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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산정

(경남여행/밀양여행)밀양칠산정.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문화재 관리의 현주소 밀양 칠산정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78호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 796번지

칠탄산 아래에는 두 재실이 있다.
칠탄정을 아랫재실 칠산정을 윗재실이라 구미마을에서는 부른다.

모두 손씨 집안의 재실이지만 칠탄정은 밀성손씨의 오한 손기양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이고 칠산정은 일직손씨로 본관은 안동이다.

시조는 고려시대때 중국 송나라의 전란를 피해 우리나라로 귀화하였는데 원래 순씨였다 한다.
현종의 이름이 순이라 음이 같아 현종이 손으로 사성하였다.
현종때 개국공신으로 손응이며 그의 후손으로 충정왕때의 영의정인 ‘삼중대광판삼사사’ 정평공 손홍량이고 8세대인 격재공 손조서에와 일직손씨의 꽃을 피운다.
세종14년에 진사에 그리고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로 수양대군에게 단종이 폐위되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껴 낙향을 하게 된다.
그의 '두우시'에는 옛 단종을 그리워하며 ‘두견새도 나와 같아, 밤낮으로 끊임없이 우는구나’ 하며 신하는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세조가 이조참판에 재수함에도 거절을 하고 이곳 월연정 옆 용호정(밀양시 용평동 장선마을)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평생을 단종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등지며 보냈다.
산외면 다원리 혜산서원에서 봉향을 하고 있다.











칠산정은 격재공의 13세손인 처사 손응룡의 묘하재숙소이다.
손응룡의 증손자 죽암 손건이 즉 7개의 골짜기와 7개의 능선이 합해지는 곳이라하여
칠산이라하며 일곱실이라고도 하는 이곳에
1863년 9월에 창건을 하여 모선재, 구호당이라 하였다.
189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5세손인 손기형이 1906년에 중수 하여 칠산정이라 하였다.







근대 초기 밀양지방의 양반재실로 별업을 겸한 재각이다.
정당의 마루는 재회의 장소로 좌우 온돌방은 재관들의 거처로 제수마련은 방앗간채와 고직사에서 하였다.
청송루의 누각은 온돌방과 누마루를 넣어 전사청, 직방등의 기능을 하였다.

 




문화재로 지정된 칠산정도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새로 올린 지붕(모양만 기와 모양)이 복원공사의 전부인지 모르지만 한복에 구두을 착용 한 것 처럼 엉성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여기도 칠탄서원 처럼 대청마루에는 쥐생원들이 이집의 주인인양 쥐똥들이 즐비하고 청송루의 누마루는 음산한 기분 마저 든다.
언제까지 방치를 할런지 모르지만 지금 이상태라면 곧 또하나의 문화재가 사라질 판이다.
칠산정을 관리하였던 후손들의 기거한 건물의 모습은 칡덩굴에 집의 흔적만 보이고 땜질하듯 문화재 보수를 한후 관리를 하지 않으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전체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는 문화재는 청도의 선암서원처럼 보수를 해 임대를 하여 고택체험이나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찾을 수 있고 훈기가 있는 곳으로 먼저 바꾸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래야만 자연적인 파괴는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 들머리인 단장면 미촌리 구미마을은 감물리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오전6시10분, 8시10분 11시50분, 구미교를 건너 우측 구미마을회관앞을 지나 마을 뒤 우측깊은 골짜기를 보고 따라간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금곡인터체인지에서 단산마을로 내려서표충사 단장면 방향으로 내려선다. 금곡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사촌마을~구미마을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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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둘레길 12-1코스)밀양 월영정 금시당  영남루. 비밀의 정원 밀양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1 상코스

