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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여행)조선통신사 축제. 한국과 일본 국가 사절단 조선통신사 행렬 축제가 열리다.


부산에는 현재 색다른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조선 통신사 축제(2015년 5월 1일~3일)로 조선 통신사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평화를 위한 국가적인 사절단을 의미합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단을 조선통신 사절단이라 하며 그 행사가 용두산공원과 광복동 일원에서 지난 토요일 열렸습니다. 






조선 통신사의 출발을 알리며 긴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또한 일본 통신사에서도 많은 참석을 하여 성대한 조선 통신사 축제 행사가 되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인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년 동안 조선 통신사 행렬이 12번이나 이루어졌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 도요토미히데요시(풍신수길)가 죽음으로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은 끝이 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와 사명대사 유정의 담판으로 조선에서 잡혀 온 포로는 사명대사와 함께 귀환하고 일본과의 국교도 다시 회복됩니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조선 통신사의 일본 방문을 쇼군 일대의 의식으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가문에 경사스런 일이 생기거나 쇼군(장군)의 계승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조선 조정에서는 축하 사절단을 파견하여 조선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아 왔던 사절행렬입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부사, 종사관의 삼사와 화원, 의원, 역관, 악사 등 4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절단을 이루었고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재현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정사에는 탈렌트 이민우씨가 맡았다합니다.




지난 5월 2일 토요일 용두산공원에서 출발하여 광복로 조선 통신사축제 행렬이 이어져 부산시민과 일본의 관광객이 함께 즐기며 어울렸던 축제였습니다.

 


◆조선 통신사 행렬 사진으로 만나기












































부산 서병수 시장님과 일본 관계자 분..........






탈렌트 이민우씨님......
















(부산문화재단 홈피 캡쳐)



2015/03/15 - (부산여행/중구여행)근대건축물 청자빌딩. 헐릴 위기에 처했던 100년된 청자빌딩 보존되나?


2015/02/10 - (부산여행/중구대청동여행)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부산에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성당이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2015/01/03 - (부산 맛집/중구맛집)부평통깡통야시장 김치국수맛집.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 꽃분이네도 보고 맛있는 김치국수도 먹고....


2014/12/28 - (부산맛집/중구맛집)광복동 남포동 용두산공원 맛집 청기와 숯불갈비. 부산 중구 남포동 광복동에서 한우고기가 땡 길 때 찾는 청기와 숯불갈비.


2014/12/04 - (부산맛집/중구맛집)부산양꼬치.쇠고기보다 맛있다는 안주 양꼬치 맛집 부산 양꼬치이요.


2014/11/30 - (부산여행/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온누리에 기쁨을...제6회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2014/11/27 -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2014 제6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 축제가 광복동에서 열려요.


2014/10/14 - (부산여행/중구여행)40계단문화테마거리. 40계단 문화축제가 열려요.


2014/10/08 - (부산여행/중구여행) 가을은 독서의 계절 책방골목을 가보니,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헌책으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요.


2014/08/06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깡통야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맛집 수목횟집. 까탈스러운 국제시장 부평동깡통시장 상인들의 입맛을 평정한 숨은 맛집 수목횟집이요


2014/04/15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시장, 깡통시장, 국제시장맛집. vj특공대 간판없는 식당의 김치찌개가 한국인이 좋아할 김치찌개 맛집.


2014/03/14 - (부산맛집/중구맛집)영도다리 용두산공원 맛집 개미집.부산 사람이 추천하는 부산다운 음식 매콤한 낙지볶음에 혼이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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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부산깡통야시장 여행)부산에서 유일한 야시장 부평동깡통야시장 돌아보고 왔습니다. 


야~~~~호. 부산에도 야시장이 생겼습니다. ㅎㅎ 대만 여행시 보았던 수많은 야시장의 모습과 특히 화시졔 야시장은 별천시 중에 별천지였습니다. 없는게 없을 것 같은 대만야시장을 보고 내고장 부산에는 왜 없지 했는데  부평동 깡통시장이 부평동깡통야시장으로 개장을 했습니다.



 

부평동에 있는 깡통시장은 6.25 한국전쟁 후 수많은 미군의 군수 물자가 흘러나와 시작되었습니다. 통조림등 전쟁 물자에서 다변화되어  전자제품등 모든 수입물품이 이곳에서 판매가 되었던 깡통시장. 지금이야 여행 자유화와 함께 자유롭게 무역상들이수입을 할 수 있어 깡통시장의 기능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 당시 부산에서 진귀한 상품은 이곳 깡통시장에 와야만 만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부산의 애환과 함께 한 부산 깡통시장은 요즘 많은 먹거리로 유명합니다. 부평동 돼지족발골목 다 이시죠. 야들야들 입안에서 녹는다는 그 맛........요즘 방송에도 많이 맛집으로 소개되었던 유부 주머니등 모든 맛집이 이곳 부평동 깡통시장과 인근에 몰려 있습니다.


