전시와 수원화성과 제일교회가 함께한 그림들을 감상하고 나면 마지막 3층 계단은 한사람이 겨우 오를수 있는 철판을 밟고 올라야한다.





창밖에 보이는 첨탑  뒤로 수원 화성의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느낌이다. 좁은 문을 빠져 나오니 갑자기 찬바람이 쌩하고 불어 제낀다. 주위로 높은 건물이 없는 그야말로 홀로 우뚝 솟아 있어 그런지 360도의 조망이 끝내준다. 아까 본 수원화성과 팔달산이 발아래 보이고 멀리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이 추운날씨때문에 파르르 떨고 있다. 단 안전을 위함인지 투명판을 돌려 놓아 사진을 찍기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철 이곳을 찾을때는 꼭 두꺼운 외투를 챙겨가는게 좋을 것 같다. 전망대에서 찍은 수원시가지와 화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와 보았다. 혹 수원 지동벽화마을 방문시에는 꼭 수원제일교회 노을빛전망대도 올라 볼 것을 추천한다. 교회 관계자분들도 너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어 찾아가는 우리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습니다.






























































◆수원제일교회 찾아오는 길◆

수원제일교회 홈페이지 캡쳐



◆수원제일교회  교통편◆

수원제일교회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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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추갑으로 유명한 계룡산 갑사 보고 왔습니다.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동학사와 갑사가 있다. 서로 용의 등짝인 계룡산 성곽 능선을 등지고 서 있다 보니 계룡산을  이야기 할 때 동학사와 갑사는 빠지지 않는다. 동학사는 도회지의 분바른 빤질빤질한 여인의 모습처럼 드러난 사찰이라면 갑사는 머리위에 수건을 두른 밭일을 하는 시골 아낙네의 수더분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 그만큼 동학사보다는 갑사에 정감이 더 간다. 그리고 계룡산 갑사는 춘마추갑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다닌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주변에 이른 봄꽃이 피어나면 봄이 왔다는 소식이다. 마곡사는 단연 벚꽃이 유명하다. 후두둑 후두둑 비바람에 떨어지는 질정 없는 꽃비가 너무 좋은 춘마의 마곡사라면, 핏빛의 붉은 단풍물이 뚝뚝 떨어지며 갑사를 휘감아 돌아 한바탕 ‘불난집의 호떡’을 보는 것 처럼 붉은 단풍을 따라 관광객이 몰려드는 계룡면의 가을 갑사를 호사가 들은 추갑이라 한다. 그만큼 갑사의 단풍은 붉은 빛을 토해낸다. 답사 당일은 마지막 단풍으로 절정을 이루었는데 이제 나뭇가지에는 휑하니 찬바람만 들고 땅 바닥으로 떨어진 단풍잎은 바람이 쓸면 쓰는 대로 흔들려 몸을 맡기며 낙엽은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



 


계룡산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중에 서악이었고 고려시대로 넘어와서도 묘향산이 상악, 지리산이 하악으로 계룡산은 3악 중 중악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갑사의 창건은 신라최초의 사찰인 선산의 도리사를 창건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다. 그가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날 때 이곳에 상서로운 빛이 감돈 것을 보고 찾아가니 천진보탑이 있었다. 그때가 420년으로 아도화상은 이곳에 갑사를 창건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때는 의상대사가 주석하여 ‘화엄대학지소’를 창건하여 화엄도량의 법맥을 이어 화엄10대 사찰의 하나가 된다. 그와 함께 나라의 으뜸 사찰이 되며 임진왜란때에는 영규대사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승병을 일으킨 곳이 이곳 갑사이다. 그는 왜적과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를 하였다. 이곳 갑사에는 표충원을 세우고 휴정, 유정,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며 받들고 있다.







추갑의 갑사는 주차장을 지나 일주문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 장정이 손을 뻗어 서로 잡을 수 없는 엄청 큰 둘레의 참나무가 노란잎을 드리우고 홍엽의 단풍으로 물든 갑사를 오르는 순례길은 갑사 구곡과 함께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오르는 재미 또한 가을 갑사를 찾는 솔솔한 재미이다. 그것도 잠시 지금 쯤 계룡산은 울퉁불퉁한 계룡의 근육에 하얀 눈꽃이 피어나고 잠자던 계룡은 하얀  서릿발을 세우며 몸을 곧추세우듯 바람을 일으켜 눈가루를 날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와 반대로 겨울의 갑사는 하얀눈을 뒤집어 쓰며 자꾸만 자꾸만 그의 존재를 숨긴다.그런 겨울의 갑사는 그만큼 한적하니 좋은 여행지이다.
























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는 보물 제16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가여래의 후불탱화로서의 영산회상도와 아미타여래의 후불탱화로서의 아미타회상도 2폭이며 화사인 의겸이 1730년에 제작한 불화이다.











석조약사여래입상








































갑사사적비







부도탑































철당간지주


 

☞(충남여행/공주여행)계룡산 갑사, 흔하지 않는 통일신라시대 철당간이 갑사에 있어요.


갑사에 가면 철로 된 당간 지주가 인상적이다. 보물제 260호. 당간이란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입구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 두었던 곳을 말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잡아주는 두 돌기둥은 당간지주이다. 흔히 사찰의 대웅전 좌우로 똑 같은 모양의 돌기둥을 볼 수 있다. 갑사의 당간를 보면 네 면에 구름무늬의 운상을 새긴 기단위에 철 당간을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가 잡아주고 있다. 갑사의 철당간은  월래50cm인 원통의 철통 28개가 연결되었다 한다. 1899년인 고종35년에 벼락을 맞아 4개가 부러져 현재는 24개가 갑사를 지키고 있다. 갑사의 당간은 통일신라 때인 문무왕 20년(680)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간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로 보고 있다. 현재 갑사의 대웅전은 창건때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것이 당간지주를 보면 알 수 있다.














◆계룡산 갑사 전각 배치도◆


(갑사 홈페이지 캡쳐)


◆계룡산 갑사 교통편◆

서울방면에서 오실 경우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정안 IC → 23번국도 → 갑사방면 진입 → 계룡면사무소 → 계룡저수지 → 갑사

 

부산방면에서 오실 경우

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유성 IC → 32번국도 → 박정자 삼거리 → 마티터널 → 과학고등학교 지나 우측진입 → 청벽교차로 다리 아래

통과 → 갑사방면 진입 → 갑사

 

광주, 호남방면에서 오실 경우

호남고속도로 → 논산 IC → 논산시내 → 23번국도 공주방향 → 갑사방면 진입 → 계룡저수지 → 갑사

 

 고속버스 : 서울(남부터미널, 반포.강남터미널, 동서울터미널) ↔공주(신.구터미널), 1시간 50분

 시내버스 : 공주 ↔ 갑사

 ★대전, 공주, 버스시간표 




 

전화번호 : 공주종합버스터미널 : ☎ 041) 855-8114

                공주관광안내소 : ☎ 041) 856-7700

 

 

• 공주에서 갑사까지 시내버스 운행, 30분 소요

• 공주에서 갑사까지 택시로 20분 소요

• 대전 - 버스 : 유성(충남대 앞)에서 갑사까지 340번 버스, 50분 소요

• 대전 - 지하철 : 유성온천역에 하차 6번출구로 나오면 10m앞 정거장(340번 버스),(갑사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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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대구 경북 최초 개신교 제일교회에 깜짝놀래다.


