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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독락당과 정혜사지13층석탑 겨울여행지로 다녀 왔습니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항상 가슴 설레 게 합니다. 사계절 여행을 꿈꾸며 떠나 갈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봄에 찾는 느낌 여름에 찾아 가는 느낌, 가을에 보는 느낌, 그리고 겨울의 여행지는 어떠합니따. 이 모두 계절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자신만의 색으로 뽐내고 있습니다. 겨울여행지로는 쓸쓸하다고 하는 경주 안강으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안강은 양동마을과 함께 회재 이언적의 유적지가 많이 전하고 있습니다.

 

 

 

 

경주 안강하고도 옥산 골짜기에는 한겨울의 삭풍 때문인지 어실어실 한 느낌입니다. 먼저 독락당을 찾아갔습니다. 지난해 여름인 7월에도 이곳 독락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독락당은 어찌 찾아 갈 때마다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하는지 작년 7월에도 문화재 보수를 한다며 출입을 할 수 없어 옆 계곡에서 독락당 최고의 비경인 계정만 보고 돌아 갔습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독락당과 정혜사지13층석탑. 독락당과 계정 보수를 끝내고 산뜻한 모습입니다.

 

이번 겨울에 찾은 독락당은 다행히 보수공사가 없어 내삼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조선 양반가옥의 전형인 솟을 대문이 그 당시 양반가의 위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면으로 길게 이어진 건물이 먼저 눈에 보입니다. 처마 밑에 경청재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1538년(중종33년) 3월에 청백리에 가자되어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하여 그의 후손들이 경청재로 이름을 붙였다합니다.

 

 

 

 

본 고택은 1601년(선조34년)3월12일 회재 이언적의 손자 휘, 준과 순 형제가 독락당과 계정이 있는 옥산 별업을 받들어 지키기 위해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집입니다.

 



 

 

 

 

 

‘화의문약설’에는 선조인 회재 이언적의 별서인 독락당과 계정을 보호하고 보수 유지함에 있어 회재 이언적의 후손들이 약간의 토지를 내 놓아 그 뒤에 후손들 중 궁핍하여 이 토지로 인해 다투는 일은 선조에 대한 불효로 간주한다는 내용입니다. 독락당은 옥산 정사로도 불리며 동방오현의 한분인 회재 이언적이 만년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을 하여 지은 사랑채 건물입니다.

 

 

 

 

현재 이곳 여강이씨종택인 독락당은 경청재이외에는 사실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알림’을 보면은 “이 고택은 회재 이언적선생의 아들 잠계공 이전인의 후손이 살고 있는 종택이므로 본 종가에 특별한 문의외 출입을 금지합니다”란 안내판을 보고는 도저히 들어가 볼 수 없었습니다. 내 만족을 위해 여기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사생활을 침해 할 수 가 없기 때문에 아쉽지만 참아야 하겠습니다.

 

 

 

 

 

 

 

 

독락당의 여강이씨 종택은 흙 담장이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흙사이에 기와(?)가 박혀 있는 흙담장으로 인해 독락당은 더욱 무게가 느껴집니다. 작년의 복원 공사로 인해 써까레와 흙담장등이 아름답게 바뀐 모습입니다. 경청재 현판을 보고 아래채와의 사이에 있는 작은 문이 자계천으로 나가는 골목길입니다. 좌우측의 아름다운 토담으로 된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중간쯤에 산청의 남사마을을 대표하는 크로스 나무는 아니지만 이 골목에도 비스틈한 고목이 걸쳐져 있습니다. 현재 자계천에는 지난해 떨어진 낙엽이 물위에 널 부러져 있습니다. 회재선생이 이 모습을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계곡에 몸을 담그듯이 쌓아 올린 독특한 계정은 아궁이가 자계천쪽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궁이도 사람의 허리쯤 높이에 걸려 있습니다.

 

 

 

 

 

 

 

 

널다란 자연석 암반위에 쌓아올린 돌로 2층 누각을 만든 것이 우리 선조님들의 풍류를 알 수 있습니다. 계곡과 정말 잘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독락당은 1516년(조선 중종11년)에 정면4칸에 측면2칸의 여덟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중간에 대청을 넣었는데 정면3칸 측면2칸이고 그 좌우에 정면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만들었습니다.

 

 

 

 

대청에 앉아 자계천을 볼 수 있게 독락당 옆 담장에 나무로 문살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계정은 1533년 완공되었는데 계정안쪽에 걸린 현판에 양진암이란 필체가 눈길을 끔니다. 퇴계 이황의 필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내삼문의 입구로 다시 나가면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13층 석탑을 찾아 갑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독락당과 정혜사지13층석탑. 국내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정혜사지 13층 석탑 보고 왔습니다. .

주차장에서 장산서원 표지석을 보고 따라가면 됩니다. 독락당을 왼쪽으로 돌아가면 독락당과 계정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종택 뒤편으로는 큰 고목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령이 수백년은 됨직한 나무를 지나면 왼쪽으로 미려한 모습의 큰 석탑을 만나게 됩니다. 통일 신라시대 9세기 작품이며 정혜사 터에 세워져 있습니다.

 

 

 

 

창건연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동경통지'의 기록에 보면은 신라성덕왕 원년에 당나라 백우경이란 분이 자옥산 아래에다 영월당과 만세암을 세운 후 그 뒤에 절을 세우고 정혜사라 하였다합니다. 정혜사지13층 석탑은 흙으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십삼층의 몸돌을 세운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다시 걸음을 돌려 다음 여행지인 회재 이언적의 옥산서원과 세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겨울 여행지로서도  독락당과 자계천변의 계정 그리고 정혜사지13층 석탑이 손색이 없습니다. 

