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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남아 있는 고가촌들은 여럿 있다. 안동의 하회마을, 산청의 남사마을, 경주 양동민속마을등 이름만 들어도 아 그곳하며 맞장구를 칠 유명한 곳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하는 이곳은 포항의 덕동문화마을로 포항시의 가장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중의 하나인 기북면 오덕리의 덕동문화마을이 있어 소개를 하고자한다. 규모면에서는 여타 민속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꼭 현재 우리들의 고향집인 큰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느 99칸의 고래등 같은 기왓집이 아닌 고향을 찾아가면 갈 수 있는 친척집 같은 그런 곳으로 주변의 산세와 가장 잘 어울리게 지어져 있다.

 






이곳은 여강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그 사연을 보니 충의공 정문부가 임진왜란을 맞아 그의 식솔들을 모두 이곳으로 이주를 시켜 살게 하였는데 전란도 끝나고 하여 정문부는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집과 용계정등을 손녀사위인 이 강에게 물려 주었다 한다.
그후 이곳이 여강이씨의 집성촌을 이루어 현재에 까지 이르고 있다. 덕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이곳 덕동문화마을의 애은당(愛隱堂) 고택은 경상북도민속자료 제80호 지정되어 있다.



의병장이며 길주 목사를 역임한 농포 정문부(1556~1625)의 가족들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피난처로 이용하였던 곳이다.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 주는 애은당은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ㅁ’자형의 건물로 안채 좌측에는 방앗간채와 우측으로 별당을 두어 아녀자들의 생활공간을 둔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애은당을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와 대문이 붙어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5칸의 안채와 마주한다. 좌측으로는 창고와 방이 같이 붙어 있는 고방채가 있으며 ‘ㅁ’자 형의 안마당을 두었다.




아녀자들이 거주하였던 안채는 정면 중앙에 대청을 두었고 좌측으로는 부엌과 안방,좌측으로는 한칸의 방이 붙어 있다. 우물마루와 그 앞으로 쪽마루를 붙였는데 막돌기단으로 된 맞배지붕으로 안채의 지붕이 높고 좌우로 연결되는 지붕이 낮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애은당의 모습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것 같다. 담장은 허물어 지고 입구 우측의 화장실등 모든 공간이 이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지경에 처해 있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이 애은당의 본 건물은 독구가 자기의 할일을 하고 있으며 아직도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 있어서 명맥만을 유지하는 것 같다.
















애은당을 돌아가면 만나는 또 하나의 고택이 있다.
이건물은 기존의 건물보다도 위엄이 느껴지는 집이다. 이원돌 가옥으로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방문을 했을때 마당 한켠에는 고추를 말리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였다.
이건물은 농포정문부가가 임진왜란 후 손녀사위인 이 강(1621~1688)에게 물려준 집으로 이집은 다시 이강의 차남 덕령에게 물려 주었다.



그 후에 현재에도 그의 후손들이 거주를 하는데 이강의 9대손인 이원돌의 이름을 따 이원돌가옥이라 부른다. 정면4칸 측면6칸의 목조기와 형태로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안채와 사랑채가 ‘ㄷ’자 형태로 대문을 들어서면 부속채와 함께 ‘ㅁ’자의 안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자연석 기단위에 1칸 대청과 왼쪽으로 부엌과 안방, 오른쪽으로 건너방이 있는 맞배지붕으로 된 납도리집이다.





이곳 또한 젊은이는 볼 수 없고 나이든 노모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구나. 야은길재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고의 구절이 덕동문화마을을 보니 내 가슴에 왜이리 와 닿는 것일까. 이곳을 방문할 시에는 모든 고택들이 주민들의 안식처입니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둘러보는 것이 순서일 듯합니다.









 


찾아가기

부산 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새벽 5시30분부터 10~15분 간격, 1시간20분 소요. 7700원.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소에서 대각~포항역간 운행하는 녹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육거리약국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다시 성법행 녹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6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30분 간격 운행. 1시간20분 소요. 오덕리 덕동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경주요금소를 통과한 후 직진, 오릉네거리에서 좌회전 한다. 강변도로를 따라 경주시외고속버스터미널과, 태종무열왕릉 입구 등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다리를 건너 현곡면 방향으로 간다. 이후 금장교차로에서 68번 지방도로를 타고 포항 안강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17㎞쯤 이동 후 안강IC에서 안강 기계 방면으로 우회전(68번 지방도), 곧이어 다시 교차로에서 기계 방면으로 우회전 한다. 7㎞쯤 가다가 달성네거리에서 청송 기계 방면으로 좌회전, 다시 9㎞쯤 가서 기계삼거리에서 기북방면으로 우회전(921번 지방도) 한다. 이후 10분 정도면 덕동마을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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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북구 기북면에는 면의 경계가 꼭 고구마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기계를 거쳐 기북면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는 신광면의 비학산과 좌측으로는 죽장면의 침곡산~사관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낙동정맥이다, 면의 북쪽으로는 병풍산이 기북면을 덕 버티며 기북면에서는 최고봉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에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나라의 역모죄인를 잡아가두어 부역을 시키는 곳이였다 한다.



