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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맛집)담백한 게 끝내주는 맛, 국산 콩 100%로 만든다는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

 

방가방가

이번 포스팅은 안동의 순두부 전문점인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입니다.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 주:경북 안동시 안막동 866번지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 전화번호:054-853-3178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 휴무일:월요일

 

2022.08.31 -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관창폭포 (경북봉화여행)미슐랭그린가이드에서 별점 1개를 받은 길, 봉화 낙동강 예던길 걷기 미슐랭의 미식 가이드북에서 우리나라 레스토랑을 소개해 별점을 줬다면 모두 ‘엄지 척’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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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봉화 낙동강시발점에서 청량산 입구인 청량교까지 낙동강 예던길을 걸었습니다.

둘레길을 걷고는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청량산 상가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런데 늦은 시간도 아닌데도 일찍 문을 닫은 데다 혼자서 먹을 식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산 방향인 안동으로 가다 먹을 곳을 찾아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도산서원 맛집이자 청량산 맛집, 35번 국도 맛집인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입니다. 

안동 가마솥손두부전문점은 국산 콩으로 직접 집에서 만든 다해 더욱 믿음이 가는 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메뉴판 전부가 콩에 관계가 되는 음식입니다. 

두부 버섯전골 두부조림 순두부찌개  들깨 순두부 청국장 순두부 청국장 등입니다.

이 중에서 필자는 순두부찌개를 주문했습니다. 

집에서 만든 순두부라서 그런지 담백한 게 정말 맛도 괜찮았습니다. 

순두부 국물까지 밥을 말아 후루루 다먹었는데 ㅎㅎ

배가 빵빵한게 부산까지 돌아갈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너무 맛있어 전부 다 먹다 보니 ㅎㅎ 배가 불러

혹시 운전을 하고 가다 자면 어잖아 싶었습니다. ㅋㅋ

맛있게 먹고 운전해 부산으로 무사히 내려왔는데

이 맛집 포스팅을 하면서 삼삼한 순두부 맛에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필자는 안동과 청량산으로 여행 산행을 자주 가는데

다음에 꼭 다시 찾아 그때는 다른 콩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담백한 순두부와  정갈한 밑반찬이 맛있는 안동 가마솥 손두부 전문점입니다.  

 

2021.11.29 - (경북봉화여행)계절을 따지지 않는 명산 봉화 청량산을 오르다. 봉화 청량산

 

(경북봉화여행)계절을 따지지 않는 명산 봉화 청량산을 오르다. 봉화 청량산

(경북여행/봉화여행)계절을 따지지 않는 명산 봉화 청량산을 오르다. 봉화 청량산 장인(匠人)은 자신이 쓰는 장비를 탓하지 않듯이, 산은 계절을 따지지 않아야 명산입니다. 그런 산이 경북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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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서애 류성룡의 병산서원 여행. 병산서원


안동 풍천면 하회마을 뒷산인 화산과 서애 류성룡의 본가가 있는 하회마을에서 서애 류성룡선생이 병산서원을 오가며 낙동강을 끼고 걸었을 선비길을 다녀왔습니다. 

선비길 입구에 병산서원이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안동 병산서원 주소:경산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안동 병산서원 전화:054-858-5929

사적 제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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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영의정과 도체찰사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임진왜란이 끝나자 임란(1592~1598) 당시의 기록을 남겼는데 이게 ‘징비록’입니다. 

징비록은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 임진란의 전반을 수기한 사료로 현재 국보 제132호에 지정했습니다.

 

복례문


서애선생을 배향한 병산서원의 방문은 더욱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병산서원은 도동서원·도산서원·소수서원·옥산서원과 함께 조선시대 5대 서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성 때문인지 병산서원을 보는 내내 외적인 화려함 보다는 고고한 소나무처럼 선생의 우국충정을 서원의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며 고려 때부터 존재했던 사립기관입니다. 

류성룡선생이 1572년(선조5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겨 왔으며 그 뒤 1607년 선생이 타계하자 지역유림들에 의해 1613년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이듬해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병산서원에는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병산서원은 1863년인 철종 14년에 ‘병산’이란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한곳입니다. 

병산서원도 일반 서원과 마찬가지로 강학공간을 앞에 두고 배향공간인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양식을 따랐습니다.

 

광영지


이와 함께 서원은 강학과 제향 공간, 그리고 부속건물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유생의 강학 건물은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이라면 제향건물은 내삼문, 존덕사, 전사청이 있으며 병산서원을 관리하는 부속건물로는 고직사, 뒷간, 광영지 등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병산서원의 주 출입구는 솟을 대문인 북례문입니다. 

‘복례’는 논어의 『극기복례위인』에서 따왔으며 “자기를 낮추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라는 공자의 가르침인 자기절제의 정신을 함축해 놓았습니다. 

최초의 복례문은 만대루 동편에 있었다고 하며 낙동강 건너 험준한 산세인 병산의 지세를 피하려는 풍수지리에 따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습니다. 

솟을 삼문인데 특이하게 좌우는 벽체로 막았으며 가운데 칸만 판문을 달았습니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만대루와 사이에 작은 연못인 광영지가 왼쪽에 자리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 정원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게 연못인데 서원에서는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병산서원에는 작은 규모지만 연못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연못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작아보였으며 그 규모는 많이 축소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작은 연못이지만 많은 뜻이 있습니다. 

연못은 사각모양인데 이는 땅을 의미하며 연못 가운데 섬은 둥글며 이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글 읽던 유생들이 이곳에 나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닦아 학문에 정진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게 만대루입니다. 

강당인 입교당과 마주한 건물로 2층의 누각형태로 병산서원에서 가장 웅장하며 분위기 있는 건축물로 서원의 대표건물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앞면 7칸, 옆면 2칸의 건물이며 병산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조형미를 가진 건축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인지 만대루를 보면 무채색의 웅장함이 가슴을 팍팍하게 만듭니다.

 


‘만대’는 당나라 시인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인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왔습니다. 

그 뜻을 보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하고, 흰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이 즐기기 좋구나”를 뜻합니다. 

저녁무렵 팔작기와지붕에 홑처마 건물로 된 누마루에 올라서면 낙동강에 비친 병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폭의 수채와 같은 선경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입교당은 병산서원의 중심건물인 강당이며 숭교당 또는 명륜당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가르침을 바로세운다”는 뜻인 입교당은 앞면 5칸에 옆면 2칸인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5량가건물로 유생들의 강학장소였습니다. 

가운데 3칸은 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경의재, 오른쪽은 명성재인 1칸 온돌방을 각각 넣었습니다.

 



명성재는 서원의 원장이 머물렀으며 경의재는 교무실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에 마당을 두고 좌우에 건물은 동·서재이며 유생들이 머물던 기숙사로 사용한 공간입니다.

 











장판각

입교당 뒤 존덕사 왼쪽에 책을 찍을 때 사용했던 목판 유물을 보관하던 장판각 건물이 있습니다. 

서원에서 강당건물과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이 추모공간인 존덕사입니다. 

존덕사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만나지만,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아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잠금 된 상태입니다.



존덕사 내삼문

서애 류성룡선생과 수암 류진선생의 위패를 모셨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인 익공양식의 겹처마로 옆면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전사청





병산서원에서 가장 특별하게 보인 곳이 뒷간입니다. 

뒷간이라 하면은 화장실을 말하는데 흙담장을 마치 달팽이형태로 말 듯이 쌓아 여러 서원을 여행했지만 이런 형태의 화장실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 화장실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머슴)이 사용했다고 하며 하늘을 지붕 삼았으며 400여 년 전에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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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맛집/안동맛집)천봉산맛집 안동봉정사맛집 황토집 손두부


요즘 뜨거운 여행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7곳의 사찰입니다. 

통도사, 부석사, 대흥사, 마곡사, 선암사, 봉정사이며 개인적으로 모두 여행하고 왔습니다.




안동봉정사맛집 안동천봉산맛집 황토집손두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5-3

안동봉정사맛집 안동천봉산맛집 황토집손두부 전화:054-855-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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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가장 규모가 적은 사찰이면서 가장 여러 국가 문화재를 보유한 안동 봉정사를 다시 찾아 답사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찾는 듯 보였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출발하여 느긋하게 둘러볼 요령으로 봉정사를 도착하니 점심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요기 할 곳을 찾았습니다.




맛집을 찾으면서 눈에 들어왔던 곳이 안동 봉정사 주차장 인근에 있는 면서기 추천 맛집 “황토집 손두부”였습니다. 

안동시장도 아니고 면서기 추천 단골 맛집이라 하여 소박한 게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손두부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황토집에 손두부라 두말없이 식당을 찾았습니다. 

옛날 집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조금만 리몰리딩하여 옛집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주차장도 넓고 해서 주차하기도 정말 편했습니다. 

그리고 메뉴도 토종이 느껴지는게 구수한 맛인 두부요리에다 보리밥과 해물파전 전문점입니다.



‘자연을 담은 건강한 밥상’이라는 모토로 천봉산 아래에 자리한 황토집 손두부에서 두부전골을 먹기로했습니다. 

송이버섯과 일반 버섯 두부전골 중에서 '버섯이 다 똑 같은 버섯'이지 마음의 위로를 하면서 쪼끔 저렴한 버섯 두부전골로 주문했습니다.




역시 야외 나오면 가장 멋진 메뉴가 아닌가 싶습니다. 

버섯두부전골이 정말 푸짐해 보였습니다. 

꼭 한방 버섯전골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겼지만, 밑반찬 하나하나 모두 시골의 정취가 푸짐하게 느껴졌습니다.

 


오이무침, 가지, 콩나물, 도라지, 고추 튀김 등 고향 마루에 퍼질러 앉아 먹는 그런 느낌의 밑반찬을 보면서 두부전골이 빨리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두부전골이 팔팔 끓기 시작했습니다.



어서 빨리 작은 그릇에 덜어내어 육수 맛을 보았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맛으로 전해오면서 안동의 맛을 그대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천년고찰 봉정사 여행을 앞두고 먹는 황토집 손두부 버섯두부전골도 정말 괜찮았습니다.





봉정사 맛집인 황토집 손두부였습니다.

 






안동 천봉산 맛집 안동 봉정사 맛집이자 면서기가 추천하는 단골맛집 황토집 손두부 054-855-3263




안동 황토집 손두부에서 맛있게 먹었다면 주위 가볼만한 여행지로는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봉정사 영산암, 안동 천봉산 개목사, 안동 명옥대, 학봉김성일 생가, 안동 음식디미방의 장계향 생가인 장흥효 경당고택 등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안동 천봉산 봉정사



안동 천봉산 봉정사 극락전




안동 천봉산  봉정사 대웅전



안동 천봉산 봉정사 전경



안동 천봉산 봉정사 영산암


안동 명옥대



안동 천봉산 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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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댐 월영교 안동석빙고 월영대 안동선성현객사 안동민속박물관 여행


안동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점심은 안동댐의 월영교 앞 광장 건너편에서 헛제삿밥이나 안동 간고등어 등을 맛있게 먹고는 먼발치에서 안동댐을 가로지르는 목책으로 만든 월영교를 눈으로만 보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번 안동여행에서는 일행이 월영교 건너편에 안동댐을 건설하면서 수몰 위기에 처한 여러 문화재를 옮겨놓았는데 그중에는 안동석빙고도 있다고 했습니다.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784-1

안동시립민속박물관 전화:054-821-0649

안동 월영교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상아동 569

안동 월영교 전화:054-856-3013




2018/09/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석빙고. 월영대의 안동 석빙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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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 (안동여행)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남한에 6개 있는 석빙고 중 아직 찾지 않은 안동 석빙고를 꼭 만나서 북한 해주에 있는 석빙고를 제외하고 모두 찾아보는 계획을 마무리해야겠다며 헛제삿밥으로 저녁을 먹고 안동댐의 월영교을 보려고 출발했습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저녁 시간인데도 해가 길어 대낮같이 밝아 저녁 먹은걸 아주 무색하게 했습니다.





월영교에 들어서는 입구에 자연석 돌에다 월영교라 음각되어 있습니다. 

월영교는 안동시 상아동의 안동물박물관과 성곡동 안동댐 민속경관지를 연결하는 목책인도교인데 목책인도교로서는 우리나라 최장의 다리라 합니다. 

길이가 387m이며 폭은 3.6m로 주민의 공모를 통해서 이름이 정해졌으며 인근의 월영대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월영대란 ‘달이 비치는 대’를 뜻합니다. 

그만큼 안동에는 달과 연관된 이야기나 지명이 많습니다. 

안동댐 수몰 이전인 월곡면 사월동의 월곡면사무소 뒷산에 정자인 금하재와 자연석을 다듬어 월영대(月映臺) 글자가 새겨져 있던 돌을 1974년 이곳 월영교가 있는 성곡동 산비탈에 석빙고와 선성현 객사 가운데로 옮겨 세웠습니다.

 


그만큼 월영교에서 만나는 저녁 야경이 장관이라 합니다. 

날은 아직도 대낮같이 훤하여 월영교 여행을 하고 다음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달이 떠오를 때 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월영교의 달 구경과 야경은 다음 안동 여행으로 미루며 월영교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많은 주민과 관광객이 월영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위쪽에 많이 비가 왔는지 강물은 황토물을 토해내었습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나룻배 같은데 나룻배가 아닌 유람선이 월영교 아래를 유영하며 흘러갔습니다. 