청라언덕의 대구제일교회는 대구 경북 최초의 개신교회라 합니다. 1893년 부산에 있던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대구로 와 약령시장에 처음으로 선교 활동을 한 것이 제일교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베어드 목사는 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그 당시 예배당으로 사용함에 이게 대구경북 최초의 기독교교회인 남성정교회가 되었습니다.

남성정교회와 함께 대구 최초의 의학병원인 동산의료원의 전신인 제중원도 함께 들어와 양 의술을 소개하였습니다. 현재 제일교회 선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933년에 교회 건물로 완공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교회명칭도 제일교회로 바뀌었다합니다.

이 선교관은 그 당시 내부와는 약간의 변형이 있으나 외관은 건축당시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현존하는 건물 중 적벽 돌을 이용한 고딕건축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하여 대구시에는 유형문화재 제30호 지정을 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1

937년 벽돌 조 5층 높이 종탑을 세움으로 현재의 골격을 갖추게 되며 지금은 제일교회 선교관으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관인 이곳은 조선시대 경상감영 때에는 옥사가 있었던 자리로 전하며 교회를 지을 때 1907년 헐렸던 대구읍성의 석축 일부를 주춧돌로 사용을 하였다합니다.

 

 








☞(대구여행/중구여행)근대문화골목 대구제일교회, 근대문화골목 투어에서 최고 볼거리는 청라언덕의 제일교회와 선교사 사택.


현재의 동산에는 새로운 제일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영남신학교의 터를 구입하여 1989년 10월에 교회건물을 착공하여 1994년 4월에 준공을 하였습니다. 2002년에 57m의 종탑을 완공하여 5만여평의 부지위에 대구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두 개의 종탑이 자 뭇 웅장합니다.

본 교회는 지하2층 지상 5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2,160평에 좌석수만 3,100석이라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 18면과 용담석의 화강석이 외벽으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화려한 외관에다 웅장하며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건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필자도 청라언덕에 올라 제일교회를 바라보며 규모와 예술성에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동산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대구에 가장 많은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 즐비한곳으로 아름다운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스윗즈 주택보다도 더 눈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이 이곳 제일교회입니다.

앞으로 대구 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에서도 한자리를 꿰어 차고 있습니다. 대구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꼭 대구 동산의 제일교회와 주위의 선교사 건물들을 둘러 볼것을 권합니다. 신 건축물과 구 건축물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여행지입니다.











































 

 




1933년에 완공된 제일교회의 모습. 대구 경북 최초의 개신교회였고 현재는 제일교회선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유형문화제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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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 구석구석,  화성열차 요금안내와 시간표를 알아보세요.


수원시에는 3성이 있다. 화성, 삼성, 박지성으로 수원을 대표하며 자랑으로 여긴다. 그중 수원시 전체를 아우르는 수원화성은 수원을 이야기 할때 빼놓을수 없는 문화의 자긍심이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에 의해 축성이 되었다. 그리고 당쟁에 의한 당파싸움을 없에고 정조의 강력한 왕도정치의 강화를 위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수원화성은 정조의 정치구상의 중심지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을 지키지 위한 요새의 버팀목이었다.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만 2년만인 1796년 완공된 수원화성은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활차, 녹로등 성을 축성하기 위해 많은 신기재를 발명하여 사용을 하였다. 18세기 과학과  건축 그리고 예술성을 옅볼수 있는 우리나라 성곽건축의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는 수원화성.


 



그러나 관광을 와서 수원화성을 전체적으로 보기는 힘들다. 화성의 길이가 5.7km로 팔달산을 따라  따라 이어지다 보니 관광객은 걷기가 힘이 든다. 그러나 수원화성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수원화성의 성곽을 편안하게 열차를 이용하여 둘러 볼 수 있는 화성열차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용을 형상한 수원화성 열차는 연무대 또는 팔달산에서 출발을 한다. 운행 코스를 보면 연무대~화홍문~장안문~장안공원~화서문~팔달산의 성신사 앞까지로 전체 운행거리가 3.2km나 된다. 화성열차를 타고 수원화성을 일주하고 왕복하는데만 60분이 소요된다. 수원화성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둘러 볼수 있는 화성열차는 자신이 중점적으로 보고 싶은 곳은 중간에 내릴수가 있도록 되어 있다. 





화성열차는 관광객이 탑성할 수 있는 탑승차량은 3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은 임금 정조를 상징하고 힘찬 구동력을 위해 용머리를 형상하였다. 객차는 임금의 권위를 나타내며 임금이 타던 가마를 형상화하여 화성열차를 이용하면 바로 임금이 되어 가마에 타는 것과 같다. 필자도 편안하게 화성열차를 이용하여 팔달산의서노대를 올라 화성 행궁과 수원시를 편안하게 구경하였다.

 



◆화성열차 운행안내◆



화성열차 수원화성 홈페이지 캡쳐



◆수원화성 관람안내와 요금◆




화성열차를 이용하며 보았던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모습



◆화성열차 운행요금표◆




화성의 4대문중 북수문인 화홍문



◆화성열차 팔달산~연무대 운행시간표◆






◆화성열차 연무대~팔달산 운행시간표◆




화홍문의 모습













장안공원을 지나고 있다.










화성열차는 팔달산의 성신사에 도착한다.



◆화성열차 운행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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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병들고 아픈 국민들을 어루만져줄 것 같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나다.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 아래에는 봉황이 알을 품는 명당터가 있어 그곳에 절을 세우니 동화사가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 중생들의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도량으로 1990년  통일약사여래대불을 착공하여 2년만인 1992년 11월27일 완공하여 점안 봉안 법회를 열었다. 15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 통일약사여래대불은 높이만 17m이고 좌대 높이는 13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불상이다. 대불 아래에서 불상을 바라본다면 목을 뒤로 90도 꺾어야 불두까지 바라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불상이며 동화사에서 반드시 보고와야 할 명소로 자라 잡았다. 약사여래불의 최대 둘레는 16.5m이며 높이는 30m의 초 대형 국내 최대의 입불상이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전북 익산의 황동석으로  만든 국내 최대 입불상인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팔공산 동화사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을 만들기 위해서 전라북도 익산군의 황동석 원석을 300km나 옮겨왔다. 총5,000톤의 원석은 불상이 2,000톤이며 좌대원석은 3천톤으로 만들어 졌다. 2,000톤의 석조대불 원석은 8등분되어 300톤의 원석으로 나누어져 약사여래대불이 되었다. 그 이외 부속시설인 석탑2기, 석등2기, 지하석실등을 갖추어 모두 10,000톤의 화강암이 들어 갔다. 현재 약사여래대불은 웅장암과 예술성을 모두 갖추어 팔공산 동화사의 중심적인 위치를 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말에 대구 여행을 준비하며 대구 근대문화골목길 투어와 이곳 동화사를 찾았다. 또한 동화사는 팔공산을 찾는 입구에 있어 팔공산 산행시에 심심찮게 방문을 하던곳이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곳이 통일약사여래대불이며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지신의 모습을 보게된다. 그만큼  동화사의 약사여래대불은 병들고 아픈 전국민의 상처를 꼭 어루만져 낳게 해줄 것 같다.

