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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단풍색으로 가을 앓이 중인 천성산 원효암 여행. 양산 천성산 원효암


경남 양산 천성산(922m) 억새 산행을 하면서 원효암을 찾았습니다. 

원효암은 통도사 말사로서 천성산 남쪽 해발 750m에 자리했습니다. 

위치가 높아서 그런지 원효암을 두른 나뭇잎마다 곱게 붉은 물을 들이며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습니다.





양산 천성산 원효암 주소: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1-1

양산 천성산 원효암 전화:055-37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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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원효암은 646년인 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효대사와 천성산은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천성산의 산 이름도 원적산에서 바뀐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효대사와 천성산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원효대사가 기장의 불광산 척판암(담운사)에 주석하다 혜안으로 중국의 태화사에 산사태가 나는 급박한 상황을 보았습니다. 

원효는 급한 나머지 척판암 부엌 문짝을 뜯어 “해동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하다”의 ‘해동원효척판구중’이라 쓰고 하늘로 던졌습니다.




판자는 태화사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았고 태화사의 대중들이 하늘의 판자를 보고 모두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그와 동시에 산사태가 일어나 태화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태화사 대중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리고 판자에 적힌 해동의 원효가 법력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며 신라의 원효를 찾아왔습니다.



원효는 이들을 이끌고 원적산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원적산 산신령이 나타나 천명의 대중이 머물 자리를 안내하겠다며 원적산 계곡으로 인도하고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원효는 산신의 뜻을 받들어 그 자리에 신령각을 짓고 대둔사와 상·중·하 내원사 세웠습니다. 

골짜기에는 89 암자를 짓고 분산시켜 수행에 정진하게 했습니다.




원효는 천명의 대중들을 원효암 옆 화엄벌에 불러 모아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며 천명의 대중은 모두 성불하여 천성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원효암의 유래는 그때 세운 89 암자 중 한곳이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그 이후 원효암의 뚜렷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재 원효암은 1905년에 효은선사가 중창하였고, 경봉선사는 1976년 범종각과 범종을 세우고 1980년에 나지막한 법당을 중건했습니다. 

원효암을 찾을 때 항상 보았던 대웅전 건물은 인법당의 형태라 하여 2018년 5월에 큰 규모의 대웅전을 새로 중건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서 그런지 새로 지은 대웅전은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새로 중건한 대웅전이 원효암 주변 산세와 정말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천성산 원효암에는 2점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1점은 1648년 인조 26년에 제작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복장유물입니다. 

높이가 77㎝ 크기로 원래 통도사 약사전에 봉안되었다가 원효암으로 옮겨 안치했습니다. 

불상 내부의 복장유물에서 불상 조성 발원문과 인쇄본 다라니경, 후령통 등이 함께 나왔습니다. 

불상은 법당 안에 안치되어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0호.

 



1906년 조성된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대웅전 오른쪽 바위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바깥에 있어 눈으로 쉽게 확인하고 사진도 담을 수 있습니다. 

양산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했습니다. 

3 불상은 바위 면에다 깊게 새기지 않았고 매우 정교한 조각수법에 종이 위에 꼭 불화를 그린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삼존불입상을 보면 아득한 느낌이 들면서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미타여래 입상은 하반신이 길고 아래에서 약간 위로 쳐다보아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좌·우에 배치한 보살상은 아미타 본존불을 향해 합장을 하고 원형두광을 갖추었습니다. 

삼존불 상단에 나무아미타불 명문과 대세지보살 우측에 `세존 응화 2933년`의 명문을 통해 본존불의 존명이 아미타불이며 1906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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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제석사와 계정숲 여행. 원효 탄생지 제석사와 한장군 묘와 계정숲


경산시를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릅니다. 

이 세 분의 성현은 원효대사와 그의 아들인 설총,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를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원효대사의 탄생지라는 경산 자인면의 제석사를 보고 왔습니다. 

원효대사의 탄생을 보면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가졌으며 만삭에 집 옆의 밤나무가 많은 골짜기인 ‘율곡’을 지나다가 산통을 느껴 밤나무 아래에서 원효를 낳았다 합니다.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226-1

경산 원효대사 출생지 제석사 전화:053-857-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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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효가 태어났던 곳인 큰 밤나무를 사리수라 불렀고 그 밤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사리밤으로 불렀습니다. 

이 밤은 주위의 밤보다도 밤알이 토실토실한 게 월등히 컸다 합니다. 

원효는 15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충격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원효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은 자인면사무소 뒤쪽인 속칭 밤골이라 불리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신이 살았던 옛집을 헐어내고 절을 짓고는 초개사라 불렀으며 자신이 태어났던 밤나무인 사라수 옆에도 절을 짓고는 사라사라 했다고 삼국유사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개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400여 년 전에 한 농부가 밭갈이를 하다가 불상과 탑의 몸돌을 발견하고는 이곳이 오래전에 절터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유찬이 절을 짓게 된 게 오늘날 제석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석사 한쪽에는 석조좌불, 부서진 탑신과 석등을 받쳤던 연화문 대석등의 부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일대가 신라하대의 고찰터 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곳이 원효가 세웠던 초개사나 사라사의 확실한 근거는 아직 찾을 수 없으며 이 일대가 원효의 출생지라 그리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라시대 부재



한국사찰전서에 제석사는 1625년 유찬이 창건했으며 1802년과 1910년 거사 손대권과 월파대사가 각각 중창하였고 193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석사는 쇠퇴하면서 폐사가 되었다가 1962년에 다시 대웅전을, 1965년에 칠성각을 건립하면서 불법의 등불을 밝히게 됩니다. 

2001년에 와서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삼존불을 봉안하고 대웅보전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칠성각 또한 산신각으로 개명했습니다.







제석사는 다른 사찰과 다르게 이곳은 원효대사의 탄생지로 추정되어 2003년 불교계 최초인 ‘원효성사전’을 건립했습니다. 

내부를 살짝 보았더니 안에는 원효대사의 좌상을 모셨습니다. 

주택가 안의 사찰이라 조금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원효의 출생지 설화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신성하며 무엇인가 모를 무거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인근에 있는 계정숲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보면 울울창창한 숲으로 우거진 언덕 같은 높이의 공원이었습니다. 

인공적으로 가꾼 숲이 아니고 천연숲인 계정숲은 이팝나무가 주종이며 말채나무,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낙엽수와 활엽수가 섞여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숲을 제공해 줄 것 같았습니다.




경산 자인면 계정숲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서부리 68





계정숲 안에는 한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습니다. 

한 장군이 어떤 분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을 호석으로 두른 게 예사 분이 아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장군은 신라인지 고려인지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지만 도천산에 왜구가 출몰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 장군이 누이와 함께 화려한 꽃관을 쓰고 여원무를 추며 도천산의 버들못으로 왜구를 유인하여 칡으로 만든 그물에 가두어 검흔석에서 모두 참수했다는 분입니다.





1968년 8월 자인중·고등학교 신축을 하려고 땅을 파다가 석실묘를 발견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두개골과 은으로 만든 갑옷 투구와 무기류인 창 등 많은 토기류가 함께 나와 한 장군의 묘라 확정하였고 전설로만 내려오든 한 장군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965년 5월에 계정숲에 한장군의 묘를 이장하여 매년 단오절에 한장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영남대학박물관에 있다가 2011년 12월에 대구 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 장군의 묘와 함께 한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진충묘(盡忠廟)도 있습니다.



 




한 장군은 누이와 함께 도천산 버들못에 은신해 있던 왜구를 ‘여원무’를 추어 유인해 섬멸했다고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화려한 화관을 쓰고 춘 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에 지정되었으며 지역민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한장군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매년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진충묘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북사리의 ‘한당(韓堂)’을 계정숲으로 옮겨 세우면서 진충묘라 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의 맞배기와지붕입니다. 

진충묘옆에는 시중당의 현판을 단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1637년 (인조15년) 자인현감이던 임선백에 의해 신관동에 세워졌으며 자인현의 정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금헌이라고 불렸으며 고을이 옮겨감에 따라 원당리와 북사리로 옮겨 지어졌습니다. 

시중당의 건물은 1870년(고종7년)에 세워졌으며 1910년에 행정구역 변경으로 하양과 자인, 경산이 통합되면서 자인중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36년 서림 서편으로 옮겨 세웠다가 1980년 계정숲의 한 장군 사당 옆에 옮겨 건립했습니다.

 




요산정으로도 불렸다는 시중당의 나무 현판은 1763년(영조39년)에 자인현감이던 정충언이 쓴 글씨라 합니다. 

여행하면서 약간 시간을 내어 들렸던 계정숲은 한 바퀴 도는데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전설과 문화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 장군과 누이의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왔던 것을 실체를 확인하고 계정숲에다 한장군묘와 사당이 세워지게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산 자인면 여행을 한다면 자투리 시간을 내어 제석사와 계정숲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계정숲은 1997년 12월 기념물 제123호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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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여행/경산가볼만한곳)구룡산 반룡사. 원효와 설총, 요석공주의 설화가 살아 숨쉬는 경산 구룡산 반룡사 여행.


경상북도 경산의 반룡사를 여행하고 왔습니다. 반룡사는 구룡산과 발백산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심산유곡에 둘러싸여 하늘만 빼꼼하 게 열려 선계가 따로 없는 곳에 자리했습니다. 반룡사로 이름한 사찰은 우리나라에 3곳 있으며 경북 고령 미숭산의 반룡사보다 더욱 유서 깊은 명찰입니다.





경산 반룡사 주소: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2

경산 반룡사 전화:053-852-1919


2016/02/06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 삼성현역사문화관. 경산시 남산면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의 삼성현역사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2편

2016/02/03 - (경북여행/경산여행)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삼성현역사문화관.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문화관에서 원효, 설총, 일연을 만나다. 1편

2016/01/23 - (경북여행/경산여행)경산 삼성산 산행. 원효, 설총, 일연선사의 고장 삼성현. 경산 삼성산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상대온천에서 온천산행 추천.

2016/11/10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여행. 가보지 않아도 가본것 같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분황사 석정, 화쟁국사비부, 보광전의 약사여래입상을 만나다.

2016/11/09 - (경주여행)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신라 최초의 석탑이자 유일한 경주 분황사 9층석탑을 여행하다. 분황사모전석탑




이곳 경산의 반룡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에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원효대사(617~686)께서 창건한 사찰입니다. 원효는 압량인 이곳 경산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조씨는 '유성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를 잉태해 밤나무가 많은 율곡을 지나다 갑자기 산통을 느껴 큰 밤나무 밑에서 원효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15세에 어머니를 갑자기 여의자 충격을 받아 출가 하게 됩니다. 661년 문무왕 1년에 의상과 당나라 유학길에서 무덤 속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고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초의 진리를 깨달아 그길로 유학길을 포기하고 혼자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원효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경주 분황사에 주석하면서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백성을 찾아다니는 불교 포교에 힘써 대승불교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원효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허락하려느냐, 내가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다듬고자 하는데”하며 노래를 하고 다녔지만, 태종무열왕(재위 654~661)만 원효의 뜻을 알고 그를 궁으로 오게 했습니다.

 


원효는 소식을 듣고 태종무열왕을 만나기 위해 궁으로 오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입고 있던 옷이 다 젖자 무열왕은 원효를 바로 요석궁에 보내어 젖은 옷을 말리게 했습니다. 이때 요석궁에는 과부가 된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날 원효는 요석공주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열 달 뒤 요석공주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분이 최치원과 함께 신라의 3문장가인 설총입니다. 원효는 그길로 파계하여 소성거사라 자신을 부르며 노래로서 민중 속을 파고들어 불법을 전파합니다.



요석공주는 설총을 원효의 고향인 이곳 경산에서 낳았으며 설총을 데리고 원효가 창건했다는 구룡산 반룡사에 머물렀습니다. 김춘추는 공주와 외손자가 보고 싶으면 수시로 왕후와 함께 구룡산의 고개를 넘어 반룡사를 찾았는데 태종무열왕이 넘었던 고개라 하여 지금까지도 왕재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어린 설총은 반룡사에서 성장하였으며 후에는 이두법을 집대성합니다.

 


원효가 창건했으며 설총과 요석공주가 머물렀던 반룡사는 태종무열왕의 후원을 등에 업고 대 사찰이 된 것은 자명한데 현재 반룡사는 오래된 문화재는 찾을 수 없고 가루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석물의 부재들만 천년 가람 반룡사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 원응국사가 이곳에 주석하였으며 고려 11대 문종 때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를 보면 모두 최근에 불사 되었으며 왜 오래된 건물은 하나도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반룡사는 고려말에 쳐들어 왔던 몽골과 1592년 조선의 임진왜란으로 한순간에 모두 불타버리자 1641년인 인조 19년에 계운과 명언 두 대사에 의해 다시 한 번 도약을 하며 산내 암자로 내원암, 벽운암, 대적암, 은선암, 안적암 등 다섯 암자가 중창 또는 창건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반룡사와 암자의 그 많은 당우는 모두 소실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몇 동의 당우로 겨우 명맥만 이어오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또다시 일어난 화재로 반룡사는 전부 불탔습니다. 현재 반룡사의 당우는 문화관광부와 경상북도, 경산시의 지원과 신도의 불심으로 하나하나 복원 중에 있습니다.

 




반룡사는 화재로 소실될 때 급한 나머지 대웅전의 삼존불중 목조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청도의 모 사찰에 옮기게 되었는데 되돌려 받지 못하였고 범종은 포항 보경사의 서운암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1991년에는 반룡사에 남아 있던 아미타불마저 도난당하는 수난을 당하며 아직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반룡사 앞에는 창건 당시 흔적인 많은 부재가 널브러져 진열되어 있습니다. 부재 하나하나가 당시 반룡사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주는 게 지금보면 모두 예사 모습이 아닙니다. 그만큼 반룡사는 신라 왕실의 기원사찰로서 대사찰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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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기장 장산 안적사. 꾀꼬리가 길을 막았다는 상스러운 곳 앵림산 안적사 조용한 절집 여행하기.


부산 기장군 장산의 깊은 골짜기에는 안적사라는 아담한 사찰이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며 창건연대는 신라 30대 문무왕 원년인 661년에 원효대사께서 창건을 했다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심과 가까운 사찰이지만 여느 심산유곡에 둥지를 튼 한적한 사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장산의 안적사는 신라시대 원효와 의상을 빼 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곳 안적사에는 두 스님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옵니다. 유명한 전국의 대찰과 꼭꼭 숨은 수도처인 암자 등에서는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창건 설화가 많이 전합니다.


그때인가? 알 수 없지만 두 분이 수도의 길을 떠나 전국의 명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발걸음은 동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곳 장산이 웅장하며 울창한 수림으로 뒤 덮여 명산에 반열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두 분이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골짜기를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꾀꼬리떼가 모여들어 스님의 앞을 막으며 어께와 팔에도 앉고 스스럼없이 노는 것을 보고 원효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안적사라 하였습니다.


또한, 두 분이 이곳 안적사 주위의 토굴에서 공부하며 누구든지 먼저 도를 깨우치면 만나자하고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어느 날 용맹정진하던 의상 앞에 천녀가 나타나 천공을 매일 올리니 의기양양해진 의상은 원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천공을 같이하자며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천공을 가지고 천녀가 나타나지 않아 원효는 돌아가고 그제야 천공을 든 천녀가 나타났습니다. 의상은 천녀를 나무라니 가람주위로 화광이 가득 차 있어 들어 올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원효는 의상의 교만한 마음을 미리 알고 ‘금강삼매화’를 놓아 깨우치게 하였습니다. 이에 의상은 원효의 도력이 자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사형으로 극진히 모셨다합니다.

지금의 안적사는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천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만 범어사 묘전스님께서 중건하였고 경허, 해령스님이 3차 중수를 거쳐 1973년 남곡덕명 스님에 의해 현재의 대가람인 안적사를 이루었습니다. 



문화재 등은 없지만 도심과 가까운 곳이라 번잡할 것 같지만 심산유곡에 찾아든 느낌이 들 정도로 아늑한 곳 안적사.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찾아본다면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위로 용궁사가 있어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꾀꼬리가 길을 막았다는 뜻으로 안적사가 있는 산을 앵림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앵림산 안적사’가 되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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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4 - (부산맛집/기장일광맛집)일광당 찐빵·손만두. 기장 일광 해변길에 옛날 찐빵이 맛있는 일광당찐빵·손만두


2015/02/09 - (부산맛집/기장맛집)기장맛집 죽성리 드림성당맛집 기장밀면 전문점. 부산하면 역시 밀면 아잉교.기장밀면


2015/02/04 - (부산여행/기장정관여행)정관박물관.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 정관박물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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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4 - (부산여행/기장군여행)기장팔경중 1경 달음산 산행. 해맞이 산행지로 유명한 기장 달음산을 오르다.