월영교 중간에 정자는 조선시대 같으면 안동의 선비들이 시문을 나누며 꽃놀이를 즐겼을 월영정입니다.

 


중후한 멋은 없지만 날렵해 보이며 곡선의 처마선에서 안동 선비의 유유자적한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안동석빙고를 만나러 월영교를 건넜습니다. 

안동석빙고는 오른쪽입니다. 

곧 산비탈로 난 산길을 올랐습니다. 

이곳에는 낙동강 가에 있던 안동석빙고를 안동댐 수몰로 이곳에다 옮겨 복원했습니다.



안동석빙고는 현재 내부 관람은 목책으로 막아 놓아 볼수 없으며 입구에서 내부를 확인하며 아쉬움을 달래었습니다. 

빙실의 높이는 5.4m, 길이는 12.5m, 너비 6.1m 크기로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강줄기를 향해 남북으로 경사지게 만들었습니다. 

입구는 북쪽에다 옆을 보고 내었습니다.

 


빙실 내부 바닥은 평평한 장방형의 돌을 깔았으며 강쪽으로 바닥을 경사지게 배수로를 만들어 물이 잘 빠지도록 했습니다. 

빙실의 천장은 돌을 짜맞춘 4개의 홍예를 걸쳤으며 그 사이를 장대석으로 천장을 막았습니다. 

천장에는 빙실 온도조절용으로 3개의 환기구멍을 내었습니다.



안동석빙고는 예안읍지에 이매신이 1737년에서 1740년까지 현감으로 재임하며 사재를 내어 축조하고 매년 수리하였습니다. 

안동석빙고의 축조 배경을 보면 낙동강에 많이 잡히는 은어를 궁궐에 진상하기 위해 쌓았다고 합니다. 

이제 월영교의 이름을 낳은 월영대 글자가 음각된 바위를 만나러 갑니다.

 


월영대가 새겨진 바위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장방형의 바위로 83*47cm 크기에 글씨의 크기는 26cm 정도입니다. 

글씨는 선비의 풍류가 묻어나는 해서체로 쓰였으며 글을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은 알 수 없으나 금하재의 건립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월영대 표석이 있는 곳은 숲에 가려져 낙동강을 잘 볼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다시 인근에 선성현 객사를 찾았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에 지정되었으며 안동댐 건설로 1976년 도산면 서부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 세웠습니다.

 




선성현 객사는 1712년 조선 숙종 38년 예안현감 김성유가 개수한 한일(一)자형 건물로 조선시대 객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객사의 중앙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솟릏 건물에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였으며 양쪽의 객사는 모두 앞면 6칸, 옆면 3칸 대청에 1칸의 툇마루를 달았습니다.

 








객사의 용도는 사신이나 손님의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통문화체험장인 안동민속박물관을 보러 갔습니다. 

안동민속박물관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지역 문화재를 옮겨 복원했는데 그 넓이가 5만여 평입니다. 

박물관은 패스하고 안동민속박물관의 야외박물관만 관람했습니다.













초가집도 있고 종택으로 보이는 큰 규모의 고택도 여러 채 복원되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먼저 박운숙 초가 겹집을 만났습니다. 

안동시 와룡면 가류동에서 안동댐 수몰로 옮겨온 농가 건물입니다.

 




본채와 별채로 구성되었으며 본채는 앞면 3칸, 옆면 2칸인 건물로 마루에서 생활이 이루어지는 겹집 계열 살림집입니다. 

경북 북부지역에서 많이 볼수 있는 형태로 현재 건물 같은 형태의 6칸 규모가 대부분이며 2칸 반 크기 별채는 헛간과 외양간이었으나 지금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장실은 전통민가 배치와 다른 게 집을 옮겨 지으면서 입구가 바뀐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반고택은 안동시 문화유산 제79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 고종 때 홍문관 교리를 지낸 남반 이만형(1825~?)의 옛집이며 택호는 교리택입니다.

 












출입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볼수 없었으나 안내판을 참고하면 진성이씨 집성촌인 도산면 의촌리(예안면 의인마을)에 있었으며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옮겨 왔습니다. 

남반고택은 북향집에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돌출되어있습니다.

 ‘ㅁ’ 자형에서 약간 벗어난 ‘巳’자형의 변형된 건물입니다.



 






크기는 앞면 5칸, 옆면 5칸에 돌출된 부분은 2칸 반입니다. 

대문채는 앞면 3칸. 옆면 1칸에 지붕은 초가를 올렸습니다. 

이원모와가는 안동시 문화유산 제80호. 부재와 건물 구성 형태를 보면 19세기 이후 건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예안면(지금은 도산면) 부포리에 있던 집을 안동댐 건설로 1976년 옮겨왔습니다.














정침과 고방채, 사당으로 구성하며 정침은 앞면 5칸, 옆면 5칸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와 ‘ㄴ’자 형태로 연결된 튼 ‘ㅁ’자형입니다. 

안동지역 주택의 특징인 안채가 사랑채보다 높은 축대에 세워 안채 용마루선이 사랑채보다 높아 보이는 건물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건축물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안동민속박물관을 돌아 월영교로 돌아 나오면 조선중기 죽은 남편을 위해 절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와 머리카락을 뽑아 미투리 한 켤레를 지어 남편의 관속에 넣은 지아비의 숭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원이엄마 안내판과 자물쇠 등 여러 조형물이 있습니다. 

월영교는 원이엄마의 숭고한 사랑을 담은 미투리 모양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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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몽실언니의 권정생선생이 머물렀던 집, 몽실언니의 권정생선생 생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의 봉정사 여행을 하려고 부산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부산에서 안동 여행하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가면 여러 곳을 여행하고 돌아볼 계획을 세웁니다.




몽실언니 작가 아동문학가 권정생 생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1




2018/08/28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영산암. 독특한 'ㅁ'자 건물 구조 영산암

2017/06/27 - (안동여행)이육사문학관.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의 청포도 이육사문학관 여행. 이육사문학관

2018/09/0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장씨 경당고택, 음식디미당 장계향의 출생지 안동 경당고택

2017/06/21 - (안동여행)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7 - (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이번에도 봉정사가 주목적이라면 부목적으로 학봉 김성일 종택과 음식디미방의 저자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이 태어났던 경당고택, 개목사, 안동댐과 석빙고를 보고 부산으로 돌아오면서 일직면 조탑리오층모전석탑과 소호헌을 돌아보는 계획을 짰습니다. 

모든 일정은 순조롭게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이제 안동 여행의 막바지로 조탑리오층모전석탑과 소호헌만 남아 남안동 요금소 방향으로 출발했습니다. 

조탑리에 다다라 오층모전석탑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층 높이쯤 되면 멀리서도 보여야 하는데 모전석탑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나 마을길을 들어서도 모전석탑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을 가운데 다다라 조탑리오층모전석탑 안내판이 나타났습니다. 

조탑리 오층모전석탑을 가르키는 방향을 보고는 ‘억’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해체 복원을 하는지 조탑리오층모전석탑에 가림막을 설치해놓아 외부에서는 모전석탑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번 여행에서 안동법흥사지칠층모전석탑 여행을 계획했다가 해체 복원으로 가림막을 해놓아 그때도 허탕치며 발걸음을 돌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안동여행을 하면서 법흥사지칠층모전석탑을 다시 찾았던 아픈 기억이 남아 있어 안동은 편치만은 않은 여행지인데 이번에도 또다시 조탑리오층모전석탑이 애를 먹이는 게 안동의 석탑여행은 저하고 잘 맞지 않는가 봅니다.



아쉬움을 달래며 있는데 동행한 부부가 “어!! 여기에 권정생 선생 생가가 있네” 했습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이라 하는데 저는 어떤 분인지 퍼뜩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누구지 하며 있는데 생가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함께한 부부에게 권정생이 누구고 하며 물어보았습니다.

 


일행이 “몽실언니 알지요” 하기에 “그래 알고 있다 하니까” 그 몽실언니 작가라고 했습니다. 

몽실언니가 워낙 유명하니까 작가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작가분이 권정생 선생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우리 문학에 문외한이다보니 그저 죄송합니다. 

이정표를 따라 차를 무작정 골목으로 끌고 갔습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좁은 농로 길을 따라갔습니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모퉁이를 돌자 외따로 떨어진 권정생 생가가 나타났습니다. 

주차할 때도 따로 없어 조탑리오층모전석탑 입구에다 주차하고 올 것을 하며 후회했습니다. 

그래도 통행이 잦지 않아 삼거리에 주차하고 권정생선생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몽실언니의 권정생 선생 생가라 하기에는 정말 초라했습니다. 

유행가 가사인 ‘초가삼간’의 그 대목이 딱 어울릴 듯했습니다.



부엌에 붙은 방 하나와 수풀에 시멘트블록으로 대충 쌓은 화장실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도둑이 들어도 가져 갈 것이 없어서 그런지 담장이 없었으며 출입구는 정해져 있었지만 여러 방향에서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마당의 빼꼼한 곳을 빼고는 모두 잡풀이 점령해서 그런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자유분방함이 있어 보였습니다.

 


선생은 자연 속에서 피고지는 온갖 꽃을 좋아해서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지냈는데 이는 자연을 사랑하는 권정생선생의 평소 생각이었다합니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으며 해방된 이듬해 귀국하여 1947년 12월에 조탑리에 들어왔습니다. 

1968년부터 일직교회 종지기를 하면서 문간방에 거쳐 하며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 등을 집필했습니다.



지금 이 집은 몽실언니의 인세비 등으로 지어졌으며 마을 청년들이 모두 거들어 집터를 고르고 벽돌을 쌓고 지붕은 슬레이트로 올려 그야말로 추위와 비바람만 피했을 듯 보였습니다. 

선생은 1983년 가을에 들어와서 2007년 돌아가실 때까지 생활했던 집으로 선생의 손때가 그대로 집안에 남아 있습니다.

 




저녁 해거름이면 집 뒤인 빌뱅이 언덕에 올라 노을 보는 것을 즐기고 좋아했습니다.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그려지는 이집에서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우리들의 하느님』 『랑랑별 때때롱』 등 아픈 몸이었지만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하다”며 통장에 있는 돈은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에게 보내라는 유언장을 섰습니다. 

안동여행을 계획한다면 어린이가 좋아했던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선생이 머물렀던 곳을 방문해보세요. 

몽실언니의 추억이 솔솔 되살아나는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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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장씨 경당고택, 음식디미방 장계향의 출생지 안동 경당고택


안동여행을 하면서 학봉 김성일의 고택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봉정사를 관람했습니다. 

그 가운데 점심을 먹기 전에 자투리 시간이 남아 서후면의 경당 고택도 둘러보았습니다. 

사실 경당 고택은 안동장씨 종갓집이라 하여 경당종택이라 부르는데 별생각 없이 둘러보았고 둘러보면서 수많은 고택 중 한 곳으로 치부했습니다.




고택체험 안동 경당고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64

고택체험 안동 경당고택 전화:054-852-2717




2018/08/28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영산암. 독특한 'ㅁ'자 건물 구조 영산암

2016/06/18 - (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그런데 블로그에 경당고택 포스팅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당고택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안동장씨 경당 장흥효(1564~1633)선생의 후손들이 생활하는 종갓집이었습니다. 

이 고택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한 정부인 장계향(1598~1680)이 태어났던 집임을 알았습니다.




장흥효의 무남독녀로 석계 이시명(1580~1674)과 혼인하여 여성 문장가로 이름을 더 높이며 안동의 신사임당이라 칭송받았던 분입니다. 

오래전 봉화여행에서 석계 이시명 선생의 영양 두들 마을을 찾아 음식디미방에 나온 만두 요리를 체험했던 적이 있는 저로서는 정부인 장계향이 태어난 경당고택은 아주 의미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경당종택은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가옥구조인 ‘ㅁ’자형 건물이며 남향을 보고 있습니다. 

50년 전쯤에 제월대와 광풍정이 있는 서후면 소재지의 봉파리에 있던 가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했으며 당시 그 규모대로 지어졌습니다.

 


종택은 살림집과 사당으로 구성되며 홑처마 팔작지붕에 앞면 6칸에 옆면 7칸인 기와 건물입니다. 

앞면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의 출입문이 달린 문간채와 사랑채가 붙어 있는 전체 6칸의 규모입니다. 

사랑채는 앞면과 옆면이 3칸이고 축대를 높이 쌓아 문간채보다 훨씬 높으며 그 위에다 기둥을 세우고 사랑채를 올렸습니다.






경당 장흥효는 학봉 김성일(1538~1593)의 문하에서 서예 류성룡(1542~1607)과 한강 정구(1543~1620)선생에게 학문을 배웠습니다. 

학봉 김성일, 서예 류성룡, 한강 정구 선생은 모두 퇴계 이황 선생의 수제자로 퇴계학통을 잇는 분이었으며 경당 선생은 이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생은 ‘경(敬)’자를 책상 위에 써 붙이고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호 또한 여기에서 따와 경당(敬堂)이라 했습니다. 