 

 

 

 

(대구여행/팔공산 동화사)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불교문화관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현재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의 불교문화관 지하에는 스리랑카 쿠르쿠데 사찰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비슬산의 대견사 중창 복원 불사가 완료되면 그곳 금강계단에 모셔진다고 한다. 현재는 오전10시 30분부터 오후4시까지 동화사 불교문화관에서 진신사리를 친견 할 수 있다.(매주 월요일은 불교 문화관만 휴관)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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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여행/수원여행)없는게 없다는 수원전통시장 못골시장 투어, 수원에서 이색여행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먼저 찾아가는 곳이 있다. 여행지의 문화와 그곳 주민의 삶의 행복지수를  알고 싶다면 종종 찾아 가는곳이 전통시장이다. 이번 1박2일 여행에서 수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 못골시장을 댕겨왔다. 못골은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있어 먼저 친근감이 갔다. 못골의 어원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웃스게 소리로 보통 못을 파는 시장이라 많이 생각을 한다. 부산의 못골은 옛날에 큰 못이 있었다하여 그리 불리며 이곳의 못골도 부산과 비슷하게 생각되어 물어 보니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지만 옛날 이일대가 미나리꽝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주위에 큰 못이 있었던 곳으로 짐작이 된다. 

 

 

 

☞(경기도여행/수원여행)수원 화성 여행도 즐기고 먹거리가 가득한 수원전통시장 못골시장 투어, 수원에서 이색여행


전국적으로 전통시장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원의 못골시장에서는 많은 시민들로 그야말로 발디딜틈 없이 사람으로 밀려 다닐판으로 그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전통시장에서 보는 풍경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시장에서는 먹는 군것질이 최고가 아닐까싶다.

 

 

 

 

 

 

 

호떡이며 딹강정이며 찐빵이며 먹는 것만 눈에 들어오니 그것만 사진이 찍어진다. 50대에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어서 그런가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시장입구에는 기름없는 호떡을 굽고 있다. 일반 호떡은 기름이나 버터에 튀겨 낼 정도지만 이곳은 팬에 기름한방울 구경하기 힘들다. 못골시장의 명물 울금호떡에 군침이 흐른다. 노릇노릇 구워진 호떡을 보니 달콤하니 설탕물이 흘러 내릴것만 같이 맛있어 보인다.

 

 

 

울금호떡 옆에는 전통시장의 백미인 튀김과 떡볶이가 기다린다. 필자의 유년시절  장날가는 길은 요즘처럼 이런 길이 아니었다 새벽잠을  깨고 일어나 걸어걸어 또 걷고 엄마 등에 업혀가며 파김치가 되어 장터에 도착을 하면 겨우 맛볼 수 있는 '아이스 께끼' 에 피곤도 잊어버린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아이스케끼보다는 못하지만 전통시장의 인기품목은 튀김과 떡볶이가 아닐까. 바싹바싹 튀겨진 튀김이 입안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쓉히는 그 맛, 아 그 때의 얼음과자가 생각난다. 

 

 

 

 

전통시장인 못골시장 인근에는 지동시장, 미나리꽝시장, 팔달로 시장등 인근에 8~9개의 상설시장이붙어 있어 그야말로 없는것 없이 모든곳이 준비되어 있는것 같다. 특히 못골시장은 먹거리 식품인 떡, 약재류와 농축수산품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 이쪽으로 눈을 돌려도 떡집이요, 저쪽으로 눈을 돌리니 정육점일 정도로 우리 생활에 밀접한 식품들만 판매를 하고 있다.

 

 

 

 

 물거리가 싱싱한 생선하며 조개류가 손님을 기다리는 어물전하며, 오늘 저녁 밑반찬으로 손색이 없는 반찬가게의 아주머니 손길이 무척 바쁘다. 이곳 반찬가게를 보니 없는반찬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되어 자취생도 반찬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아빠의 술안주로 최고인 족발이 노릇노릇 삶아져 손님을 기다린다. 어느 애주가의 술상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족발을 보는 것도 전통시장의 멋이 아닐까. 

 

  

 

 전통시장에서는 꼭 빠지지 않는 곳이 떡집이다. 요즘 떡집은 체인화 되어 있어 그맛이 그맛으로 서로 똑 같다. 이곳 못골시장의 떡집은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어 믿을 수 있고 더욱 맛이 있다. 요즘은 보기가 힘든 떡기계를 이곳 못골시장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못골시장 중간쯤에 만난 닭강정 아가씨(?), 미스못골 출신의 ????미모

ㅎㅎ 이곳의 닭강정이 더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시장 돌다 배고프지 않나요,전통시장에서는 출출한 시간에 팥죽이 최고죠, 얼렁 팥죽 한그릇으로 요기하고 가세요.

 

 

 

 

 

떡집이네요. 무지무지 떡종류도 다양하네요. 무지개 송편, 시루떡, 떡국, 인절미등 다양한 떡을 맛볼수 있어요. 아 그리고 행사용 주문떡도 물론 맞출수 있어요.

 

 

 



 

 

해장국, 육개장, 선지국등 다양한 국도 팔아요. 아침에 출근하는 속을 더욱 편하게할 것 같습니다. 


 

 

김치가 먹음직스럽습니다. 초보 주부도 김치 걱정을 들게하는 다양힌 김치를 이곳 못골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판매를 하고 있다. 기름에 튀겨 나오는 따뜻한 어묵이 간식으로도 최고죠.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어 그만큼 위생을 생각하며 만들것 같다. 맛있는 어묵이 있는 못골시장.



 

 

 

 어른 주먹만한 옛날 찐빵 먹고 가세요. 하나만 먹어도 배가 일어나요, 출출할때 생각나는 찐빵 팥도 너무 많이 들어 있어 더욱 맛있다.



 

 

 


사장님이 김을 굽고 있어요. 직접 구워 판매를 하니 더욱 고소하고 바싹하며 맛이 좋아 아이의 도시락 반찬에도 최고다.




 

 

밥도둑이라 불리는 꽃게장도 있어요. 간장게장으로 잃었던 입맛도 돌아오게 해보세요.


 

 

 

 

 

 

 빈대떡할머니 큼지막한 빈대떡이 노릇노릇하니 너무 많있어 보인다.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서민에게는 최고죠. 



