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청산도여행 청산도슬로길 1.2.4 코스를 걷다. 청산도슬로길


청산도 슬로길 1.2.4 경로는 당리 당리재~당산~서편제주막~봄의오할츠 촬영지~피노키오 촬영지~화랑포공원~화랑포 전망대~쉼터조형물~화랑포공원~2코스 사랑길 진입~봄의왈츠 세트장 갈림길~읍리앞개(자갈해변)~구장리 우리민박~청산도 슬로길 4코스 낭길 입구~권덕마을 순이며 둘레길 거리는 대략 8km이며 휴식시간 포함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청산도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청산도)


2017/12/24 - (완도여행/청산도여행)청산도 서편제 촬영지 당리 언덕. 여의의 향기, 봄의 왈츠, 피노키오 촬영지

2017/12/22 - (전남여행/완도 청산도여행)청산도 구들장논. 온돌방과 비슷하다는 청산도 구들장논을 만나다.

2017/11/24 - (전남맛집/완도맛집)청산도맛집 토방식당의 물회가 최고. 청산도 토방식당 물회

2017/10/18 - (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2017/10/03 - (청산도여행/청산도숙박)청산도 들꽃펜션, 청산도 최고의 위치이며 일출일몰이 황홀했던 들꽃민박

2017/10/01 - (청산도여행)완도연안여객터미널~청산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청산도~완도 배 시간표 알아보기

2017/09/30 - (완도여행)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항도





청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연경관이 너무나 빼어난 곳이라 신선이 내려와서 노닐 정도로 아름다운 선경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청산도를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청산도는 완도에서 19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완도항에서 뱃길로 50여 분 소요됩니다.



청산도는 또한 한반도에서 최남단에 속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중 한 곳입니다. 그래서 떠났던 청산도 여행에서 이번에는 청산도 슬로길 1.2.4코스를 걸으면서 하염없이 펼쳐지는 남해의 에메랄드 빛에 눈이 부시도록 보고 왔습니다. 그런 만큼 청산도 슬로길을 걸으면서 서편제 촬영지와 피노키오와 봄의 왈츠 촬영지·초분 등 다양하게 볼 게 많았습니다.






청산도에 조성된 슬로길은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되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우리나라 청산도 만큼 푸른 산과 바다, 구들장논, 돌담장과 해녀 등 느리게 걸으면서 다가오는 풍경과 섬 고유의 전통문화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청산도슬로길 1코스는 먼저 청산도 항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저는 1구간의 전편인 항길과 동구정길은 빼고 서편제길 입구의 당리 고갯마루인 당리 표지석 앞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곳에는 주차장도 있어 차를 주차하기도 좋고 편리했습니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먼저 당산이 나옵니다. 작은 당집 때문에 마을 이름이 나왔으며 지석묘도 있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석묘는 통일신라 때의 해상왕 장보고를 따르던 한내구 장군의 묘라고 합니다. 당시 청산도 주민에게 대단한 신망을 받아 그의 위폐를 당집에 모셨다 합니다. 그 옆에는 서편제 주막이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최초로 100만 관중을 이끌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촬영된 곳입니다.



서편제 영화에는 유봉과 의붓딸 송화와 흥이 난 동호는 메고 있던 북을 가지고 장단을 치며 당집 앞의 청보리밭 사이로 난 돌담길을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걷는 장면이 촬영된 곳입니다. 서편제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곳이지만 서편제 영상과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영화라고 하는가 봅니다.









일행과 함께 유봉과 송화 동호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위스 알프스의 전원주택 같은 깔끔한 건물이 나왔습니다. 봄의 왈츠를 여기서 촬영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집’이라는 콘셉트의 드라마 세트장은 봄의 왈츠의 제목처럼 봄에 찾았다면 노란 유채꽃과 청보리밭과 돌담길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드라마 피노키오를 촬영했던 세트장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게 그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청산도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라 많은 관광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청산도 슬로길을 시작합니다. 바다를 보면서 산허리를 따라 난 너른 길을 걸어갑니다. 오른쪽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시원한 바다가 둘레길 내내 펼쳐졌습니다. 화랑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청산도 슬로길 안내도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愛) 살어리랏다” 싯구 등 다양한 안내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해 쪽 섬의 특별한 장례풍습인 초분을 알기 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분은 풀무덤을 말합니다. 초분의 장례절차를 알아보면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짚이나 풀로 엮어 만든 이엉을 덮어 2~3년 동안 탈골 시킨 다음 뼈를 수습해서 묘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청산도 초분은 정월이나 2월에는 땅을 건드려 묘를 만들면 마을에 우환이 생긴다 해서 삼가며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는 초분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분을 해서 부모님의 시신을 모시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청산도에서는 생각한다고 하니 육지에 사는 저로서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화랑포공원에서 단축코스로 청산도 슬로길 2코스의 사랑길로 바로 갈 수 도 있지만 우리는 화랑포를 한 바퀴 돌기로 하고 직진했습니다. 전망이 아주 좋은 화랑포 전망대가 나왔습니다. 화랑포 전망대는 파도가 이는 모습이 꽃과 같다 하여 화랑포(花浪浦)라 불렀으며 전망대에서 보면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웠고 천혜의 절경이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보면 1866년 청산진을 설치하고 난 뒤 이곳의 선비와 관리들이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에 빠져 풍월을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겼다 하여 화랑포가 되었다 합니다. 화랑포를 걷는 둘레길의 맨 끝에는 “청산도는 쉼이다”는 쉼표 조형물이 시원한 바다와 함께 잘 어울리는 사진 포인트였습니다.