선생은 평생을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양성과 학문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그의 학문은 제자이자 사위인 이시명과 딸인 장계향 사이에서 태어난 갈암 이현일(1627~1704) 선생에게 전해져 수많은 제자와 문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이에 경당고택은 역사적으로 보면 안동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 퇴계학파를 이끌었던 영남 유학의 산실이자 영남학파의 학통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경당고택은 후손이 생활하며 관리하고 있어 내부를 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바깥의 사랑채만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경당고택 현판의 글씨는 지촌 김방걸의 종손인 남정 김구직이 썼습니다.(참고 경당고택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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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영산암. 독특한 'ㅁ'자 건물 구조 영산암  


안동 천등산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7곳의 고찰 중 당당히 이름을 올린 봉정사가 있습니다. 

봉정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절집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게 두 점인 극락전과 대웅전이 국보에 지정되었으며 그 외 많은 보물을 보유한 사찰입니다.

 




안동 봉정사 영산암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2

안동 봉정사 영산암 전화:054-853-4181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2016/06/18 - (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그리고 봉정사이외에는 유명한게 100m 떨어진 부속암자인 영산암입니다. 

영산암은 고찰 봉정사에 버금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영산암의 독특한 건물 구조가 먼저 관광객의 시선을 끌게 합니다.



영산암은 절집에서 보기 힘든 'ㅁ' 자 건물을 하고 있습니다. 

'ㅁ'자 건물은 주로 경북 산간지역에서 추위를 막으려고 집 짓는 구조입니다. 

이런 건물구조가 사찰에 들어온 것을 보면 조금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산암은 우화루와 석가모니와 제자를 봉안한 응진전과 염화실, 삼성각과 승방인 송암당, 관심당의 6개 건물로 이루며 정확하게 건물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하나 내려오는 사료를 보면 조선 후기인 19세기 말엽 건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화루와 송암당의 연결마루




영산암은 지형의 높낮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지은 건물로 3단의 마당 구성과 영산암의 입구인 우화루의 왼쪽을 헐어내고 송암당과 누마루로 연결한 것을 보면서 ‘ㅁ’자 구조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폐쇄적인 느낌은 이 이 연결 마루 때문에 색다른 느낌이 들게 하는 절집입니다.

 









영산암은 건물의 공간 처리를 잘 반영한 뛰어난 조경처리를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우화루 아래로 통하는 출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만나는 늘어진 가지의 반송에서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그늘을 만들고 만발한 화초는 아기자기한 영산암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이는 선경이 따로 없는 편안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마루에 앉아 머물게 했습니다. 

영산암을 들어서는 입구의 우화루 현판은 봉정사 극락전 앞의 누각 현판이었다고 전하며 우화의 의미는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법하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릴 만큼 아름답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안동 봉정사 영산암은 특별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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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이육사문학관. 7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의 청포도 이육사문학관 여행.


안동여행을 하면서 웬 뜬금없는 이육사문학관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민족저항 시인 이육사의 그의 대표작으로 첫손꼽는 ‘청포도’는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전 국민 모두에게 알 게 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했던 시 청포도는 포항시 오천읍 한 어촌 마을의 포도농장을 배경으로 작품을 썼다 하여 필자는 이육사님의 고향이 경북 포항의 오천 한적한 어촌 마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에도 이육사님을 기리는 안내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육사문학관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이육사문학관 전화:054-852-7337


2017/06/21 - (안동여행)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그러나 이육사님은 포항 오천이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이육사님의 고향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원촌이며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 후손으로 퇴계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암울했던 우리 민족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이육사님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04년 4월 4일(음력)에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나셨으며 본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육사가 아닌 ‘원록’입니다. 그리고 ‘원삼’ 또는 ‘활’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발표한 시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 이육사입니다.



왜. 육사란 이름을 사용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육사는 1927년 처음 옥고를 치를 때 그때 대구 형무소 수인번호가 264번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육사를 아호로 썼다 합니다. 이육사님의 유년기는 고향 인근인 예안에 설립된 보문의숙을 다니다가 공립으로 개편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과 관람요금 안내

이육사문학관 개관시간

3월~10월: 09:00!18:00

11월~2월:09:00~17:00

이육사문학관 휴관안내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월요일이 공휴일일인 경우 다음날


이육사문학관 관람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이육사문학관 무료 대상자:장애인, 국가유공자, 65세이상, 7세이하

이육사문학관 안동시민 신분증 확인 후 50% 할인





그리고 대구로 이사하였고 부친의 명령으로 1921년 안용락의 딸 안일양과 결혼하면서 영천 처가가 있는 백학학원에 다녔습니다. 1924년 4월 일본 동경청치예비교와 일본대학 문과 전문부 유학을 떠났다가 그 이듬해 1월 귀국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펼치던 중 성주 출신의 이정기를 만나면서 조재만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조직인 ‘비밀결사단’을 조직하게 됩니다.

 




이들은 중국 북경을 답사하기도하였으며 재차 중국을 건너갔다 항일무장단체인 의열단 김창숙, 대한독립당군정서 대표 배병현, 국민당정의부위원 남형우 등과 만나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7년 한인 군관학교 설립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했다가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이육사는 대구에서 체포되어 19개월 투옥되었다가 출소하였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과 1930년 대구 격문사건 등에 재차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이육사의 투옥 횟수는 모두 17회에 달한다 합니다.









1931년 다시 군관학교입교를 위해 북경으로 건너갔지만, 만주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의열단의 윤세주를 만나 1932년 난징에서 새로 연 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 1기로 졸업하고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조선군관학교 출신이 발각되면서 1934년 3월에 구속되었다가 6월에 석방됩니다.

 




이육사 님은 이후 문예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기에 그의 주옥같은 시인 ‘광야’ ‘절정’ ‘청포도’를 1939년 ‘문장’ 8월호에 발표합니다. 중국과 국내를 자주 왕래하면서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앞장서다가 1943년 7월 돌아가신 지 1년 만인 어머니와 큰형의 첫제사에 참석하기위해 귀국했다가 서울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이송되었으며 1944년 1월 북경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시신은 화장하여 국내로 운구되어 미아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 고향 원촌마을 뒷산으로 이장했습니다. 이육사님의 41년 남짓 짧은 생애를 오직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지만 그보다는 시인으로 더욱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육사님의 일대기를 알아가면서 평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의 활동도 만만치 않으면서 그 상황에서도 주옥같은 작품은 어떻게 남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작인 청포도, 황혼, 절정, 광야, 꽃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의 작품 세계 하나하나를 생각하게 하면 말입니다. 이육사 님은 대구형무소에서 1929년 5월 출소하면서 ‘중외일보’ 기자로 근무하였습니다. 1930년 조선일보 1월 3일 자에 ‘말’이라는 시를 처음발표하면서 그의 문학 활동을 시작하려다 대구격문사건으로 다시 구속됩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조선 군관학교 출신이 탄로 나자 다시 투옥되었다가 출옥하면서 문예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여러 편의 저항 시를 남기 섰습니다. 이육사님이 순국하고 광복 후인 1946년 처음으로 ‘육사시집’이 간행되었습니다. 정부는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는 이육사문학관이 있으며 문학관에서 2.8km 거리에 이육사 묘소가 있습니다. 다른 일정이 겹쳐져 있어서 이육사 묘소를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이 지금도 많이 후회로 남습니다. 안동여행에서 독립투사로서 민족저항시인으로서 이육사 님의 모든 기록이 보관된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볼 것을 꼭 추천하면서 이육사 님의 시 ‘절정’의 배경지로 알려진 천길 낭떨어지 내살미 칼선대를 만나기 위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육사문학관 사진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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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월란정사. 천원 지폐 뒷면 그림 실제 모델지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월란정사 여행.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에는 월란정사가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1546년 하계의 동암 뒤편인 양진암에 거처하면서 이곳 월란암을 자주 찾아 공부하고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닦았던 곳입니다. 또한, 농암 이현보 선생, 금계 황준량, 매암 이숙량 등과 함께 요성대(월란대)에 올라 시문을 나누고 꽃놀이를 즐겼던 곳으로 그만큼 주위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안동 도산면 월란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

(무허가는 아닌것 같은데 건물에 새도로주소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7/06/15 - (안동여행)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2017/04/07 - (안동여행)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퇴계 선생은 많은 제자 중에서 만취당 김사원선생께 이 아름다운 정자 터를 물려주었다 합니다. 만취당 김사원은 22세 때에 퇴계의 제자가 되었으며 간재 이덕홍과 함께 10여 년간 동문수학했던 곳으로 1860년 월란암 옛터에다 사촌 문중의 만취당 후손들이 선조의 학덕을 기리며 지은 정자입니다.




월란정사는 1909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현재는 김사원의 안동김씨 사촌 문중 소유지만 퇴계의 진성이씨 후손들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월란정사 가는 길은 내살미 마을에서 삭실로 가는 산길을 따라 오릅니다,

 


야자 카펫을 깔아 신발에 흙 하나 묻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었지만, 막상 월란정사를 찾았을 때는 허리까지 자란 잡초에다 고가의 관리가 부실한지 여러 곳이 허물어져 퇴계선생과 겸재정선의 계상정거도 소문을 듣고 찾은 월란정사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주 무거웠습니다.








퇴계선생의 월란대시

月瀾臺(월란대)     

高山有紀堂(고산유기당) 높은 산에는 모서리도 있고 펀펀한 곳도 있는데

勝處皆臨水(승처개임수) 경치도 좋은 곳은 모두 강가에 있네.

古庵自寂寞(고암자적막) 오래된 암자 저절로 적막하니

可矣幽棲子(가의유서자) 그윽하게 사는 이에게 있을 수 있네.

長空雲乍捲(장공운작권) 넓은 하늘에 구름이 별안간 걷히니

碧潭風欲起(벽담풍욕기) 짙푸른 소沼에 바람 일 것 같네.

願從弄月人(원종농월인) 바라노니 달을 즐기는 사람을 쫓아서

契此觀瀾旨(계차관난지) 이 물결 이는 것을 관찰하는 취지에 부합하고자 하네.”

오묘한 한시 풀이를 할 수 없어 카페 '도산서원박약재(http://cafe.daum.net/dosanseowon)' 이동구님의 퇴계선생 월란대 시판 해석을 옮겨왔습니다.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는 월란정사가 있는 월란대에서 본 모습이라고 합니다. 겸재는 퇴계 선생을 추모하여 세 차례나 이곳을 찾아와 '계상정거도'를 완성했으며 대한민국 천 원권 지폐 뒷면에 나오는 그림입니다.






이곳을 방문 시에는 반드시 천 원권 지폐를 지참해서 서로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월란정사 앞 천길 단애인 월란대에서 천 원권 지폐를 들고 맞추어 봤는데 지폐 속의 모습과는 조금은 달라 보였습니다. 아직 그림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월란정사는 도산서원에서 5리 거리에 있습니다. 동향에 낙동강을 보며 앉은 품새와 정자를 두른 왕모산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퇴계 선생의 도산 서당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월란정사는 경사진 산을 깎아 2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다 막돌로 된 초석을 놓고 전면의 네 기둥은 두리기둥을 나머지는 사모 기둥을 세웠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에 옆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며 가운데 1칸은 마루를 넣고 좌우 양쪽은 1칸의 온돌방을 각각 꾸몄으며 전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아내었습니다.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http://cafe.daum.net/jangdalsoo/)’에서 낙민님의 월란정사의 이만각 중건기 해석을 참고하면 동쪽 방은 은구재(隱求齋) 가운데 마루는 월영헌(月映軒)이라하고 서쪽 방은 관선재(觀善齋)라하였습니다.



은구재와 관선재는 퇴계 선생이 써 준 주자의 무이잡영에서 따왔으며 마루의 월영은 퇴계선생이 서림원에 화답해 쓴 시인 “산 위의 달이 외로운 이불 비추는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여기네”에서 따왔다 합니다. 편액 또한 “달빛이 여울에 아름답게 비춘다”는 뜻에서 월란정사(月瀾精舍)라 하였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 여울 속에 들어간 또 하나의 달이 월란정사를 아름답게 비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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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종택. 안동 도산면에서 퇴계 이황의 퇴계종택을  여행하다.


안동 도산면에 갔다가 퇴계종택을 보고 왔습니다. 퇴계종택은 지난겨울에 도산서원하고 함께 찾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구경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산서원은 관리인이 늦었다고 막아서고 퇴계종택은 후손이 살고 있어 늦은 시간 실례가 될 것 같아 대문 앞에서 그만 발길을 돌렸습니다.







 1982년 12얼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

안동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백운로 268)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그래서 이번에 안동시 도산면을 다시 가면서 그때 보지 못했던 퇴계종택을 여행함으로써 당시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도산면에는 많은 건축 문화재가 퇴계 이황 선생과 관계가 있습니다. 퇴계 태실, 도산서원, 퇴계종택, 퇴계 이황 묘 등 하도 많아 열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안동의 풍천면은 하회마을 풍산류씨 류성룡이 있다면 도산면은 진성이씨 퇴계 이황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 종택은 도산서원과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으며 대략 3km 거리인 토계리에 있습니다. 원래 퇴계종택은 한서암 남쪽에 동암 이안도선생이 지었습니다.





