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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사지 쌍사자석등.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쌍사자석등의 유래는...

 

먼저 석등의 의미 부터 알아보자. 불교에서는 석등이 어떤 존재일까.  등불을 밝히는 것은 공양중에서도 최고로 치며 오래전 부터 등불을 안치하는 공양구가 있었다. 보통 석등은 다섯단계로 구분을 하여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으로 나누고 옥개석 위에 상륜부인 보주를 올린다. 특히 화주석은 등불을 밝히는 곳으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석등의 역사를 보면 국내에서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백제의 석등 파편이 출토되어 삼국시대에도 석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의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까지도 영향을 끼쳐 백제의 팔각형 화주석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영암사지의 쌍사자 석등과 같은 모양은 통일신라시대 부터 많이 만들어져 조선시대에 까지 이어졌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로 더 유명세...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에 대해 알아보자. 팔각형의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을 두었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렸다. 중대석은 사자를 배치하여 가운대 받침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통일 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사자를 받치고 있는 아래받침돌에는 복련인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사자는 서로 가슴을 맞대며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앞발은 들어서 화사석 아래의 윗 받침돌을 받들고 있다.사자의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그리고 근육등은 우람하여 백수의 왕 사자를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8각 기둥으로 네면에 창을 만들었고 그 외의 네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을 덮고 있는 8각 지붕돌은 각 귀퉁이에 자그마한 귀꽃이 조각되어 있다.  쌍사자석등을 보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작품으로 쌍사자석등의 걸작품인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석등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걸작품이다.  이곳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도 남모르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일인들이 본국으로 가져 가기 위해 반출을 시도하다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어 면사무소에서 보관을 하였다. 그 후 1959년 원래 자리인 영암사지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졌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의 표지모델로 나와 더욱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보물제 353호

 

 

 

 

 

 

 

 

 

 

 

 

 

 

 

 

 

 

영암사지 삼층석탑.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삼층 석탑. 탑의 의미는.

 

사찰에서 석탑은 어떤 의미일까. 스투파, 수두파 또는 탑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건축물을 말하며 불사리탑인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시나가라(kusinagara)의 보리수 밑에서 열반에 들은 후 사리가 8개국에 나누어져 탑파를 쌓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다. 즉 부처님의 무덤으로 보면된다. 모든 사찰에서 신성시하며 사찰의 중심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몸에 비유한 대웅전을 바라보며 세운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삼층석탑의 구조는.


 

영암사지 삼층 석탑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1969년에 복원을 한 후 부터다. 그 이전에는 탑신이 무너져 있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영암사지로 보나 온전한 석탑 상태는 아니었던 같다.  2단의 기단에다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통일신라석탑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단석은 모서리와 그 가운데 기둥 모양의 홈을 파서 올렸다. 3층 석탑을 쌓아 올린 몸돌과 지붕돌은 하나의 돌을 깎았고 몸돌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맨 밑의 몸돌은 좀 높은 편이며 올라가면서 2.3층의 몸돌은 낮게 만들었다. 지붕돌 또한 올라가면서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밑변에 수평인 4단의 받침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네 귀퉁이에 각진 끝부분이 살짝 치켜 올라가는 모습이 전형적인 우리의 기와지붕을 연상케한다.  보물 제480호로 쌍사자석등과 같은 시기인 통일신라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영암사지 귀부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영암사지 귀부의 유래.

 

 

영암사지에는 좌우 한쌍으로 거북 모양의 귀부가 남아 있다. 귀부란 거북 형상의 등에 사각의 홈을 내어 그 위에 탑신을 올리는 받침대 역활을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져 왔고 국내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부터 당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비석의 형식을 이루었다 현재 이수는 사라지고 없지만 거북 모양의 귀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두 귀부가 같은 듯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놓여진 귀부는 거북의 등무늬가 6각형이고 비신을 세우기 위해 만든 사각형의 모서리에는 아름다운 운상(구름무늬)이 세겨져 있다. 몸은 거북이며 머리는 용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왼쪽의 귀부도 6각형의 등무늬를 하였고 비신을 세우기 위한 사각형 홈에 안상과 중앙에 연꽃잎을 새겨 놓았다.  머리는 용의 모습에 가깝고 여의주를 물고 있다. 탑신등 비석은 존재하지 않아도 정교하게 조각한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날아 갈듯한 맴씨를 뽐내고 있는게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 489호이다.