근교산&그너머 <727> 제12-1코스(상) : 밀양 남기리 정려각~내일동 밀양교

 밀양강변 '비밀의 정원'들 … 마침내 빗장 열다




 
경남 밀양은 흔히 시가지보다 외곽 지역의 여러 명소들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표충사 천황산 재약산 얼음골 호박소 등. 상대적으로 밀양 시가지의 보석 같은 명소들은 외지인들에게 미답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비밀스러운 양지'를 뜻하는 밀양(密陽)이 뜻하지 않게 숨겨 두었던, 그러나 엄연히 그 빼어난 존재감을 속으로 갈무리하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숨은 진주 같은 곳을 찾아가는 일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들에게는 좀처럼 잊히기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아, 밀양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이것 역시 영남알프스 자락의 힘인가"라고 되뇌며 경탄하게 되리라. 밀양 시가지가 꼭꼭 숨겨 두었던 '비밀의 화원'으로 가는 코스를 엮었다. 밀양의 속살과 가슴 떨리는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 희귀 노거수와 백송(白松·일명 백골송, 흰 소나무), 그리고 꿈결 같은 산책로를 만나며 정녕 아름다운 경험을 했다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 12.5㎞ 짧은 구간 볼거리 많아 5시간 잡아야 넉넉

 
  건물 배치, 풍경과의 조화, 분위기 등 여러 측면에서 담양 소쇄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조선시대 정원 월연정. 영남알프스 둘레길 밀양 8경의 하나이기도 한 월연정을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 작은 돌다리는 쌍청교다.
출발은 제12코스의 종착지였던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 앞에서 한다. 긴늪솔밭유원지를 거쳐 밀산교를 건너고 이어서 오연정(鼇淵亭)~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월연정(月淵亭)~용호정(龍湖亭) 심경루(心鏡樓)~살내마을 정자나무~금시당 백곡재(今是堂 栢谷齋)~일자봉 산책로~용두취입보~팔각정~천경사~용두교~소나무거리숲~밀양교까지 이어지는 총12.5㎞의 길이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30분 정도지만, 하도 볼거리가 많아서 걸음이 느려진다. 5시간 이상 여유를 잡고 걸으면 좋다. 사실 서두를 일도 없지 않은가. 걷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 바로 천천히 가면서 자세히 보고 느끼며 평정심 속에서 감동을 쌓는 것일 테니까.

정문마을 정려각에서 긴늪유원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후 새 국도아래 굴다리를 통과하면 눈앞에 긴늪솔밭(일명 기회송림)이 보인다. 100m쯤 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입구가 있다. 전도연 주연의 영화 '밀양' 촬영지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긴늪솔밭은 100여 년 전부터 기회마을 주민들이 방풍림으로 조성하기 시작한 것. 이제는 수천 그루의 우람한 솔밭으로 변모해 지역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유원지가 됐다. 1970~1980년대에는 기업체 야유회나 계모임 나들이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오연정의 전면)
 
  GPX & GTM 파일 / 고도표 jpg파일
긴늪사거리에서 밀양 시가지 방향인 왼쪽 밀산교를 건넌다. 발밑에 밀양강이 흐른다. 왼쪽 가까이 보이는 산은 산성이 있는 추화산이다. 다리를 건널 때는 왼편 갓길을 이용하자. 다리가 끝나자마자 왼쪽 추화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블루베리농장 앞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곧이어 추화산 아래 T자 갈림길. 우측에는 영천암 표지석이 있지만 왼쪽으로 간다. 2분 후 이번 코스에서 만나는 첫 번째 정자인 오연정 입구다. 오른쪽 언덕으로 오른다. 우거진 소나무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길. 짙은 녹음이 내뿜는 청정 산소가 코를 간질인다. 오연정은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추천(鄒川) 손영제(1521~1588)가 낙향해서 지은 정자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세기에 다시 지었다. 본당 건물은 'ㄱ자' 형태로 왼쪽에 누마루를 내고 본체의 앞과 뒤에 같은 폭만큼 마루를 설치했다. 앞뜰에는 배롱나무, 뒤뜰에는 단풍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누마루에서 보면 밀양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멀리로는 영남알프스 산줄기가 강을 함께 달린다. 오연정 울타리 뒤에는 모례서원 유허비가 있다.

 
  추화산 자락에 자리잡은 오연정. 누마루와 배롱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다시 오연정 입구로 복귀, 길을 이어가면 10분 후 모례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나 일제강점기 때 경부선 철로로도 사용됐던 용평터널 입구에 닿는다. 길이 300m 너비 4m 안팎의 좁은 터널로 차량도 다니기 때문에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일명 백송터널로도 불리는 이 터널을 나서면 정우성이 주연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 촬영 기념 입간판이 있다.