1715년인 숙종 4년에는 정자인 추월한수정도 지어 진성이씨 퇴계종가의 변모를 크게 세웠습니다. 그러다 10세손인 고계 이휘녕이 종택은 따로 두고 건너편에다 새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후인 1907년에 왜병이 집에다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두 곳의 종택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현재의 퇴계종택은 1923~1926년 사이 13대 후손인 하정 이충호가 임씨가의 종택을 새로 매입해서 재건한 집이며 추월한수정도 그때 옛 방식으로 새롭게 세웠습니다.








현재 퇴계종택은 면적이 600평(2,119㎡)이며 영역은 솟을대문이 2개로  대문채가 각각 5칸이고 앞면 6칸에 옆면 5칸의 ‘ㅁ'자 형태인 정침영역, 그리고 추월한수정 영역에다, 정침과 추월한수정 뒤로 사당 영역으로 구분하며 총 34칸 규모입니다.





먼저 대문채는 가운데다. 솟을대문을 넣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2칸씩 넣었습니다. 사랑채 앞의 마당을 가로지르면 일자 형태인 사랑채입니다. 안채보다 기둥 간격을 좁게 하였으며 앞면 7칸에 옆면 2칸 규모입니다. 정면에서 보면 왼쪽 4칸은 앞쪽에다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돌렸습니다.











툇마루 뒤로는 사랑 마루와 사랑방을 각각 2칸씩 넣었습니다. 오른쪽 3칸은 책방과 작은 사랑방 그리고 서향을 한 툇마루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붙은 안채를 보겠습니다.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이 2칸이며 현재 후손의 살림집으로 출입 및 관람 할 수 없습니다.

 

퇴계종택 사당영역



대청마루를 두고 왼쪽에는 앞뒤로 통칸의 방이며 오른쪽 안방 2칸은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통 칸인 데다 앞쪽에 툇마루가 달려있어 그 폭만큼 물러나 방을 넣었습니다.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동익사는 중문간·광·방·문간이고 서익사는 창고·방 2개·문간이 각 1칸씩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한옥 구조로 모가 난 도리를 써서 지은 민도리집이며 사모(사각) 기둥에다 5량 가로 종보에서 중도리를 받쳐주는 제형 판대을 올린 기와 건물입니다. 옆의 정자인 추월한수정은 자연석 기단에 좌우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앞면은 5.5칸이며 옆면은 2.5칸으로 일자형의 기와 건물입니다.



대청마루 서편은 1칸과 1.5칸의 온돌방을 앞뒤로 넣고 동편은 동서로 2칸 통방을 앞과 뒤로 배치하고 앞면에 반 칸의 툇마루를 길게 달았습니다. 앞면의 기둥과 대청 배면의 가운데에는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사랑채와 안채와 마찬가지로 5량 가에 제형판대공을 올린 민도리집입니다.





그 뒤쪽의 화강석 기단 위에는 사당이 있습니다. 퇴계종택이지만 실제로 퇴계 이황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퇴계 종택은 그의 후손에 의해 오늘날까지 종가로서의 위엄을 갖추며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안동 도산서원 여행 시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참고:디지털 안동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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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 하회마을 여행. 풍산류씨 집성촌인 서애류성룡의 하회마을 여행


고장마다 같은 성씨가 모여 집성촌을 이루는 곳이 우리나라에 여러 곳 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과 영양의 두들 마을이 그러하고 또한, 안동의 풍천면 하회마을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안동의 풍천면 하회마을은 600여 년 동안 풍산류씨가 세거를 이루었던 곳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성마을 집성촌입니다.







안동 하회마을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76-1

안동 하회마을 전화:054-853-0103


2017/04/01 - (안동여행)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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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 (안동여행)안동 이천리 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기와지붕과 초가를 인 지붕이 조화롭게 마을을 이루는 안동 하회마을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문화와, 풍속을 가장 잘 이어오고 있는 곳 중 한 곳입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안동 하회마을을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에 지정하였으며 2010년 7월에는 지구촌 사람들이 모인 유네스코에서도 지구촌이 보호할 유산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된 제3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풍속과 문화가 마을주민에 의해 긴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것을 이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인이 지키고 이어갈 유산이라 평가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그이름을 올렸습니다.





하회마을의 지명도를 더욱 높인 것은 조선 시대의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서애 류성룡 형제가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겸암 류운룡선생은 퇴계 이황의 문하로 과거에는 별뜻을 두지 않았으며 임금의 명으로 벼슬길에 나가 여러 직책과 인동 현감, 풍기군수, 원주목사 등에 재임하여 목민관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법을 공평하게 다스려 백성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이조판서 추증과 문경공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또한,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불멸의 성웅 충무공 이순신을 선조에게 천거하여 두 전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징비록을 남겨 후세에 전란의 참상을 겪었던 후회와 교훈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 두 분을 낙양의 정호와 정이 형제의 우애와 견주어 ‘하남백숙(河南伯叔)’이라 칭송합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굽이쳐 'S'자로 크게 휘돌아 마을을 감싸며 강물이 흐르는 곳의 마을로 흔히 물돌이 마을이라 합니다.



하회는 여기에서 유래했으며 풍수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이라는 명당에 조선 시대부터 가장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라 알려졌습니다. 태백산의 지맥이 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솟구쳤다면 일월산의 지맥이 남산과 부용대를 빚어 그 사이로 낙동강의 물길이 흘러 ‘산태극 물 태극’의 가운데에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물에 떠있는 연꽃 모양’이라는 연화부수형의 풍수지리설에서 마을의 주산은 화산, 마을과 부용대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을 따로 화천이라 하는데 이는 ‘연화’인 연꽃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마을의 가장자리에는 터줏대감인 최고령 600살의 느티나무가 지키고 노거수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된 독특한 형태의 마을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은 정남향 동남향을 보고 있다면 하회마을은 집의 앉은 모습이 일정하지 않습니다.또한, 기와집을 초가들이 빙 둘러싸며 배치된 게 이채롭습니다. 하회마을의 규모는 구한말까지 350여 가구였으나 현재 150여 가구만 남았습니다. 하회마을 내부에는 127가구에 437개 건물이 현재 있습니다.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 세거 이전에 허씨와 안씨가 먼저 마을을 이루었다 합니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말이 전해오고 이는 안동 하회마을의 국보 제121호인 하회탈 제작자가 허 도령이란 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풍산 류씨가 하회미을에 자리를 잡게 된 연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풍산류씨 7세인 전서 류종혜공이 가뭄과 홍수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마을 주산인 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강물의 흐름을 관찰하며 면밀하게 따져 최고의 명당으로 터를 잡았지만 그과정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뼈대인 기둥을 세웠지만, 그때마다 넘어져 건물을 지을수 없었습니다. 그때 꿈에 현몽하기를 이곳에다 터를 잡으려면 3년 동안 사람의 목숨을 구하여 살리는 활만인을 베풀라는 계시를 받고 그 길로 마을 입구 고개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배가 고프면 음식을, 노자가 필요하면 노자를, 짚신이 필요한 사람에게 짚신을 나누어주고 베풂으로써 하회마을에서 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베풂의 삶 때문인지 서예선생 등 많은 명신을 배출하여 풍산 류씨는 대 명문가로 오늘날까지 번창하였습니다. 하회마을에는 서민과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전래하는데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이는 굿을 겸한 탈놀이를 말합니다. ‘하회선유불놀이’는 부용대 단애에서 열리는데 선유시회를 겸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이 모든게 하회마을의 전부는 아니지만, 수박 겉핥기식의 작은 지식을 습득했다면 이제 마을 길을 따라 출발합니다. 시간상으로 많은 고가를 전부 둘러보지 못하고 주민이 모두 생활하고 있는 삶의 공간이라 관람할 수 있는 고택은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마을길을 중심으로 둘러보았습니다.



초가집 지붕을 이엉하는 모습은 실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자주 보았지만, 한동안 보지 못했고 이제 이런 전통마을에 와야만 만나는 하나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먼저 화경당을 찾았습니다. 솟을대문 입구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최근에 부주의로 작은 화재가 일어나서 부득이 취한 조처라 합니다. 목재건축물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큰불이 납니다. 우리 모두 주의를 해야겠습니다. 출입문에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 유교책판’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화경당은 “화채로 어버이를 섬기고 경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1797년인 조선정조 21년에 류사춘이 처음 집을 지었습니다. 사랑채와 대문채, 날개채를 짓고 1862년 철종 13년에 그의 후손인 류도성이 안채와 큰 사랑채. 사당을 지으면서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특히 큰 사랑채의 누마루에서 보는 풍광은 매우 아름다우며 큰 사랑채를 두른 300년이 넘은 노송들은 하회마을을 굽어도는 강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합니다. 고가 내부를 못 보는 아쉬움은 크지만, 그래도 대문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골목을 돌아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하회마을의 중앙에 자리한 삼신당의 노거수를 찾았습니다. 처음 입향한 류종혜공이 심었다는 느티나무로 하당이며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과 중단국사당을 합해 삼당이라 하며 마을 주민의 소망을 비는 곳입니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단에서 지내고 하당에서는 다음 날 아침에 제를 올리고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열립니다.





이번에 찾은 고가는 하회마을 북촌의 대표 기와집인 양진당입니다.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류종혜가 하회마을에서 최초로 지은 집입니다. 긴 세월동안 여러 번 어려움을 껶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화재로 일부 불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번 새로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웅장함을 잃지 않은 풍산류씨 대종택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문중의 모임을 이곳 사랑채에서 열리며 ‘양진당’은 풍산류씨 족보를 처음 완성한 류양(1687~1761)의 호에서 따 왔고 사랑채의 입암 고택은 류종영의 호에서 따왔습니다. 





다시 돌아 나와 이제 건너편의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을 찾았습니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이곳에서 묵었다는 뉴스를 여러 번 접해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고가입니다. 출입문인 솟을대문과 마주하고는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하며 심었다는 구상나무가 있습니다.



 이 집은 서애류성룡 종택이지만 그 당시의 건물은 아니며 17세기에 지어졌습니다. 그의 손자와 제자들이 서예선생의 생전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으며 류성룡이 유난히 제자들에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가르침을 강조해서 충효당이라 부르게되었습니다.

 






들어서는 대문체에 붙은 12칸의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류성룡의 8세손인 유상조가 병조판서를 제수받고 부하군사를 수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서예선생의 유물전시관도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나와 화천 둑길을 가기 전에 작천 고택이 있습니다.







건물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원래 두 채로 지어졌지으며 1934는 대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문간채가 쓸려나가면서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습니다. 류도관의 호에서 따와 작천 고택이라 부릅니다. 다시 하회마을 입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강둑길을 따라갑니다. 천연기념물 제473호인 만송정 숲과 화천 건너 천길 단애를 이룬 부용대의 절경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겸암 류운룡공이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잡아주고 북서쪽으로 들어오는 허한 기운을 메우려는 비보로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어 만송정이라 하였으며 현재의 소나무는 1906년에 다시 심었다 합니다. 부용대는 하회마을 조망을 한눈에 하는 곳으로 60m의 단애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송정


 


부용대



부용대는 중국고사에서 취했으며 부용은 연꽃을 뜻합니다. 하회마을의 풍수가 연화부수형이고 마을이 들어선 모습이 연꽃 같다는데서 유래하고 하회마을 전망대라 하여 부용대라 부릅니다. 하회마을 북쪽의 언덕이라 하여 ‘북애’로도 불렸다는 부용대에는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하회마을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건너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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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퇴계태실 노송정종택과 퇴계종택. 퇴계 이황 태실인 노송정종택과 퇴계 이황 종택을 여행하다. 


‘동방의 주자’ 퇴계 이황선생은 경북 안동 도산면의 온혜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에는 이황 선생이 태어난 퇴계태실 노송정종택이 있습니다. 안동을 여행하면서 여행의 피로도 풀 겸해서 온천수가 좋다는 도산온천을 일행과 함께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온천 못미처 퇴계 태실 안내판과 우측으로 고래등 같은 고가의 위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604

퇴계태실 노송정종택 전화:054-856-1052


2017/03/29 - (안동여행)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2017/03/28 - (안동여행)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2017/02/10 - (경북맛집/봉화맛집)봉화송이 용두식당. 춘향목의 솔향이 가득한 봉화 송이돌솥밥 용두산장에서 맛보다.

2017/01/17 - (안동여행)안동 이천리 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갑자기 궁금증도 생기고 해서 퇴계태실 노송정을 갈 욕심에 도산온천 앞에서 일행과 헤어졌습니다. 혼자 차를 몰고 퇴계 태실을 찾았습니다. 노송정종택은 퇴계 이황 선생 이외에도 송재선생, 온계선생 등이 태어나고 분가할 때까지 생활했던 생가입니다.

 

 

 

 

 

퇴계태실(노송정종택) 출입문에 성림문 현판

물론 퇴계 이황선생도 이곳에서 태어나셨는데 이황 선생의 어머니인 춘천박씨는 퇴계 선생을 낳을 무렵에 성인이 찾아오는 꿈을 꾸고 퇴계 선생이 태어났다 하여 노송정종택의 솟을대문인 출입문을 성림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퇴계선생이 태어날 무렵 성인이 왕림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성림문 현판

 

노송정

 

 

또한, 태어나신 방은 태실, 선생이 공부하던 방은 책방, 선생이 기거했던 방 등 여러 편액이 집안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처음 노송정 종택은 1454년인 단종 2년에 이황 선생의 할아버지인 이조판서 이계양공이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켰던 계유정난을 보면서 초야에 묻혀 살기로 작정하고 처음 이곳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옵니다. 이계양공이 봉화현의 훈도를 지냈는데 하루는 이곳을 지나다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해 신라현 고개를 넘게 되었습니다. 그때 고개를 넘어오는 허기진 노승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면서 서로 온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노승과 함께 다시 온계로 되돌아왔습니다.

