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경북여행/영양여행)영양 서석지. 조선시대 민가 3대 정원중 하나인 영양의 서석지의 아름다움을 보고 왔습니다. 


조선시대 3대 정원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정원이 현재 남아 있습니다.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 세연정 그리고 영양의 서석지입니다. 필자는 담양 소쇄원과 보길도 세연정을 가보았는데 영양의 서석지는 좀체 볼 기회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영양을 1박2일 여행 하면서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왔습니다. 막 은행나무 고목에 물이 올라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었습니다.

 

 

 

 

 

봄의 서석지도 좋지만 은행나무에 노란 단풍잎이 물드는 대구의 도동서원처럼 가을의 서석지도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석지는 석문 정영방 선생이 1636년 영양의 입암으로 이주하여 서석지와 경정, 주일재, 운서헌, 유종정을 짓고 인근의 석계 이시명, 조전, 조임과 교류를 하였던 별서입니다.

 

 

 

 

 

 

 

 

그럼 정영방 선생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선생은 지금의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1577년(선조10년) 출생하여 5세때 5촌 당숙이었던 정조의 양자가 되어 안동의 송천으로 옮겨갑니다. 그 후 상주 우산에 거처하던 우복 정경세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갈고 닦아 1605년인 선조38년에 진사시에 오르게 됩니다.

 

 

 

 

 

스승 정경세가 조정에 천거하지만 광해군 때 어지러운 정국에 회의를 느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낙향하여 산림거사를 자처하며 초야에 묻혀 학문연구로 일생을 보냅니다.

 

 

 

 

 

 

경정앞에 만든 연못인 서석지에서 이곳의 연당마을 지명이 유래되었고 정영방선생은 마을 주변에서 찾은 아흔개의 작은 바위를 연못 안에 배치 하였습니다. 암석 하나하나 마다 이름을 지어 시를 짓는 것이 바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작업이였고 그 자체가 경정과 함께 한폭의 산수화였습니다. 선생은 연못안의 암석이 흰빛을 띤 상스러운 돌이란 뜻으로 서석이라 하였습니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인 서석지 주위로 경정과 주일재를 두고 있습니다. 주일재 앞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어 조선시대 꼿꼿한 선비 정신을 나타내는 사우단을 만들어 경정에 앉아 서석지를 바라보며 항상 마음을 갈고 닦았을 것 같습니다. 

  

 

 

 

서석지는 가로가 13.4m 세로가 11.2m 에 높이는 1.3~1.7m의 크기로 모양은 요(凹)자형 입니다. 연못안에 상운석등 평소 물위에 드러낸 것이 60여개고 침수 된 돌이 30개로 물이 읍청거에서 유입되어 토예거로 나가는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게하여 넘치는 법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선비의 정신이 아닌지요. 조선시대 민가의 3대 정원인 서석지에 연꽃이 필때 쯤 경정에 앉아 시원하게 여름을 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민가 3대 정원 완도 보길도 세연정

 




조선시대 민가 3대 정원 담양 소쇄원


 






2014/05/08 - (경북여행/영양여행)육지속의 섬이라는 경북영양 1박2일 여행에서 여중군자 장계향의 음식디미방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을 만나다.


2014/05/11 - (경북맛집/영양맛집)두들마을 맛집 음식디미방체험관, 조선 양반가의 특이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보길도의 유래는

 

보길도 고산윤선도와 함께 하는 보길도는 섬의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의 모양이라 그 어원인 '보고래'에서 보길도가 유래하였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 태풍을 피해 찾아간 보길도.

 

윤선도는 병자호란으로 고향의 해남에서 그의 가솔을 거느리고 뱃길을 인조가 피신을 해 있다는 강화도로 가는 도중 인조가 항복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여 다시 뱃머리를 해남으로 돌려 그길로 제주도로 향한다.
고산윤선도가 처음 이곳 보길도에 들어오게 된것도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기 위해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으로 잠시 몸을 피한것이 인연이 되었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여행)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보길도에서 윤선도가 처음지었던 낙서재 살림집

 

그길로 보길도에 눌러 앉게 되는데 그는 보길도의 격자봉에 올라 이곳을 바라보니  꽃망울을 터트리 직전의 연꽃이라 부용동이라 짓고 격자봉의 혈맥이 세번 꺽여 내려오는 곳에 처음으로 낙서재를 짓는다. 1637년인 인조 15년에 들어와 그가 가장 먼저 지었던 건물로 1650년 그가 이곳 낙서재에서 돌아가실때 까지 생활하였던 집이다.  