 

 

 

 

 

 

 

 

 

 

 

 

 

 

 

 

 

 

당간석.

 

 

 

식수통.

 

 

 

 

 

 

 

 

 

 

 

 

 

 

 

 

 

 

 

 

 

 

 

 

 

 

 

 

 

 

수령 600백년된 느티나무 .현재 영암사 입구에 당당히 지키고 있다.

 

 

 

 

 

 

 

 

 

 

 

 

 

☞(경남여행/합천여행)영암사지 쌍사자석등, 삼층석탑, 귀부가 남아 있는 영암사지에 대해서... 

 

 

신령스러운 바위 산을 이루는 감암산 모산재는 신령스런 산이란 뜻인 영암산이라 부른다. 신라 시대 창건된 것으로 보여지는 영암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지며 영암사의 사찰 이름 그대로 신령스러운 바위들로 뭉쳐진 그 아래 자리한 사찰터다. 언제 창건된 사찰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적과 기록을 보면 그 연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료에 의하면 고려현종 5년(1014년)에 적연선사가 이곳에 서 83세로 입적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인 홍각선사비의 비문 조각에서도 영암사라는 사찰 이름이 나오는데 886년에 이 비석이 세워진 것으로 보면 그 이전부터 영암사가 존재한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 9C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제353호)과 삼층석탑(보물제480호), 귀부(보물 제489호)그리고 당시 흔적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석재와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 작품으로 영암사의 창건연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라 볼 수 있다.  영암사지는 왜 폐사를 당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곳에 있는 폐사된 사찰의 기록을 보면 '빈대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있다. 빈대가 득실거려 폐사 되었다는 기록이 의외로 많으며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사라지고 결정적인 것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 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찰이 폐허가 되다 싶이하였다. 영암사지도 그러한 전철을 밟은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영암사의 건물터를 보면 기존의 신라시대 절터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사적지 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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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재로 찾아가다 담은 사진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개요.

 

합천땅에는 북으로는 국립공원 가야산과 서로는 군립 공원 황매산을 품고 있다. 두산의 공통된 특징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야산 정상의 바위가 불꽃같다 하여 석화성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산청군과 경계한 황매산은 남으로 능선을 길게 뻗어 모산재와 감암산 그리고 부암산을 솟구치며 기암 전시장으로 전국의 산꾼을 불러 모우는데 손색이 없다. 황매산은 봄의 철쭉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붉은 듯 누런 황색을 띠고 있다. 산세 또한 매화낙지형이라 황매산이라 부른다.

 



 

모산재 암릉의 모습

 

 

모산재와 황매산 등산로 안내판

 

 


 

 

모산재 식당앞 삼거리

 

 

감암버스정류장. 대중교통 이용시 이곳에서 하차.

 

 







모산재로 오르는 산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의 유래.

 

 

황매산과 이웃한 모산재는 하나의 바위로 된 암봉이다. 모산재의 뜻은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돛대바위 위에 천하 명당이 있어 무지개가 항상 피어 오른다며 무지개터로 불린다. 무지개터 앞에 용마바위가 있고 이곳은 비룡상천형의 명당터라 이곳에다 묘를 쓰면 본인 집안은 자손만대에 부귀와 권세를 누리지만 산 아래 마을에는 가뭄과 흉년등 갖은 질병으로 인해 마을에서 묘를 사용할 수 없도록 이곳에다 흙을 파 웅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모산재는 유래한다. 못이 있다는 산으로 못산 또는 못재로 불렸다. 지금도 이곳에는 그 때의 흔적인 웅덩이가 잡초에 덮혀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어원이 모산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로 합천군의 설명이며 또는 모산의 의미는 '띠의 산'을 말한다. 띠는 잔디 보다 키가 크서 옛날에 농가에서 띠잎으로 도롱이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사용 하였다. 띠는 풀중에 가장 순결한 풀이다. 모산은 순결한 산을 의미하며 정상부근에 순결바위가 있음이 우연이 아니다(가회면의 홈페이지). 마을에서는 잣골덤 또는 신령스러운 산이라하여 영암산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아래 영암사지에서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모산재는 합천8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명산이다.

 

 

 

산행리본이 장식을 하고 있다.