 

 

 

 

 

 

 

 

지금의 노송정종택은 그 당시 노승이 집터를 정해주면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면 후에 귀한 자손을 얻을 것이라는 말에. 이계양공은 이곳에다 집을 짓고 가계를 이룹니다. 그 후 이곳에서 아들인 송재 이우와 손자인 온계 이해 선생, 1501년 11월 퇴계 이황이 태어나 노승의 귀한 자손은 맞춘 샘이 되었습니다.


 

 

 

온천정사

 

 

노송정은 이계양공의 호이며 퇴계 태실 등이 있는 건물은 그분의 호를 따와 노송정 종택이라 부릅니다. 먼저 성림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노송정이 있습니다. 퇴계 태실이 있는 본채는 노송정 앞마당에서 왼쪽에 ‘ㅁ'자로 앉았으며 퇴계 태실은 본채 가운데에 누각 형태를 한 건물이 있는데  ’퇴계선생태실‘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태실은 돌출된 건물에 앞쪽에는 작은 마루와 방이 독립형태로 앉았습니다. 삼면은 쪽마루를 덧붙여 계자난간을 달은 독특한 건물로 꾸며져 있는 게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입니다. 또한, 성림문 옆인 본채 건물 동남쪽 모서리고 마루로 꾸며져 있습니다. 큰사랑과 작은 사랑 사이에 4 합의 살문은 달아 여닫는 마루로 온천정사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퇴계선생태실

 

 

 

 

본채 앞에는 누마루와 온돌방이 붙은 노송정이 있으며 그 오른쪽에 사당도 있습니다. 노송정종택은 1985년 지방문화재 제60호에 지정되었으며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면모와 태실을 갖춘 독특한 건물은 당시 상류 가옥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송정 

 

퇴계종택 

퇴계 태실을 보고 나서 급하게 차를 몰아 퇴계 이황을 배향한 도산서원으로 달렸습니다.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관리인이 매표소 문을 닫으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다시 차를 몰고 퇴계 이황선생 종택으로 달렸습니다.



퇴계종택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8-2

 

 

생가에 도착했더니 사위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은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늦게 집을 찾아가는 것도 실례고 하여 문 앞에서 그냥 분위기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퇴계종택은 퇴계 태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퇴계종택은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42호입니다. 현재 지어진 퇴계종택은 1929년 선생의 13대손인 하정공이 옛 종택 건물을 짐작하여 지금의 터에 새로 지은 건물입니다.

 

 

앞면 6칸에 옆면 5칸인 ‘ㅁ’형 건물로 대문과 정자, 사당으로 구분하고 석축을 높이 쌓아 그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기둥을 혼용하여 지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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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서애류성룡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을 보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두 번째 방문지 풍산류씨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입니다. 서애 류성룡의 호를 따 서애종택으로도 불리며 보물 제414호에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 하면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천거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환란 속에서 나라를 구했던 분입니다.





안동하회마을 충효당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



또한, 7년간인 두 전란의 모든 과정을 기술한 징비록은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으며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뜻이라 합니다. 전란의 참상을 당시 겪게 되었던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기록한 징비록. 류성룡은 노량해전이 벌어질 때 정인홍과 이이첨 등 북인의 상소로 영의정에서 파직당합니다.





그 길로 고향 안동으로 내려와 선조의 부름을 받지 않고 징비록을 저술했다 합니다.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의 물난리로 학가산 기슭의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기거하다 1607년 5월에 농환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회마을의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후손과 그를 따르던 문하생들이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려 1600년대에 건립했던 가옥으로 선생이 살았던 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중수와 증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조선중엽의 전형적인 사대부집 양반가옥의 모습을 하며 문간채, 사랑채, 안채와 사당 등 52칸만 남아있습니다.

 






또한, 서애선생의 저서와 유품 등을 모아 전시하는 영모각이 따로 마련해 있으며 문간채 밖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1999년 4월 방문하면서 심었던 기념식수가 있습니다. 하회마을 북촌은 양진당이 대표 가옥이라면 충효당은 남촌을 대표하는 가옥으로 서로 하회마을 길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충효당을 들어서면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一’자로 놓여 있으며 그 뒤편에 ‘ㅁ'자를 한 안채와 안채에서 길게 연결된 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뒤로는 사당과 그 우측에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자리했습니다. 충효당 역시 안채는 관람할 수 없으며 사랑채와 영모각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입구의 행랑채는 총 12칸으로 사랑채와 마주보며 사랑채의 정면에 솟을 대문인 대문간을 내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6칸에 옆면 2칸이며 가운데 개방한 4칸 크기의 대청마루를 깔았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청마루 뒷면 오른쪽은 골판문을, 왼쪽은 머름이 없는 높은 살문을 달아내어 안채와 뒷마당을 오가게 했습니다.





왼쪽 2칸은 온돌방과 침방을 앞뒤로 놓고 오른쪽은 작은 마루와 방을 앞뒤로 두었습니다. 작은 마루는 앞쪽과 왼쪽에 골판문과 살문를 달았고 오른쪽은 개방한 상태입니다. 이는 사랑채가 서향으로 앉았기 때문에 여름 오후의 따가운 햇볕과 겨울의 매서운 북서풍을 막으려는 조처로 보이며 전면과 우측면은 쪽마루를 달아내고 계자난간을 돌려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각의 품격을 한층 더 높였습니다.









사당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막 전시관으로 들어서는데 빨리 나오지 않고 뭐하느냐는 일행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모두 하회마을 주차장에 다 도착했다며 빨리 나오라는 성화였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유물관을 보지 못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 여행에서 양진당과 충효각은 꼭 보고 나오길 추천합니다. 










서애류성룡의 유물관인 영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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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하회마을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하회마을 양진당을 만나다.


안동 하회마을을 여행하면서 워낙 넓어 먼저 무엇을 보는 게 우선일까 하고 많은 고민을 모두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을 하다 보물 제306호인 풍산류씨 겸암 류운룡(1539~1573)의 대종가인 양진당과 보물 제414호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충효당을 가장 눈여겨보고 왔습니다. 그럼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을 둘러보겠습니다.




 


안동하회마을 양진당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9-4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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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그러나 아쉽지만, 우리나라 고택 대부분이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어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부를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양진당도 마찬가지로 사랑채로 들어서는 솟을대문에 딸린 방과 사랑채의 겉모습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양진당은 확실하지 않지만 1600년대에 건립했다 하며 하회마을의 북촌을 대표하는 한옥입니다.

 


임진왜란에 안채가 불타 17세기에 중수하였으며 사랑채와 연결하는 부분에 당시 화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합니다. 양진당은 특이하게도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 중기의 양식이 혼용된 모습이며 건립 당시에는 99칸의 저택이었지만 현재 53칸만이 남아 있습니다.


문간채에서 본 사랑채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와 자리를 잡았던 풍산류씨 입향조는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는 13세기에 전서 류종혜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으며 그리고 가장 먼저 집터를 잡은 곳이 양진당입니다. 또한, 양진당은 하회마을의 여러 가옥과 다르게 정남향을 보고 있으며 하회마을은 풍수에서 연화부수형에 해당하는데 양진당이 연꽃의 꽃술 부위인 명당이라 합니다. 이를 보면 아마 풍산류씨의 대종가다운 면모를 당시에 갖추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가옥이 다 그러하듯이 안채와 사랑채는 독립된 형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건물 형태를 보면 좌측은 중문간채와 안채는 ‘ㅁ’자 형태이며 안채와 접해져 오른쪽에 ‘一’ 형태로 길게 이어진 사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하회마을 주 통로에서 사랑채를 들어서는 입구는 솟을대문을 한 앞면 5칸인 문간채와 행랑채가 ‘一’ 형태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가운데 출입문을 내고 좌우에 방과 마구간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높은 기단 위에 사랑채가 위엄있게 앉아있습니다.






가운데 작은문이 안채로 연결하는 통로 



사랑채에는 입암고택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겸암 류운룡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1515~1573) 선생의 호에서 따왔으며 양진당은 겸암 류운룡의 6대 후손인 류영(1687~1761)의 아호에서 따와 오늘날 입암고택 또는 양진당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겹처마는 하회마을에서 유일하다 합니다. 왼쪽에는 1칸씩의 온돌방과 서재를 넣었으며 오른쪽 3칸은 6칸의 통마루를 깔았습니다. 이곳에서 하회마을의 풍산류씨 문중회의 등이 열린다합니다.


하회마을에서 유일한 겹처마 건물


앞에서 보는 사랑채는 삼면에다 쪽마루가 달렸으며 앞면만 계자난간을 달았습니다. 그 왼쪽 끝에는 안채와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있으며 3칸의 대청은 각각이 4개의 문짝을 붙인 여닫이문을 달아 대청마루를 여닫게 했습니다. 사랑채 뒤 오른쪽에는 두 개의 사당이 있습니다.

 



문간채·행랑채에 붙은 마구간


 

큰 사당은 입암 류중영선생이, 작은 사당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신위를 모셨는데 두 분 모두 불천위 사당으로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린다 합니다. 짧은 시간에 하회마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바로 서애종택인 충효당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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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이천동석불상, 제비원석불, 제비원 미륵불로 불리는 오뚝이를 닮은 독특한 마애불.


이번 안동여행에서 전체 높이가 12.39m인 대불을 보고 왔습니다. 안동 ‘제비원 석불’이라고 불리는 안동 이천동 석불상입니다. 제비원 석불은 서쪽을 보고 있으며 높은 바위면에다 부처님의 몸을 얕게 새겼으며 그 위에 따로 불두를 조각하여 올린 마애불의 형태라하겠습니다. 현재 이천동 석불상은 불두의 뒷부분은 수직으로 잘려나간 자연석이며 머리 가운데에 육계를 큼지막하게 만들었는데 밑에서 보면 확인하기 힘들지만 얼굴 부분과 또 다른 돌을 다듬어 얹었습니다.

 





안동이천동석불상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 2

안동이천동석불상 전화:054-840-6591


2017/01/14 - (안동맛집)맛50년 헛제사밥.헛제사밥이라해서 헛배가 부른게 아니예요. 맛있는 음복음식 안동 맛50년 헛제사밥

2016/12/26 - (안동여행)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2016/06/18 - (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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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불두를 보면 얼굴은 부풀어 오른 듯 풍만하며 눈썹 사이에 백호를 양각하였고 실눈을 뜬 듯 좁으면서 길게 표현한 눈 위에 반원형의 눈썹을 짙게 나타내었습니다. 우뚝 솟은 코와 두툼하고 다부져 보이는 입술은 옅을 미소를 머금었으며 전체적으로 장중 근엄한 인상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목에는 삼도를 새겼고 바위에 직선으로 얕게 새긴 몸체는 불두의 근엄함보다 아주 단순한 느낌입니다.





몸체에 걸친 법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왼쪽 어깨의 옷 주름과 오른쪽의 법의 자락이 서로 교차하여 접히고 가슴 밑으로 속옷의 띠가 보입니다. 양손은 모두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를 맞대어 오른손은 배에, 왼손은 가슴에 댄 입상이며 발밑에는 큰 연꽃 대좌를 음각하였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의 구조를 보면 석불상을 새긴 바위 앞쪽과 오른쪽에도 높은 암벽이 막아 ‘ㄷ’자 형태의 구조입니다. 이는 석굴 형태로 17세기 초 안동읍지인 ‘영가지’에 불상 위에 기와지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불두 위로 닫집이 있었다 합니다. 지금도 이들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불상 어깨에 남아 있습니다,

 




석불 앞 바위 끝에는 연미사 중수기 비석이 현재 있으며 634년인 선덕여왕 3년에 명덕이 창건하였다 합니다. 부처의 몸체 위에다 부처 머리를 따로 만들어 올린 마애 석불상을 저는 경주 남산의 약수계곡 마애입불상만 알고 있었습니다. 17m의 거대한 불신에 불두는 증발하여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이리 온전한 형태의석불상인 이천동 석불상이 남아 있는 것을 이제야 보게 되어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이때까지 ‘제비원 석불’로만 알았는데 공식명칭은 안동이천동석불상으로 불리는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개미가 코끼리를 보기 위해서는 멀리 떨어져야만 얼마나 큰지 코끼리 전체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이천동석불상도 마찬가지로 불상 바로 밑에서는 온전한 제비원의 석불을 한눈에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미사 바깥으로 돌아 나와 공원에서 봐야만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이천동석불상 전체를 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애의 불신과 불두를 따로 조합한 형태는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전기에 아주 유행했던 양식으로 안동 이천동 석불상도 이 시기에 조각된 고려 시대 석불상이며 1963년 1월에 보물 제11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안동 이천동 석불상 뒤편의 암벽 위에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고려 시대 석탑으로 보고 있습니다. 탑의 높이는 3.5m이며 이는 석불상 뒤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 때문에 현재 기단부와 탑신부의 구성과 비례 또한, 맞지 않아 부조화 서럽다 합니다. 아쉬운 점은 삼층석탑을 볼 수 있게 올라가는 길이 없는 건지 내가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천동 석불상 옆에서 먼발치로 보고 왔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9호,







앞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천동 석불상을 왜 제비원 미륵불, 제비원 석불이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현재 미륵불이 있는 앞 넓은 공원이 오래전에 원(院)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원은 요즘으로 치면 여관으로 여행객이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교통의 중요한 길목에는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관리의 숙소로 사찰을 숙소인 원으로 국가에서 지정해 사용하게 했는데 연구사도 그중 한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 태산준령인 험준한 소백산의 죽령이나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문경의 새재로 이어져 그 길목인 이곳 연비원에서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했다 합니다. 연(燕)은 ‘제비연자’로 제비에 원자가 붙어 제비원이 되었으며 왜 제비원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곳이 제비원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게 이천동 석불상 때문입니다.