 




그리고 단애를 이루는 해안을 보면서 그 절경에 흠뻑 취했습니다. 다시 화랑포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초분 옆 오른쪽 사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연인이 함께 걸어간다면 손을 잡아주면서 걷는 길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청산도의 청춘남녀는 마을 사람의 눈을 피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하여 ‘연애 바탕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솔길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곧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왼쪽 길은 둘레길 출발지였던 .‘봄의 왈츠’ 셋트장 가는 길이며 오른쪽은 2코스 사랑길인 구장리와 읍리앞개 자갈밭으로 내려갑니다.













둘레길을 걷는 꾼들이 그리 많지 않았는지 웃자란 풀로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발로 더듬어가며 쉼터까지 무사히 내려갔습니다. 3코스 고인돌길인 서편제세트장 갈림길에서 자갈 해변을 가로질러 가면 4코스 출발지인 구장리 우리 민박이 나왔습니다. 민박집을 지나면 4코스 낭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낭길은 구장리에서 권덕리까지 낭떠러지로 이어졌는데 그 낭떠러지로 위로 난 길을 말합니다. 거리는 1.8km이며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라 하겠습니다. 얼마나 험해서 낭길이라 불리는지 그러나 험한 만큼 전망 하나는 똑소리 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낭길은 전혀 험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간의 소통 길이라 그런지 편안한 오솔길로 이어져 오늘 둘레길 경로에서 최고로 좋았던 코스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게 누운 화랑포가 잘 가라는 듯 나를 손짓했습니다. 이제 오늘 청산도 슬로길도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해초전에 시원한 막걸 리가 만원이라는 안내판을 보며 힘을 내어 걸었습니다.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일 생각을 하니 쏙빠졌던 몸에서 힘이 났습니다. 이제 300m를 가면 4코스의 끝인 권덕리 마을입니다. 보적산과 범바위는 갯마을인 권덕마을을 감싸는 게 포근하고 아늑했습니다.

 












서쪽으로는 바닷물을 끓일 듯 붉게 타오른 저녁노을이 청산도 슬로길 완주를 낙오 없이 모두 마쳤다고 축하를 해주는지 황홀한 여운이 바닷물로 사그라졌습니다. 해초전집을 찼았더니 오늘은 하지 않는다는 ...아쉬운 마음으로 지팡이를 내려 놓았습니다. 


(트랭글캡쳐)

728x90

728x90


(완도여행/청산도여행)담쟁이가 아름다운 청산도 명품마을 상서마을 돌담, 청산도 상서 돌담마을


청산도 들꽃민박에다 베이스캠프를 정하면서 다녔던 청산도 2박 3일 여행. 이번에는 들꽃민박에서 가까운 상동리에 있는 상서 돌담 마을입니다. 상서마을은 울타리가 돌로 둘려 있으며 이게 상서돌담마을길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어촌마을이야 대부분 돌담이지만 상서마을의 돌담은 오밀조밀 한 게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등록문화재 제279호.





청산면 상서마을을 감싸는 산은 청산도에서 아름답다는 매봉산입니다. 매봉산 아래에 터 잡은 상서마을은 앉은 지대가 높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멀리까지 보여 조망이 다른 마을보다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다랭이로 불리는 계단식 논이 이곳 청산면에서는 독특하게 바뀌었는데 그게 온돌방의 구들장 같이 널따란 돌을 깔은 구들장 논이 층계를 이루는 농촌과 어촌이 복합된 마을입니다.






먼저 상서마을의 유래를 보겠습니다. 상서마을은 성산포에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했는데 이는 성산포에서 마주 보이는 매봉산이 태풍과 해풍을 막아주고 산세가 빼어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됐는지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하여 살았다 하며,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곳을 덜리라고 부르며 1960년대까지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빈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 후로 상서마을은 숙종 때에 언양김씨와 밀양박씨 나주임씨등이 들어와 살다가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면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청산도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1759년~1789년에 여지도서 지명표를 보면 상서마을을 뜻하는 사정리(射亭里)와 걸리(桀里)가 나오며 걸리가 지금의 덜리로 바뀐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1800년인 정조 13년에도 사정리와 덜리의 지명이 확인되며 사정리는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심신을 단련하는 활을 쏜 데서 유래 되었다하며 그 표적지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희미하지만 남아있다 합니다.