 

 

 

 

 

 

못골시장에는 라디오스타 DJ도 있다.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에서 휴식도하며 다리품도 쉬어보자. 



 

 

 

 

 

 

 

수원시의 전통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품들을 취급하고 있다. 수원여행에서 꼭 전통시장도 찾아서 둘러보고 맛있는 울금호떡 맛도보며 라디오스타에서 커피도 즐기며 맛있는 시장투어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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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


지난 주말에 1박2일 수원 여행을 갔다왔다. 수원을 찾아가면 화성을 빼놓을 수 없다. 낮에도 멋이 있지만 수원화성의 야경이 넘 좋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하도 많이 들어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찾아가 보았다. 화성의 4대문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장안문과 공심돈이 있는 화서문을 천천히 걸어보고 예술성과 성벽의 규모를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먼저 수원시에서 수원화성 홍보를 위해 만든 '수원화성 이야기'책자를 먼저 보자. 이곳에서 화성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접할 수 있다.

 

 

서북공심돈

 



 

☞(경기여행/수원여행)수원화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 사도세자의 화산에서 따와,


수원시는 화성을 떼어 놓고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 수원을 이야기 할 때는 ‘수원화성’이 자연스럽게 붙어 불려진다. 수원에는 화성이란 성이 있다. 1793년 1월에 정조는 팔달산 아래에 새로 만들 신도시의 터를 보고 화성이라하였다. 정조는 왜 화성이라 하였을까.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쌀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한다. 사도세자가 묻혀 있는 곳이 현륭원이며 능을 감싸고 있는 뒷산이 화산으로 정조가 팔달산 정상에서 아버지의 묘소를 바라보며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새로 세우는 신도시 이름을 화산에서 따와 ‘화성’이라 정한다. 화성은 정조 18년인 1794년에 축성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에 완공되었는데 만 2년만의 대공사로 정약용이 화성의 성곽을 설계하고 거중기, 활차, 녹로등을 개발하여 성을 쌓는데 이용을 하였다. 수원화성은 방어 기능과 4개의 성문이 각각 다양한 모양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의 형태를 인정 받아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으뜸 관광명소’, ‘CNN선정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에 선정 되고 2012년 한국 관광을 빛낸 ‘한국관광의 별’이 화성으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 돋음 하고 있다.

 

 

 

 

★그럼 야경을 보고 온 서북공심돈을 보자. 화서문 옆에 있으며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내부를 3층으로 만들어 2층과 3층에 마루를 깔았다. 그리고 사다리를 놓아 위아래로 다닐 수 있도록하였고 군사들이 내부에 머물며 작은 구멍에는 백자총을 쏘게하고 큰 구멍에는 불랑기포를 쏘게하였다. 공심돈과 함께 오른쪽 건축물이 화성4대문중 화서문으로 지금 공사중인지 볼 수 없도록 칸막이가 쳐져 있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화서문은 화성의 서쪽 출입문으로 문위의 누각에 걸린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이 썼다. 화서문은 건축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어 현재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쪽문인 창룡문과 같은 형태의 문으로 홍예문 좌측 바위벽에 성문공사를 담당한 사람과 공사 책임자를 기록한 공사 실명판이 남아 있다.

 

 

서북공심돈

 


 ★북서포루는 아랫부분은 3~6단의 돌을 쌓고 그 윗부분은 벽돌을 쌓았고 맨 위의 건물은 나무로 만들었다. 화성안에는 동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서포루, 남포루의 5개소를 두고 있다. 벽돌을 쌓은 성벽의 끝부분 양쪽에 3문식 6문의 대포를 설치하여 성벽을 오르는 적을 퇴치하도록하였다. 


 

 

 

★북포루는 포루로서 각건대라 불리는 동북포루, 북포루, 서포루, 동이포루, 동일포루의 5개소가 있다.  동북포루, 북포루, 서포루는 군사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두꺼운 판문이 설치되어 있는 반면에 동이포루, 동일포루는 판문이 설치되지 않았다.



 

 

★북서적대는 성문과 옹성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와 기능을 가졌다. 성곽의 요소에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는 시설물로 장안문과 팔달문의 좌우에 4개의 적대를 두고 있는데 북동, 북서,남동, 남서적대라 부른다. 팔달문의 적대는 시가지가되면서 사라지고 없다. 



 

 

★장안문은 화성의 4대문으로 북쪽문이며 화성의  실질적인 정문이다. 장안이라는 뜻은 수도를 말하며 '나라의 백성이 행복하게 산다'는 뜻이다. 장안문 누각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웅장한 위엄을 지니고 있다. 장안문은 국보1호인 숭례문보다 크며 국내에서 가장 큰 성문으로 한국전쟁때 문루가 불탄것을 1975년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복원하였다. 



 

 

수원여행에서 특히 화성여행은 너무나 볼것이 많다. 5.7km의 수원화성을 하루에 둘러보아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느긋한 기분으로 하루를 생각하며 둘러보길 권한다. 그만큼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의 효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화성에 남아 전한다. 그리고 화성의 야경을 꼭 둘러보길 권한다. 필자도 짧은 시간이지만 장안문과 화서문을 걸어보며 야경을 즐겼는데 화성의 화려함에 감짝 놀랬다. 낮의 화성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밤의 화성을 구경해보자. 너무 잘 보고 온 화성 야경이다. 



 

 

북포루

 

 

 

 

 

 

북서포루

 

 

 

 

북서적대

 

 

장안문

 

 

 

 

 

 

 

 

 

 

 

 

 

 

수원화성안내도(수원화성 홈페이지 캡쳐)

 

 ★수원화성 홈페이지 수원문화재단: http://www.sw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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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계산성당)뾰쪽탑으로 불렸다는 대구 계산성당 찾아가기


1899년 12월 25일 봉헌 축성된 한국식 건축의 십자형 성당은 축성후 40일 만인 1900년 2월 4일 때마침 대구 지방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촛대가 넘어져 화재가 일어났다. 김보록 신부님은 그 해 2월10일에 다시 새로운 성전을 세우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였고 파리외방선교회의 프와넬 신부님이 적화벽돌 구조의 계산성당을 설계를 하여 그 이듬해인 1901년에 성당 착공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조선에는 양오집 짓는 기술자가 없어 중국의 건축 기술자가 성당 건축에 참여하였다.


  

 

 




12사도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함석류등 그당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건축자재는 불란스에 주문하여 들어오고  1902년 5월에 완공을 되었다.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계산 성당은 2개의 종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립 당시 두 개의 종은 서상돈 아우구스띠노와 정규옥의 부인 김젤마나가 기증을 하여 종의 이름도 아우구스띠노와 젤마나로 불려지고 있다.


 

 

 


1911년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각을 두배 높이는 증축공사를 하여 계산성당 외각의 모습이 완성 되었다. 