 

 

모산재 오르는 길. 서서히 바위가 나타난다.

 

 

 

 

모산재는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인파로 붐빈다.

 

 

모산재의 바위 군상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 경로

 

 

모산재 산행 경로는 정상까지 한번 치받아 오르다가 바로 하산을 하는 코스지만 산행시간에 비해 많은 체력을 요한다. 산행은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을 출발한다. 감암(감바위)마을~황룡사 갈림길~모산재 등산로 입구~ 돛대바위~무지개터~황매산·모산재 갈림길~모산재 정상~암릉~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영암사지를 거쳐 모산재 승용차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산행거리는 6km 산행 시간은2시간30분이며 휴식과 전망이 좋은 암산이라 4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모산재를 오르다 본 염암사와 영암사지.

 

 

 

 

 

 

 

 

 

 

직립하다 싶이 선 나무계단. 이곳을 올라서면 돛대바위.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산행은  감암마을에서 시작.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모산재 (승용차)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 밑 도로에서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모산재식당 앞에서 왼쪽으로 갈라지는 영암사지 가는 길로 들어선다. 입구에 이정표(모산재 1.7㎞, 영암사지 0.6㎞)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버스를 타고 오면 이곳 감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좁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 마을을 지나면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길게 누운 하나의 암릉과 마주 보게 된다. 그야 말로 바위 절벽으로 입이 쩍 벌어진다. 5분이면 왼쪽으로 황룡사 갈림길이 나오면 직진이다. 곧 작은 계곡을 만나고 이곳에 이정표(모산재 1.3㎞)가 서있다. 본격적인 모산재 등산로 들머리다. 계곡을 끼고 오르면 이내 마사토의 산길로 접어든다.

 

 

 

모산재의 비경 돛대바위.

 

 

모산재 정상을 거쳐 하산길 능선도 암릉으로 이어진다.

 

 

 

 

 

 

돛대바위 뒤로 보이는 허굴산의 모습.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왼쪽 오독한 봉우리가 부암산.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가 들머리에서 보여.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눈을 들어 까마득한 바위위에 날아 갈듯 한 돛대바위가  보인다. 사각 표지목인 '모산재 1.1km 이정표를 지나며 서서히 바윗길을 타고 오른다. 황룡사에서 올라오는 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세운 철망 담장에 산행 리본이 엄청 달려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뒤돌아보면 전망이 트인다. 발아래 대기 저수지와 자굴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사길이라 그런지 미끄러워 바위에 발을 놓을때 마다 주위를 해야한다. 아님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이정표(모산재 0.8㎞)를 지나면서 바위를 밟고 산행이 시작된다. 그야말로 바위를 탄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로프를 잡기도하고 또는 바위를 잡기도하며 올라야 한다. 그만큼 체력 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복병은 암반이라 전망은 너무 좋은데 반해 햇볕이 내려쬐어 그늘를 피할 만한 곳이 없다.

 

 

 

천하명당의 무지개터

 

 

모산재 정상으로 이어지는 숲길.

 

 

모산재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돛대바위. 모산재 산행의 올라온 산길이 다 들어난다.

 

 

모산재 하산은 암릉을 타고 내려간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돛대바위 전망 탁월.

 

 

'모산재 0.6㎞' 이정표를 지나면 거의 수직으로 선 듯한 급경사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이곳을 올라서면 모산재의 명물 돛대바위와 만난다. 모산재의 바람을 받아 순풍하는 돛단배의 돛대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곳은 거대한 하나의 암반이다. 풍수학자들은 이곳을 전국에서 최고로 꼽는 생기의 장이라 부르고 있다. 돛대바위를 돌아가면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낮은 산들 뒤로 대암산에서 태백산으로 잇는 대병면의 산들이 펼쳐지며 왼쪽으로 속이 비었다는 허굴산과 금성산 의룡산 악견산등 합천의 삼산이 합천호를 두고 솟아 있다. 돛대바위 건너편 능선은 모산재 정상에서 하산하는 암릉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이 만리장성 같은 모습으로 내려간다.

 

 

 

 

 

 

 

 

 

 

황매산의 모습.

 

 

 

 

모산재 암릉에 올라선 바위. 마치 두부를 자른듯 틈이 벌어져 있다.

 

 

바위틈을 빠져 나가고 있다.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철쭉 명산 황매산과 마주보고 있다.