1895 고종 3년 당리진때 상서리로 기록이 나타나고 1914년 상서리와 원동리가 합해져 상동리가 되었다가 완도가 군으로 승격하면서 상서리로 바뀌었습니다. 상서마을의 돌담을 둘러보면 투박한 돌을 격식 없이 차곡차곡 막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섬지방의 바람을 막으려는 듯 어떤 곳은 높은 담장이지만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오는 낮은 담장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칭칭 돌담을 감으며 올라간 담쟁이는 상서돌담마을의 또 하나 볼거리였습니다. 제가 찾았을 때는 마침 능소화가 끝물이었지만 화려한 선홍색 꽃이 녹색의 담쟁이 속에서 그 자태를 잃지 않았습니다. 능소화와 담쟁이가 돌담을 감싸는 상서돌담마을길은 정말 평온한 어촌의 전원마을 풍경이었습니다.







상서마을은 사실 어촌과 농촌을 함께하는 곳입니다. 섬에서 보기 힘든 벼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량도 풍부하고 청산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산도중에서도 상서마을은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우는 알겠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정말 생소한 이름입니다.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해서 상서마을의 논두렁에서 물속을 유심히 주시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긴꼬리투구새우는 고사하고 어떤 생물도 볼 수 없었습니다. 아마 철이 아니거나 부끄러워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상서돌담마을길은 돌담이 볼거리중 최고라면 다랑논인 구들장 논과 긴꼬리투구새우 서식지는 덤입니다. 그리고 상서마을과 구들장논을 연결하는 상서마을 둘레길을 걸으면서 반나절을 사색의 시간으로 힐링하기에 그저그만이었습니다. 이래서 청산도는 태어나서 한번은 꼭 가야된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728x90

728x90



(완도여행/완도가볼만한곳)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본다는 섬 청산도. 청산도 항도 여행


청산도를 두고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은 가봐야할 곳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직 청산도를 가보지 않았다하면 사람이 아니라 할까싶어 늦었지만 청산도 여행을 한번 하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청산도안에서도 꼭 가보고 와야할 곳 중 한곳이 있어 소개합니다.





완도군 청산도 항도 주소: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동촌리




2013/08/12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청해포구 촬영장, 영화 드라마 cf 촬영으로 유명한 청해포구 촬영장 눈으로 즐기기.

2013/08/1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조선시대 대표 정원 정자 세연정에서 어부사시사를 짓다.

2013/08/21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조선시대 최고의 정원 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이 있는 관광정보센터

2013/08/24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윤선도가 마지막 숨을 거둔 낙서재와 곡수당, 동천석실 둘러보기.

2013/09/09 -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2014/11/04 -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청산도도 섬이지만 그 섬중에서도  또 섬속의 섬인 항도(肮道)입니다. 항도는 목을 뜻하는 섬이며 그 동쪽 끝에 새의 목이라는 새목아지섬이 있습니다. 이곳이 청산도에서 가장 유명한 일출 포인트라 합니다. 또한, 이곳은 들꽃민박집 여주인장의 말을 빌리면 감성돔이 많이 올라오는 낚시 포인트로 조사님의 파라다이스라는 섬입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민박집 주인장의 적극 추천 포인트에 낚시를 갔던 터라 밥 배달 겸 어떤곳인가 싶어 항도를 후다닥 갔다왔습니다. 밥은 내팽겨치고 혼자 항도 깊숙이 들어갔더니 새의 목처럼 잘룩한게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 때에는 섬으로 변해버리는 잘빠진 목이 나왔습니다. 이곳이 새목아지를 뜻하며 항도란 이름이  붙게된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록한 새목아지를 지나면 목섬인데 꼭  새대가리를 닮았습니다. 다르게 보면 공룡 대가리 같기도 한 이곳을 보면서 주위 풍경이 완전히 거제도 해금강 뺨치는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봤습니다. 망망대해에 점점 떠 있는 다도해는 지상의 파라다이스가 별게 있을까 이곳이 지상의 낙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풍광이 빼어났던 곳입니다.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방의 작은 나라인 한반도의 남해를 이곳저곳둘러보고 불로초를 찾으며 남긴 흔적과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곳인 청산도의 항도를 빠트리고 갔다면 아마 그는 큰 실수를 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청산도는 다른 섬과는 다르게 산에 나무가 많아 청산도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숲이 울창하여 더욱 푸르고 바다까지 에메랄드 빛인 아름다운 섬 청산도에서 더욱 아름다운 섬 항도. 항도안의 진주 새목아지인 목섬은 청산도 여행에서 꼭 한번 둘러보세요.






저도 어떤 섬인지 관광지도를 보고 궁금했는데 실제 답사를 해보고 정말로 아름다워 카메라의 화이트발란스를 막 바꾸어 가며 폼은 전문가 수준으로 항도의 추억을 여러장 담았지만 쓸만한 사진이 없었습니다.






청산도의 다른 이름은 신선선자가 들어가는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불렸습니다. 그만큼 아름다워 신선이 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 같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에 탐진현 (현 강진군)에 속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임진왜란 등으로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자 조정에서 도서금주령으로  사람을 모두 소개시켜 한때 사람이 살지 않는 공도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1608년인 선조 41년에 다시 청산도 입도를 허가하여 사람이 거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청산도는 1681년 숙종 7년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1866년 고종 3년에는 당리에 독진을 설치하였고 고종 33년에 완도군이 생기면서 완도군에 이속되어 청산면이 되었습니다.
