 

가끔 깡통야시장에 들렀지만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찾아갔습니다. 이곳 부평동깡통야시장은 주야 모두 영업을 합니다. 주간은 좌우 점포가 문을 열어 부평깡통시장의 역할을 하고 저녁이 찾아들 무렵은 오후6시 부터 통로에 작은 이동식 손수레가 자리를 잡습니다. 


 

맛있는 먹거리가 즐비합니다. 요즘 다문화 가정이 많이 늘어서 인지 동남아등 그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도 이곳 깡통야시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만등 세계의 야시장에 비해 작은 규모지만 입소문을 타 외지의 관광객과 부산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부산 여행을 하신다면 이곳 부평동깡통야시장 꼭 찾아보세요, 부산의 색다른 부산만의 여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근의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광복동과 연계가 되어 걸으면서 둘러 볼 수 있습니다.





 

깡통야시장에서 맛있게 먹고 즐겼다면 야경을 블길 수 있는 곳을 추천하겠습니다. 용두산 공원입니다. 부산을 상장하는 120m 부산타워와 함께 펼쳐지는 용두산 공원의 야경. 한마디로 끝내줍니다. 



 부산 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보면 맑은 날에는 대마도도 보이고 밤에는 크리스탈 처럼 반짝이는 부산항의 불빛에 넋을 빼앗기게 됩니다. 부산야경도 구경하고 부평동깡통야시장에서 추억도 쌓고 부산여행 무지무지하게 볼게 많은 곳입니다. 


 

부평깡통야시장 영업시간은  18시 부터 부평동깡통야시장이 열리고 24시에 문을 닫습니다. 부산여행시 참고하세요. 교통편은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하여 남포역 또는 자갈차역에 하차를 하면 됩니다. 버스는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


용두산 공원 야경



2014/08/06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깡통야시장 보수동책방골목 맛집 수목횟집. 까탈스러운 국제시장 부평동깡통시장 상인들의 입맛을 평정한 숨은 맛집 수목횟집이요


2014/04/15 - (부산맛집/중구맛집)부평동시장, 깡통시장, 국제시장맛집. vj특공대 간판없는 식당의 김치찌개가 한국인이 좋아할 김치찌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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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 광복로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미리보고 왔습니다.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행사기간:2013년 11월30일(토요일)~2014년 1월5일(일요일) -(37일간)

올해로 벌써 5회째를 맞는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광복로에서 37일간 열린다. “사랑과 치유”란 주제아래 주최측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랑을 체험케 함으로서 상처받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축제를 통한 치유를 통해 새해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한다. 올해 “사랑과 치유”의 크리스마스 트리 문화축제로 소외된 이웃도 함께 따뜻한 나눔의 장이 될 수 있기를 주최측은 바라고 있다.


★개막식:2013년 11월30일(토) 오후 7시(식전행사 6시부터)

★폐막식:2014년 1월 5일 (일) 오후 9시

 



2013년 메인트리인 '성탄의 별' 트리로 광복로 삼거리에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부산여행/중구 광복로 부산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메인트리는 '성탄의 별'


광복로 부산크리스마스 문화축제의 메인트리는 당연히 광복로 삼거리에 있는 ‘성탄의 별’이다. 주최측은 트리 밑을 걷는다는 컨셉으로 트리밑으로 들어가면 머리위로 하트가 쏟아질 듯 빛을 발하며 12면의 삼각형이 연결된 별모양의 트리를 하고 있다. 높이만 17m에 바닥에서 부터는 20m의 대형 트리다. 4회까지의 메인트리보다 더 크며 화려하여 올해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 것 같다. 2013년 11월27일 저녁에 찾은 광복로는 일부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낮에 영도대교 복원 공사를 거쳐 47년만에 다리가 개도되었는데 그 행사에 맞추어 일부는 오늘부터 트리에 빛을 발하여 행사가 진행중이다. 그래서 미리 제5회 부산크리스마스 트리 문화축제 사진을 담아와 올려 본다. 아직 불을 다 밝히지 않은 곳도 있다.


◆제5회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구경하기◆  


































































































































★제5회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홈페이지 캡쳐.(http://www.bctf.kr/)



★제5회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홈페이지 캡쳐.(http://www.bctf.kr/)


◆자세한 정보는 제5회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 홈페이지.(http://www.bct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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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중구영도여행)영도대교(영도다리) 개통식 이모저모. 