(월연정의 모습)
영화 촬영 기념 입간판 왼쪽으로 걸어서 강을 따라 들어가면 월연정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쌍벽을 이룰 만큼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가운데 작은 개울에 놓인 쌍청교를 중심으로 왼쪽은 쌍경당, 우측은 월연대다. 월연대 앞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종인 백송이 밀양강을 내려보며 자라고 있다. 흰색 비늘 같은 껍질을 가진 이 나무는 원래 중국이 본산지다. 조선 초기 사신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그 씨를 가져와서 국내에 심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월연정에는 백송 외에도 오죽(烏竹), 행단 등 희귀한 나무가 많아서 그 분위기를 더 심오하게 한다.


■ 오연정 월연정 용평터널 금시당… 밀양 숨은 명소 거쳐

 
  왼쪽부터 월연정 백송, 금시당 은행나무, 금시당과 백송.
터널 출구로 돌아와서 길을 이어간다. 우측 용호정, 심경루를 지나서 왼쪽의 활성교를 건넌다. 강 건너엔 야트막한 산성산 줄기. 밀양 시가지에서 보면 한일(一)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일자봉이라고 불리는 산이다. 다리 건너 갈림길. 금시당 가는 방향은 오른쪽이지만 일단 왼쪽으로 간다. 강마을 식당을 지나 우측 살내마을로 들어선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고가교인 금시교 아래를 통과하면 눈앞에 어른 다섯 아름이나 되는 거대한 둥치의 느티나무를 만난다. 사실 이 나무를 보려고 일부러 이 마을에 들른 것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만난 수많은 노거수 중 둥치의 굵기로만 따질 때 이 나무가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다시 고속도로 밑 '금시교' 안내판까지 돌아간 후 왼쪽으로 간다. 고속도로를 머리 위에 이고 가는 길이다. 곧바로 작은 사거리에서 철조망 사잇길로 직진. 강물을 만나면 왼쪽으로 틀어 금시당으로 향한다. 5분 후 환상적인 금시당 산책로가 시작된다. 조선 명종 때 승지를 지낸 금시당 이광진(1513~1566)이 만년에 지은 정자인 금시당이 있다. 주변의 울울창창한 소나무뿐 아니라 '암새들'을 굽어도는 밀양강 물줄기를 내려다보는 고택의 배치 역시 호젓한 분위기를 북돋운다. 금시당에는 이광진이 1566년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 450년이 넘는 이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데, 가을 어느 날 황금빛 잎을 번쩍이다가 어느 순간 털어내고 또 한 겹의 나이테를 두를 테다.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 왼쪽으로 돌아가면 담장 너머로 경내를 볼 수 있다. 뜰에는 은행나무뿐 아니라 배롱나무가 있고, 그 유명한 금시당 금시매화도 낮은 담장만큼이나 낮게 서 있다.

(월연정)
 
  금시당에서 팔각정으로 가는 산책로는 밀양이 자랑하는 명품길이다.
금시당 뒤에서 산성산(일자봉)으로 직접 오르는 등산로와 강줄기를 따라 팔각정까지 가는 1.8㎞ 길이의 산책로로 갈라지는데, 평편한 산책로를 따른다.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모두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호젓한 길이다. 달콤한 꿈속의 길 같다. 밀양 시내 주민들이 첫손에 꼽는 산책로이기도 한 이 길은 소나무와 아카시아, 참나무, 화살촉을 만드는데 사용됐다는 대나무 등이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오른쪽 아래에 밀양강을 끼고 돌아가는 길목마다 김남주의 '고목', 서정주의 '꽃', 천상병의 '강물' 등 서정성 뛰어난 명시(名詩)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 밀양강 따라 가는 일자봉 산책로 환상적 분위기에 매료

 
  밀양시 활성동 살내마을의 노거수. 어른 다섯 명이 안을 만큼 굵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밑을 통과하고 기도터를 지나 호젓한 산책로가 좀 더 이어진 후 갈림길이다. 일단 오른쪽 내리막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용두취입보 보고 다시 올라오면 우측에 곧바로 팔각정 매점이 있다. 팔각정을 지나면 곧바로 천경사 입구.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계단길을 따른다. 3분이면 강가에 닿는다.