 

 

 

1991년 6월21일에는 1902년 성당 완공 후 처음으로 보수공사를 착공하여 1992년 8월14일 공사를 마쳤다. 이때 지붕의 함석을 동판으로 바꾸고 목재였던 바닥을 대리석으로 교체하였다. 현재의 창호에 스테인글라스등의 공사가 이루어져 오늘의 계산성당이 되었다한다. 건립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두개의 종각 때문에 ‘뾰쪽탑’의 애칭을 얻었다. (워키백과 참조)



김보록신부님의 흉상

 

 


적 제290호(1981년 지정)

소재지:대구중구 서성로 20(계산동2가)

소유자:대구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1950년 12월12일 계산성당에서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주례사에서 "육영수군과 박정희양"으로 불려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계산성당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방문과 김수환 추기경이 이곳에서 사제 성품을 받았다.



 

 

 

 

 

 

 

성당 내부의 모습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때 순교한 성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인성 나무

 

 이인성(1912~1950) 대구출신의 천재화가로 1930년대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로 현재 100년으로 추정하며 이인성나무로 이름 지어졌다.

1899년 한국형 건축양식으로 짓고 있는 십자형 계산성당 사진(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1935년 계산 성당과 계산동 주위 모습(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계산성당 찾아오는 길(계산성당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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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기계나 열심히 일을 했다면 쉬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로 붐벼 사람이나 기계가 쉬 피로감을 느낀다던지 고장이 난다. 물론 사람의 부주의도 있지만 대부분 무리하게 사용을하다 고장이 난다. 부산서부시외버스 터미널에 재미있는 고장안내문구로  찾아온 손님이 흐뭇하게 웃고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문구가 있어 포스팅을 하였다." 더욱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하여 오늘 하루 힐링중입니다". ㅎㅎ 힐링을 한다하니 웃고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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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맛집/영덕강구맛집)강구 일품대게. 블루로드도 걷고 싱싱한 물회 먹고 왔어요.

 

경북 영덕여행을 댕겨왔습니다. 영덕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블루로드 최고의 코스인 b코스를 해맞이공원에서 시작을 하여 죽도산전망대까지 15km를 그야말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해맞이공원의 창포말등대는 영덕의 상징인 대게의 집게발이 등대를 잡아 먹을듯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그와 반대로 축산면의 죽도산 전망대는 우직한 등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밤에 본 죽도산 등대는 불을 달아 더욱 웅장한 모습이었고 택시를 타고 돌아온 창포말 등대는 조명빨을 받아 대게의 집게발이 낮의 모습보다 더욱 무시무시하여 영화 킹콩이 거대한 빌딩을 올라가는 연상을 하게 된다. 무사히 해파랑길의 일부인 해안가를 걷고 저녁을 먹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차를 몰고 내려 갔다. 해안가를 끼고 드라이버 겸 내려가니 도로가 바닷가와 붙어 있어 철썩철썩 때리는 파도소리가 더욱 실감나게 들린다.

 

  


 



 

차는 영덕 강구항으로 몰고내려 갔다. 이곳은 오래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 알려져 그야말로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룰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다. 지금도 강구항을 끼고 있는 해안시장은 대게를 먹기 위한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필자는 일행과 함께 방랑벽이 있어서 그런지 간단하게 저녁만을 먹을 욕심으로 이곳저곳 찾아봐도 마땅한 음식점은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일품대게횟집을 찾아간다.




 

강구항은 동해안의 어항이고 지금은 대게철이다 보니 모든 집이 대게를 판매한다. 메뉴판을 보고 우리는 동해안인 포항에서 너무 유명한 물회를 주문하였다. 개인적으로 물회를 좋아해서 부산에서도 자주 먹는데 동해안의 싱싱한 회로 만든 물회는 어떤지 궁금도하였다.

 


 



물회의 유래를 보면 뱃사람의 애환을 가지고 있다. 고깃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나간 뱃사람들, 아침이면 떠오르는 해를 보며 고기잡이가 시작된다. 그때는 너무 바쁘다 보니 밥을 반찬과 차려 놓고 먹을 정신이 없을 정도라 쉽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아니면 끼니를 굶어야 하는데 잡았던 생선을 가지고 회를 치고 고추장과 물 그리고 밥을 말아 후루루 빠른 동작으로 먹을 수 있도록 나온 서러움이 묻어 나는 포항물회. 지금은 별미가 된 음식이다.

 


 

물회는 먹는 방식이 두가지다. 먼저 양념을 넣고 바로 시원한 물과 밥을 넣고 함께 말아 먹는 방식과 양념장만 넣고 비비면 비빔회가 되는데 깻잎등에 쌈사서 먹고 남은 양념장에 밥을 비벼먹거나 물을 넣어 밥을 말아 먹는 방식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물에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물회는 비벼서 먹는걸 좋아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이쁜접시에 깔끔한 밑반찬이 차려 나온다. 김치하며 마늘쭁장아찌, 멸치조림등 맛깔스런 반찬에 물회가 나왔다. 사실 생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기의 빛깔을 보니 싱싱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밤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먹는 일품대게, 방파제를 회초리로 때리듯 철썩 때리고 꽁지가 빠지게 돌아가버리는 바다를 보면서  먹는 물회는 동해의 용왕이 된 기분이다. 그리고 생선회의 양이 푸짐하여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는 일행의 말을 들으며 소리없이 먹기에 바쁘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깻잎이 함께 나와 저 같이 비벼먹는 분은 쌈을 싸서 먹는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조금은 그것이 아쉽다. 그러나 물회의 싱싱한 맛은 동해안 블루로드 길을 걷고 온 피로를 확 풀어주고도 남았다.

 


 



















필자의 물회 먹는 방식은 젓가락으로 먼저 양념과 함께 잘 비빔니다.




그리고 비빈회를 먼저 건져 먹습니다.




회를 조금 남겨둔 상태에서 밥을 넣어 비벼먹습니다. 너무 맛있습니다.




















 


 

◆영덕강구맛집 일품대게

★상호:일품대게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금진리 678-5

★전화:054-734-8338

★메뉴:물회 1만5천원, 모듬회, 오징어, 대게,

주차장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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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맛집/중구맛집)근대문화골목 진골목식당, 대구 골목길 투어에서 먹는 진골목식당 육개장 별미.

 

1박2일 대구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청라언덕에서 시작하는 대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인 "근대문화골목"길이다. 청라언덕에는 유독 붉은 벽돌의 건물이 많다. 선교사였던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의 주택을 보며 하늘을 짜를듯이 솟은 제일교회의 모습과 3.1만세 운동길, 계산성당, 그리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등 근대 우리의 고달팠던 생활상을 오롯히 볼 수 있는 그런 골목길이다. 

 

 

 

 

유난히 많은 전통의 기왓집을 보면서 어느듯 우리는 '진골목'에 다다른다. '골목이 좁고 길다'를 경상도 버전으로 '질다'의 뜻이다. 질다가 줄여져 진골목으로 긴골목을 말한다. 골목길 투어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디선가 구수한 장국밥 냄새가 허기진 뱃속을 두드린다. 밥을 좀 넣어 달라는 신호다.