영도대교20013년 11월27일 자갈치 매립지에서 영도대교 복원공사를 끝내고 47년만에 영도대교를 들어 올리는 행사를 하였다. 1934년 일제 강점기때 영도와 남포동을 잇는 영도다리는 그당시에는 획기적인 다리였다. 다리가 들려지는 개도 기능을 갖춘 다리라 전국적으로 영도대교는 소문을 나게되었다. 그 영향으로 한국동란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영도다리가 하나의 만남의 장소로 여겨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한 추억 어린 장소였다. 그러다 1966년 산업의 발달과 영도로 들어가는 상수도관의 공사로 인해 영도대교는 개도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다리 기능 만을 유지하여 오다가 2000년들어 노후등으로 헐릴 위기에 처한것을 부산시민들의 노력으로 문화재가 되며 6년간의 복원공사를 거쳐 오늘 영도다리가 끄떡끄덕 들어 올려지는 개도행사를 하게 되었다. 2시에 올려진 다리는 15분동안 창공에 걸려 있다 무사히 내려와 다리로 연결되었는데 그당시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등 영도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만큼 연로하신 노인분이 오늘 개도행사를 보기위해 몰려 들었다. 필자는 오래동안 볼수 없어 오후1시경에 행사장과 영도대교 옆을 가보았지만 2시에 개도행사를 하는데도 벌써 많은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사진은 오후 1시경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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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대교는 빨강 네모 부분이 들려진다.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대교, 영도대교(다리)가 끄떡끄덕 올라가요. 영도대교 개통식 


필자가 어렸을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영도다리가 끄떡끄떡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도다리가 들렸던 이야기를 '영도다리가 끄덕끄떡' 하며 흔들리며 들렸던 것 같다. 필자는 영도 다리가 들리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며 다리가 어찌 들리지 하며 신기해 하였던 기억이 난다.  다리가 들려질때면 양쪽 도로에 차들이 모두 기다리며  일대는 들리는 다리를 구경하기위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하니 지금 생각을 해봐도 신기한 모습일 것 같다. 그 당시의 모습이 2013년 11월27일 47년만에 현실이 되어 영도다리가 끄떡끄덕하며 들려지게 되었다. 




사진 이미지는 롯데백화점 광복점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롯데 건설에서 복원공사를 하였고 다리가 올라간 모습의 사진입니다. (롯데백화점 홈페이지:http://store.lotteshopping.com/handler/Main-Start)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대교, 일제 강점기에 개통된 영도대교(다리). 영도대교 개통식 


영도다리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11월에 개통되었다. 그 당시 영도구와 중구를 있는 유일한 다리로 그 이전에는 자갈치 시장에서 도선을 이용하여 건너다녔는데 그 추억의 도선이 몇해전까지도 운영을 하다가 현재는 폐쇄된 상태다. 그만큼 영도가 육지와 가까와지게한 영도다리는 피난민들에게는 '40계단'과 함께 피난 설움의 애환이 서린 다리로 유명하다.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대교, 피난민이 모여들던 영도대교(다리)가 끄떡끄덕 올라가요. 영도대교 개통식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랫말에도 나오듯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중략~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질 때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 

노래가사를 보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1.4후퇴를 하게되고 한미연합군은 고립되어 맥아더 장군의 지시로 흥남철수작전을 감행하게 된다. 그당시 아군과 함께 10만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배에 매달려  포항과 거제도로 옮겨오게 되었다. 흥남항에서 일가친척들이 함께 오지 못하고 헤어지면서 꼭 부산가서 만나자며  살아서 '40계단'과 '영도다리'에서 서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별을 하였다. 이별의 약속이 흥남항만이 아닌 모든 피난 행열에서의 약속이었고 혹 영도다리와 40계단에 가면 일가친척이나 고향사람들의 안부를 듣는다던지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피난민이 매일 이곳을 찾았다한다.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대교, 1966년 영도대교(다리) 도개중단. 영도대교 개통식 


영도다리가 한국동란의 피난시절에는 이산가족 상봉의 장소로 우리와 함께 아픔을 겪었다. 그런 아픔이 있었던 영도다리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차량행렬과 상수도 관로로 인해 1966년  도개기능을 중단하며 다리만의 기능을 하였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도개기능의 다리였고 동양 제일의 도개교 였다.






☞(부산여행/영도/중구여행)부산 영도대교, 영도대교(다리)가 끄떡끄덕 올라가요. 영도대교 개통식 


도개하는 영도다리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2013년 11월27일 정식 개통이 되는 영도다리는 롯데건설에 의하여 6년여의 복원공사를 거쳤다. 예전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그래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였고 도개시설은  영도대교 전체길이가 214m로 그중 중구쪽의 왼쪽 첫번째 교각까지 도개가 된다. 길이는 31m이며 무게가 무려 590t으로 어마어마하다. 상판의 최대 각도는 75도까지 올라 가도록 설계가 되었다. 상판이 올라간뒤 내려오는 시간은 5~10분 쯤 소요된다. 매일 정오인 12시에 영도대교의 상판이 올라가며 하루 1회로 제한 되어 있다. 부산을 여행하거나 계획중인 분들은 요 시간을 잘 맞추어 부산 영도대교가 끄떡끄떡하며 상판 올라가는 다리도 구경하고 부산여행도 즐기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자갈치 시장에서 자갈치 아지매와 함께 부산의 싱싱한  회도 먹고 즐거운 여행하세요.