2015/01/12 - (부산맛집/기장맛집)롯데아울렛 동부산점 맛집 바르미 샤브샤브 칼국수, 쇼핑하다 배고플 때 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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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1 - (부산여행/기장여행)갈맷길과 함께 걷는 부산 근교산 회동수원지~고름재~도독고산


2013/03/31 - (부산여행/기장여행)부산 근교 진달래 산행지 추천 백운산~망월산~거문산


2013/02/05 - (부산여행/기장여행)근교산 산행 달음산~철마산종주.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는 15km 부산 근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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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금정구여행)금정산 미륵사. 마음이 맑은 사람만 보인다는 코끼리를 닮은 바위를 찾아 보세요. 금정산 미륵사.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는 많은 산내 암자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사찰이 범어사와 미륵사입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범어사야 두말하면 잔소리로 그만큼 유명하여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찰이며. 또 한 미륵사는 금정산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절집으로 서로 바늘과 실로 부르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지금이야 금정산 북문까지 임도길이 뚫여 미륵사 가는 길이 편해졌지만 그 이전에는 대단한 불심이 아니면 찾는 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사찰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륵사를 등지고 있는 미륵봉에 올라보면 신선의 세계가 이런 곳이 구나하며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누구나 저절로 득도를 할 수 있을 그런 곳 같습니다.

 


 

 그럼 금정산 미륵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통일 신라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의 유래는 암자 뒤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한 큰 바위에서 나왔는데 염화전 뒤를 두른 큰 바위를 좌선바위라 합니다.

 

해가 지면서 어스름이 찾아 들 면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 만든 작은 틈새까지도 삼켜 버립니다. 이때쯤이면 그 큰 바위가 좌선하는 스님의 형상으로 바뀌며 뒤의 큰 바위인 미륵봉을 향해 스님이 좌선하는 모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원효대사가 이곳에 미륵암을 창건하였습니다.

 

 미륵사는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정면과 측면 각3칸으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1952년 중수되었습니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 삼존불을 모셨는데 석가여래좌우로 미륵보살과 보현보살을 1985년에 봉안하였습니다. 1974년 조성한 후불탱이 삼존불 뒤로 배치를 하였고 신중탱과 지중탱 등 모두 석정 스님의 작품입니다.

 

 

 

 

 

 미륵암에는 쌀굴과 장군기를 꽂았다는 특이한 바위구멍이 두 개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오른쪽 칠성각 쪽 계단 중간쯤에 쌀바위 안내판이 보이며 바위틈에 구멍이 뚫여 있습니다.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그날 먹을 끼니만큼만 쌀이 떨어져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작대기로 구멍을 쑤셨는데 그 뒤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합니다. 그 물이 현재 미륵사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염화전에서 왼쪽 독성각 계단을 올라 갑니다. 미륵사에서 가장 멋진 경관을 보여 주는 곳으로 원효께서도 아마 이곳에 올라 참선을 하였을 것 같습니다. 독성각 앞 쪽에 둥근 파이프가 꽂혔던 흔적 같은 구멍이 있습니다. 이곳에 원효께서 장군기를 꽂았다합니다.

 

원효대사께서 미륵사에 주석을 할 때입니다. 왜적 5만 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친 뒤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내는 것을 스님은 혜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효스님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 하여 탑 앞에 나란히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바위에는 신라의 장군기를 꼽았는데 그 장군기는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두 명의 왜놈 첩자가 장군기를 보고 원효가 있는 미륵암까지 올라 왔습니다. 원효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조르니 첩자는 살려 달라며 애걸복걸하여 호리병 3개를 너네 대장에게 갖다 주라며 돌려보냈습니다. 화가 머리 꼭대기 까지 오른 적장은 부하가 가져 온 호리병을 단칼에 내려쳤고 그 순간 적장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합니다. 독성각 앞 바위의 구멍은 다시 장군기를 꽂힐 날을 기다리는지 뚜렷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 바위에는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인지 부처님의 광배를 나타낸 것인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광배 같기도 합니다. 독성각 건물로 현재에는 가려져 있어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구멍을 내어 그 바위를 뜯어 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금정산 미륵사의 당우는 모두 근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알려진 뚜렷한 문화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와 함께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미륵사의 모습을 상상 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미륵봉아래 바위 굴속 연못에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 미륵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또한 염화전 뒤의 암봉이 마치 화관으을 쓴 미륵불 모습을 하고 있어 사람들에게 신령을 기운을 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봉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마음이 맑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가 일곱 개 있습니다. 코끼리는 상스러운 동물이라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영물입니다. 이 일곱개의 코끼리 바위를 모두 찾는다면 당신은 곧 마음이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분입니다. 혹 미륵사에 가게되면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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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0 - 먹물 먹은 붓끝의 금정산을 호포에서 올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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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거창여행)우두산 고견사. 거창을 대표하는 고견사 원효, 의상, 최치원의 전설이 남아 있습니다. 거창 고견사. 


경남 거창에는 9할이 산으로 이루어 졌다할 정도로 산천지입니다. 그만큼 많은 명산 중에서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춘 산이 소머리산인 우두산으로 꼽고 있습니다. 별유산으로 한때 불렸지만 제 이름찾기 일환으로 우두산은 국립공원 가야산과 어께를 맞대고 있으며 우두산 정상부 일부 또한 가야산 국립공원에 포함된 국립공원급의 산세입니다.






우두산에는 의상봉과 장군봉, 바리봉등의 산세로 사계절 내내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이런 명산에는 반드시 명찰이 있습니다. 거창을 대표하는 사찰인 고견사는 원효대사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특이한것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의상봉 아래 고견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는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전생의 부부 같습니다. 반드시 의상이 있는 곳에 원효가 있고 원효가 있는 곳에 의상이 있을 정도로 두 분은 바늘과 실의 관계처럼 이곳에서도 서로 사이좋게 함께 한 모습입니다.







고견사는 677년인 문무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견암사에서 그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견암사를 창건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이미 이곳을 다녀간 곳 이었다 합니다.






원효는 이곳에 절을 짓고 견암사라 하였으며 견암, 견암선사로도 불렀습니다. 고려를 멸망시킨 태조이성계가 전지 1백5십결을 내려 매년2월과 10월에 고려 왕조의 명복을 비는 수륙대재를 지냈게 하였다는 고견사.


 



가야산과 이곳 우두산 고견사는 신라말의 문인이자 대유학자인 최치원의 발자취가 찐하게 남아 있습니다.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고견사에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절 입구에 1000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고가 28m며 둘레는 6.01m의 초대형 급으로 2000년 3월에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고견사는 1358년 공민왕 7년에 지희스님이 중수를 하였고 6.25 한국전쟁때 폐허가 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가 되었습니다. 1988년 대대적인 중창을 하면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조 1630년인 인조때 만들어진 보물 제 1700호 고견사 동종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 고견사 석불, 숙종대왕이 원효대사를 기려 내렸다는 강생원의 운영당 현판이 남아 있으며 은행나무, 의상대사의 전설이 있는 쌀굴, 20m의 미끈한 고견폭포도 고견사의 볼거리입니다.



























































































2014/01/09 - (경남여행/거창가조여행)우두산 고견사. 예술성이 뛰어난 고견사 동종 보고 왔습니다. 고견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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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1500년 전 원효가 창건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는  가야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26대 진평왕(538년)때 증법국사에 의해 창건된 관룡사는 원효대사가 화왕산 산상의 월영삼지의 연못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관룡사라칭하였다. 원효가 제자 1천여명에게 화엄경을 가르쳤던 곳으로 신라8대 사찰의 하나다. 관룡사는 화왕산군립공원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봄에는 진달레와 가을의 억새로 전국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곳으로 화왕산과 함께 늘상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보물 4점과 지방문화재 5점 

 

특히 압권은 사찰 뒤로 펼쳐지는 병풍바위가 설악산의 천화대나 월출산의 한 부분을 잘라온 것 같은 절경이다. 관룡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대웅전(보물 제212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의 4점의 보물과 약사전 삼층석탑(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원음각등 5점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지금 부터 관룡사의 문화재를 하나하나 찾아가 보자.

 

 


 

 

관룡사를 들어서면 먼저 작은 출입구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서면 통과하게 되어 있는 문으로 이전에는 이쪽문으로 출입을 하였던 것 같다. 아담한 문을 지나면 옛 빗돌이 서 있고 관룡사와 병풍암이 펼쳐진다.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느낌이다.

 

 

 

 

 

 

 

 

 화왕산 관룡사란 황금색의 현판이 빛을 발한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원음각

 

관룡사 원음각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40호로 사찰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범종각이 있다. 정면에 2층으로 된 건물이 원음각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면 1층으로 보이는 건물은 1634년인 인조12년에 처음 세워졌다. 원음각에 있던 상량문을 보면 영조39년인 1763년에 크게 중건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숙종30년인 1704년에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다시 세운것으로 보여 진다. 정면3칸, 옆면2칸의 이익공계로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건물의 용도는 불구를 보관하거나 설법장소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대웅전

 

대웅이란 부처님의 몸을 의미하는데 이 건물은  1965년 당시에 해체를 하여 복원을 하였다. 복원때 1749년 중창을 할때의 기록들이 상량문에서 발견되었는데 숙종30년인 1704년 대홍수로 인해 관룡사는 산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것 같다. 그때 관룡사는 많은 건물들이 훼손되어 1749년에 보수가 이루어 진것으로 보인다. 처음 대웅전의 건립은 1401년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것을 1617년~1618년에 다시 세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정면3칸 옆면3칸의 다포식 건물로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은 형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르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점은 아랫 받침대 네면에 코끼리의 두눈을 형상화한 안상이 두개씩 조각되어 있다. 이는 장식적 의미이며 탑의 지대석을 따로 세우지 않고 자연 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방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의 전통을 계승하였다.   ㅣ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정면과 옆면이 각각 1칸식인 맞배지붕이다. 주위의 건물에 비해 관룡사 약사전은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물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시기를 보면 국보로 1404년 경에 지어진 송광사 극락전과 1473년 경에 중건된  도갑사 해탈문으로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건축 양식을 보여 주며 15세기로 보여진다.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약사전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519호로 고려시대 불상이다. 머리위의 둥근 육계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반달 구슬 계주가 표현되었고 법의의 겹쳐진 부분은 선각으로만 표현 되었다. 그리고 불상을 안치한 대좌를 보면은 석공이 신라 불상을 계승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대좌의 조성연대는 중좌에 나와 있는데 772년 혜공왕 8년으로 명문이 되어 있어 서로 만든 시기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관룡사는 많은 도지정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관룡사를 방문하여 병풍바위의 절경과 반야용선을 의미하는 용선대에서 석조여래좌상을 보며 타니타닉호를 타고 부처님의 세계로 가 보는 여행은 어떨지요.

 

 

 

 

 

 

 

 

 

 

 

 

 

 

 

 

 

 

 

 

 

 

 

 

 

 

 

 

 

 

 

☞(경남여행/창녕여행)창녕 화왕산 관룡사. 관룡사 교통편

 

일단 창녕으로 가야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을 나와 군내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오른쪽으로 사거리를 건너 150m 걸어가면 오른편에 영신버스정류장이 있다. 그곳에서 옥천행 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7:25, 10:30, 12:30 옥천에서 창녕으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2:40, 4:20, 6:30(막차). 부산에서 출발시에는 서부터미널에서 창녕행7시부터 5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한다. 창녕에서 오전10:30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산에서 오전7:50분 버스는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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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산시 만나는 편백숲의 장관

 

 

☞(양산산행) 천성산, 천성산 산명의 유래...

지금의 천성산은 옛 원효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양산 지명 위원회에서 원효산을 천성산으로 바꾸어 부르며 국립지리원에 산명 정정 요청을 하여 받아 들여져 완전한 천성산이 된 것이다. 예전의 천성산은 천성산 2봉으로 강등 아닌 강등이 된 샘이다. 왜 이산을 천성산이라 부르게 되었까. 원효대사가 말년을 이웃한 대운산에서 수도 정진을 하였다. 


그때 혜안으로 들여다 보니 중국의 종남산 태화사 승려들이 법당 뒤에 산사태로가 일어나 곧 매몰될 처지에 놓인 것을 보고 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부엌문을 때어내어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救衆)’ 이라 적은 뒤 태화사 방향으로 날려 보냈다. 부엌문은 태화사 절 마당위에서 빙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본 천명의 대중들은 무엇인가 싶어 밖으로 우루루 몰려 나오니 그때 법당 뒤에 산태가 일어나 그들이 머물렀던 법당을 삼켜버린 것이었다. 









 천성산 화엄벌 들머리인 홍룡사 입구 주차장

 



이에 일천의 대중들은 떨어진 판자를 보니 "‘해동원효척판구중“이라 ’바다 건너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는 글귀를 보고 자신을 구해준 원효에게 찾아가 제자가 되기로 하였다. 그래서 일천의 승려가 이곳 천성산에 들어와 천명 모두 성인이 되었다하여 천성산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이 산을 원적산으로 불렀다. 원효가 천명의 대중을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원효산 천성산으로 부르던 것을 지금은 옛 원효산 정상을 천성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경로

천성산 산행은 홍룡사 입구를 출발해 계곡~홍룡사 갈림길~홍룡사·홍룡폭포(~다시 홍룡사 갈림길)~삼거리~쉼터바위~화엄늪 삼거리~원효암 삼거리~천성산 제2봉·홍룡사 삼거리~옛 군부대 입구 도로~원효암~전망대~쉼터바위~편백숲을 거쳐 홍룡사 주차장에서 마무리한다. 총 산행거리는 10㎞ 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4시간 30분,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30분 걸린다.




 홍룡폭포의 장관.  관음전 옆으로 떨어지는 물중기가 시원하다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산행기

산행은 홍룡교를 건넌 지점에서 출발한다. 홍룡사와 원효암, 야영장 갈림길과 종 모양으로 유명한 화장실이 선 곳에 올라서기 직전이다. 홍룡교 건너 왼쪽 계곡 옆에 큰 고목과 이정표가 서 있다. 직진은 원효암과 홍룡사가 표기돼 있고 답사로는 왼쪽 화엄늪(2.9㎞) 방향이다. 계곡 옆으로 내려선 뒤 건너편 '상수원보호구역 절대출입금지' 안내문이 붙은 지계곡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간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었을 때는 홍룡사까지 도로를 따라 들어가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안전하다. 두 계곡 사이 능선으로 들어서면 처음엔 비교적 완만하고 넓은 길이 이어진다. 5~6분 걸으면 참나무 숲을 벗어나며 하늘이 트인다. 2~3분 가면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이는데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잠시 더 올라가면 삼거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샛길이 있다. 나무 사이로 홍룡사가 보인다. 이 길로 100m가량 내려가면 홍룡사다.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산행기


홍룡사에 들러는 이유는 홍룡폭포를 보기 위해서다. 대웅전 앞을 지나 수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계단을 오른다. 잠시 뒤 수십 m 높이의 홍룡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장마철 때 맞춰 비가 내리는 중이라 수량이 많아 평소 보기 어려운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답사 때는 10여 명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나와 폭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물이 쏟아지는 폭포 왼쪽의 암벽은 관농대라 불린다. 길을 되짚어 산길로 돌아간다. 좌우로 흐르는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너른 능선길을 걷는다. 4~5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오르막으로 간다. 100m쯤 가면 나무계단이 나오며 본격적인 천성산 산행이 시작 된다 산길이 가팔라진다. 40분 가까이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면 경사가 다소 완만해지고 길 왼쪽에 어른 대여섯 명이 앉을 만한 큰 바위가 나타난다.



홍룡사 전경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산행기

 


쉼터바위를 지나면 경사가 완만해진다. 오른쪽으로 멀리 구름 사이로 천성산 정상부가 보인다. 5분가량 걸으면 나무가 사라지고 시야가 탁 트이는 화엄늪 삼거리에 닿는다. 화엄늪의 녹색 억새밭이 눈앞에 좌우로 펼쳐진다. 로프로 만든 울타리가 죽 이어진다. 삼거리에는 '양산 17-1' 119 표지판이 있다. 답사로는 여기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길은 울타리를 따라 억새밭을 바라보며 완만한 오르막이다. 5분 정도 걸으면 '화엄늪 습지보호구역' 대형 안내판을 지나고 100m쯤 더 가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적힌 나무기둥 좌우로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다. 오른쪽은 원효암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답사로는 왼쪽 오르막이다. 천성산 정상을 완전히 돌아서 원효암으로 가기위해서이다. 조금 가팔라진 오르막을 잠시 걸으면 군부대가 설치한 철조망이 나타난다.