 




석불상은 ‘ㄷ'자 형태의 암벽으로 둘러싸였으며 그 위에다 석불상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덮었다고 했습니다. 그 지붕을 덮은 모습이 제비와 비슷했는지 ’연자루(燕子樓)‘라 했으며 그 끝에다 요사를 짓고 제비의 꼬리를 뜻하는 연미사(燕尾舍)라 불렀습니다. 또한, 석불 아래 법당은 제비부리를 뜻하는 연구사라 했습니다.

 




그러다 1934년경 연미사 자리에 새로 절을 세우고 연미사(燕尾寺)라 개칭하여 오르게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면 석불을 보호하는 기와지붕을 올렸던 게 제비원의 시초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에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연구사는 폐사되었고 이천동 석불만 전설이 되어 남게 되었으며 근대에 와서 연미사기 지어졌습니다.





이천동 석불상이 불두와 불신이 분리된 데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로 온 이여송이 칼로 내려쳤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여송은 전란이 끝나자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관과 함께 조선에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국 명당의 혈을 끊으려 다녔습니다. 이여송이 제비원 앞에 이르자 갑자기 타고 다니던 말의 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여송은 주위에 서 있는 석불을 발견하고 단칼에 석불의 목을 내리치자 불두는 땅에 떨어졌고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합니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다시 불두를 제자리에 올려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석불의 가슴에는 그 당시 흘렸던 핏자국과 왼쪽 어깨에는 이여송이 타고 온 말 발굽 자국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제비원은 민속신앙인 성주풀이의 본향이라 합니다. 성주풀이 소리에 ’성주 본향이 어디 에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사설로 알 수 있듯이 이곳 제비원 석불이 매우 뜻깊은 곳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경스럽지만 제가 만나본 제비원 석불은 꼭 오뚝이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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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안동가볼만한곳)안동법흥사지칠층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칠층전탑 여행.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면서 오래되었다는 전탑 중 하나인 안동 법흥사 칠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전 석탑으로는 신라 시대의 유일한 석탑인 국보 30호 분황사 구층 석탑이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3층으로 남아 있지만, 이 분황사 모전 석탑이 9층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아마 최고의 높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7-9


2016/06/18 - (경북여행/안동여행)의성김씨 학봉종택. 안동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택을가다. 의성김씨 학봉종택

2016/06/17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2016/05/24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은 그 높이가 16.8m이며 탑을 받치는 기단의 폭은 7, 75m로 현재 남아 있는 전탑의 규모로서는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합니다. 단층의 기단 위에 7층으로 몸돌을 조금씩 줄여가며 쌓았는데 모전 석탑 주위의 지명이 법흥동인 점을 보면 법흥사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석탑 이외에 어떠한 법흥사에 관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지금 전탑 주위로 고성이씨 탑동파 고택이 자리하고 있는 게 그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단부에는 희미하게나마 판석에다 돋을새김으로 팔부신중과 사천왕상을 새겨놓았습니다.



 












이들 부조의 조각수법은 시대가 다르게 서로 차이가 나며 탑신부는 아무 무늬가 없는 회색 벽돌을 쌓았습니다. 전탑의 각층 옥개석의 윗면에 기왓장을 올렸던 것이 보기 드물게 남아 있습니다. 이를 보면 전탑 이전에는 목탑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으며 법흥사지 칠층 전탑은 목탑을 모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탑 이후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와서 화강암을 깎아쌓은 석탑으로 그 양식이 바뀌었는데 목탑-전탑-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변천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화강암 석탑의 많은 부분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석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법흥사지 칠층 전탑의 상륜부는 금동제로 만든 상륜이 올려져 있었다지만 지금은 안타깝게 노반만 남아 있습니다. 법흥사지 칠층 전탑의 축조방식을 보면 기단은 방형이며 동·남·북 3면에 6장씩 팔부신중과 사천왕상을 판석에 세기고 맨 아래층의 탑신 밑면은 원분 모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면의 계단은 단층기단 형식이며 8개의 계단 끝에는 높이 90cm, 너비 54cm인 부처님을 모신 감실을 두었습니다. 안동의 역사서인 ‘영가지’에 법흥사지 칠층 전탑을 1487년 성종 18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때까지도 3칸 정도의 법흥사 건물이 남아 있었다합니다. 필자는 법흥사지 칠층모전석탑을 만나기 위해 2014년에도 찾았습니다.



당시 법흥사지 칠층모전석탑은 해체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전탑 외부를 가린 가림막만 보고 안타까워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안동여행 때 그때 보지 못했던 칠층 전탑을 만나기 위해 안동의 여행지를 바꿔가며 다시 찾았습니다. 석탑을 마주 보고 섰는데 그 웅장함은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으며 코스를 바꿔 왔던 보람이 있을 정도로 저에게는 감명을 주었습니다. 당시 해체복원 하는 과정에서 탑 내부에 나무 기둥을 세웠던 ‘심주’구멍이 확인되어 또 한 번 이목을 끌었습니다.

 


칠층 전탑이 워낙 높아서 가로 사진으로 다 담을 수 없었으며 전탑 바로 옆에는 철길까지 있어 어수선하고 협소해 보여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의 건립은 8세기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하며 국보 제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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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고건축물인 극락전, 대웅전이 있는 안동 천등산 봉정사를 만나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부석사의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습니다. 수덕사는 가요의 ‘수도사 여승’이 대웅전보다 더욱 유명하며 부석사는 무량수전이 워낙 유명한데 그에 반해 봉정사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도 봉정사 방문 전에는 그저 극락전 정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봉정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봉정사 일주문


그러나 안동의 봉정사도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봉정사의 문화재를 보면 극락전과 대웅전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금당과 화엄강당은 물론이고 후불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보물이며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습니다. 최근까지 봉정사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날려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세웠으며 그중 한곳이 지금의 봉정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1971년 극락전 수리과정에서 상량문이 나왔으며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능인대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봉정사를 품은 산은 처음에는 대망산이라 불렀습니다. 능인대사는 도를 터득하려고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천녀가 나타나 능인을 시험하기 위해 파계하여 함께 살 것을 유혹하지만, 끝끝내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거부하였고 천녀는 스님의 도력에 감복하여 옥황상제께서 내린 등불을 굴 안에 환히 밝히게 하였습니다.


 

 


스님은 더욱 수도에 전념하였고 도력으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봉정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하늘에서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천등굴이라 하였으며 산도 천등산이 되었습니다. 봉정사는 창건과 함께 대략 6번의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 번 어려운 과정을 겪었고 근대인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인민군이 주둔하면서 사찰에 보관 중이던 여러 경전과 사지(寺誌) 등을 불태우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9년 4월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을 하면서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천등산 봉정사의 일주문을 보면 현판은 추사체의 맥을 잇는 서예가 은초 정명수(1909~1999)선생의 글씨입니다. 이외에도 해인사의 해탈문과 진주 촉석루 등 힘있는 선생의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 날아오르는 봉황을 닮은 듯 한 보호수 소나무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 봉정사를 들어서는 입구인 만세루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며 켜켜이 때가 묻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여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천왕문 등은 없지만 2층 누각 형태인 만세루 아래를 지나야만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만세루는 1680년(숙종 6년)에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렀습니다.


 

 

만세루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마당 높이와 같은 단층입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으로 1층은 출입구 역할만 합니다. 그리고 2층은 휴식을 취하는 정자와 스님의 강학장소인 강당을 겸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6/05/31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봉정사 만세루


 

 

 

 

 

 


만세루와 마주한 건물이 두 개의 봉정사 중심 건물 중 한곳인 국보 제311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도 극락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은 1428년(세종 10년)에 불화기록과 1431년에 단청을 칠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1425년인 세종 7년쯤에 중창한 것이 아닌지 추정을 했는데 최근 고려시대 불화로 추정되는 후불벽화가 발견되어 대웅전 조성을 고려 말기로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대웅전


 

 

2016/06/02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고려후기의 고건축물로 평가받는 독특한 불전인 국보 제311호 봉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앞면 3칸에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특이한 것은 대웅전 앞면에 조선시대 누각 형태인 툇마루를 달아내었다는 점인데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접목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963년 1월 보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국보로 다시 승격되었습니다.


 

 

 

 

 

 

 

 

 

극락전


그리고 대웅전과 함께 봉정사의 중심법당인 국보 제15호 극락전입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축물로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입니다.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며 무량수전, 아미타 전이라 부릅니다. 1972년 해체 수리하면서 인조 3년인 1625년 작성한 상량문 기록을 찾았는데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어 벌써 그 이전에도 건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6/05/27 - (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가운데다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어 불단을 설치했으며 닷집은 화려하지 않고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앞면 3칸에 옆면 4칸의 맞배지붕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건물입니다. 처음에는 대장전으로 불리다가 극락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극락전 앞에는 고금당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화엄강당을 세워 극락전과 대웅전을 두 개의 영역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여도 당시 건축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이며 보물 제449호 지정되었습니다. 1969년 해체 수리과정에서 1616년인 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을 찾았는데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엄강당 


화엄강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를 보면 17세기에 대웅전을 고쳐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때 화엄강당도 창건이나 수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전의 대웅전을 고려하여 간결한 장식으로 꾸몄으며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보물 제448호.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무량양회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 자리한 봉정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중 기단에 석탑은 전체적인 무게로 인해 기단부가 일부 깨져있습니다. 또한 상륜부 일부는 분실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입니다. 고려시대 석탑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2016/06/16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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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고 건축물 극락전과 같은 고려 중엽의 봉정사 삼층석탑을 만나다. 봉정사 삼층석탑



 안동 봉정사에는 석조조형물 중 석탑으로는 유일하게 고려 시대 중엽에 극락전과 함께 조성된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로 지정되었으며 극락전 앞마당에 자리합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은 이중 기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무게 때문인지 기단부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안동 봉정사 꼭 보야할 곳◆


☞2016/06/13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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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륜부는 노반과 복발, 양화는 남아 있으며 그 외에는 분실되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층석탑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습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의 방형석탑으로 기단부보다는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은 적당한 데 반해 옥개석은 높이보다 폭도 좁고 옥개석의 처마 또한, 반전이 약합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날렵하지 않은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입니다. 봉정사 삼층석탑의 전체높이는 318cm이며 기단부의 한변은 237cm로 2층 기단을 만들어 탑의 토대를 만들고 다시 삼층의 몸돌을 올려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단과 2단의 기단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기단부보다 폭이 확 좁아진 탑신부 각층의 몸돌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비례감 있게 줄어들면서 폭의 변화도 적습니다.


 

 

 

 


지붕돌은 높이에 비해 폭도 좁고 두께도 두툼한 게 당시에 조성된 다른 석탑과 비교해도 두드러지고 드러난 게 없는 그저 평범하며 일반적인 고려 중엽 석탑양식을 보여줍니다.


 

 

 

 

 

 

 

 

 

 

 

 


안동 봉정사 


☞봉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전화: 054-853-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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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의 보물인 고금당, 화엄강당과 요사채인 무량해회를 만나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화엄강당



  안동의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과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웅전이 국가 문화재인 국보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봉정사는 국보 이외에도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보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에서 이리 많은 목조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드문 일입니다. 봉정사의 여러 목조건물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포스팅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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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각각 둔 두 개의 중심법당이 있습니다. 극락전과 대웅전의 공간을 가르는 건물은 화엄강당이며 고금당은 극락전 앞에서 화엄강당의 뒷면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금당을 보겠습니다. 고금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 목조건물에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고금당의 규모는 작아도 보물로 지정될 만큼 당시 건축 기법이 주목받을 만큼 인상적입니다.





고금당의 특이한 건축기법을 보면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한 주심포집 계통입니다. 기둥 윗부분에 꽂은 홑첨차와 그 위에 주두에서 나온 살미첨차가 겹쳐친 위에 다시 행공첨차를 가로로 놓았으며, 그리고 외목도리를 받쳐놓았습니다. 주두의 좌우 벽면에 배치된 첨차와 창방은 포벽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건물 뒷면은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동의 봉정사 고금당은 해체 수리를 위해 1969년 찾아낸 기록을 보면 1616년(광해군 8년)에 고쳐 지었다는 기록뿐이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1969년에 극락전과 함께 봉정사 건물 대부분이 해체와 수리과정에서 본모습을 많이 훼손하였습니다. 현재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방 앞쪽 쪽마루와 칸마다 달린 외짝문뿐이라 하니 고건축물의 보수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하겠습니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현재의 고금당은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았습니다. 북쪽 측면은 후예 팔작지붕으로 바뀌었고 남쪽의 지붕은 연장하여 칸을 막아서 부엌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방은 온돌을 넣어 선방이든 것을 요사채로 사용하였으며 방 앞에는 쪽마루를 깔고 벽간마다 띠살문을 달아 원래의 문짝이 아니라합니다. 

