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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의 쌍봉사는 천년고찰로 통일신라시대인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다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이해에 혜철선사가 하안거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졌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 후 855년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건너와 금강산에 머물다 이곳에 내려 왔다하며 사찰의 앞과 뒤에 봉우리가 두 개 솟아 쌍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곳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화순군에선 유일한 국보가 이곳에 있다. 국보57호인 철감선사 탑의 모습은 경지에 이른 조각가의 솜씨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보물인 철감선사 탑비와 함께 쌍봉사를 대표한다.

주지 시공스님은 대숲에 앉은 바람은 ‘사랑해 사랑해“하고 풍경에 앉은 바람은 ’그러마 그러마”하며 인사 글을 올렸는데 이곳 쌍봉사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만큼 찾는이가 드문 한적한 골짜기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숙종16년인 1690년에 대웅전을 중건하고 대웅전 석가삼존불과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다 한다. 대웅전은 여러번 중수과정을 거쳐 1950년 6.25 한국동란때에도 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대웅전과 극락전은 보존이 잘 되어 오다가 1984년 뜻하지 않은 화재로 대웅전이 전소되었다. 그 후 1986년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며 복구를 하였는데 1962년 대웅전을 해체하여 중수를 하였다 한다. 그때 발견된 기록을 가지고 옛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다는데 어쩐지 엉성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정면 1칸, 측면 1칸인 통으로 연결된 3층 목탑형식인 대웅전이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남는다.

 

 



 

 

 

 

 

 

 

 

 

 

 

 

 

 

 

 

 

 

  



쌍봉사는 구산선문중의 일문인 사자선문의 개조인 철감선사께서 통일신라 48대 경문왕8년인 868년에 창건하였다. 대웅전의 모습은 단 국내에서는 두점으로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과 이곳 쌍봉사 대웅전으로 193653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8443일 신도의 부주의로 소실 되었다. 평면이 방형인 3층 전각으로 사모 지붕의 목조탑파 형식이다. 현재는 86년 복원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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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는 쌍봉사란 사찰이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혜철 선사가 이곳에 여름을 지냈다는 기록과 855년 경에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철감선사가 이곳 쌍봉사에서 머물렀다는 것으로 보아 839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쌍봉사에 대해서는 차후 포스팅을 하기로 하고 이번 포스팅은 화순군에서는 유일한 국보 한 점과 그리고 보물 한 점을 소개할까 한다. 모두 철감선사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국보인 탑은 스님 사후의 부도탑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곳을 말하는데 그의 정교한 기술이 예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철감선사는 798년인 원성왕 14년에 출생하여 18세에 불가에 귀의 하였고 28세때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수학하였다 그 후 847년에 범일 국사와 함께 귀국하여 금강산에 머무르며 수도에 전념하였다. 경문왕때 그는 이곳 산수의 아름다움에 거처를 정하고 그의 호를 따 쌍봉이라 하였다하는데 쌍봉이란 현재 쌍봉사의 앞 뒤로 솟은 봉우리를 의미한다. 868년 경문왕 8년 이곳에서 입적을 하였고 경문왕이 철감이란 시호를 내리고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는데 현재의 국보 57호와 탑신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로 이수와 귀부만 남아 있다. 탑의 형태는 전체가 8각형으로 꼭대기의 상륜은 남아 있지 않다. 이탑의 모든 부분도 눈여겨 볼 일이지만 특히 막새기와 안에 연꽃무늬를 새긴 솜씨는 석공 필생의 역작이라 할 정도로 정교하며 신앙에 기인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 룰 수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화재청의 사이트를 인용하면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모습이며,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마리의 사자가 구름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윗돌 역시 2단으로 두어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두르고, 윗단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가 악기를 타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새겨두었다. 사리가 모셔진 탑신(塔身)은 몸돌의 여덟 모서리마다 둥근 기둥모양을 새기고,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四天王像), 비천상(飛天像) 등을 아름답게 조각해 두었다.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다.

http://www.cha.go.kr/unisearch/Uniresult_Db_View.jsp?VdkVgwKey=11,00570000,36&queryText=쌍봉사철감선사탑

 



 

 

 

 

 

 

 

 

 

 

 

 

 

 

 

 

 

 

 

 

 

 

 

 

 

 

 

 

 

 

 

 

 

 

 

 

 

 

 동리산 태안사의 광자대사탑  보물 제274호

국보와 비교 함 해보세요.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보물 170호

철감선사탑비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경문왕이 시호를 철감으로 내린후 탑과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도윤(798~868)의 탑비로 현재 거북받침돌인 귀부와 위에 얹혀진 이수만 남아 있다.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머리에 거북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오른쪽 발은 올려진 모습이다. 이수는 운상인 구름문양으로 새겨져 있고 삼각형의 돌출형의 바위가 두 개 남아 있는데 한 개는 사라진 상태이다.  

http://heritage.daum.net/heritage/16509.daum

 

 

 

 

 

 

 

 

 

 

 

 

 

 

 

 

 

 

 

 

 

 

 

 

 

 

 

 

 

동리산 태안사의 광자대사탑비 보물 제275호

철감선사와 같은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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