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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만공대선사의 원력으로 선종 도량이 된 예산 덕숭산 수덕사.


예산 덕숭산 수덕사는 현재 문헌상의 창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백제 위덕왕(554~597)때 고승 지명이 세운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일설에는  599년 신라 진평왕 21년에 지명이 창건하고 원효스님에 의해 중수를 하였다고도 전합니다. 

 


그 후 제 30대 무왕때 혜연스님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하면서 수덕사의 위상이 더 높았고 고려 31대인 공민화 때에 나옹선사가 주석하며 중수를 하였습니다. 현재의 수덕사 규모는 조선 제26대인 1865년 고종2년에 만공스님의 중창으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예산의 수덕사를 찾아가는 길은 예사 거리가 아닙니다. 큰 마음을 먹고 찾아간 수덕사는 여행을 가기전 부터 필자에게는 많은 궁금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가요인 '수덕사의 여승'를 들어면서 자랐던 저로서는 수덕사에 까까머리 여승들의 처연한 모습을 실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덕사를 찾아간 필자는 이곳도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인 것을 보았습니다. 수덕사의 환상이 깨어졌다고 할까요?. 나뭇가지를 때리는 겨울바람의 처연한 울음소리만 들리는 수덕사를 보기 위해 덕숭총림 수덕사 선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와!!!! 눈이다. 부산에서 좀체 보기 힘든 눈이 남아 있습니다. ㅎㅎ 반가움에 눈도 밟아 봅니다. 


'삼일수심 천재보 백년탐불 일조진'은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참 좋은 법어입니다.


원담스님 부도탑을 지나면 덕숭산 수덕사로 들어서는 일주문이 반깁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덕숭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수덕사을 찾아 그야 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필자도 그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일주문 뒤쪽 현판에 동대제일선원인가요 누가 현판에다 지렁이 붙혀 놨네요. ㅋㅋ 좀 쉬운 글씨 채면 너무 좋은데 말입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다눈 수덕여관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덕숭산 수덕사 유래가 궁금합니다. 보통 천년사찰에는 한두가지의 창건설화가 전해오는게 정설입니다. 수덕사도 예외가 아닌 두가지 전설이 전해 옵니다. 



먼저 덕산 향토지의 내용입니다. 어느 마을에 수덕이란 도령이 살았는데 하루는 사냥을 갔다가 우연하게 낭자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집니다. 수덕도령은 그 낭자를 잊지 못하고 고민을 하다가 건너 마을의 덕숭낭자 임을 알게 되어 청혼을 하지만 여러 번 퇴짜를 맞습니다. 끈질긴 청혼에 덕숭낭자는 자기 집 옆에다 절을 하나 세워 줄 것을 조건으로 걸면서 청혼을 승낙합니다. 그 날로 수덕도령은 불철주야 절을 짓기 시작합니다. 여러번 절을 완공하지만 그때 마다 절에 불이나 다 타버리고 맙니다. 또 다시 절을 짓기 시작하면서 탐욕스런 마음도 버리고 덕숭낭자도 잊고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짓습니다. 절이 완공되자 낭자는 어쩔 수 없이 도령과 혼인을 하지만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껴안는 순간 하늘에 천둥번개가 일면서 덕숭낭자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낭자의 버선 한 짝만 남았습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였고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는데 버선꽃이라 합니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그 이후부터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가 되었고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설은 수덕사가 창건 된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을 하게 됩니다. 불사를 일으키기 위한 불사금을 모우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어느 날 공양주를 자청하는 여인이 나타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요즘 말로 절세미인이 수덕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인근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 날부터 수덕사에 여인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느 날 신라의 재상 아들인 정혜라는 사람이 소문을 듣고 수덕사를 찾아 와 여인을 보고 한눈에 반해 혼인을 하자며 청혼을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수덕사의 대 중창 불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청혼을 받아 들이겠다합니다. 이에 정혜도령은 자신이 불사금을 내어 절을 완공한 후 낙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령은 여인보고 이제 같이 떠나자며 여인의 손을 잡는 순간 옆에 있던 바위가 쩍 갈라지며 여인은 버선 한 짝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도 봄이면 바위 틈으로 버선을 닮은 꽃이 피는데 이를 버선꽃이라부릅니다. 야생화를 찍는다고 다닌 경험이 있는 필자가 자세히 보니 ‘골담초’ 꽃입니다. 골담초가 버선꽃으로 불리는 사실과 수덕사 창건 전설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수덕이라 불렸으므로 수덕사라 부르게 되었고 정혜도령은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며 덕숭산으로 들어가 작은 절을 짓고 정혜사라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관음보살님 나빠요?????? 두 청년을 울리시니 말입니다. 흑흑(참고;수덕사 홈페이지)