공포를 구성하는 첨차 형태 등을 보면 조선 전기의 특색을 잃어버렸으며 또한, 변형되어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중기로 그저 짐작만 할 뿐입니다. 당호는 고금당(古今堂)이라 쓰는데 금당의 뜻인 고금당(古金堂)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건물의 규모와 위치를 보면 봉정사의 중심건물인 불전으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기 힘든데도 현재 불전을 뜻하는 고금당(古金堂)으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9호





그리고 화엄강당은 대웅전 앞 경내로 올라서면 왼쪽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앞면3칸 옆면 2칸의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화엄강당은 ‘양법당중수기’ 등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경내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때 화엄강당도 함께 창건이나 수리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강당으로서 규모가 큰 건물인데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형식을 보이면서도 대웅전의 위상을 고려하여 간결하게 장식을 갖추어 법당과 강당의 차별성을 두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강당으로 사용한 건물이라 기둥은 낮으나 공포를 크게 하여 외관과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건물 내부는 남쪽 2칸이 부엌, 북쪽 4칸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는 앞면 4칸, 옆면 4칸으로 현재 온돌방 뒤쪽에 4칸의 마루가 깔렸으며 부엌도 지금보다 넓었다고 하지만 언제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화엄강당은 봉정사 창건과 극락전 중창 그리고 조선 전기의 대웅전 중창 등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는 것을 보면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8호


 

 


안동 봉정사 무량해회


무량해회는 앞면 4칸에 옆면 3칸의 겹처마 집에 전면과 남쪽에 마루를 달고 양쪽의 중앙에 칸 벽을 설치하여 방으로 나누어진 요사건물입니다. 건물의 구조는 ‘트인 ㅁ자형’


 









 (참고:안동시청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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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봉정사 만세루.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하며 묵직하여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봉정사 만세루, 


안동시 천등산 아래의 봉정사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여느 사찰에서 보는 천왕문 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길게 돌계단을 만들고 그 끝에는 2층으로 된 만세루가 천년고찰의 풍미를 간직한 채 묵직한 느낌을 주며 봉정사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안동 봉정사와 인근 여행지 맛집 둘러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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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봉정사 만세루는 숙종 6년인 1680년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면서 많은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건립하여 처음에는 덕휘루(德輝樓)라 불렸다는데 언제부터 만세루(萬歲樓)로 불렸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만세루는 봉정사를 들어서는 출입문 격인 누문입니다. 특히 봉정사는 산비탈을 깎아내어 너른 평지로 다듬기 위해 축대를 쌓았는데 축대 가운데 만세루를 만들고 그 아래 출입하는 계단을 내어 자연스럽게 경내로 올라오게 했습니다.

 

 

 


만세루는 밖에서 보면 2층 누각이지만 대웅전에서 보면 경내의 지면과 똑같은 단층으로 보입니다. 봉정사 만세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이며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홑처마 맞배지붕 2층 누각입니다.

 

 

 

2층 누각이지만 1층은 그저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계단이 전부이며 2층은 건물의 형태 등으로 보면 정자 역할과 강당 역할을 겸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2층 바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을 둘렀으며,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중 기둥의 머리에 보 방향으로 중첩해서 설치하는 장방형 단면의 긴 부재인 살미의 끝은 직절하였으며 내부의 기둥과 보를 연결해주는 보아지는 평평한 면에 도드라지게 새기는 초각을 하였습니다.

 

 


봉정사 만세루의 내부는 일고주 5량의 구조이며 누각을 받치는 기둥은 자연 형태 그대로 휘어지고 섞고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은 나뭇결이 고색창연하여 외관상 보면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같아 보입니다.

 

 


만세루는 봉정사의 다른 건물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장식을 거의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입니다. 현재 만세루에는 운판과 북, 목어를 설치하여 봉정사의 일상적인 행사가 이루어지며 덕휘루 현판과 기문 등이 걸려 있다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바빠서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요즘 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반질반질 윤기 가득한 만세루 누마루에 올라 두 다리 쭉 뻗고 슬렁슬렁 불어오는 자연 숲 속 바람을 맞으면서 쉬고 싶은 그런 정자입니다. 2001년 11월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에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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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천등산 봉정사 극락전, 화려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나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여행. 봉정사 극락전


우리나라에서 고려 시대 건축물로 현존하는 목조 건물하면 저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라 이때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안동의 천등산 봉정사를 찾고서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소백산과 뜬바위 부석사의 사명이 워낙 유명한 데다 무량수전 또한, 규모 면에서나 구조와 건축양식 등을 보면서 그리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고대 불전 연구에 봉정사의 극락전보다 무량수전을 아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니 무량수전이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물임은 틀림없습니다.




◆안동 봉정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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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9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명옥대. 퇴계 이황의 강학소 안동 명옥대에서 녹음방초를 즐기다. 명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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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2014/02/0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맛집 남안동 휴게소. 안동에서는 꼭 먹어야 할 음식 1호 안동 간고등어 맛집 남안동휴게소



 

그러나 봉정사 극락전 역시 누가 무엇이라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축물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흔히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을 일컬어 우리나라 3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목재 건축물이라 합니다. 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후기의 목조건물로 국보 제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봉안하여 다른 말로 무량수전, 아미타전이라 합니다. 1972년 9월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1625년(인조3년) 상량문에 쓴 기록을 찾았는데 1363년(고려 공민왕 12년)에 극락전 지붕을 수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연유로 지붕을 수리했다면 봉정사 극락전은 벌써 오래전에 건물이 지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보통 전통 목조 건물은 창건하여 100~150년은 지나야 지붕 수리를 통상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극락전은 1200년대 초에 세워졌다는 것을 가정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백 년을 살기도 힘든데 나무로 만든 우리 목조건축물은 7백 년~8백 년을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고려 시대 건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후손에게는 아주 큰 행운이자 행복입니다.

 

 

 


불당에는 가운데 뒤쪽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워 불당 벽을 만들고 그 안에 불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닷집은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인상적인 채색에 섬세하게 꾸몄습니다. 


 

 


봉정사 극락전을 처음에는 대장정으로 불렀다가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극락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의 단층 건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입니다. 양쪽 옆면이 직각으로 잘린 듯한 모습인 맞배지붕이며 고려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통일신라 시대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건물의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이며 기둥머리 위에만 공포를 올인 주심포식으로 아주 간결한 모습에 힘이 있어 보입니다. 정면에서 보는 극락전은 단순해 보이는데 벽체는 흙벽이며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내었으며 좌우 칸에는 살창을 넣은 판문을 달아 불전은 어두워 일반적인 사찰의 불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입니다. 이는 극락전을 수리하면서 판문과 살창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극락전의 옆면은 4칸의 기둥에 9개의 도리가 나온 9량 집이며 맞배지붕 끝이 충분히 나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안정된 모습입니다. 

 

 

 


극락전 현판도 극락전과 함께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86년 병인년 6월에 쓴 송파동몽의 글씨인데. 송파는 안동 권씨 집안의 권인입니다. 그리고 동몽은 자신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그 옆의 ‘광서’는 청나라 덕종 광서8년을 뜻하고 1882년 임오년 4월에 현판을 채색했다 합니다.

 

 


1972년 극락전은 해체 수리하였지만, 다시 건물은 노후하여 처마와 공포 주재가 내려앉고 벽체에 균열이 발생하여 2001년 9월에 또다시 해체와 보수공사를 하였습니다. 극락전은 총 1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졌는데 1972년 5개의 기둥을 교체하면서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을 사용했던 것을 이번에 모두 우리나라 소나무로 모두 바꾸었습니다.

 

 


부재와 기와 등은 전면교체와 재사용 등을 하여 보수공사를 완료했습니다. 이번에 만났던 극락전은 새 색시가 분단장을 예쁘게 하고 다소곳한 모습이었지만 깔끔한 게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무엇인가 극락전을 보면서 단순하지만 강한 세월의 힘을 느끼는 봉정사 여행이었습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안내정보◆

봉정사 주소: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

★봉정사 연락처:054-853-4141 

★봉정사 락전 국보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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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천등산 개목사 원통전. 천등산의 지세로 안동에 소경이  많아 비보사찰이 된 개목사, 그후로 소경이 없어졌다는 개목사 원통전 여행,  


경상북도 안동시에는 500m가량 높이의 천등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의 높이와 품새보다 산이 지닌 품격은 여느 명산에 비교해도 부럽지 않습니다. 천등산 정상 아래에는 천년고찰을 두개씩이나 품고 있는데 봉정사와 개목사입니다.




◆안동 개목사 인근 맛집과 가볼만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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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우리나라 현존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봉정사는 국보와 보물 등 작은 산에서 큰 사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는 앞으로 포스팅하겠지만 오늘은 소경 전설이 있는 개목사를 포스팅하겠습니다. 개목사는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스님이 창건하고 처음에는 흥국사라 하였습니다.




창건설화를 보면 천등산 정상아래 바위굴에서 능인스님이 정진수행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녀는 스님의 수행을 시험하고자 온갖 감언이설로 파계하여 속세로 하산해 함께 살 것을 꼬시지만, 스님은 오직 부처님만 믿을 뿐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안동 개목사 원통전


천녀는 스님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님에게 부처님의 공덕을 시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스님의 수도처인 동굴이 너무 어두워 옥황상제께서 보낸 등불로 환하게 밝혀 더욱 용맹정진하여 도를 이룰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능인스님은 더욱 정진하였고 마침내 크게 깨우쳐 하늘이 내린 등으로 도를 깨우쳤다 하여 대망산이라 불렸던 산은 천등산으로 바뀌었고 스님이 도를 깨친 굴은 천등굴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천등굴 아래 너른 터에다 99칸의 절을 세우니 이곳이 개목사의 전신인 흥국사입니다.




흥국사가 언제 무슨 연유로 개목사로 바뀌게 되었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제상이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은 풍수지리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그가 안동 부사로 부임하면서 안동 관내를 시찰하다가 유달리 소경(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 그 연유를 알아보았더니 천등산에서 흐르는 지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당장 흥국사를 찾았고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게했더니 더 이상의 소경은 없어졌다 합니다. 그와 비슷한 전설은 천등산의 지세로 인해 소경이 많았는데 능인스님이 도를 깨치고 흥국사를 세운 다음부터 소경이 없어졌다하여 개목사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모두다 개목사로 인해 눈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1969년 해체하고 수리하면서 '천순원년(天順元年)' 글귀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1457년인 세조 3년에 처음 지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개목사 원통전의 규모는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단층으로 맞배지붕형식에 풍판을 달았습니다.




내부의 천장은 뼈대가 드러난 연등 모양으로 윗부분이 노출되었으며 법당 안을 온돌방으로 구성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서는 아주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특히 개목사의 건물 형태는 안동의 많은 고가 종택을 닮았습니다. 사대부 문간채형식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개목사 중심 건물인 원통전입니다.

 




문간채의 분위기를 보면 억겁의 세월이 내려앉은 듯한 무게 때문인지 원통전보다 더 오래된 모습입니다. 요즘같이 무더운 때 개방된 대청마루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았습니다. 낮은 돌담으로 넘어오는 바람은 오후의 나른했던 피로를 싹 삭혀주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 한다며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 쫓아다니고 눈도 충혈되고 피로했는데 소경을 치료했다는 개목사에서 잠시라도 눈을 감아보았습니다. 혹시 아나요? 개목사 이름답게 아픈 눈을 시원하게 낫게 해줄지요. 



 

◆안동 개목사 여행정보

★안동개목사 주소: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보물제242호 1963년 1월21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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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전설과 우화 속에 등장하는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용을 미물이라 생각하며 신비스러운 상상속의 동물보다는 어딘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용꿈을 꾸어도 길몽으로 여기는 상상속의 동물인 용은 그러나 지명으로 우리나라에 많이 남아 있다. 한반도를 통틀어 전설속의 용이 몸을 눕혀 쉬고 있는 곳이 경북에 두 곳 있다. 예천군 용궁면과 안동시 와룡면으로 예천군 용궁면은 내성천과 낙동강을 끼고 있어 용이 살만한 곳으로 지명 또한 바다의 용궁을 뜻하는 용궁면이다. 신라시대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동해의 용궁이 경주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앞바다라면 육지속의 용궁은 이곳 회룡포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유독 이곳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과 관계된 지명을 보면 용궁면, 회룡포, 비룡산, 용포마을, 오룡리, 용담소, 와룡산, 구룡동, 용두산, 용두진, 용암리로 모두 회룡포 인근에서 불리고 있다.