 

 

 

 

 

 

 

 

 

 

2013/06/24 - (경북여행/경주여행)정혜사지13층석탑. 국보 40호인 통일신라시대 9세기 작품의 정혜사지십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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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모습.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손종로의 호에서 따와...


낙선당은 손소의 셋째 아들인 만재 손숙돈이 분가 할 때 지은 건물로 낙선당은 병자호란때 순절한 손종로(1598~1636)의 호에서 따 왔다. 





낙선당의 입구. 처음 보이는 건물이 대문채.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천석꾼의 집을 말해주듯 곳간을 많이 두고 있다.


낙선당의 가옥 주인은 천석꾼으로 알려져 있어선지 나락을 보관하는 곳간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디딜방아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안에서 본 대문채.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1540년대 건물이라지만...


낙선당은 1540년대 건물이라지만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구조를 보면 대문채 사랑채 안채로 나누며 중문채와 함께 'ㅁ'의 형태지만 조금은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낙선당 편액.



☞(경북여행/경주여행/양동마을)양동마을 낙선당. 낙선당은 건물 형태는....


서백당 뒤로 비탈진 오르막을 오르면 만나는 낙선당은 먼저 대문채와 만난다. 대문을 통할 수 없고 오른쪽으로 들어서서 안에서 대문채를 보면 정면3칸에 옆면 1칸으로 중간에 출입구인 대문을 두고 왼쪽에는 행랑채를 달고 오른쪽은 마굿간을 두었다. 



대문채와 곳간채.




행랑채 오른쪽으로 4칸의 곳간채 건물에 방을 한칸 넣었고 대문채를 마주보며 사랑채를 지었다. 사랑채는 중문채와 연결 되는 것 같이 한일(一)자 형으로 길게 이어져 있지만 안채와 서로 연결 된다. 



중문채로 7칸.



정면 4칸에 옆면 1칸의 사랑채는 왼편에 2칸의 대청을 넣었고 오른쪽으로 사랑방을 2칸 넣어 방을 만들었다. 그 옆 중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중문채를 통해 들어가면 안채.




중문채는 모두 7칸으로 긴 형태의 건물이다. 중간에 1칸의 중문이 있고 왼편에 2칸은 방이며 나머지는 모두 나락을 보관하는 창고를 만들었다. 현재 안채는 아직도 손종로의 후손이 이곳에 거처를 하고 있어 들어 가 볼 수 없다.






낙선당의 모습과 이곳 안채 사랑채등을 자세히 보면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기단에 비해 매우 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양동마을의 양반가옥중에서는 가장 낮은 축대가 아닌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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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경주의 대표적인 양반고을은 현재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유네스코에 지정된 양동마을이다. 이곳 경주 양동 마을은 조선시대 초기의 양반가의 내력을 볼 수 있는데 혼인과 함게 처가에 들어와 살았던 풍습이 있었는 것 같다. 어 그럼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처가와 똥간은 멀리 있는게 좋다는 말이...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안동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인 하회마을 보다 150년이 바른 이곳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의 손소가 이곳으로 들어게 되고 그 뒤에는 여강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를 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이곳 양동마을은 천하의 길지라 3명의 인물을 배출된다고 한다. 월성손씨는 청백리로 불리는 우재 손중돈을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출하였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옥산서원 진입로 울창한 숲길.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는 회재 이언적선생의 고향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그의 사후인 선조 5년인 1572년에 경주부윤의 이제민이 지방 유림들과 함께 세웠다. 옥산서원 입구에서 150m의 진입로는 자계천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이 숲길을 이루어 햇볕 한 점 들어올 틈이 없다. 시냇물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이곳 옥산서원은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을 것 같은 곳이다.

 

 

 

현재 공사중인 옥산서원 전시관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옥산서원 정문의 역락문 뜻은...

 

 

먼저 정문에는 ‘역락문(亦樂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는 논어의 학이편에서 '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아(有朋而自遠方來 不亦樂乎)'에서 따왔다한다. 그 뜻은 서원을 찾는 손님에게 더 없이 정답고 편안하다는 의미로 당대의 명필가 한석봉의 필체라 한다. 또한 유생들의 휴식장소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의 필체도 한석봉의 글씨이다. 구인당의 맞은 편에 흰바탕에 검은 글씨인 옥산서원의 현판 글씨 또한 추사 김정희의 필체이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한석봉과 김정희 현판 글씨.

 

 

또 다른 옥산서원의 현판은 아산 이산해선생의 필체다. 이곳 옥산서원은 규모면에서는 작은 서원이지만 당대의 명필가들의 필체가 서원의 여러 곳에 현재에도 남아 있어 회재 이언적 선생이 당대에 어떠한 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경북여행/경주여행)안강 옥산서원. 동방5현의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옥산서원. 세심정에서 마음을 씻다.

 

 

옥산서원을 나와 회재 이언적선생의 사랑방이었던 독락당을 가기위해서는 도덕산과 봉좌산 그리고 어래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모여드는 자계천을 건너야 한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자계천에는 작은 폭포를 이루고 ‘ㄷ’ 모양의 소는 금방 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스산한 느낌이다. 회재이언적은 이곳에서 매일 얼굴만 세수 한 것이 아니고 마음도 딱 고 씻었다 한다. 지금도 암반에 ‘세심정’이란 글귀가 뚜렷하다.

 

 

현판의 역락문은 한석봉의 글씨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이신도비는 1577년 대학자 회재 이언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호남 거유 고봉 기대승이 짓고 아계 이산해가 썼다.

 

 

 

 

한석봉의 글씨

 

 

추사 김정희의 글씨

 

 

 

 

 

 

 

 

 

 

 

 

바위에 새겨진 세심정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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