 

 

 

 

 

 

  천성산화엄벌 원효가 천명의 제자에게 화엄경을 설법한 자리라하여 화엄벌.습지보호구역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산행기

이후로는 철조망을 따라 게곡을 건너면서 능선에 오를 때 까지 따라간다. 옛 군부대에서 초병이 나와 지키던 삼거리길. 지금은 폐쇄된 군부대로 황량하다. 직진하는 왼쪽 길은 천성산 제2봉(2.0㎞)이고 답사로는 오른쪽 홍룡사(3.4㎞) 방향이다. 15분 정도면 나무다리를 건너 옛 군부대로 올라가는 도로에 내려선다. 군부대는 폐쇄됐지만 아직 정상부가 개방되지 않고 있다.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철망을 둘러친 작은 건물이 나온다. 여기서 20m쯤 아래 길이 왼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잠시 뒤면 원효암 들어가는 임도로 내려선다. 오른쪽 철문을 지나 3~4분이면 이정표가 선 원효암 입구다. 직진하면 원효암 마당을 지나 화엄늪(1.7㎞), 홍룡사(1.8㎞)로 가고 홍룡사 주차장으로 향하며 답사로는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그 전에 원효대사의 창건설화가 있는 원효암을 구경하자.




 

 

 올 봄의 화엄벌 전경 철쭉이 장관이다.

 

 

 

 

 

 

 

 

 천성산의 최고지점 삼거리로 화엄벌 원효암 천성산2봉으로 갈라진다.


 

원효암에서 홍룡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예전에 군부대로 올라가는 임도가 만들어지기 전 오르내리던 길이다. 그래선지 여느 산길과 달리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대부분 등산로가 가장 짧은 길을 찾아 가파르게 일직선으로 뻗는 것과는 달리 내내 갈지자로 여유롭게 길이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널찍하게 만들어진 길은 두 사람이 함께 걸어도 그다지 비좁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원효암 입구의 석등과 돌사자 있는 곳에서 비스듬히 난 산길로 내려선다. 홍룡사 주차장까지는 2.3㎞로 표시돼 있다. 5분가량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바위가 불쑥 튀어나온 전망대가 있다. 홍룡사로 올라오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것이 보인다. 100m가량 더 내려가면 어른 열 명 정도가 앉아 쉴 수 있는 너럭바위가 있다. 참나무 울창한 길은 크게 가파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다. 5~6분 더 내려가면 큰 무덤을 지나 바위 전망대가 나오고 그 아래로는 조금 가파른 길에 로프를 매어 두었다.




 

 

 

 

 

 

 원효대사 창건설화가 있는 원효암

 

 

15분 정도면 하산 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편백숲을 지난다. 5분가량 걸어 내려가는 동안 오른쪽 사면에 잘 가꾼 편백이 시원하게 뻗은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도열한 편백을 지나 산책하듯 걸어 내려가면 곧 나무다리를 건넌다. 계곡 주위에 빼곡히 들어선 텐트들을 지나면 홍룡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한다.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교통편

이번 코스는 원점회귀여서 승용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양산IC에서 내려 통도사·언양 방향으로 간다. 2㎞ 정도 가서 고려제강을 지나면 양산대로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홍룡사·홍룡폭포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홍룡교를 지나 범종화장실 위쪽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한 뒤 홍룡교 쪽으로 내려와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하산 때는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내려 출발지점까지 1시간가량 걸어야 한다. 명륜동에서 출발하는 양산 12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대성' 버스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버스에서 내리면 홍룡사 안내판을 따라 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 계속 걸어가면 된다.

 

 

  ☞(양산산행) 천성산산행, 천성산 산행 일심대

성산교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있다. 내려서서 맞은편 정자 아래 보이는 암벽이 일심대(一心臺)다. 원산 이인정이 이곳에서 대를 쌓고 즐겼다 한다. 이개울 가에 대석마을 주민이 소원 성취와 마을이 무사하길 기원하는 제당을 정해 두었는데 여름이면 큰 나무 그늘이 시원해 주민뿐 아니라 유람객이 쉬어가곤 하던 곳이다. 개울의 암반에서 바라보면 일심대라는 글자와 이름들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홍룡사 입구에 닿기 직전에 건너는 홍룡교 아래에도 큰 바위에 제일강산(第一江山)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다. 이전에는 잘 보이는 위치였겠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아래에 숨어버렸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먹거리인 국밥집으로 간판이름이 마음에 쏙 와 닫는다. ‘전통 손 순대 국밥(055-374-5677)’으로 식당 한켠에 아나로그로 작성된 글을 볼 수 있는데 사용하는 순대는 도축장에서 신선한 상태로 직접 가지고 와 깨끗하게 손질을 한 후 찹쌀등 17가지 재료를 버무려 직접 손으로 내장에 속을 집어 전통 방식 그대로 가마솥에 찐다는 내용으로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 보인다. 홍룡사 입구 대석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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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에 가면 한때 가장 많이 보는게 '** 왔다 간다', '** 사랑한다'등 소원을 비는 글귀를 바위나 나무에 깨알 같이 적어 놓은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조금 잠잠하나 싶었다. 양산 홍룡사 대웅전 앞에는 그야 말로 직경 15cm 이상은 족히 되는 굵은 대나무가 절 앞을 에워 싸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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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릴때 마다 사각사각 내는 소리는 그 어느 소리 보다도 깨끗하며 세속의 찌든 귀를 씻어 내준다. 그런데 이 대나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예리한 물건으로 글이나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대나무가 무슨 죄가 있기에 이리 끍어서 상처를 주는지....참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런다고 안될게 되는지 말이다. 이 곳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역사적인 전통사찰로 홍룡폭포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사시사철 끓임없이 찾는 곳이다. 이런 곳에다 이런 낙서를 하여 다른 탐방객들의 눈살을 찌푸르게 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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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하다보면 그 지자체 단체장의 자연에 관한 상식을 옅볼 수 가 있다. 쉽게 말하면 단체장의 자연보호 수준을 볼 수 있는데 양산과 울산광역시의 단체장은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은 눈 곱 만큼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 답사한 대운산은 실직적으로 보면 너른 품은 부산 울산 양산이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최고봉의 정상은 양산과 울산이 서로 양분을 하고 있다. 서쪽의 양산은 동쪽의 울산시 보다는 산 세면이라던지 계곡미에서는 좀 떨어지지만 천성산과 함께 많은 시민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산인데 최근에 이 대운산을 심한말로 걸레로 만들어 놓았다. 산 전체를 임도를 돌려 사과 껍질 깍듯이 산을 헤집어 놓아 경악을 감출 수 없는데 이번 여름철 장마에 온전하게 대운산이 남아날지 심히 의심스러우며 반대편의 울산쪽은 또 어떠한가. 공업 도시 답 게 이곳은 온 산을 하나의 첨단시설을 덮어 쓴 로봇 산으로 만들려는지 대운산 정상을 위시하여 2봉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에다 돈을 얼마나 발라 놓았는지 쉽게 말하면 등산화를 벗어 두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다녀야 할 형편이다. 얼마나 산을 보호 한답시고 이런 식으로 데크로 산길 전체를 덮는지 모르지만 그런다고 등산로가 보호가 되는지 묻고 싶다. 데크 밑을 보면은 그 곳의 환경은 생각을해 보았는지 또 아니면 토사 유출을 막는다고 옆의 나무를 잘라 나무계단을 막는 등 너무 쉽게 자연을 보호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운산의 산행은 철쭉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요즘 변덕이 심한 날씨로 인해 철쭉 개화시기를 맞추기가 힘이 든다. 오늘 사진은 일주일 전 취재 산행임을 밝히며 이번 주의 대운산 산행에서 철쭉을 조금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를 해본다. 전체적인 산행 코스는 양산 서창의 그린빌아파트를 출발해 전망대 산불초소~전망 바위봉(GPS 388m)~운동시설~산불지역~대추남만디(대추봉·634m)~범솔밭 임도 삼거리~헬기장 삼거리~대운산 정상~(헬기장 삼거리)~용당동 갈림길~상대봉 입구~대운산제2·자연농원 삼거리~안부 갈림길~무명폭포를 거쳐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내광마을에서 마무리한다. 이번 답사의 총 산행거리는 11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30~5시간,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30분이 걸린다.

 

 

 

 

 

 

 

 

 

 

산행은 그린빌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오른쪽이 그린빌, 왼쪽이 한내들 아파트이다. 한내들아파트와 그린빌아파트 사이로 200m가량 올라가면 도로와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30m 가면 왼쪽으로 넓은 흙길의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 이정표(대운산 정상 4.3, 약수터 0.2)가 서 있다. 너른 길을 따라 200m 가면 벤치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계곡을 건넌다. 약수터는 이곳 물가에 있다. 계곡을 건너 산길이 이어진다. 체육시설물이 들어 선 곳을 지나면 주 능선에 올라선다. 오른쪽은 명곡방향 또는 푸르지오 아파트로 내려 가진다. 여기서 왼쪽으로 올라간다. 곧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고 건너편 천성산과 웅상읍의 모습이 시원하다.

 

 

 

 

 

 

 

 

 

서창 주민들이 많이 올라서 인지 여기저기 많은 길이 나 있다. 다 만나는 길이라 신경 쓸 것이 없다. 그저 능선 따라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생각하면 된다. 삼각점(경남-188)이 설치 된 곳에 올라서는데 소나무의 모습들이 굉장히 특이하다. 잠시 뒤 바위 봉우리(388m) 전망대다. 정면으로 대운산에서 천성산으로 연결되는 용천북지맥과 시명산이 보인다. 발아래 깊은 골은 시명골로 명곡으로 흘러간다. 여기선 직진해서 내려간다. 이곳을 지나면 임도를 만나고 오른쪽 운동기구 방향을 보며간다. 운동시설을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쌍 무덤이 보인다. 이곳에서 쌍 무덤을 왼쪽을 돌아 능선을 따라간다. 임도를 따라가도 나중에 다시 만나는데 범솔밭임도 삼거리로 올라가진다. 이번 산행에서 최고의 오르막이 기다린다. 10여 분 오르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산불의 흔적이 시작된다. 한동안 이어지는데 급한 오르막이며 산불지역을 보니 화가 치미르 오른다. 사소한 부주의에 수십년 아니 수백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고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양산시 웅상읍과 천성산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면 대추남만디 정상 직전 갈리길에 오른다. 여기서 왼쪽 대추남 만디에 잠시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 이정표 옆 표지목에 친절하게 대추남(나무)만디(봉우리)라고 뜻을 풀어놓았다. 서창 쪽으로 조망이 트이지만 올라올때의 조망과 별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서창 대동아파트와 용당동으로 하산할 수 있다. 대운산 방향은 다시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 직진한다.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가 특이한 소나무를 지나고 5분이면 이정표가 선 시명사 삼거리다. 오른쪽은 시명사(1.5) 방향이고 답사로는 왼쪽이다. 다시 임도 끝 지점과 만난다. 119 표지목(대운산 2-19)이 있는 곳에서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을 지나면 갈림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바위 쉼터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조금전 왼쪽 갈림길과 다시 만나고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틀어 가면 세 갈래 임도가 만나는 범솔밭 삼거리다.  이곳이 쌍 무덤 갈림길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 오면 여기서 만난다.  시명산 산행과 시명사로 하산하는 길이 오른쪽 임도 표지석 뒤로 열려 있다. 정면으로 올라가는 임도는 대운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끝난다.

 

 

 

 

 


 

 

 

 

 

 


 

주등산로는 임도를 몇 차례 가로지르면서 이어진다. 곧 임도를 가로질러 간다. 침목 계단을 오른 이후로는 임도를 오른쪽 아래에 두고 정상 아래까지 산길 따라 올라간다. 10여 분 올라가면 전망대와 용당동(3.8)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직진이다. 임도는 여기에서 끝나고 헬기장이 나타난다. 둘레에 연분홍 철쭉이 피어 있는 대운산 2봉 갈림길이다. 직진하여 나무 계단 을 100m 올라가면 대운산 정상이다. 올라가는 내내 좌우로 화사한 철쭉이 터널처럼 에워싸고 있다. 표지석을 둘러싼 정상부 전체가 나무 데크로 덮여 있다. 답사로는 올라온 길을 되돌아 헬기장까지 내려간다. 오른쪽 대운산 제2(1.6) 방향으로 접어든다.

 

 

 

 

 

 

 

 

 

잠시 나무 계단을 내려서서 200m가량 가면 용당동(4), 탑골, 대운산 자연 휴양림 삼거리다. 직진해서 계속 내려간다. 목재 데크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답사로는 정면의 데크를 오르면 된다. 다시 상대봉 입구 철쭉제 행사장을 지난다. 행사장 근처엔 약수터가 있다. 잠시 뒤 삼거리다. 직진하면 제2봉이고 답사로는 왼쪽 '대운산자연농원·휴휴사' 방향의 임도를 따라간다. 구불구불한 임도 길이지만 울울창창한 나무들로 인해 지겹지 않으며 20여분이면 안부 갈림길이다. 이곳이 일명 상대봉(668m)에서 바로 내려서면 만나는 지점이다. 대운산자연농원으로 내려가는 임도에는 콘크리트 포장이 시작되게 되는데 이곳에서 맨 오른쪽 임도형의 소로를 찾아 들어가야 내광마을로 갈 수 있다.

 

 

 

 

 

사면을 따라 난 길을 10분가량 가다 보면 길이 오른쪽으로 90도 꺾이면서 내려간다. 이곳을 벗어나면 오솔길로 연결되고 우측으로 계곡이 나타난다. 광청골 상류로 알려지지 않은 계곡이지만 연이은 폭포와 소가 장관을 이룬다. 경사지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레 10분 정도 내려가면 오른쪽 아래 높이 5m가량의 무명폭포가 바위 뒤에 숨어 장관이다. 이곳을 지나면 보타사로 오르는 포장도와 만난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보명사를 지나고 한적한 도로를 따라 35분 내려가면 내광마을 앞 큰 도로다.

 

 

 

 

 

교통편

도시철도 1호선 노포동역 앞에서 301번 시내버스를 이용해 서창의 '그린빌아파트'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40분 소요.

 

날머리인 내광마을에서는 507번 울산 시내버스를 타고 남창까지 가서 부산행 열차 편으로 갈아타는 것이 편리하다. 내광마을 출발은 오후 145, 445, 810(막차)으로 '남창 시장앞에서 내리면 울산에서 해운대행 버스를 이용해도 되고 또는 남창역까지는 금방이다. 445분 버스 출발 시각에 맞춰 산행을 마무리하는 게 좋다. 남창역에서 부전역으로 가는 열차는 오후 527, 69, 740분에 있다.

 

 

 

 

 먹을 만한 맛집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역, 그 앞에는 남창 시장이 있다. 남창 옹기종기로 이름을 바뀌었다는곳, 이곳은 예로부터 외고산의 옹기마을에서 구워 온 옹기의 집산지로 인해 특화시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장터의 이름도 최근에 옹기종기란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이곳 남창 우시장은 140년 전통의 선지국밥으로 지금도 약 15군데가 성업을 하고 있다. 소의 부산물로 만들어 지는 남창의 선지국밥은 그 명성이 자자하여 일부로 먹으러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골 전통시장도 둘러 볼 겸 겸사겸사 여유를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다. 남창 시장에 왔어 먹지 않고 가면 후회한다는 선지국밥. 그 많은 국밥집 중에서 전통의 선지 국밥집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깔끔해 보이는 장터국밥집으로 찾아 갔다.

이름처럼 이곳이 옛 남창장터이니까 이름대로 옛날부터 해온 곳이 아닐까 싶어 전에부터 찾아간 집이라 이번에도 역시 고고 ... 일행 중에 선지국밥을 안 먹는 분이 있어 소머리 곰탕과 함께 주문을 하였다. 딸려 나오는 밑반찬은 부추와 김치 등으로 깔끔하니 먹을 수 있다.