(월연정)
강변을 따라나가면 경부선 철로 밑을 통과하고 강을 가로지르는 3중 보를 잇따라 지나 용두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밀양사회복지관 앞에서 우측으로 틀어 강둑길을 걷는다. 강둑이 왼쪽으로 꺾어질 즈음, 강 건너에서 봤던 송림으로 내려선다. 지난 2002년 제3회 전국 아름다운 숲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소나무거리 숲'이다. 강가에는 지역 출신의 이재금(1941~1977)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그의 작품인 '도래재'가 새겨져 있는데, 그의 밀양 사랑이 절절히 녹아 있다.

소나무길을 통과하면 강 건너에 밀양읍성과 무봉사, 영남루가 보인다. 둔치를 따라가다가 영남루 맞은편에 앉아 강물에 비친 거대한 누각의 그림자를 본다. 밀양교를 건너면 오늘 코스의 종점이다.

(금시당백굑제)
◆ 교통편

-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정문마을 행 버스 30분 간격

 
  밀양 영남루 건너편 고수부지에 있는 소나무거리숲.
부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밀양역으로 간다. 무궁화호는 오전 5시10분 첫차를 시작으로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43분 소요, 운임은 3800원. 밀양역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뒤, 정문마을행 새마을버스 또는 얼음골 표충사행 직행버스를 이용한다. 새마을버스는 오전 6시10분부터 약 30분 간격으로 있고 직행버스도 7시05분부터 약 20~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린 뒤 밀양 방향으로 가다가 첫번째 사거리인 긴늪사거리에서 좌회전, 200m쯤 가다가 다시 좌회전 굴다리를 통과해 우측으로 2분쯤 가면 남기리 정문마을회관앞에 닿는다. 정려각은 50m쯤 떨어져 있다.


# 일제가 건설한 터널과 보 아직도 사용중


 
  일제가 경부선 철로용으로 건설한 용평터널. 폐선된 지금은 사람과 자동차가 다닌다(왼쪽). 용두취입보 전경.
이번 주 밀양 시가지 길에서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두 곳을 지난다. 첫 번째가 한때 경부선 철로로 사용됐던 용평터널(일명 백송터널)이고 또 하나는 용두산 팔각정 아래에 있는 '용두취입보'다. 둘 다 100년이 지난 유산들이다.

월연정 인근에 위치한 용평터널은 1905년 경부선 철길이 개통될 당시에 일본인들의 설계 하에 건설된 철로용 터널이다. 35년 동안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열차의 길로 역할을 다했지만 1940년 선로 복선화가 이뤄지면서 인근에 새 터널이 뚫리자 도보용 터널로 바뀌었다. 길이는 약 300m이고 높이 4~5m, 너비 3.5~4m 규모인 용평터널은 현재는 사람과 자동차가 이용하고 있다. 특히 차량은 교행이 안되기 때문에 멀리서 보고 반대편에서 한 대가 진입하면 이쪽에서 대기했다가 지나가야 한다. 걸을 때도 차량을 피하기 위해 한쪽 벽에 바짝 붙어야 한다. 그런데 이 벽면 중 일부는 106년 전 건설 당시 때부터 유지돼 온 것으로 보이는 화강암이 그대로 남아 있고 천장에도 벽돌로 마감을 처리한 흔적이 남아 있어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터널의 구조도 특이하다. 전체가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중간에는 자연절벽과 뻥 뚫린 하늘이 있어 굳이 따지자면 두 개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이곳을 지날 때면 짙은 녹음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그래서 일부 사진작가들에게는 출사지로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곽경택 감독은 월연정 들머리 방향의 터널 앞에서 인기 배우 정우성을 내세워 영화 똥개를 촬영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용두취입보'는 비록 일본인의 구상과 설계로 건설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원래의 목적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은 곳이다.