 

 

 

 



안성맞춤이란 이를두고 한 말일까. 진골목 안에 '진골목식당' 간판에 팍! 팍! 하고 눈에 꽂히는게 아닌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진골목이 이어진다. 그 안쪽 끝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진골목식당의 풍경은 그야말로 고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은 1890년 경에 지어졌고 대구 섬유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코오롱그룹의 창업자인 이원만의 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건축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켜켜히 찌든 세월의 흔적에 찾아든 여행객의 마음은 꼭 외갓집에 놀러온 기분이다. 반질반질 윤이 파르르 나는 대청마루에 누구의 흔적인지 모를 발도장이 찍혀 있고 이방 저방에 가득들어찬 누런 호박은 고향의 초가 지붕에 올려진 지난 가을의 모습을 생각나게한다.

 

 

 

골목투어의 최고맛집인 진골목 식당에서는 유독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잦다. 진골목 입구의 미도다방이 있기도하지만 대구음식인 얼큰한 육개장 전문점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진골목식당의 육개장은 고춧가루를 넣은 칼칼하고 얼큰한 고깃국으로 화끈한 경상도식이다. 먹고나면 속이 시원하다는 육개장.

 

 

 

 

진골목식당의 육개장을 보면 사골육수에다 대파, 토란대를 넣고 고기는 사태와 양지머리만으로 국을 끓여내어 국물이 텁텁하지 않고 동짓달에 먹는 동치미 국물처럼 시원하고 맑다는 평이다. 일행은 육개장과 이집에서 개발한 육국수를 함께 주문하였다. 생소한 육국수는 육개장에 국수가 나오며 밥대신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독특한 별미다. 두가지 맛을 보기 위해서는 두사람이면 육개장 하나와 육국수 하나를 주문하면 된다.

 

 

 

 

따라나오는 밑반찬은 아주 토속적인 음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요요 멸치무침은 집에서도 너무 좋아해서 다 먹고 또 추가해서 먹었다. 방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누런 호박의 용도는 호박전을 부치기위한것으로 엄청 호박이 많다. 어릴적 엄마가 숟가락으로 끍어서   솥뚜껑에  구워주던 호박전이 생각나 같이 주문을 하였다. 노릇노릇 구워진 호박전 어릴때 먹었던 고소한 그맛 그대로다. 100년된 골목길을 걸어보고 100년이 넘은 고택에서 대구만의 전통음식인 육개장을 먹을 수 있는 '진골목 식당'을 찾는 것도 큰재미이다. 밥을 먹었다면 진골목 입구에서 건강차인 미도다방의 쌍화차로 입을 달래보자.  

 

 

 

 

진골목식당의 육개장 6천원

 

 

진골목의 호박전 5천원

 

 

진골목식당의 육개장과 육국수 그리고 호박전,

 

 

진골목식당의 육국수 6천원.

 

 

 

 

 

 

 

 

 

 

 

 

 

 

 

 

 

 

 

 

 

 

 

 

 

 

 

 

 

 



 

 

 

◆대구 진골목식당 영업정보◆

★상호:진골목 식당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진골목길 9-1호(종로2가 66-5)

★전화:053-253-3757

★메뉴: 육개장 6천원, 육국수 6천원, 콩국수 6천원, 콩나물밥 5천원, 칼국수4천5백원, 호박전 5천원 빈대떡 5천원

★주차장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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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쌍화차가 맛있는 옛날식 다방 미도다방


시간을 거꾸로 30~40년 되돌린다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요. 턱을 괴고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마 아침에 “모닝코피”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방에 찾아 갈 것 같습니다. 많이 접해 보지는 못했지만 달걀 노른 자위를 동동 뛰 운 모닝커피에 토스트의 추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주위에 다방이란 문구를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커피등 차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수십배 아니 수백배 늘 정도로 한집건너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있습니다만 정작 옛 다방의 모습은 자꾸 사라지다 못해 자취를 감추어 버려 너무 안타깝습니다.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근대문화골목에서 만난 미도다방.


지난 주말에 대구에 1박2일 여행을 댕겨 왔습니다.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로 대구광역시 중구의 유서 깊은 골목을 유유자적 걸어보며 우리근대사를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30년을 되돌려 놓은 다방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보았습니다. 건물은 그저 평범한 요즘식 건물입니다. 2층으로 계단을 오르는데 옛 다방의 진한 향이 코 끝에서 폐로 전해집니다. ‘아. 오랜만에 느끼는 냄새다’하며 출입문을 보니 나무판에 ‘미도다실’이 새겨져 있고 문종이에 '입춘대길' 붓글씨가 적혀져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봅니다. 눈앞의 모습에 갑자기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노래가사가 입에서 흥얼흥얼 그려집니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궂은 비도 내리지 않고 색스폰 소리와 빨간 립스틱을 바른 마담은 볼 수 없지만 미도다방은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미도다방은 벽면에 빠꼼한 틈이 없습니다. 유명 작가의 서화전시실을 옮겨 놓은 모습입니다. 이것으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유형과 미도다방 정인숙사장님의 취향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발행한 “근대로의 골목” 홍보책자에서는 실버세대들의 사랑방 1번지인 미도다방 정인숙 사장님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방도 명물이지만, 안주인 정인숙씨도 국보급이다”하였습니다. 내가본 사장님도 ‘국보급’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장을 거부하며 오직 한복을 곱게 차려 입어 신 모습이 그리 잘 어울리는 국보급인 사장님에 뭘 더할 말이 있을까요.

 

 

 



 

미도다방에서는 쌍화차가 가장 유명합니다. 10여가지의 한약재료로 끓여 나오는 쌍화차는 그야말로 달걀 노른 자위가 보기 좋게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분은 먹기가 좀 그러하지만 보약이라 생각하고 먹으면 됩니다. 이곳의 쌍화차는 전통 쌍화차로 꼭 맛을 봐야한답니다. 쌍화차와 함께 나오는 과자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이며 우리에겐 추억의 옛날과자인 전병입니다. 약차와 함께 먹는 옛날과자 진골목을 찾을 때는 앞으로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전상열 시인이 신문에 발표한 미도다방의 시와 정인숙 사장님이 쓴글씨.

 

 

미도다방의 벽에 걸린 액자의 작품이 눈길을 잡습니다, ‘미도다방’의 액자입니다. 시인이신 목향 전상렬이란 분이 타계5일전에 신문에 발표한 시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이시의 글 쓴 이는 ‘혜정’으로 정인숙사장님의 아호입니다. 한학자이신 정사장님의 스승으로부터 아호를 받았다합니다.

미도다방의 시를 일부 옮겨 보았습니다.