덕숭산 수덕사 창건설화에 수덕도령과 덕숭낭자 정혜도령의 이름을 따 수덕사와 덕숭산, 정혜사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수덕사 대웅전을 향하기 위해 금강문을 들어섭니다. 금강역사 두분이 좌우로 험상궂은 모습을 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사대천왕이 지키고 있어 온갖 악귀로 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늠름한 모습을 보니 나쁜 놈들은 이 문을 통해서 절 안으로 한발짝도 들어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근무중 이상무"



지금부터 수덕사 사찰 구경을 천천히 하면 됩니다. 




먼저 문화재 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 석탑입니다. 1931년 일제강점기때 만공대선사에 의해 건립된 석탑으로 기단을 만들지 않고 바로 탑신과 옥개석을 올렸습니다. 문화재의 문외한인 필자 눈에는 너무 높다보니 약간 엉성하며 불안하게 보입니다(개인적인 생각).  


웅장한 코끼리석등의 모습입니다. 


황하정루 아래로 나가면 됩니다.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전 방장 원담 진성스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 있는 수덕사 마당입니다. 



수덕사 금강보탑입니다. 중창불사를 하면서 전탑좌대가 현위치에 발견되어 고증을 거쳐 석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하였습니다. 금강보탑 내부에는 1988년 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를 예방하면서 한·스리랑카간의 우의 차원에서 스리랑카로 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 받았습니다. 수덕사에서 십수년간 친견 법회를 열다 2007년 금강보탑을 완공한 후 봉안하였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입니다. 1962년 12월에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고 현존하는 목조건물인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과 국보 제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정면3칸, 측면 4칸의 주심포 양식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1937년 중수를 하면서 발견된 묵서에는 1308년인 충렬왕 34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의 단 아래에 위치한 수덕사 3층 석탑은 유형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된 탑으로 원효대사가 중수를 하였다하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따른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단은 2층이며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습니다. 또한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었고 지붕돌인 옥개석과 몸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습니다. 1층은 5개의 옥개 받침을 하였고 2층과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면에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치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보륜만 남아 있던 상륜부는 현재 찰주, 보개, 복발, 노반을 새로 만들어 올렸습니다.







관음바위 앞에 봉안된 관음보살상입니다. 온화한 미소가 너무 나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입니다.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 56억 7천만년을 지나 미래의 부처인 미륵보살이 출현 할때까지 중생을 고통으로로 부터 구해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 관음보살입니다.  







수덕사 창건설화가 전해지는 전설의 관음바위입니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버선꽃이 봄이면 피어 난다고 하니 봄에 찾아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음바위를 지나면 덕숭산과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이 시작됩니다. 필자는 만공탑과 능인선원인 정혜사를 오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오르다 시간상 제약으로 그만 두고 사면 석불과 화소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하였습니다. 

사면석불입니다.



화소대 가는 오솔길

비구니 김일엽스님이 머물렀다는 화소대




두마리의 사자가 불법의 진리를 만방에 밝히는 석등을 들고 있는 쌍사자 석등입니다. 