 




생활필수품을 만든다던지 또는 무기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한다. 얼마나 오지이면 그랬을까. 기북면을 이루는 이 골짜기는 안세이지골과 골뱅이골로 부르는 병풍산에서 시작된다. 골뱅이 처럼 꼬여져 있는 이계곡이 죄인들의 부역장소로도 딱 어울렸을까. 그래서인지 죽장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름들이 흥미롭다. 먼저 죽장면 상옥리로 가기위해서는 이고개를 꼭 넘어가야 된다.


성법령으로 부르는 큰 고개로 성법, 나라의 역모죄인에게 법을 받들며 살아라하였다하여 성법리로 부르는 마을이름에서 따왔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고개가 더 있는데 사관령과 벼슬재이다. 이 또한 죽장면 가사리로 넘어 다닌 고개로 벼슬을 가진 자들만 넘어 다닌 고개길이란 뜻이다.
 역모죄를 감시하는 벼슬아치들이 가사리의 부역 장소로 넘어 다녔던 모양이다. 가사리에는 철이 생산이 되어 솥 같은 생활필수품을 만들었다는데 그 마을 이름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가사리 솥을 시중에 내다 팔면 기방의 아낙들이 가사리 솥을 일등품으로 인정을 해주어 가시나들이 좋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한다. 벼슬재를 오르는 입구에 덕동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아마 이들을 관리 감독하던 관청건물이 있었다한다.
마을 이름 또한 덕스러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하여 덕동이라 부른다. 근래에 들어 이곳에 덕동문화마을이라 하여 기록사랑마을 4호로 지정되었고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여럿 남아 있다.



오늘 포스팅할 건축물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용계정이며 용계천의 벼랑에 지어진 누각형태의 정자이다. 원래 용계정은 임진왜란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의 별업으로 지어졌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정문부는 그의 식솔들을 이곳 용계정에 모두 이주를 하여 살게하였다 한다. 전란도 끝나고 하여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손녀사위인 이 강에게 사우정고택과 함께 물려 주었다한다.


그후 여강이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 내려온 건축물로 익공계의 팔작지붕에 정면5칸 측면 2칸으로 용계천에서 보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의당 이강에 의해 1687년 용계정 누정을 중수하였고 그후 세덕사의 부속건물인 강당으로 사용 되기도 하였는데 대원군에 이르러 서원 철폐령이 되면서 이곳 세덕사와 용계정도 훼철될 위기에 처하자 후손들에의해 밤새 세덕사와 지금의 용계정 누정의 분리를 위해 담장을 설치하였다한다. 그래서 세덕사만 훼철되고 용계정은 용케 남게 되었다.


지금도 용계정 뒤로는 넓은 세덕사터가 남아 있다. 여강이씨에서 세운 안내판을 보면은 사헌부대사헌겸성균관좨주를 지낸 농재 이언괄(1494~1553)이 운천서원및 덕연세덕사에서 제향되었는가하며 그의 4대손인 사의당 이강(1621~1688)에 의해 1687년에 착공을 하였다한다.
그런데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용계정의 완성을 보지 못하였고 그의 손자였던 진사 시중(1667~1738)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 후 시중의 손자에 의해 1778년 한차례 더 중수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계정과 덕동숲 명승지81호






 












찾아가기

부산 노포동버스터미널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새벽 5시30분부터 10~15분 간격, 1시간20분 소요. 7700원.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소에서 대각~포항역간 운행하는 녹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육거리약국에서 내린다. 이곳에서 다시 성법행 녹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6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30분 간격 운행. 1시간20분 소요. 오덕리 덕동마을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경주요금소를 통과한 후 직진, 오릉네거리에서 좌회전 한다. 강변도로를 따라 경주시외고속버스터미널과, 태종무열왕릉 입구 등을 지나 금장교 앞에서 좌회전 다리를 건너 현곡면 방향으로 간다. 이후 금장교차로에서 68번 지방도로를 타고 포항 안강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17㎞쯤 이동 후 안강IC에서 안강 기계 방면으로 우회전(68번 지방도), 곧이어 다시 교차로에서 기계 방면으로 우회전 한다. 7㎞쯤 가다가 달성네거리에서 청송 기계 방면으로 좌회전, 다시 9㎞쯤 가서 기계삼거리에서 기북방면으로 우회전(921번 지방도) 한다. 이후 10분 정도면 덕동마을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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