◆2013년 영도대교 개통식◆

★일시:2013년 11월 27일 오후 2시 

★장소:자갈치 매립지. 개통식때 연예인 축하공연도 한다는군요.

★개통당일에는 오전11시~오후4시까지 영도대교에 차량이 전면 통제가 된다. 

★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에서 하차하여 롯데백화점 방면으로 올라가면 된다. 

★개통당일 오후6시에 불꽃도 15분간 쏘아 올린다. 



자갈치와 신동아 어패류 시장의 모습










부산 자갈치 아지매








왼쪽의 첫번째 교각까지가 도개가 되는 부분이다.


































영도대교는 양쪽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다리가 들리도록 설계가 되었다.













갈매기가 그려 있는 부분이 도개되는 부분입니다.







톱니처럼 물려 있는 모습이 보이나요 . 왼쪽은 도개부분이며 오른쪽은 그냥 다리입니다.







영도대교와 뒤로 롯데백화점과 공사중인 롯데호텔 신축현장의 모습.



영도경찰서 담벼락에 그당시 영도다리와 주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볼수 있도록 해놓았다.









































영도대교에서 보면 부산의 상징인 부산탑도 보입니다. 영도대교가 들릴때는 더욱 멋질 것 같습니다.




개통식을 위해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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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은 언제 세워졌나요,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63월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 공원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 그 후 우남공원이 현재의 이름인 용두산 공원으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용두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때빼고 광낸 이유는...

56년 이란 세월은 그 누구도 비껴가지 못하는 것 같다. 월래 장군의 동상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본연의 청동색을 뛰고 있는 늠름한 모습 이였는데 비바람에 노출 되다 보니 균열과 부식으로 인해 수리를 한다는 것이 그만 동상 위에다 검은색으로 덧칠을 입히는 것이였다. 그 동안 동상은 검는 색이 본연의 모습인줄 안 시민들은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없다.





 

 

 

 

 

(용두산 공원) 이순신 장군 동상 어찌 보수 공사가 이루어 졌나요.

이순신장군 동상에게 본 모습을 찾아주지는 취지로 부산 시설 공단에서 지난 달 말부터 동상에 전면적인 보수에 들어갔다. 공사비는55백만원. 먼저 동상에 덧칠해진 페인트를 고압분사기로 말끔히 제거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부식의 진행 등을 면밀히 조사한 후 보수를 하고 나서 암모니아 코팅으로 다시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의 조치를 취했다.

그 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청동 본연의 모습으로 1592년 부산포 해전에서의 그 모습처럼 늠름하게 오늘도 용두산 공원의 중앙을 지키고 있다.





 

 

 

 

 

 

 

 

 

 

 (용두산 공원이순신 장군 동상앞에 일본 관광객이 많아요....

용두산 공원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필 수 코스인데 항상 일본인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대기해 있다. 지난주에 찾아 갔을 때도 일본인 관광버스가 10여대 주차해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동상의 모습을 담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 이순신 장군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면 이분들의 마음인지 어떤지 궁금해진다. 23번이나 당신의 조상들과 해전에서 싸워 승리하여 이 나라를 지켜 낸 분이라고 하면 어찌 생각할지...정작 국내 관광객에겐 동상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항상 불멸의 이순신 그분이다.

 

 

 

 

 

 

 

 

 

 

 

 

 

 

 

 

 

 

 

 

 

 

 

 

보수 공사를 하기 이전의 모습.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해진 모습

 

보수 공사를 하기 이전의 모습. 검은색 페인트로 덧칠해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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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중구맛집) 가미가 어떤곳?

부산 중구 광복동 옛 로얄호텔과 ABC마트 골목을 7080세대 이전에는 고갈비 골목으로 불린다. 이골목 전체가 고등어를 구워 판매하였는데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나 서민들에게 그 만큼 친숙한 골목이었다. 필자도 이골목에서 웃지 못할 일화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저절로 나 옛생각에 젖어 본다.




 

 

 갈치찌개 1인분 15,000원

☞ (부산중구맛집) 가미가 분위기는?

그 만큼 서만적인 뒷골목이  언제부터인가 하나씩 요리집이 형성되더니 지금은 번듯한 음식점 골목으로 변모하였다.그래서 찾아간 곳이 가미가. 이곳은 선어회와 생선구이및 찌개 전문점으로 한정식 같은 그런 분위기이다.




 

 갈치구이 1인분 15,000원

☞ (부산중구맛집) 가미가 어떤 맛집?