선지 특유의 냄새로 인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데 선지의 효능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어 몸을 도운 다는 의미로 남창의 맛집 선지국밥 한 그릇을 하고 돌아오면 좋을 것 같다. 먹고 난 뒤 남창 시장도 한바퀴 돌고 하면 더욱 풍성한 나들이가 될 것이다. 남창시장 장날은 3일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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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족산 철쭉 DB사진

 



 

 

 

 

 

 

5월은 계절의 여왕이며 철쭉이 온 산하를 덮는다. 부산 인근에서도 많은 철쭉 산행지가 있다 가까이는 금정산부터 천성산 화엄벌, 대운산, 그리고 영남알프스 고헌산등 보성의 산보다는 규모면에는 작지만 그래도 철쭉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요번에는 가깝게 다녀오고 문화재도 보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정족산을 소개한다. 천성산과 이웃한 정족산은 영남 알프스 영축산에서 바통을 받아 천성산으로 넘겨 주는 중요한 가교역할을 한다 정상 아래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공원묘지가 산 허리를 감싸고 있어 항상 까마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산이다. 그래서 철쭉이 더 붉게 타 오를까. 전체적인 산행 코스는 일단 버스에서 내리면 용연으로 여기서 내원사 매표소까지는 25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매표소에서 노전암 방향으로 길을 잡아 성불암 입구 삼거리~노전암 입구~341m봉~대성암 갈림길~정족산 정상~철쭉 군락지~임도~무제치늪 3.4 직전 사거리~무제치늪 1.2 갈림길~664m봉~운흥사지 부도~운흥사지를 거쳐 괴천 버스정류장에서 마무리한다. 총 산행거리는 15㎞ 정도로 순수 산행시간은 4시간30분에서 5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5시간30분에서 6시간 걸린다.

 

 

 

 

 

 

 

 

 

 

버스에서 내려 상리천을 따라 내원사까지 들어가 내원사를 들어설 때는 어른 2000원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한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심성교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면 산신각과 내원사로 향하는 길로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산신각d에는 원효가 당나라 승려 일천명과 함께 이곳으로 들어오는데 원적산(천성산의 옛이름) 산신령이 친히 마중을 나왔다는 자리가 현재 산신각이 있는 자리로 원효대사가 세웠다 한다. 산신각 앞의 700년 된 보호수인 소나무도 볼거리로 잠시 보고 간다. 다리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면 20여 개의 지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답사로는 이정표의 왼쪽을 가르키는 노전암 짚북재 성불암 방향인 왼쪽이다.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나무 데크를 따라 50m쯤 간 뒤 다리를 건넌다. 잠시 뒤면 '성불암 입구'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서 계곡 오른쪽은 짚북재와 천성산 방향으로 가게 된다. 정족산 방향은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 간다.

 

 

 

 

 

 

 

 

계곡을 따라 살짝살짝 굽이치는 길이 운치 있다. 3~4분 가면 '노전'이라 새긴 돌기둥과 이정표를 지난다. 이정표 뒤로 올라가는 산길은 금봉암과 정족산으로 이어진다. 정면에 천성산 공룡능선의 뾰족한 바위 봉우리들이 바라보이고 철망문을 통과하면 다리를 건넌다. 이곳에 공룡능선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다. 정면으로 치고 오르는 산길로 공룡능선 산길은 이 근방에서 험하기로 악명이 높다. 왼쪽 노전암 방향은 너른 길이다. 또 한 번 다리를 건너 10분가량이면 산하마을. 다리 앞에 이정표가 서 있는 노전암 입구다. 잠시 노전암을 둘러보고 간다. 노전암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돼 있다. 다시 나와 다리를 건넌다. 건너자마자 119 표지목(양산 11-1)이 서 있다. 표지목 왼쪽의 산길 오르막으로 간다. 오른쪽은 상리천을 따라 대성암, 안적암, 주남고개등으로 이어지는 기존 산길이다. 지금까지의 산책길 같은 너른 길 대신 왼쪽 능선 길은 본격적인 산길이다.

 

 

 

 

 

 

 

초반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길은 능선에 올라서고 이내 경사가 누그러지고 평탄하다. 신록의 계절 답게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숲 사이 능선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현한 능선도 잠시 10분 정도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드문드문 연분홍 철쭉이 보인다. 10여 분 오르면 걷기 편한 길이 이어진다. 정면 뒤로 정족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10분가량 더 오르면 갈림길로 어느 길이든 만나게 된다. 이곳을 지나면 대성암 갈림길과 만난다. 힘든 구간이 없는 편안한 길이 정족산 산허리를 감아 나간다. 다시 뚜렷한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역시 대성암으로 이어진다. 직진하면 갈림길로 왼쪽길이 정상으로 바로 올라 가진다. 철쭉 구경이 조금씩 화려한 모습으로 산꾼을 유혹한다. 20분이면 바위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족산 정상이다. 조망은 탁월하다. 올라온 방향에서 왼쪽으로는 통도사와 영축산, 뒤로는 천성산 정상과 화엄벌이 눈높이에 있다. 멀리 울산 쪽으로는 문수산이 솟아 있다.

 

 

 

 

 

 

 

 

 

 

 

정상 북서쪽 사면의 철쭉은 답사를 갔던 지난주에 막 꽃망울을 틔우고 있었다. 하산은 올라온 바위를 다시 내려가 태극기를 새긴 석판이 부착된 바위 오른쪽으로 간다. 철쭉 터널을 지나 임도로 내려선다. 철쭉 감상이 주목적인 만큼 여기선 임도 맞은편으로 올라선다. 아래쪽 사면이 온통 철쭉이다. 정족산에서는 이곳의 철쭉이 가장 많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또한 장관이다. 잠시 철쭉 사이로 걸으면 다시 임도로 내려선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좌우로 철쭉을 구경을 하다 10분 후 되돌아와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와 처음 임도로 내려선 지점을 다시 지나면 내리막이다. 10분가량 다소 가파른 임도를 내려가면 사거리를 만난다. 임도에 정상에서 내려오는 산길이 합류한다. 10시 방향 왼쪽 임도로 내려간다. 50m쯤 가면 다시 임도 삼거리다. 왼쪽에도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흔히 무제치 3.4 늪이라 부르는 곳이다. 생태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한다. 오른쪽은 주남고개 방향이고, 답사로는 직진해서 오른다. 100m쯤 가서 만나는 임도 삼거리에서는 오른쪽으로 간다. 길을 따라 계속 철쭉이 유혹한다.

 

 

 

 

 

 

 

 

 

삼거리에서 100m가량 가서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철쭉이 무성하다. 664m봉을 지나 계속 임도를 따라가도 이내 다시 만난다. 10분가량 가면 넓은 임도가 끝나고 좁은 산길로 들어선다. 안부의 사거리와 만나는데 왼편으로 넓은 공터와 만나는데 이길을 따라가면 주남고개 방향이다. 폐 건축 자재가 널 부러져 있고 무릉도원의 작은 찻집 이정표가 서 있다.. . 정면 길도 역시 주남고개 방향. 답사로는 왼쪽 가파른 내리막인 반계계곡 방향이다. 조릿대가 무성한 길을 30분 내려가면 물길을 건넌다. 이후로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라 5분 정도 내려가면 운흥사지 부도가 나타난다. 잠시 뒤면 물길을 건너 도로로 올라선다. 왼쪽 오르막으로 5분가량 가면 운흥사지가 있다. 하산로는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 15분가량 내려가면 보예정사 이정표가 선 삼거리다. 왼쪽으로 내려가 반계저수지를 지나·반계마을회관에서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 오르막은 '서창·부산', 왼쪽 내리막은 '삼동·통도사'로 표시돼 있다. 왼쪽으로 내려가 당집을 지나 5~6분 가면 '갈릴리 기도원'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이다. 고련저수지 지나 100m쯤 간 뒤 오른쪽 오르막길을 따르면 이내 괴천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교통편

들머리인 내원사 입구까지는 명륜동에서 출발하는 양산 12번 버스를 타면 된다. 도시철도 동래역, 온천장역, 범어사역 등을 거친다. 60여분소요. .

괴천 버스정류장에서 417번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타고 일단 웅촌이나 서창으로 간다. 마을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서창으로 간다고 하니 서창에서 부산행 버스와 환승하면 된다.

 

 

 

 

 

 

(서창의 먹을 만한 곳)

양귀비 혀에 비유하는 가리비짬뽕

 

 

양산시 웅상읍 삼호 사거리에 있는 고려반점(055-362-0302)에 가보고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였다.

 산행을 하고 내려온 뒤라 뭐든지 먹어야 하기에 찾아간 집이다.

짬뽕 전문점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짬뽕 종류가 많이도 있다.

여느 중국집 처럼 삼선이니 사천짬뽕이 아닌 이곳에는

가리비짬뽕 키조개짬뽕, 전복짬뽕, 산낙지짬뽕, 산문어짬뽕등 짬뽕일색이다.

  그래서 양귀비의 혀에 비유하는 가리비짬뽕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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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장산


산 이름은 등산로 입구 절터인 무장사지터가 있어 이곳은 태종 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후 이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왔다하여 투구와 병기를 묻은 곳이라 무장사라 하였다 한다. 그 뒤의 산을 무장산으로 부르는데 ‘무장사지 삼층석탑’과 ‘무장사 사적비 이수와귀부’가 현재 남아 있다. 이곳은 어떤 이유로 억새가 만발하게 되었을까.

 


1970년대 초부터 정상일대에 젖소를 키우던 오리온 목장이 1996년 문을 닫으면서 초지가 억새로 뒤덮혀 버리게 되어 15년 전부터 오늘과 같은 억새 산행지가 되었다. 산행은 보문단지 뒤 덕동호 골짜기 안으로 경주시 암곡동 왕산마을에서 시작한다. 왕산마을~암곡펜션입구~입산통제소(산불초소)~무장사지 삼층석탑~억새군락지(옛오리온목장)~무장산 정상~폐비닐하우스 갈림길~안부~성황재 갈림길~잇단 전망대~664봉(삼각점)~650봉~안부 갈림길~황룡사지·동대봉산 갈림길~동대봉산 갈림길~임도~출입문~상수원 보호구역 초소~왕산마을 순으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30분 소요된다..


산행은 크게 계곡을 타고 올라가 억새군락지를 보고 폐비닐하우스를 지나 안부 부터는 능선을 타는 산길이 이어진다. 세 부분으로 구분돼 있어 산행 하는 재미가 여타 산 보다도 훨씬 좋으며 억새 산행만 월할 경우에는 폐비닐 하우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하산을 하면 산불초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원점회귀가 가능하여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울산 직진~보문관광단지 우회전~보문관광단지 천북 좌회전~포항 천북 좌회전(경주생활체육공원)~천북 암곡~암곡 덕동~암곡휴게소(암곡노인회관)~왕산마을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동영상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30&key=20081017.22029194920

 

 

*창녕 화왕산~관룡산

 

 

창녕 화왕산 하면 억새 산행지로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전국구인 산으로 누구나 아~하며 무릎을 칠 것이다. 봄에는 진달래 산행지로도 각광을 받지만 실질적으로는 억새 산행지가 더 유명한 명산이다. 화왕산은 산 정상을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성이 임진왜란때 이곳에서 곽재우 장군이 전공을 올렸다 한다. 산성의 크기는 18만4800㎡(5만6천평)으로 이곳 전부가 억새밭으로 덮혀 있다. 한때 창녕군에서 이곳에 화왕산 갈대제를 열었을 정도이다.


산성안에는 3개의 연못인 용지와 ‘창녕조씨 득성비’그리고 허준 드라마 세트장, 관룡사의 용선대등 많은 볼거리가 산제해 있어 가을 억새 산행지로는 최적의 코스이다. 원점 회귀를 위해 옥천리 관룡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옥천리 화왕산 주차장~임도(제1등산로)~차량 차단시설~이동통신 기지국~화왕산성 남문~헬기장~배바위~화왕산 정상~동문~허준세트장~옥천삼거리~관룡산 정상~용선대~관룡사~화왕산 주차장 순으로 걷는 시간만 4시간10분 정도지만 억새와 배바위등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콘텐츠를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족히 7시간은 잡아야 한다.


하산후 옥천리는 자연산 송이 버섯를 채취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향보리밥(055-521-2516)의 송이밥이 송이 향이 진하며 맛이 좋다. 원점회귀 산행이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영산IC~영산 방향 좌회전~대구 창녕 5번 국도~화왕산 우회전 1070번 군도~옥천~화왕산 군립공원, 관룡사 좌회전~화왕산 주차장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동영상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key=20071005.22029193021

 

 

*양산 금정산 장군봉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억새 산행지하면 쌍수를 들고 금정산에 억새 산행지가 어디 있냐고 반문을 할 것이다. 그러나 금정산에도 억새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여타 산처럼 범위가 넓지는 않아 사실 부산시민들에게 등한시 받아 온게 사실이지만 양산 동면의 장군평전을 이야기 안할 수가 없다. 국토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지형도에는 장군봉이란 이름이 나와 있지 않으며 실제로 상학산과 계명봉 그리고 금정산만 명시되어 있다.
 


장군봉은 구덕산악회 고장두석씨이며 이곳 봉우리에 올라보니 장군의 기상처럼 늠름하게 혼자 버티고 서 있어 장군봉이라 명명하였다 하며 그 옆 평전은 자연스럽게 장군평전이 되었다. 낙동정맥이 지나가는 718봉 봉우리에 최근에 갑오봉이란 새로운 표지석이 세워졌다. 새로운 산행로를 오르는 코스로 도시철도를 이용하여 산행을 할 수 있다. 양산시 동면 금산리 금선사~임도 갈림길~움막~습지~주능선(고당봉·장군봉 갈림길)~범어사기 석표~대형 철탑~샘터~718봉~장군봉(737m)~암릉길~727봉~잇단 철사다리~은동굴 갈림길~임도~(차단기)~금선사 순으로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35분 정도 소요되는데 산행시간은 길 찾기등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6시간은 잡아야한다.
 


원점회귀산행으로 승용차를 이용할시에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화명동 부산 도시 철도 2호선을 통과~양산 35번 국도~언양 남양산IC~국도변 '양촌 촌국수' 간판 지나~국도변 대형 입간판 '금선사 삼호공원 양어장' 방향 우회전~삼호공원~금선사 순.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동영상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key=20070928.22029194810

 

 

*부산 사하구 승학산


부산의 억새 산행지는 승학산을 이야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새울 것이다. 그 만큼 억새 산행지로는 대적할 산이 주위에 없을 정도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승학산 정상에 올라서서 낙동강 넘어로 떨어지는 낙조는 억새와 함께 승학산의 1경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무학대사가 이산을 보고 학이 날아 오르는 듯한 모습에 승학산이라 하였다. 승학산 산행은 부산 도시 철도를 이용하여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1호선 괴정역~괴정성당 옆 동산빌라 입구~한샘약수터~헬기장~부산기상레이더관측소(시약산)~시약정~부산항공무선표지소(구덕산)~산불감시초소~잇단 헬기장~승학산 정상~동아대 하단캠퍼스 순으로 이어진다. 3시간 정도 소요 되는데 동아대 하단캠퍼스에서 역순으로도 승학산 산행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곳은 급한 오르막이 정상까지 이어져 산행 초보자에게는 매우 힘이 드는 코스이다. 그래서 조금은 수월한 대티고개나 구덕령 꽃동네, 그리고 괴정역 코스로 올라 동아대 하단캠퍼스로 하산을 권한다. 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10&key=20031009.01001R00870

 

 

*양산 천성산 화엄벌

 

 

양산 천성산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의 이야기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원효가 불광산 척판암에서 신통력으로 보니 당나라 승려 1,000명을 예지력으로 구하니 당나라 승려가 이곳 천성산에 원효대사를 찾아오니 원효가 이들 1,000명을 모두 화엄경을 설법하여 성인이 되게 하여 천성산이 되었다 한다. 원효가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 화엄벌로 3만8천평의 너른터에 봄에는 철쭉꽃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억새가 춤을 추는 700m의 산상공원이다. 1999년에는 이곳이 고산습지로 새롭게 조명이 되어 2002년 환경부로부터 ‘화엄늪 습지 보호구역’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홍룡사의 홍룡폭포를 보고 화엄벌로 오를 수 도 있지만 석계에서 능선을 따라 걷는 것이 천성산의 진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추천을 하며 원적산 봉수대는 경남기념물118호로 천성산의 옛이름이다. 전국의 봉수대중 봉수지 고사지 건물지등의 기초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산행은 상북면 소재인 석계리에서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석계리~임도~원적산 봉수대~(차량)차단기~화엄벌~'군사시설보호구역' 팻말 이정표~원효암 갈림길~원효암~대형 주차장~작전도로~낙동정맥 산길~전망대~철탑~평산리 장흥부락 순으로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번 코스는 원점 회귀가 아니라 대중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들머리인 상북면 석계로 가기 위해서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종점)이나 온천장역 시외버스 정류장 앞에서 언양행 12번 완행버스를 타고 석계(상북면사무소)에서 내린다. 첫 차는 오전 5시20분에 있으며 이후 7~9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 정도 걸린다.