“종로 二가 미도다방에 가면

정인숙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어떤 햇살은 가지 끝에 걸려 있고

어떤 햇살은 벼랑 끝에 몰려 있고

어떤 햇살은 서릿발에 앉아 있다

정여사의 치맛자락은

엷은 햇살도 알뜰히 쓸어 모은다“

 

 

 

 

정인숙사장님의 자작시도 주방 맞은편에 볼 수 있습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정이 미도에서 옥이를 데불고

오가는 나그네 따습게 모시었네

오랜공경 사랑에 뿌듯하고

모든 예절 이웃에 본(보기)되다“

시에서 정사장님의 성품과 경상도 사투리의 따스함이 전해집니다.

 

 

 

 

요즘의 전통다방은 설자리가 자꾸 좁아집니다. 대구여행인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에서 미도다방을 꼭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쓰디쓴 쌍화차 한잔으로 전통의 우리 차 맛을 한번 느껴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커피보다 더욱 찐한 무언가가 느껴질것입니다. 미도 다방에서 쌍화차 한잔을 마시며 몇 자 적어 봅니다.

 

 

 

 

☞(대구맛집/중구맛집)대구중구 골목투어 미도다방, 진골목 안으로 이전을 해요. 미도다방.


아참! 빠트린 내용이 있습니다. 전통의 미도 다방도 오늘 12월22일이면 다방을 진골목 안쪽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1983년 학생들이 즐겨찾던 ‘도가니다방’을 인수하여 미도다방으로 간판을 걸어 영업을 시작한지 30년 벌써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 뒤 10년만인 1992년 지금의 진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왔는데 이번에 또 다시 건물이 매각되어 어쩔수 없이 진골목 안쪽으로 옮겨 간다고 합니다. 20년의 손때 묻은 다방 내부의 모습은 그대로 옮길 수 없지만 대구시 중구청에서 대구의 명물인 미도다방을 근대골목과 어울리는 외관의 모습을 갖출수 있도록 힘껏 도와 근대골목을 찾는 여행객과 옛다방의 향수를 찾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껏 지원을 한다고 합니다. 그때의 미도다방이 기다려집니다.

 

 

 

 

미도다방에서 정여사로 불리는 정인숙사장님

 

 

정인숙 사장님의 자작시.

 

 


 

 

 




 

 




 

 




 

 

 

◆미도다방 영업정보

★상호:미도다방

★전화:053-252-9999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 66-1(진골목)

★메뉴:쌍화차 3천원, 약차 2천5백원,  강황꿀차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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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중구여행)북성로 공구 박물관, 근대 역사의 명품골목 투어중 만나는 북성 공구 박물관.

 

대구 북성로에는 특별한 박물관이 있다. 북성로 공구 박물관으로 이곳에는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곳으로 이곳 북성로 공구 거리는 한때 못구할것도 없고 못만들것도 없는 그런 곳으로 대구 경북에서 기름밥을 먹는 사람들은 북성로 공구거리를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하다.

 

 

 

 

북성로는 조선시대 경상감영이 있던 곳으로 대구의 중심지였다. 1906년 일제강점기때 일인들에 의해 대구 읍성 북쪽의 성벽을 허물고 조성한 거리로 다양한 상점들이 이곳에 생겨났다. 110개의 점포중 107개는 일인이 경영을 하였고 단지 3곳만 조선인이 경영을 하였는데 모두 미곡상을 운영하였다. 이곳 북성로의 공구상을 보자. 해방이전에는 농촌의 도정공장에 사용하는  기계상점 5곳이 처음생겼고 해방이 되면서 북성로는 의류상가로 형성되었다. 6.25를 거치고 나서 하나둘 공구상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호황덕으로 기계공구상 골목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현재 북성로 공구 박물관은 1층은 44.96㎡, 2층은 31.07㎡의 규모로 1930년인 일제강점기때 미곡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그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근대건축물로 원형은 보존한채 리몰리딩을 거쳐 공구박물관이 되었다. 1층은 북성로 기술자들의 작업공간과 복층에는 사무원이 몸을 돌리기도 힘들정도로 작은 공간의 사무실을 꾸며 놓았다. 각종서류철하며  나무 책상이 그당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2층에는세미나와 공작 , 체험, 디아이와이(DIY)등을 할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사용을 한다.

 

 

 

 

공구박물관의 전시품은 일제강점기때 나무손잡이로 된 드라이버, 렌치, 몽키, 컷트등의 공구류 10여종 50여점을 선별전시하였고 기증을 받은 1,000여점의 공구는 순환을 하면서 전시를 하도록하였다. 전시품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탱크의 포신 같은 특이한 설비로 기술자가 않았던 의자등에 이날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구의 많은 여행지중에서도 시내 중심지에서 근대 역사를 따라 걷는 골목투어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도 걸어보고 이곳 공구 박물관도 찾아 보면 더 없이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이색적인 여행지에요.

 

 

 

 

 

 

좁은 공간의 사무실,

 

세미나중인 2층의 다다미방,

 

 

 

 

 

 

 

 

 

 

 

 

 

 

 

 

 

 

 ◆북성로 공구 박물관 정보

★주소: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2가 19번지

★소유자:(사)시간과 공간 연구소

★전화:053-252-8441

★개방시간:오전10시~오후 6시까지(일, 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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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우리는 알아야 한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동란을 생각하시면 몸서리를 치며 치를 떠신다. 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집을 버리고 피난과 아비규환속에 살아온 나날들을 생각하시며 다시는 그런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손 사레를 치시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자라 왔다.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그런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뭐, 그럴까?’하며 의구심을 가지고 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이곳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하면 왜 우리의 부모님이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손 사레를 치는 이유를 조금은 알수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경상남도문화재 자료 제 99호로 지정되어 유적공원으로 보호관리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면 더욱 좋은 교육이 되겠다.

 

 

 

 

지금이야 통영과 거제도를 잇는 거제대교와 부산가덕도와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로 인해 거제도는 섬보다는 육지에 더 가깝게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동란때는 이곳이 육지에서 가까운 섬이었지만 고립된 섬으로 전쟁 통에 생포된 포로들을 수용하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지리적으로 육지와 떨어져 빠삐용처럼 섬안에서 포로를 관리하기가 좋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분수광장, 6.25 참전 16개국의 국기와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왜 생겼을까. 1950년 6월25일 새벽4시를 기해 북한인민군은38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 남침을 감행하였다. 전쟁발발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그야말로 중과부적의 열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급기야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며 임시 수도도 대전으로 옯기는 판국이었다. 국군은 미군과 유엔에서 파병한 연합군의 지원을 얻게되고 전세는 소련제 탱크로 중무장한 북한군에 티격태격 밀리며 낙동강까지 이르게 되었다.