현재 이 용두취입보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밀양지사에 따르면 이 관개시설은 1909년 일본인 마쓰시타 데이지로가 구상해서 만들어낸 자연유화식 인공 터널 수로다. 밀양강에 보를 만들고 용두산 아래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낸 다음 산줄기 건너편 멀리 있는 상남면 일대 예림리 등 4개 마을 592㏊의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건설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이 수로는 이들 지역의 농사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보석 같은 수리시설 역할을 한다. 전체 수로의 길이는 6438m이고 산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의 길이만 433m에 달한다.

(금시당의 모습으로 금시당 이광진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낙향하여 있는 것 즉 현재 자신의 처신이 옳았다는 뜻이 금시당이다)
농어촌공사 밀양지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펌프를 통해서 낮은 지대의 물을 끌어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농업용수를 댈 수도 있지만 100여 년 전에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표고차를 이용해 밀양강의 물을 산 밑으로 연결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겠다고 구상하고 그것을 실행한 것을 보면 지금 입장에서 봐도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용평터널이나 이 용두취입보는 모두 일본인들의 설계와 구상으로 건설돼서 일면 유용하게 사용됐거나 현재도 사용 중이지만 그 터널들을 뚫기 위해 동원됐을 한국인 인부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도 지울 수 없다. 일제의 유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되겠지만, 그 속에 배여 있는 조상들의 아픔까지 잊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개척단장 010-3563-0254 / GPS·동영상 www.kookje.co.kr
글·사진=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교동의 오연정은 전면으로는 ㄱ자 형태의 돌출된 마루를 넣었고 뒷면에도 일자형의 마루를 넣어 어느쪽이 전면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운 누각이다. 추천손영제가 지은 정자로 경남문화재자료 제215호이다.(사진은 뒷면의 모습)








 지형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떤 모습의 동물을 상상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연상할 것이다.
실제로 살내마을에서도 뒷산을 범의 얼굴로 생각을 하여 용과 호랑이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살내마을 우측능선 끝부분을 범의 머리로 마을에서는 버머리깡이라 부르며 그 윗부분을 범설이라 부른다고 마을분이 이야기를 하였다. 일명호두산으로 불리며 그 앞으로 흐르는 천이 호랑이가 물을 뿜는 형상이라 호분탄이라 부른다.

긴늪유원지유래석

긴늪유원지

긴늪유유ㅓㄴ지 앞의 북천으로 마을에서는 밀양강이 아닌 북천으로 부른다. 산외방향에서 내려오는 하천은 동천이라 부르며 두 물줄기가 합하는 곳에 월연정이 있다.





월영정의 백송

금시당의은행나무

오연정 입구

살내마을의 당산나무로 느티나무껄이라 부르며 400년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

북천과 동천이 서로 만나는 월연으로 그 뒤로 운문지맥의 끝부분인 비학산 보담산 낙화산 중산능선이 펼쳐진다. 그 안의 골짜기가 엄광리로 영남알프스 둘레길 12코스이다.

밀양손씨의 용호정

용두산과 그아래 용두연의 모습





금시당 산책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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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여행/남원여행)지리산 구룡계곡~덕운봉 산행. 아홉마리의 용이 계곡의 폭포에 내려와 놀고 갔다는 지리산 구룡계곡

 

근교산&그너머 <684> 지리산 구룡계곡 ~ 덕운봉

명품 계곡길에 대간길 둘레길 어우러진 여름철 일급 코스

구룡계곡 하류 기점 원점회귀형 산행

챙이소 비폭등 구룡폭포 등 비경 만끽

백두대간 통과 국내 유일 마을도 거쳐

옛 사람 자취 밴 지리산둘레길로 하산

여름철 내내 가장 인기 있는 산행이 계곡산행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산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장마철에도 마찬가지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계곡의 그늘은 쉽게 지치기 마련인 산꾼의 피로를 덜어준다. 크고 작은 소와 폭포, 바위틈 으로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만 들어도 발걸음이 가볍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계곡산행에 나섰다. 지리산 자락 서북쪽 끝에 걸쳐 있는 전북 남원시 구룡계곡(九龍溪谷)과 덕운봉(德雲峰·745m)을 이은 코스다. 지리산의 계곡이라고 하면 흔히 뱀사골, 피아골, 대원사계곡, 대성골 등을 떠올리지만 구룡계곡은 지리산 주능선의 계곡들과는 또 다른 맛을 준다. 길이는 짧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수많은 소와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경은 여느 계곡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한국자연보존회가 선정한 '한국의 100명수(名水)'에 선정됐을 정도이니 계곡 자체만으로도 격조가 느껴지는 곳이다. 구룡계곡이라는 이름은 4월 초파일에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계곡의 폭포에서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또 판소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동편제에 속하는 명창들이 득음을 위해 수련을 쌓은 계곡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구룡계곡 최상류의 구룡폭포. 길이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 중간 구름가 있다.