 

 

 

그는 이곳에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의 낙서재 현판을 걸고 조상의 위패를 모시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무민당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의 낙서재와 곡수당은 모두 최근에 복원된 건물로 그 이전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그 흔적만이 남아 세월속에 묻혀 있었다.

 

 

 

 

보길도에는 그의 기인같은 행동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그는 작은 바위 한개라도 허투로 보지 않고 많은 이름을 남겼다. 지금의 낙서재나 곡수당 그리고 동천석실은 그때의 흔적과 정취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이곳 툇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바라 보았을 것이고 저쪽 바위에 올라 하늘의 별을 세어 보았다고 생각하니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부용동에 있는 모든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 '보길윤선도원림'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에 비해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독서도 하면서 부용동과 격자봉을 바라보며 주자학 연구에 혼신을 다한곳이 아닐까.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동천석실은 그야말로 바위에 위태롭게 걸린 제비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곡수당과 낙서재를 둘러 보고 이곳 입구로 찾아가니 차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일행중에 연로하신분이 걸을 수 없는 처지라  젊은 우리들만 동천석실을 올라가자고 주장을 할 수도 없어 입구에서 돌아서 순천을 가기 위해 부두로 나왔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

 

 

 

 

곡수당으러 건너편 산중턱의 바위가 동천석실이 있는 곳이다.

 

 

동천석실의 모습.

 

 

보길윤선도원림 낙서재

 

 

 

 

 

 

 


 

 

 

 

 


 

 

 

 

 

 

 

 

 

 

동와와서와로 동쪽과 서족에 잠깐 휴식을 위해 지은 움막.

 

 

 

 

보길윤선도원림 동천석실

 

 

동천석실 입구 . 이곳에서 걸어야 한다.

 

 



 

 

고산 윤선도 홈페이지:http://yungosan.hosting.paran.com

 

 






728x90

728x90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세연정 동천석실 낙서재 곡수당을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명승 34호로 지정되었고 고산 윤선도가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을 위해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리며 향하던둥 태풍으로 잠시 피신을 위해 보길도로 찾아 들어 갔다. 그는 이곳의 경치에 마음을 빼앗여 제주도 가는 길을 멈추고 이곳에다 안주를한다. 이곳의 산세가  마치 연꽃봉우리가 피어 터질 것 같은 의미의 부용동이라 짓고 낙서재 곡수당 그리고 건너편 바위에 동천석실을 짓고 세연정이란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을 꾸며 놓고 자신의  학문 연구에 채찍을 마다하지 않는다.

 



 

 

 

☞(전남여행/완도여행/보길도 윤선도 원림)대한민국 명승 34호 어부사시사를 창작한 세연정. 보길윤선도원림 관광정보센터

 

보길도에서의 새연정은 먼저 규모에 놀라게된다. 한갖 외딴섬인 이곳에서 조정의 부름도 마다하고 여생을 보내고 이곳 낙서재에서 마지막으로 운명을 한다. 그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를 세연정에서 지었다하며 그의 보길도를 향하는 그의 행적과 보길도에서의 윤선도등을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에서 소상히 알아볼 수 있다. 관람료 1000원을 지불하면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보길도에서 고산 윤선도에 관한 문화재를 보기 이전에 이곳을 먼저 들러 보고 새연정등을 관람할 것을 권한다

 

 

 

 

 보길 윤선도 원림 관광정보센터 구경하기


 

 

 

 

 

 

 

 

 

 

 

 

 

 

 

 

 

 

 

 

 

 

 

 

 

 

 

 

 

 

 

 

 

 

 

 

 

 

 

 

 

 

 

 

 

 

 

 

 

 

 

 

 

 

 

 

 

 

 

 


 




728x90

+ Recent posts