 

 

날머리 덕계에선 덕계시장 스파편의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부산행 일반버스(50, 58, 147) 및 좌석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울산~부산간 운행하는 1127번 버스를 타도 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은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3&key=20041015.22033181116

 

*영남알프스 신불산, 천황산 일원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 양산시 원동면의 접경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지역민에게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

보통 신불산 산행은 신불산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홍류폭포 좌측인 칼바위 능선을 타고 신불산 정상을 올라가는 것이 대표적인 산행코스이나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억새 산행철에는 피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권하는 코스는 신불산 직등능선으로 홍류폭포 우측능선을 타고 오르면 여기도 조망이 매우 뛰어나며 한적한 산행을 즐길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한때 신불산은 지리산에서 도망온 파르티잔 잔당들의 영남지역 최대 근거지 였다 한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며 이곳 주민들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치를 뜬다. 낮에는 아군이 지켜 평온한 듯 하지만 밤만되면 빨갱이들이 설쳐 피난을 가거나 죽은 자가 숱하게 많다한다. 산행경로는 등억온천단지 내 온천교~간월산장~홍류폭포·간월재 갈림길~간월산 방향~신불산(험로)·간월산 갈림길~신불산 방향~갈림길~전망대~잇단 밧줄 걸린 암벽~영남알프스 주능선~신불산 정상~신불평원~군부대 사격장 안내문길~쓰리랑릿지 출발점~아리랑릿지 출발점~임도~장제마을~LG주유소 옆 버스정류장순으로 6시간 족히 걸린다. 원점회귀 삼행은 신불산 정상에서 다시 왔던길을 돌아내려와 간월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간월재에도 광명추파 억새의 군무를 확인할 수 있다. 영남알프스에는 이외에도 많은 억새 산행지가 있다. 밀양의 천황산~재약산이 그곳이다.


  천년고찰 표충사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천황산은 전국의 억새 산행지에 올려도 손색없는 코스로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과 천황재의 광명추파는 천황~재약을 억새산행지로 단번에 올려 놓고도 남음이 있다. 표충사 우측계곡인 옥류동천은 흑룡폭퐁와 층층폭폭의 비경을 품고 있으며 좌측계곡은 금강동천으로 금강폭포를 안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천황~재약 산행은 표충사를 기점으로 우측 옥류동천을 끼고 올라 사자평을 지나 재약산 천왕봉을 거쳐 천왕봉 정상에서 금강동천을 타고 내려오는게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국제신문DB)
이번에는 산행을 달리하여 재약5봉이니 재약8봉에도 나와 있는 문필봉 즉 필봉을 경유하여 천황산으로 오르는 산행을 소개한다. 전체적인 산행 경로는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매바위마을~너덜~전망대~필봉(665m)~필봉 삼거리~헬기장~도래재 삼거리~상투봉~남명리 삼거리~천황산(1189m)~천황재~내원암~표충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걸린다.

 


이번 신불산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의 거리가 멀어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리하다.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첫차 이후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10분 정도

 

 

 

 

산행 기점인 간월 입구 또는 온천교에 가기 위해선 언양시외버스터미널 후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323번 대우여객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9시10분, 10시10분, 11시10분, 낮 12시30분에 출발한다. 15~20분 걸린다.

  (국제신문db)

 

날머리인 LG한일주유소 옆 버스정류장에서 신평행 시내버스(12, 12-1, 63, 67번)는 8~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신평시외버스터미널(055-382-6624)에서 노포동종합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후 3시10분, 3시45분, 4시20분, 4시55분, 5시30분, 6시, 6시30분, 7시, 7시35분, 8시10분, 8시40분(막차) 출발한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국제신문 홈페이지 참조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223&key=20040625.22029190833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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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곡성여행)곡성 동악산 도림사 여행.도승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숲을 이루었다는 곡성 동악산 도림사

 

곡성의 진산 동악산은 형제봉과 대장봉 그리고 신선대를 연결한 능선 아래에 흰 암반을 이루는 도림사 계곡인 청류동 계곡이 흐른다. 그래서 인지 예로 부터 이곳 도림사 부근인 청류동 계곡에 시인 묵객들이 들어와 글을 남기고 그것도 부족해 암반에다 흔적을 남겼다. 계곡 옆 이곳 도림사에도 원효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익대사등 많은 선승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도인숲을 이루었다하여 그 이름 또한 도림사라 하니 사찰의 이름 또한 재미가 있다.

 



도림사는 660년 무열왕 7년에 원효대사가 구례의 화엄사에서 옮겨와 지었다고 하는 데 그해가 백제가 멸망을 하던 때였다.
도선국사가 헌강왕 2년인 876년에 다시 한번 사세를 키우고 고려때에는 지환대사가 , 그후에도 2차례나 더 중창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때는 신덕사로 불렸다는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였던 신덕왕후가 도림사를 후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때문인지 도림사는 조선왕실의 원력 사찰이 되었으며 응진당 후불탱화에도 명성왕후가 시주를 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도림사에는 1683년에 제작된 보물제1341호인 괘불이 소장되어 있으며 당우로는 보광전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지장전 응진전 칠성각과 요사체를 둔 단출한 절집으로 변했다 한다.
도림사는 1984년 지방문화재 자료 24호로 지정되었고 청류동계곡은 전남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어 관리 되고 있다.



절 입구의 부도전





일주문













보광전 앞 화단의 연리지

고광전 아래 여채의 모습을 한 나무

범종각

요사체





보광전












도승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바위로 동악산 등산로 상에 있으며 좌우측에 음각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를 이용한 뒤 구례버스터미널에서 곡성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부산발 구례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13600, 3시간 소요. 구례버스터미널에서 곡성까지는 광주행 또는 전주행 버스를 타고 가다 곡성에서 내리면 되는데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요금은 2700원이다. 곡성읍에서 도림사 입구까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20분 간격으로 탈 수 있다. 10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호남고속도로 곡성IC에서 내린 후 27번 국도를 타고 곡성 방향으로 우회전한 후 곡성읍 방향으로 가다가 도림사 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도림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부산에서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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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행/구례여행)구례 오산~동주리봉 산행. 섬진강의 자라가 기어 올라와 오산이 되었는가?.구례오산~동주리봉

 

호남과 영남을 가르는 듯 하지만 실은 두 지역을 끈끈하게 이어주고 있는 강. 바로 섬진강이다. 섬진강 중·하류 유역에는 남도 사람들이 버텨 온 질곡의 삶 만큼이나 자연·문화 유산과 볼거리도 많다. 특히 지리산과 광양 백운산으로 대변되는 2개의 거대한 산군이 강의 동쪽과 서쪽에서 서로 마주 보고 "형님, 아우"하는 것처럼 사이좋게 뻗어 있어 산꾼들에게 유독 각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2개의 큰 산은 물론이고 산줄기에서 뻗어 내린 크고 작은 부속 봉우리와 산들 또한 주말 근교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섬진강 주변 어느 산을 가더라도 지리산과 백운산 자락의 육중한 능선과 큰 봉우리, 그리고 섬진강 물줄기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오산에서 둥주리봉으로 가는 도중 만난 배바위에 서서 지리산 방향의 풍경. 사진 왼쪽 멀리 있는 봉우리가 오산이고 우측 희미한 능선이 지리산 노고단 능선이다.

 


 

 

이번 주 '근교산' 취재팀이 찾은 전남 구례의 오산(鰲山·542m)~둥주리봉(690m) 코스 역시 섬진강과 지리산 백운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 코스다. 이 코스는 조망미가 빼어날 뿐 아니라 골산과 육산의 특징을 절반씩 가진, 말 그대로 아기자기하면서도 산길 걷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매력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오산 정상 아래 절벽에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암자로 알려진 '사성'도 자리 잡고 있어 역사의 향기도 듬뿍 맡을 수 있겠다. 그뿐인가. 4월 초순이면 '섬진강의 봄'을 대표하는 벚꽃이 매화의 빈자리를 채우며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 사이를 잇는 강변도로에 만발하니 '봄나들이 산행지'로는 그만이다. 깔끔한 이정표가 길 안내를 친절하게 해준다.

전체 산행은 죽연마을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해 돌탑지대~쉼터(정자)~오산 주차장~사성암~오산 정상~매봉~자래봉~선바위전망대 갈림길~솔봉고개~
동해삼거리~배바위~둥주리봉 정상~능괭이갈림길~동해마을 순으로 진행된다. 10.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가량 걸린다. 사성암 둘러보기와 경치 감상, 휴식, 식사 등을 고려하면 5시간30분 이상은 잡아야 한다. 오전 10시께 산행을 시작한다면 늦어도 오후 4시 이전에는 마무리할 수 있다.

 

 

들머리인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섬진강벚꽃길'을 따라 남쪽으로 200m 가면 주차장과 오산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있다. 오산 방향으로 콘크리트 길을 따른다. 머리 위 오산 정상 주변에 있는 활공장에서 날아오른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가른다. 임도 주변 매실밭에는 아직도 희고 붉은 매화가 만발하다. 5분쯤 오르다 만난 콘크리트 임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5분 뒤 콘크리트 임도 끝나는 지점의 이정표는 '오산 사성암 1.7'를 가리킨다. 길은 어느새 편안한 숲길로 이어진다.

완만한 오름길이다. 얼마 가지 않아 돌탑 20여 기가 들어찬 돌탑지대. 높이 3m 이상의 큰 것에서부터 1m 안팎의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키는 제각각이지만 산비탈에 누군가 정성 들여 쌓아 놓은 돌탑이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돌탑지대를 통과하면 반듯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15분쯤 오르면 왼쪽에 쉼터와 전망대를 겸한 아담한 크기의 정자가 보인다. 발아래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섬진강 줄기가 훤하다.

정자에서 내려와 정상을 향해 가다보면 3분 뒤 콘크리트 길을 버리고 왼쪽 산길로 치고 오르는 갈림길을 만난다. 사성암까지의 거리는 0.4. 7분가량 오르막을 치면 갑자기 넓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일명 오산주차장. 셔틀버스 종점이다. 정면에 수직으로 뻗은 절벽이 보인다. 넓은 길을 따라 왼쪽으로 100m쯤 가면 오산 정상 및 활공장으로 가는 등산로와 사성암으로 가는 길이 나눠지는 갈림길. 오른쪽 넓은 길로 직진, 150m만 가면 3개의 기둥에 의지한 채 벼랑에 매달린 약사전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지 1년 뒤인 백제 성왕 22(544)에 세웠다는 사성암(전라남도문화재 제33)이다. 원래 이름은 오산에 있다고 해서 '오산암'이었는데 고승들의 수도처가 된 후 '사성암'으로 바뀌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그 중간에 절묘하게 앉아 있는 불당이 조화를 이룬 사성암은 절집 자체가 주는 절묘한 풍경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뒤돌아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물줄기와 주변 풍광이 더욱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이런 곳에서 수도를 하면 원효대사 도선국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도를 깨칠 것 같다. 특히 저 아래쪽 섬진강 줄기와 구례 순천 곡성 지역의 산들이 첩첩으로 쌓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말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지장전 소원바위 산신각 도선굴을 거쳐 나무덱 길이 열려 있는데, 곧바로 오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와 연결된다. 사성암 입구 갈림길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무계단을 오르면 사성암의 여러 전각을 품고 있는 절벽 꼭대기에 서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풍광 또한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

오산 정상까지는 불과 3분이면 족하다. '해발 530.8m'라고 표시된 정상석이 있지만 실제 국립지리정보원 발행 25000분의 1 지형도에는 542m라고 돼 있다. 정상에서 3분쯤 더 가면 만나는 삼각점봉이 실제로 530.8봉이다. 오산 정상에서는 S자 모양으로 굽어 도는 섬진강 물줄기는 물론이고 구례읍과 만복대 정령치 성삼재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릉, 노고단 반야봉 형제봉 왕시루봉 등이 한꺼번에 조망된다. 사람들이 이 산을 두고 '지리산 남서쪽 최고 전망대'라고 했던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깨닫는다. 정상석에서 30m만 가면 정자 전망대가 있다. 살짝 내려선 뒤 오르막을 타면 앞서 언급한 530.8봉이다. 이후 계속되는 능선길은 발길 닿는 곳마다 천혜의 조망미를 갖춘 전망대의 연속이다. 15분 뒤 매봉(528m)을 지나 능선을 따라 계속 직진하는 길로 내려서면 5분 후 안부인 '매봉능선삼거리'에 닿는다. 약간 오르막을 치면 7분 후 자래봉(524m)을 지난다. '자라 오()' 자를 쓴 오산과 구분하기 위해 자라봉이라 불리던 것이 지역 사투리로 변형돼 자래봉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출발 10여분 만에 만나는 돌탑지대.



곧바로 선바위전망대갈림길. 오른쪽으로 250m쯤 가면 울산 태화강의 선바위와 흡사하게 생긴 '선바위'가 있으니 잠시 둘러본 후 능선으로 되돌아와도 된다. 능선길을 재촉하면 오른쪽 마고실마을로 내려가는 선바위갈림길. 직진한다. 3분 뒤 철계단을 오르면 잇따라 빼어난 조망처다. 2분 후 뾰족한 암봉에서 뒤돌아보면 선바위전망대가 뚜렷하고 그 뒤로 사성암과 오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서쪽 발아래 섬진강과 동쪽의 중산리계곡 너머 계족산과 그 너머 광양 백운산 연봉들, 북쪽의 지리산 연봉들, 남쪽의 둥주리봉까지 4방이 탁 트인 '일망무제'의 풍광에 넋을 잃을 지경이다. 조망미 면에서는 오히려 오산 정상보다 더 빼어난 곳이다. 전망대 암봉을 내려서면 눈앞의 솔봉을 곧바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4명의 성인이 수도한 곳으로 알려진 구례 오산 사성암.


우회로를 통과해 안부에서 능선을 좀 더 따르면 울창한 적송숲을 지난다. 곧이어 임도와 만나는데 솔봉고개다. 왼쪽에 솟은 둥주리봉을 향해 방향을 잡는다. 300m쯤 임도를 따르다가 '동해삼거리' 이정표에서 임도에서 이탈,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7분 후 중산능선갈림길을 지나 배바위삼거리를 통과하면 5분 뒤 로프를 잡고 오르는 큰 바위가 나타난다. 배바위다. 동쪽의 중산리계곡에서 보면 거대한 배가 산 위에 걸린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지리산과 백운산 계족산 둥주리봉 등 사방 풍광이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왼쪽 아래로는 수백길 낭떠러지. 주의하자. 배바위 암릉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살짝 우회하는 아기자기한 길이 이어지고 다시 로프를 잡고 오르면 해발 둥주리봉 정상이다. '둥주리'라는 말은 '둥지'와 같은 말이기도 하고 '짚으로 크고 두껍게 엮은 둥우리'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남동쪽 능선을 따르면 천황치와 천황산을 거쳐 백운산까지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취재팀은 '동해마을 3.1' 이정표 방향인 서쪽 내리막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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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음양오행설을 깨달았다는 사성암 도선굴


일명 '장골능선'으로 불리는 산줄기를 타고 내려서는 길은 한적하고 걷기에도 수월하다. 20분 후 능괭이갈림길에서는 오른쪽 동해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왼쪽 능선길은 순천시 황전면 금평리 용서마을과 용서폭포로 가는 길이다. 15분 후 멋들어진 소나무가 서 있는 민가 앞 갈림길에서 임도를 택하지 않고 왼쪽 내리막 산길을 택해 15분만 더 내려서면 동해마을 동해슈퍼 앞 도로에 닿는다. '섬진강벚꽃길'로 명명된 이 길에는 4월 초순에 벚꽃축제가 열린다. 벚꽃 터널 사이로 20분 정도 걸으면 출발지인 죽연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


떠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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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 '추노'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오산(鰲山)은 구례의 진산으로 불린다. 노고단 만복대 계족산 등 오산보다 높고 큰 산들이 많지만 주민들이 굳이 오산을 구례의 진산으로 대접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성암(四聖庵)'이 있고 구례읍을 굽어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절벽 중간에 건립된 전각 등으로 인해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사성암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다. 우선 약사전. 오른쪽 계단을 올라 3개의 기둥 위에 지어진 약사전 내부에 들어서면 안쪽 벽이 다름 아닌 자연석 절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석벽에 음각된 마애약사여래불(전남문화재 제222)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득도한 후 손톱으로 그렸다'고 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수령 800년 이상된 귀목나무 두 그루가 섬진강을 굽어보며 절을 지키고 있고 지장전 뒤에는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일명 뜀바위)가 있다. 조금 더 가면 산신각과 도선굴이 있다. 도선굴은 도선 국사가 수도한 작은 바위굴이다. 최근의 '추노',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경리의 원작의 '토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사용됐다. 하산길에 능괭이갈림길에서 오른쪽 동해마을이 아닌 왼쪽 길로 가면 용서폭포로 갈 수 있다.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수직폭포인데, 가물 때는 폭포수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비 온 후에 산행을 한다면 용서폭포를 거쳐 용서마을로 하산하는 것도 볼거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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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행 버스 오전 7 9시 등 하루 6회 운행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는 오전 7시와 9 11시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2시간50분 소요, 13600. 구례터미널에서 들머리인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 1140, 1220분 등에 출발한다. 버스를 놓쳤을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안팎이다. 산행 후 동해마을에서 구례읍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120분과 오후 630분에 있다. 택시(011-618-5125) 이용 요금은 6000원가량.