 

 

 

 

낙동강을 넘겨주면 부산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국군과 연합군은 낙동강을 마지막 보루로 삼아 목숨을 걸고 혈전을 벌렸다. 지금도 영남지방을 흐르는 낙동강에는 우리국군의 목숨을 건 전투가 많이 전해 온다. 다행이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국군과 연합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북진을 하였다. 그러나 100만이 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며 38도선을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탱크전시관, 1950년 6월25일 일요일 미명에 남침의 선봉에 섰던 소련제 T-34탱크 모형,

 

 

전쟁으로 생포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경남 거제도의 고현을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다. 인민군이 15만명, 중공군이 2만명등 17만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다. 그 포로들 중에는 여자포로도 3백명이 있었다하며 포로수용소 내부의 생활상을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들이 자치적으로 수용소 생활을 하도록 되었다. 그런중에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폭동이 일어 났고 1952년 5월27일에는 수용소의 사령관이었던 돗드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3년 한국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게 되고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전쟁은 끝이 아닌 잠시 쉰다는 의미의 휴전이 되고 거제포로수용소는 폐쇄되었다.

 

 

 

 

현재에도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이어져 60년이 되었지만 이는 종전이 아닌 휴전임을 항상 명심해야 더 이상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거제도포로수용소는 그 당시 수용소의 건물 일부와 포로의 생활상, 막사, 사진, 의복등 생생한 자료와 기록물을 볼수 있는 전쟁역사의 산교육장이다. 자녀와 함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찾아 그 당시의 모습을 경험 해보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다.

 

 

흥남철수작전 기념비.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 배경이 되었던 흥남항에서 10만명의 피난민과 국군, 유엔군이 배를 타고 탈출.

 

 

 

 

 

 

디오라마관 국내최초 최대규모의 디오라마관.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도선에서 전면전을 개시하면서 불법남침.

 

 

국군의 사수. 밀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치열한 참호 전투를 벌리고 죽어간 아군들.

 

 

끊어진 대동강 철교,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된 피난민들이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기 위해 사투를 벌리고 있다.

 

 

M.P다리, 헌병초소가 지켜선 다리로 포로출입의 주요 관문, 이곳을 통과하면 포로들의 생활상을 경험할 수 있다.

 

 

 

 

 

 

 

 

 

 

포로생포관, 투항하거나 생포된 포로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포로수송의 모습. LST에 승선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해상 이송되.

 

 

포로사상대립관, 철모속에서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사상대립을 볼 수 있다.

 

 

 

 

여자포로관, 여자도 남자포로와 동일한 수용소 생활을 하였다.

 

 

 

 

 

 

 

 

포로폭동체험관.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친공포로의 폭동과 친공, 반공포로들간의 격돌장면을 만날 수 있다.

 

 

 

 

 

 

철모광장,포로수용소 유적관 기념 청동 조형물로 참전 16객국의 지도와 국기를 달고 있다.

 

 

야외막사, 포로수용소의 막사와 감시초소, 취사장, 생활도구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고 영화 흑수선 촬영현장이기도하다.

 

 

 

 

 

 

 

 

 

 

 

 

무기전시장,M577 장갑차, M46 전차, UH-1 헬기, 2.5톤 카고등 군수품을 전시하였다.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관람안내시 주의점.

★역사의 현장인 유적지를 보호하고 쾌적한 관람을 위해 관람예절을 준수,

★음식물 반입과 안내견 이외의 애완동물 출입은 금지,

★전시물에 손을 대거나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동 삼가,

 

 

 

 

 

☞(경남여행/거제도여행)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공원, 끝나지 않은 분단의 역사 알기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이용 안내.

 

 ★거제도포로수용소 입장시간과 휴관일(홈페이지 캡쳐)


★거제도포로수용소 관람요금(홈페이지 캡쳐)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전시관 안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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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 휴먼시티 수원시 초청 수원화성행궁 화성야경 여행블로거기자단 팸투어 수원여행

휴먼시티 수원화성 수원시청 초청으로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서 여행카테고리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블로거들의 모임인 여행블로거기자단을 대상으로 12월7일(토요일)~ 8일(일요일) 1박2일 일정으로 팸투어가 실시됩니다.




 

휴먼시티 수원시청 초청 팸투어에서는 연무대-국궁체험, 화성열차 탑승(연무대→팔달산), 화성도보(팔달산→서장대) 및 타종체험, 수원한정식, 행궁동 벽화마을 (대안공간 눈), 지동벽화마을․ 노을빛전망대, 화성박물관, 치맥체험, 화성행궁관람, 수원갈비, 화성야경, 광교호수공원, 봉녕사, 캠핑장, 스포츠크라이밍장, 전통시장, 공방체험, 무예24기 공연, 해우재 등 수원시 문화, 관광, 예술, 맛집, 여행지 취재가 진행됩니다.

 



 

다음, 네이버, 싸이월드, 티스토리, 야후 에서 여행 관련 블로그 를 운영하고 있는 여행블로거 들의 자발적 모임인 여행블로거기자단 은 지자체및 기업에서 초청하는 팸투어에 참가 한 후 각자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관련 기사를 올려 우리나라 문화 관광 여행 명소를 온, 오프라인을 통해 알려 국내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키고자 모인 서포터즈 성격의 모임입니다.

 



 

여행블로거들이 개별 여행블로그에 올린 여행 기사들은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개별여행(가족여행) 및 단체 여행객들이 여행을 가기전에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하여 여행일정을 계획하는데 기본 자료가 됩니다



 

여행블로거들이 자신의 여행블로그에 올린 문화, 관광, 맛집, 농촌체험, 농수산특산물, 맛집 포스팅은 지자체를 찾는 관광객 다변화 및 유치극대화, 지역의 다양한 연계관광자원의 발굴 및 여행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l. 행사명: 휴먼시티 수원시 팸투어

2. 장 소: 수원시청 관내

 

3. 일시: 12월7일(토요일)~ 8일(일요일) 1박2일

4. 진행: 수원시청

@ 블로거 참가 인원 : 25명

@ 참가신청 마감일 : 12월 2일(월요일) 13시

--------------------(진행상의 사유로 조기 마감될수 있습니다)

 

@ 참가신청자격 및 선정 우선 순위

1. 여블단 카페(다음/네이버) 게시판 활동 상위 링크 회원

2. 블로그 댓글 과 추천 등 여블단 블로그 방문이 활발한 회원

3. 단장이 팸투어 참가를 특별 초청한 사람

4. 여블단(팸투어, 포스팅, 게시판, 댓글) 활동이 적극적인 회원

5. 게시판 활동이 활발한 새내기 정회원 10% 내외 참여 가능

6. 블로그 운영과 카페 활동을 긍정적으로 하는 정회원 이상 활동우수자

@ 팸투어 참가회비: 10,000원(1박2일 일정/회칙에 의한 기자단 운영경비)

@ 일반진행경비는 주최 측에서 부담 합니다.

@ 준비물 : 카메라와 간단한 필기도구, 세면도구(수건포함)

@ 참가자 할일 : 팸투어 이후 빠른 시일내에 5개 이상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카페게시판에 리포스팅

@ 팸투어를 처음 신청하시는 회원은 여행자보험 가입을 위해 주소 및

주민번호를 카페지기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단장 : 강경원(마패) faron@hanmail.net / 010-5482-1325

@ 신청게시판 :

여행블로거 기자단 카페

다 음 : http://cafe.daum.net/tourblo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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