 1981년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제 청산도 여행 중에서 항도를 대충 훑어보고 와서 사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완도 명산 상황봉~백운봉 산행.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봉 원점회귀 산행


전라남도 완도는 오봉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일반적으로 상황봉으로 알려진 주봉에다 백운봉, 업진봉 심봉, 숙승봉의 다섯 봉우리가 북에서 남으로 병풍을 펼친 듯 올망졸망 길게 이어져 완도를 이룬다. 또한 완도는 본섬이외 260여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는 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섬은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 태풍을 만나 몸을 잠시 피하고 그 뒤 귀양에서 풀려나 눌러 앉았다는 보길도와 대한민국 슬로시터 1호인 청산도는 '서편제'등이 촬영되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볼만한 섬으로 알려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통일신라 흥덕왕때에 군사 1만을 거느리는 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는 백성들을 잡아다가 노비로 팔아넘기던 당나라 해적들을 소탕하고 청해진을 본거지로 하여 중국과 일본, 멀리 이슬람지역까지 교역을 확대하여 해상왕 장보고의 위상을 떨쳤다. 그가 설치한 청해진이 이곳 완도에 있다. 지금은 완도는 섬이라기보다 완도대교가 설치되어 육지로 취급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등산객이 상황봉을 찾고 있다. 필자는 상황봉~백운봉 원점 산행을 위해 완도읍 대야리 대야저수지 아래 상황봉 주차장에서 산행을 하였다.






완도 오봉산 상황봉~백운산 산행 경로를 보면 상황봉 주차장~임도 갈림길 등산로 입구~전망바위~건드렁바위~상여바위~전망대바위~관음사지~황장사 바위~임도~석문~삼층바위~벼락바위~오봉상 상황봉정상~제2전망대~하느재(임도)~정자전망대~헬기장~전망바위~백운봉정상~대야리, 숙승봉 갈림길~임도~479m봉~송곳바위~갈림길 이정표~대수골 철다리~상황봉 주차장 순으로 총 산행거리는 약 12.5㎞ 가량이며 산행 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5시간~5시간30분 안팎이 소요된다.


건드렁바위



상여바위로 불리는 천화대


상황봉 주차장은 화장실과 물을 준비 할 수 있는 음수대도 갖추고 있어 이곳에서 산행 준비를 하면 된다. 대야저수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저수지 정문 못미쳐 출입제한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왼쪽 임도가 산행 들머리다. 임도를 들어서자 바로 등산 안내도를 보고 임도를 버린 뒤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일사천리로 산행을 할 수 있다. 산길을 10여분 쯤 오르면 왼쪽에 철사다리가 놓인 바위를 만나다. 잠시 올라 전망을 보고 내려온다. 내려 올때는 사다리가 짧아 주의를 해야 한다. 다시 7분을 오르면 등산로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벗어난 곳에 너비 2m 높이 1m 의 경차 크기 만 한 바위가 얹혀 있다. 흔들바위를 두고 건드렁바위라 한다.




관음사터

관음사 샘터

건드렁 바위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옛날 어느날 아랫마을에 살 던 송정승이 상여를 따라 이곳 산을 오르게 되었다. 그만 술에 만취하여 알몸으로 오줌을 누었는데 맞은편 백운봉 능선의 송곳바위(일명 할아버지 바위)가 '버릇 없이 어디를 보고 오줌을 누느냐'며 호통을 치자 그만 놀라서 돌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 바람만 좀 불어도 바위는 엎드려 절하며 잘못을 비는 양 쉬지 않고 흔들거려 '건드렁 건드렁' 거린다하여 건드렁 바위로 부르게 되었다. 건드렁 바위에 올라서면 출발한 대야저수지와 대수골, 그리고 건너편 백운봉 능선과 송곳바위를 마주 보고 있으며 한 사람이 살짝만 밀어도 자신의 잘못을 비는 양 ‘건들건들’ 흔들린다.




황장사바위



 약 13분가량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송전철탑을 지나고 올라야 할 상황봉과 백운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길은 숲속 길을 15분쯤 더 가면 왼쪽에 천연대라고도 불리는 상여바위를 만난다. 규모가 큰 바위로 로프가 묶여 있어 오를 수 있지만 조금 위험에 보인다. 자신이 없다면 오르지 말고 밑에서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상여바위의 전설을 보면 옛날 힘 좋고 마음씨 착한 황장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관음사로 올랐다. 이곳을 지날 때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열흘을 기다려 날씨가 개어 다시 가려하자 상여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 


상황문

삼층석탑바위

사랑바위


이곳을 지나 백운봉과 숙승봉을 조망할 수 있는 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관음사지앞 갈림길에 이정표가 있다. 왼쪽 관음사터로 내려선다. 직벽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곳에 절묘하게 자리를 잡은 관음사지는 바다의 위험으로부터 부처님의 보호를 받기위해 건립한 것으로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가 활약하던 통일신라때 완도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큰 바위 아래 샘이 있다. 갈증을 해소 한 뒤 오른다. 이곳에서 상황봉으로 직진을 할 수 있지만 다시 왔던 갈림길로 돌아간다.