수덕사 대웅전을 내려오면서 많은 관광객이 보고 있어 그냥 지나졌던 포대화상을 다시 만났습니다. 득남한다는 전설 때문인지 배쪽으로 손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환회대도  만나고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일주문입니다. 오를 때 스쳐지나간 고암 이응노 화백의 수덕여관을 보기위해 찾아갑니다. 충청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이응노선생이 작고 전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수덕사 관람요금 안내


대웅전 양옆에는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고 조인정사와 정혜사를 오르는 1,020계단, 미륵불입상, 만공탑, 금선대, 진영각등과 만공스님이 참선 도량으로 세운 정혜사가 있습니다. 또한 부속 암자로는 비구니스님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 선수암, 극락암등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신정진하는 덕숭총림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물제1236호인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보물 제1381호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복장유물, 수덕사 유물인 거문고 소조불상좌상등이 남아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수덕사를 다 만나기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방문이라 수덕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났는데 혹 다음에 또 다시 수덕사를 방문할 기회가 찾아 온다면 정혜사와 견성암등을 위주로 돌아 보고 싶습니다. (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문화재 안내판)

◆수덕사 주소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전화:041-330-7700



수덕사 경내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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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여행/예산여행)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국보 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을 만나다.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는 모든 분이 아실 것입니다. 송춘희씨가 처연할 정도로 불렀던 ‘수덕사의 여승’에 의해 대한민국 486세대 이상은 모두 ‘수덕사 여승’을 한번 쯤 읊조리며 따라 불렀습니다. 필자에게는 늘 가보고 싶었던 예산 덕숭산의 수덕사는 그러나 부산에서는 가기에 너무 먼 길이라 마음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산 쪽으로 여행을 가는 답사팀이 있어 두말하지 않고 따라 붙어 묵은 숙제 같았던 수덕사도 보고 ‘수덕사 여승’의 궁금증도 풀고 왔습니다. 까까머리 여승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여느 사찰과 똑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수덕사 전체 포스팅은 차차 올리도록하겠고 요번에는 수덕사의 중심건물인 대웅전만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수덕사는 창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제 위덕왕(554~597)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 만 하고 있습니다.



천년사찰 수덕사에도 ‘나라의 보물’인 국보가 한 점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으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 제15호이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 국보 제 18호입니다.



불교 건축물중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는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시대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세워진 건물로 국보 제49호입니다. 세월의 무게 앞에는 수덕사 대웅전도 견디지 못하고 여러 번 중수과정을 거쳤습니다. 



조선시대인 중종 23년(1528년)에, 영조때에는27년(1751년)과 46년(1770년)에 그리고 순조3년인 1803년에도 색채보수를 하였습니다. 수덕사 중수기에는 네차례 동안 부연과 풍판의 개수등을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도 대대적인 보수공사을 하였습니다.




1937년~1940년까지 4년 동안 만공스님에 의해 대웅전 전체를 해체 보수를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벽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고려 벽화로는 ‘주악 비천도’ ‘공양화도’ ‘수화도’ 등이며 조선시대 벽화로는 ‘오불도’등이 남아 썼는데 지금은 유실이 되어 볼 수 없고 모사본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합니다.



또한 대웅전 내부 대들보에 남아 있는 금룡도는 우아하고 화려한 색체와 생동감 있는 걸작으로 고려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합니다. 아쉽게도 대웅전 내부는 사진 촬영도 금하고 시간상 신발을 벗고 들어 갈 수 없어 내부를 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석가모니와 아미타불 그리고 약사불인 삼존불을 모시며 정면3칸에 측면 4칸으로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건물로 외관에 사용된 부재가 크고 굵어 전체적인 건물의 안정감이 뛰어나다하겠습니다.



바른 돌쌓기 양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습니다. 또한 기둥을 연결하는 인방, 고주와 평주를 잇는 퇴보, 고주간을 맞잡는 대들보 등의 직선재와 이를 지탱하는 형식적인 포대공, 초방위에 주심도리를 지탱하는 우미량은 무량수전의 직선과는 달리 크게 휜 곡선 모양입니다.



대웅전을 정면에서 보면 각 칸에는 빗살 3분합문이 있고 뒷면의 가운데 칸에 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앞쪽에 출입문을 넣었습니다. 맞배지붕의 선과 벽에서 노출된 목부재의 세련된 구도는 간결하면서도 우리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이라 하겠습니다.(참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유인물과 수덕사 문화재 안내판)


◆사진으로 보는 덕숭산 수덕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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