자가용의 경우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내린 후 국도 19호선을 타고 이정표 기준 구례 쌍계사 하동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화개장터와 연곡사(피아골) 입구 앞을 지나 구례 방면으로 좀 더 가다보면 사성암 표지판이 보인다. 간전 사성암 방면으로 865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회전, 간전교를 건넌 이후 사성암 표지판만 따라서 10㎞ 정도 가면 들머리인 죽마리 죽연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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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동주리봉으로 가는 능선길. 우측뒤로 동주리봉이 모습을 드러 낸다.

선바위로 바위군을 이루고 있다.

선바위

배바위 일원으로 암릉길로 주의를 요한다.



각금마을 등산로 입구를 올라 뒤돌아 보면 섬진강이 흘러가고 섬진강 건너 구례읍도 볼 수 있다.


오산은 낮은 산이지만 소나무의 군락이 일품으로 산행길 내내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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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구례여행)구례 오산 사성암. 떨어질라 바위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구례의 사성암

사성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33호
전남 구례군 쿤척면 죽마리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서며 창건 당시에는 오산암으로 불렸는데 산이름이 오산이라 오산암으로 지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후 여러 선성들이 수도를 하였는데 연기조사와 원효대사, 도선국사,진각선사 이 네분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으로 거쳐 부르게 되었다. 사성암은 처마 끝의 제비 둥지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특이하게도 바위 틈을 비집고 법당을 세우기 위해 긴 다리를 세워 그 위에 건물을 올린 모습이 금강산의 보덕암과 비교하기도 한다.  구례10경의 9경에 오산과 사성암이 들어 있고 구례읍의 진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최근에 종방 된 추노와 그 이전의 박경리 원작인 토지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사성암 약사전의 모습으로 법당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면 위태롭게 그지없다.

약사전 밑부분으로 기둥과 벽사이에 만자와 화려한 문양을 넣었다.


약사전을 참배하고 내려 오는 관광객의 모습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오는 듯합니다.


마애 약사 여래불
전라남도 문화재 222호 지정
사성암의 마애약사여래불은 원효스님이 득도를 한후 손톱으로 바위에다 홈을 내어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약사전 안의 자연석에 높이가 약 25m로 음각 되어 있고 현재는 그 홈 마다 금으로 입혀져 있다. 왼손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약사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800년된 귀목나무

지장전의 모습입니다.

지장전에 안치 된 불상입니다/


소원바위

일명 뜀바위라 불리는 소원바위는 섬진강을 따라 뗏목을 팔러 하동장에 간 지아비를 기다리다 지쳐 숨을 거둔 아내와 그 아내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 낙담한 나머지 숨을 거두었다는 남편의 애뜻한 부부애를 기린 전설의 바위이다.섬진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바위로 전설이 더욱 실감난다. 한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하여 많은 참배객들이 들러는 곳이기도 하다.
  



도선국사가 수도를 하였다는 도선굴로 산신각 옆에 자리를 하고 있다. 이굴은 특이하게도 앞뒤로 뚫여 있어 통과를 할 수 가 있다.

사성암 위에서 본 모습으로 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 서 있는 법당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위 옆으로 좁은 통로를 내어 한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나있고 그 옆으로 돌담이 쳐져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는 오전 7시와 9시 11시 등 하루 6회 운행한다. 2시간50분 소요, 1만3600원. 구례터미널에서 들머리인 문척면 죽마리 죽연마을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 11시40분, 12시20분 등에 출발한다. 버스를 놓쳤을 경우 택시를 이용하면 6000원 안팎이다. 산행 후 동해마을에서 구례읍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1시20분과 오후 6시30분에 있다. 택시(011-618-5125) 이용 요금은 6000원가량.

자가용의 경우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내린 후 국도 19호선을 타고 이정표 기준 구례 쌍계사 하동 방향으로 우회전한다. 화개장터와 연곡사(피아골) 입구 앞을 지나 구례 방면으로 좀 더 가다보면 사성암 표지판이 보인다. 간전 사성암 방면으로 865번 지방도로를 타고 좌회전, 간전교를 건넌 이후 사성암 표지판만 따라서 10㎞ 정도 가면 들머리인 죽마리 죽연마을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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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여행/양산여행)천성산 내원사, 여승들이 수행하는 비구니 사찰인 천성산 내원사

 

내원사하면 최근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ktx 고속전철 천성산 통과를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한 지율스님이 있다. 천성산의 자연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 한다고
목숨을 건 단식 투쟁으로 천성산과 내원사는 언론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고 현재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새를 탄 사찰이다.

 



내원사는 어떤 절인가. 13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원효가 불광산 척판암에서 참선중 당나라 구화산 태화사의 뒷산이 산사태로 무너질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척판암의 부엌 문짝을 떼어 "원효척판구중"이란 글씨를  써 하늘로 던져 태화사로 날려 보내니 태화사 대웅전에서 참선중인스님들이 하늘에 빙빙 돌며 떠 있는 물체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하여 모두 밖으로 나오니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뒷산이 무너져 내려 천명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천명의 대중은 원효의 신통력과 도력에 모두 그의 제자가 되기를 위해 원효를 찾아오고 원효는 그들을 기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니니 원적산 산신이 나타나 원적산으로 안내를 하였고 지금의 산신각 자리에서 산신은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한다. 원효은 원적산에다 내원사를 위시한 89암자를 짓고 당나라 천명대중을 머물게 하였다 한다. 내원사는 그 후 여러번의 중창을 거쳐 왔는데 한국전쟁인 6.25때 모두 소실 되는 불운을 맞아 1955년 정수옥스님에 의해 비구니 사찰로 거듭나게 되었다.

원효가 천명의 대중을 데리고 기거할 곳을 찾아 다니니 원적산 산신이 마중을 나와 산신각이 있는 지점에서 홀연이 사라지니 원효는 그자리에다 산신각을 지었다 한다. 그 산신각 앞에 700년 된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수옥노사 부도답으로 1955년 6.25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내원사를 일으키는 데 깃털을 마련하신분으로 내원사 입구 좌측에서 만날 수 있다.

내원사 계곡 숲속에 자리 잡은 절로서 비구니 사찰 답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내원사로 올라 갈 수 있다.


돌담으로 아담하게 치장을 한 모습으로 내원사 현판 족은 현재 수행 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일 금하고 있다.


금강 역사문으로 스님들의 수행 공간임을 알리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일반 신도와 관광객은 이곳으로 들어설 수 있다.  


샘터와 아기자기한 익살스런 동자들의 모습이 해학적이다.






가마솥으로 추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가마솥의 크기로 보아 옛날에는 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였던 곳으로 짐작을 할 수 있다.

도 유형 문화재 58호 내원사 금고
불구는 사찰의 행사때 사용하는 도구를 말하며 소리를 내는 것으로 징 모양을 하고 있다.
반자라고도 하는 데 한쪽 면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원사의 반자는 한쪽면만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것으로 가운데 부분에 2중선을 돌렸다. 안쪽 원에는 8개의 잎을 가진 꽃을 새겼고, 바껕 원에는 구름과 꽃무늬를 4곳에 새겨 두었다. 옆면 위로는 둥근 구멍을 가진 돌출된 귀를 달았고 아래에는 선종8년(1091)에 금인사에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위의 제품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내원사 성보 박물관에 소장을 하고 있다 한다.

선나원으로 보통 사찰의 큰 법당이다.


선나원(큰법당)


선나원 앞의 애기 동자들 모습

큰법당안의 부처님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를 마라는 가르침에 따라 두 비구니 승려가 수행(?)을 하고 있다.


큰 법당 앞에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문구가 있다.


큰 법당


죽림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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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미타암(彌陀唵)
소재지: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171
천성산의 동쪽편에는 원효대사사 창건한 미타암이 있다. 큰 바위 아래 석굴을 파고 자리잡은 보물 제998호가 안치된 미타암은 험한 산사면을 깍아 절터로 만들다 보니 좌우로 길게 건물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많은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등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옛절의 멋은 사라지고 없지만 절의 앉은 폼새는 원효대사가 당나라 천명대중을 구한 후 당나라 승려를 천성산으로 인도하여 모두 성불시켰다는  전설과 맞물려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사찰이다.
미타암의 미타는 아미타불에서 따온 말로서 서방정토에서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여
죽어서도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중생을 구한다는 아미타불.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타암은 현재 암자 뒷편의 큰 바위 아래 굴인 미타굴에서 사찰명이 나왔다 한다.


양산 미타암 석아미타불입상
보물제998호
소재지;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소주리
감산사 아미타불입상과 미륵보살입상이 미타암의 아미타불과 함께 한장의 돌로 불상을 깍아만든점과 불상의 양식과 수법이 서로 비슷한 것으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고 있어며.  삼국유사에는 서방극락세계로 날아간 다섯비구가 수도하던 석굴에 봉안 된 것으로 유명한 아미타불로 양산의 석굴암으로도 부르는 아미타불.

미타암 미타굴에 안치 되어 있는 아미타불상은 불신과 광배가 한장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나발의 머리에는 육계가 큼직하며 두 귀는 어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둥굴며 양감이 있어 자비로운 상호를 나타내고 신체역시 양감이 풍부하며 건강하고 둥글게 처리된 어께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체구를 만들고 있다.
봉견의 법의는 전신에 걸쳐 유려한 옷주름을 이루며  가슴앞에 군의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었다.
U자형의 옷주름이 길게 흘러 내리며 광배는 주형거신광으로 안에 2줄의 굵은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그 사이에 좌우대칭으로 꽃무늬를 넣어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돌렸다. 연화좌의 대좌에는 안상을 조각하였다.




미타암으로 오르는 계단길
주차장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면 만나는 절입구. 일주문은 따로 없고 기암의 형상이 사찬왕상을 대신하고 있다.


미타굴의 아미타불

찾아가는 길:
미타암 들머리인 주진교까지는 부산 노포동 종합터미널(전철 1호선 종점)에서 수시 운행하는 웅상행1002번 좌석버스 , 301번, 또는 울산행1127·1137·2100·2300번  노선버스 이용 주진마을 하차를 한후 미타암 아래 주차장까지는 걸어가는 방법과 미타암 서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7번 국도상 웅상읍 주진리 웅상도서관 맞은편 동해주유소 부근의 미타암 버스정류장에서 1일 8회(07:10, 08:10, 09:10, 10:10, 12:10, 13:10, 15:10, 15:10). 미타암 전화 055-365-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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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금정산하면 서울의 북한산, 대구의 팔공산,광주의 무등산 처럼 수식어로 따라 붙는 산이름이다.
그 만큼 금정산하면 부산 사람에게는 야구와 함께 떼어 생각 할 수 없는 명산이다. 그 산아래는 사실 많은 산길이 조성되어 있고 집앞을 나서면 산길로 연결되는 거미줄 같은 등산로로 봄철에는 더욱 붐비는 부산사람에게는 고마운 금정산이다.
평일 휴일날 오후에 늦게 출발한 금정산 산행, 코스는 별 생각 없이 호포로
지하철을 타고 간다. 호포역에서 나오면 바로 우측으로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와 연결된다.
그 통로 한켠에 금정산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다. 여기서 눈요기 삼아 지도를 보고 난후 호포역사를 나오면
우측으로 지하 차도와 만난다. 
사실 부산에서 호포까지만 나가도 시골의 전원에 온 기분이 든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흘러가고 그 뒤로 김해 동신어산이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양산의 물금과 그 앞 작은 동산인 증산으로 신라와 가야가 대 격전을 벌린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도 증산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어며 그 만큼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호포가 최근에 새로운 들머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행경로는 호포역~신기마을 금호사~임도~낙동정맥갈림길~고당봉~750m 스텐 사각~미륵사~금정산장~북문~금성동순 산행시간은 4시간정도.

호포역사 우측에서 호포새마을, 등산로(고당봉가는길),
부산교통공사가는길의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시멘트 길을 걸어 펜스가 끝나는 지점이 나오면 갈림길 우측 다리를 건너 올라서도 고당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번에는 포장길을 직진하여 신기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10여분이면 새로생겼다는 뜻의 신기마을인 금호사 제실 앞으로 올라서면 호포농원가는 길, 농원 앞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소나무 숲길의 오솔길 입구에는 등산로 정비및 숲가꾸기 사업을 동면 면사무소에서 실시하고 있다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그 한켠에는 제선충을 알리는 글귀와 반출을 금한다는 죽은 나무들을 숙성시키는 흔적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논밭으로 사용 되었던 습지지역을 거슬러 오르면 완연한 봄이 온듯 산벗꽃들이 한창으로 꽃비를  뿌리고 있다.
제잘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올라서니 이번에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하게 산속을 흔든다. 아마 등산로 정비 사업을 하는 분인들인것 같다.  
절터의 흔적에 자란 산죽도 정비사업의 벌초기계에 힘 없이 서러지고 무엇을 위한 정비사업인지 의구심이 든다.
 
산길은 임도에 올라선다. 금정산 산허리를 가른 이 임도에서 우측으로 30m 걸어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금정산 정상 가는 길1.7km, 직진하면 호포매운탕마을 4.2km, 뒤쪽은 가산 4km,  좌측 좌측 금정상 정상 가는 길을 따라 올라 50m 뒤에 갈림길, 두길 모두 금정산으로 오른 는길로 우측 계곡길이 100m 더 길다.
우측 계곡길로 오르기로 하고 게곡을 따라 오른다. 바닥에는 돌들이 깔려 있고 계곡은 좁아지면서 경사를 더 한다. 발아래는 현호색, 앵초가 봄을 알리며 피기 시작을 한다. 머리를 들어보니 계곡의 품이 갑자기 넓어 지고 키큰 소나무가 서 있다.
큰 바위들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곳을 지나니 갈림길, 우측은 화명 금곡동에서 올라오는 길, 금정산 정상은 좌측으로 1.1km 더 올라가야 한다.
갈림길에서 1.분 뒤 기도터의 흔적과 만난다. 금정산에 산재해 있는 기도터가 모두 헐리고 그 집터의 자리에 지금 쓰레기장이 착각 될 만큼 많은 물건들이 등산로 옆에 널부러져 있어 이마 살을 찌푸리게 한다.
상류라 그런지 계곡은 가뭄으로 물소리도 죽인지 오래고 좌측으로는 낮은 산죽이 펼쳐진다. 다시 10여분 뒤먄 갈림길로 머리를 들면 고당봉 정상이 서 있다.
좌측으로는 호포새동네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은 금정산 정상 방향, 우측으로 10m 뒤 넓은 임도급의 길과 만난다.
계석으로 내려가는 길로 좌측 금정산 정상 0.4km 이정표를 따라간다. 5분이면 사거리 길인 낙동정맥길로 매봉산에서 내려온 낙동정맥길이 여기서 쳐 받아 올라 금정산의 정점인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일명 고당봉, 장군봉의 갈림길로 넘어서면 범어사 3.4km 방향, 좌측은 철탑이 서 있고 호포 또는 장군봉, 고당봉은 우측길로 0.3km의 지척에 있다.
잣나무 조림지에서 산길은 정상을 향해 쳐 받아 오른다. 고당봉의 장벽을 실감 할 수 있다. 지금은 고당봉 정상 오른길에 철 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올라 갈 수 있도록 하였지만 설치 이전에는 정맥길의 고당봉 오름길은 크랙을 올라서야만 되는 위험한 곳이 한 곳 있었다.
계단 설치 후 말들이 많은 금정산 고당봉이였지만 지금은 잠잠함 상태가 되었다.  바위를 잡고 올라서면 계단길, 달팽이 계단을 올라서면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서는 임릉길, 우측으로 50m 바위를 잡고 가면 고당봉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 서 있다. 15분 소요. 