벼락바위

  


관음사터에서 직진하여 오면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면 '황장사바위'로 불리는 너럭바위가 나온다. 너럭바위에는 깊은 홈이 파여 있는데 힘이 센 황장사가 하루는 심심하여 제주도를 완도 옆에다 붙여야 겠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제주도를 묶어서 끌어 당겼는데 끌려오다 그만 너무 세게 당기다 보니 머리카락이 벗겨져 현재자리에 제주도는 멈춰버리고 말았다한다. 황장사의 엉덩이 자국과 발을 버틴 자국이 웅덩이로 그대로 남아 있다. 곧 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오른다. 석문의 바위를 지나게 되는데 명칭이 없어 ‘상황봉을 오르는 문’이라 '상황문'으로 명명해 본다. 바위가 3개 포개진 3층석탑바위, 탕건바위, 사랑바위 등 바위의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혀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갑자기 연꽃이 펼쳐진 모양의 바위를 만나는데 벼락을 맞아 세 등분으로 갈라졌다며 '벼락바위'로 부른다.

 



이제 10분이면 오봉산 상봉인 상황봉에 설 수 있다. 상황봉 정상에서는 남해바다의 파수꾼 역할을 한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망권은 탁월하지만 날씨가 흐려 볼 수 없는게 아쉬울 뿐이다. 맑은 날씨에는 끝없는 수평선에 조개처럼 박힌 다도해의 섬들이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고금도, 신지도, 청산도, 소모도, 대모도, 여서도, 소안도, 보길도와 황장사가 끌어당기다 만 추자도와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또 동쪽으로는 이웃한 장흥 천관산과 고흥 적대봉이, 북으로는 해남의 두륜산과 강진의 관악산, 흑석산, 월출산의 모습까지 확인 되는 조망의 산이다. 지척에는 땅끝마을이 보이고 진도 등도 눈에 든다. 일출과 일몰 산행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제2전망대




산길은 올라온 길을 내려서 갈림길에서 백운봉 방향으로 향한다. 15분쯤 뒤 데크시설이 돼 있는 제2전망대와 만난다. 가야할 백운봉과 숙승봉, 발아래 대수골과 대야저수지 등 내려가야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2분 뒤 하느재로 불리는 임도를 통과한다. 왼쪽은 완도 수목원 방향이며 필자는 직진하여 오르막 능선을 탄다. 이곳에는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다시 살짝 내리막을 타면 옛날 완도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던 고개 옛 하느재다.



전망데크







안부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지금부터 상황봉에서 내려 온 만큼 백운봉을 향해 올라야 한다. 오르막이다 보니 힘들며 땀 꽤나 쏟아야 한다.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헬기장과 전망대를 지나고 암봉으로 이루어진 백운봉 정상이 자리를 내어준다. 하느재에서 약 25분. 대야 저수지 방향으로 천길 단애를 이루며 칼로 자른 듯한 집채만한 바위들이 서로 포개어져 놓여 있어 더욱 위압감이 든다. 제일 위에 놓여진 바위에 정상을 알리는 '백운봉' 글자가 새겨져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원점회귀 하산을 위해서는 동쪽의 능선을 타야하는데 천길 절벽이라 숙승봉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가면 바로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업진봉을 거쳐 숙승봉으로 이어지는 오봉산 종주산행이 되고 필자는 오른쪽 대야리 방향으로 꺾는다. 내려서는 입구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연이어 철계단을 내려서고 천길단애를 에돌아 15분 뒤 편편한 임도에 도착.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479봉을 향해 13분쯤 오르막을 타면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능선을 따른다.






25분이면 송전철탑을 통과하고 곧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송곳바위를 지난다. 일명 할아버지바위로 불리는 바위로 황장사 장례와의 전설이 전한다. 옛날 백운봉 정상아래 바위굴에 할아버지 부부가 살았는데 황장사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다 폭우로 대수골의 계곡물이 불어나자 먼저 건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를 애타게 불렀다. 그 후에도 열흘 동안 내린 비로 서로를 찾다가 그만 바위가 되었는데 바람이 부는 날이면 할아버지 바위에서 울부짖듯 할머니를 찾는 휘파람 소리가 마을까지 들렸고 휘파람 소리에 여인네들이 바람이 났다. 그 이후 동네 사람들이 바위에 제사를 지내니 하늘에서 벼락이 쳐 할아버지바위의 윗부분을 쪼갰고 휘파람소리와 아낙네들의 바람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곧 만나는 이정표 갈림길에서 반드시 직진하고 대수골 계곡에 걸린 철다리를 건너 18분이면 출발지 였던 상황봉 등산로 주차장에 도착한다.