이집을 들어서면 옥호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한자로 풀어보면 '아름다운 맛집'이란 뜻일까?. 어딘가 모르지만 이집의 분위기가 우리가 살아 왔던 그런 방안의 모습이 찾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룸과 홀이 적당히 있어 귀한 손님 접대와 모임등 다방면으로 좋을 것 같은 곳이다. 갈치구이와 찌개를 1인분 시켜도 됩니까 물어보니 싫어하는 구석도 없이 바로 '예' 대답을 한다. 음식을 시키는 입장으로서는 좀 미안한 감이 있지만 두가지 다 먹고 싶어 일단 주문을 하였다.  




 



  먼저 밑 반찬이 나왔다. 잡채, 지짐이와 양배추등 기본 반찬이 깔리고 조금 뒤에 식사용 반찬이 쭉~ 깔렸다. 그리고 나온 오늘의 메인 음식인 갈치구이와 찌개. 갈치를 보니 제주산 같은데 어디에도 그런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밑 반찬들은 한결 같이 손님의 입맛에 맛도록 구성을 하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맛이 괜찮았는데.....사실 나오는 반찬이 많으면 입에 안맞는 반찬들이 더러 있는데 깔끔하니 다 맜이 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번잡한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분위기가 차분한게 조용하다.




 

 


먼저 두툼한 갈치라 먹을게 있다. 살점이 저절로 떨어질 정도로 살이 올라 있어 푸짐하다. 보통 찌개용은 구이 보다는 작은 것으로 사용을 하는데 찌개에 들어간 갈치 또한 굵기가 구이용과 같아 하나 같이 먹을게 있다. 맛 또한 괜찮은 곳이라 그런지 외진 곳에 있는게 다행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정갈하고 맛있는 반찬들......둘러보기




 

 

 

 

 

 

 

 

 

 

 

 

 

 

 

 

 

 

 

 

 

 

 

 

 

 

 

 

 

 

 

 

 

 

 

 

 

 


음식을 앞에 두고 구이와 찌개를 기다리지 못해 먹다 보니 빈그릇도 보이고 먹다 남은 음식도 보여 사진이 조금 민망합니다. 그려. 그래도 단체 사진은 한장 있어야 하기에 ...ㅎㅎ




 

 

 


 노릇노릇 잘 구워진 갈치구이와 찌개 각 1인분으로 1만5천원




 

 

 

 

 

 

 

 

 

 

 

 

 

 


마지막으로 나온 단술입니다. 시원하니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 주는군요.



이 음식점의 맛은 저의 주관적인 입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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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은 음식점이지만 음식에 관한 포스팅이 아니다.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발행한 “맛깔나는 중구맛집” 카다록 63p의 1879년 부산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라 명기되어 있어 어떤 건물인가 싶어 찾아가 보았다. 주머니 사정이 든든하면 갈비를 뜯고 건물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포스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텅빈 주머니를 원망하며 외관만 찍어 왔다. 그런데 왜 이곳에 부산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 세워졌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도 알려지게 되었는지.
이곳은 초량왜관이 있던 자리로 왜관은 어떤한 곳인가?.


대구위에 지명이 왜관이 있는 것 처럼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곳을 왜관이라 하는데 그 연유를 살펴보면 조선전기때 왜관은 제포(현 진해웅천)와 부산포(현부산수정동) 그리고 염포(현 울산염포)에 설치를 하여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되자 왜관도 폐쇄가 되었다. 그 후 1607년 다시 두모포(부산수정동)에 왜관이 생기면서 양국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확충의 필요성을 느껴 초량왜관을 용두산 아래에 설치를 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이 500명 가까이 많이 거주하였다 한다. 200년간 초량왜관이 유지되어 오다가 1876년 개항으로 초량왜관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1879년 그곳에 일본 관리 관청이 세워졌는데 이 건물이 우리나라 서양식 건물의 시초라 한다. 그 다음에 원산에 세워진 일본 영사관 건물이라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 당시에 건립된 건물들은 모두 목조 건물이라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다는데 부산의 중구청에서는 이 건물을 1879년으로 부산최초의 서양식 건물에 1992년부터 음식점을 하고 있다고 표기를 하였을까 의문이 갔다.


의문도 잠시 다음까페 ‘부산오류시정운동본부(cafe.daum.net/BOSyouth)’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 일본관리관청’  포스팅을 읽어 보니 1879년 10월20일 목조건축물이 세워지고 1884년에 그 건물을 헐어내고  2층짜리 일본 영사관 건물을 세웠다 한다. 그 후 1910년 경술국치이후 부산부청 청사(현부산시청)로 사용되었다 한다. 1933년 부산부청 청사는 현재 롯데호텔 남포점 자리에다 시청사를 짓고 그리로 옮겨 갔다. 그 건물이 지금 음식점의 건물로 추정이 되며 세월의 영욕속에 그 시청사도 연산동으로 옮겨 가면서 왜색건물이라 보호받지 못하고 롯데그룹에서 인수를 하여 백화점과 호텔 건물을 그 자리에 짓고 있다.