사실상 낙동정맥의 끝 지점으로 지금은 몰운대 까지 이어가지만 사실상의 낙동정맥 끝지점이다. 여기서 하산길은 산신할미를 모신 전각이 있는 동문5km,북문0.8km 방향과 화명동 쪽으로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미륵사를 가기 위해 정상석을 지나 바위를 내려선다. 요리조리 바위 틈을 빠져 내려서면 화명동으로 내려서는 능선에 다다른다. 이제는 또 다시 넓은 길, 이 길을 따라 내려서면 미륵사로 갈 수 있다.  
금곡동 4.5km, 화명동 7.9km 이정표를 뒤로하고 금정산성의 흔적을 따라간다. 교육원에서 세운 750m 스텐 사각봉을 뒤러하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금정산을 붉게 물들인다. 칠바위 북문1.1km 갈림길 에서 직진하면 미륵암 암봉의 끝지점에 설 수 있다. 기존의 등산로 상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된다.
발아래는 천길 낭떨어지이며 여기서 보는 금정산 일원의 조망 또한 장관이다. 돌아나와  내려서면 좌측으로 미륵암 갈림길이다.
 종이를 코팅한 미륵사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직지하면  화명동으로 하산을 할 수 있지만 급한 길을 따라 내려서서 미륵사로   들어선다.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하며 임진 왜란 때 부산 앞바다에 떠 있던 왜군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서려 있는 호국성지이다. 염화전 뒤로 서 있는 미륵바위와 좌선바위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다가오는 부처님오신날이 몇일 남지 않아 모두들 바쁜 것 같다. 잠시 절 구경을 하고 미륵사를 나와 금정산장이 있는 북문 가는 길을 따라간다. 오랜만에 보는 산장 관리인 서재석 형님을 보기 위함이다. 여기서 하산은 북문을 거쳐 범어사 또는 산성마을 인 금성동으로 하산을 하면 된다.



  


호포의 신기마을에 있는 금호사 제실을 지나면  만나는 길, 이길을 따르다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금호사제실

예전에는 농사를 지었을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는 습지젹으로 산 벗꽃이 떨어지는 모습이 꽃비가 떨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임도 갈림길,

앵초

고당봉을 볼 수 있는 지점


낙동정맥의 사거리 갈림길 안부


우측으로 돌아보면 고당봉의 바위장벽을 볼 수 있다. 이 중간으로 올라가야 하는 길이 낙동정맥길이다. 자세히 보면 목제계단과 달팽이 계단을 찾을 수 있다.

목제게단과 달팽이 계단


고당봉 바위 능선에 올라 북문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길, 중간의 붉은 지붕이 고당할미를 모신 전각 


고당봉정상



연수원에서 설치한 750m 스텐 사각 기둥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당봉으로 화명동 능선에서 본 모습


미륵사


금정산장

북문 사적 제215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29년 1703년에 국방방호의 묵적을 두고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17km, 높이는 1.5~3m에 국내산성 가운데 가장 큰 성이다.





연수원 가는 길

중성의 석문


금성동으로 산성마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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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미륵사

금정산 북문옆에서 한적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미륵사와 만난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8년인 678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미륵사는 독특한 모습을 한 암봉을 뒤로 하고 있다.
염화전 뒷쪽의 큰 암봉이 미륵봉으로 미륵봉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듯이
솟아 있는 그 아래 즉 미륵사가 위치하고 있다.
미륵사는 창건때 부터 산문이 없다 들어서는 입구 양쪽으로 큰 바위가 산문을 대신하며
노적가리 같은 모습이라하여 끼니 걱정을 안해도 된다는 사찰이다.
 범어사는 의상대사가 미륵사는 원효대사가 각각 창건을 하였는데
미륵사와 함께하는 원효대사의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미륵봉 중간의 바위 암반에 위치한 독성각 앞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원효대사가 호리병 다섯개를 구해 왜구 5만 병선을 물리치고 왜구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장군기를 꽂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그 구멍이다.
"모든 것에 꺼리낌 없는 사람이  번뇌에서 벗어 난다"는 가르침으로  유명하며
미륵불과 독성불을 모신 기도도량으로 알려저 있다. 
미륵사는 절 중앙에 염화전을 모시고 그 뒷편인 미륵봉 중간에
큰 바위들이 얽켜 있는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엉켜 있는 바위들이 해가 지고 난후
그 틈새가 보이지 않을 때 쯤 좌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한다...
좌선바위 뒤인 즉 미륵봉이 미륵불이라 하면 그 아래 좌선을 한 스님의 모습을 한 좌선바위가 미륵불을 향해
좌선을 한 모습이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 아래 원효대사가 미륵암을 창건하였고
사찰이름인 미륵암도 여기서 유래 되었다 한다.



염화전 뒤로 미륵불을 닮았다는 미륵봉과 바위들이 서로 엉켜 있는 중앙의 좌선바위를 볼 수 있다.

미륵사는 대웅전 대신 염화전을 중앙에 배치를 하였는데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1952년에 지었다. 내부에는 1985년에 조성한 석가삼존불은 중앙에 석가여래와 좌우로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을 안치하였다.
1974년에 조성한 후불탱이 중앙에 모서져 있고 신중탱과 지장탱등 모두 최근에 조성을 하였고 석정스님의 작품이다.

염화전 내부의 모습


칠성각


칠성각에서 본 미륵사 전경

오백전

오백전 내부




현재 독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 보면 작은 샘터가 있다. 이 샘터는 쌀바위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매일 아침 작은 구멍에서 한톨 한톨 쌀이 떨어져 스님이 이 쌀로 끼니를 이었다 한다. 그런데 사미승이 구멍을 크게 하면 한거번에 더 많은 쌀이
나오라고 구멍을 작대기로 쑤신뒤 부터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 한다. 현재도 독성각아래인 미륵 바위아래에 작은 샘터가 있다.

독성각

독성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바위밑의 모습

 
독성각 처마 끝 모서리에걸린 자연 암벽에 미륵바위의 장삼자락을 양각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독성존불의 본 이름은 나반존자로서 미륵존불이 출현하실때 까지
천태산에서 선정삼매에 들어 있다가 미륵존불이 세상으로 나오시면  좌보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으로 현재도 독성각 입구 우측에 그 흔적이 뚜렸하다.



장군기를 꽂았다는 독성각 앞의 구멍.
원효대사는 미륵암에 주석을 하며 미륵삼부경중 상생경종요을 집필하였다하며 왜적 5만병선이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으면서
첩자를 육지로 올려 보냈는데 미륵사에 머물고 있던 원효대사가 사미승에게 호리병 5개를 구해오게하여  탑앞네 나란히 세운뒤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았다 한다. 그 장군기를 보고 두명의 첩자가 미륵암까지 올라와
대사는 호리병으로 신통력을 부려  첩자의 목을 졸랐다. 첩자들이 살려 달라고 하자 호리병 3개를 적장의 대장에게 주라며 돌려 보냈다. 화가난 적장은 호리병을 단칼에 내리쳤고 그 순간 적장은 그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다 한다.









염화전의 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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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한 사찰인 금정산 범어사 삼광사 해동용궁사등 많은 사찰이 있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사찰이 기장군에 위치를 하고 있다. 벌써 아~ 그 절. 하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장안사계곡에 터를 잡아 주위 연봉이 연꽃 봉우리 속의 꽃술에 해당하는 터에 자리를 잡은 장안사는 그 깊이 만큼 내면으로 들여다 보는 맛이 있는 절집이다. 

<불광산 장안사의 대웅전과 부처님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한 삼층석탑>

불광산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척판암을 창건한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쌍계사로 부르다가 애장왕이 들런 후 장안사로 개칭을 하였다한다. 장안사는 별 두렷한 문화재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원효대사가 “해동원효척판구중”의 척판암과 함께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16년인 1638년에 대의 선사에 의해 다시 중건을 하였고 1654년 효종5년에 원정, 학능,충묵스님에 의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한다,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7호이며. 경내 에는 대웅전 (大雄殿)이외에도 명부전 (冥府殿), 응진전 (應眞殿), 산신각 (山神閣) 등이 있다. 장안사 홈페이지를 보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대웅전

부산기념물 제37호

지정연도 1995년 3월 1일

소재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


대웅전은 모든 사찰의 중심건물로 장안사도 예외가 아니다.

대웅은 부처님의 덕호(德號)로 대웅전은 석가여래 부처님을 봉안한 곳을 말해 모든 사찰의 중심건물이 된다. 장안사 대웅전은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데 가운데 석가여래 부처님을 좌측으로 약사여래불, 우측으로 아미타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1654년 중건 된 것을 1948년에 각현이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1975년에 단청을 새로 하였다 한다. 대웅전의 건축양식은 팔작지붕을 얹었고 겹처마로 공포는 다포양식이다. 정면3칸 측면 3칸으로 규모가 큰편이다.

*명부전



지장보살님과 10대 대왕을 모셔놓은 곳으로 지장전 (地藏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 한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없어질때까지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운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추앙받는 보살님이고 십대대왕(十王殿)이란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있는 명부시왕들(십대대왕)에게 심판을 받게 되는데, 49일간 일곱명의 왕에게 심판을 받아서 죄의 경중에 따라 다음생의 갈 곳이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49제를 지내는 것도 49일 동안 망자의 공덕을 짓기 위해 지내는 것이다

*응진전




나한전을 응진전이라고도 하는데 응진(應眞)이란 '존경받을 만하다','공양받을 만하다' 라는 의미를 뜻한다한다. 나한전의 나한은 석가모니불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이나, 경전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또한 나한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이라

*극락전

와불복당에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장안사에서도 불기 2535년 부처님 진신사리 7과를 봉정받아 3층 석탑에 봉안하였다. 이 진신사리는 불기 2523년 혜명선사께서 태국에서 모시고 오신것이다. 그리고 불기 2543년 사부대중의 지대한 원력으로 부처님 진신사리 3가를 봉정받아 극락전 와불 부처님 복장에 봉안하였다.

이 진신사리는 미얀마 마웅매이 절 원로의장이신 고승 우뚜리야 샤야도우 스님이 장산스님께 봉정한 것을 큰 인연으로 장안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한다.

장안사로 걸어가다 보면 우측으로 볼 수 있는 글씨입니다.

주차장에서 장안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대형 표지석이 서 있다.
들어서는 우측에 석불과 석탑, 석등이 진열되어 있다.
달마대사께서 오신 뜻은 의 아리송한 글귀와 동그라미가 무엇을 의하는지...모든 만물은 둥근 우주에서 온다는 뜻일까?
달마대사상과 주변의 불석들...
2층으로 된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조각되어져 있어 특이하고 2층의 누각은 법종각이다.
<사천왕상의 모습입니다>

일주문에서 본 대웅전과 삼층석탑입니다.


대웅전 안의 삼존불로 중간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고 우측으로 아미타여래불,좌측으로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대웅전의 문살입니다.
1975년 단청을 새로 하였지만 지금 현재의 모습은 빛바랜 전통의 건축물로 바뀌어 있다.
대웅전 현판의 모습과 화려한 단청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서 깊은 좌천 장안사

산신각입니다.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산신의 모습입니다.

천년을 이어온 불상
지장보살입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없어질때까지 성불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운 지옥세계의 부처님입니다.

주차장에서 본 장안사 모습입니다.
위에서 본 장안사의 모습입니다.대웅전등 짜임새 있는 구조입니다.

찾아가는 길:대중교통편은 기장군 동부리 기장시장으로 가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기장시장으로 가려면 해운대 쪽에선 39, 180, 181, 1003번, 동래 쪽에서는 183, 반송에선 188번을 타야 한다. 기장시장 앞에선 일해교통 9번 마을버스를 타고 장안사 입구 상장 안마을 슈퍼 앞에서 내린다. 오전 6시45분, 7시10분, 8시20분, 9시15분, 10시5분 11시. 20분 걸리며 1000원. 장안사에서는 오후 2시30분, 3시40분, 4시30분, 5시30분, 6시15분, 7시10분, 8시10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송정해수욕장 입구~기장체육관~울산 온양~월내 장안사~장안사 순.

장안사 홈페이지입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더욱 많은 정보와 접힐 수 있습니다.
http://www.jangan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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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여행/울주여행)대운산 내원암. 빈대로 폐사된 절 대원암이 대운산 내원암으로 된 사연

대운산 내원암
소재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 1312번지
연락처:052-238-5088

부산에 가까운 산행지는 여럿 있다. 그중 대운산은 부산 울산 양산의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행코스이며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여름철에는 수량이 풍부한 계곡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행지이다.
한때는 대운산을 불광산으로도 불리어 졌지만 지금은 대운산으로 완전히 굳어져 불리고 있다. 대운산은 여러개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연꽃송이 같은 봉우리의 중심이 영남제일의 명당이라 극찬하고 신라시대 고봉스님은 그 자리에 대원사를 창건하였다. 지금은 절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고 대원사지의 흔적도 느낄수 없지만 500년이 넘은 팽나무 한그루가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현재 그 노고의 팽나무가 신비스럽게도 코끼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불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령 500년이 넘은 팽나무로 대원사지를 지키고 있다. 나무의 모습이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노거수이다>


온양읍 면사무소 홈페이지에 보면은 다음과 같이 대원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온양읍 운화리 상대(上大)마을의 절터골에는 옛날 대원사라 하는 큰 절이 있었다. 이 절은『동국여지승람』에 남목(南牧)의 열암사(裂菴寺), 연암의 백연암(白蓮庵), 웅촌의 운흥사(雲興寺), 율리의 망해사(望海寺)와 청송사(靑松寺), 언양의 연고사(連高寺),삼남(三南)의 석수사(石水寺)와 같이 등재 되었던 이름 난 절이었다.

 

그러나 대원사는 정조(正祖) 10년(1786)에 폐사되고 지금은 그 절터만 남아 있다.

대원사의 내력은 절터에 남아있던 현하당(縣河堂)이라 음각된 부도를 통해 짐작할 뿐이다.

이 부도에 새겨진 이름을 보아 현하당이란 스님이 대원사(大原寺)에 계셨던 것만 알 뿐 아무것도 남긴 사적(寺蹟)은 없다. 그러나 이 절이 망하게 된 사연에는 사람의 구전으로 내려온 전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오를 정도로 크고 이름난 절이었으니 신도들이 많이 찾아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절에는 괴이한 주지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드는 것을 몹시 귀찮게 생각하여 왔다. 수도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금의 불국사(佛國寺)처럼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어 관광 하는 것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날 한 도사가 절을 찾아와서 잠시 쉬게 되었다. 이때 주지의 입에서 사람들이 하도많이 와 귀찮으니 사람들이 적게 오게 할 수없을까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 말을 듣게된 도사는"그런 일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니 그리 근심치 않아도 될 일이 올시다"하였다. "마을로 내려가는 산모퉁이에 큰길을 내게 되면 소원대로 될 것이요" 하고 그 도사는절을 떠나 버렸다.

도사의 이야기를 듣게 된 주지는 산모퉁이를 헐어 길을 열게 되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작업 중에 석불한 구가 솟아 나왔는데 이 부처는 그만 삽과 괭이에 찍혀 목이 떨어지고 떨어진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의 일이었다.

절에는 갑작스럽게 빈대가 들끓었다. 많은 빈대 속에서 사람들은 견디어 낼 수가 없어 쓰레받기에 쓸어담아 웅덩이에 버렸는데 이곳을 빈대소라고 한다.지금도 절터의 바위를 뒤져보면 빈대의 껍질이 나올 정도라고 이곳 사람들은 말을 하고 있다.“

대원사의 절터자리에 내원암의 절집이 아담하게 자리를 잡아 대원사를 대신하며 아래로 흘러내린 계곡을 절터골로 현재는 내원골이라한다.
이별바위, 소원바위, 나한바위, 금강폭포등 많은 기암들로 둘러 싸인 내원암 부근을 흔히 소금강산으로 부를 만큼 풍치 또한 뛰어나다.
대운산은 장안사를 위시하여 불국토의 산으로 박치골, 도통골 내원골이 상대계곡의 상류를 이루며 도통골을 올라 대운산 정상을 향하는 험준한 오르막에는 큰바위란 용심지가 있다.
이곳에 절터의 흔적과 샘터가 있어 원효의 전설이 내려온다. 원효대사께서 용심지 작은 암자에서 참선을 하고 있어니 경주 불국사에 화재가 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옆의 제자에게 체를 주며 물을 퍼오라하니 재자는 대나무로 만든 구멍이 숭숭 뚫인 체에다 물을 받아 오라하는지 이해를 못하며 열심히 체에다 물을 담아보니 물이 빠져 담을 수가 없었다. 수십번의 노력 끝에 겨우 체에다 물을 담아 원효에게 가지고 가니 그 체를 불국사 방향으로 날여 보내 불국사의 화재를 진화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도통골인지 모르지만 ....

현재 내원암의 대웅전으로 모습이 화려하며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

최근에 조성한 석탑



내원암의 부속건물



대웅전 안의 삼존불상

화려한 단청의 모습과 구조입니다.