송곳바위



부산에서 출발하면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광양IC에서 내려 2㎞가량 직진한다, 남해고속도로 지선 영암순천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오른쪽 방향 도로로 오른다. 강진무위사IC에서 내리자마자 성전, 월출산 방향 오른쪽 길로 빠져나가면 목포광주 방면으로 다시 우회전한다. 다시 만나는 남성전교차로에서 완도 진도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2번 국도를 따라 2㎞가량 이동 후 월산교차로에서 완도 해남방향 13번 국도를 탄다. 해남읍 외각을 통과하여 완도까지 13번 국도를 따른다. 완도교를 건넌 후 완도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장좌교차로에서 청해진유적 표시를 보고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좌회전, 굴다리를 통과한다. 이후 청해진초등학교를 왼쪽에 끼고 다시 좌회전하여 700m쯤 가면 왼쪽 대야1구 ‘에덴농원’ 방향 좁은 마을길로 들어서 다시 굴다리를 통과하여 계속 올라가면 에덴농산을 지나고 상황봉 출발지인 주차장에 닿는다. 내비게이션에 ‘에덴농원’ 입력



상황봉고도표

상황봉지도

다음캡쳐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도 이곳을 보았을까.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보길도를 찾아가는 방법은 한반도의 남쪽끝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가면 된다. 필자도 예송리를 찾아가기 위해 이곳 땅끝마을에서 배를 이용하여 보길도로 들어갔다.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섬이라할 정도로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세연정, 동천석실등 제주도로 가기위한 노정에서 풍랑을 피해 잠시 들렀던 이곳 보길도에 마음이 빼앗겨 제주행을 멈추고 들어와 부연동이라 이름짓고 머물게 되는데 그만큼 보길도는 고산윤선도의 마음까지도 붙잡아 둘 정도로 매력과 함께 아름다운 섬이다. 






보길도를 가기위해 땅끝마을 선척장에서.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의를 숭상한다는 예송리.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그중 한곳이 보길도의 동남쪽에 자리한  예송리이다. "마을 주민이 모두 예의를 숭상하고 인륜도덕을 함양한다"는 뜻으로 마을 주변의 소나무들도 머리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고 있다하여 예송리로 부른다. 그만큼 마을 전체가 순박하며 조용한 어촌마을 풍경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 마을앞의 방풍림이 천연기념물 40호,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 마을앞에도 300여년전에 마을 주민이 힘을 합쳐 방풍림을 조성하였다. 남쪽에서 올라오던 태풍의 길목으로  마을은 항상 태풍의 피해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이 만든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 4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울울창창한 성록수림 덕분에 마을은 태풍의 피해를 줄일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어 마을은 살기좋은 동네가 되었다








예송리의 상록수림은 방풍림과 어부림을 겸하고 있다. 방풍림의 길이만도 약 800m이며  폭은 30m쯤 되는 반달 형태이다. 주종은 수종은 다양하며 그중 곰솔이 상당수 자라고 있다하며 가장 큰 곰솔나무를 당산나무로 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기원을 빌고 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예송리의 볼거리는 해수욕장과 상록수림이 독특한 마을의 전원풍경, 예송리해수욕장과상록수림.



예송리의 볼거리는 상록수림과 또 한가지는 반달모양으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이다. 길이만도 1km가 넘는 긴 해수욕장으로 이곳은 모래가 아닌 자갈밭 해수욕장이다. 일반 해수욕장에서는 들을 수 없는 파도소리가 이곳 해수욕장에서는 음악소리 처럼 들린다.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빠져 나갈때 내는 "자르륵 자르륵~~~"하는 그 소리가 밤새 들여오는 예송리 해수욕장, 보길도와 함께 이곳에서 1박을 권해 봅니다. 

 


예송리상록수림과 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해수욕장.




예송리상록수림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보길도의 유래는

 

보길도 고산윤선도와 함께 하는 보길도는 섬의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의 모양이라 그 어원인 '보고래'에서 보길도가 유래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고향의 해남에서 그의 가솔을 거느리고 뱃길을 인조가 피신을 해 있다는 강화도로 가는 도중 인조가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다시 뱃머리를 해남으로 돌려 그길로 제주도로 향한다.
고산윤선도가 처음 이곳 보길도에 들어오게 된것도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으로 잠시 몸을 피한것이 인연이 되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보길도에서 윤선도가 처음지었던 낙서재 살림집

 

그길로 보길도에 눌러 앉게 되는데 그는 보길도의 격자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니  꽃망울을 터트리 직전의 연꽃이라 부용동이라 짓고 격자봉의 혈맥이 세번 꺽여 내려오는 곳에 처음으로 낙서재를 짓는다. 1637년인 인조 15년에 들어와 그가 가장 먼저 지었던 건물로 1650년 그가 이곳 낙서재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생활하였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의 낙서재 현판을 걸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무민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낙서재와 곡수당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그 이전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흔적만이 남아 세월속에 묻혀 있었다.

 

 

 

 

보길도에는 그의 기인같은 행동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그는 작은 바위 한개라도 허투로 보지 않고 많은 이름을 남겼다. 지금의 낙서재나 곡수당 그리고 동천석실은 그때의 흔적과 정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 툇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바라 보았을 것이고 저쪽 바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부용동에 있는 모든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보길윤선도원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에 비해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독서도 하면서 부용동과 격자봉을 바라보며 주자학 연구에 혼신을 다한곳이 아닐까.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동천석실은 그야말로 바위에 위태롭게 걸린 제비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 보고 이곳 입구로 찾아가니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일행중에 연로하신분이 걸을 수 없는 처지라  젊은 우리들만 동천석실을 올라가자고 주장을 할 수도 없어 입구에서 돌아서 순천을 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

 

 

 

 

곡수당으러 건너편 산중턱의 바위가 동천석실이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의 모습.