용두산공원 밑에 설치되어 있는 초량왜관 안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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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미문화원이 있었다.
지금도 미문화원하면 40대 이후 새대들은 당장 대청동 어디어디 하며 설명을 해 줄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용두산공원 후문쪽에 있으며 용두산을 등지고 있다.
1982년 3월18일 이곳에는 국내의 모든 언론매체의 초점을 받았다.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 한 곳으로 최인순, 문부식, 김현장, 김은숙씨등 부산시내의 모 대학교 대학생들이 반미운동을 외치며 이곳 문화원에 불을 질렀다.

담당변호사는 고 노무현전대통령님, 사건을 재판한 판사는 이회창 전 총재였다.
지금 대청동의 미문화원건물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모습을 바꾸어 시민들에게 어린시절의 향수를 갖게 하고 있다. 일제의 수탈현장이며 그 당시의 시가지 모습등 다양하게 전시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때에는 이 건물이 동양척식주식회사건물로서 현재는 부산시 지정기념물 제49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를 받고 있다.
1929년에 건립된 이건물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건물로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리고 외형은 서구양식을 도입하여 외관의 품격을 돋보이게 한 건물로 몇 안남은 현재 보기가 힘든 건축물이라 한다.
 여기서 일제가 경제 수탈을 자행하여 국민의 피고름을 짜게 만들었다.
해방후에는 부산에 들어온 미군의 숙소로 사용이 되었고 1949년부터 미문화원으로 이용되었다. 미문화원방화사건을 거쳐 1999년에야 반환이 되어 부산근대역사관으로 탄생되었다.
지금 부산근대역사관의 모습을 찾아보면 우리 부모님 새대 삶의 모습을 알 수 있다. 40계단과  용두산 공원을 연계 하며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용두산과 그 인근의 모습으로 전찻길이 보이며 용두산에는 일제가 세운 신사 건물도 2동 보인다. 전차를 타고 이곳을 지날때는 모두 일어서 큰절을 하였다 하니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영도다리의 모습.




찾아가는길

버스 : 해운대방면 40,139,140.
서면방면 : 17,17-1 35,52-1,81,82,85,87,88,89,10
부산역방면 : 40, 42, 59, 81, 140

지하철 : 1호선 중앙동역 하차1번,5번, 11번 출구
남포동역 하차후 용두산공원을 거쳐 와도 된다


관람시간 : 9시 - 18시

휴관일 : 1월1일,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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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대표하는 상징물은 용두산 공원의 부산탑일 것이다. 이 용두산은 영도와 사이인 지금의 롯대백화점광복점자리가 용미산으로 용의 꼬리부분에 해당되며  부산탑의 용두산이 용의 머리로 뭍으로 올라오는 용의 모습이라 하여 용두산이라 부른다하였다. 한때는 이 부산탑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적이 있었다. 부산탑을 보존하자는 쪽과 이곳을 헐고 새로운 트렌드마크로 고층건물을 세우자는 쪽으로 나누어져 헐릴 위기에 처했지만 지금은 허지부지 된 상태로 부산탑은 부산의 상징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용두산 공원은 한때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공원으로도 불린적이 있다.





이 용두산 공원이 조선시대에는 초량왜관이 들어섰고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 송현산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때인 1915년~16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산위의 정상을 2단으로 만들었다 한다.
그 정상에는 일본인들의 신사를 건립하여 우리국민들의 자존심을 짓 밟았서며 1932년에는 지금의 롯대백화점 광복점 자리인 용미산에 있던 신사까지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 시절에는 일제의 만행 앞에 우리의 암울한 심경을 대변하듯이 용두산은 몸서리쳤을 것이다.
1932년 102척짜리 일장기게양대가 자리를 하고 남포동으로 지나가던 전차를 탄 승객들은 용두산 공원의 신사 앞을 지나갈 때 전차에서 모두 일제히 일어서 큰 절을 했다하니 그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그때의 용두산 공원이 지금은 내국인 관광객보다 일본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있다.
용두산표지석 앞에서 또는 최지우인형등에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것은 어떻해 받아 들여야 할지...