 

이번 코스는 계곡길은 물론이고 산중 고원의 들판길, 백두대간길, 지리산 둘레길 등 다양한 길을 한꺼번에 밟게 되는 '길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코스여서 더욱 이색적이다. 구룡계곡 산행을 할 때는 백두대간에 속하는 여원재(치)에서 시작해 수정봉, 덕운봉을 거쳐 구룡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통상적이지만 취재팀은 점점 늘어나는 자가용 이용자들을 염두에 두고 구룡계곡 원점회귀 코스를 만들었다는 점을 참고로 밝혀 둔다.

전체 산행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지리산국립공원 북부관리사무소 앞 육모정에서부터 시작한다. 육모정(춘향묘·용소)~삼곡교~구시소~챙이소~사랑의다리~비폭등~구룡폭포~구룡사 앞 갈림길~차도(천룡교)~회덕~노치마을 백두대간 합류점~노치샘~덕운봉 정상~구룡봉~노치산성~지리산 둘레길 합류 삼거리~구룡치~개미정지~내송마을 앞 도로로 이어지는 총 14㎞ 코스다. 걷는 시간만 5시간, 휴식과 식사를 포함하면 6시간30분 정도 잡으면 넉넉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원점회귀 산행(개념도 참조)에 가깝다.



들머리인 구룡계곡 하류 육모정(六茅亭)은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속한다. 경치가 너무 좋아 호경리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는 동네다. 육모정은 조선 중기부터 지역 선비들이 모여 의리 예절 도덕을 기치 삼아 학문을 닦고 시대를 논하던 향약인 '원동계(源洞契)'와 관련이 깊다. 당초에는 계곡 바닥의 널따란 반석 위에 건립됐는데 지난 1961년 홍수 때 떠내려가자 1997년 계곡 옆 현재 위치에 다시 지은 것. 바로 앞 계곡의 용소(龍沼·제2곡)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는 용호정(龍湖亭)과 마주보고 있다.

 

육모정에서 산 쪽으로 보면 춘향묘가 멋스럽게 조성돼 있어 '춘향이의 고장' 남원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육모정에서 60번 지방도의 아스팔트 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삼곡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왼쪽 비석 아래로 내려서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가면 구시소라는 작은 소가 나온다. 말이나 소의 먹이를 담아주던 '구유'의 이 지역 사투리인 '구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2분 후 만나는 챙이소는 곡식을 빻아서 알갱이와 껍데기를 분리하던 '키'의 이 지역 방언이 '챙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넓고 편평한 모양의 바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데 소 앞의 작은 바위인 '서암'과 어우러져 구룡계곡의 제4곡을 이룬다.

춘향의 묘로 육모정 앞에 자리를 하고 있다.

구룡교와 영모교를 건너 한 굽이 돌아 10분쯤 가면 제법 높게 걸린 다리가 하나 더 나오는데 그 이름이 절묘하다. '사랑의 다리'. 주변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구름다리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그 사랑이 정말로 이뤄질 것만 같다. 소설 속에서 춘향이와 몽룡이가, 아니면 영화 '방자전'에서처럼 춘향이와 방자가 이 다리 주변에서 사랑을 속삭였을까.

 

다시 계단을 오르내리며 5분만 가면 제5곡인 유선대(遊仙臺)에 닿는다. 널따란 바위 위에 금이 많이 그어져 있어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 곳이다. 유선대에서 8분쯤 가면 지주대(地柱臺·제6곡) 구름다리다. 상류 2개의 계곡이 합쳐지는 곳으로 일단 오른쪽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통과하면 작은 언덕을 넘는데 곧바로 왼쪽 계곡 길로 이어진다.