 

 

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동와와서와로 동쪽과 서족에 잠깐 휴식을 위해 지은 움막.

 

 

 

 

보길윤선도원림 동천석실

 

 

동천석실 입구 . 이곳에서 걸어야 한다.

 

 



 

 

고산 윤선도 홈페이지:http://yungosan.hosting.paran.com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명승 34호로 지정되었고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을 위해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리며 향하던둥 태풍으로 잠시 피신을 위해 보길도로 찾아 들어 갔다. 그는 이곳의 경치에 마음을 빼앗여 제주도 가는 길을 멈추고 이곳에다 안주를한다. 이곳의 산세가  마치 연꽃봉우리가 피어 터질 것 같은 의미의 부용동이라 짓고 낙서재 곡수당 그리고 건너편 바위에 동천석실을 짓고 세연정이란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을 꾸며 놓고 자신의  학문 연구에 채찍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에서의 새연정은 먼저 규모에 놀라게된다. 한갖 외딴섬인 이곳에서 조정의 부름도 마다하고 여생을 보내고 이곳 낙서재에서 마지막으로 운명을 한다. 그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를 세연정에서 지었다하며 그의 보길도를 향하는 그의 행적과 보길도에서의 윤선도등을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에서 소상히 알아볼 수 있다. 관람료 1000원을 지불하면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보길도에서 고산 윤선도에 관한 문화재를 보기 이전에 이곳을 먼저 들러 보고 새연정등을 관람할 것을 권한다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 구경하기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전남 완도군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찾아가게 되었다. 출발은 땅끝마을 선착장에서  배편을 이용하면 된다.. 금오도 거문도 홍도 보길도등 섬여행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 보길도며 이곳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이야기를 빼고 보길도를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만큼 고산윤선도에게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 였고 보길도또한 고산윤선도와 함께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보길도 유래는...



완도군청의 홈페이지를 보면 보길도에 대한 유래가 나와있다. "영암에서 큰 부자가 선친의 묫자리를 잡기위해 이곳 보길도로 지관을 대동하고 들어 왔는데 그 지관이 보길도의 산세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섬에는 명당자리가 11곳이 있다며 십용십일구.보길(十用十一口.甫吉)이라하였다. 지관이 이르기를 이곳에는 명당터가 11곳으로 현재 10곳은 묫자리가 들어서 있고 나머지 한곳도 묫자리가 이미 정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한다. 그 이후 보길도로 불리어졌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병자호란으로 은둔을 위해 찾아간 보길도.



고산 윤선도와 보길도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1636년 인조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에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강화도, 남한산성으로 피난처를 옮기기에 급급하였다. 윤선도는 그의 식솔들과 함께 인조를 지키기 위해 강화도, 남한산성으로 찾아가지만 청나라에 두손을 들고 항복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기탱천하여 그는 그길로 그의 고향 해남으로 발길을 돌린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에 그의 왕국 세연정을 세우다.



해남에서의 고산윤선도는 두번다시 조정과 세속의 일에는 나서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은둔을 위해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제주도로 향하는 도중 태풍을 만나 피하기 위해 우연히 찾아 들어간 곳이 보길도이며 그는 이곳의 산세에 매료되어 재주도로 향하던 뱃길을 멈추게 된다. 이곳의 지형이 연꽃의 모습이라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낙서재란 작은 정자를 세웠다. 그와 함께 동천석실등과 함께 지은 또 하나의 정자가 조선시대 정원의 진수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연정이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부용동의 세연정 뜻은.


세연정(洗然亭)의 세연은 어떤 뜻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주변 경관이 물에 몸을 씻을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의 뜻이며 '고산연보'에는 1637년 윤선도가 부용동을 처음 발견하고 지은 정자라 되어 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양파 껍질 같은 정자 세연정.


세연정 정자는 다섯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중앙에 세연정이. 동쪽에는 호광루가 서쪽에는 동하각, 남쪽에는 낙기란, 서쪽에는 칠암헌의 편액을 따로 걸었는데 세연정은 꼭 양파같은 정자라 생각된다. 껍질을 벗기니 안에 또 양파가 들어 있는 것 처럼 세연정 안에는 또 다른 세연정이 들어가 있는 모양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세연정의 건축미에 감탄.


고산윤선도는 다방면으로 재능을 가진것으로 보인다. 그중 또 하나의 재능은 세연정과 그가 손수 가꾸었다는 정원을 보면서 건축가적인 감각이 매우 뛰어난것 같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탄성이 이곳 저곳에서 들리는 것만 보아도 요즘에 태어 났다면 정치가가 아닌 건축설계를 하는 건축가가 되어도 세계 최고의 CEO는 따논 당상으로 보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굴뚝다리의 판석보가 현재 유일.


세연정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의 물은 판석보를 거치게 된다. 요즘 같은 건기에는 돌다리가 되어 밟고 건너는 기능을 하며 길게 굴뚝 처럼 생겨서인지'굴뚝다리'로도 불린다. 연못의 물을 가두는 역활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올때는 연못의 물이 판석보를 통해 물이 넘쳐 나가면서 폭포가 되도록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세연정에서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지어졌다.