문살아래 새겨진 문양들

대웅전에 그려진 화려한 벽화들












찾아가기: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부산과 울산을 잇는 14번 국도를 타면 된다. 송정해수욕장 입구 지나~울산 온양~기장군청 지나~울산 울주군 온양읍 입간판 지나~장안사 입구 지나~상대 하대 대운산(입구에 '산여울' 간판)~대운산 내원암 계곡~굴다리 통과~대운산 제3주차장 순. 주차비 무료.

온양읍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onyang.ulju.ulsan.kr/introduction/legend.js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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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기장여행)불광산 척판암. 판자를 던져  당나라 천명대중을 구한 원효의 척판암 가보기

 

부산시 기장군의 불광산에가면 장안사가 있다 그러나 장안사 보다도 더 유명한 사찰이 있다. 바위 절벽 밑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척판암은 절의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원효대사에 얽힌 전설이 있다. 모든 사찰치고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안 엮어진 사찰은 사실 보기 힘들다. 그 만큼 두분을 엮어야만 사찰의 대열에 끼는 것일까. 그러나 불광산 척판암은 자뭇 진지한 설화을 가지고 있다.


 

<척판암은 절의 규모가 장안사에 비해 초라하지만 원효와의 설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알려진 작은 암자이다>

척판암은 신라 문무왕 1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이 참선중에 혜안으로 살펴보니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의 천명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위기에 처한 것을 보시고 문짝을 떼어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救衆) 즉 "바다 건너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고 적힌 판자를 태화사로 던져 보냈다. 태화사의 대중들은 그 사실을 모른고 법당에 머물러 있는데 밖을 보니 판자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모두 그것을 쫒아 밖을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산사태가 법당을 덥치니 큰 법당이 매몰되고 말았다. 이에 천명의 대중은 원효의 신통력으로 던진 판자로 인해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을 알고 신라의 불광산 척판암으로 찾아와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니 원효스님은 그들을 기거할 곳을 찾아서 원적산의 내원사로 들어서니 산신이 나와 인도를 하였다 한다. 현 산신각 자리에 도착을 하니 산신은 사라지고 스님은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중,하내원암과 천성산 골짜기에 89암자를 지어 그곳에 대중들을 머물게 하였다 한다. 흔히 천성산 공룡능선을 산행하면 집북재란 고개와 만나는데 원효스님은 1,000명의 중국스님을 통솔하기 위해 중내원암에 북을 메달아 치며 통솔 하였다 하여 집북재라하며 그옆 봉우리를 집북봉이라 한다. 그리고 1천명의 대중을 모아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 현재 천성산의 더 넓은 화엄벌로 봄에는 철쭉이 만개하고 가을은 억새로 산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에도 화엄경을 놓은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1천명의 스님들이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원적산으로 부르던 이름이 천성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만큼 척판암은 불광산에서 대단한 조망권을 자랑한다. 앞으로는 대운산과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처져 누구나 올라보면 넓은 혜안을 가질 수가 있을 것 같다.


부산시 기장군 장안사 옆 주차장에서 백연사 방향의 포장길을 따라가면 왼편으로 척판암으로 오르는 옛길을 볼 수 있다. 표지석과 안내판을 만나니 쉽게 찾을 수 있다.

척판암의로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대웅전의 건물이 한일(一)자로 달랑 한채뿐인 절집이다.

일주문에 붙은 현판으로 불광산 척판암으로 적혀 있다.

이문을 들어서면 먼저 척판암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과 만난다.

척판암의 현판이 걸린 법당건물로 여기서 원효는 판자를 던져 천명의 대중을 구한 것이다.





문살의 무늬가 화려하며 연꽃무늬를 하고 있다.

문살 밑에 다른 절과 달리 보통 사천왕상의 험상궂은 얼굴을 새겨 놓은 곳은 여럿 봤지만 용을 세겨 놓은 곳은 쉽게 보지 못한 것 같다.

2007년 12월 겨울에 찾은 척판암입니다. 그때는 일주문에 단청이 입혀지지 않았는데 최근 방문시 곱은 색으로 칠한 모습이었습니다.



 

찾아가기;대중교통편은 기장군 동부리 기장시장으로 가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기장시장으로 가려면 해운대 쪽에선 39, 180, 181, 1003번, 동래 쪽에서는 183, 반송에선 188번을 타야 한다. 기장시장 앞에선 일해교통 9번 마을버스를 타고 장안사 입구 상장 안마을 슈퍼 앞에서 내린다. 오전 6시45분, 7시10분, 8시20분, 9시15분, 10시5분 11시. 20분 걸리며 1000원. 장안사에서는 오후 2시30분, 3시40분, 4시30분, 5시30분, 6시15분, 7시10분, 8시10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송정해수욕장 입구~기장체육관~울산 온양~월내 장안사~장안사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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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제374호 율곡사 대웅전은 조선 초중기작품이며 정면3칸 측면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정수산 산행의 들머리는 산청읍내에서 상여봉을 올라 이어지는 종주산행과 짧은 척지에서 오르는 산길,
그리고 정수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율곡사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그 정수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인 율곡사는 경남 산청군 신등면 율현리 1034번지에 의 유서 깊은 사찰로 신라 경순왕 4년에 감악조사(感岳祖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 안내판에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였어며 신중동국여지승람에는 단성현에 있는 절로 기록되어져 있다한다.
 (산청군청에서는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고 감악조사가 중창을 하였다고 정리가 되어져 있다)
 
율곡사에서 대표할 만한 보물은 대웅전(보물제374호)과 율곡사괘불탱(栗谷寺掛佛幀)화(보물제1316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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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의 대웅전은 2003년 해체복원과정에서 어칸 종도리 하부에서 “강희십팔년기미월일상량기(康熙十八年己未月日上樑記)”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조선 숙종(1679년)때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슴을 알 수 있다.
율곡사는 대웅전에 관해 내려오는 전설 있다. 정수산 취재 산행시 궁금해 율곡사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파랑새의 전설에 관해서....

“국내에서는 두군데 절집에서 똑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한군데가 율곡사 창건시에 대웅전을 짓고 난뒤 단청에 색칠을 하는데 화공이 이레동안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지 말것을 당부하며 작업에 들어 갔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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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가 그림을 그리다가 미완성으로 남은 산수와 두점. 2003년 대웅전 해체 복원시에 찾았다한다.

상좌승이 대웅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하여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만 하루를 남기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파랑새가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본 상좌승은 소스라치제 놀라고 파랑새는 물고 있던 붓을 놓고 날아가 새신바위로 숨어 들었다”는 이야기를 여쭈어 보니 스님도 내소사의 전설은 자기도 잘 알고 있지만 율곡사 대웅전의 파랑새 전설은 최근에 와서 여러 관광객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며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들여주었다.

그러나 최근 2003년에 해체 작업을 할때 건물 천장에는 우물정자로 만들어져 있어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 있어 아래에서 보면은 볼 수가 없었지만 해체작업때 확인을 한 산수화 두점을 찾았다 한다.

미완성의 산수화는 전설속의 파랑새가 그리다 날아간 그 그림인지 알 수 없지만 대웅전 안에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스님이 들여주었다. 그리고 대웅전은 정면3칸과 측면3칸으로 작은 규모를 이루며 팔작지붕을 얹었다.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기둥인 3단 목조장은 복잡하면서도 아름답게 장식되었어며 조선조 중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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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다가 상좌승이 문틈으로 들여다 보자 입에 물었던 붓을 떨어트리고 여기 새신바위에 날아 앉았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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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사이에 두짝의 문을 달아 여러모양의 문살을  넣어 대웅전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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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철에 찾아가면 특히 붉은 감이 홍시가 되어 대웅전과 함께 아늑한 산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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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현리 도로가의 율곡사 안내석, 여기서 좌회전을 하여 도로를 따라간다.


율곡사 대웅전의 자세한 기록은 문화재청 홈페잊로 들어가보세요.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2,03740000,38&queryText=율곡사대웅전

산청군청 홈페이지 율곡사
http://tour.sancheong.ne.kr/program/assert/out.asp?menucode=030405&assertcode=9916&stype=&sstring=&sMcode=&open_main=3&open_sub=5&open
_sub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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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대둔산

중국 장가계 뺨치는 호남제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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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명물 금강구름다리. 입석대와 임금바위를 연결하는 이 다리 입구에는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 그리고 정상인 마천대가 한 눈에 조망되는 포토존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하늘과 맞닿았다는 마천대를 비롯, 사방팔방으로 뻗은 산줄기가 온통 수 백개의 기암괴봉으로 이뤄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大屯山·878m). 깎아낸 듯한 기암절벽의 위 아래에 의연하게 서있는 늘푸른 소나무와 아직도 색조가 미미하게 남아있는 단풍의 절묘한 조화가 일품이다.

약간 과장해 비유한다면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자연유산인 호남성 장가계의 천하절경 무릉도원 천자산의 축소판이랄까.




산 정상 부근까지 케이블카가 올라 남녀노소 누구나 쉬이 접근이 가능한 데다, 천 길 낭떠러지를 이어주는 구름다리가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마치 천상을 걷는 착각이 들 정도다.

장가계의 천자산은 평균 해발이 1260m대로 케이블카 탐승이 이뤄지지만 해발 900m가 채 안되는, 그것도 산행 기점이 이미 300m나 넘는 대둔산은 케이블카 이외에 2시간 정도의 발품을 팔면 너끈히 정복이 가능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장가계는 정부 차원에서 친환경적 개발이 이뤄져 깔끔한 인상을 주지만 대둔산은 산행 초입부터 정상까지 휴게소가 잇따라 나와 인파가 몰리는 만추에는 산인지 시장통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일찍이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했을 만큼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대둔산이 속세의 물결에 잠식당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북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 및 금산군에 걸쳐있는 대둔산은 두 얼굴을 가진 산이다.

기암괴봉이 숲을 이뤄 우뚝 솟아있는 남동쪽의 산세가 전북 완주의 그것이라면, 이보다 북쪽인 충남 금산과 논산지역의 산세는 완만한 경사의 호젓한 산길과 단풍으로 뭇 산꾼을 유혹한다. 전북 충남 두 지자체에 의해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것도 흥미롭다.

흔히 바위산으로 케이블카와 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 칠성봉 등 볼거리가 무진장이어서 널리 알려진 곳은 완주코스. 대둔산을 처음 찾는 산행팀도 선택의 여지없이 이 코스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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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주차장 매표소~동심 휴게소~동심바위~금강문~금강구름다리~약수정 휴게소~삼선계단~정상 삼거리~마천대(정상)~용문골 삼거리~낙조산장~낙조대~용문골 삼거리~용문굴~칠성봉 전망대~신선암~용문골 매표소~주차장 순. 넉넉잡아 4시간 걸린다.

코스는 독특하다. 들머리에서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99%가 바위길과 돌계단 철계단 등으로 흙 한번 밟기 힘들고, 하산길인 용문골 코스는 대부분 흙길이기 때문이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곧 케이블카 타는 곳. 이때부터 사실상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가파른 돌길이다. 이 돌길은 정상인 마천대까지 이어진다. 달도 차면 기울듯 단풍도 이제 색이 바래 거의 끝물이다.

30여분 뒤 동심휴게소를 지나면 곧 동심(童心)바위. 원효대사가 이 바위를 보고 감탄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지만 기자가 보기엔 그저 평범한 바위여서 고승의 혜안을 찾을 길이 만무하다.

10분 뒤 '금강문' 안내판을 지날 무렵 고개를 들어보자. 이곳 명물인 금강구름다리가 파란 하늘 위로 입석대와 임금바위를 연결하고 있다.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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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봉 전망대로 이어지는 용문굴.

이곳에서 금강구름다리까지는 10여분. 다리 입구에 서면 저 멀리 삼선계단과 마천대를 비롯한 암봉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다리 입구 한 켠에는 포토존이 있어 저마다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는 다리(높이 80m, 길이 50m, 너비 1m)는 기대치보다 못했다. 심하게 요동치는 월출산의 구름다리보단 안전했지만 그래도 비명을 지르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다리를 지나면 약수정 휴게소. 육각정자가 마련된 이곳에서 흔히 점심식사를 한다. 정자 옆에는 이곳이 '대둔산 동학군 최후의 항전지'라는 안내판이 눈길을 붙잡는다. 1895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25명의 지도자들이 일본군과 3개월간에 걸쳐 항전을 벌이다 장렬히 순국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둔산의 또 다른 명물인 삼선계단은 '동학'안내판 바로 옆에서 시작된다. 길이 40m, 너비 0.5m의 127계단이 경사 50도 정도로 두 암봉을 연결한다. 한 눈에 봐도 아슬아슬하다. 멋모르고 올랐다가 너무 무서워 오도가도 못하는 50, 60대 아주머니 때문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삼선계단을 오르면 곧 정상 삼거리. 이후 산행은 정상인 마천대를 구경하고 이곳으로 되돌아와 오른쪽 용문골 삼거리로 향한다. 5분 후 정상 입구 갈림길. 오른쪽길은 수락계곡 등 논산 방향으로 가는 길.

마천대 개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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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마천대(摩天臺)는 원효대사가 하늘과 맞닿았다는 뜻으로 명명했다. 이곳에는 완주군민이 개척탑을 세워놓았다. 구름다리와 삼선계단, 집단시설지구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시 정상 삼거리로 간다. 이후부터는 낙엽과 산죽이 왠지 반가운 흙길. 완전히 딴 산이다. 평범한 오솔길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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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분 뒤 용문골 삼거리. 이곳에서 하산해도 좋지만 낙조대를 보고 가자. 불과 400m 거리다. 낙조산장을 거쳐 해발 850m에 위치한 낙조대는 일출일몰이 장관이다. 특히 서해바다의 수평선 위로 지는 일몰은 일품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서해바다가 보이지 않았으나 동쪽으로 충남의 최고봉인 서대산과 저멀리 태고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원효는 이곳 낙조대에서 태고사의 위치를 정하곤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이제 용문골 삼거리에서 본격 하산한다. 경사가 비교적 심한 급경사길이다. 10분 뒤 칠성봉 전망대과 용문굴 이정표를 만난다. 칠성봉은 용문굴에서 용이 등천하기 직전에 일곱개의 별이 떨어져 붙여진 이름.

용문굴을 통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칠성봉과 각 암봉 사이에 걸린 소나무의 자태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운치있다.

이제 하산만 남았다. 기암절벽 밑 곳곳에 '낙석위험' 경고판이 있을 정도로 돌길이 가파르다. 이어지는 토굴암자. 신선암이다. 주변에 쌓인 낙엽이 그간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신선암에서 용문골 매표소까지는 17분 정도 걸리고, 여기서 대둔산 주차장까지는 7분 소요된다.

#떠나기전에-배티재 출발코스 휴식년제로 폐쇄


산속에 들어가면 그 산의 진면모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 대둔산도 산속에 들어서면 바위암봉이 많은 그저그런 평범한 산일 뿐이다.

하지만 대둔산 근처의 배티재에서 보는 대둔산은 수반에 올려 놓고 간직하고 싶은 산으로 다가온다. 마치 영암의 월출산처럼 한 눈에 눈앞에 다가온다. 한듬산으로 불렸던 대둔산은 권율 장군과 배티재를 빼고는 논할 수가 없다. 임진왜란때 권율장군과 운명을 같이한 배티재는 돌배나무가 지천이어서 붙여진 이름.

이 배티재를 사이에 두고 왜적을 함께 물리쳤던 권율 장군과 황진 현감의 대첩비와 전승비가 각각 서 있다. 왜군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칠날이 없었다는 대둔산의 한 골짜기는 그때의 처절한 전투를 지금까지 말해주듯 울움실로 불린다. 배티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는 현재 휴식년제로 폐쇄돼 있음을 알려둔다.

하산할 때 만나는 용문골의 칠성봉 전망대는 건너편 칠성봉 암릉과 암봉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듯 솟아 있어 후반부 산행의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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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대전 서부터미널서 완주행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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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 완주의 대둔산으로 가야한다.

부산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에서 내린다. 대전 서부터미널(042-584-1616)에서 대둔산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5분, 9시30분, 11시30분에 있다. 2500원. 1시간 걸린다. 대전역에서 서부터미널까지는 차로 15분 정도 걸리며 대둔산 공용터미널(063-262-1260)은 대둔산 주차장과 붙어 있다.

대둔산터미널에서 대전 서부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후 1시, 4시30분, 7시15분(막차)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진고속도로~추부IC~금산 추부 37번 국도 좌회전~칠백의총~17번 대둔산 전주 방향~17번 전주 방향~대둔산 순. 이정표가 잘 세워져 있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051)245-7005 www.yahoe.co.kr

입력: 2004.11.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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