구룡계곡 산행 중 만나는 챙이소.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다. 10분 후 높이 10m가량의 폭포가 멋진 비폭등(飛瀑嶝·제7곡)을 지나면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곧이어 칼날 능선이 이어지는데 우측 아래로 구룡계곡 깊은 물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칼날능선을 지날 즈음 3개의 정육면체 바위가 포개져 있는 신기한 바위를 만나는데, 특별한 이름이 없어 이창우 산행대장이 '장군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계곡을 지키는 늠름한 장수의 모습을 닮았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면서. 다시 계단을 내려섰다가 5분쯤 가면 마침내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한 구룡폭포다. 꿈틀거리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양의 높이 30m짜리 와폭인 구룡폭포는 지리산에서도 하동 불일폭포 다음으로 긴 폭포로 이름이 높다. 긴 계단을 올라서 만나는 상단부 폭포 왼쪽 바위에 누군가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폭포 서쪽으로 난 오르막을 3분쯤 오르면 구룡사 앞 삼거리다. 길이 갑자기 넓어졌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 그렇게 깊은 계곡을 지나왔느냐는 듯 들판길이 나온다. 임도를 따라 10분쯤 찬찬히 걸으면 천룡교 앞 아스팔트 도로에 닿는다. 정면에 보이는 높은 산줄기는 바래봉 세걸산 큰고리봉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왼쪽으로 꺾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회덕마을로 향한다. 회덕마을 입구 못 미쳐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를 만나면 둘레길 구간에 합류한 셈이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회덕마을 입구를 지나 좀 더 가면 소나무 10여 그루가 늘어선 곳에 둘레길 이정표가 하나 더 있다. 왼쪽 10시 방향 소로로 들어선다. 곧이어 나오는 이정표에서는 다시 왼쪽으로 90도 꺾어 산 아래 마을쪽으로 들어선다. 마을 뒷산이 덕운봉이다.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입구에 산행 리본이 유난히 많이 매달린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길에 합류하는 지점이다. 왼쪽으로 꺾어 30m가량 가면 또 한 번 갈림길. 왼쪽의 마을 안 정자나무를 향한다. 오른쪽은 운봉읍 방향으로 가는 지리산 둘레길 구간이지만 이곳에서 둘레길과 잠시 이별하고 백두대간길을 따르는 것이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노치마을의 당산나무.

 

정자나무 아래에는 특이한 내용의 표지석이 있다.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의 마을'이라는 내용이다. 얼핏 의미심장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 마을이 그 유명한 노치마을이다. 대간 능선이 통과하는 길 서쪽은 주천면에 속하고 오른쪽은 운봉읍에 속하는, '한 마을 2행정구역'의 특이한 마을이기도 하다. 정자나무 뒤로 돌아가면 종주꾼들에게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샘터인 '노치샘'이 있는데 물 맛이 참 달다. 골목을 통과해 마을 뒤로 오르면 수령 500년된 소나무 다섯 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당산제전. 매년 칠월 백중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15분가량은 된비알을 타며 한바탕 땀을 쏟은 후 순한 능선길을 5분만 더 가면 덕운봉 정상이다. 정상석은 없다. 진행 방향으로 30m쯤 가서 만나는 움막에서 구룡폭포 구룡사 방향인 왼쪽 내리막 능선으로 길을 잡는다. 백두대간에서 이탈하게 되는 셈이다. 움막에서 계속 직진하면 수정봉, 여원재로 이어지는 대간 종주길이다.

왼쪽 내리막을 10분가량 타면 안부가 나오는데 다시 15분쯤 오르막을 치면 739봉. 등산로가 잘 닦여져 있어 걷기 편하다. 3분 후 728.2봉에 닿는데 지역 주민들은 이 봉우리를 일명 '구룡봉'으로 부른다. 5분 후 산성 흔적이 역력한 봉우리를 넘는데 이곳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노치산성이다. 사실 덕운봉과 노치마을과 회덕마을, 정령치 만복대 등은 삼한시대와 삼국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요한 국경 방어지역이었고 노치마을의 경우 한국전쟁 때 공비 토벌 명목으로 마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비운의 고장이기도 하다.