연못안에는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도록하는 기능을 가진 석조보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세연정에는 또 인공으로 만든것으로 보이는 동대와 서대가 남아 있는데 자연석을 쌓아 올린 평평한 모습이다. 이곳에서 어부사시사가 불려지면 사람들은 어울려 춤을 추며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정자 세연정.


필자도 담양의 소쇄원,구례의 온조루, 옥산의 독락정, 양동의 관가정, 밀양의 월연정등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난 멋들어진 정자를 많이 찾아 보았다. 모든 곳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정자로 싯구가 저절로 머리속을 맴돌 정도로 주위의 경관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다. 나름대로 우리 조상들의 삶의 공간인 정자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곳 보길도의 세연정 처럼 그리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고산윤선도의 세연정. 보길도가 윤선도. 윤선도가 보길도인 아름다운 섬 보길도, 감동의 쓰나미를 느끼게한 세연정.


보길도의 세연정을 처음 접하고 그 웅장한 모습에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감동의 쓰나미'였다. 밀양 영남루를 처음 접할때의 그 감동을 이곳 세연정에서도 느꼈다. 영남루 처럼 규모도 웅장하며 건축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정자의 구조를 보면 일반 정자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더욱 놀랬다.

 

 

 

 

고산윤선도 그분은 어찌 이곳에다 이런 세연정을 지을 생각을 하였는지 아름다운 세연정을 보며 감탄만하고 또 하나의 고산 윤선도 유물이 남아 있는 곡수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728x90

728x90


 

 



 

 

 

요즘 각 지자체마다 열을 올리는 것이 자체적인 수익창출이다. 그 중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 드라마 셋트장으로 인기 있는 드라마는 촬영중이나 종영이 되어도 그 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 드라마 촬영장은 한 두번씩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그러면 부수적으로 그곳의 다른 관광산업도 관광객으로 덩달아 호황을 누려  지역 경제가  활성화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인기있던 드라마 촬영장도 세월이 지나감에 잊어지며 그에 따라 관리부족 또는 더 이상의 드라마 촬영이 없어지면 태반이 폐허가 되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천 영상테마파크' '문경 드라마셋트장' 그리고' 완도의 청해포구 촬영장'등은 그나마 깨끗하게 잘 관리가 되고 있고 계속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많은 관광객이 지금도 찾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셋트장은 사실 가보면 엉성하게 지은 가 건물들을 이용하여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하는 곳으로 그 자체로는 관광 수익성이 약하다. 건물 자체로는 아무 볼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로 엮이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역활을 하는것 같다.  그런데 완도의 청해포구 촬영장을 가보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나의 단순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어느 국보급의 문화재를 보는 것도 아니고 입장료가 5천원으로 저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비슷한 드라마 셋트장 입장료중에서는 가장 비싼곳이 아닐까 싶다. 같은 드라마셋트장인 합천과 문경등 5천원의 입장료를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혹 드라마 촬영이라도 한다면 그나마 이해를 한다. 배우나 탈렌트를 볼 욕심에..

 

 

 

 

입장료는 그렇다하고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한것은 입구에 골프카다. 일행분중에 연로하시고 다리가 불편한분이 있어 드라마 촬영장으로 못내려 가겠다하시며 우리만 갔다 오라고 하였다. 마침 옆에 골프카(?)가 있기에 이걸 타고 가면 되겠다 싶어 문의를 하니 4만원이란다. 그것도 그날은 운행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청해포구 촬영장 안내도'에 "미니 관람차로 관람해 보세요"하는 문구가 눈에 보였다. 그분은 할수 없이 정자에 앉아 있겠다며 우리보고 갔다오라기에  일정상 어쩔수 없어  걸어가며 생각하였다. 관람차를 타고 도는데 4만원이면 촬영장이 엄청 넓은 모양이다는 생각을.... 

 

 

 

 

사실 내려가면서 본 청해포구 촬영장의 크기는 시골의 작은 동네 규모였다. 우리가 마음먹고 걷는다면 10~2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고 택시를 타고 돌아도 기본요금도 나오지 않을 거리로 보이는데 4만원을 받는 것은 아무리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관람차로 편의를 제공한다지만 너무 무리한 요금으로 보인다.그리고 완도 드라마촬영장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관람하는데 부모님과 어린아이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다.  포구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이 급해 무릎등이 불편한 노인분들에게는 무리가 따를수 있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실비를 받거나 택시요금처럼 시간을 정해 요금을 받는 것이 타당하겠다. 무조건 4만원으로 하는 것은 하루종일 빌리는 금액은 아닌게 아닌지. 그리고 길어야 30~40분 이내에 끝나는 관람차 요금이 4만원이면 완도군측에서는 적당하게 책정된 금액이라 생각을 하겠지만 그래도 미터요금제나  시간등 관람 시간을 정해  요금을 받는 것이 합당한 조치가 아닐까.  관람차는 노약자 보호를 위한 차원에서도 좋은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가격이라 생각된다면 지금의 금액체계는 수정을 하는것이 맞는게 아닐까.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