 

 

 

 

 

또 한곳은 안동 와룡면의 와룡산이다. 인근에 안동호가 자리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돌아와 몸을 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하여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백봉 구봉령 선생이 용산이라 부른데서 유래를 한다. 이곳 또한 낙동강이 흘러가는 곳으로 조선시대 이전에는 수많은 계곡물이 몰려 든다하여 수다산으로 불렸으며 현재에는 용의 거처로는 최적인 안동댐이 건설되어 옛 전설을 뒷 받침해주고 있다. 이번 산행은 용의 전설을 간직한 안동 와룡면의 와룡산을 다녀왔다.  전국적인 지명이야 사천의 와룡산을 꼽지만 이곳 안동의 와룡산 또한 예로 부터 안동부 동쪽의 진산으로 여겼고 기우단과 사우단이 있으며 나라와 안동 고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리들과 고을민이 제관이 되어 하늘에 제를 올린 산이다.

 

 

 




 




성주나무로 불리는 350년된 당산나무

 




 




 




 




 

 

 

 

5km 짧은 산행지로 원점 산행 코스이다. 산행시작은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 용두골 마을 뒤에 있는 와룡산 주차장이다. 산행 경로를 보면 와룡산 주차장~선비길 코스~능선 용천수 사거리 갈림길~까투리바위~까투리봉(452m)~용천수 갈림길~기우단~거북바위~주차장갈림길~개구리바위~옥좌바위갈림길~금강굴~와룡산(용두봉)~신선길 갈림길~노적봉~말바위~(신선길갈림길)~산야마을갈림길~호식총~신선대(범굴)와룡산 갈림길~일출길갈림길~소원바위고인돌~와룡산 주차장 순으로 산행시간은 3시간 30여분이면 넉넉하다. 특이 이곳 와룡산은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는 거석문화가 발달하여 유난히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보따리를 이룬다.

 

 

 

 

 




 




용천수 갈림길인 사거리 능선

 




한반도를 닮은 안동호

 






 




 



와룡산 주차장에는 대형 등산 안내판이 있어 일별한 후 출발을 한다. 보통 신선길로 올라 선비길로 하산을 많이 하지만 필자는 반대로 선비길로 따라 오르기로 하였다. 와룡산을 정면에 두고 선비길은 왼쪽 방향이다. 왼쪽 주차장 끝으로 팔각정 쉼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들머리다. 곧 정면에 큰 소나무와 만난다. 양반가에서 성주를 드렸던 성주나무로 수령이 350년,높이가 27m로 거대한 적송이다. 아래 용두마을의 당산목으로 마을의 상징목이며 마을 앞산 능선에는 방두솔로 불리는 500년된 적송이 지금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마사토의 흙길을 따라 오르면 작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옛 안동의 선비들이 이길을 따라 걸었던 것은 아닌지, 낮은 산이라 그런지 돌아나가는 산길이 너무나 여유롭다. 넓게 조성된 산길을 따라 여유를 가지고 20여분 걸으면 6.25 전쟁 당시 공비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팠던 비트가 있다는 곳을 지나게 된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급한 경사에 찾지 못하고 그냥 능선으로 오른다.




 




선비바위

 




까투리바위

 




 







 




 




 




너덜겅

 




견우직녀바위

 




용천수 갈림길

 



용천수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능선 사거리 갈림길이다. 능선을 넘어 내려가면 용천수가 있는 샘터 방향이고 와룡산 정상 방향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 간다. 능선을 따르기 전에 용천수 하산길로 50m 내려가면 한반도 모양을 한 안동호를 볼수 있다 이곳이 황룡도강지로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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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때 구원병으로 온 이여송은 이곳을 지나던 중 와룡산 산세와 물줄기의 조화를 보고 이곳에 훌륭한 재목이 날것이 두려워 감려를 시켜 와룡산 가랠목재를 끊고 젊은 인재가 많이 모이는 현사사를 보고 동쪽 우백호의 산세를 꺾기 위해 재궁목재의 혈을 끊어 쇠말뚝을 박았다한다. 이때 검붉은 피가 솟구치고 와룡산은 사흘동안 괴성을 지르며 통곡하였다 한다.




 




 




거북바위

 




 




일출길 갈림길

 




 




 



다시 능선으로 돌아와 용두봉 방향으로 오른다. 능선길을 살짝 오르면 무덤을 지나고 선비바위와 만난다. 옛날 현사사로 넘어가던 선비들이 이곳 바위에 앉아 시를 읊으며 쉬었다한다. 다시 까투리바위와 만난다. 매가 꿩 사냥을 하여 이곳으로 가져 왔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또한 아랫마을 처녀가 이곳에 올라와 선경에 취해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은 뒤 처녀의 넋을 달래기 위해 바위틈에 정화수가 고였다는 전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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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바위

 




두꺼비바위

 




개구리바위

 




 




 




곰남근바위

 




 




금강굴 입구

 




 



밋밋한 능선을 오르면 까투리봉 정상이다 소나무 숲으로 주위 조망은 전혀 볼 수 없다. 직진하여 내려서면 견우직녀바위로 신기하게도 이바위에는 왕가에서 준 모자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견우가 직녀와 결혼 한 후 하늘의 옥황상제로부터 받은 왕관이라는 구전이 전한다.이곳을 내려서면 용천수 갈림길 안부를 지난다. 다시능선을 따라 살짝 오르면 기우단이 있었던 봉우리로 고려시대부터 고을에 가뭄이 심하게 들때는 이곳으로 올라와 물굿제를 지냈고 오른쪽 5m 아래에는 거북바위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거북바위의 머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어 아래 주민들은 마을에 풍요와 안녕을 내려준다며 믿고 있다. 그러나 거북바위 머리부분을 보면 근래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어 마을주민들은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또한 거북바위 전망대가 와룡산에서 가장 멋진 조망을 보여 준다.



 




 




 




와룡산 정상

 




 




 




신선길 갈림길

 




이곳을 지나면 삼거리 안부에 닿고 오른쪽으로 와룡산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일출길이 열린다. 직진하여 능선을 따라가면 부처바위, 두꺼비바위, 개구리바위를 지난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바위를 보면 특히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든 두꺼비바위가 신기하다. 한쌍의 두꺼비가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예로부터 자손의 번창과 가정의 안녕, 소원성취를 빌어 왔던 장소라 한다.



 




 




 




말바위

 




 




 




호식총

 



이곳에서 2분이면 곰남근바위와 옥좌바위가 있는 금광굴 갈림길이 나온다 , 오른쪽으로 50여m 돌아가면 일제 강점기에 금을 캤던 금광굴 입구가 나온다. 길이가 50m며 폐광되기전인 1950년때까지는 석영과 금을 채취하였고 안쪽에는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박쥐가 생활하고 있다. 다시 곰남근바위로 복귀하여 진행방향의 능선길을 타면 와룡산 상봉인 용두봉이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이른 아침 안동호 너머에서 올라오는 일출이 장관일 정도로 유명하여 일출봉으로 불린다. 이곳의 조망은 남쪽 대구의 팔공산과 동쪽에는 영덕 칠보산과 영양일월산, 북쪽 가까이에는 봉화 청량산과 소백산도 조망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선대와 범의굴

 




 




 




 




 




 



이곳에서 내려가는 하산길은 두 곳, 신선길과 노적봉 방향 능선길이다. 하산은 직진방향인 왼쪽 능선의 노적봉으로 내려간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10분이면 신선길 갈림길인 안부에 닿고 노적봉과 말바위에 올라 이곳으로 돌아와 신선길을 타야한다. 직진하면 옛 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봉긋한 봉우리에 무덤이 있다. 노적봉 정상으로 밋밋한 봉우리다. 노적봉 안내판이 붙어 있고 산야마을길로 30m 내려가면 말 모양을 한 말바위가 있다. 하산을 위해 신선길 갈림길로 돌아와 왼쪽 너른 길을 간다. 4분이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은 뒤 5분 이면 작은 계곡을 건너 작은 돌맹이가 널 부르진 너덜과 만난다.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와 이곳에서 잡아 먹었다는 호식총 안내문이 붙어 있다. 비탈을 살짝 오르는 산길을 따라 5분 쯤 돌아가면 바위벼랑인 신선대 아래에 작은 굴이 있다. 신선들이 범의 호위를 받으면서 잔치를 벌였다는 곳으로 이곳은 무녀들의 산신기도를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일출봉(용두봉) 갈림길과 일출길 갈림길을 차례로 지나면 산길은 밭 모롱이에 내려서고 길가에 고인돌로 보이는 소원바위를 지나 3분이면 출발지였던 와룡산 주차장이다.


 

 




고인돌인 소원바위

 




 




거북바위가 보인다.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 와룡산, 천하를 호령하던 용이 몸을 뉘며 쉬었다는 와룡산에서 안동호의 한반도 지형을 만나다. 와룡산 교통편


신대구부산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금호JC에서 안동 원주방향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남안동IC에서 내려 안동 방향으로 3㎞가량 직진, 안동 방향으로 좌회전해 5번 국도로 오른다. 12㎞쯤 이동, 영호루 앞 사거리에 시청, 도산서원 방면으로 좌회전 영호대교를 건너자마자 다시 시청 안동역 방면으로 우회전(육사로)해 500m쯤 간다. 천리고가교 남단에서 시청 도산서원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청량산 방향으로 달린다. 천리고가교를 타고 넘은 뒤 8㎞쯤 직진하여 와룡삼거리에서 예안 방면으로 우회전(농암로), 933번 지방도로를 타고 4㎞쯤 이동하면 와룡산 등산로 표지판이 보이는 와룡면 주계리 입구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우회전하여 마을길을 용두마을을 통과해 300m쯤 가면 출발지인 와룡산 주차장이다


안동와룡산 고도표


 



안동와룡산 지도


 

◆안동 와룡산 산행 후 가볼만 한 곳과 맛집◆


법흥사 7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안동역 동부동 5층전탑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안동역옆)

 





2014/06/10 - (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2014/04/07 - (박쥐)드라큘라를 생각나게하는 박쥐를 가까이서 실제 보니... 귀엽고 예뻐요.박쥐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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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여행/안동여행)안동여행에서 법흥사 칠층전탑과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동부동 오층 전탑을 보고 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길이 딱 그 짝입니다. 안동 여행길에 꼭 찾아가고 싶었던 게 국보 제16호인 법흥사지 칠층 전탑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크다는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지금 위장막을 치고 복원공사 중이었습니다.



 




기존의 탑과는 완전 다른 형태의 전탑입니다. 신라시대부터 탑이라면 보통 화강암으로 깎아 쌓아 올린 석탑 등으로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만 . 붉은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전탑은 부산 쪽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벽돌을 쌓아 탑의 형태를 갖춘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그 높이만 해도 16.8m, 기단 폭은 7.75m로 어마어마하여 국내의 석탑중 경주 감은사지의 석탑인 쌍탑보다도 더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탑이 남아 있는 곳이 법흥동으로 이는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의 전탑으로 추정합니다. 전탑의 방식을 보면 단층기단에 칠층인 몸돌은 차츰 크기를 줄여가며 쌓아 올렸고 법흥사터에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과 철도가 놓여 있습니다. 법흥사지 칠층 전탑은 새로운 모습으로 복원이 되면 그때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을 담 넘어 보았습니다.


 

 




이곳도 현재는 공사 중이였는데 안동시 법흥동에 있습니다. 고성이씨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어 집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은 중요민속자료 제185호로 고택 뒤로는 야산이 둘러쳐져 있고 집앞으로 법흥사 칠층전탑이 담에 가깝게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1704년 조선 숙종 30년 좌승지였던 이후식이 법흥사 터였던 이곳에 지었고 북정은 영조 51년(1775년)에 그의 후손 이종주가 지었다합니다. 종택의 규모를 보면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정자와 연못 등을 갖추고 후에 방앗간채, 사랑채, 외양간채가 추가로 지어졌습니다.


 

 




안채는 정면8칸에 측면6칸으로 자연석 축대위에 세웠으며 동쪽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은 배산임수를 잘 조화시킨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으로 현재에도 잘 보존과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국보인 법흥사지 칠층 전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안동역 옆으로 이동을 하여 보물 제56호인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을 보았습니다. 동부동 오층전탑은 안동역과 접하고 주위의 도심화로 인해 더욱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6.25 한국전쟁으로 일부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고 1962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습니다. 오층전탑이 있는 이곳은 법림사 터로 전하는데 전탑 옆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탑의 높이는 8.35m, 탑신부 길이는 27.5cm, 넓이 12.5cm, 두께 6cm로 무늬가 없는 벽돌로 길고 짧음이 어긋나게 5층으로 쌓았습니다. 오층 전탑은 월래 7층으로 법흥사 칠층전탑과 같이 금동제의 상륜부가 있었다하며 불상을 모시는 감실이 각층에 형식적으로 설치되었고 2층 남쪽면에는 인왕상 2구를 조각한 판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탑이 세워진 뒤 여러번 수리를 하면서 원형이 변형되었고 외관도 많이 손상되었다합니다.


 

 




오층전탑과 함께 남아 있는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0호이며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로 높이가 260cm입니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불기, 괘불을 거는 깃대를 고정시키는 돌기둥이며 보통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위부분은 6.25 한국전쟁 때 파손되었고 당간을 받치던 둥근 주좌돌이 당간지주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무늬등이 없는 것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모양이며 동부동의 오층전탑과 함께 법림사와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2014/04/13 - (경북맛집/안동맛집)안동하회마을 맛집 간고등어 일직식당.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도 먹고 갔다는 안동간고등어 일직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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