구룡계곡 제7곡인 비폭등.

 

노치산성을 지나면 오르막은 거의 없다. 10분 후 김녕 김씨묘을 지나 7분쯤 더 가면 T자형 갈림길을 만나는데 이 지점이 다시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운봉 구간)와 합쳐지는 곳이다. 이 길은 옛날 운봉현과 남원부를 잇는 가장 빠른 길로서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운봉과 달궁 주민들이 남원장을 오갈 때 이용했던 '지리산 옛길'이다. 길은 소달구지가 지나가도 될 만큼 넓고 부드럽다. 작은 돌멩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끔해 차라리 맨발로 걸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5분 후 구룡치를 지나고 10분만 더 가면 '14번 이정표' 기둥이 서 있는 솔정자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 내리막을 탄다. 여전히 길은 편안한 둘레길이다. 주변 솔숲과 어우러져 걷는 맛이 일품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길 정비가 잘 돼 있어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걷기에도 안성맞춤일 것 같다.


유선대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 한다.

10분 후 임도 앞의 12번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개미정지까지는 20분쯤 걸리는데 이곳을 지나면 마을에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10분 후 내송(일명 안솔치)마을 입구 큰 도로 이정표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한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 구간은 길 상태가 다른 구간에 비해 비교적 완벽한 옛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이유는 옛날부터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이었기 때문에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백중을 전후해 구역을 나눠 꾸준히 정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떠나기 전에

- 노치마을, 백두대간 종주꾼 잊지 못할 쉼터

백두대간 종주 산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는 노치샘.

 


덕운봉 아래에 자리 잡은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산꾼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을로 마음속 깊이 간직할 것으로 보인다. 북에서 남으로 길을 잡은 종주꾼들이 험산준령을 수없이 넘어 결국 마지막 '방점'인 지리산 문턱에 닿았을 때 만나는 곳으로, 종주길 유일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마을 뒤 당산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며 들판 건너 보이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고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등산화 끈을 다시 맸던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노치마을의 원래 이름은 '갈재'다. 만복대에서 큰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에 허드러진 갈대가 잘 보였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한자 이름으로 바꾸다 보니 '노치'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 마을이 전소됐지만 수령 약 500년에 이른다는 당산나무만은 불에 타지 않은 것으로 전해 온다.

 


산행 후 들릴 만한 맛집 한곳을 소개한다. 구룡계곡 하류 들머리에서 주천면 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육모정 바베큐가든'. 토종 흑돼지를 재료로 한 '양념불고기백반'과 황기 삶은 물에 도토리묵과 갖은 고명을 얹은 후 밥과 곁들이는 '묵밥'이 저렴하면서도 맛이 있기로 유명하다. 대형 야외 마루도 완비돼 있다. (063)626-6044

 

◆ 교통편

- 남원행 직행버스 하루 4회 운행, 첫 차 타야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원행 직행(무경유) 버스는 오전 9시, 11시30분 등 하루 네 차례 운행한다. 요금 1만2500원, 2시간40분 소요. 진주 함양 인월 운봉 경유 시외버스는 오전 6시20분과 오전 7시35분 출발 버스가 있는데 남원까지 4시간이 소요되고 요금도 1만7000원으로 비싼 편이다. 남원터미널에서 들머리인 구룡계곡 육모정까지는 30분 간격으로 330번 시내버스가 운행한다. 산행 후에는 내송마을 입구에서 주천면소재지까지 10분가량 걸어서 시내버스 편으로 남원터미널로 간 후 부산행 버스(막차 오후 5시30분)를 타면 된다. 막차를 놓칠 경우 진주(막차 오후 6시35분) 경유 버스를 타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려면 남해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로 옮겨탄 후 함양분기점에서 다시 88고속도로로 옮겨탄다. 남원IC에서 내리자마자 좌회전 한 후 2㎞쯤 가면 국도 19호선을 타고 구례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5분 후 주천면 육모정 방향 60번 지방도로 빠져나가 표지판을 보고 직진하면 10분 내에 육모정 앞에 닿는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사진=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글=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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