 

 

돛대바위에서 150m 정도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나무 그늘이 나오고 평탄한 바위와 만난다.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무지개터 안내판 뒤로 뻗은 능선이 감암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고 뒤로 정수산과 둔철산 그리고 지리산 웅석봉이 아스라이 솟아 있다. 이정표(모산재 0.3㎞)에서 오른쪽 숲에 무지개터로 불리는 작은 웅덩이가 있다. 천하제일의 명당터로 모산재의 유래를 만들었다. 이곳부터 황매산 갈림길까지 잠시 숲속의 산길을 따라간다. 능선을 바꾸어 타는 지점으로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다. 왼쪽은 황매산 정상(4.0㎞) 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곧 모산재 정상이다. 정상도 하나의 커다란 암반으로 돌탑이 서 있고 마주보며 바위위에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바위 틈을 빠져나가면 천길 단애. 간담이 녹아 내린다.

 

 

모산재를 내려오며 뒤돌아 본 암릉.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순결바위.단정치 못한 사람은 바져 나올 수 없다는 전설의 바위.

 

 



 

 

국사당. 태조 이성계의 왕위 등극을 위한 제단.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최대 볼거리 암릉과 순결바위.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든다. 직진하여 내려서면 숲속으로 들어간다. 급하게 내려가면 벼랑 위 전망대가 나온다. 발아래는 끝이 보이질 않을 절벽으로 간담이 써늘하다. 돛대바위에서 보면 툭 불거진 바위로 보이는 곳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암릉으로 햇볕을 맞으며 걸어야 한다. 오른쪽은 천길 낭떨어지며 국내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특이한 느낌을 준다. '영암사지 1.2㎞' 이정표를 지나면 더욱 거대한 암릉이 펼쳐지고 곧 두 개의 바위가 두부를 쪼개 놓은 듯 암릉에 올려져 있는 곳을 지난다. 흡사 제2의 순결바위처럼 보이는 곳으로 한사람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 틈이다. 이곳을 나가보면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 해진다. 잠시 뒤 순결바위 이정표를 만나고 오른쪽 끝에 순결바위가 있다. 사생활이 물란한 사람이 갈라진 바위틈에 들어가면 바위가 오무러들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영암사. 암릉으로 병풍을 두른 모산재 능선

 

 

영암사지.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하산 후 만나는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이 예술.

 

 

이곳에서 모산재의 암릉이 끝나고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산길이 이어진다. 철 난간과 나무계단을 10여분 내려서면 곧 국사당이다. 태조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기도를 올렸다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숲 그늘로 완만한 내리막을 걷는다. 간이매점을 지나면 곧 영암사다. 영암사를 지나면 사적 제131호 영암사지와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쌍사자 석등은 유홍준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6권의 표지모델로 유명하다. 이곳을 지나면 곧 올라갈 때 지났던 모산재 등산로 입구 삼거리다. 10여분이면 다시 모산재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영암사지를 지키는 600년된 느티나무

 

 

영암사지의 쌍사자석등.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

 

 

 

 

☞(경남여행/합천여행)합천 모산재. 암릉 산행 모산재 교통편.

 

 

대중교통편은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합천행 버스를 타고 삼가에서 내린다.7시(첫차), 7시40분, 8시30분, 9시20분 등에 있다. 삼가에서는 오전 8시40분, 9시50분,에 덕만행 군내버스를 타고 감암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하루 4회 운행으로 이 버스를 놓치면 삼가 동성택시 (055)932-4656을 이용해야 한다. 산행을 끝낸 후 덕만에서 삼가로 나오는 버스는 오후 3시10분, 5시25분에 있다. 감암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 삼가에서는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오후 3시50분, 4시20분, 4시50분, 5시30분, 6시20분, 7시20분(막차)에 있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7시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합천의 모산재 산행은 대중 교통편은 시간 맞추기가 아슬아슬하여 원점회귀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더욱 편리하다. 남해고속도로 군북IC에서 내려 의령을 지나 20번 도로를 타고 간다. 대의면 소재지에서 합천 방면 33번 도로를 탄다. 다시 삼가면 소재지에서 60번 도로를 타고 가회면 소재지를 지나면 곧 대기마을을 거쳐 모산재 주차장에 닿는다.

 

모산재 고도표

 

 

 

모산재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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