용두산을 대표하는 것은 부산의 상징물인 부산탑이다.
이 부산탑은 1973년 11월21일 진로그룹의 계열사인 도원관광(주)이 건립하여 기부채납한 후  부산타워(주)를 세워 1990년까지 10월까지 무상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해발69m의 용두산 정상에 세워진 부산탑은 탑신과 꼭대기 전망대를 합쳐 120m의 높이로 세워져 이 건물을 능가하는 건축물은 없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전망대의 지붕은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지붕돌인 보개의 모양을 따와 지붕을 올렸다하니 하나의 예술성을 높혔다 할만하다.
그 외에도 용탑,이순신장군동상,1996년 12월31일 시민의 성금으로 조성된 시민의종과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꽃시계는 전국 18개 꽃시계중 유일하게 초침이 있다한다.
그 외에도 세계모형전시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등 다양한 축제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찾아가기

부산도시철도 1호선을 타고 남포동역에서 하차를 하면 된다.
도보로 10분 거리이다.

용두산 공원관리사무소 051-860-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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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용두산 공원이 많은 일본 관광객과 국내의 관광객이 붐비는 명소가 되었다.
그곳 한켠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 관광객의 사랑을 받으며 같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연인이 함께 찍는 모습, 남자가 앉아 같이 찍는 모습, 할머니등 일본인 관광객이 꼭 거치며 다양한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다고 항상 붐비는 장소가 용두산 공원에선 이곳이 되었다.





무엇인가 싶어 들여다 보니 최지우씨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왜 여기에 앉아 있을까,
아하~

2009년 12월3일 부산 출신여배우라 부산명예관광홍보대사로 위촉이 되어 부산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 한다. 사실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에 한류스타의 원조로서 최지우씨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설치만 하였지 관리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얼굴의 코 등에 끍힌 흔적이 남아 있는등 좀더 그녀의 미관에 관심을 두는 것이 부산시로서는 홍보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옆에서 물어보네요,

진짜 최지우씨 맞아요하며...



현재는 그녀의 옆자리가 비어 있네요. 
여러분중 누가 이자리에 앉아 그녀의 빈 옆자리를 채워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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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와 서구를 있는 남항대교

☞(부산여행/서구여행)천마산 천마바위 여행. 하늘의 천마가 내려와 대마도로 날아 갔다는 천마바위에서 본 부산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과 아미동을 둘러 싸고 있는 천마산이 있다. 태백산 매봉에서 내려온 낙동정맥이 몰운대로 가기전에 곁가지를 쳐 천마산를 거쳐 암남공원으로 빠지는 이곳에 하늘벽이 서 있다. 

 



이름하여 천마바위, 옛날에 이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천마가 이바위를 박차고 일본의 대마도로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데  그래서 인지 이바위에는 큰 구멍이 여러게 나 있다. 말 발굽 같이 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으며 아마 대마도로 날아가기 위해 힘껏 차고 오를 때의 흔적은 아닌지...
그 전설을 뒷 받침해 주는 이야기가 신라시대에는 이곳에서 말을 키웠다는 목마장이 있었다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초장동이라 하였다 한다. 천마바위에서 바라보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자갈치 시장 ,남항과 그리고 영도대교, 부산대교 용두산 공원, 롯대백화점, 남항대교 암남공원과 봉래산 태종대, 멀리 이기대등 부산의 중심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남항의 모습과 중구 서구 영도구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 온다.

암남동과 송도해수욕장 그리고 암남공원도 확인 할 수 있다.

집뒤 남부민동 주택가에서 바라본 천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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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방문한 그날에는 이국적인 외국인이 자신의 모습을  도화지에 담고 있었다. 주위로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둘러 작품을 감상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용두산 공원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 처럼 미술의 거리가 생기다.

  부산에는 관광 활성화를 위한 명물 길이 여럿인다.
중구만 해도 백산기념관 앞의 백산길, 40계단 문화테마거리, 그리고 이번에는 용두산 공원 언저리에 미술의 거리를 오는 25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어릴적 용두산 공원은 부산타워만 바라보아도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어마어마한 부산의 상징건물이었다. 그 부산타워가 이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의 거리로 말이다.
최근까지 개장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개장 준비를 끝내고 하여 관광객을 상대로 인물화 및 풍경화등을 그려주기도 하고 판매도 하였다.
미술 애호가나 시민들이 한번 쯤 가든 발길을 멈추고 작업장을 둘러 보기도 하고 화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몽마르트의 언덕" 처럼 용두산 공원 미술의 거리가 시민과 관광객 함께 어울리는 예술의 마당이 되었서면 하는 바람이다.
미술의 거리에는  작업실 부스가 7개 들어서 있으며 공예품을 판매하는 부스를 따로 두고 있다.
개관은 평일인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나와 작업을 하며 월요일은 휴관을 한다.

미술의 거리 모습입니다. 부스에는 제각각 작가의 의미를 담아 부스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술의 거리는 이 용두산 공원의 빗돌 앞으로 계단을 내려서면 만날수 있습니다. 이계단이 광복로와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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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동 대신공원의 편백나무 숲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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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공원내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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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마을 갈림길의 이정표와 비가 그친 순간의 대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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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이런 곳도 있습니다.

구덕산과 엄광산 사이의 계곡에는 현재 대신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동아대학교가 자리잡아 일제시대때 많은 일본인이 자리를 잡아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1900년도에 일본인이 거주를 하면서 부산에서 3대 수원지로 조성된 대신공원은 삼나무와 벚꽃, 편백등이 주종을 이루며 산림욕장 역할을 하고 많은 시민이 찾는 시민공원이다. 그러나 한때는 수원보호를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를 하는 바람에 오늘과 같은 울울창창한 수림으로 변모하였다. 1966년도에 낙동강물을 원수로 끌어서는 바람에 대신공원 수원지는 제 기능을 잃고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산의 산으로 엄광산과 구봉산을 연결하는 대신공원은 대청공원, 민주공원과 함께 하나의 선을 연결하고 있다.

부산진구 중구 서구 사상구에 걸쳐있는 능선은 낙동정맥의 마루금도 연결된다.
산행은 동아대학 입구에서 출발을 한다.
동아대학 뒤편 약수터로 들어가도 되지만 오늘 산행은 산정음식점의 뒤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산행을 출발하기 전에 특이한 이력의 기념탑을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로 임진왜란때 부산포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으로 왜적을 섬멸하신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충절과 위업을 추모하고 국난극복의 민족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1957년에 충무동 경로회 회원들의 정성으로 충무동광장에 건립한 것을 1960년 도로확장으로 남부민동 해양 고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와 학생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였어나 1992년 해고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가는 바람에 현재의 자리인 대신공원에 원상복원을한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산행은 근교의 공원답게 많은 사람이 올라간다.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가볍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땀을 흘릴 때 쯤 편백숲으로 치장을 한 산길과 만난다. 마침 국지성 호우로 맑은 날씨가 갑자기 안개비가 내린다 그것도 잠시 장대 같은 비를 뿌린다. 갈등도 없이 비를 맞어며 올라간다.
편백숲사이의 오솔길이 운치가 있다. 꽃마을 갈림길을 지나면 산길은 엄광산 정상으로 치 닫는다. 모든 산이 고랑으로 변한다. 금방 파헤쳐진 고랑으로 물이 흘러간다. 등산을 즐기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빠른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그러나 느긋한 마음으로 빗속산행을 즐기며 올라서니 엄광산 정상석과 만난다.
엄광산은 한때는 고원견산으로도 불렸다, 아니 엄광산의 산명은 모른체 고원견산으로만 알고 있었다.
일제시대때부터 왜놈들이 자국에서 관부페리호를 타고 부산으로 들어오면 해상의 저 멀리에서부터 보이는 엄광산이 보였다. 그때부터 고원견산으로 불여지게 되었서며 우리이름 찾기에서 엄광산을 복원하여 정상석을 세웠다 한다. 헬기장과 부근에 TV중계소를 지나면 산길은 잠시 허리를 숙인다. 낙동정맥 갈림길이 좌측으로 열리면서 금정산으로 달아난다. 산길은 돌탑이 서 있는 봉우리에서 뚝 떨어지고 다시 헬기장의 봉우리에 올라선다.
그래 퍼 붓던 비는 그치니 하나둘 사람들이 올라온다. 잠시 후 수정산의 갈림길로 좌측으로 내려서면 안창마을 동의대학 가야봉 수정동으로 내려설 수가 있다. 직진을 하면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동네 장터 같은 안부에 내려선다, 많은 사람들로 웅성거림이 동네 마을 회관같다,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봉산으로 오르는 산길에 왠 모노레일...

구봉산에 올라서니 봉수대터에 목재데크와 전망대 공사를 한다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꼭 이런곳에다 전망대를 설치해야 하는 지 궁금하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볼 수 있는 전망인데 말이다.
다시 하산을 하면 동네 마을 회관같은 분위기로 구봉산을 앞 뒤로 수정동 대신동 대청도 주민이 서로 만남의 광장으로 이용을 하는 것 같다. 이제는 대청공원으로 향한다. 구봉산 안내판을 지나고 대청공원 표지판을 따라가면 산복도로에 내려선다.
암남동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까치고개가 펼쳐진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좌측은 중앙공원인 대청공원의 탑이 서있고 맞은편엔 근래에 만들어진 민주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때 대청동에 거주를 할때 대청공원에 올라보던 시절과 많이 변해 격세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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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개인 후의 전망대와  구봉산 아래 갈림길 이정표,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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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을 알리는 정상석과 구봉산봉수대를 알리는 표지석으로 지금 이곳에 목재데크 전망대를 설치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봉수대 복원이 먼저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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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와 대청공원으로 내려서는 운치있는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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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원과 대청공원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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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공원을 지나 대청 공원으로 내려서면 영도의 봉래산과 자갈치 앞바다, 그리고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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